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Article

대순사상에 나타난 인간 주체(主體)에 관한 연구: 인존(人尊) 개념을 중심으로

김대현1,
Dae-Hyeon Kim1,
1대순진리회 교무부 연구위원
1Research committee member, Division of Cultural Affairs in Daesoonjinrihoe.
Corresponding Author : Kim, Dae-Hyeon, E-mail : ditto-1225@hanmail.net

ⓒ Copyright 2016,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Feb 29, 2016 ; Revised: Apr 10, 2016 ; Accepted: May 05, 2016

Published Online: Jun 01, 2017

ABSTRACT

‘In-Jon(人尊)’ is one of a concept which constitute the mainstay of Daesoon thought. To be superficial, the concept is appeared to be limited at a area of anthropology, but In-Jon is a large concept which includes ontology and epistemology. Because the essence of human being is connected with God and the such possibility is related to the mission of human being’s subject who exists in world.

Advanced researches to analysis of in-jon tend to focus on rise of human status but this study do on universal subject not particular subject. This is to elaborate the point of issue. The point of view as rise of human status overlooks problem of relationship between human entities. who ingenerate hierarchy. In-jon is the universal subject of philosophical subject concepts which western philosophy have taken as main problem since Descartes. So we have to consider In-jon to be conceptual continuity concerning stream of history of ideas and communicate with ideas.

A precedent study on ‘injon’ concept has weak conceptual analysis, which only emphasizes the greatness of mankind as compared with others. But that can’t reveal

In-jon based on the Daesoon thought. So I try to engraft the concept on development of subject ideas to get academic objectivity. In-jon is great in having universal subject to expand the authority of God to all creation. That is the last goal which subject can reaches through the development. Considering this regard the research direction of this study is very encouraging and significant.

Western philosophy has important philosopher of the three, Descartes, Kant, Hegel. Those are a spectrum who show an aspect of subject ideas. The subject idea has become the middle of philosophical system since Descartes in modern. It is the right and necessary process to philosophy because human being has spirit or reason connected with God. So In-jon in Daesoon thought is academic concept comprising ontological and epistemological properties. So I try to analyse In-jon through that and have In-jon join the ranks of mainstream academics in this paper.

Keywords: In-jon; subject; hierarchy; God; spirit and reason

I. 서론

‘인존(人尊)’은 대순사상의 주축을 이루는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인간관의 한 영역에 국한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인존 개념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양 축을 끼고 있는 큰 개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자의 본질이 가진 가능성이 신(神)과 맞닿아 있고 그 가능성이 바로 세계 속에 실존하는 인간 주체의 주어진 사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인간의 신적 가능성이 실현된다는 것은 실존하는 인간을 통해 신적 존재(being)의 참모습이 실현된다는 존재론적 의미임과 동시에 인간을 통해 신적 인식이 발현된다는 인식론적 의미이다.

따라서 본고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가로질러 전개되며 이 전개에 대한 근거는 헤겔이 말한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1)에 대한 이론을 참고한다. 대순사상이 말하는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본체가 무엇이며, 이 본체가 어떤 식으로 지상에 실현되느냐의 존재론적 문제에 대한 답과 그 실현 가능성은 인간 주체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인간은 천지를 담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인간이 그것을 통해 본체의 모습을 그대로 자각하고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데 근거한다. 이러한 인간의 자립적이며 주체적이며 또한 보편적2)인 역량으로부터 인존 개념은 생겨난다.

본고의 모든 연역적 전개는 “우리 대순진리의 인존사상이 바로 평화사상이다.”3)와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4)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하며, ‘인존사상의 평화적 이념’과 ‘인존의 거대함과 마음’이라는 대전제 하에 ‘인존 개념을 전(全) 인간의 보편적 주체성 발현’이라는 테제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선행연구에서 보여준 인간의 신적 가능성으로서의 인존 해석에는 인간 위상의 상승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본고에서는 소수의 인간이 아닌 모든 인간의 보편적 주체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논점의 세밀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간 위상의 상승이라는 관점에는 인간 개체 내부의 관계적 문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인간 개체 사이의 관계성을 다루는 측면에서 인간의 보편적 주체성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선행연구의 연구 결과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아니며 선행연구의 인존 해석의 적중성과 명확성의 강화에 대한 요구인 것이다.

선행연구의 성과로부터 ‘인존’ 개념에 대한 해석의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해지기 위해서 먼저 인간 개체 전체의 보편적 주체성 획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 위상의 신적 상승이라는 의미는 인간의 위대성을 부각하는 면에 초점이 맞춰진 논점으로 이 논점으로부터는 ‘인존사상의 평화적 이념과 인존의 거대함과 마음’에 대한 구체적이며 분석적인 논의로 진입하기 힘들다. 따라서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존’의 평화사상에 대한 요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첫 번째 문제의식이 바로 인간 개체 사이의 위계의 문제인 것이다. 위계 발생의 근원지를 존재론적 구도 속에서 추적했다면 그 위계발생의 근원지를 탈피하는 존재론적 구도로서의 대순사상의 존재론이 제시될 것이며 그 존재론적 가능성 하에서 인간 주체의 인식 능력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확보하게 된다. 그 새로운 지평의 존재론적 토대가 ‘심체’이며 인식론적 지평이 ‘심’이다. 새로운 인식론적 지평은 상제님의 인신 강세로부터 그 실현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어 지금의 대순사상 속에서 구현되며 그 구현의 세계사적 열매가 ‘평화사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본고의 전체적 전개 방향이자 흐름이다.

글 전체의 전개를 목차에 따라 조감해보자면, 크게 존재론적 구도와 인식론적 가능성 그리고 종교 이념의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장은 존재론적 구도 세 가지를 제시하며 인간 개체와 만물 사이에 발생하는 위계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세 가지 구도 속에서 위계의 발생과 해소의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설명하는 장이다. 여기에서 존재론적 맥락에서 ‘천존ㆍ지존ㆍ인존’과 ‘존’의 개념을 분석하고자 한다. 두 번째 장은 첫 번째 장에서 다룬 세 가지 구도 가운데 위계의 문제를 해소하는 대순사상의 존재론을 근거로 한 인식론적 논의를 설명하는 장이다. 존재론적 ‘심체’로부터 그 근거를 확보한 인간 인식의 새로운 지평인 인식론적 ‘심’을 통해 ‘인존’의 의미를 밝혀간다. 그리고 세 번째 장에서는 ‘인존’에 대한 이러한 존재론적이며 인식론적인 토대 하에 대순사상의 종교 이념으로서의 평화 사상의 의미를 ‘인존’의 개념 하에 해석해 본다.

Ⅱ. 존재론의 세 구도와 ‘존(尊)’으로부터의 위계 문제

1. 존재론의 세 구도와 존재자의 위계
1)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사회계급

“하늘에는 이미 원형(原型)이 있다. 그래야 착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그들 자신을 그것에 따라 형성해 나갈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5)

플라톤의 존재론은 본체로서의 이데아와 그 그림자로서의 현상을 구분하여 이데아와 현상에 위계를 둔다. 이 관점은 존재론적 위계의 발생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이데아로 두고 현실을 그 그림자로서 헛된 것으로 설정하는 것은 그 뒤로 이어질 모든 위계의 근간이 된다.

이처럼, 이데아와 현상 간의 큰 계층적 높낮이가 있다면, 이데아 사이에도 위계가 있다. 이데아에도 그 본질의 절대성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가장 절대적인 본질을 가진 이데아가 가장 높이에 있다. 절대적 이데아를 축으로 아래로 절대성과 조금씩 멀어지는 속성을 가진 이데아가 위치하여 이데아 사이의 계급적 서열을 이룬다.6)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데아는 곧 절대자이다. 이 절대자로서의 이데아를 존재의 가장 최상위에 위치시킨다는 발상으로부터 모든 위계가 발생한 것이다.

