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대순사상의 인존(人尊)에 대한 화용론적(話用論的) 해석

백춘현1,*
Choon-hyoun Baek1,*
1제주대학교 강사
1Lecturer, Jeju National University
*E-mail: exporia@daum.net

© Copyright 2021,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Sep 30, 2021 ; Revised: Nov 16, 2021 ; Accepted: Dec 09, 2021

Published Online: Dec 31, 2021

국문요약

인존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순진리회의 고유 사상이다. 지금까지 인존에 대한 종교적, 사상적 해석이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졌음에도 기존의 해석들은 대체로 ‘천지’와 ‘인간’의 관계를 대립적 관계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는 인존의 의미를 상대화함으로써 후천세계가 갖는 대대적 상생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글은 ‘인존’의 의미를 화용론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화용론은 언어의 의미를 언어와 그 지시대상, 그리고 화자의 3중 구조의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담론 철학적 관점이다. 어떤 발화의 의미를 그 의미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발화가 이루어진 시ㆍ공간적 환경뿐만 아니라 그 발화를 구성하는 대화 참여자들의 관계, 장소, 시간, 상태 등 언어행위의 구체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인존에 대한 기존 해석은 의미론적 관점에서 접근한 결과로 나타난다. 의미론적 관점에서는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그 의미가 지시하는 의미대상이다. 이런 관점은 언어 의미의 필증적 이해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써, 이해의 정확을 추구하려 하는 장점은 있으나, 의미해석 범위를 지시대상에만 한정함으로써 언어 의미에 대한 일면적, 단면적 접근에 머무른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 글에서는 의미론적 해석을 넘어 화용론적 관점에서 인존의 의미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연구한다.

대순사상에 따르면, 선천세계는 포원과 상극에 따르는 참혹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서구적 물질문명과 이기심, 배타주의가 지배하는 선천의 세계는 홍수, 가뭄, 역병, 산불 등 갖가지 자연재해에 의해 인간이 고통 받는 세계이다. 이에 반해 후천세계는 선에 따르는 평화와 생명, 풍요의 세계라고 본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극복하고 불로불사하며 상극은 해원되고 상생과 평화, 조화의 세상이 열린다. 번뇌와 질명, 고통과 죽음이 사라지고 빈부와 신분의 차별이 없는 지상 선경의 낙원 세상이다.

대순사상의 인간관은 그 천지관에 따라 구분된다. 선천세계의 인간과 후천세계의 인간은 연속성을 갖는 동시에 구분된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인간개조를 통해 후천세계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특징은 포원과 상극에 지배되는 가사적 존재라는 점이다. 선천의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지 못하는 고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이다. 선천의 인간은 불행하고, 고통에 빠진 죽음의 존재이다.

대순사상은 후천의 인간은 선천의 인간과 다르다고 본다. 후천의 인간은 해원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상생 존재이다. 후천의 인간은 다양한 선천 생명들의 대대적 포월을 통해 나타나는 삼계 생명의 신인격적 존재이다. 후천의 인간은 개체적 유한성을 넘어 생명적 신인격을 대표한다.

대순사상의 인존은 단지 개체적 인간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순사상에서 선천세계는 인류와 신명계로 나누어져 있지만, 개벽을 통한 후천세계에는 이들 세계가 서로 상생한다. 대순사상에서 ‘인존’의 ‘인’은 살아있는 인간생명뿐 아니라 명부생명, 금수생명, 귀신생명, 혼백생명 등 인류와 신명계의 모든 생명이 해원하여 함께 사는 삼계 생명의 신인격을 구상한다.

Abstract

This paper aims at revealing the core concept of Injon (Human Nobility). The concept of Injon is one of the salient fundamental ideas which makes Daesoon Jinrihoe recognizable as Daesoon Jinrihoe. The concept of Injon has the basic meaning of ‘human nobility,’ but within the context wherein the nobility of humankind is considered to be greater than the nobility of Heaven and Earth. Although the religious and ideological interpretations of Injon (human nobility) that have developed over time have been quite diverse and abundant, these interpretations are all limited in that they generally assume the relationship between ‘Heaven and Earth’ and ‘Humanity’ to be antagonistic. However, if human nobility is relativized in that manner, it can reduce the potential broader meanings of mutual beneficence and the earthly paradise of the later world.

These interpretations are grounded in the view of semiotic interpretation. Such interpretations have composed their view point via the semiotic meaning of the words. The semiotic point of view suggests that meanings of words consist in the relation of the word and the object to which it denotes. We will introduce a new view point which can be termed the transcendental view point. This view focuses on how the exact interpretation of words and sentences depends on the comprehension of the triad of systematic relations among the word, object, and speaker.

In the Daesoon Thought, the Former World is considered to be the world wherein all creations unfolded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mutual contention. This led to the accumulation of grievances and grudges which condensed and filled the Three Realms of Heaven, Earth, and Humanity. The Former World was dominated by Western material civilization, selfishness, and exclusivism. It was also a world where humans suffered from various natural disasters such as floods, droughts, plagues, and wildfires. The Former World lost the constant Dao and was overwhelmed with all kinds of disasters and calamities. That world fell into various kinds of wretchedness. The causes which made the Former World so cruel came from humans misunderstanding their relation to nature and life in general; including human life. The anthropocentric modern cosmology insisted that the human race was the only one to have the powers and rights to exercise dominion over nature.

On the other hand, there is the Later World, which means the ideal and perfect, immanent eternal world for all humankind in Daesoon Thought. This world consists of life, peace, and equality and is also characterized by three typical attributes: goodness, peace, and all kinds of life. All living beings previously struggled for survival, but in the Later World, those lifeforms will embrace each other; even across different realms. In Daesoon Thought, the world and cosmos contain diverse forms of life, and human have both an earthly life and life in the after world should they die before the Later World. There are also the lives of divine beings and animals, and other such living entities. Daesoon Thought subsumes pan-vitalism, which allows they acknowledgement of myriad possible lifeforms. The concept of the Later World in Daesoon Thought, which mainly revealed in The Canonical Scripture and the words of Sangje (Kang Jeungsan), suggests that all kinds of life, including humans, animals, and even spirits in the afterworld, can live together in a perfect coming earthly paradise which is immanent.

The concept of Injon can be interpreted though the view of transcendental pragmatics as an alternative to the typical views discussed in Daesoon Thought. Thinkers should attempt to improve current discourse on Injon in Daesoon Thought by focusing on the point that all kinds the original teachings demonstrate a value of all lifeforms. Therein, Injon would indicate not only the human nobility and dignity but also the nobility and dignity of divine beings, divine humans, and all other forms of life that have existed across time. The dimension of time allows for recognition of lifeforms from the Former World, the afterworld, and the Later World. This revised appraisal of Injon could further accommodate denizens of the afterworld, animals, ghosts and spirits, the earth and cloud souls of humans, and other lifeforms held to exist in the cosmology of Daesoon Thought.

Keywords: 인존; 화용론; 천지관; 선천세계 인간; 후천세계 인간; 삼계 생명; 대대적 포월; 생명적 신인격
Keywords: Injon (Human Nobility); transcendental pragmatics; world view; cosmology in Daesoon Thought; humans of the Former world; humans of the Later world; lifeforms in the Three Realms; Dialectical Sublation; divine humans

I. 머리말

이 글은 대순사상의 핵심개념 가운데 하나인 ‘인존(人尊)’의 의미를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적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한다. 화용론은 언어의 의미를 언어와 그 지시대상, 그리고 화자(話者)의 3중 구조의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철학적 관점을 뜻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어떤 발화(發話)의 의미를 그 의미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발화가 이루어진 시ㆍ공간적 환경뿐만 아니라 그 발화를 구성하는 대화 참여자들의 관계, 장소, 시간, 상태 등 언어행위(speech-act)의 구체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맥락적 구성에 대한 선이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발화의 본래적 의미가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화용론의 관점이다.

