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Article

『전경』에 나타난 ‘미륵’의 성격

이봉호1,
Bong-Ho Lee1,
1경기대학교 교수
1College of Liberal Arts in Kyonggi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 Lee, Bong-Ho, E-mail : jirisan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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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Feb 29, 2016 ; Revised: Apr 10, 2016 ; Accepted: May 05, 2016

Published Online: Jun 01, 2017

ABSTRACT

The aim of this study is to explain characteristics of Maitreya and Maitreya belief from a point of view that ‘Jeungsan is the very Maitreya(甑山卽彌勒)’. In 『Jeon-gyeong』, Maitreya is mentioned several times. Thus, new religions of Jeungsan of Daesoonjinrihoe take ‘Jeungsan is the very Maitreya’ belief for truth.

Due to the fact that characteristics of Maitreya are so multi-layered and complicated, it is necessary to explain clearly what kind of feature Maitreya has in 『Jeon-gyeong』. If believing and following ‘Jeungsan is the very Maitreya’ without clarifying it, they will be faced with a problem that they regard Jeungsan of Supreme being of the Ninth Heaven as one of Maitreya and take its belief for truth. Furthermore, with respect to the characteristics of ‘Jeungsan is the very Maitreya’ belief, while believing in Mireukasaeng, longed-for Millenarian movement by people through Messianism and Mireukasaeng belief is found in Daesoon Thought, whereas there is a need how to understand the point that we cannot finped Messianism and Millenarian movement in Daesoon Thought.

To solve this problem, I draw a conclusion that ‘Jeungsan is the very Maitreya’ in 『Jeon-gyeong』 has to be understood with two meanings by four demonstrations. First of all, the people perceived late Joseon dynasty as the age of decadence but Maitreya’s divinity which is desired by the people is not divinity of Maitreya Sutra(Mileuggyeong). Maitreya’s divinity is reflected in the people’s cherished desire and it is newly created as the Messiah. Thus, the idea of Jeungsan being the very Maitreya was developed in a way that the people desired the Messiah, encompassing this inclination. That is the Messiah of the people and the divinity of Jeungsan.

Although Jeungsan as Supreme being of the Ninth Heaven satisfied the people’s desire, it shows a different way to salvation from the way in Maitreya Sutra(Mileuggyeong). It is ‘the Great Reordering of the Universe’ and ‘the Great Reordering of the Three Realms’. Reordering in Jeungsan shows that divinity of Jeungsan is not limited to the people’s Messiah.

In other words, divinity of Jeungsan is established as The Messiah, surpassing divinity of Maitreya Sutra(Mileuggyeong). And following statements prove this divinity of Jeungsan. Jeungsan’s emphasis is not only the people’s desire and the Gods’ appeal. Jeungsan’s emphasis is that only does Supreme being of the Ninth Heaven correct heaven and earth, which is the Gods’ appeal. Therefore, ‘Jeungsan is the very Maitreya’ belief embraces the people’s Messianism and at the same time it runs with he Gods’ appeal. Thus, Reordering through the Great Reordering of the Universe and the Great Reordering of the Three Realms builds up a new ideal world.

Keywords: Jeungsan; Maitreya; Jeungsan is the very Maitreya; Messianism; The millennium

Ⅰ. 머리말

본 연구는 『전경』에 보이는 미륵불의 성격과 미륵신앙의 성격을 해명하고자 기획된 글이다. 『전경』에는 미륵이 여섯 번 나타난다. 게다가 불교 관련 일화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특히 증산은 미륵불과 관련해서 ‘후천개벽의 시대에 금불로서 강세한다’거나 ‘스스로 미륵으로 자칭’1)하거나, ‘금산사 미륵금불상에 임한 내용’2)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증산계 신종교들은 증산을 미륵으로 보는 ‘증산이 미륵이라는 증산즉미륵(甑山卽彌勒)’사상을 공통으로 제시해 신앙한다.

그런데 미륵의 성격이 다층적이고 복잡하기에 증산 사상과 연관해, 다양한 미륵의 성격 중에서 어떠한 것인지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증산 사상과 미륵을 다룬 기존의 연구들은, 대체로 유ㆍ불ㆍ선 삼교 조화와 회통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3) 유ㆍ불ㆍ선 삼교의 회통주의(syncretism)는 중국의 북송이후 동아시아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있어왔다.4) 따라서 이 관점은 유효한 틀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 설 때, 이는 증산 사상과 미륵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무의미할 수 있다. 유ㆍ불ㆍ선 삼교의 사상적 연관성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전경』의 맥락과 증산의 종교적 체험과 지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구천상제로서의 증산의 신격은 불, 보살, 신성들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서학까지도 초월하는 궁극적 신격으로서 모든 신들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신격인 ‘상제’5)인데, ‘증산즉미륵’의 입장을 견지하면 궁극적 신격으로서 구천상제의 신격을 축소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증산즉미륵’의 성격을 제대로 해명하는 일은 시급한 일이 된다. 이는 구천 상제로서 지존의 증산 신격을 석가이전에도 여러 부처가 있었으며, 석가 이후에도 여러 부처가 있다는 불교의 다불(多佛)사상과 연관지어 이해하는 문제를 노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증산은 여러 부처 중의 한 부처에 해당하게 된다. 다시 말해 다불 중의 하나인 미륵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며, 이는 증산의 신격을 축소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증산 사상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중심축으로 놓고, 그 지향에서 ‘증산즉미륵’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을 취할 때, 증산이 미륵이라 자칭한 것에서 미륵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를 통해 불교의 신격인 미륵과 구천상제로서 증산의 신격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구천상제의 신격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미륵불 신앙의 양상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어 왔다. 미륵사상에서 파생한 ‘왕즉미륵(王卽彌勒)사상’을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거나, 미륵사상이 그리는 용화세계를 구현하려는 국가적 시도도 있었다. 이에 반해 민중반란의 지도 이념으로서 미륵신앙이 주요한 역할을 하면서, 미륵을 메시아로 신앙하거나 ‘천년왕국운동’의 지배이념으로 『미륵하생경』이 신앙되기도 한다. 또한 민중들의 신앙형태에서 볼 때, 민중들에게 미륵은 삼신신앙과 결부되어 자손의 점지 신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민중과 가장 친근한 무교(巫敎)에서는 부처와 미륵의 신격이 역전하여 신앙되기도 한다. 특히 구한말에서 일제시기에 신흥종교에서 주요한 신격으로 신앙되면서 민중들의 염원이 투영된 메시아신앙으로 등장하기도 한다.6)

그런데 미륵불 신앙의 양상에서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왕을 미륵으로 이해하거나 왕 스스로 미륵이라 자칭하는 것에서 미륵은 지배자와 귀족층의 지위와 권력을 보증하는 것으로 보이고, 말세에 미륵이 하생하여 민중을 구원한다는 민중들의 미륵신앙은 현실의 왕권을 부정하고 현실의 세상을 부정하는 반란의 이념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반란의 이념으로 신앙되는 미륵도 ‘왕즉미륵사상’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미륵신앙의 양상은 미륵경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미륵불의 신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도교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미륵의 신격이 초기도교 교단인 태평도의 소의경전인 『태평경(太平經)』에 나타난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의 하생으로 등장하는 이군(李君) 혹은 이홍(李弘, 이하 이홍으로 통일)7)의 신격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려 한다. 다시 말해 초기도교의 메시아인 이홍의 신격이 미륵의 신격으로 전이되었기에 이러한 모순이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미륵의 신격이 이홍의 신격을 이어서 형성된 것이라면, 『전경(典經)』에서 증산이 미륵을 언급하거나 증산이 미륵이라는 ‘증산즉미륵’의 의미가 매우 분명해 지리라고 생각한다. 증산이 미륵을 중시하거나 증산을 미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륵경들에서 보이는 미륵의 신격이 아니라 바로 민중들이 만들어 낸 미륵이고, 이 미륵은 바로 도교의 메시아인 이홍의 신격으로 연결되어 민중들의 바람을 그대로 껴안는 증산사상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논증할 것이다. 첫째, 초기 미륵 관련 불교 경전 혹은 미륵신앙에는 메시아사상과 도솔천 사상이 없다. 둘째, 미륵과 미륵경들에 등장하는 메시아사상과 도솔천 사상은 서진시기의 승려 도안(道安)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셋째, 민중들이 미륵과 『미륵하생경』을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운동으로 이해한 것은 도교의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운동의 연장선이자, 도교의 메시아인 이군 혹은 이홍의 신격을 미륵에 투영한 것이다. 넷째, 이처럼 민중들에 의해 재창조된 미륵신앙이 바로 증산의 메시아 성격과 일치한다. 또한 증산의 메시아니즘은 신들의 메시아이다.

