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무위이화(無爲而化)에 대한 수운과 증산의 사유와 종교적 함의*

최정락1,**
Jeong-rak Choi1,**
1고려대학교 박사
1Ph.D., Department of Philosophy, Korea University

© Copyright 2025,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Feb 10, 2024 ; Revised: Mar 05, 2025 ; Accepted: Mar 25, 2025

Published Online: Mar 31, 2025

국문요약

본 논문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와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무위이화론(無爲而化論)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논자는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을 분석함으로써, 두 사상가가 전통적인 무위이화 개념을 어떻게 변용하고 계승했는지 밝히고, 나아가 그들 사유에 나타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고자 한다. 도가의 핵심 개념인 무위이화는 전통 유가뿐만 아니라 한국의 신종교 사상가인 수운과 증산에게도 수용 및 변용되어 중요한 사상적 내용으로 나타난다. 수운은 동학(東學)과 서학(西學)이 구별되는 특징을 무위이화에서 찾았으며, 이를 한울님이 행하는 자연 영역에서의 조화와 수행자가 자신의 주체적인 노력으로 한울님의 조화에 힘입어 지상신선(地上神仙)이 되는 것으로 강조한다. 반면, 증산의 무위이화는 증산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통해 짜 놓은 도수에 따라 천지신명들에 의해 실현되는 것으로, 작위(作爲), 인위(人爲), 삿됨이 없는 신도(神道)에 따라 이루어진다. 또한, 증산의 무위이화는 수행자가 본분을 지키며 정진할 때, 증산의 덕화(德化)로 인해 수행자의 어려운 상황이 해소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본 연구는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 개념이 상제(上帝)의 조화성을 내포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수양의 실천적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theories of Muwi-ihwa (無爲而化 transformation via effortless action) of Suwun (水雲) Choe Je-u (崔濟愚, 1824–1864) and Jeungsan (甑山) Kang Il-sun (姜一淳, 1871–1909), two figures who were active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By analyzing the Muwi-ihwa theories of Suwun and Jeungsan, this aarticle seeks to elucidate their transformation and inheritance of the traditional concept and to discuss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in their systems of thought.

The core Daoist concept of Muwi-ihwa was accepted and transformed not only by traditional Confucianism but also by Suwun and Jeungsan, who incorporated it as a key principle in their systems of thought. Suwun found the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between Donghak (東學, Eastern Learning) and Seohak (西學, Western Learning) was evident in Muwi-ihwa. He emphasized it as the harmony in the natural realm enacted by Hanulnim (the Supreme God) and as the process by which a practitioner, through their own subjective efforts, received Hanulnim’s harmony and achieved earthly immortality (地上神仙). Jeungsan’s Muwi-ihwa, on the other hand, was realized by the divine beings of heaven and earth according to the Degree Numbers (度數) established by him through Cheonji-gongsa (天地公事, the Reordering Works of Heaven and Earth). This process, governed by Shindo (神道 the Dao of gods), is understood as free from artificiality (作爲), human intervention (人爲), and falsehood. Furthermore, Jeungsan’s Muwi-ihwa implies that a practitioner’s diligent adherence to moral duty can resolve difficult situations through the transformative power of Jeungsan’s Virtue (德化).

Through these discussions, this study will demonstrate that the concept of Muwi-ihwa in both Suwunist and Jeungsanist Thought emphasizes harmony with Sangje (上帝, the Supreme God) and offers practical implications for self-cultivation based on this harmony.

Keywords: 수운 최제우; 증산 강일순; 무위이화; 조화; 도덕 실천
Keywords: Suwun Choe Je-u; Jeungsan Kang Il-sun; Muwi-ihwa; Creation of the Universe; moral practice

Ⅰ. 머리말

본 논문은 ‘무위이화(無爲而化)’에 대한 수운과 증산의 사유와 종교적 함의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무위이화는 동양 전통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다. 이 개념의 초기 기록은 『도덕경』과 『논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한 노자는 『도덕경』에서 무위이화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무위이민자화(無爲而民自化)”라는 말을 한다. 『도덕경』 57장에는 “성인은 말하기를, 내가 무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올바르게 되며, 내가 일거리를 만들지 않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무욕하면 저절로 질박해진다.”1)라고 기록되어 있다. 무위이화는 이 ‘무위이민자화’를 축약한 표현으로, 통치자(군주)가 인위적인 통치를 하지 않고 만물의 본성에 따라 다스리면 백성들이 스스로 교화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2)

『논어』에서는 인위적인 행위가 없는 통치를 묘사하기 위해 무위지치(無爲之治)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서 공자는 “무위로써 다스린 분은 순(舜)임금이실 것이다. 무엇을 하셨겠는가? 자기 몸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임금의 자리[南面]에 앉아 계셨을 뿐이셨다.”3)라고 언명한다. 이는 순임금이 끊임없이 자기 수양을 통해 덕(德)으로 백성을 감화시켜 다스렸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무위는 단순히 행위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덕을 함양하는 것과 더불어 덕의 감화력을 통해 백성들이 스스로 도덕적 성취를 이루도록 이끄는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무위이화의 의미가 동양고전의 내용에서 변용되어 한국 신종교 사상 내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도가적 무위이화 개념은 전통 유가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 활동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와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사상에서도 수용 및 변용되어 핵심적인 내용으로 나타난다. 최고신 상제에 대한 논의가 있는 수운과 증산의 사상에는 무위이화라는 용어가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4) 수운은 자신이 창도한 동학(東學)이 서학(西學)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무위이화를 제시하며, 이를 한울님이 자연의 영역에서 펼치는 조화 작용이자 한울님과 수행자가 감응하는 원리로 강조한다. 증산은 무위이화를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에 따라 천지 만물을 조화롭게 하고 수행자의 어려운 일을 풀리게 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처럼 수운과 증산에게 무위이화 개념은 천지자연의 운행 원리와 개인의 수양 문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요한 논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수운과 증산의 사상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무위이화론은 중요한 논의 대상이지만, 지금까지 두 사상가의 무위이화론을 심도 있게 비교 분석한 연구는 부족하였다.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논의와 차별되는 수운과 증산 무위이화론의 고유한 특징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이 전통적인 무위이화론을 어떠한 이유와 맥락에서 변용하고 계승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수운과 증산에 나타난 무위이화론에 관한 개별 연구는 다양한 관점에서 진행되어 왔다. 본 연구의 논의를 위한 배경으로써 선행연구를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수운의 무위이화론과 관련된 연구를 살펴보면, 신일철은 동아시아 전통에서 왕권천수설(王權天授說)에 기반한 왕권은 천명에 의해 군주에게 부여되었으며, 그 권력은 유위(有爲)의 권위주의적 통치로 나타났지만, 동학에서는 백성이 직접 천명을 받음으로써 자신을 다스리는 무위이화의 시민 공동체를 지향했다고 논한다.5) 이상원·권광호는 무위이화를 한울님이 조화의 힘으로 자연 질서를 다스리는 원리로 보았으며, 한울님의 조화에 힘입어 수행자에게 감화와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규정한다.6)

황종원은 도가의 무위 개념이 수운에 의해 어떻게 수용되었으며, 이후 계승자인 최시형(崔時亨, 1827~1898)과 이돈화(李敦化, 1884~1950)를 통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분석한다. 그는 수운의 무위이화 개념이 한울님이 자연의 영역에서 생명 운동을 펼치는 원칙이자, 수행자에게 신비로운 힘을 부여하는 방식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고 설명한다.7) 김용휘는 동학의 무위이화 개념이 지닌 실천적 함의를 도가의 무위자연 사상과 비교하여 규명하고자 한다. 그는 동학의 무위이화가 한울님의 조화에 마음을 합치시키는 수양을 강조하며, 마음을 주체로 삼아 하늘의 기운과 지혜를 활용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8) 안영상은 퇴계의 성리학과 수운의 동학사상에 나타나는 철학적 논리의 내적 연관 관계성을 퇴계의 ‘무위이위(無爲而爲)’와 수운의 ‘무위이화’를 대비하여 분석한다. 안영상은 수운의 무위이화가 원리적인 무위의 측면과 현실적인 힘을 지닌 유위의 측면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9)

