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시작하며
대순 신앙의 기저에 특유의 역학(易學) 담론이 중추적인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순종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미 주지의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담론의 구체적인 층위와 고유한 특질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여전히 미진한 실정이다. 물론 기존 역학 이론이나 철학적 관점에서 대순 신앙과 사상을 분석해 온 다양한 선행 연구들이 축적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적에 대한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연구의 상당수는 기성 역학의 철학적 프레임을 대순 사상에 투영하여 해석하는 시도에 국한되어 온 측면이 강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해석적 결과에 대한 개별적 평가를 넘어, “과연 기존 역학의 지평 내에서 대순 신앙과 사상을 분석하는 방식이 그 본연의 진면목을 포착하는 데 적절한가?”라는 근본적인 회의에서 출발한다. 즉, 기성 역학의 틀로 대순 신앙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대순의 경전과 텍스트가 발신하는 고유한 역학 담론을 발굴·재구성함으로써 대순역학의 지평에서 신앙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지금까지의 대순 사상 연구가 주로 교리, 역사, 의례적 접근에 치중됨으로써 사상적 원형(原型)으로서의 역학적 토대, 즉 특유의 역학 담론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충분히 가시화되지 못했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대순종학의 근간이 되는 우당(牛堂, 1917~1995)의 훈시에는 독자적인 역학 담론이 내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교하게 연의(衍義)하여 신앙체계 전반과 유기적으로 결합한 연구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이는 대순 신앙의 핵심인 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가 개벽(開闢)을 지향하며, 이 개벽이 변역(變易)1)의 논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순역학의 텍스트와 담론 구조에 대한 종교학적 서술이나 탐색이 부재했다는 사실은 대순종학 연구자들에게 깊은 학술적 반성을 요구한다.
본 연구는 이상의 비판적 문제 제기를 바탕으로, ‘대순역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관련 텍스트와 참고 자료를 정리·확정하고 담론 구조의 체계를 서술하는 것을 핵심 목적으로 한다. 즉, 대순진리회의 경전 및 관련 문헌에 나타난 역학 담론을 포착하여 분류·분석함으로써 ‘대순역학’의 담론 체계를 시론적으로 제시하고 그 고유한 특징을 학술적으로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증산, 정산, 우당의 서사와 교설을 관통하는 역학 텍스트를 발굴하여 그 담론 체계의 골자를 소개하는 작업이 본고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선행 연구 성과를 비평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대순역학’의 독자성 확보는 기존 역학의 관점에서 도출된 해석들이 대순의 세계관과 필연적으로 노정하는 불일치와 모순을 논리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비로소 학술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검토는 역설적으로 ‘대순역학’의 개념적 외연과 담론적 구조를 개괄적으로 조망하는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주요 선행 연구들에 대한 비평적 고찰을 통해 ‘대순역학’ 정립을 위한 논의의 초석을 다지는 작업으로 본론을 시작하고자 한다.
Ⅱ. 대순역학 정립을 위한 선행 담론 비평
본격적인 선행연구 검토에 앞서, 후술할 논의에서 도출되는 문제점들이 대순종학의 학문적 정립 과정에서 역학 분야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다는 사실에 기인함을 밝혀둔다. 즉, 여기서 제기되는 한계들은 연구자들이 일차 텍스트에 접근하기 어려웠거나 교학적 연구를 충분히 참조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본고의 비판적 고찰은 선행 연구 자체에 대한 소모적 비평이라기보다, 본 연구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기 위한 방법론적 작업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학술적 영역에서 대순 신앙체계를 역 철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의 상당수는 대순진리회의 종지(宗旨) 중 하나인 ‘음양합덕(陰陽合德)’의 해석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음양 이론이 주로 『주역』과 그 주석서 및 연구서들에 중심으로 정립되어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 중 초기 연구에 해당하는 「음양합덕 일시론(一試論)」(1997)에서2) 윤재근은 ‘음양합덕’의 독립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노장 철학의 도덕 개념을 원용하는 한편, 『주역』 「계사전」의 “음과 양이 그 덕을 합하여, 강(剛)과 유(柔)가 형체를 갖게 된다(陰陽合德而剛柔有體)”는 구절을 근거로 ‘음양합덕’을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주도하는 객관적 법칙이자, 구체적 사물의 형체를 완성하는 실천적 원리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본고의 관점에서 볼 때, 윤재근의 논의는 『주역』 철학의 틀 안에서 대순 사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에 머물렀다는 한계를 지닌다. ‘음양합덕’의 연원을 『주역』 「계사전」에서 찾고자 한 시도는 대순 종지의 학술적 기반 확보에는 기여했으나, 대순 신앙 고유의 ‘능동적 변역(變易)’의 성격을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 신앙의 층위에서 ‘음양합덕’은 주어진 정태적 조화의 법칙이 아니라, 상제 증산이 천지공사를 통해 불균형한 도수를 해체하고,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신질서를 수립해 나가는 동역학적(dynamic)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분석은, 상제의 개입에 의한 ‘도수(度數) 교정’과 그로 인한 ‘변역’의 논리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영진의 「대순사상의 역학적 조명」(2009) 역시, 『주역』의 음양 이론을 통해 대순 사상의 철학적 의미를 탐색한 연구이다.3) 그는 ‘음양합덕’을 ‘음양대대(陰陽對待)’의 원리와 연계하여 ‘억음존양’의 위계 질서를 극복한 평등적 음양관으로 조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분석 또한 대순 신앙과 사상 고유의 역학 담론을 『주역』이라는 틀 안에 종속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대순 신앙에서 ‘음양합덕’은 단순히 『주역』 철학의 음양 대대성 원리의 계승이나 재해석이 아니다. 대순 신앙에서 『주역』은 ‘양(陽) 중심의 편향성’으로 인해 현실 세계의 왜곡을 초래한,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성격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제시한 ‘음양대대’의 논리는 음양합덕의 정태적 측면만을 포착할 뿐, 주체적 개입과 도수 교정이라는 핵심 동역학과는 일정한 거리감을 노정한다.