Ⅱ. 미륵은 메시아가 아니다

미륵에 관한 설화는 대략 서너 가지 경전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최고 오래된 미륵관련 설화는 『숫타니파타(Sutta-nipata)』의 제5 「피안에 이르는 길 장(Parayana-vagga)」이라고 한다.8) 여기에 기록된 내용은 베다(Veda)에 정통한 바라문 바와리(Bavari)가 다른 바라문으로부터 저주를 받자 이를 풀기위해 16인의 제자와 함께 석가에게 가르침을 듣는 이야기로, 바라문 바와리의 16제자 중의 한 사람인 제수미륵(Tissametteya)으로 등장한다. 제수미륵이 최초의 미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또한 미륵을 당래불로 기록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은 『전륜성황수행경』이라고 한다. 이 경전의 내용을 대략 정리하면, 사람의 수명은 8만세에 이른다. 다만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대변과 소변, 욕심, 늙음과 같은 병은 있지만, 독충도 없고 유리와 같은 세계에 오곡은 무르익으며 풍요롭고 즐거운 세상이다. 이때 미륵불이 이 세상에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팔리(Pali)어로 기록된 『장부경전』에는 인간의 수명이 8만세가 되었을 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이때 미륵이 이 세상에 출현한다.

미륵과 관련된 오래된 설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수명이 8만세에 이르고, 사람들은 모두 인화(仁和)하고 십선(十善)을 닦았으며, 전란과 도적, 살인, 질병이 없고, 이 세계는 토지는 정방하고 광활하며 칠보가 가득한 유리와 같은 정법의 시대에 미륵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이들 초기 미륵과 관련된 기록들에는 민중을 구제한다는 내용은 없다. 정법시대에 미륵이 하생하여 민중을 구제한다는 온전한 형태의 미륵 관련 설화는 미륵 3부경9)의 한역이 완성될 때이거나, 한역이 완성되고 난 뒤에나 나타난다(빨리어나 산스크리트어로 된 미륵3부경이 존재하고 이를 한역한 것인지, 중국에서 창조된 것인지는 의심잦다. 뒤에서 다룰 것이지만 서진시기에 중국 불교를 기획한 승려 도안의 창조일 가능성이 높다). 『상생경』은 송 효건 2년(455)에 저거경성(沮渠京聲)이 번역했다고 전해지며, 『하생경』은 대략 400년대 초에 번역되었다고 전해진다.10)

어쨌든 온전한 미륵관련 설화는 원위, 혜각 등이 445년에 번역한 『현우경(賢愚經)』 권12 파파리품(波婆離品)에 보인다. 『현우경』에 기록된 미륵과 관련된 일화는 대략 다음과 같다. 파라나국 재상의 아들이며, 석가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인 미륵이, 석존에게 가르침을 듣는데, 석존이 과거세와 미래세를 이야기 할 때, “당래세에 이 염부제는 토지가 방정하고 평탄광박(平坦廣博)하여 산천은 존재하지 않는다. 땅에는 연초가 돋아나 마치 천의와 같다. 그 때에 인민은 8만 4천세를 살며 신장은 8장이며 단정수묘(端正殊妙)하다. 사람의 성품은 인화하고 고루 십선을 닦는다. 그러한 때에 전륜성황이 있을 것이다. 이름 지어 승가(Sankha)라고 한다. 이때에 바라문의 집에 한 남자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자를 미륵이라고 한다. 몸의 색은 자금이며 삼십이상을 갖추고 상호를 빠짐없이 갖추어 광명이 특히 혁혁하다. 출가학도(出家學道)하여 최정각을 이루어 널리 중생을 위해 존귀한 법륜을 굴린다. 제1회에 93억을 제도하고 제2회에 96억을 제도하고 제3회에 99억을 제도한다.(…) 이 말을 들은 미륵이 자리에서 일어나 원하옵건대 저야말로 그 미륵불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석존이 수기(授記)한다는 내용이다.

『현우경』에서야 3회의 설법을 통해 민중을 제도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미륵은 메시아일까? 메시아니즘(messianism)이란 혼란과 환란의 말세에 새로운 메시아가 나타나 그 시대를 멸망시키고 사부대중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메시아에 의한 종말적 구제에 의해 초래된 새로운 세계질서의 도래를 희망하는 세계관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말법(末法)의 세계가 아닌 정법(正法)의 세계에서 민중을 구원하는 미륵이 메시아일수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러한 의문과 달리, 미륵을 메시아신앙과 결부시켜 말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이란에서 신앙되는 메시아인 Mithra에서 Maitri(우정, 자비)라는 말이 파생되었고, 이 말로부터 미륵 즉, Maitreya(자비, 우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란에서 신앙되는 메시아인 Mithra에서 미륵인 Maitreya가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 학자들은 방증자료로 인도 최고의 경전인 Rg-Veda의 신들 계보에서도 인도, 이란 문화권의 교류가 보이고, 간다라계의 유물들에 미륵상이 보이는 점, Uighur, Sogdian, Tochara 등의 언어에서도 미륵경의 단편들이 보인다는 점을 든다.11)

필자는 언어학적 이해가 없어 이란의 메시아 신이 미륵의 이름에 기원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나머지 근거들은 의미 없어 보인다. 인도와 이란의 문화교류가 보인다고 해서, 간다라계 유물들에서 미륵이 나타난다고 해서, 위구르 등의 언어에서 미륵경의 단편이 보인다고 해서 미륵이 메시아라고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메시아니즘은 종말 의식을 강조하고 그 종말의 시기에 구세주로서 메시아가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륵과 관련된 초기 경전에는 종말의식의 강조도 없을뿐더러 서술하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정법의 시대이므로 메시아가 필요 없는 시기이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종말을 넘어서 이상세계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미륵사상이 도솔천이라는 이상세계를 희구하게 한다라는 점에서 미륵은 메시아의 성격을 띤다라고. 그러나 위의 미륵과 관련된 초기 경전에는 이상세계인 도솔천 개념이 없다.

만약 메시아니즘의 이상세계를 전륜성왕이 다스리는 정법시대라고 한다면 어떨까? 정법시대의 세상을 이상세계로 이해한다면, 메시아는 전륜성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륵은 정법시대를 구현한 전륜성왕보다 그 출현이 시기적으로 늦다. 따라서 미륵이 아니라 전륜성왕의 유리세계가 이상세계가 되어야 하고, 전륜성왕이 메시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불교적 개념으로 정법과 상법, 말법으로 세상을 구별할 때, 석존의 가르침이 구현된 정법의 시대를 구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정법시대에는 메시아가 필요 없다. 따라서 미륵을 메시아니즘과 연관 지어 이해하는 논리에서 이상세계는 도솔천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초기 미륵을 기록한 경전에는 도솔천 사상이 없다.

