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고래에 관한 믿음과 의례: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도상 이해를 위한 모색

서영대1,*
Young-dae Seo1,*
1인하대학교 명예교수
1Professor Emeritus, Inha University

© Copyright 2025,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ul 25, 2025 ; Revised: Sep 10, 2025 ; Accepted: Sep 25, 2025

Published Online: Sep 30, 2025

국문요약

이 글은 반구대 암각화를 대표하는 고래 그림의 의미 해명을 위한 모색의 일환으로, 고래 관련 신앙과 의례를 살펴본 것인데,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고래 관련 신앙과 의례들을 살펴보는데 필요한 전제들 몇 가지를 언급하였다. 즉 고래신앙은 해양민의 신앙이며 생존포경 종사자의 신앙인데, 현재는 고래의 멸종 위기와 그에 따른 포경의 제한, 여기에 기독교의 영향으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변질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제2장; 세계 각지의 고래에 대한 신념체계(belief system)을 문헌과 현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개관해 보았다. 그 결과 고래신앙에는 고래를 신성한 존재로 믿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재앙을 주는 괴물 같은 부정적 존재로 믿는 관념도 있고, 나아가 고래를 영혼이 있는 동물로 여기는 인식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제3장; 고래에 대한 의례들을 살펴보았는데, 먼저 고래의례는 포경지역에서 주로 행해진다는 점, 또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은 고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나와 식량의 계속적 공급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제4장; 이상과 같은 고래신앙과 의례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반구대 암각화에 보이는 고래 그림의 성격과 의미를 해석해 보았다. 그래서 그것은 고래사냥을 마친 후, 고래의 위령제 겸 귀환을 기원하는 의례를 위한 것이며, 따라서 반구대는 고래의례를 비롯한 수렵의례의 제장이란 것이다. 이와 아울러 울산의 고래사당으로 알려진 신사당에 대해 주어진 자료를 토대로 언급해 보았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결론이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하면서, 그 문제점을 열거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였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whale-related beliefs and rituals as part of a search for clarifying the meaning of whale paintings represented by the Bangudae petroglyphs in Ulsan. This study summarizes the results as follows.

Section 1 mentions some of the premises necessary to examine the beliefs and rituals related to whales. In other words, it was mentioned that whale-beliefs are the beliefs of marine people and survival whaling workers, and that the original appearance is changing significantly due to the danger of driving whales to extinction, the consequent restrictions on whaling, and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

Section 2 provides an overview of the belief systems of whales around the world based on literature and field survey data. As a result, it was examined that in whale-beliefs, there are beliefs in whales as sacred beings, there are notions that believe in negative beings like monsters that cause disaster, and furthermore, there are perceptions that whales are considered soulful animals.

Section 3 examines whale rituals, and first, whale rituals are mainly performed in whaling areas. Consequently, the purpose is to enable the whale spirit to return to its hometown and return to the human world to provide continuous food supply.

Section 4 showed that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whale-beliefs and rituals as described above, the character and meaning of the whale paintings shown in the Bangudae petroglyphs can be interpreted. In this context, it can be understood as a ritual to pray for the return and a memorial service for whales after the whale hunt is completed, and thus, Bangudae is a ritual for hunting and includes whale rituals. In addition, Shinsadang is mentioned to be known as a whale shrine in Ulsan, based on the data given.

However, in order for the above conclusions to be valid, there are several problems to be solved, and the article concludes with a list of those problems.

Keywords: 고래; 고래신앙; 고래의례; 타부; 반구대 암각화; 영혼의 재생; 포경
Keywords: whale; whaling; beliefs in whale; whale rituals; taboo; Bangudae petroglyphs; regeneration of the soul;

Ⅰ.머리말

고래는 특이한 동물이다. 지구상의 동물 중에서 길이가 가장 길고, 무게는 가장 무겁다.1) 또 물속에 살면서도 알이 아니라 새끼 낳아 젖을 먹여 기르는가 하면, 분기공을 통해 물기둥(실은 수증기)을 내뿜으며, 꼬리가 몸통과 수평을 이룬다는 점[水平尾]도 다른 어류와는 다르다(<그림 1> 참조).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오늘날에는 어느 정도 과학적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지 못한 예전의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고래의 특이함을 설명하고자 했고, 나아가 과장까지 하면서, 마침내 고래는 동물 그 이상의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예컨대 엄청난 덩치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함에 따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2) 기존의 범주로는 분류가 어렵다는 이유에서 신비의 대상이 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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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명대의 도해관음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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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신비 중에서 공포란 측면만 강조될 경우, 고래는 괴물 내지 부정적 존재로 관념되기 쉽다. 고래를 불의한 사람,4) 또는 왜적에 비유하는 것은5) 부정적 관념의 연장이다. 나아가 고래는 재앙의 근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고래를 두려울 뿐만 아니라, 신비한 것으로 여기고, 나아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긍정적 존재로 여겨 이끌림의 감정을 느낄 때, 고래는 긍정적 신앙의 대상이 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고래가 자연물 그 자체, 또는 생물학 존재 그 이상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고래에 대해서는 일정한 믿음이 생겨난다. 그리고 믿음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데, 고래에 대한 일련의 의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고래 관련 믿음과 의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고래에 대한 믿음과 의례는 지구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연구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정리한다는 것이 만용에 가깝다. 따라서 이 글은 그동안 필자가 찾아본 몇 안 되는 자료를 토대로 한 것에 불과하기에, 스스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고백해 둔다.

또 한 가지 미리 밝혀둘 것은 고래에 관한 신앙과 의례를 살펴보고자 한 데에는 나름대로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고래 도상의 의미를 해독해 보고자 해서이다. 필자는 이러한 작업을 오래전에 진행한 바 있었다.6) 그러나 당시는 고래에 대한 믿음과 의례에 대한 이해 없이, 다시 말해 이론적 배경 없이, 직관적인 판단에 따라 논지를 전개했기 때문에 스스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러한 한계를 반성하면서, 먼저 고래에 대한 믿음과 의례를 살펴본 다음, 이를 토대로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도상에 대한 의미 해독을 시도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은 구고를 전면 개고한 것임을 밝혀둔다.

Ⅱ. 고래에 관한 믿음과 의례 이해를 위한 전제

고래의 존재, 나아가 그것이 어떤 동물인지에 대한 인식은 고래를 실제 접해 보지 못한 지역에도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고래를 못 본 사람조차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鯨鬪蝦死]”나 “술고래”, 또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그중에서도 고래를 두렵고 신비한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지역에 고래에 관한 믿음과 의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존재하는 지역으로는 시베리아 북동쪽의 츄코트카(축치) 반도와 캄챠카 반도, 알래스카를 비롯한 북아메리카 북부,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고래가 생활이나 생존과 밀접한 해안이나 도서 지역에 한정된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원인에서 해변으로 표착하거나 또는 바다로 나가 잡은 고래를 식량 등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지역에서 고래에 관한 믿음과 의례가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래신앙과 의례는 해양민의 종교라 할 수 있다. 고래숭배가 두드러진 베트남에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민들의 신앙일 뿐, 인접 지역의 농민들은 그것을 미신으로 간주하여 업신여긴다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하게 해준다.7)

고래가 생활이나 생존과 밀접한 것은 해양민만이 아니다. 원양에서의 상업포경이 활발해진 근대에는 포경업 종사자 역시 그러하다. 따라서 한번 출항하면 길게는 4년까지 선상에서 조업했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고래에 대한 믿음과 습속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관련 정보가 부족하여 현재로서는 그 유무를 알기 어렵다. 이에 비해 생존을 위해 전통적으로 고래를 이용하던, 또 포경을 하더라도 생업을 위해 고래잡이를 하던 지역이나 사회에서는8) 고래에 관한 믿음과 의례 관련 자료가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서술의 범위를 근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고래 관련 믿음과 의례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통적 고래 관련 믿음과 의례는 현재 급격히 사라지거나 변질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근대 포경업의 발달로 고래의 개체수가 급속히 감소됨에 따라 표착경은 말할 것도 없고 포경에 의한 고래의 획득도 점차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생존 자원으로 고래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고래에 관한 믿음과 의례도 서서히 사라져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외래종교로의 개종으로 말미암아 전통적 고래신앙이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알래스카 배로우 촌(Point Barrow)의 이누피아트(Iñupiat) 족은 전체가 개신교로 개종하였고, 이에 따라 포경 시즌에는 포경선의 선장이 성경을 머리 위로 들고 고래가 나타나기를 빌었고, 포경 시즌이 끝난 후에는 교회로 가서 고래를 잡도록 해 준 데 대해 감사제를 지내면서 다음 시즌에도 포경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는 것이 그러한 것이다.9) 또 알래스카 호프 촌(Point Hope)의 에스키모는 모두 성공회로 개종했고, 3일간 계속되는 전통적 고래축제를 교회의 예배로 시작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이다.10) 그러나 외형의 기독교화에도 불구하고 그 근저에는 전통신앙의 관념이 깔려있다고 한다.11) 인도네시아의 고래 마을 레마레라(Lemalera)는 마을 주민 전체가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고래잡이도 가톨릭 신앙에 의지하는 바 컸는데, 거석기념물인 멘힐을 성당의 제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이를 통해 고래신앙이 새롭게 바뀐 것이 아니라, 기존 전통의 위에 외래종교가 덧씌워졌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다루는 고래 관련 믿음과 의례는 사라지기 이전, 변질되기 이전의 그것임을 미리 언급해 둔다.

Ⅲ. 고래에 관한 믿음

고래에 관한 믿음이란 고래를 평소 경험되고 확인되는 동물, 그 이상의 존재란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다양한 상상과 추론에서 도출된 것이므로, 그 믿음의 내용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고래 관련 믿음의 내용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고래를 신 또는 신에 준하는 존재란 믿음이다. 이때 신이란 고래의 서식지가 바다인 만큼 바다의 신, 즉 해신을 말한다. 어떤 존재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을 능가하는 힘이 있고, 또 그 힘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영향력은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휘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고래의 경우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우선 고래가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란 믿음의 사례부터 지역별로 제시한다.