이 글의 분석 대상은 대순사상의 핵심 개념의 하나인 ‘인존(人尊)’의 의미이다. 대순사상에서 인존은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사상’이자 ‘타 종교와 차별화되는 대순진리회의 고유사상’으로 간주된다.1) 대순사상을 대순사상이게끔 만드는 핵심 개념의 하나인 인존에 대한 해석은 이제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박용철에 따르면, 2016년까지 분석된 인존 해석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는 주로 천존, 지존에 대비되는 인존의 개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인간과 천지의 유기적 관계성에 주목하거나, 인존을 ‘홍익인간’의 인간과 동일시하거나, 대순사상의 ‘도통군자’로 보는 관점, 그리고 ‘인간존엄성’으로 보는 관점 등이 그것들이다.2)

그러나 이제까지의 인존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대체로 의미론(semantics)적 관점에서 접근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의미론적 관점은 기본적으로 언어의 뜻을 대상과 지시의미의 일치 여부에서 찾는다. 의미론적 관점에서 언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그 의미가 지시하는 의미대상이다. 이런 관점은 언어 의미의 필증적(apodictic) 이해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써, 이해의 정확을 추구하려 하는 장점은 있으나, 의미해석 범위를 지시대상에만 한정함으로써 언어 의미에 대한 일면적, 단면적 접근에 머무른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해석은 “인존의 이해의 깊이에 대한 점진적인 진보를 가져왔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3)는 평가를 내리는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론적 접근은 인존의 의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대순사상의 전체 면모를 이해하는 데 걸림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인존의 의미가 대대(待對)적 포월(抱越)을 통한 삼계(三界) 생명적 신인격성(神人格性)을 뜻하는 것임을 밝히려는 목적을 갖는다. 우리는 이를 위하여 화용론적 방법을 통해 대순사상의 천지관, 즉 대순사상의 우주론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후 이 세계관에 입각하여 인간관을 선천의 인간과 후천의 인간으로 나누어 들여다볼 것이다. 이후 후천의 인간이 대대적 해원을 통해 포월된 상생 세계의 생명적 신인격을 표현한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대순사상의 ‘인존’은 단지 실존적 인간의 존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존은 선천세계의 개별적, 현재적 인간의 한계를 넘어 해원을 통해 대대(待對)한 상생 세상의 삼계(三界) 생명적 신인격을 나타낸다.

Ⅱ. 대순사상의 천지관

대순사상이 보는 인간관을 온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순사상의 천지(天地)관4)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순사상은 인간을 우주와 세계 안에 있는 존재로 본다. 인간은 대순사상적 천지(天地) 안에 위치하는 존재이다. 대순사상의 천지관의 특징은 어떠한가?

대순사상은 구천상제이신 강성상제가 대순하신 진리를 종지로 하여 인간개조 정신개벽을 통해 포덕천하 구제창생하여 지상천국 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5) 『전경』에는 구천상제가 삼계개벽을 통해 온 세상의 모든 인류와 생명을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종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6) 대순사상의 종지는 구천상제의 지상 강림이 세상 개벽을 통해 참된 지상천국 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한다.

대순사상의 천지관에 대한 접근은 다양하다. 이미 대순사상 천지관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등장하였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대순사상의 천지관을 특징짓는 두드러진 접근 관점의 하나인 선천과 후천의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순사상의 천지관은 선천세계와 후천세계, 그리고 이 두 세계의 이행 관계로 구성된다.

대순사상의 세계는 공간적으로 볼 때 천ㆍ지ㆍ인 삼계(三界)로 이루어져, 인간계와 신명계(神冥界)를 두루 포괄한다. 상제의 삼계 공사는 논리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대순사상의 전 세계에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천지개벽 공사를 통한 세계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전경』에는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이니라.”7)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삼계공사의 의미의 한 단면을 찾아낼 수 있다. 삼계공사를 함에 있어서 우선해야 할 일은 선천세계 인간들의 해원(解冤)이다. 선천세계 인간들의 해원이 일어난다면 선천세계의 도수를 바로잡는 일이 뒤따른다. 해원 이후 상생 세상이 열릴 것이다.8)

대순사상의 천지관에 따라 볼 때, 이때 상제가 바로잡는 선천의 도수는 천계(天界)와 지계(地界), 인계(人界)의 도수를 아우르는 의미로 해석된다. 상제는 도수를 굳건히 하면 인사(人事)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경』은 천계와 지계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롭게 바로 잡으면 인계(人界)의 도수는 저절로 바로잡히게 되고 바로 이것이 후천세계를 여는 상제의 개벽공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대순사상이 보는 선천세계의 첫째 특징은 참혹(慘酷)이다.9) 세상이 비참하고 끔찍하다는 것이다. 이 참혹은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사멸에 이르도록 만든다.10) 상제는 이를 ‘사람을 죽이는 공사’로 지칭한다.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 이후에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못하면 안 되느니라.”11)는 상제의 말씀은 선천세계의 참혹이 궁극으로 사람과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전경』은 선천세계 참혹의 원인을 서구 물질문명이 자연 정복적 세계관에 치우친 데서 찾는다. 서구의 물신(物神)적 정복주의가 도(道)의 근원을 끊어버려 마침내 선천이 참혹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상제는 “그[서양]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12)라고 말씀하신다. 서구 근대문명의 자연정복적 세계관이 물신주의와 결부되어 문명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말씀이다.

서구의 자연정복적 물신주의는 크리스트교적 자연관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화이트(L. White)는 “유대 그리스도교적 전통이 인간을 온갖 창조물의 군주 자리에 앉혀 놓고 자연을 모독하게 하는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으며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창세기 1장 28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을 만들어 자연을 무제한으로 약탈하고 훼손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말한다.13) 화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적 우주관(anthropocentric cosmology)은 자연과 생명을 지배하고 정복할 수 있는 전권(全權)을 가진 존재로 인간을 상정한다. 더 나아가 근대 이후 발달한 서구적 기계 문명은 이런 인간의 특권적 지위를 더욱 확대, 강화하여 자연에 대한 유일한 지배자로서 인간을 설정한다.14)

『전경』에 따르면, 물질에 치우쳐 인류의 교만을 조장한 물신적 서구문명은 천리를 흔들게 되었다. 천리가 흔들렸다는 것은 천도와 지도, 더 나아가 인사의 도리가 흔들렸다는 뜻이다. 선천세계의 참혹은 세상이 상도(常道)를 잃었기 때문이다. 천지가 상도를 잃게 되면 갖가지 재화(災禍)가 일어나고 세상은 상극에 지배되어 원한이 쌓이고 맺히게 된다. 선천의 삼계는 이런 원한이 가득한 세계이다.15)