그렇다면 『상생경』이나 『하생경』에 보이는 도솔천 개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우선 『상생경』과 『하생경』의 내용을 비교해보자. 『상생경』은 석가의 제자였던 미륵이 사후에 도솔천에 상생하여 일생보처보살이 되어 제천중을 설법교화하며, 이를 관하는 자나 미륵보살을 예배하는 이는 죽어서 도솔천에 왕생하고 미래세의 미륵성불 및 용화수 아래의 설법을 만나 무상심을 발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때의 도솔천은 장엄한 국토로 묘사되어 있다. 『하생경』은 미륵이 도솔천으로부터 인간 세상에 강세하여 출가하고 수도하여 부처를 이루고 설법을 펼쳐 민중을 구제한다는 내용이다. 『상생경』과 『하생경』 모두에 도솔천사상이 나타난다.

미륵과 관련된 초기의 경전에는 도솔천 개념이 없는데, 『상생경』과 『하생경』에는 도솔천 개념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미륵과 관련된 초기의 경전과 『상생경』과 『하생경』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상생경』이나 『하생경』에 보이는 도솔천 사상은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바는, 도안(道安, 312~385)의 기획이라는 것이다. 김영태에 따르면, 도안은 도솔천 상생을 신앙하였는데, 그 도솔천의 내용은 서진시기(286)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정법화경(正法華經)』에 “정법화경을 사유하고 봉행하며 일심으로 정진하면 목숨을 마칠 때 천불(千佛)을 만나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불이 있는 곳에서 보살신을 이룬다.”라는 내용이 있고, 이를 중국적 불교의 설계자라는 평가를 받는 도안이 신앙했으며 도솔천의 장엄한 묘사도 정법화경에 묘사되어 있기에, 이를 도안이 상생신앙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이다.12)

소등복(蕭登福)은 한나라 말기의 안세고(安世高), 삼국시대의 지겸(支謙)이 번역한 경전 중에 미륵을 언급한 경우가 없으며, 심지어 한나라 말기에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경전 속의 미륵이라고 인식해 온 아일(阿逸)보살은 석가모니로부터 수기를 받은 내용이 없으며, 당래하생(當來下生)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3회에 걸친 설법의 일도 없다고 논증한다. 그는 미륵이 당래하생하고 설법을 통해 민중을 구제한다는는 설은 서진시기에 축법호가 번역한 경전에 처음 보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등복은 한나라 말기에서부터 동진시기까지 지속적으로 미륵과 관련된 경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본다. 그는 더 나아가 『상생경』과 『하생경』의 원래 경전은 없었고 인도 출신의 화상(和尙)이 구송(口誦)한 것을 글로 옮긴 것이거나 축법호에 의해 찬조(撰造)된 것임을 논증하고 있다.13)

소등복의 논리는 김영태의 연구로도 입증될 수 있다. 김영태는 동진시기의 『하생경』의 원형으로 보이는 『불설미륵내시경(佛說彌勒來時經)』은 겨우 3장짜리의 글이며, 불경의 전형적인 형식인 “여시아문(如是我聞)”도 설처(說處)도 없는 것으로, 이것이 현존하는 미륵6부경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서진시기 축법호에 의해 『미륵하생경』으로 나타난 것(김영태는 이 경전은 축법호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 경전이 축법호의 것이라면, 『불설미륵내시경』보다 시기가 앞서야 한다고 본다.)의 원형이라고 본다.14) 결국 김영태와 소등복의 논리를 종합하면, 『상생경』이나 『하생경』 모두 동진시기까지 경전이 만들어지는 조경(造經)의 단계에 있었고, 중국불교의 기획자라고 평가되는 도안의 기획에 의해 도솔천 사상이 첨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란의 메시아니즘과 간다라계의 유물, 언어적 접근을 통해 미륵을 메시아로 보는 학자들의 논리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륵과 관련된 초기 경전에는 민중을 구제하는 사상도 없을뿐더러 도솔천 사상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민중의 구제와 도솔천 사상은 미륵3부경들이 찬조되어가는 과정에서 기획되어 삽입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제 『상생경』과 『하생경』이 어떻게 조경되었는지, 도솔천사상이 어떻게 미륵경들과 결합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비록 도솔천사상 혹은 도솔천신앙이 미륵경전이 만들어지면서 삽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도솔천사상과 신앙이 미륵을 메시아로 신앙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메시아니즘의 다른 양태로 천년왕국운동을 생각해 보자. 천년왕국운동의 논리로 미륵하생 신앙에 기초한 민중반란을 설명한 논문도 있기 때문이다.15) 천년왕국신앙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종말 시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1000년간 통치한 정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이상적 세계나 유토피아, 황금시대를 말한다. 이 현세에서의 지복(至福)의 왕국 도래에 대한 희망은 천년왕국설 또는 지복천년설(millenarianism, chiliasm)로서 교설화되고, 나아가서는 구체적인 운동으로서 발현되었다.16)

그런데 천년왕국신앙이나 운동은 종말적 상황을 전제하고, 이 종말적 위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종식시키며 현세의 틀에서 이상사회를 구현하며, 내세의 구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이루어진 천년왕국신앙의 관점은 사후세계나 내세의 구제를 중시하지 않고 현세를 이상세계로 전환하는 신앙이 주된 축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결국 도솔천사상과 도솔천을 신앙하는 것으로 미륵을 메시아로 신앙하거나 『미륵하생경』을 기초로 천년왕국운동을 전개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머리말에서 말한 첫 번째 논증과 두 번째 논증을 시도해 보았다. 두 논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미륵에는 메시아적 신격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륵경』들의 도솔천사상은 중국불교의 기획자라고 평가받는 도안의 기획이라는 것이다.

Ⅲ. 그러나 미륵은 메시아이다

이제 세 번째 논증을 진행해 보자. 미륵과 『하생경』신앙이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 신앙의 요소가 없음에도 중국 민중들의 반란에 주요한 이념으로 작동한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우선 미륵불의 다양한 성격을 정리하면서 논의를 진행해 보자.

미륵불처럼 다양하고 다층적 성격을 가진 부처는 없을 것이다. 미륵이 다층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상생신앙과 하생신앙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평화로울 때에는 귀족과 상층부 계급을 중심으로 한 미륵신앙이 실천되는데, 그 내용은 『상생경』을 중심으로 한 도솔천 상생신앙이 주를 이룬다. 사후에 도솔천으로 왕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재난과 말법의 시대에는 천년왕국 운동의 이념으로 미륵이 등장하며 민중들에 의해 메시아로서 미륵이 신앙된다. 물론 이때의 민중들에게 신앙되는 경전은 『하생경』이다.