  • ■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단의 이아수스(Iasus) 마을에서 어떤 아이와 친하게 지내던 돌고래가 죽자, 해신 넵투누스가 아이를 좋아한다고 여겨, 아이를 바빌로니아 넵투누스 신전의 제사장으로 삼았다. 이것은 돌고래를 해신으로 여겼음을 의미한다.12)

  • ■ 사할린 북쪽과 아무르 강 하류에 거주하는 길리약(Gilyak=Nivkh) 족은 범고래를 모든 동물의 지배자로 여기거나,13) 물고기를 몰아다 주는 은혜로운 정령 또는 신의 사자로 숭배한다.14)

  • ■ 사할린 거주하는 오록(Orok) 족은 범고래를 경외하는 신으로 간주한다.15)

  • ■ 중국의 동해안 연해 및 도서 지역에서는 고래를 해신으로 숭배하는데, 특히 절강성 남부에서는 3월 봄이 시작될 때 처음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고래를 해신으로 숭배하고 제사했다. 그것은 고래가 지역 어민들의 삶에 여러 가지 도움을 주기 때문인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몰아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고래가 고기 떼와 함께 몰려가는 것을 ‘과용병(過龍兵)’이라 하는데, 실제 이것은 고래가 먹잇감을 쫓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산동 지역의 어민들은 고래가 물고기를 거느리는 것 또는 물고기들을 몰아주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래서 고래 뒤를 따라 가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과용병을 만나면 감히 앞서가려 하지 않고 향을 피우고 지전을 태우면서 머리를 조아려 바다에 제사한 다음, 뒤를 따라가면서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고래는 물에 빠진 선원을 구해주고, 나쁜 상어가 항구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등, 여러 가지로 인간에게 이익을 준다고 믿었다(廈門 지역). 그래서 육지에서나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면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했고, 고래를 말해야 할 때는 고래라 하지 않고 다양한 경칭을 사용했다. 예컨대 산동 지역에서는 ‘노인가(老人家)’ 또는 ‘노야자(老爺子: 모두 어르신, 노인장이란 의미)’라 하거나, 부자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신이란 의미에서 ‘재신조공원수(財神趙公元帥)’ 또는 ‘노조(老趙)’16)라 했으며, 주산군도에서는 물고기의 우두머리란 의미로 오경장군(烏耕將軍)라 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17) 이러한 인식은 일찍부터 존재했다. 후한 말 고유(高誘)가 『회남자』 「천문훈」을 주석하면서 고래는 “바다 물고기의 왕”이라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 ■ 홍콩의 수상생활자들은 고래류를 성어(聖魚)라 하면서 사원에서 제사하고, 공덕을 쌓기 위해 포획하더라도 잡아먹지 않고 바다로 돌려보낸다.18)

  • ■ 중국에는 유명한 인물이 기경(騎鯨), 즉 고래를 탔다는 전승이 있는데, 시인 이백(李白, 701~762)과 반청 운동에 앞장선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이 그들이다. 이백 기경의 전설은 처음에는 이백의 호방한 기질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발전하여 물속에 있는 달을 잡으려다 익사한 이백을 상제가 하늘의 선관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고래를 보내 태워 오게 했다는 전승으로 발전했다고 한다.19) 또 정성공 전승에서 정성공은 고래가 인간으로 전생한 인물이며, 네덜란드가 점령하고 있던 대만을 고래를 타고 와 수복했다는 것이다.20) 이백 전승에서의 고래는 천상계와 인간계를 연결하는 존재란 점이 다소 특이한 면이 있으나, 양자 모두 주인공의 신성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래를 동원했다는 것은 일찍부터 고래가 초자연적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21)

  • ■ 일본에서는 고래가 바다의 지배자로 어로의 성공을 좌우하는 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다시 말해 잘 모시면 물고기를 몰아다 주는 반면, 화가 나게 하면 물고기를 쫓아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24) 그리고 일본의 민속종교에는 복을 가져다 주는 일곱 신의 하나로 에비스(惠比壽, 惠比須)신을 숭배하는데, 복의 성격은 모시는 주체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즉 농민은 풍년을, 상인은 상업 번창을, 어민은 물고기를 몰고 와서 때문에 풍어를 가져다준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어느 쪽이 원초적 관념인지가 문제인데, 어민의 신앙이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일반적으로 에비스는 오른손에 낚싯대를, 왼손에 물고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그림 4>). 그런데 에비스의 신체는 바로 고래였다는 주장까지 있다.25)

  • ■ 일본의 아이누족은 범고래를 바다를 통솔하는 ‘신의 고래“라고 하여 해신(가무이훔베)로 숭배한다. 아이누의 설화에 의하면, 범고래는 아이누 여인과 혼인했기 때문에, 고래를 몰아주어 식량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26)

  • ■ 베트남의 해안 마을에서는 고래를 카옹(Cá Ong, ‘할아버지 고기’라는 의미)이라 하여 신으로 받들어 모신다. 그래서 포경을 하지 않음은 물론 해안으로 떠밀려온 고래도 먹지 않는다.

    고래를 신으로 여기는 관념이 언제 출현했는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阮朝) 시기에는 그 존재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전승에 의하면, 응우옌 왕조의 초대 황제 자롱제(嘉隆帝, 1802~1819)의 배가 침몰하려 할 때 고래가 나타나 구해주었기 때문에 고래에게 남해거족옥린상등신(南海巨族玉鱗上等神)이란 신호(神號)를 올렸다고 하는데, 이러한 고래의 신호는 자롱제 재위 중에 편찬된 『황월일통지여지(皇越一統地輿地)』란 지리서에 이미 보이고 있다. 이것은 고래신앙이 응우옌 왕조 초기에는 이미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고래가 국가적 차원의 신앙 대상이었음을 의미한다. 국가 차원의 고래신앙은 이후로도 이어지는데, 2대 민망제(明命帝, 1819~1840)는 고래를 인어(仁魚)라고 했으며, 표착한 고래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비용을 지급하여 장례를 치르게 했다. 또 국가에서 수시로 고래에게 신호를 수여했는데, 현재 여러 고래 사당에 전하는 봉신문서는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이처럼 고래를 받든 것은 고래의 영험을 인정했기 때문인데, 바다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고 고기 떼를 몰아다 주는 등이 그것이다.

    응우옌 왕조 시기에 고래가 신앙의 대상으로 부상한 것은 수도인 후에(Huế)가 바다 가까이에 위치했다는 사실과 관계가 깊다. 다시 말해 후에가 수도가 됨에 따라 해운 활동이 활발해지고 해상 방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래서 고래는 어민들뿐만 아니라 해운과 해방(海防)에 종사하던 수군들까지 신앙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래신앙의 지역적 확산도 이루어진다. 고래는 원래 베트남 중부와 남부의 해안 지역의 신앙 대상이었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북부 지역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지역 차도 무시할 수 없는데,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고래를 높이는 정도가 줄어든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시사하는 것이 남부 지역의 고래사당에서는 고래 뼈와 함께 톱상어의 뼈를 함께 모신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명 구조에 태만한 고래를 상어가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고래가 상어의 감시를 받는 존재라는 것은 고래의 권위가 그만큼 실추되었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27)

    고래에 대한 신앙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기잡이를 나갔을 때는 물고기 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며, 폭풍을 만났을 때는 파도를 잠재우고, 물에 빠져 죽었을 때는 익사자의 영혼을 건져 집으로 데려다 준다고 믿는다는 것이다(선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익사로 말미암아 영혼이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영원히 방황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래는 해상의 안전과 풍어를 뒷받침하는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카옹은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마을의 안전도 지켜준다고 한다. 고래가 마을을 해치려는 괴물로부터 마을을 구했다는 설화는 이러한 관념의 소산이다.28)

  • ■ 불교에는 전생의 불타가 큰 고기로 변하여 자신의 몸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했다는 본생담이 몇 가지 전하고 있다. 예전에 자비로운 왕이 오랜 재난으로 기근이 들자 이를 해결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단식 끝에 죽어 커다란 물고기로 태어나 자신의 몸으로 백성들의 기근을 구했다는 것이다.29) 이것은 육지로 떠밀려온 표착경에 대한 불교적 해석이라 생각되지만,30) 이를 통해 불교에는 고래가 인간을 구제하는 신적 존재라는 관념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 캐나다 서쪽의 최서단의 퀸 샤롯테(지금은 Haida Gwaii) 섬의 하이다 인디언은 범고래를 바다의 정령으로 여긴다. 이들의 믿음에 의하면, 바닷속에는 인간과 수생동물로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바다 사람(ocean people)’이란 초자연적 존재들이 사는데, 이들의 우두머리는 범고래로 인간들의 식량이 되도록 향유고래들을 몰아다 준다고 한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할 때 범고래에게 요청하면 얼마 안 있어 향유고래가 표착하도록 해 주며, 이럴 때는 담배 등을 바다에 던져 감사를 표한다고 한다. 또 고기잡이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날 때 “주인님! 살려 주세요” 라고 외치면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31)

  • ■ 캐나다 서부 연안과 도서지역의 인디안인 틀링키트·누우 차 눌스[Nootka]·콰우키틀 족은 범고래를 토템으로 여기며, 특히 콰우키틀 족은 범고래가 천둥과 번개를 일으킨다고 믿는다.32)

  • ■ 페루의 나스카에서는 고래가 바다에 빠진 선원들의 영혼을 등에 태우고 이동한다고 믿는다.33)

  • ■ 미크로네시아 캐롤라인 제도에서는 고래가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는데, 하늘로 올라갈 때는 비가 온다고 한다.34)

  • ■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에는 땅은 고래가 변한 것이란 창세신화가 있다. 마오리의 조상 파이카야(Paikaya)가 고래 등에 타고 신천지를 찾아 나섰는데, 고래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해저로 가라앉자, 그는 창으로 고래를 찔렀고, 그때 솟아 나온 피는 땅이 되고 뼈는 산맥이 되었다. 그래서 마오리 사람들은 고래를 대지의 어머니라 했으며, 그들의 수장이 세상을 떠날 때 바다에 고래가 나타나면, 수장의 영혼이 돌아온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 고래는 신의 자손이라 하며, 해신의 아들로 물고기의 신 티니라우(Tinirau)의 애완동물인 동시에 탈 것이란 전승도 있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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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의 「李白騎鯨上天」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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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위도 대리 원당 신령씨당신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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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에비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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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사례들에 의하면, 고래는 바다의 지배자로서 인간들에게 물고기를 공급하는 어업의 신이다. 그리고 고래 중에서도 특히 범고래를 신으로 여기는 지역이 많다. 그것은 범고래가 다른 고래뿐만 아니라 어류들을 해안으로 몰아주는 일들이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물론 범고래가 자신의 먹이를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지만,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돌고래가 식량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고래는 해신으로서 해상의 안전을 지켜주며, 익사자의 방황하는 영혼을 구제한다고 믿어진다. 또 고래는 신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토템·신의 자손·신의 사자·신의 탈것 등으로, 다시 말해 신에 준하는 신성한 존재로 믿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에서 고래는 신령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오가며, 두 우주적 세계(cosmic zone)를 연결하는 능력의 소유자로 여겨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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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본문에서 언급된 북미 인디언들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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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알래스카 Barrow와 Tigara Hope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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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고래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부정적 존재란 믿음이다.