대순사상이 보는 선천세계의 둘째 특징은 포원(抱冤)에 따른 상극(相克) 세상이라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상극은 상대를 방해하고 상처를 입히며 억누르고 제압하려는 힘을 특징으로 한다. 상극에도 긍정적 순기능이 있기는 하다. 오행(五行) 사상에 보면 상극이 상대의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한다는 의미가 나타난다. 그러나 『전경』에 나타난 상극의 용례는 순기능보다는 상극의 위험과 위협에 초점을 맞춘다. 『전경』에는 상극의 용례가 6번 나타난다. 공사 1장 3절,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는 말씀을 비롯하여, 교법 3장 6절, “하늘도 노천(老天)과 명천(明天)의 시비가 있으며 땅도 후박의 시비가 있고 날도 수한의 시비가 있으며 바람도 순역의 시비가 있고 때도 한서의 시비가 있으나 오직 성수는 시비와 상극이 없나니라.”는 말씀이 보인다. 또한 교법 3장 34절16)이나, 예시 6절, 8절, 10절에 상극에 대한 용례가 나온다.17) 그런데 이들 용례의 특징은 상극의 용례가 대체로 갈등과 대립의 지배 원리로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예시 8절에서는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여 원한이 세상에 쌓이고, 이에 따라 천지인 삼계가 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쌓이게 되었다고 한 말씀이 그 대표이다. 이는 선천세계가 포원에 따른 상극 세상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대순사상이 보는 선천세계의 셋째 특징은 선천세계가 근본적으로 무너져야 할 낡은 세계라고 보는 점이다. 대순사상은 선천세계는 위태롭고 위험하다고 본다.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그것을 비유컨대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18)는 말씀은 구질서(ancient regime)가 근본적으로 혁신되어야 할 낡은 세계임을 보여준다. 후천 세계는 낡은 집을 수리하여 고쳐 사는 것이 아니라 몽땅 허물어 무너뜨리고 새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후천세계는 선천세계를 혁신하여 건설한 새로운 세상이다. 대순사상은 이 과정을 ‘개벽(開闢)’이라고 부른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이행하는 절차적 측면에서 보자면 개벽은 단절을 전제하는 창조적 혁신을 말한다. 한자어 ‘개벽(開闢)’은 ‘하늘을 열고(開) 땅을 연다(闢)’는 뜻이다. 선천세계는 개벽되어야 할 세상이다.

선천세계가 참혹과 상극, 낡은 질서라는 특징을 갖는다면, 이에 대비되는 후천세계의 특징은 무엇인가? 대순사상이 바라보는 후천세계의 특징 또한 다양하다. 여기에서는 후천세계의 특징을 선(善)과 상생, 그리고 평화와 평등에서 찾고자 한다.

후천세계의 첫째 특징은 선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라는 점이다. 후천세계는 모든 생명이 평등하고 평화로우며 서로 해침이 없고 풍요롭고 번영하는 선(善)의 세계이다. 상제는 “지난 선천 영웅시대는 죄로써 먹고 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는 선으로써 먹고 살리니 죄로써 먹고 사는 것이 장구하랴, 선으로써 먹고 사는 것이 장구하랴.”19)고 묻는다. 선으로 먹고 사는 것이 영원함을 입증하는 말씀이다. 후천의 세계는 죄(罪)에서 벗어나 선(善)으로 먹고 산다.

후천세계의 둘째 특징은 상생적 생명이다. 후천세계 인간들은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며 불로불사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죽음은 전통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상황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고 바로 그런 면에서 무력했다. 모든 인간적 권세와 영광, 부와 명예는 죽음 앞에서는 허망했다. 이에 반해 대순사상은 인간이 쉽게 죽음에 붙잡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본다. 후천의 인간은 늙어서 죽는 일이 없다. 『전경』은 이렇게 전한다.

후천에는 또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없고 마음대로 왕래하고 하늘이 낮아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뜻대로 되며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하고 세상에 수ㆍ화ㆍ풍(水火風)의 삼재가 없어져서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으로 화하리라.20)

후천세계의 셋째 특징은 평등(平等)이다. 『전경』은 후천세계에서 모든 존재가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는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한다. “후천에서는 그 닦은 바에 따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리니 이것으로써 예부터 내려오는 남존여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는 교법 1장 68절은 조선 후기 사회적 격변기라는 시대 상황에 비추어보면 대단히 혁명적 주장이다. 밖으로는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조선 침략과 안으로는 부패하고 무능한 유교적 관료주의가 지배하고 있었을 때 남녀, 반상(班常) 평등 주장은 혁명적이었다.

남녀, 계급 간 평등뿐만 아니라 『전경』은 후천세계에서 생명의 사회적, 경제적, 인격적 평등이 이루어질 것을 말하였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후천에서는 약한 자가 도움을 얻으며 병든 자가 일어나며 천한 자가 높아지며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을 것이요 강하고 부하고 귀하고 지혜로운 자는 다 스스로 깎일지라’고 이르셨도다.”21)라는 말씀을 전한다. 천한 자가 높아진다는 것은 단지 반상의 차별이 없어진다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존중받는다는 인격적 평등의 개념을 포함한다. 어리석은 자는 지혜를 얻어 지혜로운 자가 된다. 인간은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인격적, 지적으로 평등한 존재가 된다면 지혜로움의 두드러짐은 사라진다. 차별과 차이, 치우침과 요철이 사라진다면 평탄과 균형, 조화와 평등이 남는다. 이런 후천세계는 또한 평화와 풍요의 세계이기도 하다. “후천에서는 종자를 한 번 심으면 해마다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 추수하게 되고 땅도 가꾸지 않아도 옥토가 되리라.”22)고 『전경』은 전하고 있다.

후천세계는 생명과 선의 세계이고 상생과 평등, 풍요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명과 선, 평등, 상생과 풍요는 오직 인간만의 전유물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전경』은 후천세계는 인간만의 독점적이고 배타적 세계가 아님을 증언한다. 해원을 통한 후천세계는 모든 생명 존재의 세계이기도 하다. 『전경』에는 새와 짐승들이 상제에게 해원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23) 상제가 대원사에서 천지공사의 공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실 때의 장면은 해원을 통한 후천세계가 단지 인간만의 전유가 아님을 증언한다. 상제가 보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갑자기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24) 하였다. 『전경』은 이를 보시고 상제께서 “‘너희 무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 함인가’ 하시니 금수들이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숙이는도다. 상제께서 ‘알았으니 물러들 가 있거라’고 타이르시니 수많은 금수들이 그 이르심을 좇는도다.”고 전한다.25) 후천의 해원 세계는 인간뿐 아니라 새와 짐승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에게 열려 있는 세계임을 『전경』은 증언한다.

Ⅲ. 선천의 인간과 후천의 인간

대순사상에 나타난 ‘인존’의 의미를 좀 더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순사상에서 보는 ‘인간’의 이해이다. 인존이 일차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의미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대순사상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대순사상의 인간에 대한 분석 역시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 글은 그러한 대순사상의 인간 이해에 바탕 한다.26) 다만, 이 글은 논의의 편의를 위해 대순사상의 인간 이해를 『전경』에 나타난 인간 이해로 한정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명사 ‘인간(人間)’의 의미는 크게 4가지이다.27) ‘인간’은 “(1)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즉 사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등의 용례가 있다. 이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이다. 두 번째 의미는 “(2) 사람이 사는 세상”을 뜻한다. 소설가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에는 “할머님은 옥황상제의 분부를 받아 한 손에 번성 꽃, 한 손에 환생 꽃 들고 인간에 내려와 하루 천 명 잉태 주고, 하루 만 명 환생 주는 생불왕(生佛王)이었다.”는 문장이 나온다. 여기에서 인간은 ‘인간세(人間世)’의 준말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이 용법은 사람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살고 있는 시공간(時空間)’을 의미한다. 인간의 셋째 의미는 (3)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 즉 사람”을 뜻한다. 예를 들어, “또 사고 쳤어? 너 언제 인간 될래?” 등의 용례가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의미는 (4) “마음에 달갑지 않거나 마땅치 않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한다. “이 인간이 글쎄 또 사고를 쳤어, 그 인간하고는 상대도 하기 싫다.” 등의 용례가 있다.