증산의 무위이화론과 관련된 연구를 살펴보면, 고남식은 증산이 주장한 신도(神道)가 도가의 무위이화와 연계되어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함으로써 현묘불측(玄妙不則)한 공(功)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무위이화를 생·장·염·장(生長斂藏)의 법칙으로 해석한 것은 도가의 무위이화를 수용하고 심화시켜 신도와 연결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적 특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한다.10) 김용환은 무위이화의 인간론적 함의가 인간 상호 간의 화합을 이루고 상극의 갈등을 해소하는 해원상생의 실천적 원리로서, 심리적 억압이나 정치적 폭력, 억압적 이데올로기, 차별적 제도 등을 해소하는 상생 기제의 도덕 지표로 기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11)

무위이화에 관한 기존 연구는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 개념을 각기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이들의 연구는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 개념을 도가사상과 비교·검토함으로써 그 의미를 명료하게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을 상제의 조화(造化)라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두 사상 간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논의하는 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수운은 “조화는 무위이화”12)라고 언명하고, 증산은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측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무위화니라.”13)라고 하며, “신도를 풀어 조화하여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신 후에 인사를 조화하니”14)라고 언명한다. 수운과 증산에게 ‘조화’는 상제와 인간 사회를 포함한 천지 만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상제의 능력으로 세상 만물을 이치에 맞게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화 개념은 초월적 존재를 인식하고 수양하는 수행자의 변혁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본 논문에서는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 개념에 상제의 조화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기 수양을 고양하는 도덕 실천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나아가 두 사상가가 제시한 무위이화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여 그 의미를 명확히 밝힐 것이다. “수운과 증산이 사용하는 무위이화 개념은 동양의 전통에서 통용되는 무위이화의 개념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두 사상가의 무위이화론에는 어떠한 종교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으며,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는가?”, “두 사상가는 왜 무위이화 개념을 변용하여 사용한 것일까?”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수운과 증산의 해명을 분석함으로써, 두 사상가의 사상 체계에서 무위이화론이 차지하는 위상과 함의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진행된다. 먼저 수운과 증산이 무위이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검토한다(2장). 다음으로 두 사상가의 무위이화론에 담긴 종교적 함의를 살펴보고, 그 사유 안에는 상제 및 신명의 조화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기 수양의 실천적 함의가 제시되고 있음을 논증한다(3장). 그리고 두 사상가의 무위이화론을 비교 분석한다(4장). 마지막으로 두 사상가가 전통적인 무위이화론을 어떠한 이유와 맥락에서 변용하고 계승했는지 고찰한다(5장). 이러한 시도는 수운과 증산 무위이화론의 종교적 특성을 규명하고, 실천적 수양을 위한 그들의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Ⅱ. 무위이화에 대한 수운과 증산의 사유

1. 무위이화에 대한 수운의 사유

수운은 1860년 4월 종교 체험 이후, 약 1년간 수련에 정진하였다. 이 수련을 통해 ‘도(道)’란 ‘자연의 이치’임을 깨닫고,15) 자신의 도를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규정하였다.16) 수운의 견해에 따르면 자연의 이치는 우주의 자연 이법을 의미하는 말로써, 한울님의 작용이 곧 자연이고, 이것이 무위이화라는 뜻이 된다.17)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에서 수운이 무위이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용례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무위이화는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 없이도 한울님의 조화에 의해 세상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대저 아득한 옛날부터 봄과 가을이 어김없이 갈마들고 네 계절이 변함없이 제때를 만났다가 사라져 간다. 이것도 또한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하다는 본보기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은 비와 이슬을 내려주시는 은혜를 알지 못하고 무위이화로 알고 있다.18)

수운의 견해에 따르면, 한울님은 현실 세계 너머의 형이상학적 존재라기보다는 현실 세계 내에서 자연의 생명 운동을 조화하는 지고신(至高神)으로 이해된다.19) 자연의 사시(四時),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은 한울님이 조화로써 이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동학에서 이 조화는 만물을 생성하고 기르는 자연의 힘이자 동시에 한울님의 권능을 의미한다. 그런데, 수운은 한울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자연의 모든 현상이 한울님의 조화 작용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만물이 살아가는 것이 곧 한울님이 행한 조화의 자취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수운은 동학의 핵심 가르침인 무위이화를 한울님의 조화 작용으로 설명한다.

둘째, 무위이화의 의미는 동학의 수행자가 주체적인 도덕 실천을 통해 내면의 한울님을 따르며 군자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인간의 노력을 통해 한울님의 조화와 가르침을 받게 되는 내용은 다음의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면 성품을 거느리게 되고 가르침을 받게 되어 자연한 가운데 화(化)하여 나오게 된다. (그러나)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 순서가 없으며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고 다만 제 몸만을 위해 빌 따름이라. 몸에는 한울님의 신령한 기운이 없고 학에는 한울님의 가르침이 없으니, 형식은 있으나 자취가 없다.20)

먼저 수운은 “우리 도는 무위이화이다.”라고 언명한다. 이어서 무위이화인 도에 이르는 과정을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면 성품을 거느리게 되고 가르침을 받게 되어 자연한 가운데 화(化)하여 나오게 된다’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는 본래 한울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마음을 회복하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함으로써 한울님의 기운과 융화(融化)하여 일체(一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21) 또한 그는 수양을 통해 한울님의 조화와 가르침을 받아 자신이 변화해 가는 관념이 서학과 차별화되는 지점임을 강조하며, 이를 근거로 서구 근대 문명을 비판한다.

이러한 수운의 신념은 『용담유사』의 다음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킨대로 시행해서 차차차차 가르치면 무궁조화(無窮造化) 다 던지고 포덕천하(布德天下) 할 것이니 차제도법(次第道法) 그뿐일세 법을 정코 글을 지어 입도한 세상 사람 그날부터 군자되어 무위이화 될 것이니 지상신선 네 아니냐”22) 이 구절에서 드러나듯이, 수운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 동학에 입도(入道)한 순간부터 모든 사람이 군자이자 지상신선이 될 수 있다고 언명한다. 여기서 군자와 지상신선은 한울님의 덕을 체득한 인간으로, 당시의 타락한 사회에서 요구되는 존재였다. 수운은 일반적인 군자와 지상신선 개념을 내면화하여, 개인이 도덕적 실천을 통해 한울님을 따르면 무위이화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용담유사』에는 “내 역시 이 세상에 무극대도(無極大道) 닦아내어 오는 사람 효유(曉諭)해서 삼칠자(三七字) 전해주니 무위이화 아닐런가”23)라는 기록과 “그중에 현인달사(賢人達士) 내 말 잠깐 들어 보소 합기덕(合其德) 알았으니 무위이화 알지마는 그러나 자고급금(自古及今) 사사상수(師師相授) 한다 해도 자재연원(自在淵源) 아닐런가 일일이 거울해서 비야흥야(比也興也) 하였으니 범연간과(凡然看過) 하지 말고 숙독상미(熟讀嘗味) 하였어라”24)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동학에서 삼칠자 주문(呪文)을 읽는 행위는 중요한 종교적 수행 중 하나이다. 동학의 주문은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글’25)로 한울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수운에 따르면, 한울님은 인간을 통해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칠 수 있으며, 인간 역시 내면에서 한울님과의 합일(合一)을 이루어야 비로소 한울님의 의지를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된다.26) 즉, 주문을 읽는 행위는 단순한 암송을 넘어, 인간이 한울님과 합일하여 무위이화를 실현하는 수행이 되는 것이다.