  • ■ 중국 고전 중에는 고래를 “사납고 난폭하며 약자를 능멸”[强暴而凌弱]한다거나 “제멋대로 설친다”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고래의 출현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여겨졌다. 예컨대 바다에 고래가 출현하면 나쁜 사람이 득세하고 현명한 사람은 소외된다고 했다. 죽은 고래의 출현은 특히 심각하여 혜성이 출현하는데, 이것은 변고로서 군왕의 죽음·역모나 전쟁의 발발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래를 죽인다는 것은 간악한 것의 소멸과 반란의 평정을 의미한다고 했다.36)

  • ■ 일본에는 고래가 복수를 위해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전승이 있다. 포경업자의 꿈에 새끼를 뱄거나 거느린 고래가 나타나 근처 바다를 통과할 터이니 잡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포획을 했으며, 이후 포경업자의 자식이 일찍 죽거나 전염병 유행과 같은 재앙이 계속되어 결국 집안이 몰락했다는 것이다.37) 이러한 전승은 죽은 고래, 특히 태아나 새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오게 된 배경 설화로(후술), 또 인간의 무정함과 잔인함이 자초한 결과라 하겠지만, 이를 통해 고래가 인간을 해치는 무서운 존재로도 인식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 폴리네시아의 티코피아 섬에서는 고래를 ‘바다의 최고직(the Head Post of the Ocean Spaces)’이라 부르며 아투아(Atua, 초자연적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고래가 해안에 표류해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무기를 휘두르고 곤봉으로 치면서 범고래와 싸우는 시늉을 한다. 이러한 행위는 전염병을 섬 밖의 초자연적 존재가 가지고 온다고 믿음 때문이며, 이를 통해 외부로부터의 오는 재앙을 물리치려 한다는 것이다.38) 따라서 티코피아에서는 고래를 부정적 존재로 간주했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티코피아 인들이 고래를 식용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 고래를 동물 그 이상의 영적 존재로 여기지만, 고래 고기를 먹지 않는 탓에 은혜로운 존재로서의 고래의 이미지가 부각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이다.

셋째, 고래는 영혼을 가진 동물이란 믿음이다.

인간의 오랜 신앙 중의 하나는 동·식물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에는 영혼이 있으며, 영혼은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존속한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신앙은 고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래 역시 영혼이 있으며, 영혼은 사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존속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래의 죽음에 접했을 때는 그 영혼이 안식할 수 있도록, 또 안식에 따라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과 조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 지적해 두어야 할 점은 고래는 신적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위에서 첫 번째로 언급한 고래신앙과 비교했을 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하더라도, 신적 존재가 아닌 동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관련 사례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이미 다량의 고래 뼈가 발견된 사실로 미루어, 일본인들은 일찍부터 고래를 식량 등의 자원으로 다양하게 활용했었다. 그들이 고래를 취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여러 원인으로 해안으로 표류해 온 좌초경이고, 다른 하나는 포경을 통해 잡은 포획경이다. 전자는 어느 시기까지 올라가는지 알 수 없지만, 포경은 2천년 전 야요이 시대에 이미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현해탄에 위치한 이키 섬의 하루노쯔지(原の辻) 유적에서 포경 장면이 새겨진 토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좌초경이든 포획경이든 간에 이러한 죽음은 비정상적인 것이고, 비정상적으로 죽은 고래의 영혼은 사후 안식을 얻지 못하고 세상을 방황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래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강구되었다. 그중에서도 고래의 태아나 새끼에 대해서는 천도를 위한 공양에 더욱더 적극적이었다. 이들을 위해 무덤[鯨墓]이나 위패를 만들어 모셨을 뿐만 아니라, 고래 명복을 비는 비석[鯨碑]과 탑[鯨塔] 그리고 고래를 위한 신사를 건립했으며, 또 고래의 성불을 기원하는 공양법회를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개최했다. 그리고 고래의 영혼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의식을 거행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래에게 불교식 법명을 지어주어 성불을 기원하기도 했다.39) (<그림 7~8> 참조)40)

    그러나 영혼의 안식을 위한 방법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에 있어서는 좌초경의 경우와 포획경의 경우에는 차이가 있었다. 좌초경의 경우, 고래의 표류는 행운으로 간주되었다. 고래가 표류해오면 일곱 마을에서 식량 걱정이 없어진다고 했고, 실제 좌초경을 판매한 수입으로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소학교의 시설을 보수한 사실도 있었다.41) 또 실수로 마을 불태운 할머니가 생전의 빚을 갚기 위해 좌초경이 되어 돌아왔다는 전승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좌초경은 고마운 존재이다.42) 따라서 좌초경에 대한 공양에는 감사와 보은의 의미가 크다. 이에 비해 포획경의 경우는 그 중심이 고래의 원한 해소에 있다. 다시 말해 포경이란 폭력적 방법으로 죽으면 원한을 가진 아귀가 되어 이승을 떠돌면서 복수를 꾀하며, 그 결과 온갖 불행이 계속되기 때문에 고래의 해원을 위한 방법들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포경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선원들의 심리적 안정과 계속해서 고래사냥의 성공을 바라는 기대감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43)

  • ■ 환태평양 최북단의 해안지역 민족 중에는 코략(Koryak)·축치(Chukchee)·에스키모=이누이트(Inuit)처럼 고래잡이 민족들이 있다. 이들의 관념에 의하면, 고래가 잡히는 것은 인간의 기술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인간과 고래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고래가 스스로 와서 잡힌다고 한다. 그래서 포경을 통해 획득한 고래의 육신은 인간이 이용하지만, 그 영혼은 잘 대접하여 원래의 고향에 되돌려 보내면, 고래는 자신의 친지들에게 인간들의 환대를 홍보하여 자신은 물론 다른 고래들도 인간에게 잡힐 마음을 가지게 하여, 회유의 계절이 되면 고래들은 육신을 가지고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고 여겼다. 단 고래의 영혼이 돌아가는 곳이 어디인지, 또 고래 영혼의 귀환을 결정하는 것이 고래 자신인지 고래를 관장하는 신(master of animal)인지에 대한 설명은 민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례를 살펴보는 다음 장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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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山口縣 靑海島 向岸寺의 鯨墓 (1692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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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小川嶋鯨鯢合戦繪卷』의 고래 의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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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설명에 의하면 영혼의 소유자로서 고래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고래 영혼의 복수를 두려워하여 그것을 달래는 것이고, 둘째는 고래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며, 셋째는 영혼이 세상으로 다시 환생하기를 비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일본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 환태평양 북부의 원시민족은 세 번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Ⅳ. 고래의례

종교는 이론과 관념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실천과 행위가 따른다. 종교적 신앙과 실천에는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것과 불행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것이 있는데,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의례라면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타부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고래신앙도 예외가 아니다.

고래에 대한 종교 행위는 고래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사례는 대부분 포경지역에 관한 것이며, 그것도 생존을 위해 포경에 종사하는, 이른바 원시민족들의 것이다. 이 가운데 시베리아 및 북아메리카 북부 지역의 고래 관련 의례와 타부에 대해서는 미국의 인류학자 랜티스(Margaret Lantis, 1906~2006)에 의해 이미 정리된 바 있다.44) 그래서 여기서는 이를 중심으로 하고, 이후 보고된 논저들을 보충하여 고래 의례와 타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45)

고래에 관한 의례와 타부는 크게 수렵 전, 수렵 중, 수렵 후의 그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고래사냥 전의 사실들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젊은이가 고래잡이 선원이 되기 위해서는 입문의례(initiation)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고래잡이를 위한 지식과 기술의 습득뿐만 아니라 환영을 보아야 한다. 환영을 본다는 것은 영적 세계에 한 걸음 다가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 고래잡이들은 고래사냥에 나가기 전에 훈련을 받는데, 훈련 과정에는 선조들의 초자연적 계시나 고려 정령과의 교류를 위해 채찍질을 당하거나 금식 등의 고행을 한다.

  • ■ 고래잡이들은 포경에 도움을 주는 주술적 도구나 부적 등을 소지한다. 이 중에서 북아메리카만의 특이한 풍습이 있는데, 유명했던 작살잡이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두었다가 그 일부를 옷이나 작살 끝에 문지르는 것이 그것이다. 짐작건대 이러한 행동은 뛰어난 작살잡이의 능력이 전이되기를 바란 것이 아닌가 한다.

  • ■ 고래잡이들은 사냥에 나설 때까지 격리되며, 이 동안은 여러 가지 타부를 준수해야 한다. 금욕이란 성적 타부는 물론이고, 익힌 것만 먹어야 한다는 음식 타부 등이 그것이다. 금기는 고래잡이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지켜야 한다. 옷을 말리거나 바느질해서는 안 된다는 등이 금기이다.