그 위계는 또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념을 파생한다. 플라톤은 최상위의 이데아로서의 신과 인간의 관계도 이러한 구도로 설명한다. 인간은 신 아래에서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신의 의도 아래에서 모든 의미와 정체성을 가질 수 있으며 신의 절대성의 그늘로부터 자유롭거나 자율적이지 못한 피조물이다. 인간의 삶은 주체적이지 못하며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존재적 지위를 하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신적 본질에 대한 숭배와 동경을 갖게 된다.7) 이것으로부터 신적 위계 하에 있는 인간은 인간 사회 내부에도 그 위계적 서열을 그대로 적용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는 신적 존재의 본질로부터 내려오는 교육과 윤리적 인식 하에 다스려지는 국가이다. 국가와 개인적 삶은 그러한 신적 존재와 그에 대한 인식이 근간이 되어 통치되고 영위되어야 한다. 이런 통치 원리는 곧 철학과 정치의 결합이며, 신적 인식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철학자가 지배 계급으로서 지도자가 되는 국가가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이상 국가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역사적 예를 통해 보면, 중세에는 교황이 신의 뜻을 전한다는 명목 하에 정치적 권력을 행사했으며, 현재도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 코란 경전을 권위로 삼고 사제 통치를 하고 있다. 한국 역사에서 조선시대에는 유가의 선비들이 곧 정치가였으며, 왕들은 유가 경전을 통해 유가의 법도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고자 했다.8)

정리하자면, 플라톤의 존재론으로부터 발생하는 위계의 특성은 결과적으로 실재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것, 자립적인 것과 의존적인 것, 자율적인 것과 타율적인 것의 차이를 만든다.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관 하에 있는 인간에게는 실재적인 것이 권위를 갖게 되며 철인 통치자나 사제와 같이 그 권위 가까이에 있는 계층이 권력을 갖게 된다. 존재론적 위계가 하나의 체계로서 고착화되듯 그러한 존재론에 입각한 사회 계급구도 또한 고착화되거나 계급투쟁의 원인이 된다.9) 신과 같은 절대성의 권위 가까이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소수의 권력자 또한 엄밀하게는 자율적 주체라고 보기 힘들다. 신의 뜻을 자각하고 전달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 스스로로부터 말미암는 것이 아닌 신의 뜻을 그대로 모사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와 같이 존재론적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이론과 정치적 노예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은 그의 스승 플라톤의 존재론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본체로서의 이데아와 현상으로서의 그림자를 구분하는 것으로써 존재론의 기본 원리를 삼은 플라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체가 현상에 초월해 있지 않고 현상 내부에 내재해 있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있어 그림자에 불과한 비자립적인 현상적 개체들이 제일실체로서의 자립성을 갖게 된다.10)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적 개체를 제일실체라고 하여 현상적 개체에 자립적 실체성을 부여했지만 제이실체를 제시하며 다시 플라톤으로 회귀하게 된다.11) 그는 제이실체가 제일실체를 구성한다고 했는데, 형상으로서의 이 제이실체가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이다. 이데아 안의 세계인 플라톤과 세계 안의 이데아라는 관계적 설명의 차이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데아 그리고 형상으로서의 제이실체가 존재의 근본으로서 형이상학적 위계의 최상위에 있다는 사실은 서로 차이가 없다. 즉, 세계와 현상에 대한 형이상학적 결정론과 존재자들 사이의 위계적 질서, 존재자들의 종적 차이들 모두가 이 형상의 존재론을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다.12)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은 그의 정치학을 구성하는 근거가 된다. 그의 존재론이 정치학의 근거로서 작용하는 요소는 목적론이다. 형이상학적 최고 존재가 가진 근원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목적론인 것이다. 목적이라는 것은 모든 질서와 생성 운동의 중심으로 그 목적을 축으로 질서와 생성 운동이 전개된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론이 그대로 정치학에 반영될 때는 형상을 축으로 한 현상적 질서와 위계적 구도가 정해지게 된다.

형상적 목적론을 토대로 한 그의 정치학은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로서의 남녀관계 및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남녀관계는 종족유지에 따른 자연적 결합이며,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생존유지를 위한 자연적 결합이다. 사회 체제 내에서 여자와 노예를 따로 떼어 위계의 하층에 놓는 이유는 그것이 목적에 도달하는 가장 적합한 사회적 체계이기 때문이다.13) 따라서 거친 육체노동을 도맡아 해야 하는 노예 신분은 형상의 목적에 맡게 누군가에게 정해져 타고나는 것이며 또한 시민생활과 자유 그리고 정치적 권리에 적합한 지배 계급의 신분도 누군가에게 정해져 타고나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와 같은 생래(生來)적인 노예천성론(奴隸天性論)은 곧 보편적 자연의 원리로서 정당화 된다.14)

플라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은 결국 플라톤의 존재론을 더욱 풍부하게 해석한 결과가 되었으며 그것을 원리로 삼는 그의 정치학도, 노예제도로 대표되는 사회적 위계를 플라톤의 입장 하에 더욱 합리적인 방식으로 근거 짓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은 ‘이데아 안의 세계’와 ‘세계 안의 이데아’로서 그 전개의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이론인 것이다. 플라톤적 초월과 아리스토텔레스적 내재라는 표현은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보여 지지만 이데아와 형상이 이 두 철학자에게는 진정한 실재이며 실체라는 점에서 초월과 내재의 차이는 무의미해진다.

또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초월과 내재는 천상과 지상 혹은 내림과 오름의 차이 가운데 최상위 존재를 축으로 그것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기준으로 한 개별 존재자의 위계 설정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이것이 정치학에도 그대로 원리로서 적용되었는데 이러한 본체를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결정론적이며 목적론적인 세계관은 분명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평등과 권력적 폭력성을 양산하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3) 대순사상의 심체론(心體論)과 상생의 사회

대순사상의 존재론은 심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심체론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과 다른 점은 그들이 본체와 현상을 양분하여 이 둘 사이의 위계 구도를 제시하고 본체를 상위에 두었다면 대순사상의 심체론은 본체와 현상 사이의 상극적 위계를 지양(止揚)한다는 데 있다. 심체는 이분법적 개념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균형과 생성의 특성과 양극단을 매개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15)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적 이원론으로부터 발생한 위계(hierarchy)가 인간의 인식과 세계관 전반에 적용됨으로 인해 높고 낮음, 자립성과 의존성,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지위가 결정되거나 양자 사이의 투쟁과 지위 전복의 가능성이 발생함을 앞 장에서 확인했다. 이런 측면에서 대순사상의 심체론은 존재론적 위계로부터 파생되는 상극적 구도를 상생적 구도로 전환하는 패러다임의 원리이다.

심체란 리와 기, 질료와 형상, 사유와 연장, 본체와 현상과 유한과 무한, 존재와 무, 물질과 정신과 같이 이분화 된 개념의 가운데서 양자의 극단을 지양(止揚)할 때 생겨나는 개념이다. 존재의 궁극적 모습으로서의 심체는 분별적 인식이 추상의 극단에 이르렀을 때 만나게 되는 양자의 개념을 넘어 더 보편적인 것으로 상대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인 개념으로 설명되어야 한다.16) 이처럼 심체는 양 극단의 개념을 가운데서 끌어안고 양자를 매개하여 생성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러한 완전한 생성의 운동 속에서는 극단과 위계가 사라진다. 이것이 심체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위계의 균형적 분배의 특성이다.

