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근세 이래 서양에서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개념이 윤리학적 논의 주제로 주목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는 주로 자연권적인 윤리관이나 계약론적 토대에서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측면에서 논의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동양에서 나타난 수행론 전통의 ‘무자기관’과는 대별된다.
광의의 맥락에서 볼 때, 동양사상 내에서 도가의 허심(虛心), 망아(忘我), 망기(忘己)1), 불교의 무아(無我) 등은 수행의 요체이자 궁극의 경지로 묘사되고 있고, 유가의 『대학(大學)』 「성의 장(誠意章)」에는 무자기(毋自欺)가 유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나와 있다.2) 한편, 구한말 강증산 상제에 의해 개창된 도(道)인 대순사상에서는 무자기(無自欺)가 도통을 이루기 위한 수행방법이자 목적으로 제시된다.3) 나아가 무자기를 이루는 것은 정신개벽뿐만 아니라 지상신선실현/인간개조 및 지상천국건설/세계개벽이라는 여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제가 된다는 점에서, 기타 목적과 중층적으로 포섭되는 구조를 보인다.4)
그런데 이러한 대순의 무자기관은 동양의 수행론 전통 속에 있으면서도 인륜뿐만 아니라 신과의 조화적 관계를 통해 인간완성과 이상사회 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유불선의 입장과 구분되는 면이 있다. 즉 개인 윤리나 공생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해원상생이라는 종지에 입각해 사람과 더불어 천지 및 신명과의 상생적 관계5)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윤리관과 차별성을 보인다.
그런데 수행론 전통 속에 있으면서도, 차별성을 지니는 ‘무자기’의 이러한 상생적 특성을 서구의 윤리학적 입장으로 볼 경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관심사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서구의 양대 규범 윤리학인 칸트 윤리학과 밀의 공리주의와의 대비를 통해 대순의 무자기관에 나타난 윤리학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6) 이를 위해, 의무론적 윤리관, 목적론적 윤리관 및 최근에까지 많이 논의되고 있는 덕 윤리학의 맥락을 간략하게 알아본 후, 이와 연관된 대순사상의 윤리학적 특성을 검토해보겠다.
논의를 통해 무자기는 진실된 언행으로 발현되는 윤리적 당위이면서 수도의 목적이기에 의무론과 목적론의 윤리관뿐만 아니라 덕 윤리학의 요소를 중층적으로 지니면서도 이를 조화하는 상생적 개념이라는 점을 제시할 것이다. 그럼 타자와 개인윤리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서구윤리학의 주요 흐름을 개괄한 후 이와 대비되는 대순사상에서의 무자기의 특성을 검토해 보겠다.
II. 근대 서구윤리학의 세 흐름
근대 서구윤리학에서 무자기와 관련한 대부분의 논의는 의무론적 윤리학과 목적론적 윤리학 사이에 진행되었다.7) 의무론자와 결과론자가 무자기에 접근하는 방식은 행위의 의도를 중시하는 의무론적 규범론과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론적 사유로 구별된다. 하지만, 양자 모두 개인의 권익에 토대를 둔 논의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럼 우선 양대 이론의 대표적 사상가인 밀과 칸트의 윤리관을 살펴보겠다.
공리주의는 ‘모든 행위의 옳고 그름이 오직 결과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야 한다’8)는 목적론적 윤리 이론이다. 즉, 옳은 행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산출하는 결과이며 이 기준에 따라 모든 행위의 도덕성이 평가된다. 따라서 도덕성에 대한 유일한 평가기준은 결과가 초래할 보편적 전체 행복의 총량, 곧 유용성 여부에 있다. 효용가치의 계산에서 행복은 궁극적이고 유일한 선이다. 반면, 그 이외의 것들은 행복과 쾌락9)이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효용 원리만이 도덕적 선행위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공리나 최대행복의 원리만이 도덕의 기초라면 ‘행위는 행복을 촉진하는 데 유용한 만큼 선이고, 이에 반하는 것을 산출하는 만큼 악’이다.10)
나아가 밀의 공리주의는 도덕적 선의 판단근거를 행복과 결과에 기여하는 유용성에서 찾는 목적론적 윤리관이라는 점에서 도덕법칙의 규준을 보편법칙에 대한 의무에서 찾는 칸트의 의무론과도 대비된다. ‘효용이야말로 도덕적 의무를 판가름할 궁극적 원천이자 의무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해 줄 기준’11)이기 때문이다.