수행자가 한울님을 따르며 군자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화(化)’의 의미가 교화와 조화, 두 가지 뜻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27) 『동경대전』의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히 화(化)해 나가는 것이다.”라는 구절과 『용담유사』의 “시킨대로 시행해서 차차차차 가르치면”, “삼칠자(三七字) 전해주니 무위이화 아닐런가” 등의 구절을 보면 화가 교화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수운이 동양고전에서 보이는 교화의 의미를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교화는 단순히 ‘성인과 통치자-백성’ 사이의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동학에서는 그 관계를 확장하여 ‘상제-인간을 비롯한 천지 만물’의 관계로 설명한다. 즉, 수운의 무위이화론은 외적인 측면에서 한울님이 인간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교화의 의미’와 내적인 측면에서 인간이 수양을 통해 한울님의 기운과 일체를 이루는 ‘조화의 의미’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 무위이화에 대한 증산의 사유

증산사상에서 무위이화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개념이 『전경』에서 어떠한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전경』에서 무위이화가 사용된 용례를 분석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무위이화는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그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측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무위화니라.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 28)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 … 29)

무위이화는 증산이 정한 도수(度數)에 따라 신명이 용사하고, 이에 따라 새 기틀이 열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산사상에서는 인간의 삶 속에 신명이 함께하며 인간계(人間界)와 신명계(神明界)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신명계에는 일정한 질서와 법칙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신도’라고 할 수 있다. 즉, 신도는 우주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진리로서, 우주의 운행과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신명의 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30)

증산이 강세(降世)한 이유는 인간이 물질에 치우쳐 자연을 정복하려고 하고 온갖 종류의 죄악을 끊임없이 범함으로써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발생하고 신도의 권위가 실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산은 천지공사를 통해 상생의 천지대도를 열어 놓았고 신명계의 구조와 질서 또한 바로잡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상제께서 오셔서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를 세워 후천 선경을 열어 놓으시고 신도를 풀어 조화하여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신 후에 인사를 조화하니 만민이 상제를 하느님으로 추앙하는 바가 되었도다.”31)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신도로써 일을 다스리면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미묘한 공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32) 그러므로 무위이화는 바로잡힌 신도를 통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나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둘째, 무위이화는 증산이 생·장·염·장(生長斂藏)의 법칙을 써서 이 법칙에 따라 만사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증산은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33)라고 언명한다. 이 구절에서 증산이 ‘사의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라고 밝힌 점에 주목해 보면, 생·장·염·장하는 천지자연의 법칙을 주재(主宰)하는 주체가 증산임을 드러내며, 이 법칙에 따라 모든 일이 이루어져 감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생·장·염·장의 사의는 천지자연의 네 가지 이치로서, 만물을 생성하고[生], 성장시키며[長], 거두어들이고[斂], 갈무리하거나 저장하는 것[藏]을 의미한다. 이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의 자연 질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사계절이 변화하며 만물을 생장시키는 이치가 사의의 의미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즉, 사의는 순환하는 자연의 원리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의의 의미는 강태공(姜太公)의 『육도(六韜)』,34) 『도덕경』의 하상공주(河上公注),35) 이천(伊川, 1033~1107)의 『역전(易傳)』36) 등의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문헌들 역시 사의를 자연 질서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사의는 순환하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천지자연의 법칙을 드러내는 것으로, 증산은 이러한 사의를 써서 세상의 일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37) 이러한 맥락에서 사의의 법칙에는 무위이화의 속성이 내재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셋째, 무위이화는 어려운 일이나 난관이 증산의 덕화(德化)를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용례는 “종도들이 걱정하는 일을 상제께 고하면 그 걱정은 항상 무위이화로 풀렸도다. 그러나 고한 뒤에 다시 걱정하면 상제께서 ‘내가 이미 알았으니 무슨 염려가 있느냐’고 종도들을 위로하셨도다.”38)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수행자가 진실하게 수행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장애를 만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증산의 덕화로 모든 어려움이 조화롭게 해소됨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39)

이러한 무위이화의 용례를 검토해 보면 하나의 의미로 종합할 수 있다. 무위이화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특별한 행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세계에서는 증산이 짜 놓은 도수에 따라 천지신명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증산의 주재 아래 천지신명은 작위나 인위, 삿됨이 없이 각자의 역할을 지속해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 보면, 도가와 유가의 무위이화 개념에서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 개념의 변화는 크게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먼저 무위이화의 실현 주체의 차이가 있다. 도가와 유가에서는 무위이화의 실현 주체를 군자나 성인과 같은 통치 영역에 있는 계층으로 보았다. 이들은 자기 수양을 통해 무위이화를 실현하고, 그 효력이 백성에게 미친다고 여겼다. 즉, 군자와 성인의 도덕적 수양이 사회 질서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 수운과 증산은 세상을 주재한다는 측면에서 무위이화를 실현하는 주체를 초월적인 인격천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40) 두 사상가 모두 상제의 조화가 세상 만물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두 사상에 나타난 무위이화론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상제의 조화는 자연의 순리를 중요시하는 도가나 통치자의 수양을 통한 교화를 중시하는 유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음으로 두 사상가의 무위이화론이 상제의 조화와 더불어 개인의 수양을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다. 개인은 바른 수양을 지속함으로써 상제의 조화를 받아 스스로 변화하거나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동양 전통의 무위이화론이 성인의 자연 순리에 따른 지도나 통치자의 수양과 덕치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과는 달리, 개인에게도 무위이화의 가능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은 19세기 혼란스러운 조선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고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종교적, 사회적 의도를 담고 있다. 두 사상가는 전통적인 무위이화 개념을 ‘성인과 군자-백성’의 관계에서 ‘상제-인간을 비롯한 천지 만물’의 관계로 확장하여 해석함으로써, 상제의 조화로운 다스림과 인간의 수양을 통한 자기 변화 가능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무위이화론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무위이화론은 혼란스러운 사회 질서 속에서 고통받던 민중들에게 초월적 존재인 상제에 대한 믿음과 함께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Ⅲ. 수운과 증산 무위이화론의 종교적 함의

1. 수운 무위이화론의 종교적 함의

수운의 무위이화론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는 자연의 질서 자체가 한울님의 조화 작용이라는 의미이다. 둘째는 수행자의 주체적인 노력을 통해 한울님의 조화와 가르침을 받아 감화와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즉, 무위이화 개념에는 신앙의 대상인 한울님의 조화와 인간의 종교적 수행을 통한 변화라는 두 가지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학에서 한울님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동학에서 한울님은 절대자이자 만물을 화생하는 조화의 주재자이다. 동시에 인간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신이기도 하다. 즉, 한울님은 천지 만물을 낳은 초월적인 존재이면서, 만물 속에서 무궁한 생성 변화를 주재하는 내재적 존재이다. 이러한 한울님의 조화는 자연계와 모든 생명, 천지 만물의 끊임없는 생성 변화와 질서를 주재하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힘이다. 이러한 조화가 바로 무위이화이며, 어떠한 인위적 작위가 아닌 한울님의 섭리에 의한 자율적인 진화를 의미한다. 천지 만물은 한울님의 무궁한 조화의 자취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인간이 무위이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개인의 몸 안에 모신 한울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양해야 한다. 수운은 이러한 수양을 통해 한울님의 조화에 힘입어 군자(지상신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무위이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①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함[守其心正其氣]’이라는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종교적 수행을 통해 ② ‘한울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는[率其性受其敎]’ 한울님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③ ‘자연한 가운데 화해 나가는[化出於自然之中也]’ 한울님의 조화를 체득하게 된다.41) 즉, 인간의 진실한 정성이 한울님을 감응시키고, 한울님은 조화로서 무위이화를 실현하며, 인간은 무위이화를 통해 한울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무위이화의 궁극적인 주체는 한울님이지만, 무위이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주체적인 종교적 수행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수운은 세상 사람들 또한 동학에 입도하여 공경을 다해 한울님을 모시고 수양에 힘쓰면 무위이화를 통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신분의 귀천과 관계없이 누구나 군자, 즉 지상신선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운은 한울님의 덕을 영원히 잊지 않으면 지극한 기운과 일체가 되어 지상신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지상신선은 궁극적으로 한울님의 덕을 체득한 인간이며, 당시의 사회에 요구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다.42)