심(心)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성은 정신적인 것만도 아니며 물질적인 것만도 아니다. 전경에, “천지의 중앙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동서남북 사방과 몸이 모두 마음에 의존한다.(天地之中央心也 故東西南北身依於心)”17)의 글귀는 심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잘 나타낸다. 천지의 중앙이며 동서남북과 몸이 마음에 의존한다는 것은 심이 모든 극단을 가운데서 조화하며 통합한다는 의미이다. 무한으로서의 천(天)18)과 유한으로서의 지(地), 이 양자의 중앙에 있다는 의미는 무한과 유한을 심이 그 가운데서 매개하고 있다는 것이며 좀 더 확장하면 관념적 추상과 물리적 구체성을 가운데서 안고 매개 운동하고 있는 존재론적 실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성을 내재하고 있는 존재론을 통합과 상생의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순사상의 상생(相生)적 존재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위계적 구도가 아닌 계급적 상생의 사회 구도로 나타난다.

지금은 해원시대니라. 양반을 찾아 반상의 구별을 가리는 것은 그 선령의 뼈를 깎는 것과 같고 망하는 기운이 따르나니라. 그러므로 양반의 인습을 속히 버리고 천인을 우대하여야 척이 풀려 빨리 좋은 시대가 오리라.19)

상제께서 비천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쓰셨도다. 김 형렬은 자기 머슴 지 남식을 대하실 때마다 존댓말을 쓰시는 상제를 대하기에 매우 민망스러워 「이 사람은 저의 머슴이오니 말씀을 낮추시옵소서」 하고 청하니라. 이에 상제께서 「그 사람은 그대의 머슴이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뇨. 이 시골에서는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말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로되 다른 고을에 가서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다 존경하라. 이후로는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이 없느니라」 일러 주셨도다.20)

후천에서는 그 닦은 바에 따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리니 이것으로써 예부터 내려오는 남존여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21)

후천에는 계급이 많지 아니하나 두 계급이 있으리라. 그러나 식록은 고르리니 만일 급이 낮고 먹기까지 고르지 못하면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22)

위의 구절은 사회적 위계와 관련된 『전경』 구절이다. 이 구절들을 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적 입장과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는 시민계급에 속하는 성인 남성이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여성과 노예는 계급적으로 하위에 있으므로 그러한 자유와 권리가 제한되거나 누릴 수 없다. 하지만, 대순사상에서는 상생적 존재론의 원리 하에 사회 계급적 측면에서도 상생을 지향한다.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차별’ 그리고 ‘남존여비의 관습’이 후천에는 사라질 것이라는 말씀은 존재론적 심체론의 상생적 원리를 근간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23)

2. 존재론적 구도로부터 인식 주체의 ‘인존(人尊)’ 개념으로

존재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인식 주체가 가진 역량과 그 역량을 소수만 누리느냐 혹은 모두가 누리느냐의 정도가 달라진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사변의 역량이 각각의 인간과 만물에 따라 다르며 이것이 위계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의 유동성을 감안하긴 했지만 생물학적 차등에 의해 그 역량은 거의 고정적인 것으로 본다.24) 이것은 본체와 현상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존재론으로부터 인간은 신에 종속되며 그 가운데서 이데아에 가까운 사유를 하는 소수의 철인이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다. 다시 말해, 근원적으로 소수의 인간 존재자만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대순사상의 심체론은 본체와 현상 사이의 위계를 지양(止揚)하므로 본체와 현상 사이의 거리가 없어진다. 현상하는 모든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이 본체에 대해 멀고 가까움 없이 동등한 가치 가운데 있다. 따라서 이데아를 사유하는 정신의 능력이 소수 지배자들에게만 타고나는 것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져 발현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이데아를 구현할 수 있는 주체성을 보편적으로 갖게 되어 서로 간의 위계가 소멸됨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은 이러한 사유의 역량을 만물을 지배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닌 그 역량을 만물에게 투영하여 그들에게 존(尊)의 보편적 가치를 분배한다. 이러한 특성들이 존재론과 인식론 사이의 상관관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존재론의 세 구도가 보여준 편차를 통해 다시 정리해 보면, 플라톤의 존재론은 참된 실재를 무한의 영역으로부터 찾는 이데아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유한의 현상 세계로부터 찾았지만 다시 플라톤적 무한으로 회귀하는 형상이론이며 마지막으로 대순사상의 존재론은 실재를 심적인 것에서 찾는 심체론이다. 심체론은 실재를 무한과 유한의 극단 사이의 심적인 실체라고 보고 있는데 여기에서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25)이 생긴다. 다시 말해, 세계와 만물은 심적 사유의 결과물이며 시공간적 사건과 그 의미로서의 심적 내용은 다시 세계 만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심적인 것이 곧 현실적인 것이라는 말로 이러한 심을 가진 모든 인간은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자율적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심체론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차이점은 인간의 자율성의 한계와 정도에서 나타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현상의 세계에 있는 존재자는 이미 그 한계성이 지어진다. 현상 세계의 위계와 질서는 이데아나 형상 세계를 축으로 결정되어 있으므로 현상 세계에 존재하는 존재자들의 위치와 기능도 이미 정해져 있다. 다시 말해, 실체와 주체가 동일하지 않고 각 주체는 실체를 중심으로 얼마나 가깝고 멀리 떨어져 있느냐의 위계 구도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서 인간 개체 모두가 평등한 자율적 주체로서 현존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심체론에서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은 심을 가진 인간 모두의 자율적 주체로서의 가능성이다. 인간이 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실체를 먼 무한의 영역에 두지 않고 실존하고 있는 주체의 심 가운데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적 가치를 동경하며 그것과 주체 사이의 거리로써 인간들 사이에 계급을 형성하는 것은 결국 인간은 스스로 자율적일 수 없다는 말과 같으며 이데아와 주체는 아무리 가까워도 완전한 일체라고 할 수 없으며 단지 상기(想起)이며 모사일 뿐이다. 그래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심을 가진 인간 주체는 이미 심체인 것이다. 여기에서 ‘인존’의 자율적 주체성이 나타난다.

결국, 천존ㆍ지존에서 인존으로의 전개 과정은 인간 주체 내부의 문제가 되며 주체가 자신의 본질과 가능성의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이다. 천존ㆍ지존ㆍ인존은 그 과정의 구체적인 범주라고 할 수 있는데, 천존과 지존은, 무한과 유한의 영역이라는 주체 외부로부터 진리와 존재의 실체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존하고자 하는 주체와 의존의 대상으로서의 외부 실체로의 분열을 의미하며 또한 의존성은 인간을 위계적 명령에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자가 되게 한다. 인존은 주체 외부로부터 절대적 가치를 동경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주체가 가진 심 자체를 구현한다. 이것은 능동적인 주체를 뜻하며 절대적 가치에 대한 모방이 아닌 절대자와의 진정한 합일을 의미한다.