다른 한편 미륵을 왕으로 이해하는 ‘왕즉미륵(王卽彌勒)’의 사상도 등장한다. 왕즉미륵 사상은 전륜왕의 정법시대와 미륵의 용화세계를 하나로 묶어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시도들을 말한다. 물론 왕즉미륵이란 용어는 ‘왕즉불(王卽佛)’ 혹은 ‘황제즉여래(皇帝卽如來)’의 사상을 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왕즉불이란 용어가 중국에 등장한 것은 3세기의 삼국시대에서부터 5세기 오호십육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전란의 상황에서 불교도들은 불교를 중국에 전파하기 위해 왕들의 기호에 맞는 이야기나 행동으로 환심으로 샀고, 왕들은 불교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자 한 경향을 이르는 말이다. 박광연(2013)은 ‘왕즉불’의 경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승려들은 황제가 바로 부처라는 말들, ‘황제가 바로 현재의 여래(당금여래)이므로 승려들이 항상 절을 해야 한다’거나 ‘황제에게 절하는 것이 부처에게 예배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황제들의 환심을 사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전도활동을 해왔고, 왕들은 ‘왕이 전륜성황’이라거나 ‘왕족이 석가족’이라는 관념에 기대어 자신의 왕권을 강화했다. 특히 남북조시대에, 남조에서는 승려들이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고 황제를 높이는 취지에서 ‘보살’, ‘여래’라는 칭호를 사용하였고, 양 무제를 황제보살이라고 칭하기도 한 경우도 있으며, 북조의 경우에는 승려 법과(法果)에 왕이 부처라는 주장을 해, 황제의 권위를 종교적 권위와 일체화하였다.17)

이러한 ‘왕즉불’의 흐름은 ‘왕즉미륵’의 흐름으로 바뀌고, 이를 최초로 실현한 인물로 무측천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측천은 당나라 고종 때에 자신을 하생한 미륵불이라고 자처하고 나라를 빼앗는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하생한 미륵이라는 미륵신앙을 내세워 민중을 모았고 나라를 세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견훤과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로 자처하면서 후백제를 이으려하거나 고려(이후 태봉)를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미륵즉왕(彌勒卽王)’이라는 용어가 메시아로서 미륵의 성격이라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이는 미륵을 이용한 권력의 유지이거나 쟁취를 위한 경우이기 때문이다.18)

진짜 미륵이 메시아로서 등장한 것은 민중들의 미륵하생신앙과 그 실천으로서의 반란을 통해서이다. 미륵의 하생을 내세워 민중을 모으고 반란을 도모한 것은 수나라 시기에서부터 드물게 나타나고 당나라 때에는 불교의 신앙을 기치로 내걸어 반란을 도모한 경우가 있지만, 미륵을 내세워 반란을 도모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미륵하생 신앙을 내걸고 반란을 도모한 것은 송나라에 이르러 신흥 교파들에 의해 점차로 증가하는 경향을 띠다가 원대에 이르면 미륵하생신앙을 기치로 내건 반란이 하나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송나라시기에 신흥교파인 백련교, 마니교, 무위교, 라조교 등이 나타나고, 원대에 이르면 신흥교파들이 더욱 많아지면서 이들이 미륵하생사상과 메시아인 왕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용화에서 3회의 설법을 거친 뒤 말세에 민중을 구제한다는 메시아신앙으로 이어진다.19)

이들 신흥교파들의 종교적 반란에는 현세를 말겁의 시대로 규정하고 미륵이 하생하여 민중을 구제한다는 메시아니즘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민중들에 의해 신앙된 미륵하생의 신앙은 미륵을 메시아로, 당시의 현실을 말겁의 시대로 인식하고 메시아에 의해 이 세상이 다스려진다는 논리로 발전한다. 이는 메시아니즘에서 천년왕국운동으로 확대된 성격을 갖는다.

앞에서 보았듯이 미륵과 미륵경들에는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운동의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도 원대에 이르면 미륵을 메시아로 신앙하고 미륵을 신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천년왕국운동으로까지 발전한다. 왜 이러한 종교적 실천, 반란의 경향이 나타나는가?

이는 민중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민중들이 메시아니즘에 기초해 민란을 일으키고, 천년왕국의 운동을 실천한 경험들은 도교에서 찾아야 한다.20) 초기 도교에 속하는 태평도의 황건적의 난(184)은 동양 전통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천년왕국 운동으로 거론된다.21)

황건적의 난은 한나라에게 황권(皇權)을 부여한 창천(蒼天)을 부정하고, 민중들의 세상인 황천(黃天) 세상을 열고자 시도한 반란이다.

황건적의 난에 대해 모종감은, “태평도가 제출한 구호 중에 사람의 마음을 가장 감동시킨 것은 “창천은 이미 죽었다. 황천이 서야 한다. 이 해는 갑자년이니 천하가 크게 길하다.”라는 것이다. 이 구호는 천지를 개혁하는 혁명적 정치 구호이자, 태평도의 종교 신앙과 관방의 전통적인 천신(天神) 숭배가 서로 대립적인 것임을 선명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창천은 이미 죽었다.”란 말에서 ‘창천’은 군권을 수여하고 지지하는 하늘의 상제를 지칭하는 것이자, 민간에서는 천신에 대해 통속적으로 부르던 이름이다. 태평도는 관방이 숭배하는 천신의 무상성과 영원성을 승인하지 않고, 그것은 이미 죽어 사라졌다고 인정했다. 이는 당연히 창천에 의해 지지되는 정권인 황권도 죽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천이 서야한다.”라는 말의 ‘황천’은 태평도가 세워서 신봉하는 천신으로, 그것은 신이긴 하지만 통치자를 위한 신이 아니라 새로운 태평군의 봉기와 정권탈취를 위한 것이다. 태평도는 황로숭배의 관점에서 천신을 취급하기 때문에 ‘황천’이라고 칭한 것이다. ‘황’은 땅의 중앙에 위치하여 주관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황천이 서야 한다.”는 것은 중앙 정권을 탈취하고 천하를 점유한다는 의미를 함유한다. ‘황천’은 또한 일종의 통속화된 설교이고, 실제상으로는 태평도가 신봉하는 천신은 ‘중황태을(中黃太乙)’이라고 불렀다.”22)라고 한다.

모종감의 이해는 청주의 황건이 조조에게 한 말을 통해 이해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한나라의 운명은 이미 다하였다. 한나라를 대신해 황가(黃家)가 반드시 흥한다. 이것은 하늘의 위대한 결정이어서 그대(조조) 한 사람의 재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23)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태평도』의 황건적의 반란에서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신앙을 읽어낼 수 있다. 영토 확장 전쟁에 연일 끌려 나가 죽거나 굶어 죽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늘려 있는 한나라 말기의 상황에서 태평 세상을 꿈꾸던 태평도들은 황천 혹은 황가를 메시아로 신앙하고, 태평한 세상을 열기 위한 운동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황건적 반란의 이론적, 신앙적 근거는 『태평경』에서 찾아야 한다. 『태평경』에는 종말의 사상도 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아로서 신격을 갖춘 신이 제시되어 있다. 종말에 이르면,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의 신격을 이어받은 후성금궐제군인 이군 혹은 이홍이 세상에 강림하여 민중을 구원한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태평경』에서 가져와 보자.