수운은 종교적 수행을 해야 하는 인간을 어떻게 보았을까? 수운은 인간의 출생에 대해 한울님의 질서에 따라 화생한다고 보았으며, “나도 또한 한울님께 명복(命福) 받아 출세(出世)하니 자아시(自兒時) 지낸 일을 역력히 헤어보니 첩첩이 험한 일을 당코 나니 고생일네”43), “장평갱졸(長平坑卒) 많은 사람 한울님을 우러러서 조화(造化) 중에 생겼으니”44)라고 언명한다. 수운은 인간이 한울님의 명복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고, 세상의 모든 존재가 한울님의 조화 속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수운은 이러한 인간이 한울님의 조화로 화생한 만물 중 가장 고귀한 존재임을 강조한다.45) 주목할 만한 사실은 수운이 모든 사람이 고귀한 존재로서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지배계층에서 소외된 민중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점이다.46) 이는 유교적 신분 질서 내에서 지배계층에게만 군자의 자격이 주어졌던 기존의 관념을 극복하는 것이다.

수운의 무위이화론은 인간이 지상신선이 된 후천 세계를 지향한다. 이는 ‘동귀일체(同歸一体)’가 구현되는 이상세계를 목표로 함을 뜻한다. 동귀일체는 이기적인 개체만을 내세우는 각자위심(各自爲心)의 반대가 되는 개념으로, 한울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아 한울님과 한 마음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한울님의 마음을 체득한 지상신선들의 공동체를 뜻하기도 한다.47) 즉, 동귀일체는 동학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사람이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한울님에게 감응하여 함께 후천 세상을 건설해 나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48) 이러한 사회는 모든 사람이 동학을 받들어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평등이 실현된 후천 세상이다.

2. 증산 무위이화론의 종교적 함의

『전경』에 나타난 무위이화 개념은 크게 다음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신도(神道)로써 모든 일이 다스려져 현묘 불측한 공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생·장·염·장(生長斂藏)의 법칙에 따라 만사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뜻한다. 셋째, 도인의 본분을 지키며 수행에 힘쓰면 증산의 덕화로 인해 어려운 일이나 난관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증산사상의 무위이화 개념에는 생·장·염·장의 법칙을 주재하는 신앙의 대상인 증산, 종교적 법칙인 신도, 그리고 수행자의 진실한 종교 수행을 통해 어려움이 해소되는 일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

증산사상에서 무위이화의 조화를 주재하는 존재는 바로 증산이다. 증산의 문헌에 따르면, 신성, 불, 보살 등은 인류와 신명계가 소멸될 지경에 이르자 상제에게 세계를 구원해 줄 것을 하소연한다. 이는 신적 체계 내에서 상제가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며, 신명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음을 알려준다.49) 강세한 상제인 증산은 선천의 가장 큰 문제가 상극으로 인해 발생한 원(冤)이라고 진단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여 상생의 후천을 건설하고자 한다. 증산이 언명한 “삼계 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후천 선경(後天仙境)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50)라는 행위는 바로 이러한 천지공사를 의미한다.51) 천지공사는 조화자 증산이 상도를 잃은 상극세상의 참상을 바로잡고 후천선경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삼계 개벽 공사인 것이다.52) 동학에서 제시한 한울님에 비해 증산은 직접적으로 인간을 대면하며 세상을 개벽하는 권능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또한, 증산은 무위이화 개념에 대해 인간의 관점에서는 특별한 행위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천지신명이 자신이 정한 도수(度數)에 따라 작위(作爲), 인위(人爲), 삿됨 없이 각자의 직분을 조화롭게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인간의 눈에는 어떠한 행위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수에 따라 여러 가지 일들이 저절로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증산사상에서 무위이화의 ‘화(化)’는 세상의 일들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증산은 신명계를 바로 잡았고 천지신명은 짜여진 도수에 따라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어 낸다. 무위이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신적 질서와 법칙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다.53)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증산이 사의를 써서 세상의 일을 무위이화하게 하는 것도 그 안에는 도수에 맞게 천지신명들이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신도로써 크고 작은 일이 다스려지는데, 왜 ‘무위(無爲)’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일까?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신도가 인위적이지 않고 사(私)와 사(邪)가 배제된, 진리에 지극하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54) 이는 동아시아 고전에서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는 ‘위(爲)’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천지신명들은 진리에 지극하고 공평무사하므로 인위적인 사사로움이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무위라는 용어는 사사롭거나 바르지 못한 인위(人爲), 즉 부정한 작위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전경』에는 “귀신은 진리에 지극하니 귀신과 함께 천지공사를 판단하노라”55), “신명은 탐내어 부당한 자리에 앉거나 일들을 편벽되게 처사하는 자들의 덜미를 쳐서 물리치나니라.”56)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증산사상에서 천지신명은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존재로서 천지공정(天地公程)에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57)

이러한 이해에 근거하면, 증산을 믿고 수양하는 사람은 공정한 자세로 증산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점이 부각된다.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58)라는 언명을 상기하면, 증산은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선경의 운수를 정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도의에 따른 삶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수행자가 자신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도의에 따라 수양하고 해결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은 증산의 뜻을 받드는 행위이며, 이러한 실천이 지속될 때 증산의 조화에 힘입어 모든 일들이 순리대로 풀려나갈 수 있다.59) 예를 들어, 증산은 도적에게 친묘(親墓)의 두골(頭骨)을 굴총당한 백남신(白南信)에게 한적한 곳에 거처하고 기다리면 처서절(處暑節)에 그 도적이 두골을 다시 가져올 것이라고 언명한 사례가 있다. 7월 처서절이 되자 도둑이 스스로 찾아와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에 대해 증산은 “모든 사사로운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붙여 두면 도수에 따라서 공사가 다 풀리니라”라고 언명한다.60) 이는 수행자가 증산의 가르침대로 수행하고 있다면, 그것이 수행자 개인의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따라 무위이화로 풀려나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61) 이 과정에서 천지신명들은 수행자가 정진하고 있을 때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증산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며 덕화를 입으며 수행하는 것은 수행의 목적인 도통군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 된다고 할 수 있다.62)

증산은 종교적 수행과 관련하여 민중들에게 도덕 실천을 강조한다. 증산은 “부하고 귀하고 지혜롭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묵은 기운이 채워 있는 곳에 큰 운수를 감당키 어려운 까닭이니라.”63)라고 언명하며, 과거 시대의 권력과 지위에 안주한 이들은 새 시대의 큰 운수를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증산은 “후천에서는 약한 자가 도움을 얻으며 병든 자가 일어나며 천한 자가 높아지며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을 것이요 강하고 부하고 귀하고 지혜로운 자는 다 스스로 깎일지라”64)라고 언명하며, 기존 질서에서 소외되었던 민중들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 주역이 될 것이라고 피력한다.65) 나아가 증산은 민중으로 상징되는 어리석은 자를 ‘나의 사람’이라고 여기며, 이들에게 도덕 실천을 통해 후천선경에 참여하고, 후천에서 상제의 뜻을 받들어 일하는 도통군자가 되기를 강조한다.66)