Ⅲ. ‘인존’적 주체와 그 발현 가능성으로서의 심(心)

1. 주체의 전개양상과 인존적 주체
1) 사상사에서 주체의 전개 과정

앞서 본 바와 같이 ‘인존’은 존재와 인식의 동일성에 위치한 주체의 개념이다. 뒤에서 논하겠지만 존재와 인식의 동일성은 곧 인식 주체의 지위가 절대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인식 주체와 존재 사이의 관계가 모순을 거쳐 지양된 상태이다. 그러한 존재와 인식 사이의 위계로부터 그 일치로의 전개 양상은 서양사상사의 주요 국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데카르트 이후 근대적 주체의 발현을 기점으로 펼쳐진 사상적 스펙트럼의 범형을 통해 대순사상의 인존적 주체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주요 범형은 데카르트와 칸트 그리고 헤겔로 삼겠다.26)

서양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별칭 그대로 데카르트의 주체는 인간의 근대적 자율성에 대한 발현의 초기 형태이다. 사상사에서 그 첫 문을 연 데카르트의 주체를 기반으로 인간의 자율적 주체라는 화두를 공유하며 사상사의 폭을 넓혀 갔다. 헤겔 또한 그런 견지에서, 정당하게 새로운 시대의 원리로 ‘주체성(Subjektivitat)’을 꼽았으며. 철학적 전환점으로서의 주체성을 철학사의 거대한 주제로 부각한 이를 데카르트라고 언급한 바 있다.27) 물론 데카르트적 주체는 그 불완전성에 대한 비판을 받지만, ‘자유’와 ‘반성적 비판’이라는 주체의 해방적이며 발전적인 역량에 대한 인정은 공통된 주제로서 공유해 갔다. 또한 존재론적 권위와 그것을 근거로 한 신학적 권력에 대한 인간 해방의 원리로서의 주체성이 ‘개체성, 자율성, 비판적 능동성’의 원리를 내재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된 의견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cogito’를 근거로 데카르트는 주체를 철학적 체계 구축의 진원지로 삼는다. 데카르트 이전에는 존재이자 실체로서의 절대적 타자로부터 철학적 체계가 구축됨으로써 주체는 수동적이며 피지배적인 구도 하에 있게 되었다. 데카르트가 주체를 전면에 내세운 점은 바로 그러한 수동적이며 피지배적인 인간을 능동적이며 자율적인 위치로 올리고자 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것은 주체의 인식 능력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라는 작업으로 진행되어 간다. 철학적 체계 구축이 절대적 타자로부터 주체로 이동했다는 것은 곧 성찰의 대상이 외부로부터 내부로 이동했다는 것과 같다. 이 전환점을 통해 사유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 주체는 사유하는 능력이 없는 존재자들과는 다른 지위를 갖게 된다. 사유하는 능력을 가진 주체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것은 그 출발점과 절대자와의 연속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사유로부터 모든 것이 진행된다면 절대자도 그 영역 속에 의미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적 주체는 근대를 열었다는 출발로서의 의미는 있지만 여전히 그 주체는 전통 철학의 신 아래에서의 자율적 주체이다. 주체로부터 이루어지는 인식의 명석판명함도 결국은 신(神)이 그 배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28) 인간 주체의 자율적 인식의 기반으로 제시한 명제 ‘코기토’는 그 스스로 설 수 있는 명제가 아니라는 뜻이며 또한 데카르트적 주체가 절대적 주체로서의 신과의 모순 사이에 놓여 있는 위계 구도 하에 있다는 말이다.

인식의 출발을 이데아와 같은 존재론적 절대자의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사유 능력을 가진 자아로부터 찾았던 데카르트가 주체 이론을 형성하면서 남긴 문제점은 주체 이론의 발전에 대한 계기가 된다. 그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인식의 근거를 완전히 주체 내부에서 찾지 않고 결국 신을 끌어오게 되는 점과 실체를 정신적 실체와 물질적 실체로 나누었다는 점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이 문제를 두고 주체 이론의 형성이라는 근대적 과제를 이어받은 다음 철학자는 칸트였다.

데카르트가 주체 인식의 근거를 신에 두고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해 신에 대한 주체의 분열과 불완전한 독립에 대한 야기를 의미한다. 칸트는 이것으로부터 기인하는 절대자와 자아의 분열을 그의 선험철학의 방식으로 해소해나간다. 칸트의 방식이 데카르트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데카르트가 인식의 근거로 신을 그 배후에 둔다면 칸트는 인식의 영역에서 신을 제외시킨다. 선험적 종합판단의 토대로서 신을 두지 않고 칸트는 단지 순수이성의 이상을 이념적으로 설정하며29) 신은 실천이성의 요청에 의해 끌어들인다.

칸트 인식론의 진로는 최대한 주체의 입법적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데 있다. 신적 권위의 타율을 떠나서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에 근거하여 실존의 삶을 스스로 구축해나가는 인간 주체는 바로 중세의 권력으로부터의 인간의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칸트에게 있어 신은 증명의 대상이 아닌 요청30)의 대상으로 인간의 실존적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존재가 아닌 인간의 주체적 자율성의 완성에 대한 가능성 즉 최고선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요구였다.

한편으로, 칸트의 도덕성과 행복의 일치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서의 요청은 다시 신앙 즉, 신적 개입의 계기가 된다. 실천적 근거인 도덕법칙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자유에 대한 요청은 인간 주체의 자립성을 확보해 주지만 최고선(最高善)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신에 대한 요청은 인간 주체의 의존성을 뜻한다.31) 이것은 칸트의 요청에 대한 헤겔의 비판에서도 드러난다.32) 이런 점에서 칸트의 주체는 신으로부터의 독립과 신에 대한 의존이라는 양 극단 모두를 가지고 있는 절충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체 개념은 데카르트와 칸트를 거쳐 헤겔에 이르면 가장 큰 체계를 이룬다. 데카르트적 종속 관계와 칸트적 절충을 변증법의 원리로 종합하여 주체 개념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풍부한 형태를 제시한다. 차이는 있지만 헤겔이 제시한 주체는 서양철학 가운데서 대순사상의 인존적 주체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 할 수 있다.

앞의 장에서 인존적 주체가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임을 논했는데, 헤겔의 주체 또한 그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에 대한 헤겔의 언급은 다음의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로지 체계 자체의 서술을 통해서만 정당화되어야만 하는 나의 통찰에 따르자면 모든 것의 관건이 되는 것은,] 참된 것은 실체로서가 아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주체로서도 파악되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s kommt nach meiner Einsicht, welche sich nur durch die Darstellung des Systems selbst rechtfertigen muß, alles darauf an,] das Wahre nicht als Substanz, sondern ebensosehr als Subjekt aufzufassen und auszudrücken.(『정신현상학』 3. 22-23)33)

[참된 것은 오직 체계로서만 현실적이라는 것 또는] 실체는 본질적으로 주체라는 것은 [절대자를 정신으로 언표하는 표상 속에서 표현되는데, 정신은 가장 숭고한 개념으로서, 근대와 그의 종교에 속하는 것이다.]

[Daß das Wahre nur als System wirklich oder] daß die Substanz wesentlich Subjekt ist, [ist in der Vorstellung ausgedrückt, welche das Absolute als Geist ausspricht, - der erhabenste Begriff, und der der neuern Zeit und ihrer Religion angehört.] [같은 책 3. 28]34)

대순사상의 인존적 주체와 헤겔 주체의 공통점으로서의 실체와 주체의 등치(等値, Equivalence)는 그의 변증법적 체계의 핵심으로서도 등장한다. 『정신현상학』에서 인간 주체의 의식은 절대지에 이르러 비로소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을 이루게 된다.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 개념 내부의 개념적 생성 운동을 명제로 표현하면 ‘이 동일성이란 실체의 주체화와 주체의 실체화의 결과로 생기는 실체의 주체성과 주체의 실체성의 실현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실체가 주체성을 획득하게 되면 실체는 살아 있는 실체가 됨과 동시에 역으로, 주체에는 실체성이 주어져 주체는 자기동일적 실체로서 파악되는 것이다.35) 그러한 실체로서의 주체가 인간의 정신 속에서 구현된다.