그 뒤로 다시 55갑자(즉 3300년)가 흘러 정해년 전후의 중간에 갑신년이 있었는데, 이것은 대갑신(大甲申)으로서 이때는 세 가지 재난이 한꺼번에 발생하였고 또 큰 홍수가 발생하여 그것들을 몽땅 휩쓸어가 버렸다. 대체로 대갑신과 소갑신에 해당하는 해에 이르러서야 흉악한 백성을 제거하고 선량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선량한 사람은 종민(種民)이 되고 흉악한 백성은 흙가루가 된다. 대갑신과 소갑신에 해당하는 해에 이르기 전에 잠깐 동안 허다한 요괴들이 여기저기서 다투어 나타나고, 위로는 전염병과 범죄가 넘실대고, 아래로는 전쟁과 가뭄이 연이어 나타났으며, 홍수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는데, 이렇게 되자 흉악한 범죄가 점차로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이 15년 안에, 멀게는 30년 안에 재난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현자와 성인은 사라지거나 타락하였다. 큰 도를 가진 신인(神人)은 번갈아서 진선(眞仙)과 상사(上士)를 파견하여 경전을 만들어내고 중생을 교화하며, 차근차근 가르쳐서 그들을 인도하고 보통사람들 중의 상등인을 권면하고, 하등인을 격려하였다. 따르는 자들을 종민이 되었고, 따르지 않는 자들을 침몰하고, 침몰한 다음 흙가루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흉악한 사람이 모두 소탕되었다. 종민 가운데 가장 선량한 사람은 10분의 1정도였고, 중등의 선한 사람과 하등의 선한 사람 가운데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은 하늘이 멸망하게 하였으며, 살아남은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은 더욱 번창하게 하고 날로 흥성하게 하였으며, 반드시 성군(聖君)과 명사(明師)와 대신(大臣)을 기다리게 하였으니, 이 때문에 (노자께서) 세상에 강림하여 나오시게 된 것이다.(…) 대태평군으로서 성명을 확정할 수 있는 자는 이군(李君)이다. 임신년 3월 6일 찬란한 빛을 내뿜으면서 세상에 나타났는데, 자주색, 청색, 진홍색 등 세 가지 색깔의 구름으로 만들어진 신의 수레를 타고, 만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가 하늘을 날면서 호위하였다. 선량한 사람을 종민으로 발탁하였고, 학습한 자는 선관(仙官)으로 발탁하였다. 제도를 만들고 법령을 제정하여 선을 권장하고 악을 막았다. 죄의 뿌리를 미리 막고, 복업(福業)을 촉진하는 사람은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신인(神人)과 진인(眞人)이 되어 천제(天帝)와 덕이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게으르고 뒷걸음치는 사람은 악에 빠져 악업이 갈수록 불어나 (악업이) 가득 차게 되면 나중에 흙가루가 되었다. 지사(至士)와 고사(高士)는 지혜가 총명하고 통달하여 모든 것을 막힘없이 훤히 알고 있지만 부지런히 더욱더 정진하고, 천제의 가르침을 학습하고 대신군(大神君)의 재상을 기억하면서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신성한 제군(帝君)과 현명한 신하 그리고 천지의 영관(靈官)이 모두 사람들을 보우하니 (사람들은) 저절로 불사의 경지를 얻게 되고, 영원히 종민이 되었으며, (어떤 이는) 위로 올라가 선인(仙人)과 진인(眞人)이라는 관리가 되었는데, 드디어 (이군이) 후성(後聖)의 자리에 올랐다.24)

이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말세사상과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사상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갑신을 기준으로 우주는 변혁하고, 대갑신년에 세 가지 재난에 대홍수로 이 세상은 사라지고(말세사상), 이 말세의 상황에 신인이 진선과 상사를 파견하여 경전을 만들고 교화를 펴서 태평을 따르게 하였는데, 태평을 믿는 이들은 종민(種民)이 되어 재앙을 면하지만 흉악한 사람은 흙가루가 된다(천년왕국사상). 세상이 다시 평화롭게 되면, 이군이 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내용이다(전체가 메시아니즘).

이러한 말세사상과 이군 혹은 이홍의 신앙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이후 태평도나 오두미도의 사상을 이은 민중의 반란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태평도의 반란이 일어난 지 200년 후에 동진 말 하남 지역을 무대로 일어난 손은과 노순의 난 역시 오두미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25) 이처럼 도교의 사상에는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사상이 들어 있었고, 이 메시아가 이홍으로 신앙되어 민중의 반란은 일어났다.

이러한 도교의 말세사상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와 남북조시대에도 크게 유행한다. 남북조시대는 도교와 불교가 사상적으로 투쟁을 하던 시대이고, 사상적 투쟁을 기록한 여러 경전들 중에 견란(甄鸞)의 『소도론(笑道論)』은 특히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불교 이론가의 입장에서 도교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당시까지의 다양한 도교 경전을 인용하기 때문이다. 견란은 도교의 여러 경전에서 다양한 주제를 뽑아 불교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는데, 견란이 인용한 도교의 경전들과 그 내용은 일실된 도교의 경전과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도교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26) 견란은 도교의 말세사상 역시 비판한다. 그 내용을 가져와 보자.

『도명묘경』(태상동현영보제천영서도명묘명)에서 말하였다. 대겁이 주기를 교차할 즈음에 하늘은 붕괴되고 땅은 가라앉아, 욕계는 소멸하여 아무것도 없게 된다. 태평도경과 『불법화대소품』(법화경)이 상하로 18천의 가운데를 돌아 떠다녔다. 색계 내에는 대겁의 고체를 맞아 그 경문이 없어졌다. 옥청삼도상통신경진문 옥자만이 원시에서 나왔다. 28천 무색계 위에 대라옥경현대는 재화가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자연의 문이 운회와 함께 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능히 이것을 받으면 칠대의 조상이 천에서 다시 태어난다. 전륜성왕이 대대로 끊이지 않는다.(견란의 도경 인용 내용)

견신(甄鸞)은 비웃으며 말합니다. 『도인본행경』에서 도는 원시가 빛을 연 이래 적명을 원년으로 삼아 구천여 억겁을 거치면서 항하사만큼 많은 중생을 구제하고 이후에 상황원년에 이르러 수많은 사람을 구제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겁을 따라 나고 죽으며 세세로 끊어지지 않는다. 항상 영보와 같이 나와 오랜 겁이 끝나는 것을 거치고서 구기가 운을 고치면 홍시의 태에 의탁하여 삼천여년을 기다리다가 적명이 개통하는 해 갑자에 이르러 하늘 뚜껑을 떠 바치고 태어나 다시 영보와 함께 나와서 사람을 구제한다. 무시천존은 나와의 인연으로 나에게 태상의 호를 주고 현도옥경에서 이로써 나를 추천하였다. 진문은 옥경에 있어 재화가 미치지 못하여 운회와 더불어 같이 나고 같이 멸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같이 나고 같이 멸하는 것이 어찌 재앙이 아닌가?27)

이 인용문에서 확인할 내용은 『도명묘경』, 『도인본행경』 등의 도교 경전에서도 여전히 말세사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중생 구제의 메시아니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태평경』의 말세사상과 메시아니즘은 여러 도교 경전으로 이어지고 수많은 민중반란의 이론이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홍의 신격을 잠깐 다루어 보아야 한다. 『태평경』에는 미래의 난세에 인간 세상에 출현해 민중을 구원할 금궐제군(金闕帝君)으로 이홍이 등장한다. 그리고 동한시기에 노자가 말세에 인간 세상에 출현해 민중을 구원한다는 설이 성행을 한다. 그리고 도교의 경전에서는 이홍은 신선계의 주인인 노군이 말세에 민중을 구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화신한 신으로 설명한다. 자, 이제 이홍은 『태평경』에서, 동한시기의 노자화신구제설(老子化身救濟說)까지 등장하고, 도교의 경전에서는 노자가 인간의 몸으로 화신한 인물이라고 설명되면서, 메시아의 신격을 갖추게 된다.