밀은 칸트의 도덕법칙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원칙에 기반한 도덕 기제의 정당성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비판한다.12)도덕성의 기초로서 공리원칙이 칸트의 이성보다 한층 강한 직관적 토대를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즉, ‘공리원칙이야말로 ‘양심을 속이지 않음’과 같은 특정 행위가 왜 옳은지에 대해 더 잘 설명한다’는 주장이다.13) 그에 따르면, 인간은 공리원칙에 따라 본능적으로 쾌락을 추구한다. 하지만 인격의 존엄을 바탕으로 하는 쾌락의 추구야말로 바로 최고 행복의 근원이기에, 양심을 속이는 것은 행복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행복 추구를 위해서는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과 같은 내적 양심의 제제가 필요하며, 타인의 행복 실현을 바라는 이타심, 즉 동정과 인애(beneficence)라는 사회적 감정이 요구된다. 나아가 이러한 감정을 토대로 한 공익과 정의 실현이 도덕의 본질이 된다는 입장이다.14)
이처럼 공리주의는 행위의 가부를 판정할 때, 동기나 의도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목적론적 윤리설에 기반한다. 양심적 행위 또한 덕 윤리학에서와 같이 인격완성과 같은 목표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믿음을 약화시켜 공리를 저해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15) 이 점에서 계약론적 실용성이 윤리의 순수성보다 우선시되는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목적론의 기준이 행복과 유용성이므로 양심이나 이타심 실현의 근거 또한 인격의 순수성이 아닌 행복과 공리의 증진에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동체 윤리 또한 성실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지 않는 한에서 전체 행복에 유리한 영향을 주고자 하는 목적 하에 개인 윤리와 연계되어 있다. 이 점에서 밀의 목적론적 윤리는 순수 규범론에 입각한 개인 윤리로도, 공동체 윤리로도 보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
칸트는 의무론적 윤리학의 근본 테제를 기초한 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도덕의 최고 원리가 무엇이며, 그러한 원리가 진실로 존재하는지를 규명한다. 그에 따르면 도덕법칙은 행위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행위 그 자체가 선(善)이다. 그러므로 도덕법칙은 무조건적으로 의지에 부여된 도덕 명령인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으로 주어진다. 인간 행위란 욕구나 필요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과 같이 불완전한 의지를 지닌 존재는 어떤 것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그에 따라 행위 하지는 않으므로 명령 형식에 따라16) 정언명령의 제 정식17)을 스스로 강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반면, 정언명령의 형태로 의지에 부여된 도덕 명령에 따라 행위하는 이성적 존재자는 자율적 존재이다. 나아가 그러한 한 이들의 공동체는 목적의 나라가 된다. 이렇듯 스스로 자율적으로 의무를 부과하는 개인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칸트 윤리학은 자율적 의무론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목적의 왕국을 상정했다는 점에서 목적론의 요소를 포섭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구성원을 목적으로 대하는 공동체가 이상으로만 상정되지 존재론의 근거로 제시되지 않기에 목적론과는 구별된다. 칸트에게 의무 그 자체는 보편법칙에서 나오는 존재론적 당위성이지, 목적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무자기의 한 요소인 거짓말 문제와 관련하여 칸트는 자신의 의무론적 구도 속에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윤리형이상학 정초』18)에서 그는 ‘거짓 약속을 피해야 할 의무’를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의무에 포함시킨다. ‘거짓말 금지’를 규범적으로 전제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언명법의 형식을 합리적으로 도출하기 위해서는 행위가 보편화될 수 있어야 하는데, 거짓 약속의 격률은 모순 없이 보편화될 수 없다. 거짓약속이 보편화된다면 약속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19)
이렇듯,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은 ‘행위 결과와 관계없이, 내면적 자유의지와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자율적 도덕법칙을 따를 때 진정한 인격이 된다’20)고 본 점에서 결과론과 구별된다. 하지만, 스스로의 입법과 자율 원칙이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연계되어 있기에, 이에 어긋날 경우 타인의 생명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도 자신이 입법한 준칙을 양보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한다21)는 점에서 약점을 보인다.
이렇게 볼 때, 밀과 칸트 모두 개인의 개별적 인격과 사회적 권익의 보호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관념에 기반을 둔 동양의 수행론 전통과는 구분된다.
살펴보았듯이,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기에, 구성원들의 합의만 있다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라도 효용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 이에 비해 칸트 윤리학은 원칙에는 충실하지만 다양한 상황을 포섭하는 유연성 면에서 약점이 있다.22) 이 점은 체계적 형식을 모색하기보다 내용의 의미와 뜻에서 깊이와 진정성을 중시하는 동양 윤리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의무론에서도 보편적 법칙 수립이라는 형식 일반을 경직되게 적용하다 보면 형식이 담고자 하는 의도를 상실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23)
이러한 문제점을 고려하여 현대윤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를 발전시킨 여러 관점, 예를 들어 덕을 실현하는 개인의 실존을 중시하면서 인품의 성취를 추구하는 덕 윤리적 관점이 부각된 바 있다. 이 관점은 보편적 원칙이나 선 일반에 주목하기보다 각 개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24)하면서 관계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이에 유덕한 행위자가 자신의 유덕한 경향성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 행할 수 있는 내용을 잘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이 내용에는 덕을 구성하는 개인의 욕구나 지향성, 관심, 감정 등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성과 형식이 담지 못하는 부분까지 고려한다는 장점이 있다.