첫째 의미로 ‘사람’ 그 자신을 뜻하는 용법의 인간은 근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따르면, ‘사람’을 의미하는 ‘인간(人間) (1)’의 용례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근대 이전까지 사람을 뜻하는 말은 ‘인간’이 아니라 ‘인(人)’이었다.

대순사상의 경전인 『전경』과 도전님의 훈시를 엮은 『대순지침』에는 ‘인간’의 용례가 각각 6번씩 총 12차례 나온다.28) 『전경』에 나오는 인간의 용례 가운데 교운 2장 15절의 말씀과 32절의 말씀은 도전님의 말씀으로 명사 ‘인간’의 의미 (1)에 해당한다. 이 의미는 『대순지침』의 용례에서 일관적으로 확인된다.

『전경』에 나타난 인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전경』에는 ‘인간’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먼저 공사 1장 3절의 예는 ‘인간’의 의미가 중의(重義)적으로 쓰인 사례로 보인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

상제는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다고 말씀하신다. 이때 ‘인간 사물’의 의미는 ‘인간과 사물’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이때 인간은 ‘천지인(天地人) 3계(界)’를 대표하는 (2)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전경』에 나타난 상제의 화법이 실로 중의적 표현을 즐겨 쓰셨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말씀에서도 중의적 표현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중의적 표현은 교법 1장 54절에서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나니라.”는 말씀에는 천상 싸움과 인간 싸움이 대비되어 있다. 천상 싸움에 대비되는 인간 싸움은 인간 개개인, 혹은 무리들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싸움’의 의미로 보는 것이 좀 더 합당할 것이다. 상제는 선천에서의 싸움을 천상 싸움과 인간 싸움으로 나누어 ‘상극(相克)’으로 인한 싸움의 피해를 강조하려 하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교법 2장 4절에 나타난 용례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는 말씀에서 ‘일심을 가진 자’는 사람뿐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 즉 인간, 동물, 식물, 사물 등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호소력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전경』에 나타난 공사 3장 4절의 용례는 명백히 사전적 의미 (1)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상제께서 七월에 「예로부터 쌓인 원을 풀고 원에 인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리라.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 기록의 시작이고 원(冤)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해원공사를 행하여야 되느니라」고 하셨도다.

상제는 “원의 종자가 ㆍㆍㆍ 천지에 가득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천지와 인간이 서로 대비되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인간은 ‘천지 안에 살고 있는 인간 존재, 즉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나타난 (1)의 의미이다.

대순사상은 천지(天地)와 인간의 관계를 상호지향적 대대(對待)관계라고 본다.29) 여기에서 천지는 “인간이 인식하여야 할 대상으로서의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볼 수 있으며 인간은 “천지 만물이 생명성을 지니게 하는 근거”로서의 신명(神明)을 정신적 배경으로 하는 실체이다. 대순사상은 이런 면에서 천지와 인간의 관계를 ‘대상으로서의 세계 전체’와 ‘생명의 근거로서의 신명’으로 구분하여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구분이 물질과 정신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서구 근대 이분법적 사고와는 구별해야 한다. 대순사상의 인간관은 정신과 물질을 존재론적으로 분할한 데카르트(Descartes)적 이분법과는 명백히 다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정신은 ‘사유실체(res cogitans)’로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없다. 정신은 오직 사유하는 본성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반면 물질은 ‘연장실체(res extensa)’로서 오직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에 따르면 정신과 물질은 공유불가능한 다른 세계에 속하는 배타적, 독립적 실체가 된다.30)

정신과 물질을 서로 만날 수 없는 배타적 타자(他者) 관계로 간주한 서구 근대적 사유와 달리, 대순사상은 정신과 물질이 상호 지향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며 상승(上昇)적 대대관계로 본다.

일의 마땅함과 왕성함은 하늘과 땅에 있지, 사람에게 있지 않다. 그렇지만 사람이 없으면 하늘도 땅도 없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사람을 낳고 사람을 쓴다. 사람이 태어나 하늘과 땅이 사람을 쓸 때에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으리오.31)

천지는 사람을 낳고 사람을 쓴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없다. 천지는 사람이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존재 근거(raison d’être)이며, 또한 사람은 천지를 천지로 인식할 수 있는 사실 근거(raison du fait)이다. 사람과 천지는 상호지향하며 상생 상응하는 변증(dialectic)적32) 대대(對待) 관계를 이룬다.

이런 천지와 인간의 관계는 개벽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다시 말해, 선천 세계에서 성립하는 인간관은 후천 세계에는 어떻게 지속되고 어떻게 달라지는가? 선천 세계의 인간관과 후천 세계의 인간관의 관계는 대순 사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만약 선천 세계의 인간이 개벽을 통해 들어서는 후천 세계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는 인간 이해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 두 세계의 존재적 연속성이 문제된다. 선천 세계와 후천 세계는 완전히 단절된 이질적 두 세계가 아니라 공간적, 시간적, 존재적으로 관계있는 세계라고 대순사상은 보기 때문이다. 개벽은 물리적 세계뿐만 아니라 실존적 인간에게도 일어나는 현재적 사건이다. 대순사상은 인간의 정신개벽을 통한 인간 개조를 목적한다.33) 이런 대순사상에서 개벽을 통한 인간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전경』에 나타난 상제의 천지공사를 살펴보면, 상제는 선천의 인간과 후천의 인간을 포괄적으로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천의 인간과 후천의 인간은 서로 이어져 있으면서 또한 차별이 있다. 선천의 인간과 후천의 인간은 변증적 대대관계로 승화된다. 『전경』에는 선천 세계 인간과 후천 세계 인간의 양태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다양한 인간 양태에서 우리는 몇 가지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먼저, 선천세계의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죽음’의 존재라는 점이다. 모든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가사성(可死性, mortality)’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삶의 절대적 한계로 여겨져 왔다. 인간은 하루살이와 같이 허망하고 덧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늘 죽음을 넘어서고 질병을 극복하는 존재이기를 소망했다는 것이 인류의 공통 소망이었다. 대순사상도 선천의 인간이 가사적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흥해의 부친은 본래 성질이 사나워서 부중 사람들로부터 천둥의 별명을 얻었느니라. 그는 손자의 죽음에 분통이 나서 상제를 원망하니라. 「이것은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이 분명하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며 아무리 위독한 병이라도 말 한 마디로 고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도다. 내 손자를 고의로 죽이지 않았다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신통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으리라.」34)

갑진(甲辰)년 정월 보름, 장흥해의 아버지, 곧 장효순이 곤히 주무시는 상제를 깨웠다. 손자가 죽어가고 있으니 제발 살려달라는 이야기에 상제는 ‘냉수를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효순은 앓는 손자에게 냉수를 먹었으나 곧 손자가 죽고 말았다. 본래 성질이 급한 효순은 이를 상제 탓으로 돌리며 패악을 부린다.