증산의 무위이화는 후천에서 천지공사에 따라 온전히 실현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산은 후천이 성인의 시대로 선(善)으로써 생활하는 도수를 정해 놓았다고 하고,67)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68)라고 언명한다. 이처럼 후천에서는 위무(威武)와 형벌(刑罰)이라는 인위적인 통치가 없어도 모든 것이 법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스려지고 창생(蒼生)은 서로 상생하며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는 천지공사를 통해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일이 무위이화로 이루어지는 모습의 일면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Ⅳ. 수운과 증산 무위이화론의 이론적 동이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에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과 그의 조화, 그리고 수행자의 종교적 수행이라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그러나 두 사상가의 사유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첫째, 조화를 주재하는 주체인 상제의 존재에 대한 차이가 있다. 동학의 한울님은 초월적 공간에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종래의 초월적 유일신관과 신이 만물 속에 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재적 범신관을 동시에 극복한 신이다. 이러한 한울님은 무궁한 절대자이자 만물을 화생하는 조화의 주재자이면서 인간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신이다. 반면, 증산의 인격천은 구천(九天)에 있던 상제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와 개벽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즉, 증산사상에서 상제인 증산은 인간과 직접 대면하며, 세상을 개벽하여 인간을 구제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볼 때, 수운은 수행을 통해 자기 내부에 한울님 모심을 자각함으로써 본성을 회복하고 외부 한울님의 기운을 받음으로써 한울님의 조화를 받아 무위이화되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 증산은 초월적인 하느님 신앙을 더욱 부각하여, 인간과 직접 대면하며 세상을 개벽하는 상제를 신앙하고 그 가르침에 맞게 심신을 닦음으로써 상제의 조화를 받아 무위이화 되는 것을 강조한다.69)

둘째, 상제가 천지 만물을 다스리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에서는 상제가 자연 질서의 법칙을 주재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증산사상에서는 ‘신도(神道)’라는 개념이 확장되어 나타난다. 수운의 논의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신적 질서와 법칙이 작용하는 신도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증산사상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것이다. 증산사상에서 무위이화는 증산이 정한 도수에 따라 여러 신명이 각자의 직분에 맞는 일을 처리함으로써 새로운 기틀이 마련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증산사상에서는 신도라는 개념을 통해 신명들의 활동이라는 구체적인 방식으로 무위이화가 실현된다. 따라서 증산의 무위이화는 수운의 사유보다 더욱 구체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셋째, 무위이화론은 화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 차이를 보인다. 수운은 무위이화론에서 조화와 교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강조한다. 수운은 “조화는 무위이화”라고 명명하며, 자연의 모든 현상이 한울님의 조화 작용이라고 보았다. 이는 상제의 조화가 만물에 영향을 미쳐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수운은 동시에 교화의 측면 또한 강조한다. 수운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히 화해 나가는 것”, “시킨 대로 시행해서 차차차차 가르치면”, “삼칠자 전해주니 무위이화 아닐런가” 등의 구절에서 성인과 통치자가 백성을 교화하여 사회를 조화롭게 이끌어야 한다는 동양의 무위이화 개념을 수용하였다. 즉, 수운에게 무위이화는 상제의 조화와 상제의 가르침이라는 교화가 함께 나타나는 개념이다. 특히 수운은 상제와 인간의 관계에서의 교화를 강조하며, 상제가 인간에게 가르침을 내려 변화시키는 과정을 교화의 측면에서 설명하였다. 이는 단순히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교화를 넘어, 지상신선이 되어 후천선경을 이루는 조화를 이루기 위한 교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증산은 무위이화론에서 조화의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증산은 생·장·염·장하는 천지자연의 법칙을 주재하는 주체가 자신임을 드러내고, 신도를 통해 무위이화가 실현된다고 보았다. “신도를 풀어 조화하여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신 후에 인사를 조화하니”라는 구절에서 상제는 조화의 주재자로서 인간사에 개입하여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증산사상에게 상제는 조화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넷째,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이 무위이화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도덕적 실천을 통해 개인의 삶에서 무위이화가 실현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양상에 차이가 있다. 수운은 무위이화가 이루어지려면 한울님의 조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한울님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수운은 한울님과의 감응을 통해 인간이 지상신선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반면, 증산사상에서는 수행자가 상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바른 마음을 견지하며 수행할 경우, 자신이 직면한 고난이 해소된다는 점이 부각된다. 이때 여러 어려움은 신도를 통해 무위이화의 방식으로 풀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증산은 종도들에게 상제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후천선경에 참여할 것을 당부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더욱 성숙한 도덕성을 함양할 것을 훈유하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증산을 신앙하는 수행자에게 어려움이 해소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해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의 해소를 통해 자신의 수양 또한 심화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수운과 증산은 무위이화를 통해 실현되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수운은 궁극적으로 무궁한 본성을 깨닫고 하늘의 덕을 체득한 사람을 군자(지상신선)로 규정한다. 그는 타락한 심성을 버리고 하늘의 덕을 깨달아 군자로 변화하는 정신개벽을 강조하며, 이러한 정신개벽을 통해 한울님의 마음을 지닌 군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상천국을 이상향으로 제시한다. 반면, 증산은 천지공사의 뜻을 받들고 수행하는 사람을 도통군자(지상신선)로 정의한다. 도통군자는 도통을 이룬 군자를 의미하며, 증산 사상에서 도통은 인간이 인륜을 행하고 도덕을 밝히는 수행을 통해 진정한 인간 본성을 회복한 경지를 의미한다. 도통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 정도에 따라 도통과 관련된 신명들과 조화를 이루어 나타나는 결과이다. 즉, 증산은 도덕적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은 정도에 따라 도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하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으로 나누어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 비교
항목 수운 증산
하늘의 영역 상제의 존재 초월성과 내재성이 혼재된 한울님 강세한 삼라만상의 구원자인 증산
신적 질서 법칙 천지신명에 대한 논의 없음 신도를 통한 무위이화 실현
자연의 이치 한울님이 자연 질서의 법칙을 주재 증산이 사의의 법칙을 주재
화의 의미 조화와 교화의 의미가 나타남 조화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남
인간의 영역 개인 삶에서 무위이화 실현 수행자가 한울님의 감응을 통해 군자로 됨 수행자가 증산의 덕화로 어려움이 해소됨
이상적 인간 한울님의 가르침으로 군자로 변화됨 상제 주재하에 도통과 관련된 신명과의 조화로 도통군자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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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은 동양고전의 무위이화 개념을 계승했지만, 두 사상가의 교의에 따라 차별화된 특징을 드러낸다. 특히, 하늘과 인간 영역에서 무위이화가 실현되는 과정에 차이가 있다. 수운은 한울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중시하며 인간의 도덕적 수양을 통해 세계를 개벽하고자 하였다. 즉, 한울님과 감응하는 인간의 능동적인 노력을 통해 세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반면, 증산은 인신으로 강세하여 천지공사를 통해 세계 개벽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천지공사는 증산이 직접 세계를 개벽하는 과정으로, 수운 사상에 비해 신적 권위를 강조한다. 그리고 증산은 천지공사의 대의에 따라 천지신명이 상제의 주재 아래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며 세상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증산은 수행자가 수양에 정진할 때 상제의 덕화와 더불어 수행 정도에 따른 신명과의 합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즉, 개인의 수양 정도에 따라 신명과의 조화가 결정되며, 이는 후천선경 참여와 이상적 인간이 되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상가의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수운은 인간 수양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했지만, 증산은 천지공사, 신도의 법칙, 수양을 통한 인간과 신명의 합일 등을 종합적으로 강조하며 후천선경을 건설하고자 하였다.70)