이 때문에 이홍을 이용한 민란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홍이 하생(下生)하여 태평성군(太平聖君)이 된다는 믿음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황건적의 난이나 태평도의 난이 실패했더라도 민중들의 메시아 이홍 신앙은 한나라 말기에서부터 당나라 때까지 이어졌고, 이 시기의 민란들은 대부분 이홍을 내세워 신앙하면서 일어난 것이다.28)

이홍을 내세운 민중의 반란은 측천무후 시기를 중심으로 성격이 달라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당나라는 노자를 자신의 선조로 이해하였기에 노자의 화신인 이홍을 이용한 반란을 용인하지 않았고, 측천무후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이홍으로 짓기까지 한다. 측천무후는 정권을 빼앗는데 장애가 되는 이홍신앙을 소멸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인 이홍을 독살하고, 당나라의 황제권을 빼앗고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자칭한다. 동양에서 황제나 왕자의 이름을 휘하는 전통이 있다. 이 전통에 의해 이홍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측천무후가 자신의 아들인 이홍을 독살하고 스스로를 하생한 미륵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고, 점차로 이홍에 대한 신앙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한다. 이는 이홍에 대한 신앙에서 미륵신앙으로 전환되는 계기이다. 게다가 남북조시기에 미륵경들이 조경되어 완성되면서 수나라시기에 미륵신앙이 보편화된다. 이러한 정황들이 이홍신앙에서 미륵신앙으로 전환을 이루게 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정황들이 메시아니즘이 없는 미륵신앙을 왜 민중들은 메시아니즘으로 신앙하고 실천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한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말기까지 민중들의 입장에서 이홍을 메시아로 신앙하고 이 신앙으로부터 천년왕국 신앙으로 이어지던 것이 당나라 말기에 미륵에 이홍의 신격을 투영하게 된 요소인 것이다.

지금까지 세 번째 논증인 미륵불에 메시아 신격을 부여하고, 『하생경』을 중심으로 한 천년왕국운동은 도교의 메시아인 이홍신앙과 도교의 천년왕국사상이 미륵에 투영된 것임을 해명하였다.

Ⅳ. 증산은 미륵이다. 증산은 미륵이 아니다

우리의 미륵신앙을 살펴보자. 우리 역사에서도 미륵신앙은 메시아 신앙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미륵즉왕(彌勒卽王)’의 사례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궁예가 스스로 미륵이라고 칭한 것은 ‘미륵즉왕’의 사례에 해당할 것이지만, 고려 말의 농민 이금의 미륵운동, 절간 노예 무적 등의 미륵운동, 만적과 만소의 궐기는 메시아로서 미륵신앙이 민란의 형태로 드러난 것을 보여준다. 조선 숙종시기에 승려 여환(呂還)과 무녀들의 비밀결사가 미륵신앙을 내세워 석가가 다스리는 현재를 말세로 보고, 미륵이 다스리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도성을 공격하려한 천년왕국운동의 사유도 나타나고 있다.29)

여환과 무녀들을 중심으로 한 천년왕국운동에도 보이듯이, 조선시대 미륵신앙의 한 형태가 석가가 다스리는 현재를 말세로 보고, 미륵이 다스리는 세계가 오리라는 믿음이 중요한 요소이다. 현실세계를 말세로 보는 시각과 이 현실세계를 다스리는 신격이 석가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현실의 고통을 종교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서 현실적 고통의 원인자를 석가로 보는 내용을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불교의 설명방식과 전혀 다른 이해이다. 불교의 설명방식에는 현실적 고통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석가의 가르침을 따라 부처를 신앙하라는 것이지만, 석가가 다스리는 세상이 말세라는 것은 석가의 가르침이 무효하다거나 의미 없음을 선언한 것이 된다.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무교(巫敎)의 논리이다. 무교는 민중들과 가장 밀접한 종교로, 무교의 신앙체계는 그대로 민중들의 신앙체계와 연결된다. 미륵과 결합한 무교의 논리는 석가와 미륵의 신격조차 역전시켜놓고 있다. 무교의 창세신앙에서 이 세상을 창세한 신격으로 미륵을 든다.30) 그리고 미륵이 다스린 세계는 평화롭기 그지없다.31) 이를 불교 용어로 옮기면 정법의 시대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석가가 이 세상을 탐내 빼앗고자 내기를 하게 된다.32) 미륵과 석가는 세 차례의 내기를 하지만 내기에서는 미륵이 이긴다. 마지막 내기인 모란꽃 피우기에서도 미륵이 이기지만 석가가 속임수를 쓴다.33) 미륵은 석가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석가를 저주하면서 이 세상을 물려준다. 미륵은 이 세상을 물려주면서 석가의 세상에는 기생과 과부, 무당과 역적, 백정과 건달이 가득한 세상이 되리라고 예언한다.34) 기생과 과부, 무당과 역적, 백정과 건달이 가득한 세상은 말세이고, 이 말세가 오면, 그 때에 자신이 하생해 이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맹세를 하고 석가에게 이 세상을 물려준다는 신앙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무교에서는 미륵→석가→미륵으로 신격을 설명한다. 이는 석가가 미륵에게 미래불로서의 자격을 주서는 수기(受記)를 기록한 불교 경전들의 내용과는 상반된다.

다른 하나는 미륵부처가 삼신신앙과 결부되어 아기의 점지와 탄생의 역할을 한다거나, 치병을 위한 기도의 대상이거나, 마을의 수호신의 역할을 하거나, 기복의 대상이 되는 경우이다.35) 이러한 점들은 미륵신앙이 철저하게 민중의 입장에서 재해석되고 신앙화 되었음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조선말기 민중들의 미륵신앙의 현실에서 증산이 스스로 미륵이라고 자칭한 것은 이러한 민중들의 미륵신앙을 껴안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민중들이 이해한 당시의 현실은 말겁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말겁의 시대 메시아니즘으로 미륵하생을 희구해 온 민중의 미륵하생신앙은 증산에 의해 상극에 지배되어 원한이 쌓인 세상이자, 천지조차도 상도를 잃어버려 온갖 재화가 일어나며 참혹한 상태로 재해석된다. 이러한 말겁의 현실을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상생의 도로써 후천의 선경을 세우는 공사를 시행함으로써 후천개벽(後天開闢)과 후천선경(後天仙境)의 도래를 선포한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36)

증산의 후천개벽과 후천선경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은 구천에서 상제로 계실 때에 신들의 호소와 탄원으로 삼계(三界, 天地人)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화현한 결과이다. 증산의 강세 목적은 이처럼 분명하다. 그 강세의 목적은 조선 민중들의 메시아니즘의 희구와 일치한다. 그렇다면 증산으로서는 민중들의 희구를 껴안을 수밖에 없다. 당시의 민중들이 미륵을 신앙하는 내용을 껴안았기에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 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 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 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 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37)

하지만 구천상제로서 증산은 특정한 종교의 특정한 신(神)일 수 없다. 다시 말해,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한 것으로 하여 ‘증산즉미륵’으로만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증산즉미륵’의 의미는 구한말, 일제시대의 민중들이 희구한 미륵하생신앙에 대한 상제의 응답이자, 민중들의 희구를 포용하는 것이자 위무하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제께서 신성ㆍ불ㆍ보살 등의 호소를 수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ㆍ불ㆍ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38)

상제로서 증산의 신격은 신성ㆍ불ㆍ보살 등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서학을 초월하는 궁극적 존재이다. 궁극적 존재로서 상제만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호소하는 신성ㆍ불ㆍ보살 등의 호소를 통해서도 상제로서 증산의 신격은 확인된다. 이는 인간들이 메시아를 희구하는 것과 성질을 달리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말세에 구원자로 메시아를 희구하는 것을 메시아니즘이라고 한다면, 신성ㆍ불ㆍ보살 등의 호소에 대한 응답으로서 증산의 응답은 궁극적 존재로서 신격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이는 신들의 메시아라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증산즉미륵’의 의미는 민중들에게 메시아로 신앙되던 미륵을 증산이 껴안은 측면에서 성립할 수 있는 명제이다. 하지만 상제로서 증산은 궁극적인 존재이므로, 신성ㆍ불ㆍ보살, 서학 등의 신들의 호소에 응답한 것이 된다. 따라서 신들의 메시아로서 증산이 위치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증산은 미륵이 아니면서 미륵이 된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증산의 신격은 신들의 메시아로서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증산은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는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공사 1장 2절)를 통해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을 건지는 개벽장(공사 1장 1절)으로서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는 것이 삼계공사’(공사 1장 3절)라고 천명한 증산에게 신들과 인간의 경계 지음은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산의 신격은 민중의 염원을 품은 측면에서 개벽장공사와 삼계공사를 통해 민중들의 메시아로 위치하며, 신성과 불보살의 호소에 응한 측면에서 신들의 메시아라는 신격을 동시에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증산즉미륵’의 두 측면은 궁극적 존재로서 상제의 신격 속에 민중을 껴안는 신격과 신들의 메시아 신격을 동시에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Ⅴ. 맺음말