주체성의 성격에 있어 데카르트와 칸트의 주체는 그 한계성으로 인해 닫힌 주체라 할 수 있으며 헤겔과 대순사상의 주체는 열린 주체라 할 수 있다. 열린 주체 내부의 실체와 주체, 신과 인간, 인간과 만물 사이의 계급은 생성의 운동 가운데 와해되고 주체의 역량은 절대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열린 주체로서의 인존적 주체는 신과 인간의 위계적 분할이 아닌 신인조화로서의 상생(相生)의 주체이다. 상생의 주체 내부에는 신과 인간의 상생으로 신에 대한 독립과 종속의 개념 자체가 지양되어 사라지며 신적 의식을 가진 인간은 실체적 총체로서 인간 외부의 모든 타자로서의 만물 속에 그 의미를 고르게 분배한다. 즉, 인존은 인간 주체의 의식적 고양의 완전성을 의미하며 또한 그 완전성을 모든 인간과 만물이 동등하게 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36) 보편과 평등의 관점에서 인존적 주체는 그래서 ‘크다(大)’고 할 수 있다.

2. ‘인존’적 주체의 가능성으로서의 ‘심(心)’

앞선 논의를 다시 보면, 심체론으로서의 대순사상의 존재론에서는 본체와 현상 혹은 사유와 연장 간의 모순이 없으므로 존재자들 사이의 계급적 위계가 소멸된다.37) 이러한 존재론적 체계에서는 인식론 또한 그러한 영향 하에 성립되어 인간은 유한자이면서도 인식의 가능성과 역량에는 신적 무한성이 내재해 있다. 이것이 인존적 주체의 역량이며 신인조화로의 가능성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인간의 인존적 주체로의 가능성은 바로 인간 내면에 내재한 ‘심(心)’ 에 근거한다. 전경에는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구절이 있다.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38)

…하늘의 작용과 땅의 작용 사람의 작용이 모두 마음에 달려있다. 마음이란 귀신의 추기이며 문호이며 도로이다. 추기를 열고 닫고 문호를 들락날락하며 도로를 오고가는 신에는 혹 선한 것도 있고 혹은 악한 것도 있다. 선한 것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것은 고쳐 쓴다. 내 마음의 추기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보다도 크다.39)

…「천지 무일월 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 무지인 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라 하셨도다.40)

천지의 중앙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동서남북 사방과 몸이 모두 마음에 의존한다.41)

심에 대한 위의 『전경』 내용은 유한자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초월할 수 있는 기재는 심이며, 심의 본질인 ‘무한성과 영원성 그리고 자유와 주체성’이 인간의 그러한 초월을 가능케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다. 인간은 자연법칙에 종속되는 육체의 유한성 가운데서 실존하지만 신의 무한성과 소통하고 합일할 수 있는 심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육체의 유한성에 종속되지 않고 무한성을 본질로 하고 있는 심을 부지런히 하는 가운데 인간은 인존적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포유문(布喩文)’에 제시된 “…나 자신에게 있는 한량없이 진귀한 보배를 구할 것이니 그 한량없이 진귀한 보배란 곧 나 자신의 심령(心靈)이다. 심령을 통하면 천지(天地)에 통할 수 있고 만물(萬物)과도 서로 질서를 갖출 수 있는데(吾之所求有無量至寶 至寶卽吾之心靈也 心靈通則鬼神可與酬酢 萬物可與俱序)….”42)의 구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인간의 심과 신적 무한성 사이의 연속성은 스피노자의 인간 정신에 대한 이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동서양 사상 간의 개념적 차이가 다소 있지만 대순사상의 ‘심’과 스피노자의 ‘정신’은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개념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스피노자는 “개체로서의 자신의 본질과 신과의 필연적 연관을 충분히 인식할 때 유한한 인간은 신의 무한에 관여하고, 인간 정신은 완전한 능동에 이르러서 자유를 실현하고, 거기에 최고선이 성립한다.”고 주장했으며43) “인간의 최고의 선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라는 것은 우연히 아니라 이성의 본성 자체에서 생긴다. 왜냐하면 이 최고의 선은 명백히 말해 이성에 의하여 정의되는 한 인간의 본질 자체에서 도출되기 때문이며, 또한 인간은 이 최고의 선을 즐기는 힘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영원하고 무한한 신의 본질에 관한 적합한 인식을 가지는 것은 인간 정신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이다.”44)라고 하며 인간 정신의 기원과 가능성을 무한자로서의 신에게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Ⅳ. 보편적 주체성으로서의 ‘인존’과 평등ㆍ평화의 종교 이념

1. 인존의 만물(萬物) 평등사상

인존과 평등의 관계는 자유와 평등의 상관관계만큼이나 밀접하다. 자유와 평등이 사회 정치학적 범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밀접성이라면 인존과 평등 사이의 그것은 존재론과 인식론적 범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밀접성이다. 앞선 장에서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이 인존적 주체의 개념적 원리라고 밝힌 것에 근거하면 인존적 주체의 인식은 신적 무한성과의 매개 가운데 작동하므로 주체 내부의 상극적 모순과 위계는 소멸되어 있다. 인식의 상생적 작동은 인식 주체에게 주어지는 모든 대상 속에 신적 절대성과 가치를 고르게 분배한다. 이러한 인식은 의식 속의 사유임과 동시에 완전한 현실이다.

부연하자면, 신인조화로서의 신적 절대성과 인간의 합일은 단순히 신과 인간 사이의 문제만이 아닌 인간과 만물 사이의 문제로 확대된다. 인간은 현상 세계에 실존하는 유한자이면서 심이라고 하는 무한자와의 소통 기재를 가지고 있으므로 현상 속에 신적 절대성을 전달하고 분배할 수 있다. 인존적 주체는 무한자와의 소통을 넘어 신인조화로서의 일체를 이루며 이 속에서 인존적 주체는 신적 절대성을 자기의식의 인식적 작용을 통해 모든 만물에게 전달하고 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감적 정서로 나타난 것이 바로 사랑과 박애의 감정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기의식 내부의 상생이 야기하는 신적 절대성과 가치의 분배는 만물 평등사상으로 이어진다. 인존과의 관계에서 말하는 평등은 사회 정치학적 평등과 다르며 만물의 상생과 하나 됨의 또 다른 방식의 표현일 뿐이다. 사회 정치학적 평등은 자아와 타자의 모순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종의 권력의 균형이라면 인존의 만물 평등사상은 자아와 타자의 모순이 없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완전한 일체이며 존재자 사이의 상생이다.

『전경』에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고 말씀하시더니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의 모양을 이루고 허공에 벌여 있더니 사라지는도다.” 예시 1장 27절의 이 구절은 인신으로 강세하신 절대자의 만물평등사상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절대자로서 하늘의 가장 높은 위치에서 가장 낮은 위치로 내려오신 것은 본체와 현상의 직접적 만남이자 높고 낮음의 하나됨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제님께서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는다는 것은 절대자의 인신 강세를 시작으로 행하시는 상극적 위계 구도의 소멸을 의미한다. 선천의 만국 제왕의 권력은 하늘의 절대자가 가진 권위를 모방하여 지상에 펼친 상극적 힘이다. 하늘의 절대자를 권력의 근거로 삼아 높고 낮음의 위계를 사회에 적용한 것이 남존여비며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이며 그 위계를 자연과 인간 사이에 적용한 것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이다. 상제님께서는 이 모든 상극적 위계가 선천의 한(恨)을 형성해왔다고 보시고 상극을 조장하는 근본적인 영역부터 공사로써 해결하신 것이다.

만국 제왕의 기운이 걷히면 만국의 상극적 높낮이가 사라지고 그 제왕의 자리에 인존적 주체가 들어서게 된다. 인존적 주체가 가진 심은 천지의 중앙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생성 통합하고 보편화하는 힘으로써 만물 속에 절대적 가치를 동등하게 전달한다. 우주의 미세한 먼지로부터 가장 거대한 존재자에게 이르기까지 어떠한 상극적 차등도 없는 동등함 속에서 부여하는 것이다.