덕 윤리의 또 다른 장점은 근대 시민사회가 야기한 원자화, 고립화 및 소외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써 소규모 공동체를 통한 도덕성 회복과 함양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폴리스적 도덕 공동체를 모델로 하여, 덕 윤리학자들은 진실한 성품의 기준을 개인의 삶이 탁월성 고양에 기여하는 정도로써 파악한다.
하지만 이 점은 오늘날과 같이 고도의 익명성이 전제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적용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역과 시대에 따른 공동체간의 차이로 인해 덕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상대주의라는 비판에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
이에 대해 누스바움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공통적 덕들을 전제하면서, ‘한 사회에서 공인된 덕은 그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므로 구성원 모두에게 받아들여지며, 다른 사회에도 유사한 덕들이 있기에 상대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원래의 동일한 덕이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그 위계나 가치만 맥락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25) 그러나 ‘덕의 개념은 동일하지만,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형태만이 달라진다’는 누스바움의 이러한 주장은 이에 상응하는 효과적 설명모델이 제시되지 않는 한, 덕 가치의 상대성에 대한 비판26)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맥킨타이어는 ‘덕윤리가 덕에 대한 도덕적 합의를 도출할 수 없다’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소규모 공동체 구성원의 정체성과 성품의 통일성 및 통합을 강조하는 고전적 덕 이론에 보편성이라는 근대 규범윤리학의 원리를 통합하려고 한다.27) 포터 또한 ‘의무론적 윤리와 덕 윤리의 통합’을 중시한다.28) 나아가 칸트의 의무윤리에 롤스의 정의론을 결합시킨 폴 리쾨르의 윤리관이나, 레비나스의 타자론, 실존주의 윤리학, 해석학, 긍정심리학 등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유효한 모델이 제시될 경우 서구사회에 내재한 개인성ㆍ고립성ㆍ소외 등의 문제에 대한 대안은 상대성을 극복한 덕 윤리에서 해결책을 모색한 누스바움 등의 주장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덕의 개념은 동일하지만 시대와 장소에 따라 형태만 바뀐다’29)는 구상으로 공통적 덕에 대한 인식을 확보하여 상대성의 극복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모델은 ‘도에 근본해서 덕을 이루려고 하는’ 동양의 수행론 전통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근원적 사유에 입각하면서도 관계론적 방식으로 인륜의 보편성과 공공성 실현을 지향하는 대순사상의 수행론은 서구의 양대 규범 윤리학 뿐만 아니라 덕 윤리의 딜레마를 지양하는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누스바움의 이론을 포함한 서구의 덕 윤리는 상대성을 인정하는 목적주의라는 점에서 공리주의와 같은 목적론적 윤리관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보편적 선 개념에서 출발하는 의무론과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누스바움이 추구하는 공통적 덕 개념은 대순사상 속의 덕 이념에 전제되어 있기에, 의무론과도 배치되지 않는다. 대순의 덕 개념은 신도(神道)30)에서부터 출발하여, ‘천덕(天德)ㆍ지덕(地德)ㆍ인덕(人德)의 통합’31)으로 이어져 세 가지 윤리의 요소를 조화롭게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의무론적 윤리와 상통하는 보편적 도(道)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이를 지상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론의 요소를 지니면서도, 도(道)의 실현이 곧 덕(德)으로써의 인간완성과 천지의 완성이라는 법리(法理)를 통해 상대성을 초월한 새로운 덕 윤리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 글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서구 규범 윤리학의 제 범주에 주목하면서, 이와 연관된 대순진리의 윤리적 특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특히 대순진리회 목적 중 하나인 무자기(無自欺) 개념에 나타난 상생 윤리적 함의에 주목할 것이다. 상대적 개인 윤리에만 그치지 않는 이 개념은 그 근원론적ㆍ상생적 특성으로 인해 서구윤리에 대한 보완적 대안 윤리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Ⅲ. 대순사상에서 무자기(無自欺)의 상생적 함의
대순사상에서 무자기란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뜻으로, 『대순진리회요람』에는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모든 죄악의 근원이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되므로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해야 한다”32)는 테제이다. 여기서 무자기의 근원인 천성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이 천성의 회복이 당위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무자기는 천명에 따라 행해야 할 의무가 되고 천성인 양심은 회복해야 할 의무의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
도전 박우당의 훈시에는 ‘본래의 천성인 양심을 회복해야 올바른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근원인 하늘로부터 천명으로 부여받은 양심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의 실천’33)을 의무론적 수행의 근거로 상정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서 또한 물욕에 의해 발동한 사심을 버리고 천성 그대로의 본심을 회복할 것을 당위로써 전제하고 있다.