  • ■ 고래잡이 배를 비롯한 고래잡이 도구들을 깨끗이 해야 한다. 고래는 더러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신체 정화를 위해 목욕을 하는데, 목욕할 때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래도 느릿느릿 행동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 캐나다 뱅쿠버 섬의 누차 눌 스(Nuu-chah-nulth, Nookta라는 이름으로 알려짐) 족은 고래가 그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래서 고래잡이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정성을 기울여 의례를 거행했다고 한다. 의례는 추장이자 포경선의 선장이 비밀리에 주관하는데, 장소는 ‘목욕실(washing room)’이란 고래사당이다. 고래사당은 비밀의 장소로 외진 곳에 있으며, 내부에는 선장으로 이름을 떨친 선장들의 해골이나 목각상, 그리고 고래의 목각상 등이 안치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선장은 금욕과 금식의 타부를 준수하는가 하면. 상처가 날 때까지 나뭇가지로 몸을 문지르면서 고행을 했으며, 사냥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부적을 찾기를 했다. 또 매일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고래처럼 호수 중앙을 향해 물을 내뿜는다. 이 모든 것이 심신의 정화를 통해 수호신의 가호를 구하기 위한 것인데, 얼마나 정성을 다해 의례를 거행했는가라는 것이 사냥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었으며, 기간은 장장 8개월에 걸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래사당에서의 의례는 사냥을 나가기에 앞서 거행하기도 했지만, 좌초경이 해안에 오기를 빌기 위한 것도 있었다. 추장이 정화의례를 치르는 동안, 추장의 아내 역시 다양한 금기를 준수해야 했다.46)

    고래사당 중 유쿼트(Yoquot)라는 곳에 있던 사당의 내부의 물건들(인체조각상 88, 고래조각상 4. 인간 두개골 16점)이 1914년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으로 반출되었다가, 후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2025년 4월 밴쿠버 섬으로 반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사당의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아 일반 공개는 안 되고 있다고 한다(<그림 9>는 반출되기 전의 사당 내부 사진이다).

  • ■ 여성을 고래로 여겨 여성을 찌르는 시늉을 하거나 사슴의 지방을 고래고기로 여겨 분배하는데, 이것은 사냥의 성공을 미리 흉내 낸 행위이다. 다시 말해 ‘비슷한 행위를 하면 비슷한 결과를 얻는다’라는 모방주술의 원리를 따른 행동이란 것이다.

  • ■ 일부 종족에서는 풀로 만든 고래를 여성의 등에 묶어두었다가 이를 잡아 찢는 먹는 시늉을 한다. 이 역시 모방주술의 일종으로 고래잡이의 성공에 대한 예행연습이라 할 수 있다.

  • ■ 여성들은 고래 해체장에 미리 재를 뿌려두는데, 악령을 몰아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 ■ 북아메리카 서북단의 래브라도 에스키모에서는 출항 전날 여러 명의 샤먼을 불러 의례를 거행하며, 이때 정령으로부터 출항 날짜나 사냥 때의 행동 지침을 전달받는다. 그러나 정령의 지침에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고래사냥에 실패했을 경우, 샤먼은 권위가 실추되고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47)

  • ■ 또 에스키모에는 출항 전에 작살잡이가 선장 아내의 한 명과 동침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과 바로 동침하고 온 남성에게 끌리기 때문이라고 한다.48)

  • ■ 출발 준비가 끝나면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린다.

  • ■ 알래스카 최북단 배로우 촌(Point Barrow)의 이누피아트(Iñupiat) 족49)은 1900년을 전후해서 기독교로 개종했고, 그래서 포경 시즌이 시작되면 포경선의 선장은 수시로 성경을 머리 위로 받쳐들고 바다를 지켜보면서 고래가 오기를 기도한다. 고래를 보내주는 것은 그리스도란 믿음 때문이다.50)

  • ■ 알래스카 북서단의 티가라(Tigara) 반도에 거주하는 에스키모(현재는 Inupiaq라고 함)에서는 출항 전 포경선 선장의 의뢰를 받은 주의(呪醫, Angatok)가 선장 부인과 함께 5㎞ 정도 떨어진 성지로 가서 강력한 정령을 만나 고래들의 상황을 살펴보고 또 풍향의 조절 등 고래잡이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 온다고 했다.51)또 출항에 앞서 작년 가을에 채취하여 얼음 구덩이에 묻어둔 조개를 파내어 손상되지 않았으면 고래를 잡을 행운의 전조로 여기며 기뻐한다. 그리고 선장의 아내는 출항하는 배를 전송한 후 귀가할 때, 배를 향해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타부가 있다.52)

  • ■ 티가라 반도 호프 촌(Point Hope)의53) 이누피아크 족에서는 포경선의 출발에 앞서 선장의 아내가 해변에 눕고 선장은 작살로 아내를 찌르는 시늉을 한다. 이것은 선장 부인과 고래가 신비적 관계를 가진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으로, 이 역시 고래잡이의 성공을 위한 모방주술의 일종으로 해석된다.54)

  • ■ 인도네시아 라마레라에서는 하늘에 조개구름이 뜨거나 물총새가 날거나 독수리가 선회하면 고래사냥의 길조로 여긴다.55) 또 출항할 때는 신부가 성수로 포경 도구를 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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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누 차 눌스 족의 고래사당(Vancouver의 Yuquot, George Hunt c.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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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고래사냥 중의 관련 사실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 알래스카 배로우 촌(Barrow)의 이누피아트 족은 고래사냥을 나갈 때, ‘고래를 잡으러 간다’ 등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고래는 인간의 언어를 모두 알아듣기 때문이다.56)

  • ■ 고래를 발견하면 작살을 던지기 전에, 또는 명중했을 때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란 대사제가 고래를 처음 창조했을 때 불렀던 것이라 한다.

  • ■ 티가라에서는 작살이 명중하면 선장과 작살잡이는 노래를 부르는데, 작살이 단단히 박히도록 기원하기 위해서이다.57)

  • ■ 고래사냥 동안, 포경자의 아내는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야 하며, 식사를 해서도 안 된다.

  • ■ 티가라에서는 아내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머리를 감거나 빗질해서도 안 된다. 아내가 조용히 있어야 고래도 별다른 저항하지 않고 죽기 때문이다. 또 집안에서 칼을 사용해서도 안 되는데, 작살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포경 기간에는 여러 날 얼음 위에서 지내기도 했다.58)

  • ■ 래브라도 에스키모의 경우, 마을에 남은 여성들은 집안에 칩거해야 하며 앉을 때도 다리를 꼬아서는 안 된다. 포경선 우미악(umiak)이 부서지는 것은 여성들의 외출 탓이며, 고래가 꼬리를 심하게 움직여 배를 해치는 것은 여성들의 꼰 다리 탓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 나무를 토막 내거나 손가락으로 마디를 톡톡 쳐서도 안 되는데, 고래가 놀라서 달아나기 때문이다. 등불을 켜서도 안 되는데, 고래가 불빛을 보고 멀리 달아나기 때문이다. 바느질을 해서도 안 되는데 작살줄이 엉키기 때문이다. 이밖에 육지산의 음식과 해산물을 함께 먹는 것도 금지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작살 맞은 고래가 도망을 간다든지 해서 사냥에 실패하면 그것은 여성이 금기를 지키지 못한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59)

  • ■ 북아메리카 브리티쉬 컬럼비아 뱅쿠버 섬의 마카(Makah) 인디언에서는 포경 시즌 동안 아내들은 집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어야 한다. 작살 맞은 고래가 달아나거나 고래가 잡혀도 작은 것들만 잡히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는 여성과 고래는 신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념이 바탕에 깔려있다.

  • ■ 누 차 눌스 족에서는 고래잡이 중에 선원들은 고래와의 정신적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기도를 하며, 고래가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도록 고래에게 존경울 표해야 한다. 또 선장의 아내는 포경 기간 중 외출을 삼가고 어두운 방에 조용히 누워있거나 움직여야 할 때도 느릿느릿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고래가 요동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60)

  • ■ 라마레라에서는 고래잡이 동안 가족이나 친지 간에 서로 싸우면 안 된다고 한다. 고래는 인간의 행동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싸우면 이를 본 고래도 따라서 난폭해지기 때문이다.61)

  • ■ 고래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멀리서도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기 때문에, 고래잡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올바른 마음가짐과 방정한 품행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알래스카 배로우 촌의 이누피아트 족들 사이에서도 확인된다.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요청은 고래사냥의 성패가 사냥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고래의 마음에 달려있으므로, 고래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62)

  • ■ 라마레라에서는 출항한 후에는 고래에 대한 험담을 하면 안 된다. 또 고래를 말할 때는 고래라 하지 않고 다른 존칭을 사용한다.63)

마지막으로 고래사냥 후의 의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고래를 잡아 오면. 아내들은 의례복을 입고 마중 나가서 고래에서 물을 준다. 또 고래의 분기공에 걸터앉기도 하는데, 이 역시 물을 준다는 의미이다.

  • ■ 잡아온 고래를 취급할 때 특정 부위(예컨대 혹, 지느러미, 코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중을 기하는데, 고래가 바다로 잘 돌아가기 위해서이다. 다만 고래를 해체할 때, 눈부터 제일 먼저 자르는데, 그것은 고래가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 고래를 둘러싸고 돌을 둥글게 배치한 다음, 그 안에서 의례를 거행한다. 고래의 제일 좋은 부위를 원 안으로 가져와 쌓아두거나 잘라서 원 밖으로 던지고, 여자들은 원 안에서 가무를 한다든지, 샤먼의 의례를 거행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례는 잡힌 고래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인데, 인간에 대한 그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 ■ 고래의 영혼을 바다로 돌려보내기 의례를 거행한다. 그러나 이를 별로 중시하지 않는 종족도 있다. 예컨대 북아메리카 누 차 눌스 족이 해체하고 남은 고래 고기를 바다로 던지는 것은 영혼을 돌려보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기 부스러기가 개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 코략족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는 고래축제인데, 보통 대개 사냥철이 끝난 10월에 거행되었었다. 그러나 조사 당시에는 고래가 거의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고래가 잡힐 때마다 거행했다. 고래축제는 가족 단위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공동체의 의례이다. 그래서 고래가 잡히면 선주는 해변의 바위에 고래의 가죽이나 지방을 매단 나무 기둥을 세워 소식을 알린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성장을 하고 마중을 나오며, 노인들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함께 하는데, 그것은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행동이라고 한다. 모인 사람들은 손님이 오셨다고 하면서 영접의 가무를 한 다음, 다시 옷을 갈아입고 고래 해체 작업을 한다. 해체 후 고기가 분배되고, 그날 저녁부터 의례에 돌입한다. 의례는 고래사당이나 거행되는데, 한편에서는 여성들이 고래의 귀환에 필요한 음식을 장만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선주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고래고기 한 점을 난로에 던지고 또 신상과 제단에도 바친다. 3일 간의 애도 기간이 끝나면 잔치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손님이 오셨다”, “바다로 돌아가면 친구들도 데리고 오세요(함께 오세요)” 등이라고 외친다. 이어서 고래가 바다로 돌아가는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가 5일째 되는 날 남자 두 사람이 마련한 물품을 지붕 위로 가져가 올려둔다. 그리고 의례의 마지막에는 물개의 견갑골을 태워, 고래가 무사히 귀환했는지를 점쳤고, 지붕 위에 올려둔 물품 중 음식은 먹고 나머지는 창고에 보관했다가 봄이 되면 들판에 버린다.64) (<그림 10>)