2. 보편적 주체성의 ‘인존’과 영구평화사상

보편적 주체성으로서의 인존은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다.’는 명제로부터 기인하는 개념이다. 앞장에서 논한 천존과 지존 그리고 인존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을 다시 보면 천존과 지존과 인존은 절대성에 대한 주체의 수용 방식에 대한 개념이다. 주체가 절대성을 자신의 외부에 두고 타자로서 의존하면 주체와 절대성 사이에는 위계가 발생하게 된다. 의존하는 주체는 수동적 주체로서 절대성과 주체 사이의 위계구도를 그대로 현상 세계에 적용하게 되고 그 적용으로 인해 인간을 비롯한 현상계의 만물은 닫힌 위계적 구조 속에서 상극적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선천의 천존과 지존 시대는 절대자로부터 근거하는 창조성과 자유 그리고 절대적 가치가 소수의 권력자에게 편중되어 강권을 가진 이들끼리 뺐고 뺐기는 투쟁의 역사이다. 후천의 인존시대에 이르러 심을 가진 인간이 심의 기재를 통해 절대자의 가치를 모든 만물 속에 투영하여 상생의 어울림으로서의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따라서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다는 명제에서 ‘크다’의 의미는 천존ㆍ지존과 인존 사이의 권력적 우위의 문제가 아니고 어떤 것이 더 보편적이며, 상생적이며 평화적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위대하고 강하고 거대한가로 이 ‘크다’의 의미를 해석한다면 대순사상의 ‘인존’에 대한 해석은 처음부터 잘못 출발한 것일 수 있다.

인존적 주체에 부여한 보편성의 의미는 그런 측면에서 ‘인존이 크다.’라는 말의 의미와 같다. 절대성이 특정한 개체에게 부여되어 절대적 권력이 생기는 것으로 모순과 투쟁이 발생한다면, 반대로 절대성이 모든 만물에게 부여돼 권력이 소멸하고 만물이 절대적 가치 속에서 상생으로 하나가 된다. 이러한 절대성의 고른 분배의 의미에서 인존적 주체는 보편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주체의 보편성이란 달리 말해,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으로부터 출발해 그 주체의 의식 속에서 자아와 타자의 모순이 없어지는 주체, 타자로부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으로부터 타자를 발견하는 주체의 전일성(全一性)이다.

신과 인간의 상생으로부터 인간과 만물의 상생으로 연결된 결과로서 인존의 보편적 주체는 실현된다. 인존적 주체로부터 말미암는 평화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평화이며 영원히 지속가능한 평화이다. 후천의 인존사상이 평화사상이라고 했을 때의 평화는 바로 이러한 영원한 평화45)라고 해야 할 것이다.

V. 결론

대순사상의 인간 주체로서의 인존 개념에 대한 본고의 논의는 존재론과 인식론 내지는 실체와 주체라는 철학사의 거대 주제 속에서 그 맥락을 같이 했다. 인존에 대한 해석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또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의 인간 지위의 상승이라는 기존의 해석에서 나아가 본고에서는 세계사상사의 흐름 속에 대순사상의 인존 개념이 가진 개념적 위치를 분석했다. 이것은 인존을 막연하게 인간의 위대성을 높이고 인간을 소중히 한다는 의미에서 벗어나 철학적 개념을 통해 그 의미 사이에 누락되고 모호한 부분을 채워 명확히 하고, 또한 대순사상이 한국의 지엽적인 한 사상이 아닌 세계사상사와 인류사의 깊은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호흡하고 있는 사상임을 밝히는 작업이다.

실체로부터 주체로 이어지는 세계사상사의 흐름을 보면 결국 모든 문제의 중심에 결국은 인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신과 인간 그리고 타자와 자아의 관념이 있고 여기에서 대립과 화합 그리고 속박과 자유의 의미가 생긴다. 사상사의 모든 사유의 힘은 결국 인간 주체의 발현 가능성을 극단까지 끌어올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결국 인간 주체의 가능성이 신적인 영역과 완전한 상생을 이룰 때 인간의 완성으로부터 세계의 완성으로 이어져 이 양자가 일체화된다는 개념에 도달한다. 실체가 주체이며 주체가 곧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천지의 중앙에 있으며 신의 절대성을 만물에 고르게 분배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인존 개념이 바라보는 인간의 가능성이며 인간의 본질이다.

인존 개념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를 주제로 한 본고의 논의를 다시 정리해보면, 인존 개념에 대한 철학적 분석 작업의 첫 출발은 존재론적 틀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존재론에서 다루는 이데아나 형상 혹은 실체와 같은 절대성 개념이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천존ㆍ지존ㆍ인존에 대입하는 것이 인존 개념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관건이었다. 절대성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이 종속과 의존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존재론적 양상은 본체와 현상 그리고 질료와 형상을 구분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이었다. 천존과 지존 개념이 이 이원론적 존재론의 양상에 속하며 인간이 인간 외부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그것을 추앙하고 의존하는 형태가 되며 그러한 의존은 또 다른 지배와 종속을 대물림 하며 진행된다. 신과 인간의 분열, 인간과 만물의 분열 속에서 모순과 투쟁이 생기며 계급과 위계가 발생하는 양상이 바로 그러한 대물림의 고리이다.

인존의 존재론적 원리는 대순사상의 심체론에 근거했다. 대순사상의 심체론은 리와 기, 형상과 질료, 정신과 물질과 같은 이원론적 모순을 지양(止揚)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서도 보았듯이 모든 모순은 존재론적 원리로부터 발생한다. 존재론이 도달한 존재의 가장 근본적 원형이 두 개로 나눠져 모순이 발생한다면 현상은 그 모순을 그대로 이어받아 존재자들 사이에 계급과 위계를 만드는 것이다. 대순사상의 심체론은 그 모순을 지양하고 심체를 존재론적 원형으로 두고 그것으로부터 현상을 바라본다. 따라서 대순사상의 존재론은 상생적 존재론이며 그 존재론으로부터 존재자들 사이의 상생(相生)으로 이어진다.

인존은 이러한 대순사상의 존재론에 근거한다. 인간은 천지의 중앙으로서의 심을 내재하여 그 심의 가능성이 신적인 절대성으로 발현할 때 천지의 중앙에서 그 절대성을 모든 만물에게 고르게 전달하고 분배한다. 이것은 달리 말해 상생적 존재론과 상생적 인식론의 일치라고 할 수 있으며 철학적 개념으로는 실체와 주체의 동일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존이 크다.’라는 의미가 발생한다. 천지의 중앙에서 모든 만물에 신적 가치를 고르게 분배하는 것은 선천의 천존 지존시대에 있었던 권력이 소수의 제왕의 기운을 가진 지배자에게 불평등하게 집중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절대적 힘이 소수자에게 편중될 때는 그 힘을 두고 존재자들 사이에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발생하므로 편중된 절대적 힘은 그 분배의 범위에 있어 ‘작다’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그 힘이 완전히 고르게 분배될 때는 힘으로 그 분배의 힘이 ‘크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 힘의 편중과 분배는 양적인 편중과 분배의 개념은 아니다. 절대적 힘의 분배란 절대성의 가치를 모든 존재자가 동시에 가질 때 발생하는 화합과 조화의 상태이다. 이러한 상생의 관계 속에서 모든 존재자는 절대적 가치 속에서 일체화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적 힘의 고른 분배에 대한 정의이다.

이러한 인존으로부터 ‘평등과 평화’라는 인류 사회적 이념으로 나아갔다. 인존에 기반 한 평등 또한 권력에 대한 공유가 아닌 절대성 속에서 자아와 타자의 일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생적 관계였으며 평화 또한 인존에 기반 하여 절대적 일체 내지는 상생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영구적인 평화였다.