정병화는 「대순사상의 대대성 원리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2019)에서 『주역』의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를 공시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음양합덕을 단순한 이분법적 결합이 아닌 상호침투적 관계로 이해하려 했다.4) 이 연구는 대순의 역학 담론을 인식론적·윤리적 층위로 확장시켰다는 성과가 있으나, 여전히 대순 신앙 고유의 변역 논리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대순의 음양합덕은 단순한 인식적 포용을 넘어 정음정양의 신질서를 창조하고 구현하는 구체적 실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연재는 「천지개벽의 역학적 사유에서 본 대순사상의 후천개벽과 선험주의적 세계」(2023)에서 대순사상의 핵심인 ‘후천개벽’을 서구 철학의 ‘선험주의(transcendentalism)’와 대비되는 동양적 ‘선험주의(pre-experientialism)’의 틀로 분석하였다.5) 그는 특히 『주역』의 건곤 상관성을 통해 개벽의 역학적 기반을 제시하고, 상제의 천지공사를 기존 운수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지어 만드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는 주목할 만한 시도이나, 근대 철학적 개념에 의존하는 과정에서 대순 신앙의 동역학적 실체가 지나치게 추상화될 위험이 있다. 그가 정의한 개벽은 『주역』 「서괘전」의 논리에 기대고 있으나, 대순 신앙에서의 개벽은 단순한 질서화를 넘어 선천의 역학 도수를 전면적으로 변혁하는 실재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존의 역 철학을 기초로 한 해석에서 벗어나, 대순 신앙 특유의 역학 담론, 즉 ‘대순역학’을 본격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연구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차선근의 「정역사상과 대순사상의 비교연구」(2010)를 들 수 있다.6) 이 연구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학술적 함의를 지닌다. 첫째, 대순 신앙이 자연 도수 중심의 『정역』과는 달리, 강증산이라는 최고 주재자의 주체적 개입에 의해 변역이 실현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대순역학의 능동적 변역성을 부각시켰다. 둘째, 대순사상은 무극과 태극 개념에 인격적 신격을 결합하여 종교적 실재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대순역학이 단순한 수리·상수 체계가 아니라 신앙 체계임을 입증하였다. 다만, 그의 논의 역시 상대적 차이를 부각하는 비교 연구의 성격상 본격적인 체계화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이봉호의 「『태극도통감』의 도상을 통해 본 대순사상의 선·후천 개념」(2023)은 ‘대순역학’의 이론적 토대를 도상(圖像)을 통해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7) 그는 『태극도통감』 수서본에 제시된 팔괘도 도상과 해설을 분석하여 변역의 사유가 대순 신앙 내에서 어떻게 담론화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대순 텍스트를 적극 활용하여 교리를 시각적·수리적 도상을 도입하여 해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이나, 그가 근거로 삼은 문헌이 정산(鼎山)이나 우당(牛堂)의 사유를 반영한 공식 문헌이 아니라 1960년대 태극도 시기의 비공식 담론일 가능성이 크다는 고증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8) 따라서 이를 보편적인 대순역학의 전형으로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종합하건대, 기존 연구들은 대체로 기존 『주역』의 개념적 틀을 차용하여 대순 신앙과 사상을 해석하는 데 머물렀다. 이러한 접근은 대순의 텍스트가 발신하는 고유한 사유, 즉 ‘대순역학’의 관점에서 현상을 분석한 것이 아니기에 실제 종교현상과는 유리(遊離)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증산, 정산, 우당의 교설을 관통하는 독자적 사유체계를 ‘대순역학’으로 명명하고 그 구체적 담론 구조를 정립하고자 한다.
Ⅲ. 대순역학 텍스트와 담론 구조
대순 신앙체계의 기저에 고유한 역학 담론이 내재해 있다는 점은 대순종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경전과 주요 텍스트에 산재한 역학적 요소를 포착하여 이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구조화하는 작업은 결코 용이하지 않다. 이는 증산의 공사(公事)나 정산의 공부(工夫)가 고도의 암시와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어, 역학적 층위에 대한 선행적 이해 없이는 그 이면에 담긴 종교적 함의를 온전히 해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순종학은 증산의 공사와 정산의 공부에 대한 우당의 독법(讀法)을 그 지평으로 하고 있고, 다행스럽게도 우당은 명확하게 증산과 정산의 유지와 유법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훈시를 통해 남겼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먼저 우당의 훈시를 분석하여 대순역학 담론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을 모두 소개하는 작업을 우선하기로 한다.
우당의 1980~84년 훈시는 1984년 『대순지침』으로 편찬되어 발간되었고 그 이후부터 1995년까지의 훈시는 15편이 『대순회보』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9) 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훈시들에 비해 『대순지침』·『대순회보』의 역학 관련 내용은 매우 축약적이며 단편적이어서 본 연구에서는 미공개된 부분을 중심으로 역학 관련 훈시를 모두 부록에 수록했다.
역학과 관련된 우당의 훈시는 훈시 전체로 본다면 많은 분량은 아니다. 하지만 역학이 언급된 맥락은 매우 중요하다. 주로 증산의 인신 강세의 의의, 그리고 우주 운행 법칙과 역의 관계를 변역(變易)의 관점에 입각해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순 신앙체계의 핵심이라 할 증산 강세의 원인과 배경 및 우주의 법리를 역학 담론으로 설명했다는 사실은 그 신앙체계와 사상의 해석에 있어서 대순역학의 관점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우당의 역 사상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이 도식화된다.
-
① 복희-용마(龍馬)-하도-복희팔괘·희역-목신사명-춘운-신봉어천-천존시대
-
② 문왕-신귀(神龜)-낙서-문왕팔괘·주역-화신사명-하운-신봉어지-지존시대
-
③ 증산-금산사-솥·미륵-정역팔괘·정역-금신사명-추운-신봉어인-인존시대
위와 같은 우당의 역학 담론과 궤를 같이하는 대표적인 텍스트로는 『채지가』를 들 수 있다. 『채지가』는 민간에서 전승되던 가사로 1967년 태극도에서 간행된 것이 최초의 출판본이다.10) 하지만 나타난 시기와 내용으로 본다면 구전되던 가사의 원형을 정산이 창도한 ‘무극도’에서 채록하고 체계화하여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11) 『채지가』는 비록 공식 경전은 아니지만 우당이 태극도를 영도하던 시기와 대순진리회 설립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출판된 한글 가사(歌辭)라는 점에서 정산에 의해 그 경전적 성격이 인정된 문헌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채지가』에 나타난 역학 관련 텍스트 역시 대순역학의 담론을 위해서는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채지가』 중 「칠월식과」 부분에는 희역, 주역, 정역을 시대에 따른 역의 변화로 설명하면서 그 원리, 특징, 시대상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관련 내용은 부록에 수록했는데 보다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학문적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정역과 동일하게 문왕팔괘를 수화기제로 본 점,12) 복희팔괘와 문왕팔괘의 중앙 수리를 9, 10과 5, 10으로 본 점 등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반드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채지가』 「칠월식과」에 나타난 역학 담론은 우당의 훈시와 상당 부분 궤를 같이한다. 