  • ■ 츄코트카 반도의 축치 족의 고래의례도 코략 족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도 있다. 예컨대 고래가 도착하면 마을 사람 모두가 마중을 나와 선주를 선두로 행렬을 지어 손님(즉 고래)의 마을로 모시고 온다. 이때 고래를 달래고, 동료들과 함께 다시 돌아와 달라는 내용을 부른다. 또 손님의 비위를 맞추기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큰 소리를 내어 손님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또 혼자 두어 외롭지 않도록 조심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의례 후 고래의 귀환과 재생을 비는 의미에서, 남은 고래고기를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65)

  • ■ 캄챠카 반도의 알류트 족(Aleuts)은 만으로 들어오는 고래를 그물로 잡았는데, 고래를 예인해 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해안에 서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뛰어다니며 고래사냥의 성공을 축하했다. 고래가 해변에 도착하면 사당을 세우고, 그 안에 나무로 만든 고래 상을 안치하고 등불을 켰는데, 등불 옆에 경비를 세워 고래잡이 시즌 내내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축제를 열었고, 개를 희생 제물로 바쳤다. 그 후 고래를 다시 돌려보내는 것으로 축제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텔멘(Itel’men) 족의 경우에도 잡은 고래의 영혼을 돌려보내는 의례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66)

  • ■ 알래스카 배로우 촌의 이누피아트 족은 지금도 고래잡이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들의 생활 주기에서 고래잡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큰바, 고래잡이와 직·간접으로 관련되는 행사도 6가지나 된다.

    ① Nigipka; 고래를 잡아서 해체한 다음 날, 포경선의 선장이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개최하는 축하 연회. 고래를 끌어 올리면 고래잡이들은 고래를 둘러싸고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데, 이때 기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해체 후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고래의 머리뼈를 바다에 빠뜨린다고 한다.

    ② Apugauti; 배로우 촌에서만 거행하는 행사로, 춘계 포경이 끝나면 포경집단별로 포경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포경선 umiak을 육지로 끌어올린 후 해안가로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푼다. 따라서 거행 일자는 포경집단에 따라 다르다.67)

    ③ Nalukataque; 고래축제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행사로, 춘계 포경 시즌이 끝난 6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하루를 택해 개최한다. 이때는 마을 구성원 모두가 참가하여 회식·고래고기 분배·북춤·경기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이는데, 그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담요 뛰기[blanket toss]’이다. 이것은 일종의 trampoline으로, Umiak을 덮었던 바다표범 가죽의 가장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잡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가 점프하는 놀이이다(<그림 11>). 축제의 명칭인 Nalukataque는 바로 담요 뛰기란 의미이며, 고래의 행동을 흉내 낸 것이라 한다. 포획된 고래의 수에 비례하여 행사의 규모도 커지고 성대하게 거행한다.68)

    ④ 감사제; 고래잡이의 성공에 대한 감사 행사로 11월 교회별로 거행하는데, 이때 포경선 선장들이 기부한 고래 고기의 분배가 이루어진다.

    ⑤ 크리스마스; 감사제와 대동소이하다.

    ⑥ Kivgiq; 사자(messenger)제로 번역되는데, 몇 년에 한 번씩 11월 말~1월 초 사이에 마을 밖의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연회 등을 개최한다.

    이렇듯 다양한 행사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의미를 지닌 것은 많지 않으며, 그나마 모두 기독교화된 것들이다. 고래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에게 신이 보내는 선물이란 믿음에서 행사 때마다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해체 후 고래의 머리뼈를 바다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영혼의 귀환을 중시하는 수렵의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사냥의 성공 여부는 사냥꾼의 기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관장하는 ‘동물의 주인’(master of animal)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이 수렵인의 신앙이라고 할 때, 기독교의 신 역시 ‘동물의 주인’과 통한다. 따라서 배로우 촌 이누피아트의 고래의례는 비록 기독교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기존 고래의례의 전통이 깔려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69)

  • ■ 알래스카 티가라 반도에서도 포경 시즌이 끝난 후 이틀간 고래의례를 거행했는데, 첫날은 포경선의 선주이자 족장에 의한 고래고기 분배가 있고, 둘째 날은 고기를 요리하여 축제를 벌리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했는데, 여기서도 담요 뛰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래의 머리뼈를 바다로 되돌리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된다.70)

  • ■ 알래스카 호프 촌의 이누피아크 족은 봄이 여름으로 바뀌는 시기, 즉 포경 시즌이 끝날 때 날루카타크(Nalukataq)라는 고래축제를 거행했다. 이것은 고래잡이에 성공한 집단만이 거행했는데, 행사는 3일간 계속된다. 축제는 교회 예배로 시작되며, 이 기간에 연회·고래 고기 분배·담요 뛰기와 같은 오락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 이와 같은 고래축제의 목적은 고래의 귀환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누피아크 인의 논리에 의하면, 고래는 마음에 드는 인간에게 잡혀주기 위해 잡혀서 겉옷(고기)을 벗어주고 자신 집단으로 갔다가 다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친척들과 함께 바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고래에 감사해야 하며, 옷을 벗기는 작업(즉 해체) 때에도 항상 고래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해야 하며, 그래서 축제의 과정에서 고래의 귀환을 위해 그 머리뼈를 바다에 빠트렸다.71)

  • ■ 이 밖에도 시베리아의 이텔멘 족, 북아메리카 동북단 래브라도(Labrador) 지역 에스키모에서도 고래의례의 존재는 확인되나, 자료의 부족으로 구체적 내용은 미상이다.

  • ■ 고고학적 자료에도 고래의례의 일단을 짐작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일본 북해도 소속의 찰문도(札文島) 향심정(香深井) 유적으로 오호츠카 문화기(3~13세기)의 것인데, 여기서는 수혈주거지 밖에 참거두고래의 두개골 7개체분이 모두 머리를 밖으로 향한 채 둥그렇게 배열된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모든 두개부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구멍은 머리에 있던 고래의 영혼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용도로 해석되고 있다.72)

    다른 하나는 베링 해협 북쪽이며 츄코트카 반도에서 가까운 이티그란(Yttygran) 섬에서 1976년에 발견된 이른바 ‘고래 뼈 소로(whale bone alley)’란 유적이다. 이 유적은 해안선을 따라 고래의 두개골과 턱뼈 2~4개씩을 지상에 꽂아둔 것을 한 단위로 하며, 이러한 단위들을 두 줄로 배열하여 가운데가 소로처럼 된 유적인데, 그 길이는 550m에 달한다고 한다. 이 유적의 시기는 대략 14~16세기, 조성자는 현재는 멸종된 마식(Masik) 인으로 추정되고 있다.73) (그림 12, 13> 참조). 이러한 유적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그 성격이나 용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고래와 관련된 의례 장소로 여겨진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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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Koryak의 고래 영혼 돌려보내기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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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Iñupiat 족의 Blanket Toss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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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고래 뼈 소로’의 유적배치도(▲ 두개골, △ 턱뼈)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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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고래 뼈 소로’의 일부(Chlenov & Krupnik)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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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잡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작업으로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포경지역에 고래에 대한 의례와 타부가 많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고래의례의 지역 차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은 포경 대상이나 방법, 해당 지역의 문화적 전통 등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필자의 능력으로는 그 다양성의 원인을 구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고래의례의 목적은 고래를 계속 확보하기 위한 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고래의 재생과 귀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수단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 또한 확실한 것 같다. 동물의 영혼을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고 이들이 다시 육신을 얻어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례를 ‘보내기 형(送り型, sending off type) 의례’라는 의례 유형의 하나로 파악하고, 수렵의례의 중요한 특징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78) 이러한 견해는 고래의례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Ⅴ. 울산의 고래신앙

이상에서는 외국의 고래신앙과 의례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하에서는 한국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바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이고, 다른 하나는 울산의 고래사당인 신사당(神仕堂)이다.

1. 반구대 암각화

한국인과 고래의 관계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부산 동삼동·조도·가덕도, 통영 상노대도·김해 수가리·웅기 서포항 유적 같은 동해와 남해안의 여러 신석기 유적에서 고래 뼈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같은 신석기시대 유적인 울산 황성동 유적에서는 작살 박힌 고래 뼈가 두 점이나 출토된 바 있으므로(<그림 14>), 신석기시대 포경의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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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울산 황성동 유적 발견의 작살 박힌 고래뼈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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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한국의 선사유적 중 고래와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이다(<그림 15>). 주지하는 바와 같이 넓이 420m에 달하는 반구대의 암벽에는 인물이나 동물 등 다양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353점에 달한다.80) 이처럼 다양한 그림들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고래 그림이다(<그림 16>). 그것은 첫째 가장 잘 보이는 중심 암면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둘째 크기가 다른 그림을 압도한다는 점, 셋째 동물 그림 202점 중 고래가 57점(28.2%)으로 양에서도 가장 많다는 점 등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암벽면에 이처럼 많은 고래가 모여져 있다는 점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바, 반구대 암각화 고래 그림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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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반구대 암각화 모사도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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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반구대 암각화의 주암면에서 바다동물만 추린 그림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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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점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이해를 위해서는 고래 그림의 의미 해독이 우선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고래 그림이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또 어떤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인지라는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선 생각할 점은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는 사냥의 대상이란 점이다. 작살을 맞은 고래 그림(<그림 17>)이 있는가 하면, 배와 작살로 연결된 고래 그림은 두 점이나 있다는 것(<그림 18~19>)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자는 생존포경 종사자들이라 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들에게 고래는 신이라기보다 동물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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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작살 맞은 고래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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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고래와 포경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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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고래의 운동 방향이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고래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다양하다. 수평으로 움직이는 것도 있고(뒤집힌 고래 포함 7점), 비스듬하게 움직이는 것이 있으며, 위로 올라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래로 내려오는 것(3점)도 있다.84)(<그림 19>)고래의 움직임이 이처럼 다양하게 표현된 것은 이상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 고래는 물에서 위로 솟아오르기도 하며(<그림 21>), 잠을 잘 때는 가로로 서 있기도 하는 등, 자세와 움직임이 다양할 수 있다. 또 세계의 암각화나 암채화 중에서 고래가 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도 있다(<그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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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고래와 포경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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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반구대 암각화의 각종 고래 그림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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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도약하는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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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러시아 백해 연안의 New Zalavrga 암각화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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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여기서 문제로 삼고자 하는 바는 위 또는 아래로 움직이는 고래가 가장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직운동은 고래의 일반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또 수직운동으로 보이는 외국의 그림들은 반구대 암각화처럼 절벽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지상의 바위에 새기거나 그려진 것인 만큼, 수직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즉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은 위에서 내려다 본 것이므로 등이나 배가 보이게 새길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수평운동을 하는 고래도 있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주목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고래사냥 후의 의례들의 바탕에 깔린 관념이다. 다시 말해 고래가 죽어서 그 영혼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가(상승) 회유 때가 되면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관념(하강)이다. 다시 말해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은 고래 영혼의 귀환과 재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보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그림들이 있다.