필자는 조선후기 민란의 지도 이념으로서 미륵신앙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미륵이 과연 메시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혀 고심을 한 시간도 꽤나 된다. 이 논문을 통해 본격적으로 미륵불의 신격과 미륵경들에 보이는 도솔천이 과연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운동의 내용일 수 있는가를 검토해 보았다. 그 검토의 결과는 불교 자체의 논리에서 찾을 수 없었다. 동양 종교에서 천년왕국운동의 전형으로 늘상 거론되어 오던 도교의 논리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도교의 메시아인 이홍과 이홍신앙을 중심으로 한 천년왕국운동이 중국의 역사적 흐름에서 좌절되면서, 이홍이라는 신격과 천년왕국운동의 사상이 그대로 미륵으로 옮겨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미륵하생 신앙을 중심으로 한 메시아니즘이 이홍신앙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경』에 나타나는 미륵불의 성격과 미륵하생신앙을 해명하면, 구천상제로서 증산의 종교적 지향과 신격을 이해하리라는 가설을 세웠다.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증산즉미륵’은, 구천 상제로 지존의 신격을 다불(多佛) 중의 하나인 미륵으로 이해하고 신앙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해, 이는 구천상제의 신격을 축소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보았다. 다른 하나는 ‘증산즉미륵’ 사상은 미륵하생을 신앙하면서 민중들이 염원한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운동을 증산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미륵사상에는 메시아니즘과 천년왕국운동사상이 없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할지가 문제라고 보았다. 이 두 가지 점을 해명하는 목적으로 머리말에서 제시한 네 가지 논증을 중심으로 미륵을 메시아로 신앙하는 것은 도교에서 이홍을 신앙하면서 메시아로 이해한 것으로 그대로 미륵에 투영한 것이고, 도교의 천년왕국운동이 미륵하생신앙으로 전이되었음을 논증했다.

이러한 논증 위에서 ‘증산즉미륵’의 의미를 탐구해 보았는데, 『전경』에 보이는 ‘증산즉미륵’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나는 조선후기 말겁의 시대에 민중들이 신앙하고 희구했던 미륵의 신격을 수용해야하는 응겁(應劫)의 상황이다. 하지만 구천상제인 증산은 민중들의 희구를 껴안되 미륵불경에서 말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원하는 길을 보여준다. 바로 천지의 도수를 뜯어고치는 천지공사와 삼계공사이다. 이는 구천상제인 증산이 미륵불일 수 없는 증거이다. 증산의 강세는 인간들의 희구뿐만 아니라 신들의 호소 때문이다. 증산의 강세(降世)는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신들의 호소에 응한 것이다. 결국 『전경』에 보이는 미륵불의 성격은 철저하게 민중들의 희구로 만들어진 미륵이다. 증산은 민중들의 희구를 껴안는 측면에서 ‘증산즉미륵’이지만, 이를 넘어서 신들의 호소에 응답하는 측면에서 절대 신격으로 강세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Footnotes

1. 『전경』, 행록 2장 16절,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 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 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 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 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

2. 같은 책, 교운 1장 9절,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 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甲子)년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 예시 1절,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ㆍ불ㆍ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

3. 황준연, 「유ㆍ불ㆍ도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순사상의 의의」, 『대순사상논총』 20 (2009).

4. 철학사의 흐름으로 볼 때, 유불도 삼교가 회통되는 시대를 송대 이후로 본다. 송대에는 신유학이 탄생하면서, 성명을 중심으로 한 유가와 도교, 불교가 사상적으로 회통해 가는 경향을 띤다.

5. 『전경』, 예시 1절,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ㆍ불ㆍ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

6. 유병덕, 「일제시의 미륵하생신앙」, 불교문화연구소 편, 『한국미륵사상연구』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7), p.208 참조.

7. 『태평경』에 보이는 메시아로서 이군(이홍)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군이라고 표기하고 “성은 이씨로서 고상태(高上太)의 계승자이고, 옥황허무(玉皇虛無)의 후예이고,(…) 북현옥국(北玄玉國) 천강산(天岡山)의 신비로운 곳인 인조각(人鳥閣)과 봉래산(蓬萊山) 가운데 있는 이곡(李穀) 사이에서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서진 말기에 도사인 왕찬(王纂)이 편찬한 『태상통연신주경(太上洞淵神呪經)』 권1에 『태평경』을 계승해, 이군을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홍(弘)이며, 이홍의 출생 사적으로 보면 노담과 같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설에 영향을 받아 육조시기 이후 사료에는 모두 이홍을 곤륜산에 있는 태상노군이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하생한 것으로 이해한다.

8. 石上善應, 「彌勒思想の根源的 接近」, 『미륵사상의 현대적 조명』 (보은: 법주사, 1990), p.14 참조.

9. 미륵신앙이 의거하는 경전은 여섯 가지(6부)가 있지만, 세 가지를 중시하여 이를 미륵3부경이라고 한다. 이 미륵3부경은 유송시기에 저거경성(沮渠京聲)이 번역한 『불설관미륵보살상생두솔천경(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상생경』으로 표현), 동진시기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불설미륵하생경(佛說彌勒下生經)』(『하생경』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하생경』은 복잡하다. 번역한 이를 알 수 없는 『불설미륵래시경(佛說彌勒來時經)』이라는 것도 있다), 후진시기 구마라십(鳩摩羅什)이 번역한 『불설미륵대성불경(佛說彌勒大成佛經)』(『성불경』으로 표현된다)

10. 미륵경전들의 번역과 관련한 인물 및 시대 고찰은 김영태, 「삼국시대의 미륵신앙」, 불교문화연구소 편, 『한국미륵사상연구』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7), pp.13-14 참조.

11. 石上善應, 앞의 글, p.14.

12. 김영태, 앞의 글, pp.20-21 참조; 蕭登福, 『讖緯與道敎』 (臺灣: 文津出版社, 2000), p.476 참조.

13. 蕭登福, 같은 책, p.472 참조.

14. 김영태, 앞의 글, p.14 참조.

15. 차남희, 「천년왕국신앙과 전통사회의 정치변동:미륵하생신앙을 중심으로」, 『동양정치사상사』 3-2 (2004).

16. 종교학 사전, 네이버, http://terms.naver.com/list.nhn?cid=50766&categoryId=50794

17. 박광연, 「동아시아의 ‘왕즉불(王卽佛)’ 전통과 미륵불 궁예」, 『사학연구』 110 (2013).

18. 고은, 「오늘의 미륵-그 현재성을 위한 감상」, 『미륵사상의 현대적 조명』 (보은: 법주사, 1990), p.260 참조.

19. 蕭登福, 앞의 책, p.485 참조.