본고의 연구 결과에서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점은 철학적 개념과 사상사적 흐름을 통해 ‘인존’에 대한 해석의 범위를 넓혔다는 것이며 그와 아울러 ‘인존’ 개념이 가진 대순사상에서의 가치와 위치에 대한 또 하나의 인식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본 논의에서 다루지 못한 앞으로의 연구과제가 있다면, ‘인존’ 개념이 세계사상사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사상사적 소통 속에서 대순사상의 인존적 주체가 가진 특수성에 대한 부각일 것이다. 그 특수성은 인존적 주체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도통’인데, 이 개념은 면밀히 다루지 못하면 신비적 성격의 개념으로 간과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인존적 주체의 중요한 본질로서의 이 도통의 개념을 철학적 논리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타당성을 획득하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결과가 ‘인존’에 대한 풍부하고 새로운 해석과 이해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Footnotes

1. “생동하는 실체야말로 참으로 주체적인, 다시 말하면 참으로 현실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실체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이며 나아가서는 스스로 자기를 타자화하는 가운데 자기와의 매개를 행하기 때문이다. 실체가 곧 주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실체에 순수하고도 단순한 부정성이 작용하면서 바로 이로 인하여 단일한 것이 분열됨을 뜻한다.” 헤겔, 『정신현상학1』, 임석진 옮김 (파주: 한길사, 2005), p.52.

2. 여기에서 보편의 의미는 인간의 심이 가진 종합적이며 포괄적인 깊이와 넓이를 말한다. 즉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물고 수용하여 하나의 완전한 총체성을 인식하고 그것으로써 세상을 영위하는 능력으로서의 보편성이다.

3. 『대순지침』, 2장 2절.

4. 『전경』, 교법 2장 56절.

5.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上』, 강성위 옮김 (대구: 이문출판사, 1988), p.119.

6. “아래에 있는 이데아는 위에 있는 이데아에 의존하고, 이 위에 있는 이데아에 의해서 바탕이 마련되고 담당되는, 그런 밑에 있는 이데아도 있다. 하위에 있는 여러 이데아들은 항상 상위에 있는 한 가지의 이데아 안에 그들의 전제와 밑바탕을 가지고 있으며, 또 다시 이 상위의 이데아들에 의해서 보다 폭이 넓고, 보다 높은 여러 이데아들 안에 근거를 두게 되므로, 한 가지의 족보에 있어서처럼, 토대가 되는 이데아들은 전차로 줄어드나, 보다 폭넓고 포괄적이라는 뜻으로, 보다 힘이 세기도 하다. 우리들은 이것이 곧 이데아의 이데아이며, 이것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 기초 지워 주기 때문에 모든 다른 이데아들은 이 이데아에 의존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의 세계에서는, 태양이 모든 것들에게 존재와 생명과 가지성(可知性)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의 세계에 있어서는 이데아의 이데아가 모든 존재자들에게 본질과 가지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이데아의 이데아 자체는 그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잇다. 바로 이런 이데아의 이데아가 곧 절대자이다. 절대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있으며, 따라서 힘과 품위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월하며, 모든 존재들의 저편에 있다.” 같은 책, p.151

7. 인간과 신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백발이 성성한 철학자 자신이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서 쓴, 노년기의 저작에는, 신의 의미가 매우 높혀져 있다. 거기서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신의 손에 의해서 기묘하게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신의 장난감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고, 심각한 의도 하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우리들은 신의 소유물이요, 신의 노예요, 그의 손안에 들어 있는 허수아비 같은 것이다. 신만이 끄나풀을 쥐고 있어, 우리들의 삶을 조종한다. “그래서 인간적인 것에는 조금도 열중할 것이 못 된다.”(법률, 803b), 같은 책, p.197

8. 남경희, 『플라톤: 서양철학의 기원과 토대』 (서울: 아카넷, 2006), pp.455-456.

9. “국가론이 존재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까닭에 플라톤적 국가의 구조도 대체적으로 존재론적 구도에 따른다. 그는 세계를 형상들이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실재계와 경험적 대상들이 상호 혼재하는 현상계로 구분한다. 국가도 그런 이분법적인 구도를 지닌다. 국가는 이성 및 존재와 관여하는 통치자들의 영역과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산 소비자 계층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를 수호자 계급, 후자를 생산과 소비의 계급이라 한다. 통치 영역을 담당하는 자는 존재에 대한 인식과 이성을 소유한 지혜로운 자들이다. 생존과 욕구의 충족에 봉사하는 자들은 단지 믿음과 욕망의 삶을 사는 자들이다. 국가는 인식에 의해 통치되어야 하며, 통치적 질서는 이성과 존재의 질서가 반영되어야 한다.” 같은 책, pp.455-456.

10.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실체를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뜻이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써, 플라톤에서 결정적으로 떨어져 나온다.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참된 존재가 개별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자, 즉 종에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에이도스(Eidos, 형상)가 보편적이면 보편적일수록 이 에이도스가 진정한 실재(현실)라고 하는데 반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럴수록 덜 실재적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는, 존재가 밑으로부터, 즉 구체적인 것들에 의해서 그 원래적인 뜻을 갖게 되나,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위로부터, 즉 이데아에 의해서 그 원래적인 뜻을 갖게 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하게 된다.”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앞의 책, p.241.

11. “그는 인식론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플라톤에게 등을 돌리나 결국에는 그에게로 돌아간다. 즉 그는 플라톤에게 반대하여 원래적인 뜻의 존재자로서의 제일실체를 끌어들이나, 뒤에 와서는 제이실체가 제일실체를 구성한다고 본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플라톤학파인 것이다.” 같은 책, p.244.

12. “존재전체가 그 자체로서 질서 지워져 있다. 존재는 결정의 핵이며, 원천이며, 생명의 중심이며, 구조요, 종(種)과 유(類)요, 층(層)이며, 바로 우리들이 말하는 형상이다.” 같은 책, p.245.

13.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252ab.

14. W.L.westermann, The slave system of greek and roman antiquity (Philadelphia: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955), p.27.

15. “하지만 이 양자는 세계를 지탱하는 물질과 정신의 축으로서 그 통일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 매개적인 실체를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인간’이라는 단일한 존재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그를 구성하는 두 가지 양태로서의 물질과 정신을 영원한 이원론으로 남겨둔다면 이 또한 인간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규명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과 세계가 어떤 형식으로든 관계 맺고 있는 우주의 실상을 직관할 때 대순사상에서 논의해 온 천지와 신명이라는 세계는 보다 근원적인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인간 근원과 직접 연결되게 된다. 인간과 우주는 이 근원적 일자(一者)에 의해 비로소 매개될 수 있고 인간의 본질 또한 그 근원적 일자의 회복과 추구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이경원, 「대순사상의 인간관 연구」, 『신종교연구』 12 (2005), pp.305-306.

16. “인류의 정신사에서 살펴볼 때 근원적 일자에 대한 이해는 다양하게 표현되어 왔다고 본다. 희랍철학에서의 이데아(형상), 기독교에서의 창조자 신(神), 불교에서의 불생불멸의 심(心), 유가에서의 리(理)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자에 대한 사상은 언제나 그 상대적인 극복의 대상을 전제함으로써 일자의 보다 궁극적인 측면을 드러내었다고 본다. 즉 형상에 대한 질료, 신에 대한 피조물의 무, 본심에 대한 무명(無明), 리에 대한 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서 언제나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이해되고 전자는 최종적인 궁극 근원으로서 인간이 회복하여야 할 근원적 실체로 이해되고 있다. 이를 회복함이 또한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상의 사상들에서 엿보이는 근원적 일자의 특징은 대체로 객관주의적이거나 인간주체적인 면의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그 상이한 관점에 따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고 본다.” 같은 책, p306.