인성의 본질은 양심인데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을 감행하게 됨이니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34)
여기서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도덕적 정당성의 근거를 찾는 밀의 윤리학에 비해, 대순사상에서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양심의 회복을 당위이자, 올바름의 바탕으로 상정한다.35)
우리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 바로 천지신명(天地神明)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나간다면 그릇된 것이 추호도 생길 수 없다.36)
이에 반해 마음을 속이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아는 행위로, 그릇됨의 원인으로 제시된다. 즉, “거짓을 행하게 되면 잘못된 일이 생기고 이것이 척이 되어 나타나면 앞길을 막게 되어, 가면과 자존의 나를 버리고 해원상생으로 나아가기가 더 어렵게 된다”37)는 설명이다. 이렇듯, 해원상생을 이루기 위해 남을 위하고 배려ㆍ존중하는 상생적 입장에서 무자기가 당위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권익이나 공동체의 합의에 초점을 둔 자연권적 접근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이와 관련하여 무자기는 타인 및 신계(神界)에 대한 앎과 진실성의 토대라는 포괄적 함의를 통해 개인윤리의 차원을 포월한다. 우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진정한 본성의 내가 아닌 가면의 나를 버릴 것이 요구되고, 이로써 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되어 미움이 사라진다는 수순으로 상생 윤리가 기술되어 있다. 즉 자신에게 진실하여 마음이 밝아지면 상대와의 관계에서 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되어 가정화목, 이웃화합으로부터 세계화평으로 확장되어 나아가게 된다는 설명구도이다.
무자기(無自欺)를 수도의 근본으로 하여야 한다.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윤리도덕을 숭상해 나가면 자연히 삼라만상의 움직임을 다 이해하고 풀 수 있는 것이다.38)
부모에게 효도, 친족 간에 우애와 화목, 국가에 충성하는 일이 모두 성ㆍ경ㆍ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외인들에게 지탄받는 일은 절대적으로 없어야 한다.39)
이렇듯, 무자기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심을 버리고 인예의지(仁禮義智)라는 양심을 회복ㆍ견수하려는 인륜적ㆍ관계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로써 공동체 안에서 광의적 맥락에서 인륜 관계 속에 있는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상생윤리를 실천하게 된다. 나아가 의무론에 입각한 상생 관념은 해원상생을 통해 관계적 방식으로 목적론과 연계되는 중층성을 보인다. 그럼 이제 대순사상의 무자기관에 나타난 목적론적 윤리관과 이와 함께 전개되는 중층적 양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대순사상에서는 마음을 ‘신이 용사하는 기관’으로 상정하면서, 천명에 기반을 둔 당위로서의 무자기 뿐만 아니라 도통과 운수를 받기 위한 목적론적 조건의 측면 또한 강조하고 있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은 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고 나아가 하늘을 속이지 않는 것이 되어 결국 우리가 목적하는 바의 운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40)
즉, 서양 윤리학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에 대한 논의가 주로 자연권 사상에 입각해 있는 데 비해, 무자기는 수행론적 관점에서 인간완성(도통)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가면가식, 외면수습으로 하지 말고 진실되게 나아가라.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윤리도덕을 숭상하여 나가면 심신이 맑아지고, 우리의 도통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41)
즉, 개인의 권익이나 행복 증진, 또는 사회적 합의나 일반의지의 기제로서 거짓을 금하는 서양윤리학과 달리, 대순사상에서는 수도의 목적인 도통과 운수를 받기 위한 양심 회복을 요구한다. 여기서 무자기는 목적론적 근거이자 수행의 기본 방법으로 상정된다.
무자기가 수도인의 자세이다. 무자기가 되어야 인간개조가 되는데, 이것을 도통이라 한다. 안 되어 있으면 운수가 없다. 무자기가 근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믿는 것이 아니라 가면(假面)으로 믿는 것이다. 도인의 탈만 썼지 도인이 아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 주위에는 올바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42)
한편 수행론과 관련하여, 목적하는 운수를 받기 위한 목적론적 구도 속에는 ‘거짓을 행하는 것은 옳지 않기에 무자기를 실천해야 한다’는 전제가 당위론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목적하는 바의 운수를 받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란 곧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명시된다.
