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이상국가와 지상천국 : 동서양 인간의 꿈과 현실
이 논문은 플라톤의 이상국가 구성요소를 바탕으로 대순진리회 지상천국 실현가능성의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실현을 전제로 하지 않는 국가는 단순한 이상국가에 그치고 지상천국이라는 표현도 쓸 수 없는 천상국가일 뿐이며 현세에서는 접할 수 없는 국가이고 내세에서만 누릴 수 있는 국가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은 논리적으로 이상국가를 설계할 수 있고, 종교적으로 신앙하는 인간은 영성적으로 천상국가를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이성적 사고의 산물인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현실 속에서의 실현을 위한 끊임없는 논리적 과정을 거쳐서 그 실현을 위한 모습으로 제시되었으며, 종교적 신앙의 산물인 대순진리회의 지상천국도 천상천국이 아닌 ‘지상’천국으로 표현되면서 현실 속에서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동서양에 걸쳐 인류는 이상세계를 끊임없이 구상하였고, 그 구상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려는 노력 역시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과거나 현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꿈’을 꾸어왔고,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동서양 역사에서 ‘이상세계’는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아니 지금의 이 현실이 바로 ‘이상세계’가 실현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과연 서양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동양과 한국의 역사 속에서 실현되었는가? 실현되었다고 말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대순진리회의 천상국가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실현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고, 과제는 무엇인가?
플라톤의 이상국가 구성요소를 바탕으로 대순진리회 지상천국의 실현가능성을 분석하기 위한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먼저 이상국가와 지상천국의 실현을 위한 논리적 조건을 제시한다. 서양 고대와 조선 후기·현대 한국의 이상세계 논의를 분석하기 위한 객관적인 틀이 필요하다.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이상세계의 개념, 실현 방법, 실현 주체 등의 구성요소 또는 분석개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설정가능하다. 다음으로 이러한 분석 개념을 바탕으로 먼저 플라톤 이상국가 실현의 이론적 구조를, 이어서 대순진리회 지상천국 실현의 이론적 구조를 분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플라톤 이상국가와 대순진리회 지상천국의 실현가능성을 비교하면서 향후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 이상국가와 지상천국의 실현을 위한 논리적 조건
이상국가나 지상천국 모두 ‘국가’에 관한 논의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이 서양철학의 국가론이라면 대순진리회의 지상천국은 한국종교의 국가론이다. 하지만 철학과 종교의 국가론 모두 그 실현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적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국가를, 어떤 방법으로, 누가 만드느냐를 적어도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먼저 이상국가나 지상천국은 어떤 국가인가? 내용적으로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 지가 구체화되어야 한다. 현실국가에서 이상국가로의 이행, 선천세계로부터 후천세계로의 이행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현실에서 실현되는 이상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천상천국이 아닌 지상천국은 어떤 국가인가? 그리고 그 국가가 현실 속에서 실현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그 국가의 권력구조는 어떻게 되는 지도 밝혀야 한다. 즉 이 국가의 지도자와 국민과의 관계는 법률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도 ‘어떤 국가’의 설명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로 국가를 어떤 방법으로 만드느냐가 구체화되어야 한다. 현실 속의 이상국가와 지상천국은 속도가 늦고 변화의 폭이 좁은 점진적인 개혁으로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속도가 빠르고 변화의 폭이 넓은 혁명으로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이 두 가지 방법의 상황에 따른 결합으로 만들어지는가의 문제가 규명되어야 한다. 개혁이나 혁명의 경우 동원되는 구체적인 수단은 무엇인가? 법률 개정, 윤리나 도덕교육을 통한 인간개조 등이 개혁의 수단이라면, 현실국가의 파괴를 위한 물리력은 혁명의 수단이다. ‘어떤 방법’에 대한 설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셋째로 국가를 누가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정치지도자나 철학가, 종교지도자 등의 엘리트인가? 아니면 이들을 따르는 지식인인가? 일반 시민이나 일반 신자들은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는가? 그리고 국가 수립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 조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누가 만드느냐’에 대한 설명이 추상적이거나 모호하게 남아 있으면, 현실 속에서 이상국가는 실현될 수 없고, 천상천국은 결코 지상천국이 될 수 없다.