이는 우당이 정산으로부터 전수받은 역학적 가르침이 『채지가』의 담론 구조와 밀접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우당이 『채지가』를 직접 출판한 목적 역시 정산의 역 사상을 가사(歌辭)라는 친숙한 형식을 빌려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목할 점은 『채지가』에는 명시되지 않은 독창적인 담론이 우당의 훈시에서 구체화된다는 사실이다. 우당은 변역이 우주적 변화로 귀결되는 구체적 공정(工程)으로서 ‘봉신(封神)’의 프로세스를 명확히 규정하였다. 즉, 역(易)의 변화에 따라 신명(神明)이 봉해지는 대상이 전이된다는 논리이다. 결국 ‘희역-신봉어천-천존시대’, ‘주역-신봉어지-지존시대’, ‘정역-신봉어인-인존시대’로 이어지는 핵심 체계는 도(道)인 무극[태극]에 의해 도수와 리(理)를 상징하는 역(易)이 변모하고, 그 결과 신(神)의 의지체가 재배정됨으로써 삼계가 변화 또는 개벽되어 신질서가 구축된다는 담론이다. 대순역학 담론의 종착지가 정역에 기초한 ‘신봉어인(神封於人)’, 즉 신인조화(神人調化)의 실현에 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따라서 증산과 정산에 관련된 텍스트 또한 정역과 신인조화의 관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산의 역 사유를 가장 명확히 투영하고 있는 문헌은 1956년 간행된 교단 최초의 공식 문헌인 『태극도통감』이다. 본 문헌은 우당의 책임하에 편찬되었으며 정산의 가르침을 정수로 담고 있다.13) 그중 신봉어인의 관점에서 ‘대순역학’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보여주는 ‘기원(起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道之謂道也者 定而無極하고 動而太極하야 太極이 生兩儀하고 兩儀生四象하고 四象이 生八卦하나니 太極之理生生之數는 無盡無量하야 變通造化之功德을 不可思議일새 惟我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 管領主宰 太極之天尊이시라 太極이 生兩儀者는 陰陽也니 陰陽者는 天陽地陰이며 日陽月陰이며 人陽神陰이 是也오 又有 五行相生之理하니 金生水하고 水生木하고 木生火하고 火生土하고 土生金이 是也며 又有天地人三才之道하니 天開於子하고 地闢於丑 人生於寅이 是也라 天地陰陽이 合德하야 萬物이 始生하고 日月陰陽이 合德하야 萬物이 育焉하며 人神陰陽이 合德하야 萬有가 歸依하나니 神無人이면 後無托而所依하고 人無神하면 前無導而所依하나니 故로 陰陽이 合德하고 三才가 確立하고 五行이 具備하야 調理乾坤하며 統御萬有하나니 至奧至密하며 至玄至妙하야 不可測度이라 九天上帝觀鑑萬天하시며 大巡三界하실새 神人依導의 因緣으로 人間에 下降하사 大道의 眞理眞法을 傳하사 九年間天地公事를 行하시고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帝位에 昇化臨御하시니 卽 姜甑山聖帝이시다 盛哉라 道也여 神人依導之眞理로 人神調化解寃相生道通眞境之理 具而備焉하니 愼哉勗哉어다14)
『태극도통감』외에도 정산의 역학적 관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핵심 텍스트로 1920년대 무극도 시기부터 사용된 주문들을 들 수 있다. 정산의 역 철학은 특히 ‘음양경(陰陽經)’과 ‘운합주(運合呪)’에 집약되어 있으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乾定坤順 乾陽坤陰 日行月行 日陽月陰 有神有人 神陰人陽 有雄有雌 雌陰雄陽 有內有外 內陰外陽 有右有左 左陰右陽 有隱有顯 隱陰顯陽 有前有後 前陽後陰 天地之事 皆是陰陽中 有成 萬物之理 皆是陰陽中 有遂 天地以陰陽 成變化 神人以陰陽 成造化 天無 地化無布於其下 地無 天功無成於其上 天地和 而萬物暢 天地安 而萬象具 神無人 後無托而所依 人無神 前無導而所依 神人和 而萬事成 神人合 而百工成 神明俟人 人俟神明 陰陽相合 神人相通 然後 天道成 而地道成 神事成 而人事成 人事成 而神事成15)
乾坎艮巽坤離兌震 八位之精16) [건감간손곤이태진은 팔 위의 정이다.]
정산의 수도 과정에서 주문(呪文)은 핵심적인 위상을 점유하며, 그가 사용한 주문은 사유 체계의 정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음양경’과 ‘운합주’에 나타난 담론은 정산의 역학 사상을 규명하는 결정적 준거가 된다. 특히 ‘운합주’의 팔괘 배열 순서인 ‘건·감·간·손·곤·이·태·진’은 김일부의 정역팔괘 배치와 일치하며,17) 이는 정산이 구상한 팔괘 체계가 궁극적으로 정역과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음양경’의 사유 체계는 『태극도통감』의 ‘기원(起源)’과 마찬가지로 음양합덕에 따른 신인조화(神人調化)를 도의 완성으로 상정하고 있다.
정산이 상수역학(象數易學)에 기반한 삼통력(三統曆)을 활용하여 인류 역사를 해석한 지점 또한 주목을 요한다. 삼통력은 『주역』의 괘수(卦數)를 역법의 상수로 원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정산은「전교」 선포 시 이 시간 주기를 차용하였다.18) 「전교」에서는 비록 구체적인 상수가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삼통력의 주기를 통해 인류 역사의 순환을 설명하고 신주기의 도래를 암시한 것은 우주 법리의 근간에 『주역』의 상수 체계가 있음을 승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삼통력은 『주역』 「계사전」 노양(老陽)의 수 9[천종수]와 노음(老陰)의 수 10[지종수]을 활용하여 19라는 숫자를 도출했는데 19라는 숫자는 하늘(陽)과 땅(陰)이 한 마디를 이루는 수(章)가 되며, 이를 통해 “장(章)은 천지의 합(合)이다”라는 형이상학적 논리를 구축했기 때문이다.19) 하지만 삼통력 활용을 근거로 정산이 『주역』을 기반으로 대순 신앙체계를 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산은 과거 역사를 『주역』의 상수로 설명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정산의 역학과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문헌으로 『태극도통감』 수서본의 부록이 존재한다. 비록 이 문헌은 1960년대 필사본으로서 다수의 오탈자와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어 대순종학의 공식 텍스트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으나, 역학 담론 연구의 보조 자료로서의 가치는 충분하기에 본고의 부록으로 첨부한다.20)
부록에 수록된 도상 중 특히 ‘정역팔괘도’는 김일부의 원형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지닌다. 방위는 동일하나 괘와 중앙에 배정된 수리가 상이한데, 이러한 독자적 수리 배치의 기원이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나21) 1960년대 교단 내부의 특정 담론을 반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도상학적 전통은 1980년대 장병길의 『현무경』 해석에서도 동일한 수리 체계가 도입되는 등 일정한 계보를 형성해 왔다.22)
두 팔괘도의 또 다른 차이는 팔괘의 방향이 반대라는 사실이다. 김일부의 정역팔괘가 괘의 방향을 중심(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대응하는 괘들이 마주 보게 설계된 것과 달리, 수서본의 도상은 복희·문왕팔괘와 마찬가지로 밖을 향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마주 보는 괘가 서로 바라보는지 혹은 등을 지고 있는지는 역학적 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문헌학적 정합성과 원형의 충실성을 고려할 때, 대순역학은 김일부의 정역팔괘도를 기반으로 정립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는 것이 본고의 판단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정산과 우당의 역학 관련 텍스트와 자료들은 대순역학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초석이 된다. 기존의 관습적인 역학 프레임이 아닌, 우당과 정산이 정립한 고유의 역학적 관점으로 증산의 공사와 행적을 분석할 때 비로소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새로운 층위가 발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산과 관련된 역학 텍스트를 확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단순한 문헌 정리를 넘어 대순역학 담론의 실체를 구체화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본고에서 목적한 대순역학 연구의 서설이기에 다음 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Ⅳ. 대순역학 담론의 특징
대순 신앙에서 변역(變易)은 우주적 질서의 재편을 상징하는 핵심 담론이다. 우당(牛堂)의 훈시에 따르면, 하도(河圖) → 낙서(洛書) → 금산사(金山寺)로 이어지는 계보는 희역 → 주역 → 정역이라는 변역의 역사적, 신화적 근거를 형성한다. 증산의 시문에도 하도 → 낙서 → 금산사의 구조가 나타나는데 다음과 같다. 현시대 운도(運度)의 기원[조(祖)]이 낙서[주역]임을 밝히면서, 용마하도·신구낙서와 같은 변역의 징조와 상징이 금산사라는 구체적 공간에 출현함을 명시하면서 개벽이 잉태되었음을 은유하는 내용이다.