20. 최수빈은 “중국역사에서 나타난 유토피아적 세계의 이상(理想)은 대부분 도교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종사하던 유교와 대척적 입장에 섰던 도교는 항상 현실적 모순을 지적하고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통로로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이렇듯 이상세계의 비전(vision)을 보여주어 민중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대중적 리더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도교의 사회적 역할수행은 증산이 자신과 신도들의 역할로 제시했던 그것과 매우 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최수빈, 「신비주의의 관점에서 바라 본 증산교와 도교의 수행 및 사상」, 『증산사상의 다층적 이해』 (서울: 청홍, 2015), p.335 참조.

21. Anna Seidel, “Taoist Messianism”, 31:2 (1984). 자이델은 태평도의 난이 대표적인 ‘천년왕국운동’이라고 본다. 차남희, 앞의 글.

22. 牟鐘鑒, 『중국 도교사: 신선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 이봉호 옮김 (서울: 예문서원, 2015), pp.55-56 참조.

23. 『삼국지』 권1, 무제기주인, 위략.

24. 又五十五, 丁亥, 前後中間, 有甲申之年. 是大甲申三災俱行, 又大水蕩之也. 凡大小甲申之至也, 除凶民, 度善人. 善人爲種民, 凶民爲混齏. 未至少時, 衆妖縱橫互起, 疫毒衝其上, 兵火繞其下, 洪水出無定方, 凶惡以次沉沒. 此時十五年中, 遠至三十年內, 歲災劇, 賢聖隱淪. 大道神人更遣眞仙上士, 出經行化, 委曲導之. 勸上勵下, 從者爲種民, 不從者沉沒, 沉沒成混齏. 凶惡皆蕩盡. 種民上善, 十分餘一, 中下善者, 天滅半餘, 餘半滋長日興, 須聖君明師大臣, 於是降現.(…) 大太平君定姓名者, 李君也. 以壬辰之年三月六日, 顯然出世, 乘三素景輿, 從飛軿萬龍. 舉善者爲種民, 學者爲仙官. 設科立典, 獎善杜惡, 防遏罪根. 督進福業之人, 不怠而精進, 得成神眞, 與帝合德. 懈退陷惡, 惡相日籍, 充後齏混也. 至士高士, 智慧明達, 了然無疑, 勤加精進, 存習帝訓, 憶識大神君之輔相, 皆無敢忘. 聖君明輔, 靈官祐人, 自得不死, 永爲種民. 升爲仙眞之官, 遂登後聖之位矣.(太平金闕帝晨後聖帝君 師輔 歷紀歲次平氣去來兆候賢聖功行種民定法本起, 『태평경초갑부』)

25. 손은과 노순의 반란과 관련된 자세한 이해는 谷川道雄ㆍ森正夫, 『중국민중반란사』, 송정수 옮김 (서울: 혜안, 1996), pp.33-37 참조.

26. 이와 관련해, 나우권, 「불교의 도교 비판과 도교의 응답」, 『도교문화연구』 42 (2015)를 참조하라.

27. 隨劫生死者;如度命妙經云, 大劫交周, 天崩地淪, 欲界滅無, 太平道經佛法華大小品, 周遊上下十八天中, 在色界內至大劫交, 其文乃沒, 其玉淸上道三洞神經眞文玉字, 出於元始, 在二十八天無色界上大羅玉京山玄臺災所不及, 故自然之文, 與運同生同滅, 能奉之七祖生天, 轉輪聖王代代不絶.

臣笑曰, 度人本行經云, 道言自元始開光以來, 赤明元年, 經九天餘億劫, 度一恒沙衆生, 爾後至上皇元年, 度人無量, 我隨劫生死, 世世不絶, 恒與靈寶同出, 經久劫終九氣, 政運託胎, 洪氏積三千餘年, 至赤明開通歲在甲子, 誕於扶力, 蓋天復與靈寶同出度人, 無始天尊以我因緣. 賜我太上之號, 在玄都玉京以此推之, 眞文在玉京災所不及, 而云自然之文, 與運同生同滅, 同生同滅豈非災也.(甄鸞, 『笑道論』)

28. 이홍을 메시아로 신앙하면서 일어난 중국의 민란들 사례는 蕭登福, 앞의 책, pp.458-464 참조. 소등복은 사료들에서 이홍을 내세워 일어난 민란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29. 미륵신앙을 내세우면서 천년왕국운동을 펼친 여환과 황회, 무녀 계화 등의 반란에 관해서는 고성훈 외, 『민란의 시대』 (서울: 가람기획, 2000), pp.97-100 참조.

30. “하늘과 땅이 생길 적에 미륵님이 탄생한 즉,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아니했구나.” 손진태 편저, 『조선신가유편』을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이 현대어 옮긴 『조선신가유편』 (서울: 박이정, 2012) 1.창세가.

31. “미륵님 세월에는, 섬들이 말들이 잡수시고, 인간세상 태평하고”(서지사항 위와 같음)

32. “석가님이 나오셔서 이 세월을 빼앗고자 마련하여, 미륵님이 말씀하시길 아직은 내 세월이지 네 세월은 못된다. 석가님이 말씀하시길, 미륵님의 때는 다 지나갔다. 이제는 내 세월을 만들겠다. 미륵님이 말씀하기기를 네가 내 세상을 빼앗으려거든 너와 나 내기를 하자.”(서지사항 위와 같음)

33. “더럽고 축축한 석가야, 그러거든 동해바다 속에 금병에 금줄 달고, 석가님은 은병에 은줄 달고미륵님이 말씀하시길, 내 병의 줄이 끊어지면 네 세월이 되고 네 병의 줄이 끊어지면 네 세월이 아직 아니라, 동해바다 속에서 석가 줄이 끊어졌다. 석가님이 배를 내밀었구나 또 내기 한 번 더하자. 성천강을 여름에 얼어붙게 하겠느냐, 미륵님을 동지제를 올리고 석가님은 입춘제를 올리니 미륵님은 강이 얼어붙게 하고 석가님이 졌구나. 석가님이 또 한 번 더 하자, 너와 내가 한방에 누워,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내 무릎에 올라오면 내 세월이요, 네 무릎에 올라오면 네 세월이라. 석가는 도적심사를 먹고 반잠을 자고, 미륵님은 참잠을 잤다. 미륵님 무릎위에 모란꽃이 피어 올랐구나 석가가 중등사리를 꺾어다가 제 무릎에 꽂았다.”(서지사항 위와 같음)

34. “축축하고 더러운 이 석가야, 내 무릎에 꽃이 핀 것을, 네 무릎에 꺾어 꽂았으니 꽃이 피어 열흘을 못하고 심어서 십년을 못가리라. 미륵님이 석가의 성화를 너무 받기 싫어, 석가에게 세월을 주기로 하고 축축하고 더러운 석가야, 네 세월이 될라치면, 가문마다 솟대가 서고, 네 세월 될라치면 가문마다 기생 나고, 가문마다 과부 나고, 가문마다 무당 나고 가문마다 역적 나고, 가문마다 백정 나고 가문마다 합죽이 언청이 나고,…”(서지사항 위와 같음)

35. 김삼룡은 민중들에 의해 신앙된 미륵신앙을 ①득남, ②치병, ③수호, ④기복, ⑤기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김삼룡, 「조선시대의 미륵신앙」, 불교문화연구소 편, 『한국미륵사상연구』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7), pp.188-203 참조.

36. 『전경』, 공사 1장 3절.

37. 같은 책, 행록 2장 16절.

38. 같은 책, 예시 1절.

참고문헌(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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甄鸞, 笑道論 ( 廣弘明集 권제9에 수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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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Seidel, "Taoist Messianism", Numen, Vol. 31:2,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