Ⅴ. 맺음말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 사유와 그 종교적 함의를 상제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 두 사상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분석하였다. 맺음말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두 사상가가 활동했던 역사적 상황을 돌아보며 수운과 증산이 전통적인 무위이화론을 어떠한 이유와 맥락에서 변용하고 계승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야만 수운과 증산이 전개했던 무위이화론의 사상사적 의미를 보다 깊이 있게 읽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운과 증산이 활동했던 시대는 국가 존망이 걸린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조선은 외세의 위협 속에서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세도정치의 폐단이 심화하면서 권력층의 도덕적 기반은 붕괴하고, 국가 재정의 위기는 만성화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느낀 민중들의 민란이 전국 각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이 상황 속에서 외세 침략은 더욱 가중되었고, 결국 1876년 강제 개항을 시작으로 1880년대 이후에는 서구 열강들과의 불평등 조약이 연이어 체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내적으로는 기존 질서의 근간이었던 유학적 가치의 붕괴를 가속화하였고, 외적으로는 서양 문물과의 급격한 접촉과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내우외환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존 질서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수운과 증산은 새로운 신념 체계를 구축하였다. 두 사상가는 당시의 세계를 ‘선천’이라고 규정하고,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세상을 ‘후천’이라고 명명한다. 또한, 두 사상가는 자신의 종교적 교의를 세상 사람들에게 펼치는 한편, 이러한 교의를 바탕으로 도탄에 빠진 세상 사람들 스스로가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 가르침을 펼쳐 나갔다. 수운과 증산은 제도의 개혁이 아닌 개인들의 수양을 통해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였을 때, 수운과 증산이 동양 전통의 무위이화론에서 어떠한 점을 변용하여 계승하였는지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은 상제에 대한 신앙과 경외심을 통해 도덕 실천을 이끌어내는 개념으로 변용되었다. 다시 말해, 기존의 무위이화론은 성인이나 군주가 덕을 함양하는 것을 통해 백성을 이치에 맞게 다스린다는 점이 강조되지만,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은 상제에 대한 경외심이나 상제의 조화에 의해 세상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처럼 무위이화를 실천하는 주체를 군주와 성인에서 상제로 변용함으로써,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수운과 증산은 기존의 유학적 가치 체계가 민중들에게 도덕의 실천과 더불어 사회의 변혁을 가져오기에는 실천력이 부족하다고 이해하였다. 당시 민중들은 유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의 변혁 사상보다는 자신들의 신분적 한계를 넘어선 삶의 안정과 새로운 이상사회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이에 수운은 당시 시대적인 위기를 극복할 주역은 무궁한 존재를 믿고 한울님을 몸에 모신 민중들이라는 신념을 주었고 증산은 천지공사를 통해 현실의 재앙을 해소하고자 하였으며 상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수양할 것을 훈유하였다. 이처럼 수운과 증산은 사회·정치적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 속에서 기존의 사회 이념을 비판하고, 자신들만의 종교적 대안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두 사상가는 상제의 뜻을 받들며 일상에서 도덕 실천을 지속할 수 있는 이론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수행자들에게 상제에 대한 믿음과 그 가르침이 수행의 중요한 지침이 되도록 하였다.

둘째,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은 인간의 주체적 노력을 통해 개인의 삶에서 무위이화가 실현되는 개념으로 변용되었다. 즉, 상제가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린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이 올바른 수양을 통해 상제와 감응함으로써 상제의 조화를 받아 내면을 변화시키거나, 수행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확장된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의 무위이화 개념은 군주와 성인의 노력으로 백성이 감화되어 변화해 간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 개념에서는 개인의 능동적인 노력을 통해 상제의 조화를 받아 스스로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는 점이 더욱 강조된다. 수운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동등할 뿐 아니라, 한울님이라는 신을 모시고 있기에 그 한울님과 함께 무궁한 존재라고 주장하며, 민중들에게 수양을 통해 지상신선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수운의 사상은 반상, 남녀, 노소의 봉건적 차별을 초월하는 평등사상을 종교적 바탕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증산은 지배계층에서 소외된 민중들에게 도덕 실천을 더욱 강조하였다. 증산은 민중들에게 선천의 질서가 사라지고 후천의 질서가 삼계에 걸쳐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마음 수양을 통해 신명과 조화를 이루면 후천 시대를 이끌어갈 도통군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수운과 증산의 사상에서 후천은 위정자나 권력층이 아닌 새로운 각성을 이룬 민중들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간들의 능동적인 도덕 수양을 통한 세상의 변혁이 필요하다고 사유했던 수운과 증산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제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경외심에 기반한 이론적 추동력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즉, 두 사상가는 상제에 대한 신앙과 경외심을 도덕 실천의 주요한 동력으로 여긴 한편, 이러한 수양을 통해 후천 선경을 건설해 나갈 책임을 인간에게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도덕 실천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사유 체계를 구상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만약 수운과 증산이 상제의 조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만을 강조했다면, 인간은 도덕적 추동력을 상실하고 타율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도덕적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의 힘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논자는 수운과 증산이 도덕 실천을 통해 개인의 삶에서 무위이화가 실현되는 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수양을 통해 언제나 상제 및 신명과 감응할 수 있다. 인간이 상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지속적인 도덕을 실천한다면, 무위이화의 실현은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논자는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이 도덕적 삶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실천적 기반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도덕 실천을 통해 수행자는 이상적 인간으로 거듭나, 도덕적 가치가 실현되는 새로운 세상인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은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종교적 의도를 담고 있다. 두 사상가는 무위이화 개념을 ‘성인과 군자-백성’의 기존 관계에서 ‘상제-인간을 비롯한 천지 만물’의 새로운 관계로 확장하여 해석하였다. 이는 상제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한 것이다. 두 사상가의 무위이화 개념에는 상제의 조화성이 내포되어 있다. 상제는 세상을 다스리는 주체이며, 무위이화의 원리에 따라 세상을 조화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또한 두 사상가는 수양을 통해 인간이 상제의 조화에 힘입어 무위이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수양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넘어 상제의 뜻을 인식하고 후천으로 가는 세상의 변화에 동참하는 중요한 실천적 행위이다. 즉, 두 사상가의 무위이화 개념에는 상제의 조화성을 내포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수양의 실천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두 사상가의 무위이화론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민중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수양 방안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끌어내고자 하였다. 이는 단순한 형이상학적 논의를 넘어 당시 시대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실천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Notes

본 논문의 Ⅱ장 ‘무위이화에 대한 수운과 증산의 사유’ 중 ‘무위이화에 대한 증산의 사유’ 부분은 최정락, 「대원종 :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의미」, 『대순회보』 265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23)의 내용을 수정 및 보완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道德經』 57장, “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김충열, 『김충열 교수의 노장철학강의』 (서울: 예문서원, 1995), pp.171-175 참고. 김충렬은 무위에 대해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힘들이지 않고 하는 행위이며 자연스런 행위로서, 인간의 행위 또한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법칙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라고 주장한다.

『論語』, 「衛靈公」, “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주자는 이 구절에 대해 순임금이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여 여러 직책을 맡기고, 그들의 역량을 활용하여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렸다고 설명한다. 『論語集註』, 「衛靈公」, “無爲而治者, 聖人德盛而民化, 不待其有所作爲也. 獨稱舜者, 紹堯之後, 而又得人以任衆職, 故尤不見其有爲之吳也. 恭己者, 聖人敬德之容. 旣無所爲, 則人之所見如此而已.”

수운은 지고신 및 절대적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 상제, 한울님, 천주, 하느님, 지기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최종성은 수운이 민중의 호응을 얻었던 초월적인 하느님 신앙과 더불어,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서학의 일신론적 경험을 수용하여 신 중심적인 시천주 신학을 새롭게 제시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증산의 문헌에 따르면, 증산은 최고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삼계 개벽의 천지공사를 주관하고, 도래할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차선근은 증산을 인간의 감성을 지닌 채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과 함께하며 삼라만상의 구원자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하느님이라고 규정하고, 수운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초월성과 내재성이 혼재된 한울님과는 달리, 증산은 내재성을 포괄하면서도 초월성이 더욱 강조된 상제로 대비된다고 설명한다. 이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최종성, 『동학의 테오프락시 : 초기동학 및 후기동학의 사상과 의례』 (서울: 민속원, 2009), pp.96-102; 차선근, 「수운과 증산의 종교사상 비교 연구 : 하늘관과 수행관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69 (2012) 참조.