거짓을 행하게 되면 잘못된 일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척(慼)이 되어 나타나게 되며 이 척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는데, 이 경우 도통(道通) 운수(運數)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다.43)
여기서 무자기는 수도의 완성인 도통을 목적으로 실천해야 할 수행 개념의 토대로 제시된다. 또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는 “거짓이 없는 도인이 될 때 욕심도 사심도 없으며 유리알같이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되어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된다”44)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수행론 맥락에서 도통이라는 목적을 위해 무자기를 실천해야 할 의무가 전제되는 중층성을 보인다. 거짓을 행하거나, 척을 행할 때는 도통 운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전제가 당위론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론의 원칙에 입각해 볼 때 무자기에 내포된 이 두 가지 윤리적 요소의 종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단순한 조합인가? 아니면 두 요소가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된 관계론적 구조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무자기와 관련된 밀의 목적론적 윤리학과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이론의 특성과 한계를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무자기에 나타난 이 두 요소의 결합이 단순한 종합인지, 아니면 밀과 칸트 윤리학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 특성을 지닌 이론인지 한층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 절에서는 서구이론과의 차별성을 통해 상호 긴밀하게 연관된 대순사상의 중층적 요소가 어떻게 덕 윤리적 요소와 연계되어 상생적 특성으로 드러나는지, 신인조화와 해원상생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앞 장에서 밀의 개념은 행복과 쾌락 증진을 선으로 보는 목적론적 개념으로서 그 기반이 공리 증진에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최종판단의 근거가 도덕법칙이나 의무가 아닌 행복과 유용성에 있다는 것은 효용 원리가 선의 기준이 됨을 뜻한다. 즉 ‘행복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선이지만, 촉진하지 않을 경우 아무리 도리에 맞아도 악이 될 수 있다.’45) 따라서 이 목적론적 이론은 자체 충족적이어서 의무론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순사상의 수행론에서 나타나는 목적론적 요소는 도통을 전제로 한 것이면서도 도리라는 준거점을 벗어나지 않는다. 밀의 경우, 전체적 공리가 기준이기에 극단적인 경우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도 가능하다. 반면, 대순사상은 인륜에 기반을 두기에 목적론이라 하더라도 인륜도덕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목적론으로 기능한다. 역으로, 인륜을 행하지 못할 경우 도통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목적은 의무 및 당위론적 윤리를 전제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척을 짓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라는 무자기의 의미는 개인 윤리를 포월하고 있다. 즉, 개인 윤리에서 출발하지만 인예의지신이라는 타인과의 인륜 관계로 확충해야만 목적이 실현되는 관계론적 의존성과 상생 지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품과 도리를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 방식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순의 도덕이론은 상황 윤리를 따르는 밀보다는 정언명령에 입각한 보편적 행위 준칙의 필연성(당위)을 상정하는 칸트의 원칙론과 친연성이 있다. 하늘의 도[天道]인 원형이정(元亨利貞)과 땅의 도[地道]인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보편타당한 우주의 이법(理法)이듯이, 인간에게도 인예의지(仁禮義智)라는 불변의 도가 보편적 원리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칸트의 정언명법은 양심에 기반한 원칙 준수를 이상적 도덕이론의 표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대순사상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양심을 속이지 않는 행위를 강조하는 칸트의 기본취지가 ‘신뢰와 약속을 깨뜨리지 않기 위한 데 있다’46)는 점에서는 밀의 계약론과 그 전제를 공유한다. 더욱이 칸트의 원칙은 신도(神道)를 표방하는 대순사상의 윤리관과 유사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밀과 반대편 극단, 즉 보편법칙의 엄격한 적용을 강조함으로써 특수한 경우, 인륜에 배치되는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47)
특히, 칸트가 정언명법의 표준으로 삼았던 예수의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48)은 본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베품과 배려의 철학이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인과응보의 조건적 원리가 아니다. 따라서 지나친 칸트의 엄격주의는 ‘모든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49)는 인간성 정식의 의도뿐만 아니라, 대순사상에서 무자기의 근본이 되는 인륜도덕과 해원상생의 이념과도 배치될 수 있다.