17. 『전경』, 교운 1장 66절.

18. 천(天)은 초월적 개념으로 유한과 상대되는 무한으로 또는 연장(延長)에 상대되는 사유(思惟)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19. 『전경』, 교법 1장 9절.

20. 같은 책, 교법 1장 10절.

21. 같은 책, 교법 1장 68절.

22. 같은 책, 교법 2장 58절.

23. 단, 위의 구절 가운데 후천의 두 계급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엄밀히 보면 후천의 계급은 선천의 상극적 계급과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선천의 계급은 물질적 권력과 부가 계급 형성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후천에 식록이 고르다는 것은 후천에는 물질적인 환경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므로 선천의 계급적 기준이 후천에는 무의해진다고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식록이라고 하신 표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환경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사상적 이념에 미루어 볼 때 타당할 것이다.

24. 이인식, 『유토피아 이야기: 세상이 두려워한 위험한 생각의 역사』 (서울: 갤리온, 2007), p.79.

25. “오직 체계로서의 진리만이 현실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 실체는 본질적으로 주체라는 것, 이것을 나타내려는 뜻에서 절대자는 곧 정신이라고 표현하게 되는데 실로 이것이야말로 근대 및 근대종교에 특유한 가장 숭고한 개념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김양순 옮김 (서울: 동서문화사, 2011), p.25.

26. 데카르트와 칸트 사이에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가 있지만 이들의 체계는 헤겔 체계 속에서 종합되고 완전해지므로 철학 체계의 범형의 예로서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27. 정낙림, 「데카르트와 칸트의 주체개념」, 『철학논총』 44 (1984).

28. “신과 자아는 실체성이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무한한 실체로서의 신은 일체의 유한실체의 존재를 보장한다. 즉 유한한 실체인 사유하는 자아의 표상은 신에 의해 부여되고, 그것이 관념으로서 기능하기 위하여 신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의 실재는 절대적인 확실성ㆍ진리를 부여하는 유일한 근거이다. cogito의 제한적 완전성을 초월적, 절대적 완전성과 구별하는 데카르트는 스콜라 철학의 그림자를 자신의 철학에서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같은 책, p.436.

29. “이성은 이념을 한갓 실재성 전체라는 개념으로서만 사물 일반의 전반적 규정의 기초에 두었으나, 이 실재성 전체가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과 그 자신 하나의 사물이 되는 것을 요구함이 없기에 말이다. 여기서 하나의 사물이란 순 날조물이요, 그것에 의해서 우리가 우리 이념의 다양을 특수한 존재로서의 한 이상 중에서 총괄하고 실재화 하기는 하되,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할 만한 권한이 없다. 뿐더러 이러한 가정의 가능성을 직접 상정할 권한조차 없다. 또 그러한 이상에서 생기는 결과물은 실로 사물 일반의 전반적 규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이런 규정에 사소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이념은 단지 사물 일반의 전반적 규정을 위해서는 이념만으로 족했다.” 칸트, 『순수이성비판2』, 백종현 역 (서울: 아카넷, 2006), pp.433~434.

30. “이론적 명제이긴 하지만, 그것이 선험적으로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실천적 법칙과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는 한에서 증명할 수 없는 명제[vgl. KpV, Ⅴ 122]를 의미한다. 칸트에 의하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정언명법에 의해서 실천적으로 필연적인 것으로서 표상되는 의지의 대상으로서의 목적, 즉 최고선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이 최고선은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을 의미하며, 이러한 결합은 단순한 순수 이성 개념인 이론적 개념을 전제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자유’, ‘불사’, ‘신’의 셋이다. 그리하여 최고선의 현존을 명령하는 실천적 법칙은 이러한 객관들의 가능성, 즉 객관적 실재성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vgl. KpV, Ⅴ 134]. 이것이 ‘순수 실천 이성의 요청’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사카베 메구미 외, 『칸트사전』, 이신철 옮김 (서울: 도서출판b, 2009), p.371.

31. “‘신’과 ‘불사’의 이념은 요청으로서는 이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문제에 관계하는 것으로서 확장되며, ‘견해’로서는 ‘지식’이 아니라 ‘신앙(Glauben)’으로 분류된다. 다만 자유의 이념만은 ‘신앙’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판단력비판』 등에서 오히려 ‘사실에 속하는 것(res facti)’으로 간주된다[vgl. KU, Ⅴ 468]. 자유의 이념과 다른 이념의 위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실천이성비판』 서문에서도 언급되는데, 신과 불사의 이념이 도덕적 법칙에 의해서 규정된 의지의 필연적 객관(최고선)의 조건인 데 반해, 자유의 이념은 도덕적 법칙의 조건으로 되고 있다[vgl. KpV, Ⅴ 4]” 같은 책, p.371.

32. “요청은 감성적인 것에 관해서만 가능한 이론철학과 초감성적인 것에 관계하는 실천철학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고서 양자를 체계적으로 연관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일찍부터 체계적 통일의 관점에서 많은 해석자들의 관심을 모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절대적인 것의 파악으로서는 ‘신앙’이라는 주관적인 것에 머무른다고 하는 것과 같은 비판(헤겔)도 제기되고 있다.” 같은 책, p.371.

33. 가토 히타사케, 『헤겔사전』, 이신철 옮김 (서울: 도서출판 b, 2009), p.434.

34. 같은 책, p.434.

35. 같은 책, p.434.

36. 단 인간은 직접적으로 누리지만 만물은 간접적으로 누린다.

37. 존재론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와 형상이론에 의해 본체와 현상 사이의 모순으로 인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자 사이에 계급이 생겼고, 인식론에서는 데카르트에 의해 인간 사이에서의 위계는 해소되었지만 이성적 사유의 역량을 가진 인간과 이성을 가지지 않은 타자로서의 자연과 동물 사이에는 여전히 위계가 존재했다. 대순사상은 이 모든 위계를 지양한다.

38. 『대순지침』, 2장 2절.

39. 『전경』, 행록 3장 44절.

40. 같은 책, 예시 1장 21절.

41. 같은 책, 교운 1장 66절.

42. 같은 책, 교운 2장 41절, “曰人生處世惟何所欲惟名惟榮曰名曰榮人所共欲而求之難得是何故也都是無他未知捷徑捷徑非他求也吾之所求有無量至寶至寶卽吾之心靈也心靈通則鬼神可與酬酢萬物可與俱序惟吾至寶之心靈無路可通汨沒無形之中一世虛過幸於此世有無量之大道正吾之心氣立吾之義理求吾之心靈任上帝之任意洋洋上帝在上浩浩道主奉命明明度數無私至公引導乎無量極樂五萬年淸華之世肅我道友嚴我道友極誠極敬至信至德難求之欲虛過一世之冤至于斯而豈不解冤哉喜吾道友勖哉勉哉”

43. 스피노자, 『에티카』, 강영계 옮김 (파주: 서광사, 2007), p.277.

44. 같은 책, p.277.

45. “독일의 철학자 칸트 또한 자신의 저서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에서 영구평화론의 가능성에 대해 논했다. 존재론적으로 영원한 것이 유한한 세계에서 단번에 실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존재론적 유한자는 영원한 것과 단절되어 있지 않다. 유한자는 과정적으로 무한한 것을 실현한다. 때문에 영원한 평화는 인류의 영원한 과제라는 당위적 필연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칸트는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세계시민의 영원한 평화를 진지하게 역설했다.” 남기호, 「세계시민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단서조항(但書條項)-칸트와 헤겔의 전쟁과 평화 이론」, 『시대와 철학』 21 (2010),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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