우리는 여기에서 장효순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효순은 상제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며 아무리 위독한 병이라도 말 한 마디로 고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말한다. 상제가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음을 장효순은 증명하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죽음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과도기적 사건으로 나타난다. 죽음과 삶은 단절적이고 비가역적 사건이 아니라 연속적이고 가역적이다. 죽음과 삶의 구별은 상대적이다.

상제께서 동곡에 머무실 때 그 동리의 주막집 주인 김 사명(金士明)은 그의 아들 성옥(成玉)이 급병으로 죽은 것을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도저히 살 가망이 보이지 않자 아이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업고 동곡 약방으로 찾아왔도다. 상제께서 미리 아시고 「약방의 운이 비색하여 죽은 자를 업고 오는도다」고 말씀하시니라. 성옥의 모는 시체를 상제 앞에 눕히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려주시기를 애원하므로 상제께서 웃으시며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히고 배를 밀어 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미수(眉叟)를 시켜 우암(尤菴)을 불러라」고 외치고 침을 흘려 죽은 아이의 입에 넣어 주시니 그 아이는 곧 항문으로부터 시추물을 쏟고 소리를 치며 깨어나니라. 그리고 그 아이는 미음을 받아 마시고 나서 걸어서 제 집으로 돌아가니라.35)

성옥은 급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버지도 포기한 아들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업고 상제께 찾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살려주기를 애원한다. 이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한 상제는 아이에게 침을 흘려 생명을 되돌린다. 아이는 걸어서 제 집으로 돌아갔다.

대순사상에 나타난 선천세계 인간의 두 번째 특징은 선천세계 인간들의 삶의 지배 원리가 ‘원(冤)’이라는 점이다. 원은 원통하고 억울함을 뜻한다. 원이 지배하는 삶은 원과 원이 부딪혀서 상극(相克)의 한을 맺게 된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원에 사로잡혀 상극의 세계에 산다.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다고 『전경』은 전한다.36) 원과 상극은 천지인 삼계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하늘의 질서와 땅의 질서, 인간의 질서가 모두 무너지게 되면 폭우, 태풍, 홍수, 질병, 가뭄 등 온갖 이변 현상들이 나타난다. 이런 이변은 곧 인간사회의 가난, 재화, 역병 등 갖가지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런 현상들은 세상을 참혹하게 만든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pandemic) 현상을 일으킨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경우를 우리는 그 예로 들 수 있다. 지난 2019년에 처음 발생한 이 바이러스 질병은 유전자 알엔에이(RNA)기반 바이러스로서 인류가 커다란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인류가 이전에 겪었던 다른 질병들37)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을 가져왔다.

이 뿐만 아니라 최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기상 이변도 매우 심각하다. 2021년 8월 23일자 아시아 경제 보도에 따르면, 지구 곳곳에서 홍수, 폭염, 산불 등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뉴욕에서는 하루 강수량 최고기록이 깨졌으며 미국 테네시 주에서는 폭우 때문에 최소 2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뿐만 아니라 유럽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에서는 낮 최고 기온이 섭씨 48.8도까지 치솟았고, 터키와 그리스, 키프로스 등 다른 남유럽 국가에서도 기록적 폭염과 산불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38)

대순사상에서 보는 선천세계 인간의 세 번째 특징은 시ㆍ공간적 유한성(有限性)이다. 선천세계 인간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유한한 개체로 외롭게 살고 있다. 『전경』에서 선천세계의 인간을 명확하게 규정한 구절을 쉽게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상제의 일화를 통해 대순사상에서 선천세계의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상제께서 구릿골을 떠나 익산(益山)에 이르시고 그곳에서 월여를 보내시다가 다시 회선동(會仙洞)에 이르시니라. 이곳에 김 보경(金甫京)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 외당에 상제께서 계셨도다. 이때 그는 모친의 위독함을 상제께 아뢰니라. 이를 들으시고 상제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오늘 밤은 명부사자(冥府使者)가 병실에 침입하여 나의 사자의 빈틈을 타서 환자를 해할 것이니 병실을 비우지 말고 꼭 한 사람이 방을 지키면서 밤을 새우라」 하시니라. 보경이 이르심을 좇아 가족 한 사람씩 교대로 잠자지 않고 밤을 새우기로 하고 가족들을 단속하였느니라. 여러 날이 계속되매 식구들이 졸음에 못 이겨 상제의 이르심을 잊어 갔도다. 이날 밤 보경이 깨어 방을 지키다가 깜박 잠에 빠졌던바 이때 상제께서 외당에서 급히 소리쳐 부르시니라. 그가 놀라 깨어 보니 벌써 모친은 운명하여 있었도다. 상제께서 말씀하신 나의 사자는 바로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을 가리키신 것이로되 식구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도다.39)

보경의 가족들은 교대로 잠자지 않고 병자를 간호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런 간호가 여러 날 계속되다보니 점차 인간적 약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상제는 사람들을 사자(使者)로 써서 명부사자를 막으려고 하였으나 피로와 허기, 타성이라는 시공간적 유한성에 매인 인간은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밤을 새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밤을 새워도 그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고립되고 유한하며 약하고 무지한 존재이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상제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또 알아들어도 이를 제대로 준수하지 못한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약하디약한, ‘죽어가는 사람’40)일 뿐이다.

대순사상에 나타난 후천 세계 인간의 첫째 특징은 ‘생명’이다. 『전경』에는 “후천에는 사람마다 불로불사하여 장생을 얻으며 궤합을 열면 옷과 밥이 나오며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리라.”라고 분명하게 밝혀놓았다.

후천세계 인간의 생명은 단지 독립된 개인에게 국한된 한정적 생명이 아니다. 개별적 독립 생명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서 살아가는 생명 일반(vita communis)이다. 이 생명 일반은 그 자체로 연속성을 유지하며 또한 동시에 개체성을 보존한다.

장 성원(張成遠)은 대흥리에 살면서 주막을 업으로 삼는 자인데 그의 아기가 낮에 잘 있다가도 밤이 되면 신열과 해소로 잠을 자지 못하고 몇 달을 보냈도다. 성원이 아기를 안고서 상제를 뵙고 치료를 애원하니라. 상제께서 불쌍히 여겨 아기를 보시고 성원에게 「비별(飛鼈)이니 낮이면 나와 놀고 밤이면 들어와 자니라. 불가불 다른 곳으로 옮겨야 나을 것인바 산으로 옮기려 하나 금수도 또한 생명이요 바다로 옮기려 하나 어류도 또한 생명이니 부득이 전선으로 옮겨야 하리라. 전선 두어 자를 구하여 와서 그것을 앓는 아기의 머리 위에 놓았다가 전주 밑에 버리라」고 이르시니라. 성원이 명하신 대로 시행하니 아기는 밤에 잠자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 신열과 해솟병에서 제생되었도다.41)

상제는 아기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비별을 옮기려 하나 옮길 곳이 마땅찮다. 비별이 아기 안에 들어가면 신열과 해소로 잠을 자지 못하고 아기 밖으로 나가면 건강해진다. 아기를 낫게 하려면 비별을 없애거나 쫓아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비별을 없애기가 어렵기에 어쩔 수 없이 달리 있을 곳을 마련해야 하는데 금수도 생명이고 어류도 생명이라서 산으로도 바다로도 옮길 수 없다. 상제는 생명이 아닌 전선 토막에 비별을 옮긴다. 『전경』에는 이런 생명존중 사상이 곳곳에 나타난다. 대순사상은 어떤 생명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이를 소중하게 여긴다. 후천세계 인간의 첫째 특징은 영원한 생명성이다.