물론 칸트의 입장은 신뢰와 안전이라는 효용성을 위해 거짓을 정당화할 위험성을 지니는 공리주의에 비해, 그 원칙 기반을 양심과 보편적 규범에 둔다는 점에서 대순사상과 친연성을 지닌다. 대순사상 또한 신도(神道)라는 자연법에 따라 ‘만상만사가 도의 본원으로부터 비롯’50)된 도덕법칙 및 이로써 부여되는 양심에 근거하기 때문이다.51) ‘하늘에 빛나는 별과 마음속에 빛나는 양심(도덕률)’이라는 칸트의 유명한 명제는 선의지(善意志)를 중시하는 이러한 관점을 잘 표현해 준다.52)
마찬가지로 대순사상에서 무자기는 목적이면서도 인륜이라는 당위를 전제함으로써 도리를 실천하는 방법이기에 윤리 이론으로서의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다. 즉, 의무론의 당위와 목적론의 목적을 아우르면서도 인격수양의 맥락에서 신도(神道)에 근원을 둔 수행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덕 윤리의 요소 또한 내포하고 있다. 서구의 규범윤리에 비해, 상생과 조화를 중시하는 상호 포섭적 관계성과 함께 덕의 보편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럼 이제 이러한 규범 윤리학적 제 요소의 중층성을 염두에 두면서, 덕의 보편성과 상황적 요소를 동시에 아우르려고 한 누스바움의 덕 윤리 적용 부분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 대순의 종지(宗旨) 중 신인조화와 해원상생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는 무자기의 상생 윤리적 함의가 한층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IV. 상생윤리와 관련해 본 무자기의 함의
무자기와 관련하여 의무론과 목적론이라는 이율배반적 특성이 어떻게 한 사상 안에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개인과 사회의 권익보호에 방점을 둔 밀과 칸트 윤리학을 보완하기 위해 누스바움이 제시한 바와 같이, ‘동일한 덕이지만 상황맥락에 따라 형태만 변화’한다는 의미에서 근원적ㆍ상생적 입장을 표방하는 대순진리의 덕 윤리 이념이 이기심과 소외의 극복을 위해 한층 효과적인 윤리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53)
이러한 관점에서, 이 장에서는 누스바움의 덕 윤리 모델이 한층 효과적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보이는 대순사상의 상생윤리에 나타난 함의를 무자기와 관련된 종지(宗旨)에 초점을 두고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검토를 위해 ‘동일한 덕’ 부분은 신도(神道)나 신인조화(神人調化)와 관련된 무자기의 상생적 측면에, ‘상황맥락에 따라 변화 가능한 형태’ 부분은 해원상생과 연계된 실천윤리 측면에 중점을 두고 고찰하겠다.54)
대순사상에서 누스바움이 제시하는 동일한 덕이란, ‘무자기가 단순히 자신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하늘 및 신도와 관련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나는 오직 마음만 볼 뿐이다”55)라는 상제의 언명처럼 개인의 마음은 모든 법의 근원인 하늘로부터 부여된 것이고 상제와 천지신명이 수찰하는 것이기에, 인류 모두 신도의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양심을 공유한다는 구상이다.56)
도는 우주 만상의 시원(始源)이며 생성(生成) 변화의 법칙이고, 덕은 곧 인성(人性)의 신맥(新脈)이며, 신맥은 정신의 원동력이므로 이 원동력은 윤리도덕만이 새로운 맥이 될 것이다.57)
과오를 경계하기 위하여 예부터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自欺自棄]이요,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을 속임이다[心欺神棄]”고 하였으니 ‘신을 속이는 것은 곧 하늘을 속임이 되는 것이니, 어느 곳에 용납되겠는가’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58)
“크고 작은 일을 천지의 귀와 신이 살피시니라[大大細細 天地鬼神垂察]” 하셨으니, 도인들은 명심하여 암실기심(暗室欺心)하지 말아야 한다.59)
위의 훈시에서 제시되듯이, 대순사상에서 마음은 신도로부터 누구나 동일하게 부여받은 천성이 깃든 자리이면서, 신이 용사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마음을 속일 경우 신을 속이는 것이 되고, 타인은 모른다 하더라도 하늘은 물론 타인의 신명을 속이는 것이 된다. 나아가 마음을 속일 경우 타인에게 안 좋은 기운이 미치게 되고 급기야 상대에게 부정적 습(習)을 짓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따라서 ‘마음을 속임(自欺)’은 스스로의 양심 문제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 관계된 신명에게도 직ㆍ간접적으로 피해를 미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누스바움이 말하는 ‘동일 원리’는 신도(神道)로써 하늘로부터 동일하게 부여받은 ‘양심을 속이지 않는 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대순사상에서 무자기란 단순히 자신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하늘 및 상대와 관련되는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권익을 보호하는 데 도덕적 정당성의 근거를 찾는 서구 윤리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격을 완성하려는 동양의 수행론 전통에서도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즉, 신인조화라는 독창적 개념에 기반하여, 해원상생의 실천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무자기를 완성해 나가는 유기적ㆍ관계론적 사유인 것이다.60) 이로써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거짓된 언행은 바로 마음속에 영대[心靈神臺]를 지닌 타인을 하늘처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해원상생에 반하는 행위’가 된다.