첫째, 위로 올라가는 고래 행렬의 선두와 후미에 있는 인물상이다(<그림 23~25>). 이 가운데 위의 인물은 고래를 찾기 위해 먼 곳을 살펴보는 사람이고, 아래의 인물은 샤먼이란 견해가 있다.87) 이러한 견해는 세계의 바위그림을 두루 답사하고 정밀 조사를 통해 내려진 것인 만큼 개연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의 인물 역시 사먼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위의 견해에서 <그림 24>이 샤먼이 아니라는 근거는 바위그림에서 샤먼은 항상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88) 선사미술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역할을 확실히 동정(同定)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는 샤먼으로 보는 것이 통설인 도상도 있으며, 나아가 측면상으로 묘사된 것도 있다(<그림 28~30>)89). 다시 말해 정면상이냐 측면상이냐를 가지고 샤먼 여부를 판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망보기라고 했을 때 고래들이 바로 아래에 그려져 있다는 점도 수긍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에서 여기서는 위의 두 인물을 고래들의 영혼 귀환을 앞에서 인도하고 뒤에서 밀어주는 샤먼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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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고래 행렬 전후의 샤먼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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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4. 선도하는 샤먼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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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5. 후미의 샤먼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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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6. 고래와 가마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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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7. 고래와 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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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 Trois Frè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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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9. Trois Frè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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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0. 동 Karelia Uikujoli 강변 암각화의 샤먼과 행렬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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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리고 행렬의 선두에 있는 세 마리 거북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거북은 물과 뭍을 왕래하는 동물이다. 즉 서로 다른 우주의 영역을 왕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고래 영혼의 안내자로서 적격이란 것이다.

셋째, 가마우지 두 마리가 양쪽에서 올라가는 고래를 잡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그림> 26), 가마우지 역시 하늘과 육지, 그리고 물속까지 넘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영혼의 안내자로 볼 수 있다.90)

넷째, 아래로 내려가는 고래를 잡고 있는 인물(<그림 26>)이 있는데, 이 인물 역시 고래 영혼이 다시 육신을 받아[受肉; reincarnation] 인간 세상으로의 하강을 인도하는 샤먼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이 허용된다면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은 고래 영혼의 귀환과 재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 목적은 고래의 재생을 통해 고래의 계속적 공급을 기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목적을 가진 수렵의례가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거행되었다는 것이며,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잡이를 비롯한 수렵의례의 제장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고려해 볼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래의례를 비롯한 수렵의례에는 준비의례, 수렵과정에서의 의례, 수렵 후의 의례가 있다.

시베리아 수렵민족의 경우, 그들은 수렵・어로의 준비 과정에서 다양한 주술-종교적 노력을 보인다. 소극적으로는 정해진 금기를 준수하고 성공과 실패를 점치며, 적극적으로는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을 행하고, 집단적 의례를 거행한다. 이때 주술적 행위는 Frazer가 말하는 유감(類感 또는 同種)주술(homeopathic magic)에 기초한 것이 많다. 예컨대 동물들이 화살에 맞거나 덫을 향해 달려오는 그림을 그려둔다든지, shaman이 혼을 불어넣은 사슴 상에 화살을 관통시킨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95) 그리고 집단적 의례에서는 동물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자연의 主(master of nature)’ 또는 ‘동물의 主(master of animal)’를 모시고 제물을 바치면서 수렵과 어로의 풍성한 결과를 기원한다. (소극적으로는 사냥꾼을 해치지 말라, 사냥감을 멀리 보내지 말라, 쫓지 말고, 동물과의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 달라, 수달의 혼이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달라, 동물들을 우리 화살 쪽으로 오게해 달라 등등)96) 이때 제물로 ‘산의 主’에게는 바다동물을, ‘바다의 主’에게는 육지동물을 바친다. 그리고 가축은 양쪽 모두에게 바친다. 그것은 이들 ‘주(master)’에게 없는 것을 바쳐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수렵과 어로를 마친 후의 의례도 준비의례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때는 살해당한 동물과의 화해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동물의 영혼을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이것은 동물의 고기는 인간이 취하되, 영혼은 돌려보냄으로써 동물들이 다시 살[肉]을 붙여 출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들은 동물의 뼈를 소중히 취급함으로써 환대한다는 표시를 하고, 그래서 그 동물은 동료에게 돌아가서 인간들에게 잡히도록 선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의 뼈를 일정 방향으로 향하도록 정렬해 두기도 하는데, 그것은 동물의 영혼이 가는 방향이 있음을 의미한다.97)

그렇다고 한다면 반구대 암각화 의례는 준비의례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작살 맞은 고래 그림은 고래사냥에 나서기 전에 동종주술적 행위를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작살 맞은 고래를 표현함으로써, 실제 고래사냥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래는 출몰이 비상하므로, 사냥의례를 미리 거행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은 사냥 후, 고래의 영혼을 달램과 동시에, 재생을 기원하는 의례의 장소였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2. 울산의 고래사당

울산 장생포의 고래마을에는 한국 유일의 고래사당으로 알려진 신사당(神仕堂)이 있다. 원래 신사당은 죽도에 있었는데, 죽도가 매립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아왔다고 한다. 건물은 한 칸짜리 기와집이며, 내부에는 제단 이외 다른 시설이 없었는데 근래에 와서 신상화를 모신 것 같다. 모시는 신령은 보재 하라버지 내외로 마을 수호신이다. 제사 날짜는 매년 정월 보름이며, 3년에 한 번씩 10월 15일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이후 재개되었는데, 정기적으로는 이전처럼 정월 보름 밤 12시에 동장 책임 하에 40대 이상의 부정없는 남자를 제관으로 하여 고래의 풍어를 빌었고, 그 밖에도 고래를 잡으면 뱃사람들이 고기와 술을 바치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98)

울산은 고래와 관련하여 일찍부터 중요한 곳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작살이 꽂힌 고래뼈가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황성동 유적, 고래 그림으로 유명한 반구대암각화가 모두 울산에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울산의 장생포도 고래 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사유적은 그렇다 하더라도 포경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장생포가 고래와 관련하여 부각된 것은 19세기 이후이다. 다시 말해 19세기 말 러시아 께이제를링거(H. H. Keyserling) 백작의 태평양포경회사와, 이어서 일본의 일본원양어업주식회사가 한국 근해에서 포경권을 획득하고 양자 모두 울산을 포경기지로 조차하면서부터 울산이 포경의 주요 거점으로 주목받게 되었다는 것이다.99) 따라서 신사당이 처음부터 고래사당으로 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19세기 이전의 신사당은 어촌 마을의 당집이었던 것인데, 이후 울산 장생포가 포경의 중심 기지가 되고, 그 전통이 해방 이후까지 이어짐에 따라 고래신앙을 위한 사당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사당에서 모시는 신령을 골매기신이라고도 했다는데, 골매기신은 영남 일대의 마을 수호신을 가리키는 명칭이란 사실100) 역시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Ⅵ. 맺음말

2015년 7월 12일 반구대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확정되었다. 이로써 반구대암각화는 한국을 넘어 세계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러나 그간의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반구대 암각화의 의미 해독은 아직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반구대 암각화를 대표하는 고래 그림의 의미 해명에 조금이라도 접근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세계 각지의, 그리고 여러 민족의 고래 관련 믿음과 의례를 살펴보았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결과를 요약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이 글의 결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고래 관련 믿음과 의례들을 살펴보는데 필요한 전제들 몇 가지를 언급하였다. 즉 고래에 대한 믿음은 해양민의 신념체계(belief system)이며 생존포경 종사자의 신앙인데, 현재는 고래의 멸종 위기와 그에 따른 포경의 제한, 여기에 기독교의 영향으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변질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제2장에서는 세계 각지의 고래에 대한 신념체계를 문헌과 현지 조사 자료에 의거하여 개관해 보았다. 그 결과 고래 관련 믿음에는 고래를 신성한 존재로 믿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재앙을 주는 괴물 같은 부정적 존재로 믿는 관념도 있고, 나아가 고래를 영혼이 있는 동물로 여기는 인식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고래에 대한 의례들을 살펴보았는데, 먼저 고래의례는 포경지역에서 주로 행해진다는 점, 또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은 고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나와 식량의 계속적 공급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제4장에서는 이상과 같은 고래 관련 믿음과 의례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반구대 암각화에 보이는 고래 그림의 성격과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그래서 그것은 고래사냥을 마친 후, 고래의 위령제 겸 귀환을 기원하는 의례를 위한 그림이며, 따라서 암각화가 있는 반구대에서는 수렵의례가 거행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이와 아울러 울산의 고래사당으로 알려진 신사당에 대해 주어진 자료를 토대로 언급해 보았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이해가 보다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해결될 필요가 있다.