후천세계 인간의 둘째 특징은 해원(解冤)의 원리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해원의 원리는 화해의 원리이자 상생(相生)의 원리이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서로 화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생적 실천목표를 세우는 길이다.

대순사상은 개벽을 통해 이루어진 후천세계는 상생과 해원의 세계임을 확신한다. 대순사상에서 보는 후천세계 인간의 둘째 특징은 해원의 인간관이라는 점이다. 『전경』에는 이런 해원에 대한 종도들의 생생한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상제께서 종도와 함께 계실 때 김 광찬에게 「네가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아느냐」고 물으시니 그가 「촌 양반으로 아나이다」고 대답하니라. 다시 상제께서 물으시기를 「촌 양반은 너를 어떠한 사람이라 할 것이냐.」 광찬이 여쭈니라. 「읍내 아전이라 할 것이외다.」 그의 말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촌 양반은 읍내의 아전을 아전놈이라 하고 아전은 촌 양반을 촌 양반놈이라 하나니 나와 네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해원하리라」 하셨도다.42)

상제는 아전 김광찬에게 자신이 누구냐고 묻는다. 광찬은 상제가 어려워 차마 평소 부르던 명칭으로 부르지 못한다. 상제가 없을 때에는 상제를 촌 양반놈이라 부른다는 걸 상제는 알고 있다. 이는 광찬이 아직 상제에게 원(冤)을 가지고 있어 원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원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상제는 자신을 빗대어 이를 대변한다. 원을 풀어가는 화해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원을 그대로 드러내어 보이고, 이를 바탕으로 화해를 한다면 세상은 상생할 수 있을 것임을 상제는 보여준다. 아전과 양반이 화해하는 사건은 일회적이고 단발적 사건이 아니다. 이는 세상의 이치를 바꾸는 사건이다. 온 천하가 모두 해원할 수 있음을 『전경』은 기록한다.

대순사상에서 보는 후천세계 인간의 셋째 특징은 ‘유한(有限)한 무한자(無限者)’라는 점이다. 후천세계 인간은 개체적 유한을 지니고 있다. 물론, 선천세계 인간도 개체적 유한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선천세계 인간은 고립되고 유한하며 약하고 무지하다. 이런 특징은 선천세계 인간의 유한이다. 후천세계 인간의 유한은 선천세계 인간의 개체적 유한과 다르다. 후천세계 인간은 개체적 유한을 넘어 생명적 무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은 그의 주저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에서 이미 유한한 무한자로서 생명 일반에 대한 가능성을 피력하였다. 생명 철학자 베르그손은 “자연 안에는 절대적으로 구분된 개체가 존재하지 않는다.”43)고 주장한다. “우주 전체, 그리고 살아있는 유기적 개체는 오로지 지속(durée)을 특징으로 하며 그것(우주와 유기체)의 과거 전체가 현재 속에 연장되어 현재화되고 작용하고 있다.”44)는 것이다. 개체는 전체 속에 연결되어 있다. 생명적 개체는 그 자체로 고립되어 있지 않고 모든 생명은 근원적 유대를 형성한다. 베르그손은 “(하나의) 생명은 생명 전체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45)고 말한다. 모든 생명은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의 연장선에서 개체는 개체로서 작용한다. 개체는 모든 생명, 더 나아가 전 우주의 모든 생명이 상호침투하며 수렴하는 첨단(尖端)일 뿐이다. 하나의 생명은 모든 다른 생명을 대표한다. 이 점에서 생명은 “다수적 하나(unité multiple)이자, 하나인 다수(multiplicité une)”46)이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생명은 하나인 동시에 여럿이며, 여럿인 동시에 하나이다.

후천세계의 인간은 고립되고 유한한 개체적 존재성을 넘어선다. 후천세계 인간은 해원을 통해 상극을 넘어선 상생의 존재이다. 이런 후천세계 인간은 자기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과 생명의 이익을 나누며 공존하는 공생적 존재이다. 후천세계 인간은 상생(相生)적 생명성을 보존한다.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갑자기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 함인가」 하시니 금수들이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숙이는도다. 상제께서 「알았으니 물러들 가 있거라」고 타이르시니 수많은 금수들이 그 이르심을 좇는도다.47)

대순사상은 후천세계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짐승,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이 함께 상생한다는 점을 신념한다.48) 새와 각종 짐승, 더 나아가 모든 천지 신명들이 상생하며 화합하는 세상이 개벽 세상이다. 후천세계의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대순사상은 이런 후천세계의 인간을 ‘신선’이라고 부른다. “나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두라. 후일 내가 출세할 때에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예로부터 신선을 말로만 전하고 본 사람이 없느니라.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내가 장차 열석 자의 몸으로 오리라.”49) 라고 한 상제의 말씀을 통해 대순사상은 후천세계의 인간은 누구나 신선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신념한다.

Ⅳ. 삼계 생명의 신인격성(神人格性)으로서의 인존

대순사상에서 인존 사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는 대순사상의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50) 그러나 인존의 ‘인’을 개별적, 일반적 의미의 ‘인간’으로 국한하여 해석한다면 이는 몇 가지 난점(難點)을 만들어 낸다. 먼저, 삼계 개벽 공사의 의미가 위축될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삼계개벽 공사는 천계, 지계, 인간계를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근본적이며 개벽이다. 대순사상의 개벽은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51)으로 온 우주에 걸쳐 전무후무하고 유일한 사건이다. 천지개벽은 물론, 인간개벽이 이루어지는 온전한 사건에서 인간이 선천세계와 마찬가지로 개체적, 개별적, 고립적 존재로 남아 있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삼계개벽의 의미를 위축시킬 수 있다.

둘째, 후천세계 인간의 이상적 모습인 지상신선(地上神仙)의 위격을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지상신선은 신선이라는 점에서 신성(神性)을 지닌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지상신선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성(人性)을 유지해야 한다. 지상신선은 신성의 보편성과 동시에 인성의 개체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상신선’과 인존의 ‘인’은 어떤 관계인가? 개벽을 통한 후천세계에서 이 두 신인격의 관계 정립이 요구된다.

셋째, 대순사상은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전경』 곳곳에 나타난 기록은 대순사상이 인간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존귀하게 여긴다는 점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대순사상은 살아있는 인간 및 금수 생명뿐 아니라 명부(冥府) 생명, 신명(神明) 생명 등 여러 양태의 생명을 인정한다. 이런 다양한 양태의 생명들에 있어 개벽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선천세계의 다양한 생명 양태들은 후천세계에 개벽할 때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가? 금수는 금수의 생명으로, 새는 새의 생명으로, 귀(鬼)는 귀의 생명으로, 백(魄)은 백의 생명으로 그 양태를 유지하는가, 아니면 이 다양한 생명 양태들도 선경의 낙원에서 불사의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가?

『전경』에는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제는 인존시대”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선천의 세계는 천존의 세상이고 지존의 세상이나, 후천의 세계는 인존의 세상이다.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선천의 세계는 원(冤)을 짓고 대립과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는 세계이다. 선천의 세계에서 하늘과 땅의 이분 구조의 정치, 사회적 의미는 지배와 피지배의 수직적 상하 질서로 해석될 수 있다.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정복하고 억압하려 한다. 이때 피지배계급이 스스로를 세워 지배계급이 되려 하면 대립과 갈등이 생기고 투쟁과 싸움이 일어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조선은 분열과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히던 시대였다. 지배세력은 지배세력대로, 피지배 세력은 피지배 세력대로 분열하고 갈등하며 충돌하고 세를 키우려던 시대였다.