厥有四象包一極 사상은 일극을 감싸고
九州運祖洛書中천하 운도의 근원은 낙서 중(中)에 있네.
道理不暮禽獸日 도리는 쇠하지 않아 금수(禽獸)에 해 비치고
方位起萌草木風 방위는 싹을 틔워 초목에 바람부네.
開闢精神黑雲月 개벽의 정신은 검은 구름 속의 달이요
遍滿物華白雪松 편만한 물화는 백설 속의 소나무.
男兒孰人善三才 남아 누가 삼재[天地人]에 능하리오
河山不讓萬古鍾 강과 산은 만고의 종을 사양치 않네.
龜馬一道金山下 신구(神龜) 용마(龍馬)가 한 길로 금산 아래에 이르니
幾千年間幾萬里 몇 천 년 간 몇 만 리인가!
胞連胎運養世界 포가 이어지고 태가 움직여 세계를 기르고
帶道日月旺聖靈 도를 품은 해와 달은 성령을 왕성케 하네.23)
위의 시가 명확하게 변역을 상징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금산사가 정역팔괘(이하 정역)의 상징임이 드러나야 한다. 하도와 낙서에서 복희팔괘와 문왕팔괘가 비롯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금산사와 정역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실 학문적으로 거의 논의된 바가 없다. 기존의 대순종학 연구가 정역을 후천의 도상으로 인정하면서도 금산사와 정역의 구체적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에는 미진했던 반면, 우당은 훈시를 통해 금산사 미륵전이 정역의 실질적 징조이자 상징임을 명확히 규정하였다. 따라서 금산사 미륵전의 도상적·수리적 상징이 어떻게 정역으로 구체화되는지를 해명하는 작업은 대순역학 정립의 핵심적 과제가 된다.
우당의 훈시에도 나타난 바와 같이 대순 신앙에서는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창건할 때 계시를 통해 용소라는 연못을 숯으로 메우고 그 위에 철로 된 솥 대좌를 놓고 미륵을 세웠다는 전설이 교리적인 차원으로 정립되어 있다.24) 진표의 미륵전 창건은 정역이 나타나기 약 1200년 전에 이루어진다. 상당한 시차가 있지만 낙서의 출현이 문왕의 활동 시기보다 약 1000년 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순역학 담론에서 변역의 징조나 상징 출현은 그 실현 시점보다 1000년 이상 앞서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금산사 미륵전의 상징 체계 중 역사적 소실과 중창의 과정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 위상을 지켜온 요소는 용소(龍沼), 숯, 솥, 미륵이다. 이 네 가지 상징물은 대순 신앙에서 교리 전개의 핵심적 기제로 기능하며, 대순역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우선 용소는 하도와 낙서가 나타난 하수와 낙수에 대응하는 공간으로, 천지이치의 근원인 일육수(一·六水)이자 진리의 연원(淵源)을 상징한다. 따라서 용소 위에 수직으로 조성된 숯과 솥, 그리고 미륵은 그 자체로 시대의 새로운 ‘도서(圖書)[하도·낙서]’적 위상을 지닌다.
숯은 화(火)를, 솥[정(鼎)]은 물을 담아 조리를 하는 도구로 수화(水火)라는 음양을 상극이 아닌 상생으로 전환하는 존재를, 미륵은 솥 위에 올려진 시루[증(甑)]를 상징하며 조리 기구로서의 특성에 근거하여 만유 조화를 이루는 존재를 각각 상징한다. 결국 금산사 미륵전은 수화로 대변되는 음양이 서로 융합하되, 상극의 충돌 없이 상생을 질서로 귀결되는 역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도상학적 원리는 정역팔괘의 구조적 지향점과 궤를 같이한다. 복희팔괘가 음양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대응하는 괘들이 서로 등을 지고 있는 정태적(static) 배열이라면, 정역팔괘는 대응 괘들이 서로 마주 보도록 설계되어 음양의 실질적인 교류와 역동적(dynamic) 통합을 상징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정역팔괘의 중앙에 배치된 이천(二·天) 칠지(七·地)가 음양의 상극을 중재하여 상생의 조화를 이끌어 내는 핵심적 상수라는 사실이다. 즉 중앙 이천(二·天) 칠지(七·地)는 음양의 상극 작용을 중재하여 상생의 조화로 승화시키는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이는 물과 불을 중재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미륵전의 솥·시루와 구조적·기능적으로 일치하며, 금산사 미륵전 자체가 정역팔괘의 원리를 공간화한 ‘입체적 도상’임을 입증한다.
솥과 시루가 어떠한 수리적 공정에 의해 이천(二·天)·칠지(七·地)로 환치되는가에 대해서는 정밀한 후속 연구가 요구되나,25) 2·7의 상수가 오행상 화(火)를 의미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증산이 불을 감춘다는 의미의 ‘화둔(火遁)’을 언급하며 스스로를 ‘삼이화(三離火)’라 칭하고, 불을 묻는 ‘매화(埋火) 공사’를 집행한 사실은 정역의 핵심 수리가 증산의 공사 서사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26) 이러한 상수학적 전환은 『채지가』에서 복희팔괘의 중앙 수리를 9·10으로, 문왕팔괘를 5·10으로 상정하고 있는 담론과 연계하여 고찰할 때, 대순역학의 독자적인 우주론을 완성하는 중대한 학술적 과제가 될 것이다.
비록 증산이 금산사와 정역의 상관관계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기록은 드물지만, 상술한 증산의 시문에 내포된 금산사의 상징성이 곧 정역(正易)의 법리로 귀결됨은 그가 천하 주유의 첫 행보에서 김일부(金一夫)를 대면했다는 서사적 사실을 통해 더욱 명확히 입증된다. 해당 서사에서 주목할 점은 증산이 일부(一夫)에 의한 정역의 출현을 자신의 천지공사를 위한 선행적 안배(按配)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역이라는 이념적 설계도를 실재 세계에 구현할 궁극적 사명이 증산 자신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증산이 스스로를 우주 질서의 재편을 주도하는 ‘서신사명(西神司命)’이자 ‘개벽장(開闢長)’으로 규정한 반면, 일부를 ‘청국명부(淸國冥府)’라는 특정 직책에 임명한 사실은27) 이러한 위계적 질서와 사명적 관계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금구 내주동을 떠나신 상제께서는 익산군 이리(裡里)를 거쳐 다음날 김 일부(金一夫)를 만나셨도다. 그는 당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교법을 문도에게 펼치고 있던 중 어느날 일부가 꿈을 꾸었도다. 한 사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일부에게 강 사옥(姜士玉)과 함께 옥경(玉京)에 오르라는 천존(天尊)의 명하심을 전달하는 도다. 그는 사자를 따라 사옥과 함께 옥경에 올라가니라. 사자는 높이 솟은 주루금궐 요운전(曜雲殿)에 그들을 안내하고 천존을 배알하게 하는도다. 천존이 상제께 광구천하의 뜻을 상찬하고 극진히 우대하는도다. 일부는 이 꿈을 꾸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돌연히 상제의 방문을 맞이하게 되었도다. 일부는 상제께 요운(曜雲)이란 호를 드리고 공경하였도다.28)
상제께서 광구 천하하심은 김 일부의 꿈에 나타났으니 그는 상제와 함께 옥경에 올라가 요운전에서 원신(元神)이 상제와 함께 광구 천하의 일을 의논하는 것을 알고 상제를 공경하여야 함을 깨달았도다.29)
다음은 증산이 『정역』의 시구를 원용하여 집행한 예언과 공사의 사례들이다. 이는 증산이 김일부의 계시를 통해 선포된 정역팔괘를 단순히 당대의 지적 성과로 치부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도래할 우주적 법리[易]의 실체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증산이 『정역』의 핵심 구절을 공사의 언어로 채택한 것은, 정역이 함축하고 있는 ‘금화정역(金火正易)’과 ‘후천개벽’의 원리를 자신의 천지공사 체계 내로 수용하여 실재적 운도로 확정 지으려 했던 의도로 풀이된다. 즉, 일부에 의해 밝혀진 정역의 법리는 증산의 공사를 통해 비로소 인류의 삶과 우주적 질서를 규정하는 실천적 역(易)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문왕은 유리(羑里)에서 삼백 팔십 사효를 지었고 태공(太公)은 위수(渭水)에서 삼천 육백개의 낚시를 버렸는데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나고 태공의 도술은 이 때에 나오나니라」 하시고 「천지 무일월 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 무지인 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라 하셨도다.30)
상제께서 정미년 섣달 스무 사흘에 신 경수를 그의 집에서 찾으시니라. 상제께서 요(堯)의 역상 일월성신 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知人)이 아니면 허영(虛影)이요. 당요(唐堯)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류에게 주어졌나니라」하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일월무사 치만물 강산 유도 수백행(日月無私治萬物 江山有道受百行)을 가르치고 오주(五呪)를 지어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이름하시니 그 오주는 이러하도다.