Ⅲ. 플라톤 이상국가 실현의 이론적 구조
플라톤이 실현하려고 하는 이상국가에 대한 글쓴이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이데아가 법률을 통해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국가이다. 이데아를 아는 철학가는, 소크라테스를 그랬던 것처럼 현실 정치가들이 죽여버릴 정도로 현실정치의 권력을 잡기 불가능하다. ‘선의 이데아’를 반영하는 법률은 신법이나 자연법이고, 그대로는 아니지만 이 자연법을 부족하게나마 반영하는 법률이 관습법이나 불문법이며, 가장 적게 반영하는 법률이 실정법, 성문법이다. 성문법은 그리스 신화 속의 아폴론 정신이며 신법과 자연법의 해석이다. 법은 이상이 현실 속에 살아 있게 하는 도구이다. 이런 법치국가에서 법률에 의해 주권자의 위상이 결정되는 정치체제를 갖는다. 플라톤 이상국가의 정치체제는 법치가 필수적이며, 주권자가 1인인 경우 군주제, 다수이면 귀족제, 그리고 국민전 체가 주권을 가지면 민주제이다.
플라톤 이상국가는 ‘어떤 방법’으로 실현되는가? 법과 교육을 통해 사람을 개조함으로써 실현된다. 준법정신을 갖는 국민을 양성한다. 교육은 윤리교육, 도덕교육이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존중하게 하는 교육이다. 법이 윤리를 위해서는 엄격하고 좁은 형태인데 반해, 교육은 법보다는 일반적이고 넓은 개념이다. 따라서 교육은 법의 이율배반을 위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육은 입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 분야들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법의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일 수 있다. 법의 문제는 법 자체로서는 해결되지 않고 윤리로서 가능하므로 윤리교육은 플라톤의 이상실현을 위해서 절대적이다. 법과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플라톤의 법은 엄격하게 법률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윤리적이고 철학적이며, 법의 집행은 처벌적이기보다는 교육적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누가’ 실현하는가? 현실 속에 실현되는 이상국가의 정치체제에 따라 이데아를 반영하는 자연법을 군주제나 귀족제의 정치지도자, 자유, 평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법률을 준수하는 민주시민이 실현한다.1)
이와 같은 내용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에 대한 기본 이해가 새롭게 정리될 필요가 있다. 먼저 플라톤 자체에 대한 해석을 바로 잡아야 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초기 저술인 「폴리테이아」에 주목하여 부분을 전체로 강조한 학문적 오류가 있는 해석이다.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실현 가능성을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여 저술을 집필하였다. 특히 이상국가의 현실에서의 모습을 치열하게 고민하였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철인정치가 아니라 자연법, 헌법을 통해 보편 이성이 실현되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초기 저작의 이데아는 철인이 아니라 후기저작 속의 법률을 통해서 실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서양의 신학이나 정치사상, 법학 체계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플라톤은 근대 법철학의 근간을 제공하는 자연법 사상가이며, 자유와 평등,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내세운 근대 계약사상가들의 뿌리가 되는 고대 계약사상가이다.
플라톤 정치사상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그 해석이 부분적이고 비체계적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분석되고 또 받아들여진 정치학 또는 정치사상에 있어서의 플라톤의 모습은 이상주의이다. 그 원인은 주로 국가론의 측면에서 「폴리테이아」에 치중하여 플라톤을 그의 초기 이데아론과 결부시켜 해석하는데 있다. 또한, 후기 대화편인 「법률」에 치중하여 플라톤을 평가할 경우, 현실주의, 현실타협주의 또는 초기 이상주의의 좌절이라는 내용이 그 주류였다. 이렇게 「폴리테이아」와 「법률」에 치중하는 태도는 그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부분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 두 가지 태도를 지양하여 「폴리테이아」, 「법률」과 더불어 「정치가」를 연속선상에서 분석할 때에도, 이 세 대화편의 상관관계에 대한 철저한 접근이 없이 각각을 서로 단절적인 상태로 놓아두기 때문에 체계적인 분석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플라톤 정치사상에 대한 이와같이 단순화되고 분절적인 해석의 또 하나의 원인은 그의 대화편 중에서 정치사상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폴리테이아」, 「정치가」, 「법률」만을 그 분석대상으로 하며, 더구나 이 대화편들 중에서도 정치학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부분만을 확대 해석하고 이에 관계되는 다른 요소들을 무시해버리는데 있다. 이 대화편들에도 형이상학과 종교에 관한 언급이 체계적으로 존재하면서 정치사상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나머지 대화편들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정치사상의 분석에 필요하다. 따라서 플라톤 정치사상의 해석에는 첫째, 그의 모든 대화편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과, 둘째, 정치사상에 관련되는 요소들 중 최소한 형이상학적·종교적 요소들의 분석이 필수적임이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 이전의 그리스 신화(종교)를 이성으로 정화시키면서 자신의 정치사상 전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보존되어야 하며, 이것은 정치공동체를 위한 변증론자(철학자)의 임무임을 플라톤은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아폴론이나 전통적인 신화가 적어도 그에게는 철학적 가치뿐 아니라 국가, 정치에 대해 상징적 또는 실제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법, 교육, 종교, 관습 등 그의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한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이것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다양한 상황에 맞게 현실에 적용시키는 제도까지도 구성한다.