첫째,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들이 동시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권위있는 연구에 의하면,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 시기는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한다.101) 그렇다면 57점에 달하는 고래 그림의 제작 시기도 동시가 아니고 시차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올라가는 고래와 내려오는 고래 그림이 동시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고래 그림들을 동시에 제작된 하나의 화면처럼 취급하여 설명하였다. 만약 고래 그림들이 시차를 두고 그려졌다면, 이러한 해석이 성립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둘째, 육지동물을 비롯한 다른 그림들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는 고래 그림만을 따로 떼어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해 왔다. 그러나 고래 그림 역시 반구대 암각화의 일부인 만큼, 다른 그림들과 함께 조명하면서, 그 전체적인 맥락과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고래신앙에 대한 보다 많은 자료를 확보하여, 그 성격과 의미를 보다 체계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간에 쫒겨 구득한 자료마저 꼼꼼히 검토하지 못한 필자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넷째, 다른 지역의 암각화나 암채화에 표현된 고래 그림에 대한 서구학계의 연구성과를 적극 원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조망할 때,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해석이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구대 암각화의 특성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는 마당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특성 파악과 세계의 바위그림에서 차지하는 위상 파악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여겨진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그럴듯한 것이 반드시 원시나 고대의 진실은 아니다. 후기 구석기시대 Lascaux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의 숫자를 보면, 말이 약 60%로 압도적으로 많고, 다음으로 소와 사슴이 각각 16%이다. 그래서 Lascaux 동굴의 벽화는 이들 동물에 대한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Lascaux 동굴에 퇴적된 문화층 발굴의 결과, 당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은 동물은 순록(출토된 동물 뼈의 90%)이며, 말과 사슴은 각각 0.7%와 1.5%였고, 소뼈는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102) 따라서 Lascaux 동굴 벽화가 사냥감의 증식(增殖)을 위한 그림이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아닐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은 한국의 암각화를 해석하는 데 교훈이 될 수도 있다.

Notes

고래에는 78종이 있는데, 이 중 장수경의 경우 길이가 30m를 넘는 것이 적지 않고 무게는 136.4t까지 나가는 것도 있다. 그러나 고래라고 해서 무조건 큰 것은 아니다. 돌고래의 종류 중에는 성숙한 개체가 1.4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도 있다. 新谷敏郞, 『鯨の自然誌 : 海に戻った哺乳類』 (東京: 中公新書, 1992), p.5

허먼 멜빌의 『모비 딕』 (1851)에는 향유고래 모비 딕의 말만 들어도 선원들은 공포에 떨었고, 맞설 용기를 잃고 도망칠 궁리만 했다는 표현에서 고래에 대한 공포심을 읽을 수 있다.

西晉의 崔豹가 『古今注』(『太平御覽』 권938, 鱗介部10, 鯨鯢魚)에서 “고래 중에 큰 것은 길이가 수천 리가 되고 작은 것도 수십 장이 되며, 새끼는 평생 수만 마리를 낳는다. 5~6월에 해안에서 새끼를 낳고 7~8월에 새끼를 거느리고 바다로 돌아가는데, 이때는 천둥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기 때문에 물속에 사는 생물들은 모두 무서워하며 달아난다”고 한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鯨魚 大者長千里 小者數十丈 一生數萬子 常以五月六月 就岸生子 至七月八月 導從其子還大海中 鼓浪成雷 噴沫成雨 水族畏 悉逃匿 魚無敢當子 其雌曰鯢 大亦長千里 眼爲明月珠.)

『춘추좌전』 선공 12년조 孔穎達 正義에서 “고래란 큰 물고기의 이름인데 불의한 사람으로 작은 나라를 병탄하는 것을 비유한다(鯨鯢大魚名 以喩不義之人 呑食小國)”고 했다.

『선조실록』 권38, 26년(1593) 5월 계유(20일); 임진왜란 때 왜적 격퇴에 도움을 준 명나라에 보내는 사은표에서 왜적을 “바다를 뒤흔드는 고래(聲敎東漸, 久息鯨鯢之掀海)”에 비유했다.

서영대, 「한국 암각화의 신앙과 의례」, 『한국암각화연구』 11·12 (2008), pp.23-36.

Sandra Lantz, Whale Worship in Vietnam (Uppsala: Swedish science press 2009), p.51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는 이를 ‘선주민 생존포경(aboriginal subsistence whaling)’이라 했다. 지금까지 생존포경을 이어오고 있는 인도네시아 Lambata 섬의 Lamalera촌의 경우, ‘고래를 잡는다’라는 말은 ‘산다’와 동의어라고 한다. 小島曠太郞·江上幹幸, 『クシラと生きる』 (東京: 中央公論社, 1999), p.153.

岸上伸啓, 「アラスカ・イヌピアット社会におけるホッキョククジラ漁をめぐる宗教実践と社会変化」, 『社會分析』 45 (2018), p.26.

Rosemary Levy Zumwalt, “The Return of the Whale: Nalukataq, the Point Hope whale festival,” Time out of Time: Essays on the festival (ed. by Alessandro Falassi) (Albuquerque: Uni. of New Mexico press, 1987) p.264.

小島曠太郞·江上幹幸, 앞의 책, p.219.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플리니우스 박물지(Naturalis historiæ), 서경주 옮김 (고양: 노마드, 2021) pp,248-249.

Ivanov·Smolyakk·Levin, The Oroks, The Peoples of Siberia(ed. by Levin & Potapov) (Chicago: The Univ. of Chicago Press, 1964), p.778

秋道智彌, 『クシラとヒトの民族誌』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94), p.78.

같은 책, p.140; 오록족(Oorks)의 범고래신앙은 니브흐족과 거의 같다고 한다. Ivanov·Smolyakk·Levin, 앞의 책, p.765.

중국의 대표적인 財神의 하나가 趙公明이다.

王榮國, 『海洋神靈』 (江西: 江西高敎出版社, 2003), pp.38-39, pp.106-107.

秋道智彌, 앞의 책, p.28.

景遐東·劉雲飛, 「李白诗歌中的鲸意象及其影响」, 『福建論壇』 2017-9. pp.129-130.

吴承祖, 「郑成功骑鲸复台传说撷英」, 『兩岸關係』 2022-9. pp.60-61.

중국화한 관음보살의 하나로 “渡海觀音”, 즉 ‘바다를 건너는 관음’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苦海라고 하는 바, 관음이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고난에 시달리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도해관음의 도상 가운데는 관음이 바다를 건널 때 큰 물고기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것이 있다(<그림 1>). 만약 이 물고기가 고래라면, 고래를 탄 신적 존재의 사례를 또 하나 추가할 수 있겠다.

위대한 존재가 그 신비성을 더한다는 의미에서 기경했다는 인식은 한국에서도 확인된다.

① 경북 상주 南長寺 極樂寶殿의 내벽에도 그려져 있는데(<그림 2>), 그림의 오른쪽에는 ‘李白騎鯨上天’ 즉 ‘이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오른다’라는 설명이 있다. 남장사 극락보전은 1856년(철종 7) 鎭虛化主(尙弘)이 무량수전·조사각과 함께 중건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 2 (서울: 전서간행위원회, 1990), p.330), 이 그림의 제작 시기는 1856년까지 소급될 수 있다.

②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는 최치원(857~?)이 후학을 가르쳤다는 月影臺가 있는데, 이를 주제로徐居正(1420~1488)이 지은 시에 “고운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뒤 흰 구름만 아득하여 찾을 곳이 없구나(孤雲騎鯨飛上天 白雲渺渺尋無處”(『속동문선』 권4, 「七言古詩, 月影臺」; 『四佳詩集補遺』 권1, 「詩類, 月影臺」)란 구절이 있다. 이를 통해 창원 지역에는 최치원이 말년에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승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③ 전북 위도 대리 소재의 원당에는 신령씨가 물고기를 타고 승천하는 당신도가 있으며, 이 물고기는 고래로 추측되고 있다(<그림 3>).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인도에서 베트남과 중국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기경문화권을 鯨神文化圈을 상정한 연구가 있는데(송화섭·Le Thi Ngoc Cam, 앞의 글, p.240) 주목되는 견해이다.

여기에 첨언을 하자면, 한국의 기경 전승은 서로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①은 중국의 기경 전승을 그대로 수용한 것, ②는 주인공을 이백에서 최치원으로 바꿈으로써 기경 인식이 부분적으로 토착화된 것, ③은 완전히 토착화된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邢莉, 『觀音 : 神聖與世俗』 (北京: 學苑出版社, 2003), p.37.

송화섭·Le Thi Ngoc Cam, 「동아시아 기경신앙(騎鯨信仰)의 관점에 본 위도 대리 원당의 신령씨당신도(神靈氏堂神圖)와 문화적 다양성」, 『다문화콘텐츠연구』 32 (2019), p.213.

Naumann, Nelly, “Whale and Fish Cult in Japan: a Basic Feature of Ebisu Worship,” Asian Folklore Studies 33-1 (1974), pp.13-14.

中山太郞, 「ゑびす神異考」, 『日本民俗學 : 歷史篇』 (東京: 大岡山書店, 1931) pp.227-336.

兒島恭子, 「アイヌの捕鯨文化」, 『國際シンポジウム報告書』 Ⅰ (横浜: 神奈川大學 國際常民文化硏究機構, 2010), p.119.

大西和彦, 「阮朝期ベトナムの鯨神信仰とその背景」, 『立敎大學日本文化硏究所年報』 7 (2008), pp.38-39.

Lantz, Sandra, 앞의 책, pp.34-38, Nguyen Thang Long, “Whale Worship of Fishermen in Central Vietnam: Case Study from Some Coastal Villages in Thua Thien Hue Province,” Journal of Global and Area Studies 8-2 (2024), pp.193-207.

西晉 竺法護 역, 『生經』 권5, 「佛說譬喻經第五十五」(『大正藏』 3, p.107). 유사한 설화는 『六度集經』 권1의 「布施無極章」, 『賢愚經』 권7의 「設頭羅健寧品」 등에도 보인다. 불교 경전에는 摩竭魚(摩伽羅魚, Makara)라는 바다 동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고래를 가리키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경전의 마갈어에 대한 설명에는 보살이 중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성불을 미루고 중생 사이에 머문다고 하는 긍정적 설이 있는가 하면, 劫比羅라는 論士가 부처의 제자와 논쟁을 벌린 벌로 마갈어가 되었다는 부정적인 설도 있다. 또 인도의 전통종교에서는 마갈어를 Varuna 신의 탈 것이라 했다(『佛敎的動物』,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pp.334-340).