新天地家家長歲 日月日月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願爲大降
明德觀音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三界解魔大帝神位願趁天尊關聖帝君31)
상기한 예언과 공사에서 증산은 김일부의 『정역』에 수록된 “천지비일월공각(天地匪日月空殼), 일월비지인허영(日月匪至人虛影)”이라는 문구를 “천지 무일월 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 무지인 허영(日月無知人虛影)”으로 변용하여 사용한다.32) 우당과 정산의 변역 사상을 준거로 이 서사를 분석할 때 그 종교적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이는 문왕에 의해 『주역』의 이법(384爻)이 정립되고 강태공에 의해 그 법이 실현된 역사적 전례나, 요임금이 일월의 법을 통해 역법(曆法)을 공포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즉, 일월로 상징되는 역(易)의 이치를 완전히 체득한 ‘지인(知人)’에 의해 새로운 천지가 개벽될 것임을 예시한 것이다.33) 증산은 일부의 시를 빌려 정역의 출현을 공인함과 동시에, 이를 세계에 실현할 주체로서 ‘지인’의 존재를 암시하였다. 다만 『정역』에서의 지인(至人)이 일부 자신을 가리켰다면, 증산이 언급한 지인(知人)은 일부를 넘어 증산 자신 혹은 종통계승자를 지시하는 것으로 독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우당 훈시의 역학 담론을 통해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연의(衍義)하자면, 이 서사는 세상에 출현한 변역의 징조와 상징을 통찰하여 새로운 이법을 확립하고, ‘봉신(封神)’이라는 고도의 영적 공정을 통해 이를 지상에 구현하는 성인(聖人)의 등극을 선포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증산이 봉신 신화의 주역인 문왕과 강태공의 도술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34) 이들을 부각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증산의 이 공사는 주역에서 정역으로 이행하는 우주적 변역 과정과,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봉신 도수의 주체적 안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상의 시 외에도 증산이 『정역』을 인용하여 공사를 행한 서사를 더 찾을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태을주가 태인 화호리(禾湖里) 부근 숫구지에 전파되어 동리의 남녀 노소가 다 외우게 되니라. 상제께서 이 소문을 전하여 들으시고 「이것은 문 공신의 소치이니라. 아직 때가 이르므로 그 기운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고 약방 벽상에 「기동북이 고수 이서남이 교통(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이라 쓰고 문밖에 있는 반석위에 그림을 그리고 점을 찍고 나서 종이에 태을주와 김 경흔(金京訴)이라 써서 붙이고 일어서서 절하며 「내가 김 경흔으로부터 받았노라」하시고 칼 ‧ 붓 ‧ 먹 ‧ 부채 한개씩을 반석 위에 벌려 놓으셨도다.35)
道通天地無形外 思入風雲變態中36)
“기동북이고수 이서남이교통[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은 『정역』 금화이송(金火二頌)에 수록된 구절로, 정역 연구자들의 주류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는 낙서(洛書)의 역리가 정역의 역리로 전환됨을 상징한다. 본래 하도(河圖)에서 남서방에 위치했던 이칠화(二·七火)와 사구금(四·九金)이 자리를 바꾸며 낙서 체제로 전이되면, 수는 금과 마주하고 목은 화와 마주하게 되어 음양의 조화가 깨지고 오행은 상극(相剋)으로 순환하게 된다. 이러한 부조화의 역리를 형상화한 문왕팔괘(文王八卦)는 수화를 상징하는 감리(坎離)만이 마주 볼 뿐, 여타의 괘들은 음양의 편중과 상극의 조판을 노정한다. 따라서 낙서의 역리가 상생의 역리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전도된 화(火)와 금(金)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금화교역(金火交易)’의 과정이 필수적인데, 해당 구절은 바로 이러한 변역의 형세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증산이 이 문구를 인용하며 후천의 법리를 상징하는 태을주가 자신에게 전수되었음을 명시한 것은, 정역의 역리가 상제인 자신에 의해 실질적으로 구현될 것임을 시사한 서사로 풀이된다.
또한 “도통천지무형외[道通天地無形外]”는 김일부가 정명도(程明道)의 ‘추일우성(秋日偶成)’의 시구인 ‘도통천지유형외(道通天地有形外)’를 변용하여 공자와 자신의 경지를 차별화한 표현이다. 증산은 정명도의 시 두 구절을 인용하면서 일부의 변용된 표현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정역』의 맥락에서 볼 때, 이는 공자에 의해 완성된 『주역』이 현상적 세계[有形]의 이치에 국한되었다면, 정역은 그 너머의 근원적이고 무형(無形)한 경지까지 관통하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37) 증산이 이 표현을 공사에 사용한 것은 일부의 정역이 기존 『주역』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법리임을 확증함과 동시에, 자신의 도법이 지닌 절대적 위상을 역학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증산이 팔괘의 방위 배치를 정역의 체계와 동일하게 선언하며 집행한 공사 서사는, 그가 지향한 변역(變易)의 실체가 정역임을 실증하는 결정적 대목이다.