결론적으로 플라톤 정치사상의 전체적이고도 체계적인 해석의 필요충분조건은 그의 모든 대화편을 통한 정치사상 구성요소의 분석이다. 학문적으로 다른 모든 사상가의 이해에도 이런 태도는 필수적이다.2) 전체적이고도 체계적인 해석과 이해가 부족한 또 하나의 사례는 19~20세기의 마르크스이다.3) 마르크스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한 마르크스로 마르크스를 이해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가 발생한다. 마르크스 전체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그의 ‘이상국가’의 내용은 ‘공산당선언’의 몇 줄 뿐이다. 이 ‘이상국가’를 이루는 방법도 정치투쟁, 경제투쟁, 합법투쟁, 비합법투쟁 등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이 ‘이상국가’를 이루는 주체는 프롤레타리아이지만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절대 신뢰도 없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 부족, 계급변동 가능성 등도 매우 우려하고 있다. 마르크스 사상 자체는 매우 유연하고 포괄적이지만, 마르크스 사후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정치 권력을 위해 자신들을 정통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면서 폭 좁게 활용하였다.4)
본 논문의 목적은 대순진리회의 지상천국과 플라톤, 또는 마르크스 이상국가론의 평면적 비교가 아니며, 플라톤과 마르크스에 대한 글쓴이 해석의 소개가 아니다.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대순진리회에 대한 어떠한 요소의 분석과 적용에서도, 대순진리회 지상천국의 분석에서도 관련된 모든 원자료를 전부 정밀하게 읽고 전체적이고 체계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 표현만을 확대하는 부분의 전체화 오류를 방지가 중요하다. 상제 이후 다양한 증산교 계열의 종단의 등장 이유도 부분의 전체화 오류 때문일 것이다.
Ⅳ. 대순진리회 지상천국 실현의 이론적 구조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대순진리회의 지상천국은 어떤 국가인가? 지상천국의 정치체제는 무엇인가? 정교일치의 신정정체인가? 세속적인 정치체제 형태인 군주정, 귀족정-과두정, 민주정인가? 주권자는 누구인가? 지상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 등의 운영원리는 무엇인가? 지상천국은 어떤 방법으로 실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지상천국을 실현하는 주체는 지상천국의 주권자와 관련하여 누구인가? 상제(강증산), 도주(조정산), 도전(박한경)인가? 일만이천 도통군자인가? 아니면 수많은 신자인가? 대순진리회의 지상천국 실현가능성에 대한 분석은 『전경(典經)』을 중심으로 한 주요 문헌과 관련 선행연구를 인용하면서 전개하기로 한다.
먼저 지상천국의 개념, 달성 방법, 달성 주체와 관련된 체계적인 언급은 도주(조정산)와 관련된 『전경』 속에 있다.5) 상제 → 도주 → 도전의 정통적 승계6)속에서, 도주의 무극도에 정리된 종지, 신조, 목적을 중심으로, 지상천국의 개념, 달성 방법, 달성 주체의 측면에서 정리될 수 있다. 지상천국의 개념에 해당하는 항목은 종지(宗旨)의 도통진경(道通眞境), 목적(目的)의 지상천국(地上天國)이고,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冤相生)은 지상천국이 실현된 상태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종지의 개념 모두 지상천국의 달성 방법으로 볼 수도 있다. 지상천국의 달성 방법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신조(信條)의 사강령(四綱領): 안심(安心)·안신(安身)·경천(敬天)·수도(修道)와 삼요체(三要諦): 성(誠)·경(敬)·신(信), 목적(目的)의 인간 개조(人間改造)를 위한 무자기(無自欺), 정신개벽(精神開闢), 세계개벽(世界開闢),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 등을 들 수 있다. 지상천국의 달성 주체는 개조된 인간(인간개조), 신과 조화된 인간(신인조화), 신조의 사강령과 삼요체를 실천하는 인간으로 상정할 수 있다. 이같이 분류된 세 영역은 해석과 실천에 따라 서로 중첩될 수도 있다.