신일철, 「동학의 “무위”적 시민사회관」, 『동학연구』 6 (2000).

이상원·권광호, 「동학 경전에 나타난 도가적 사유」, 『인문과학연구』 25 (2010).

황종원, 「동학의 무위 사상 연구」, 『대동철학』 6 (2014).

김용휘,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 비교 연구」, 『동학학보』 51 (2019).

안영상, 「경북지역의 사상적 풍토에서 본 동학의 위상 : 퇴계에서 수운까지 사상적 변천을 중심으로」, 『동학학보』 10 (2006).

고남식, 「증산의 도가적 경향과 무극도의 도교적 요소」, 『대순사상논총』 17 (2004).

김용환, 「생장염장(生長斂藏)·무위이화(無爲而化)의 상관연동 연구」, 『대순사상논총』 26 (2016).

『東經大全』, 「布德文」, “造化者, 無爲而化也.”

대순진리회 교무부, 『전경』 13판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예시 73절.

같은 책, 예시 9절. 『증산의 생애와 사상』에는 “이 사상은 반 우주론과 사회의 개혁사상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 개혁에 의해서 증산께서는 사람들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늘과 땅과 인간 사회를 조화(造化)하셨던 것이다. … 천개지벽에는 한분의 조화자에 의한 조화가 필수 불가결하다.”(pp.328-329)라는 기록과 “증산께서 조화자(造化者)로서 땅을 열어 놓기에 앞서, 세계의 곳곳의 지덕력을 뽑아서, 그 나라의 웅패력(雄覇力)을 억제하여 세계 평화를 수립하셨다.”(p.338)라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강증산(姜甑山) 성사(聖師)께서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p.10)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에 따르면 구천대원조화주신은 구천에 있는 가장 으뜸이며 근본이 되는 조화주 하느님이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東經大全』, 「論學文」, “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故 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作不忘之詞 次第道法 猶爲二十一字而已” 『동경대전』의 해석은 최동희·이경원, 『새로 쓰는 동학 : 사상과 경전』 (서울: 집문당, 2003); 윤석산, 『주해 동경대전 : 동경대전 판본 이해』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1); 김용휘, 『최제우의 철학 : 시천주와 다시개벽』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2)을 참고하였음.

『東經大全』, 「布德文」, “曰吾道無爲而化矣.”

윤석산, 『동학사상과 한국문학』 (서울: 한양대학교 출판부, 1999), p.215 참고.

『東經大全』, 「布德文」, “盖自上古以來 春秋迭代四時盛衰不遷不易 是亦天主造化之迹 昭然于天下也 愚夫愚民 未知雨露之澤 知其無爲而化矣.”

동학에서 한울님은 절대자로서 만물을 화생하는 조화의 주재자이자, 인간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신으로,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존재이다. 본 논문에서는 수운의 상제를 ‘한울님’으로 통일하여 표기한다.

같은 책, 「論學文」, “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西人 言無次第 書無 白而 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윤석산은 무위이화에 이르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하였다. 윤석산, 『용담유사 연구』 (서울: 모시는사람들, 2006), p.301.

한울님 조화(化出于自然之中)
사람(修其心正其氣率其性受其敎) 무위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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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潭遺詞』, 「勸學歌」.

같은 책, 「道修詞」, 삼칠자는 21자로 이루어진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이다.

같은 책, 「興比歌」.

『東經大全』, 「論學文」, “曰呪文之意何也 曰 至爲天主之字故 以呪言之 今文有古文有.”

최동희·이경원, 앞의 책, p.86.

선행연구들은 ‘화’의 해석에서 교화의 관점보다는 한울님의 조화에 힘입어 인간이 변화해 간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상원·권광호는 천도의 측면에서 만물의 생성과 운행 질서가 한울님의 조화로써 이루어지고, 인도의 측면에서는 한울님의 덕과 조화의 힘으로 감화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황종원은 수운의 무위이화 개념이 인간 내적인 측면에서 한울님의 조화에 힘입어 인간 자신의 삶이 변화한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주장한다. 김용휘는 수운의 무위가 하늘 조화의 덕에 마음을 합치하는 마음의 수렴과 합일의 차원을 강조하는, 즉 수심정기로 표현되는 수양적 의미에서 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원·권광호, 앞의 글, p.314; 황종원, 앞의 글, p.36; 김용휘,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 비교 연구」, p.234.

『전경』, 예시 73절. ‘이것이 곧 무위화’라는 말과 ‘이것이 곧 무위이화’라는 말은 이(而) 자만 다를 뿐 해석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 없다.

같은 책, 공사 1장 3절.

신도에 관한 정의는 차선근, 「신년기획 : 신축년에 천지대도를 열으시고 (상, 하)」, 『대순회보』 240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21) 참고. 차선근은 신도가 우주의 근원적⋅보편적 진리, 혹은 우주의 운행과 질서유지를 담당하던 신명계 그 자체를 뜻한다고 정의한다. 그리고 『전경』에 나타나는 신도의 의미는 천도(天道), 신명계, 신명계의 질서, 상생의 후천 천지대도 등 여러 가지라고 설명한다.

『전경』, 예시 9절. 천지공사의 교리적 의의에 관한 내용은 이경원, 「구천상제론의 시각에서 본 천지공사의 실제와 교리적 의의에 관한 연구」, 『대순사상논총』 22 (2014); 천지공사의 정의에 관한 내용은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21), p.101 참조.

같은 책, 교법 3장 27절. 『대순전경』 6판 찬(贊)에 따르면 “선천백대는 신계혼란시대(神界混乱時代)라 음신(淫神)의 도량(跳梁)으로 위구불안(危惧不安)의 세태험란(世態險乱)터니 대공사가 행한 뒤에 후천운(後天運)이 열리며 조화정부(造化政府) 열렸도다 신명(神明)을 통제(統制)하사 도수(度數)를 획정(劃定)하시니 무위이화(無爲以化) 절로 되리로다”라고 하였다.

같은 책, 교법 3장 27절.

『六韜三略』, 「文韜·守國」, “太公曰:“天生四時, 地生萬物. 天下有民, 仁聖牧之. 故春道生, 萬物榮; 夏道長, 萬物成; 秋道斂, 萬物盈; 冬道藏, 萬物尋. 盈則藏, 藏則復起, 莫知所終, 莫知所始. 聖人配之, 以為天地經紀. 故天下治, 仁聖藏; 天下亂, 仁聖昌; 至道其然也.”

『道德經』 74장,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若使民常畏死而爲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常有司殺者殺. 夫代司殺者殺, 是謂代大匠斲. 夫代大匠斲者, 希有不傷其手矣.”

『周易傳義』, “元者, 萬物之始, 亨者, 萬物之長, 利者, 萬物之遂, 貞者,萬物之成.”

사의와 관련하여 증산의 종통을 계승한 도전(都典) 박우당(朴牛堂, 1917~1995)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즉 생장염장의 법이 있어, 낳고 크고 열매 맺고 새로 돌아가는 것이다.”[「우당 훈시」(1989. 5. 30)]라고 하였다.

『전경』, 행록 4장 52절.

이러한 관점은 「우당 훈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당 훈시」(1985. 4. 13), 『대순회보』 268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23), p.5, “임원과 수반(修班), 위와 아래의 도인들은 본분을 지켜 실천·노력하고 닦음을 굳건히 하면 비록 역경의 화(禍)에 부딪쳐도 무위이화(無爲而化)로 풀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덕화(德化)를 입는 일입니다. 수도는 항상 석암향명(昔暗向明)의 길임을 명심해 나가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상원·권광호는 “동학에서는 도가의 도를 인정하면서도 그 도를 주관하는, 조화의 주체 하늘님을 가르침의 근원으로 삼았다는 점에 도가와 차이가 있다.”라고 지적하며, 수운의 무위이화는 일차적으로 한울님의 조화로 천지가 운행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또한 최치봉은 대순사상에서 무위이화의 ‘화(化)’는 도가와 유가에서 말하는 교화(敎化)가 아니라 조화(造化)임을 강조하면서, “대순사상의 무위이화는 우주의 만유를 생성하고 기르는 최고신의 조화가 무위함을 언급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조화의 주체는 상제이고 조화의 대상은 사람을 포함한 우주 만유의 삼라만상이라고 설명한다. 논자는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이에 관한 내용은 이상원·권광호, 앞의 글, p.318, p.322; 최치봉, 「돋보기 : 무위이화에 관한 오해와 이해」, 『대순회보』 285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24) 참조.