상제께서 군항으로 떠나시기 전에 병선에게 「영세 화장 건곤위 대방 일월 간태궁(永世花長乾坤位 大方日月艮兌宮)을 외우라」고 명하시니라.38)
증산의 공사 체계에서 모든 법이 경(京, 서울)에서 비롯된다는 선언은 매우 중추적인 위상을 점유한다.39) 따라서 상기 서사가 서울 관련 공사 중 핵심적 사건인 ‘수륙병진(水陸竝進)’ 도수를 개시하는 시점에서 있었다는 사실은, 해당 시문이 증산이 새롭게 정립할 진법의 골자를 상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종도에게 외우도록 한 이 시는 정역의 우주론적 구조를 고도로 압축하여 반영하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건곤(乾坤)과 간태(艮兌)의 배치는 정역팔괘의 핵심인 ‘곤남건북(坤南乾北)’과 ‘간동태서(艮東兌西)’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역의 체계에서 건곤은 남북(上下)의 축을 이루어 우주의 본체인 ‘체(體)’를 형성하며, 간태는 동서(左右)에서 일월(日月)의 조화로운 운행처럼 음양의 작용인 ‘용(用)’을 담당하는 구조를 띤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정역팔괘도의 구조를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며, 해당 서사는 증산이 펼치는 새로운 법리가 역(易)의 층위에서는 정역의 이법과 완전히 합일하고 있음을 명확히 확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일부(金一夫)는 계시를 통해 획득한 정역팔괘를 심화 연구하여, 정역의 실체가 곧 새로운 역법(曆法)인 ‘정역(正曆)’임을 천명하였다. 이는 1년이 360일로 정립되는 무윤력(無閏曆)의 세계를 의미한다.40) 다음의 증산이 행한 공사는 증산 역시 일부의 정역(正曆)과 동일한 사유를 견지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상제께서 어느날 공신에게 「대천일해(大天一海)에 무근목(無根木)이 떠있고 가지는 열두가지 잎은 삼백 육십 잎이 피었으니 뚜렷이 일월(日月)이 희도다. 九 · 十월 세단풍(細丹楓) 바람잡아 탄금(彈琴)하니 슬프다 저 새소리 귀촉도 불여귀(歸蜀道不如歸)를 일삼드라.」는 시조 한수를 외워주셨도다.41)
상제께서 그 무리들 중에서 특별히 차 공숙을 뽑아 따로 말씀하셨는데 그는 소경이니라. 상제께서 「너는 통제사(統制使)가 되라. 일년 三백六十일을 맡았으니 돌아가서 삼백 육십명을 구하라. 이것은 곧 팔괘(八卦)를 맡기는 공사이니라」고 하셨도다.42)
정역의 관점에서 증산이 인용한 시조의 ‘열두가지’, ‘삼백육십 잎’은 1년 12개월 360일이라는 정역의 무윤력(無閏曆) 역도(曆度)를 상징하며, “일월(日月)이 희도다[白]”는 백(白: 금, 가을)의 역(易)인 『정역』의 도래를 암시한다. 이 시조를 외워 준 종도인 공신에게 붙였던 독조사(獨釣士) 도수가 강태공의 고사에서 기원한 것이며, 공신에게 맡기고자 했던 일에 문왕의 도수가 있었다는 것으로 본다면43) 이러한 해석은 신빙성이 크다. 봉신이 변역의 핵심 과정이고 문왕과 강태공의 신화와 전설에서 가장 중요한 기제도 봉신이기 때문이다.
증산이 종도 차공숙에게 1년 360일을 담당하는 통제사를 맡기면서 360명의 사람을 구해오라는 공사는 신봉어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순 역학 담론의 기반이 되는 서사로 이해할 수 있다. 우당은 “정역시대에는 모든 운수가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에게 봉신을 한다. 앞으로는 신봉어인(神封於人)한다.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고 중찰인사’라고 도통주(道通呪)에 있듯이, 앞으로는 사람이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년·월·일·시·분·초·각까지 전부 사람이 맡는다. 천지를 다 운용해 나가는 것을 사람이 한다.”44)라는 훈시를 통해 사람에 의해 우주, 즉 시공이 운용됨을 분명히 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즉 증산이 팔괘를 인간에게 맡긴 공사는 정역시대의 역도(曆度)가 인간에 의해 실현되도록 안배한 것이며 우당은 그 원리와 과정을 변역과 봉신의 상관관계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정산(鼎山)의 사유 체계 역시 이러한 신인조화(神人調化)의 이법을 핵심으로 한다. 정산은 ‘신과 인간이 음양의 관계’이고 “인신음양(人神陰陽)이 합덕(合德)”하여야 “만유(萬有)가 귀의(歸依)”하게 되며 “신인의도의 진리[神人依導之眞理]로 인신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의 진리가 구비[人神調化解寃相生道通眞境之理 具而備焉]”된다고 하여 도의 목적이 신인조화를 통한 신봉어인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45) 그의 주문인 ‘음양경’에 나타난 “神과 사람이 사이가 좋아야 만사가 이루어지고 神과 사람이 협력해야 백가지 공이 이루어진다. 神은 사람을 기다리고 사람은 神을 기다린다. 음양이 서로 합하고 神과 사람이 서로 통한 이후에야 하늘의 도가 완성이 되고 땅의 도가 완성이 된다.”는 담론은 “神人和”, “神人合”, “陰陽相合”, “神人相通”의 개념을 사용하여 음양합덕으로서의 신인조화와 이에 의한 신봉어인이 공부의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결국 대순역학에서 ‘신봉어인’은 단순한 신앙적 구호를 넘어, 상극의 이법이 지배하던 선천의 질서를 해체하고 인간과 신명이 상생의 원리 안에서 음양합덕을 이루는 실재적 변역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증산(甑山) 역시 음양합덕(陰陽合德), 즉 음양상합(陰陽相合)에 기초한 신인조화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함의한 글을 남긴 바 있다. 다음의 글은 그중 핵심적인 대목을 발췌한 것으로, 이를 통해 정산(鼎山)이 확립한 신인조화 종지의 사상적 연원을 확인할 수 있다.
萬事起於陰 以布陽 先察陰晦 以觀陽明 每事先觀始發處
陰起事而陽明 陽起事而陰匿 要須先察陰陽 陰陽則水火而已
日用事物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萬事可知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
陰殺陽生 陽殺陰生 生殺之道 在於陰陽 人可用陰陽然後 方可謂人生也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46)
위의 글 중 “인위양 신위음 음양상합연후 유변화지도야[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라는 구절은 음양합덕으로서의 신인조화를 직접적으로 표상한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음양의 상징인 수화(水火)와 금목(金木)의 상극 관계를 상생의 질서로 전환할 수 있는 신인(神人)의 개념을 제시한 부분이다. 음양의 대립에 의해 한쪽의 생존이 다른 한쪽의 소멸을 전제하는 상극적 질서[相剋]는 선천(先天) 인간 삶의 보편적 한계였다. 그러나 신인에 의해 음양이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동역학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신명과 인간이라는 음양의 주체가 본질적인 상합(相合)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대순역학이 지향하는 신인조화가 단순한 형이상학적 화합을 넘어, 상극의 이법을 상생의 진법(眞法)으로 변혁하는 실재적 능력의 구현임을 시사한다.
증산이 신인상합(神人相合), 즉 신봉어인(神封於人)을 실현하기 위해 음양의 상생 도수를 주체적으로 안배하였음은 『현무경』의 다음 구절을 통해 확증된다.