먼저 지상천국의 개념을 살펴보자. 지상천국은 어떤 국가인가? 지상천국과 비슷하게 쓰이는 개념은 ‘선경(仙境)’, ‘후천(後天)’, ‘지상선경(地上仙境)’, ‘도통진경’ 등이 있다.7) 『전경』에 나타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경’은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공사 1장 31절)이다. ‘후천’은 추수의 때, 평화의 시기, 불로장생의 시기인 ‘지상선경’이다.8) ‘도통진경’의 실상은 만법통일시대, 무위이화의 조화시대, 인간이 위주가 되는 인존시대, 도통시대, 무재해시대, 천지성공시대로 정리되기도 한다.9) 한편, 본 논문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국가론은, ‘대안 제시는 부족하고 비판 정신이 풍부한 아나키즘의 국가론’10)과 ‘순수한 종교성을 견지하며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강조하는 국가론’과도 차별이 있으며, 또한 ‘상제님 자신이 손수 건설한다는 독자적인 이상사회론’11)은 검토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지상천국은 어떤 정치체제를 갖는가? 이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에서는 상제의 직접 통치를 전제로 하는 신정론과 민주정과 연결되는 민주주의론을 발견할 수 있다. 신정론에서 주권자는 상제 1인인 군주정을, 민주주의론에서는 주권자가 피지배자 전체인 민주정을 정치체제론의 입장에서 상정할 수 있다. 신정론에서도 상제 1인의 직접 통치는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고 여기에는 수많은 주권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선근은 신정론에 대한 김항제와 자신의 선행연구를 분석적으로 비판하고, 14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신정론을 제시하면서, 대순진리회의 신정론을 ‘개벽 이전 산천의 신정론’, ‘개벽 이전 과도기의 신정론’ 등으로 나누면서 신정론을 고찰하고 있다.12). 하지만 정치체제론에서 볼 때, 모든 ‘신정론’은 주권자가 1인인 정치체제로서, 대순진리회 지상천국의 현실적인 모습은 군주정(절대군주정), 왕정, 제정 등이다. 하지만 상제 1인이 수많은 나라를 직접 통치하는 1인 주권자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세계개벽이 이루어지면 수많은 군주정이 수많은 주권자에 의해 운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정이던 민주정이던 간에 지상천국의 정체에 계급이 존재하느냐의 문제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존재 여부이다. 글쓴이는, 체제를 운영하기 위한 기능상의 계층은 불가피하나 권력투쟁과 연관된 지배-피지배 관계는 없다고 본다. 전경에 표현된 ‘계급’도 ‘계층’으로 보아야 하고, 계층 사이에 이른바 ‘계급투쟁’은 없다는 점이다.13) 그리고 지상천국은 ‘천상’이 아닌 ‘지상’에서 실현되므로, 이 지상천국은 정교일치의 나라인가, 정교분리의 나라인가도 설명될 필요가 있다. 정교분리의 경우 타종교에 대한 관용과 이를 위한 법체계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실현될 지상천국은 신법이나 자연법만 있으면 되고 어떠한 실정법도 필요 없는 국가인가? 지상천국은 선천에서의 계급투쟁과 종교갈등도 없는 진법(眞法)의 나라이다. 진법은 신법이나 자연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교화가 일치하는 후천세계의 지상천국이다.14)
다음으로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양무목은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 존중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조화와 타협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전제하면서, 대순사상을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인류 구원 사상으로 설정하고 있다.15) 글쓴이가 지상천국이 실현된 상태나 실현 방법으로 설정한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과 천지공사가 민주주의와 갖는 내적 연관성을 설명하고, 한국정치 현실을 비판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대순사상이 한국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가 오도되었다고 진단한다. 올바른 민주주의는 대순사상의 실천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무목의 논의에서 지상천국의 실현을 위한 ‘민주정’의 논의는 더 이상 구체화되고 있지 않다. 이상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설정된 지상국가가 현실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라도 구체화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입법이나 교육제도 개선 등 대순사상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제안을 기대해본다. 