『東經大全』, 「布德文」. 김용휘에 따르면, 수심(守心)은 하늘로부터 본래 받은 마음을 회복하고 그 마음을 지켜나가는 것을 의미하고, 정기(正氣)란 몸의 기운을 조화롭게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동학의 수도법이자 수도의 원리이다. 김용휘, 『최제우의 철학 : 시천주와 다시개벽』, pp.86-87.

윤석산,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서울: 모시는사람들 2004), pp.68-69 참고.

『龍潭遺詞』, 「安心歌」.

같은 책, 「勸學歌」.

『東經大全』, 「論學文」, “음양이 서로 고루어 백천만물이 그 속에서 화해 나지마는 오직 사람이 가장 신령한 것이라(陰陽相均 雖百千萬物 化出於其中 獨惟人最靈者也).”

『龍潭遺詞』, 「敎訓歌」, “부(富)하고 귀(貴)한 사람 이전 시절 빈천(貧賤)이오 빈(貧)하고 천(賤)한 사람 오는 시절 부귀(富貴)로세 천운(天運)이 순환(循環)하사 무왕불복(無往不復) 하시나니.”

같은 책, 「勸學歌」, “쇠운(衰運)이 지극하면 성운(盛運)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同歸一體) 하였던가” 동귀일체에 대한 정의는 윤석산, 『동학사상과 한국문학』, pp.218-219 참고.

같은 책, 「道德歌」, “이는 역시 조화(造化)로세 그러나 한울님은 지공무사(至公無私)하신 마음 불택선악(不擇善惡) 하시나니 효박(淆薄)한 이 세상을 동귀일체(同歸一體) 하단 말가.”

『전경』, 교운 1장 9절 참고. 증산사상에 있어서 상제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증산천사공사기』에서 증산은 ‘천사(天師)’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천사는 곧 상제를 의미한다. 또한 『전경』에서 ‘상제’라는 호칭은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며, ‘천신(天神)’ 역시 최고신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쓰인다.

같은 책, 예시 17절.

『전경』에 따르면 증산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종교적 행위를 한다. 고남식은 『전경』 「권지」편에서 나타난 삼계대권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고남식, 「『전경(典經)』 「권지(權智)」편 연구」, 『대순사상논총』 37 (2021) 참조.

천계대권 풍운조화(風雲造化), 기후(氣候), 천문(天文), 신명(神明)과 관련된 구절
지계대권 치도령(治道令)과 같은 땅의 상태와 관련된 구절
인계대권 상제 자신을 밝힘, 상제의 둔(遁), 미래의 인간사를 예시, 인간의 잘 못된 욕망을 막음, 인간의 마음을 통찰, 인간의 꿈이나 기원을 앎, 인간의 행동을 통찰, 인간의 동작을 제어함, 제생(濟生), 사회적 문 제 해결과 관련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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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선경의 낙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동학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선생(大先生)이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 곧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윤사순·이광래는 “천지공사가 상제 위치에 있는 존재의 ‘조화 능력의 구현’을 일컫는 것임에 생각이 미치면, 동학의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 나의 일’이라 한 것도 이해된다. 강일순이 자신을 스스로 천주에 해당시키면서 조화로서의 천지공사를 말한 점에서 보면, 후천개벽을 앞세우고 제시한 ‘선경(仙境)’ 또는 ‘지상천국’에 대한 그의 약속은 오히려 동학의 경우보다 더 대담한 종교적 신념의 표출인 셈이다.”라고 평가한다. 윤사순·이광래, 『우리 사상 100년』 (서울: 현암사, 2001), p.63.

최정락, 「증산 도덕론의 실천적 성격 연구」, 『철학연구』 70 (2024), pp.10-15 참고.

『대순지침』에는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임을 누차 말하였으나 깨닫지 못함은 신도와 인위적(人爲的)인 사도(邪道)를 구별하지 못한 까닭이다.”(p.39)라는 기록이 있다.

『전경』, 교운 1장 19절.

같은 책, 교법 1장 29절.

증산의 천지공사는 ‘천지공정’이라고도 표현된다. 천지공정에는 사(私)를 배제하고 공(公)을 지향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에 관한 논의는 최정락, 「대순사상의 공사론(公私論)에 나타난 종교적 함의」, 『대순사상논총』 49 (2024) 참조.

『전경』, 예시 73절.

이러한 관점의 해석은 최치봉의 시각을 참고하였다. 최치봉은 증산의 조화로 인사의 일이 해결되었다면 그것은 종도가 바름을 행하기 위한 측면이자 천지공사를 받들어 행하는 가운데 생겨난 걱정을 해결해 주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치봉, 앞의 글.

『전경』, 행록 4장 28절 참고.

우당의 훈시에는 수행자가 자기 직분을 다했을 때 바른 방향으로 무위이화가 이루어진다는 기록이 보인다. 「우당 훈시」(1986. 9. 28), 『대순회보』 275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23), p.9,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라 하셨으니 위가 진실하면 덕을 베푸는 길이 열리고 아래가 진실하면 은혜를 갚는 길이 열리니 이 일이 곧 은혜를 서로 베푸는 일입니다. 상봉하솔(上奉下率)의 질서가 서고서야 화합단결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되나니 수도하는 도인 또한 우리 도의 포덕천하의 진리가 멀고 먼 데서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닦는 상봉하솔의 대순진리의 수도에 있음을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증산은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천지신명들이 굽어살피고 있다(大大細細 天地鬼神垂察).”(『전경』, 공사 3장 40절)라고 하고,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 주면 되려니와 도통될 때에는 유 불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전경』, 교운 1장 41절)라고 언명한다.

『전경』, 교법 3장 4절.

같은 책, 교법 2장 11절.

이와 관련하여 노길명은 증산이 봉건적 계급 질서로부터 소외되고 억눌려 온 피지배계급을 민중으로 보았으며, “그의 사상은 민중의 意識低邊에 깔려 있던 在來의 원한 의식을 汎社會的·汎人類的으로 확대시키고 메시아 신앙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민족 고유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윤사순·이광래는 증산이 제시한 후천 사회는 빈부의 차이마저 소멸된 사회라고 설명하며 증산의 이상세계는 민중 중심의 세계를 지향한다고 평가하였다. 노길명, 「증산의 민중사상」, 『증산사상연구』 12 (1986), pp.218-220; 윤사순·이광래, 앞의 책, p.64.

『전경』, 교법 1장 24절, 교법 2장 8절, 교법 3장 1절.

같은 책, 교법 2장 55절 참고.

같은 책, 예시 81절.

수운과 증산은 조화 사상에서 외적 조화와 내적 조화를 동시에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수운은 초월적 존재에 의한 만물의 조화와 수행자의 내면적 조화를 통합적으로 제시하며, 특히 한울님과의 기운 일치를 통한 내적 조화를 강조한다. 이는 삼칠자 동학 주문 수행을 통해 구체화된다. 증산 역시 외적 조화와 내적 조화의 두 측면을 포괄하며, 기도 주문 암송을 통해 내적 조화를 추구하는 수행 방식을 제시한다.

향후 연구에서는 수운과 증산의 무위이화론을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심층적으로 비교·분석하고, 그 사상적 차이를 변화론적 관점에서 계승 또는 발전 관계로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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