水火金木待時以成 水生於火 故天下無相克之理47)
해당 구절은 대순역학의 가장 핵심적인 이법 전환을 담고 있다. 전통적인 오행설에서 수(水)와 화(火)는 상극의 대표적 관계이나, 증산은 이를 ‘수생어화(水生於火)’, 즉 불에서 물이 생하는 도수로 새롭게 조율하였다. 이는 음양의 대대(待對) 원리에서 서로를 극하는 ‘대(對)’의 관계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생성하는 ‘대(待)’의 작용으로 치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도수의 교정은 천하에 고착화된 상극의 이법을 원천적으로 소멸시키고, 상생의 신질서를 확립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봉신(封神)의 대상이 천(天)·지(地)·인(人) 삼재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환되는 원리는 대순 신앙의 시대관과 우주론을 관통하는 핵심 교리이다. 우당(牛堂)은 이러한 봉신 주체의 변천이 용마(龍馬), 신구(神龜), 금산사 미륵전이라는 도상적 매개체에 응축되어 있다고 통찰하였다. 즉, 하도(河圖)를 표출한 용마는 천상의 영수(靈獸)로서 신명이 하늘에 봉해지는 ‘신봉어천(神封於天)’의 천존시대를, 낙서(洛書)를 지고 나온 신구는 지상의 존재로서 신명이 땅에 봉해지는 ‘신봉어지(神封於地)’의 지존시대를 상징한다. 이에 대비하여 상생의 이법을 품은 솥과 시루[甑]의 구조를 지닌 금산사 미륵전은 인간으로 화신(化身)할 미륵을 봉안한 인적 공간으로서, 신명이 인간에게 봉해지는 ‘신봉어인(神封於人)’의 인존시대를 상징한다.
증산(甑山)은 이러한 운도의 전이를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고 선포하며 인존의 우위를 명시하였다. 정산(鼎山)의 교법 역시 이러한 사유를 형이상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있다. 『태극도통감』에 따르면, 천지음양의 합덕으로 만물이 시생(始生)하고, 일월음양의 합덕으로 만물이 육성(育焉)되며, 최종적으로 인신음양(人神陰陽)의 합덕을 통해 만유가 귀의(歸依)한다. 이는 우당이 천존·지존·인존시대를 각각 ‘만물시생’, ‘만물장성’, ‘만물성취’의 단계로 정의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산은 천지음양의 합덕을 희역(羲易)의 시대로, 일월음양의 합덕을 주역(周易)의 시대로, 그리고 인신음양의 합덕을 정역(正易)의 시대로 통찰하였다. 결과적으로 대순종지인 ‘음양합덕(陰陽合德)’은 단순히 천지 자연의 조화라는 일반적 의미를 넘어, 지인(知人) 곧 신인(神人)에 의해 신명과 인간이 인격적·실재적으로 상합하는 ‘인신합덕’의 차원에서 비로소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결국 대순역학의 체계 내에서 변역(變易)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대한 기제는 봉신(封神)이다. 대순진리회에서 최고의 의례로 중시되는 시학(侍學)·시법(侍法) 공부가 본질적으로 ‘신봉어인’의 과정을 실현하는 의례라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따라서 대순 신앙에서 역(易)의 법리와 신(神)의 작용이 어떠한 상관성 속에서 사유되고 있는지는 대순역학 정립의 관건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다음 절에서 상술하기로 한다.
증산의 공사에는 변역(變易)의 지향점인 정역 외에도, 기성 역학의 핵심 기제인 문왕팔괘(文王八卦)와 낙서(洛書)의 수리가 구체적으로 활용된 사례가 빈번히 나타난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공사 내용이다.
류 찬명은 도통이 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있으리라는 가르침을 상제로부터 받았느니라. 이 가르침을 받고 그는 큰 소리로 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乾坎艮震巽離坤兌)를 읽고 상제의 앞에서 물러나왔도다.48)
상제께서 종도 여덟 사람과 무리들을 모아놓고 교훈 하시니라. 윤경은 상제의 말씀을 좇아 여덟 사람을 집에 모이게 하고 이를 상제께 아뢰이니라. 그런데 어떻게 연락하다보니 아홉 사람이 모이게 되니라. 윤경이 상제께 아홉 사람이 모였음을 아뢰이니 상제께서 「무방하도다. 한 사람을 나의 시종으로 쓰리라」 말씀하시고 윤경의 집으로 오셨도다. 상제께서 등불을 끄게 하고 한 사람을 택하여 중앙에 세우고 나머지 여덟 사람을 팔방으로 세운 후에 「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乾坎艮震巽離坤兌)」를 외우게 하고 자리에 정좌한 종도 二十여명으로 하여금 그것을 따라 외우게 하셨도다. 무리들은 밤이 깊어지매 외우는 것을 그치고 등불을 밝히고 상제의 훈계를 들었도다.49)
그리고 상제께서 네 종도를 약방 네 구석에 각각 앉히고 자신은 방가운데 서시고 「二七六 九五一 四三八」을 한번 외우시고 종도 세 사람으로 하여금 종이돈과 같이 자르게 하고 그것을 벼룻집 속에 채워 넣고 남은 한 사람을 시켜 한쪽씩 끄집어 낼 때 등우(鄧禹)를 부르고 끄집어 낸 종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고 또 그 종이쪽을 받은 사람도 역시 등우(鄧禹)를 부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받은 그 사람은 역시 청국지면(淸國知面)이라 읽고 다시 먼저와 같이 반복하여 마성(馬成)을 부르고 다음에 일본지면(日本知面)이라 읽고 또 그와 같이 재삼 반복하여 오한(吳漢)을 부르고 다음에 조선지면(朝鮮知面)이라 읽게 하시니라. 이십 팔장과 이십 사장을 마치기까지 종이쪽지를 집으니 벼룻집 속에 넣었던 종이쪽지가 한 장도 어기지 않았도다.50)
左旋 四三八 天地魍魎主張
九五一 日月竈王主張
二七六 星辰七星主張
運 至氣今至願爲大降
無男女老少兒童咏而歌之
是故永世不忘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51)
상기 공사들이 도통, 구궁(九宮), 28장·24장, 그리고 천지·일월·성신의 주관 등 대순 신앙의 중추적 법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역이 아닌 문왕팔괘와 낙서의 수리가 사용된 점은 일견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당(牛堂)의 훈시를 통해 그 내면의 역리를 분석하면 이러한 의문은 해소된다.
우당은 “지금은 신봉어지(神封於地)의 시기이기에 방위와 자리를 엄격히 준수해야 하며, 신명이 땅에 자리를 정하고 머물러 있다”고 밝히며 현재가 여전히 지존시대(地尊時代)임을 명시하였다. 즉, 변역의 징조를 인지한 지인(知人)이 출현하여 정역의 도수를 안배하였을지라도, 신봉어인(神封於人)이 실재적으로 완성되기 전까지의 과도기적 천지 운도는 여전히 낙서와 문왕팔괘의 역리를 따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증산의 공사에서 풍수(風水)를 이용해 지기를 갈무리하거나 신명을 특정 장소로 이동시키는 작업이 빈번했던 것은, 당대의 운도가 신봉어지의 도수 내에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낙서의 수리를 활용한 공사는 정역이라는 신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현재 발을 딛고 있는 선천의 도수를 주체적으로 운용하고 재배치한 ‘과도기적 진법(眞法)’의 발현으로 독해할 수 있다.