대순사상은 이런 시대적 위기를 인존 선언을 통해 해결한다. 인존은 천존과 지존을 포괄하여 넘어서는 생명적 인존이다.

일의 마땅함과 왕성함은 하늘과 땅에 있지, 사람에게 있지 않다. 그렇지만 사람이 없으면 하늘도 땅도 없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사람을 낳고 사람을 쓴다. 사람이 태어나 하늘과 땅이 사람을 쓸 때에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으리오.52)

일의 마땅함(當)을 정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다. 조선 후기,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미래 세계의 명운을 걸고 힘을 겨루고 있었다. 이 겨룸은 작열(灼熱)하는 태양처럼 뜨겁고 폭발적이며 거대하다. 천지의 일은 우주적, 역사적 미래를 건 일대 사건이다. 이는 일개 개체적 인간이 풀어낼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시대적 겨룸이 사람을 통해 나타나고, 사람이 시대적 겨룸을 대변한다. 즉, ‘하늘과 땅은 사람을 낳고 사람을 쓴다’.

이때 인간은 단순한 개별적, 개체적 선천세계의 인간이 아니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원한과 상극에 지배되는 인간은 고립되고 유한하며 약하고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늘이나 땅보다 높은 인간은 후천의 인간이다.

대순사상은 후천의 인간이 해원을 통해 상생하는 삼계 천지신명의 생명성을 지닌 신인격적 존재라고 본다. 후천의 인간은 삼계 신명(神明)의 생명성을 지닌 신인격(神人格)이다. 후천세계에는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고”,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려지기 때문이다.53) 『전경』은 “원시의 모든 신성, 불, 보살들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54)하였다고 명확히 증언한다. 선천세계에서는 인류와 신명계가 나누어져 있지만, 개벽을 통한 후천세계에는 이들 세계가 서로 상생한다. 대순사상에서 ‘인존’의 ‘인(人)’은 살아있는 인간생명뿐 아니라 명부생명, 금수생명, 귀신생명, 혼백생명 등 인류와 신명계의 모든 생명이 해원하여 함께 사는 삼계(三界) 생명을 구상(具象)한 표현이다.

V. 맺음말

이 글은 대순사상에 나타난 ‘인존’의 개념을 화용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대순사상에서 인존은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순진리회의 고유 사상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존에 대한 종교적, 사상적 해석이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졌음에도 기존의 해석들은 대체로 ‘천지’와 ‘인간’의 관계를 대립적이거나 지배적 관계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는 인존의 의미를 천지와 대립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후천세계가 갖는 대대(待對)적 상생(相生)성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순사상에 따르면, 선천세계는 포원(抱冤)과 상극에 따르는 참혹(慘酷)이 지배하는 죽는 세계이다. 서구적 물질문명과 이기심, 배타주의가 지배하는 선천의 세계는 홍수, 가뭄, 역병, 산불 등 갖가지 자연재해에 의해 인간이 고통 받는 세계이다. 이에 반해 대순사상은 후천세계가 선경의 낙원이라고 본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극복하고 불로불사하며 상극은 해원되고 상생과 평화, 조화의 세상이 열린다. 번뇌와 질명, 고통과 죽음이 사라지고 빈부와 신분의 상하 차별이 없는 지상 선경의 낙원 세상이 열린다.

대순사상의 인간관은 그 천지관에 따라 구분된다. 선천세계의 인간과 후천세계의 인간은 연속성을 갖는 동시에 구분된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인간개조를 통해 후천세계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선천세계의 인간은 특징은 포원과 상극에 지배되는 가사적(mortal) 존재라는 점이다. 선천의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連帶)하지 못하는 고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이다. 선천의 인간은 불행하고, 고통에 빠진 죽음의 존재이다.

대순사상은 후천의 인간은 선천의 인간과 다르다고 본다. 후천의 인간은 해원(解冤)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상생(相生) 존재이다. 후천의 인간은 다양한 선천 생명들의 대대(待對)적 포월(抱越)을 통해 나타나는 삼계(三界) 생명의 표현이다. 후천의 인간은 개체적 유한성을 넘어 생명적 신인격을 대표한다.

대순사상의 인존은 단지 개체적 인간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순사상에서 선천세계는 인류와 신명계로 나누어져 있지만, 개벽을 통한 후천세계에는 이들 세계가 서로 상생한다. 대순사상에서 ‘인존’의 ‘인(人)’은 살아있는 인간생명뿐 아니라 명부생명, 금수생명, 귀신생명, 혼백생명 등 인류와 신명계의 모든 생명이 해원하여 함께 사는 삼계 생명의 신인격을 구상(具象)한다.

Notes

박용철, 「해원시대를 전제하는 인존시대에 대한 이해」, 『대순사상논총』 27 (2016), p.137.

같은 글, pp.150-153 참조.

같은 글, p.153.

여기서 ‘천지관’이란 흔히 말하는 우주론(cosmology) 혹은 세계관(world view) 등의 용어와 상통한다. 그러나 대순 사상의 우주론은 서양의 고대 목적론적 우주론(teleological cosmology)이나 근대 기계론적 세계관(mechanical world view)과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그 대두 맥락이나 지시대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대순사상의 세계관과 우주관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천지관이라는 용어를 쓰되, 맥락에 따라서는 우주론이나 세계관이라는 용어도 사용할 것이다.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요람』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pp.5-6. 다음부터 『요람』으로 약칭한다.

대순진리회 교무부, 『전경』 (서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9), 교운 1장 9절.

같은 책, 공사 1장 3절. 여기서 ‘신도로부터 원을 푼다는 것’은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를 세우는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해 주신 김태윤 선임연구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대순사상의 시간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박용철(2016)의 해석을 참고하였다.

『전경』, 공사 1장 3절,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같은 책, 교운 1장 11절.

같은 책, 공사 1장 11절.

같은 책, 교운 1장 9절.

L. White,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 Science, vol 155 (1967). (진교훈, 『환경윤리』 (서울: 민음사, 1998), p.33 재인용)

예를 들어, 근대 영국 사상가 로크(J. Locke)는 “하나님과 인간의 이성은 인간에게 대지를 정복할 것, 곧 삶에 이익이 되도록 그것을 개량하고 그것에 그 자신의 것인 그의 노동을 첨가할 것을 명하였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대지의 주인이고 정복자임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셈이다. 존 로크, 『통치론』, 강정인ㆍ문지영 옮김 (서울: 까치, 2020), pp.38-39.

『전경』, 공사 1장 3절.

같은 책, 교법 3장 34절,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선천에서는 상극지리가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였으므로 도수가 그릇되어 제자가 선생을 해하는 하극상(下克上)의 일이 있었으나 이후로는 강륜(綱倫)이 나타나게 되므로 그런 불의를 감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런 짓을 감행하는 자에게 배사율(背師律)의 벌이 있으리라」 하셨도다.”

같은 책, 예시 6절,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서 선천에서의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상제의 뜻은 이미 세상에 홍포된 바이니라.”