하지만 대한민국만을 제한해서 볼 때, 현재 대한민국은 정교분리의 나라이고, 대순진리회는 종교 교단이므로 종교 고유의 영역에서 입법이나 교육제도 개선을 제안해도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배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종교재단의 학교에서도 종교교육은 매우 제한적으로 실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둘째로 지상천국의 달성 방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지상천국은 어떤 방법으로 실현할 수 있는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 등을 모두 지상천국의 달성 방법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음양합덕은 선천세계의 상극을 벗어나, 후천세계에서 우주만물의 조화, 천지조화, 정신과 물질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이며, 그 원리로는 정음정양, 음양상생, 음양조화가 제시된다.16) 지상천국의 달성 방법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신조의 4강령(안심, 안신, 경천, 수도)과 3요체(성, 경, 신), 목적의 인간개조를 위한 무자기, 정신개벽, 지상신선 실현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항목은 그 자체로 지향하는 목표가 되기도 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나 방법이 될 수 있으며, 목표를 이루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천국의 달성 방법은 ‘상제에 의한 방법’과 ‘상제 이후의 방법’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먼저 ‘상제에 의한 방법’은 삼계공사이고 이 방법은 ‘도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삼계공사는 상생의 도를 후천의 선경에 세워 ‘새로운 법’17)으로 해원하는 방법(공사 1장 3절, 공사 1장 4절 5절)이다. 삼계공사는 후천개벽이고 해원상생18)을 위한 공사로서, 천지인 삼계에 대한 개벽19)이다. 그런데 이 삼계공사는 ‘도수’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 ‘도수’는 상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도수’ 정리로 해원상생, 후천선경이 가능하다.20) 상제는 모든 도법을 합하여, 모든 법을 합하여 도수를 물샐틈 없이 짜놓으셨다.21) 삼계공사는 후천의 새 운수를 여는 개벽공사(공사 2장 24절)이다.22) 그렇다면 지상천국을 실현한다는 이 ‘도수’는 무엇인가? ‘도수’는 이성(理性)으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신성(神性)의 영역이다. 박인규의 연구23)에 따르면, 전경에서 ‘도수’는 천지, 우주 자연의 법칙 또는 의미, 천지공사·삼계공사의 구체적 목록, 천지법칙의 변화과정, 기간 및 절차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인규는 대순진리회 문헌에서 도수의 다양한 표현, 그리고 중국문헌과 한국 문헌에서 다양한 용례와 의미를 분석하면서, 상제·도주 ‘도수’ 사용24)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도전의 경우 종단 외부의 연구자에게는 미공개상태인 훈시 자료를 활용하여 도전 역시 ‘도수’를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25) 다음으로 지상천국을 달성하는 ‘상제 이후의 방법은 무엇인가? 도주의 해원 제민 사업26)과 대순진리회의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이라는 3대 중요사업 등이다.27) 이외에도 기존 연구에서 주목되는 방법은 무극도의 항일독립운동과 보천교의 민족운동이다.28)
셋째로 지상천국의 달성 주체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상천국을 실현하는 주체는 지상천국의 정치체제 주권자와 관련하여 누구인가? 신정정체나 절대군주정을 상정할 때 상제(강증산), 도주(조정산), 도전(박한경)인가? 과두정이나 귀족정을 상정할 때, 일만이천 도통군자인가? 아니면 민주정을 상정할 때, 개조된 인간(인간개조), 신과 조화된 인간(신인조화), 신조의 4강령(안심, 안신, 경천, 수도)과 3요체(성, 경, 신)를 실천하는 인간으로 그 주체를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지상천국의 달성 주체는 상제(강증산)이며, 무극도의 도주(조정산), 그리고 대순진리회의 도전(박한경)이다. 상제는 ’모든 우주적 규범을 초월하는 독보적 권위‘를 갖는다.29) 상제는 구천의 신성·불·보살의 호소를 받아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30) 상제는 직접 강세, 승천하셨고 재림하신다.31) 상제는 ‘도수’로 삼계공사를 하여 지상천국을 가장 확실하게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다. 이외에도 지상천국 달성 가능성과 한계와 관련하여 『전경』에 언급된 인물로는 진묵, 최제우(최수운), 전명숙(전봉준), 손병희, 이마두 등이 있다.32) 다음으로 지상천국-도통진경을 달성할 수 있는 다수의 집단으로 도통군자33)를 생각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 도통군자의 교육과 양성 방법이다. 도통군자의 교육과 양성의 문제는 종단 내부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상천국은 종단 영역 밖의 정치 현실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종단 내부에서는 신조의 4강령(안심, 안신, 경천, 수도)과 3요체(성, 경, 신)를 실천하는 신자들을 교육할 수 있고 양성할 수 있다. ‘판 밖’의 새로운 법으로 ‘판 안’의 인간을 어떻게 조화시켜서 개조할 것인가? 개벽의 대상인 민주주의와 한국정치의 현실 속에서 대순진리회의 지상천국을 실현할 주체들을 확보할 종단의 전략 수립이 과제이다.