우리가 수도를 한다는 것은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화합 단결하여 일심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목적도 전부 이 속에 있으며 화합 단결, 일심동체가 됨으로써 도통도 운수도 있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합니다.61)
이렇듯 해원상생을 이루기 위해 남을 위하고 배려ㆍ존중하는 상생적 입장에서 무자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상생윤리는 개인 권리와 공동체의 합의에 토대한 서구 윤리학의 접근과 구별된다. 또 이러한 무자기의 확장 모델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의 원을 풀어 주어 더불어 잘되게 한다’는 해원상생 이념에 입각해 있다. 나아가 이 이념의 실천이 곧 도통진경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유불선의 여타 동양 사상에 비해 한층 적극적인 수행론적 특성을 보인다.62)
물론 무자기에 기반한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론적ㆍ상호의존적 조화 이념은 마음속에 있는 인(仁)의 성품을 확충하여 수신ㆍ제가ㆍ치국ㆍ평천하로 나아가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구도와 상통한다. 또 자신의 수행을 통해 자리(自利)를 이룬 후에 이타행(利他行)을 행한다는 불교의 자비 정신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 척을 짓지 않고 남을 잘되게 하는 행위가 바로 신과의 조화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신까지도 잘되게 하는 윤리라는 점은 동양의 수행론 전통 안에서도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렇듯 신인조화의 사유를 통해 무자기는 인륜 공동체 속에서 인륜을 행하는 대상으로써 ‘남을 진정으로 존중’63)하는 공동체적 함의로 그 외연을 확장하게 된다. 나아가 ‘인간 존중이 곧 신명 공경’이라는 상생 관계의 함의는 자신과 남이 다르지 않다는 측면에서 척을 짓지 않고 남을 잘되게 하는 해원상생을 통해,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道卽我 我卽道)’64)라는 도통진경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럼 이제 누스바움이 제시한 두 번째 부분, 곧 ‘상황맥락에 따라 변화 가능한 덕 윤리’의 측면을 도통을 목적으로 무자기를 실천하는 해원상생의 실천윤리적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대순사상에서 인간완성을 목적으로 무자기에 기반한 상생 윤리의 실천은 척을 짓지 않고 남을 잘되게 하려는 해원상생으로 표현된다. 누스바움이 말하듯, 이 윤리는 상황맥락에 따라 구체적 적용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근본적 덕의 원리는 동일하다. 무자기와 관련하여 박우당 도전의 훈시에 나타난 해원상생의 실천윤리는 다음과 같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서 서로가 신뢰할 것이고, 언덕을 잘 가지므로 화목할 것이며, 척을 짓지 않는 데서 시비가 끊어질 것이고,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데서 배은망덕이 없을 것이며,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 이것이 우리 도의 인존사상이며 바로 평화사상인 것이다.65)
척(慼)이란 남이 나에게 갖는 서운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 서운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화합하고 화목하게 지내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 상호 간에 자기의 도리를 다하면 화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부모는 부모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할 때 가정의 화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히 도인들 사이에 화목하여 화합이 잘 되면 그 기운이 가정을 통하여 사회에까지 미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66)
즉, 해원상생의 실천을 위해서는 서운한 감정인 척을 없애는 데서 출발하여 상호 화합을 통해 그 덕이 사회에까지 미침이 설명되고 있다. 인간완성을 목적으로 하기에, 이러한 상생정신은 ‘인륜을 바로 하고 도덕을 밝혀나가는’ 생활 속의 수도 개념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로써,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륜도덕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무자기의 실천 또한 상생적으로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자기의 확장 모델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의 원을 풀어 주어 더불어 잘되게 한다’는 해원상생의 이념에 기초하여 공공 윤리 차원에까지 이어진다.
종단(宗團)은 구세제민(救世濟民)의 기본 사업(基本事業)을 충실히 실천에 옮기고 무자기(無自欺)로 정신개벽(精神開闢), 인간개조(人間改造)에 정진하여 참다운 대순의 도인상(道人相)을 세워 온 국민의 정신적 사표(精神的師表)로써 존숭(尊崇)되어지는 종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해원상생, 보은상생 하는 의지를 세워나가면서 창생들을 포덕 교화하고 사회를 정화하며 복지 국가 건설에 진심으로 솔선해야 되겠습니다.67)
이렇듯 개인과 사회의 권익보호에 기초한 밀과 칸트 윤리학과 달리, 해원상생의 윤리는 목적론과 관련하여 수도의 완성을 기하려는 수행론적 실천윤리나 생활 수도의 측면으로 제시된다. 수도의 완성을 위해서는 화합을 해야 하기에 상생의 덕 윤리가 전제되는 것이다. 물론 이때 덕의 형태는 상황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덕은 공공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상대성을 포월한다. 이렇듯, 대순사상의 상생적 공공윤리 이념은 개인의 이기심과 소외의 극복을 위해 누스바움이 제시하고자 한 덕 윤리적 요소를 한층 분명하게 드러내는 효과적 윤리관으로 제시될 수 있다.68)
나아가 동일한 신도(神道)에 입각해서 나와 남을 동등하게 고려하는 ‘우리’ 혹은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상생이념을 지닌 대순진리의 관계적ㆍ인륜공동체의 관점이 보강될 경우”,69) 보편법칙ㆍ인간성 및 자율성의 정식에 입각한 정언명법의 정신 또한 서구 윤리에 비해 한층 잘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V. 맺음말
사회계약 및 자연법사상에 기반을 둔 서구 윤리학의 양대 주류인 밀과 칸트의 윤리학은 인간의 욕구와 목적 실현의 관계를 어떻게 상정했는지에 따라 목적론적 윤리학과 의무론적 윤리학으로 나뉜다. 밀은 자기보존 및 이익추구의 욕구를 인정한다. 다만 이를 공동복리와 행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선으로 삼는 목적론적 윤리관이다.70) 공리주의 전통에서 양심의 문제 또한 이러한 권익 보호나 행복증진이라는 유용성의 맥락에서 허용 또는 제한된다.