王淸, 「海上大物傳說」, 『海洋文化影響下的中國神話與傳說』 (北京: 昆侖出版社, 2011), pp.347-348.

Swanton, John R., Contributions to the Ethnology of the Haida: The Haida of Queen Charlotte Islands (Leiden: E. J. Brill; New York: G. E. Stechert, 1905), pp.16-29.

秋道智彌, 앞의 책, p.54, p.60.

같은 책, p.64.

같은 책, pp.67-68.

같은 책, p.78; 그레그 베일리, 『미솔로지카』 2, 박인용 옮김 (서울: 생각의나무, 2009), p.257.

景遐東·劉雲飛, 「李白诗歌中的鲸意象及其影响」, 『福建論壇』 2017-9, pp.126-127.

松崎憲三, 「鯨鯢供養の地域的展開 : 捕鯨地域を中心に」, 『日本常民文化紀要』 20 (1999), pp.53-60.

Firth, Raymond, Tikopia Ritual and Belief (London: George Allen & Unwin, 1967), p.251.

Holm, Finn, 「クシラの靈魂のための祭り」, 加藤幸治 譯, 『日中韓周緣域の宗敎文化』5 (2019), pp.41-44.

『小川嶋鯨鯢合戦繪卷』은 1840년 호우슈우데이(豊秋亭里遊)가 편집한 것으로, 에도시대 포경업의 중심지의 하나였던 사가현(佐賀縣) 요부코우라(呼子浦)에서 행해진 포경의 여러 장면을 그린 것이다.

松崎憲三, 「寄り鯨の処置をめぐって : 動植物の供養」, 『日本常民文化紀要』 19 (1996), pp.31-76; 松崎憲三, 「鯨鯢供養の地域的展開 : 捕鯨地域を中心に」, 『日本常民文化紀要』 20 (1999), p.32.

松崎憲三, 「寄り鯨の処置をめぐって : 動植物の供養」, pp.66-67.

베트남 해안지역에서는 포경을 하지 않지만, 고래가 해안으로 떠밀려와 죽으면, 고래를 매장하여 무덤을 조성하며, 일정 기간이 경과하여 육탈이 되면 뼈만 추려 세척·건조한 다음 고래사원에 봉안하고 정기적으로 성대한 의례를 거행한다. 단 고래를 위한 애도 기간, 의례의 간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한다. (Lantz, Sandra, 앞의 책, pp.42-49) 따라서 베트남의 경우도 일본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고래를 어디까지나 카옹이란 신으로 모시며, 무덤과 사원도 카옹 신을 위한 시설이란 점에서 일본의 그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Lantis, Magaret, “The Alaskan Whale Cult and its Affinities,” American Anthropologist 40-3 (1938), pp.438-464; Lantis, Magaret, “Notes on the Alaskan Whale Cult and its Affinities,” American Anthropologist 42-2 (1940), pp.366-368.

출전과 쪽수 표시가 없는 것은 Lantis, The Alaskan Whale Cult and its Affinities에서 인용한 것이며, 다른 자료를 인용했을 때는 별도로 출전을 표시했다.

Cote, Charlotte, Spirits of Our Whaling Ancestors (Seattle & London: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10), pp.15-29.

Taylor, Garth, The Arctic Whale Cult in Labrador, Études Inuit Studies 9-2 (1985), p.123.

Rasmussen, Knod, Across Arctic America (New York & London: G. P. Putnam’s Son, 1927), pp.313-314.

과거 에스키모란 종족 명은 ‘날것을 먹는 자’라는 의미의 멸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들을 캐나다에서는 이누이트(Inuit), 북 알래스카에서는 복수형으로 이누피아트(Iñupiat), 단수형으로는 이누피아크(Inupiaq), 서남 알래스카에서는 유픽(Yupik)이라 한다. 이누피아트·이누피아크는 ‘진짜 사람’이란 뜻이라 한다.

岸上伸啓, 「アラスカ・イヌピアット社会におけるホッキョククジラ漁をめぐる宗教実践と社会変化」, 『社會分析』 45 (2018), p.26.

Rainey, Froelich G., “The Whale Hunters of Tigara,” Anthropological Papers of th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41-2 (1947), pp.257-258.

같은 글, p.259.

Point Hope는 Tigara 반도에 있다.

Zumwalt, Rosemary Levy, 앞의 책, p.271.

小島曠太郞·江上幹幸, 앞의 책, p.36.

岸上伸啓, 「アラスカ・イヌピアット社会におけるホッキョククジラ漁をめぐる宗教実践と社会変化」, p.25.

Rainey, Froelich G., 앞의 글, p.260.

같은 글, p.259.

Taylor, Garth, 앞의 글, pp.125-126.

Cote, Charlotte, 앞의 글, p.26, p.32.

小島曠太郞·江上幹幸, 앞의 책, p.36.

岸上伸啓, 「アラスカ・イヌピアット社会におけるホッキョククジラ漁をめぐる宗教実践と社会変化」, pp.24-25.

小島曠太郞·江上幹幸, 앞의 책, pp.36-37.

Jochelson, Waldemar, The Koryak (Leiden: E. J. Brill; New York: G. E. Stechert, 1908), pp.103-143, pp.575-578.

Bogoras, Waldemar, The Chukchee (Leiden: E. J. Brill; New York: G. E. Stechert, 1904), pp.406-408.

Watanabe, Yutaka, “Beluga Hunting Practices of the Indigenous People in Kamchatka: Characterization of Sea Mammal Hunting in Northeastern Asia,” Senri Ethnological Studies 84 (2013), pp.182-184.

岸上伸啓, 「米国アラスカ州バロ一村におけるイヌピアットの祝宴アプガウティ(Apugauti)について」, 『人文論究』 80 (2011), pp.103-107.

岸上伸啓, 「米国アラスカ州バロー村におけるイヌピアットの捕鯨祭ナルカタックについて : 祝宴における共食と鯨肉の分配を中心に」, 『國立民族學博物館硏究報告』 37-3 (2013) pp.401-415; 岸上伸啓, 「アラスカの捕鯨民イヌピアットの真夏の祭典ナルカタック」, 『食と儀礼をめぐる地球の旅 : 先住民文化からみたシ ベリアとアメリカ』, 高倉浩樹·山口未花子編 (仙台: 東北大学出版会, 2014), pp.91-120.

岸上伸啓, 「アラスカ・イヌピアット社会におけるホッキョククジラ漁をめぐる宗教実践と社会変化」, pp.24-28; 岸上伸啓, 「米国アラスカ州バロ一村におけるイヌピアットの祝宴アプガウティ(Apugauti)について」, pp.51-57.

Rainey, Froelich G., 앞의 글, p.261.

Zumwalt, Rosemary Levy, 앞의 책, pp.272-273. 호프 촌은 티가라 반도에 있으므로, 호프 촌의 사례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티가라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짐작되지만, 보고자에 따라 상세의 정도에 차이가 있으므로 양자 모두 언급해 둔다.

山浦淸, 「北大西洋沿岸諸民族におけるクジラ獵をめぐる儀禮素描」, 『立敎大學日本文化硏究所年報』 7 (2008), p.51.

Chlenov, Mikhail A. & Krupnik, Igor I., “Whale Alley - A Site on the Chukchi Peninsula, Siberia,” Expedition 26-2 (1984), pp.6-15.

Jochelson, Waldemar, 앞의 책, p.113.

Turner, Edith, “American Eskimo Celebrate the Whale,” Tod 37-1 (1993), p.106.

Chlenov, Mikhail A. & Krupnik, Igor I., 앞의 글, p.7.

같은 글, p.7.

渡邊仁, 「北方狩獵民の送り型信仰儀禮とその地域性 : 動物祭祀の新生態學的アプローチー」, 『地域·情報·文化』 (埼玉県: 響文社, 1993), pp.25-26.

『울산 황성동 신항만부두 연결도로 개선사업내 울산 황성동 신석기시대 유적』 (울산광역시청·문물연구원, 2012), 표지.

이하우, 『불후의 기록 대곡천의 암각화』 (울산: UUP, 2021), p.46.

전호태·이하우·박초아, 「반구대암각화 실측도」,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암각화』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2018), 실측도면 4.

같은 글, 실측도면 7.

황수영·문명대, 『반구대암벽조각』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4), p.230.

전호태·이하우·박초아, 앞의 글에 의함.

이상목, 「반구대암각화와 선사시대 고래사냥」, 『고래와 바위그림』 (울산: 울산암각화박물관, 2017), p.206.

Gjerde, Jan Magne, “Stone Age Rock Art and Beluga Landscapes at River Vyg, North-Western Russia,” Fennoscandia archaeologica 30 (2013), p.46.

이하우, 『불후의 기록 대곡천의 암각화』, p.61.

같은 책, p.65.

바위그림의 인물 중 샤먼으로 추측되는 인물의 특징으로 ① 새 머리의 인물, ② 성기 돌출, ③ 뿔이 난 사람, ④ 뿔 달린 가면의 착용자, ⑤ 북을 가진 사람 등이 지적되고 있다. Hoppal, Mihaly, “On the Origin of Shamanism and the Siberian Rock Art,” Studies on Shamanism (Budapest: Akademiai Kiado, 1992), p.137.

이하우, 『암각화의 제의성』 (서울: 학연문화사, 2011), p.221.

전호태·이하우·박초아, 앞의 글, 실측도면 4.

황수영·문명대, 앞의 책, p.159.

같은 책, p.160.

Autio, Eero, “Horned Anthropomorphic Figures in Finnish Rock-Paintings: Shamans or Something Else?,” Fennoscandia Archaeologica 12 (1995), p.18.

Lot-Falk, Eveline, 『シベリアの狩獵儀禮』, 田中克彦·糟谷啓介·林正寛 譯 (東京: 弘文堂, 1980), p114.

같은 책, p.81, p.84.

같은 책, p.209.

『한국의 마을제당 7 : 경상남도·부산편』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003), pp.1052-1053.

박구병, 『한국포경사』 (서울: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1987), p.198, pp.24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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