지상천국은 천상천국이 아니다. 현세에서 실현되는 내세의 천상천국이 바로 지상천국이다. ‘도수’에 의해 삼계공사가 완성되어야 한다. 지상천국은 비참한 현실과 개벽되어야 할 인간들 속에서 실현된다. 지상천국의 실현은 현실과 인간이 개벽되어야만 이루어진다. 사강령과 삼요체를 통한 개개인의 인간성에 대한 완전한 자각과 지상신선을 향한 자기완성, 내적인 정신세계와 외적인 물질세계의 조화, 정신과 육체의 조화, 인간과 신과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상천국이 내 마음과 양심 안에 있다는 말은 정당하고, 내가 곧 예수요 부처라는 말은 성립 가능하지만, 이러한 말은 지상천국의 구현 양상을 개별화하고 축소시키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개인에서 가능한 완성과 조화가 사회와 국가 안에서 확산되어야 지상천국은 좀 더 넓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상천국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지상천국은 한 나라의 정치적 이상세계뿐 아니라 전 세계 전 인류 역사의 종교적 이상세계를 포괄하는 문명 세계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인류의 전면적인 개조 없이 지상천국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세계개벽이 없이 지상천국은 불가능하다. 지상천국은 전 세계 문명의 개벽이라는 세계개벽을 통해 이루어진다. 최소한 한반도 주변 4강의 개벽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 더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도 않다. 인간개조, 국가개조, 세계개조를 위해 상제가 아닌 우리 인간은 어떤 ‘도수’를 사용할 수 있을까?
Ⅴ. 이상국가와 지상천국의 실현가능성과 과제
본 논문에서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실현되고 있다는 논지를 전개하였다. 그 논거는 플라톤이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입법을 하고, 이 법률의 실현을 위해 교육에 대한 구상과 실천을 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법이 신법이 아닌 자연법, 그리고 그의 입법이 자연법이 아닌 실정법으로 평가되어도, 그의 법률과 교육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 ‘가장 덜 나쁜 방법’이며, 이러한 플라톤의 사상은 서양의 법철학과 자연법사상의 시원으로서 민주주의 사상의 토대를 이루었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 이성을 존중하는 근대 자연법사상, 계약 사상, 그리고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지를 인정할 경우, 한국에서도 플라톤 이상국가의 실현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갖는 ‘개벽’의 대상이다. 플라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플라톤을 전체 저작을 통해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이해하기’와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하지 않고 플라톤을 직접 이해하기’라는 학문적 태도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만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을 인정하지 않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교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할 경우 플라톤을 떠나,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서양의 민주주의를, 대의제와 다수결 제도의 현실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상국가가 지향해야 할 정치이념으로 설정한다면, 글쓴이의 논지는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편 대부분의 사상과 종교는 당대의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과 냉엄한 비판을 반영하여, 이상세계를 대안으로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상의 전개와 종교 성립 이후 현실이 얼마나 이상세계로 다가갔는지는 의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말세의 연속이었으며, 참담하고 비참한 현실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 채 말없이 그대로 흘러왔다. 또한,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과 비판은 있었어도 실현될 이상세계조차도 대안으로 제시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글쓴이의 해석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국가론과 포스트모던 국가론이 대표적이다. 본 논문에서 국가론의 구성요소로 제시한 국가의 개념, 달성 방법, 달성 주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볼 때 마르크스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 어느 구성요소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만 있을 뿐 대안은 없었다.
대순진리회의 연원인 상제 역시 천지공사 전후의 한국 사회와 주변 국가에 대한 치밀한 통찰과 치열한 비판을 토대로, 지상천국 건설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순진리회의 지상천국은 그 구체적인 실천 가능성을 지금의 현실에 맞게 더욱 구체화하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민족종교를 넘어서서 보편종교를 지향하는 대순진리회는, 한국을 넘어서서 전 세계에서 지상천국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더 치밀하고도 구체적인 신학 체계를 다양한 층위의 영역에서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정치 현실 속에서 대순진리회가 지상천국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통일과 한민족통합은 물론 기후변화 등을 위시한 전 세계의 환경문제에 대한 방책들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