칸트의 경우, 자연법적 전통에 따라 보편적 자기 입법을 통해 자신의 도덕 원칙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권익 보존 위주의 계약론적 관념보다 한층 진일보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인간성 정식의 경우 타인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 곧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원칙에 따라 양심의 준칙을 정식화했다는 점에서 대순의 인존사상과 상통한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 서구윤리학의 양대 이론은 개인의 권익에 기초한 논의이기에 개체성과 고립성을 드러내는 측면이 있다. 물론 칸트의 경우, 선험적 이성의 근원자리71)로부터 파생된 원칙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대순사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다만 그 원칙 적용의 일관성이나 유연성에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밀의 경우, 목적론적 측면에서는 대순사상과 상통하지만, 계약이나 합의에 근거하여 논의를 전개할 뿐 도덕법칙이나 도리에 대한 논지가 약하다는 면에서 차별성을 갖는다.72)
이렇듯 개인의 욕구나 권익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서구 규범 윤리학에 비해, 대순사상은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길임을 내면화하여 실천하는 상생윤리의 특성을 지닌다.73) ‘타자를 곧 나와 다름없는 식구’로 생각하는 인륜공동체 사상인 것이다.74) 물론 칸트의 경우, 도덕법칙을 내면화하고 ‘서로를 목적으로 대하는 목적의 왕국을 지향’75)한다는 점에서 대순의 무자기 및 지상천국건설 등의 이상을 공유한다. 더욱이 칸트에게서 목적의 왕국은 당위적 이상이면서 현실이라는 점에서 밀의 목적론과는 다르다. 하지만 칸트 또한 도덕성의 기반을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합의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대순사상의 상생윤리적 인륜공동체 개념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한편 대순사상에는 의무론과 목적론의 상호보완적 관계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미에서의 덕 윤리의 중층적 측면, 곧 ‘근원인 신도로부터 부여받은 덕의 실현이라는 절대적 도덕 개념에 기반하면서도 덕의 용사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열린 윤리의 관점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무자기는 양심에 기반하여 일상 자신을 반성하고, 서운한 감정인 척을 짓지 않음으로써 타자와의 화합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해원상생의 보편 윤리적 특성 및 생활윤리적 측면과 각기 연계된다. 또 이러한 중층성 속에는 ‘천지의 중심인 마음(天地中央之心)을 속이지 않음으로써 욕구와 원(冤)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곧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을 회복하여 도성덕립을 지향’76)한다는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인조화 및 도통진경의 보편적 도덕성과 연관되어 있다.
또 열린 윤리라는 관점에서 화합과 조화의 원리인 무자기는 인격 완성을 위해 자신과 남을 존귀하게 여기는 해원상생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또한 인류 공통의 보편적 덕인 양심을 전제로 한다. 즉, 남을 잘되게 하는 해원상생과 신인조화에 입각한 인륜 공동체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근간이면서도, 다양한 실천으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사심을 버리고 천성 그대로의 양심을 회복하여 더불어 잘 되고자 하는 도리의 근원으로서,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77)인 도통진경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무자기에 나타난 윤리학적 특성은 목적론과 의무론 및 덕 윤리학의 요소를 해원상생의 맥락에서 화합시킨 상생과 조화의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무자기의 이상이 보편법칙에 근원한다는 점에서 의무론적 특성을 전제하면서도, 수도의 완성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상의 덕을 추구하기에 목적론과 덕 윤리의 특성을 포괄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자기는 해원상생이라는 종지의 실천 속에서 목적의 왕국인 도통진경을 목표로 하는 인륜도덕의 상생적 실천 기반이자, 천지인신(天地人神)이 각자 도리를 행하여 덕의 완성을 기하는 중층적 윤리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상생적ㆍ관계적 사유는 서구윤리에 비해 이기심과 소외를 극복하는데 한층 효과적인 윤리관으로 제시될 수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무자기의 출발은 양심에 기반하는 것이지만 인예의지의 발현으로써 자연스레 남을 위한 실천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기준이 양심과 인예의지이기에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본성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상생윤리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