예시 8절, “삼계가 개벽되지 아니함은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였으므로 원한이 세상에 쌓이고 따라서 천ㆍ지ㆍ인(天地人)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생겼나니라.”

예시 10절, “상제께서 삼계가 착란하는 까닭은 명부의 착란에 있으므로 명부에서의 상극 도수를 뜯어고치셨도다. 이로써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이 서로 상생하게 되었으니 대세가 돌려 잡히리라.”

같은 책, 공사 1장 2절.

같은 책, 교법 2장 55절.

같은 책, 예시 81절.

같은 책, 교법 2장 11절.

같은 책, 교법 3장 41절.

같은 책, 행록 2장 15절.

같은 책.

같은 책.

예를 들어, 이경원, 「대순사상의 인간관 연구 : 인존론을 중심으로」, 『신종교연구』 12 (2005) 등 다양한 논문들이 있다. 최치봉(「대순사상의 생명관과 인생관」, 『대순사상논총』 33, 2009)에 따르면, “대순사상에서 생명에 관한 논문은 크게 신(神)과 기(氣)에 대한 담론”을 중심으로 나타나며 “대부분이 천지에 가득 차 있는 신을 생명성으로 간주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 논자도 이런 최치봉의 분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공사 1장 3절, 공사 3장 4절, 교운 2장 15절, 교운 2장 32절, 교법 1장 54절, 교법 2장 6절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교운 2장 15절과 교운 2장 32절의 말씀은 상제의 말씀이 아니라 도주의 말씀이다. 『대순지침』에도 ‘인간’의 용례가 총 6번 나온다. Ⅰ. 신앙체계의 정립 1장 3절 (다), Ⅱ. 수도공부 1장 1절 (자), 수도공부 2장 1절 경천 (가), 수도공부 2장 1절 경천 (가), 수도공부 2장 1절 경천 (가), Ⅳ. 처사의 모본 2장 3절 (다), Ⅴ. 종단의 사업 2장 3절, 같은 곳 (바)가 그곳이다. 이 글에서는 『전경』에 나오는 용례를 중심으로 살폈다.

이경원, 「대순사상의 인간관 연구」, pp.299-301 참조.

이런 면에서 데카르트의 사유에서는 ‘인간’을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렵게 된다. 데카르트는 오직 ‘인간’만이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본다. 동물은 정신을 갖고 있지 못하고, 신은 물질이 아니다. 동물은 움직이는 자동 기계(automaton)일 뿐이며, 신은 순수한 사유실체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뇌의 ‘송과선(松科腺)’에서 정신과 물질이 만난다고 했으나 이런 억지스런 설명은 이후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서구 근대 인간학은 데카르트의 ‘심신문제(mind-body problem)을 해결하기 위해 300 여년 이상 다투어왔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이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져, 이 문제를 사이비 문제(pseudo-problem)로 간주하고 있다.

『전경』, 교법 3장 47절,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天地生人 用人 以人生 不參於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

여기서 말하는 ‘변증(dialectic)’은 어원의 의미에 충실하게 쓰인다. 이 말은 희랍어 ‘디아로고스(dialogos)’에서 나왔다. 디아로고스는 ‘말(logos)’을 ‘통해서(dia-)’, 혹은 ‘가지고(dia-)’라는 뜻이다. 즉 ‘말을 통해서’, ‘말을 가지고’ 서로 ‘소통한다’는 게 본래적 의미이다. ‘대대’의 개념에는 소통의 의미가 강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변증적이라고 했다.

참고로, 이는 서구 근대 철학자 헤겔(G. W. F. Hegel)의 ‘변증법(Dialektik Methode)’과 구분된다. 헤겔은 ‘테제(These)-안티테제(Antithese)-진테제(Synthese)’의 목적론적 발전의 논리적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대대’는 목적론적 전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 점에서 ‘대대’는 ‘변증법적’이 아니라 ‘변증적’이다. 대순사상의 대대관계는 이런 목적론적 전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순사상의 대대관계와 논증법과의 관계는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변증’이라는 말과 함게 ‘포월(抱越)’이라는 말도 함께 사용했다. 포월은 ‘끌어안아 넘는다’는 뜻으로, 변증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가깝게 담아내고 있다.

『전경』, 교운 2장 32절; 『대순지침』, I. 신앙체계의 정립 1장 3절.

『전경』, 행록 3장 2절.

같은 책, 제생 9절.

같은 책, 공사 1장 3절.

인류나 생명체를 위협하는 질병이 유행한 것은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인류는 14세기 흑사병(Great Plague)의 유행으로 유럽에서만 7,500만에서 2억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천연두(Smallpox)는 유럽 지역에서만 18세기 이전까지 매년 400,000명을 죽였으며, 아동이 감염될 경우 80%꼴로 사망했다. 이 천연두 때문에 20세기에도 3억~5억 명을 죽였다. 네이선 울프(Nathan Wolfe)는 천연두야말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했던 가장 강력한 팬데믹 질병이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는 두 가지 점에서 기존의 팬데믹 질병들과 다르다. 먼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대단히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다르고, 둘째 그 변이의 정도가 끊임없이 확산되고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베트남의 호찌민 시 전체가 봉쇄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한 도시나 국가가 완전히 폐쇄된 것은 중세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네이선 울프, 『바이러스 폭풍(The Viral Storm)』, 강주헌 옮김 (서울: 김영사, 2013) 참조.

『전경』, 행록 1장 34절.

같은 책, 행록 3장 2절 참조.

같은 책, 제생 31절.

같은 책, 공사 1장 25절.

Bergson, L’évolution Créatrice (Paris: PUF, 1959), pp.42-43. 이하 EC로 약칭함.

같은 책, p.43.

같은 책.

EC, p.258.

『전경』, 행록 2장 15절.

여기서 ‘신념(信念)하다’는 동사는 ‘믿고 따른다’는 뜻이다. 국립국어원은 ‘일’을 뜻하는 명사 뒤에 ‘하다’라는 접사를 붙여 동사로 만드는 것은 우리말 어법에 맞는다고 한다. 신념은 동작성 명사이고, 이를 동사로 만드는 것이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185842.

『전경』, 행록 5장 25절.

이경원은 대순사상의 후천개벽 이념이 인존이라는 개념에 집중되어 있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인존은 ‘모든 인간의 신격화’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존이 인간의 신격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신격화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경원, 「강증산의 후천개벽론」, 『한국종교』 35 (2012), p.163 참조.

『전경』, 공사 1장 2절.

같은 책, 교법 3장 47절.

같은 책, 예시 80절ㆍ81절.

같은 책, 교운 1장 9절.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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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교무부, 『전경』, 서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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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지침』, 서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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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요람』,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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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가톨릭성서공회, 『성서』, 광주: 일과놀이, 1998..

5.

네이선 울프, 『바이러스 폭풍(The Viral Storm)』, 강주헌 옮김, 서울: 김영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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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 『통치론(Two Treatise of Government: Th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강정인ㆍ문지영 옮김, 서울: 까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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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훈, 『환경윤리』, 서울: 민음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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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 「해원시대를 전제하는 인존시대에 대한 이해」, 『대순사상논총』 27,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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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대순사상의 인간관 연구 : 인존론을 중심으로」, 『신종교연구』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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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강증산의 후천개벽론」, 『한국종교』 3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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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gson, L’évolution Créatrice, Paris: PUF,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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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홈페이지》http://www.daeso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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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https://stdict.kore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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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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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https://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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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https://www.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