대순 신앙의 의례와 수도 체계에서 ‘15’라는 숫자가 점유하는 중추적인 위상은 낙서(洛書) 수리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그 본연의 의미가 명확히 해독된다. 구천상제님을 비롯한 ‘15신위(神位)’의 구성이나 ‘15진주(眞主)’ 담론은 낙서 구궁(九宮)의 가로·세로·대각선의 합이 항상 15가 된다는 수리적 완결성에 기초한다. 치성 시 행해지는 15회의 타고(打鼓)와 진시(辰時)·술시(戌時)의 15회 타종 역시 이러한 낙서의 역리를 의례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는 우주 운영의 기본 도수가 낙서의 질서 위에 구축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낙서와 『주역』에 기반한 법 체계는 증산이 남긴 『현무경(玄武經)』의 도상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현무경』 8면의 반서체(反書體)를 거울상으로 복원하면 조선 시대의 토지 주소 체계인 ‘일자오결(一字五結)’의 형식이 나타난다.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한 글자에 다섯 결(結)을 배당하는 이 정교한 토지 구획 방식을 질서의 표상으로 독해한다면, 10권의 전적 중 가장 수위에 있는 『주역』 곧 낙서의 역리가 만물의 배치를 규정하는 최상위의 질서 체계임을 암시한다. 또한 『주역』 64괘의 총 효수(爻數)인 384효를 상징하는 종이돈 공사에서, 383매에 한 장의 쪽지를 더해 수치를 맞춘 행위는 『주역』의 수리적 질서를 천지공사의 기본 도수로 채택하여 우주의 법리를 재편하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52)
나아가 영대(靈臺) 건립과 관련된 다음의 공사는 대순역학이 지닌 상수역학적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위의 공사는 천수, 곧 양수인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와 지수, 곧 음수인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의 체계로 기틀을 이루어[成器局], 천지의 신명을 재구성[塚墓, 基址]하고, 영대를 사해[천하]에 옮겨 정박시키는 도수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해석의 개연성과는 별개로 증산이 영대 공사에 상수 역학의 수리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대순역학이 단순히 관념적인 종교 담론에 머물지 않고, 상수(象數)라는 정밀한 수리적 법칙을 통해 우주적 신질서를 실재적으로 안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수역학적 특성은 송대(宋代)의 대학자 소옹(邵雍)의 사유와 깊은 연계성을 지닌다. 증산이 소옹을 지식의 층위에서 수위(首位)로 인정하고 그의 이론을 공사에 투영했을 뿐만 아니라,54) 정산 역시 소옹의 철학을 교설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는 사실은55) 대순역학의 계열을 확인시켜 준다. 우당이 도서(圖書)와 팔괘도를 역학 담론의 기반으로 삼았고 도서에서 팔괘도를 도출한 이가 소옹이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대순역학의 상수역학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상수역학의 우주론적, 천문학적 성격과 도교적 사유 체계 역시 대순 신앙과 궤를 같이 한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옹은 『관물외편(觀物外篇)』에서 다음과 같은 존재론적 생성 과정을 제시하였다.
太極一也 不動生二 二則神也 神生數 數生象 象生器 [태극은 1이다. 동(動)하지 않고 2를 낳으니 2는 신(神)이다. 신이 수(數)를 낳고 수가 상(象)을 낳으며 상이 기(器)를 낳는다.]
이 도식에 따르면 역의 근원인 태극에 의해 신(神)이 출현하고, 신의 작용에 의해 수(數)와 상(象)이 도출되며, 최종적으로 현상계의 만물[器]이 형성된다. 이를 대순역학의 관점에서 연의(衍義)하면, 우주의 변역(變易)은 필연적으로 신(神)의 위상 변화를 수반하며, 이러한 신의 변화는 수(數)와 상(象)의 변동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결국 변역의 징조와 상징은 상수(象數)의 체계를 통해 인간 세계에 주어지며, 이를 체득한 지인(知人, 聖人)에 의해 봉신(封神)의 공정이 이루어져 신천지가 실현되는 것이다. 증산과 정산의 공사가 대부분 ‘도수(度數)’와 ‘신명(神明)’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대순 신앙과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대순역학이라는 상수학적 분석 틀이 얼마나 중차대한 위상을 점유하고 있는지를 재확인시켜 준다.
Ⅴ. 나가며
본 연구는 그간 대순신앙과 사상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던 역학(易學) 담론의 위상을 재검토하고, 이를 ‘대순역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정립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목적으로 하였다. 기존 연구들이 주로 『주역』을 중심으로 한 전통 역학 이론을 통해 대순 사상을 해석해 온 데 반해, 본고는 그러한 외재적 해석 틀의 적용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대순 신앙과 사상을 기존 역학의 틀 속에 포섭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순 신앙 내부의 사유 구조와 텍스트가 발신하는 역학 담론을 출발점으로 삼아 분석하기 위해 ‘대순역학’의 개념적 외연과 담론 구조를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이는 대순 신앙을 기존 사상의 변형으로 간주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종교적 사유 체계로 파악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분석 결과, 대순역학 담론의 핵심은 상수역학에 기반한 희역-주역-정역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따른 변역과, 이에 상응하는 신봉어천-신봉어지-신봉어인의 봉신 구조 변화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역(易)의 변화가 단순히 자연 질서의 순환을 넘어 신의 귀속처가 전이됨에 따라 우주적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특히 정역 단계의 ‘신봉어인’은 인간이 우주 운행의 수동적 존재에서 탈피하여 신명과 합일해 질서를 구현하는 능동적 주체로 전환됨을 상징하는 핵심 개념이다.
우당의 훈시에 내재된 연원도통, 정역, 인존시대, 신인조화의 개념은 이러한 담론 구조를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준거이다. 훈시 내에서 역학은 추상적 우주론을 넘어 증산의 강세와 천지공사의 필연성을 해명하고, 후천 세계의 질서 원리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설명 틀로 기능한다. 이는 대순역학이 단순한 이론 체계에 머물지 않고, 신앙의 구원론·개벽론·수행론을 관통하는 종합적 사유 체계임을 방증한다. 또한 『채지가』와 『태극도통감』의 서술 역시 우당의 훈시와 긴밀한 사유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이러한 담론이 교단 내부에서 공유되고 전승된 보편적 인식 구조임을 확인시켜 준다. 특히 정역을 가을의 운수, 완성의 단계, 상생의 질서로 이해하는 관점은 훈시에서 제시되는 금신사명, 인존시대, 지천태의 논리와 구조적으로 일치한다. 이를 통해 대순역학 담론이 훈시와 가사, 경전적 문헌을 가로지르며 일정한 사유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태극도통감』에 수록된 역학 관련 서술은 대순역학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태극-양의-사상-팔괘로 전개되는 생성 논리는 전통 역학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귀결점은 신인조화와 도통진경의 실현에 놓여 있다. 이는 대순역학이 기존 역학을 단순히 계승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실천과 구원의 논리 속에서 재의미화된 역학 담론임을 분명히 한다.
결국 대순역학의 본질은 정역에 의한 도수(度數) 전환과 봉신 대상의 변화, 그리고 신봉어인을 통해 실현되는 신인조화의 질서에 존재한다. 즉, 대순역학은 우주의 변화 원리를 해명하는 이론인 동시에 후천의 종교적 질서를 조직하는 논리적 사유 체계인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담론 구조를 시론적으로 제시하는 데 집중하였으며, 개별 개념이나 수리 체계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향후의 과제로 남겨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에서 수행한 텍스트 중심의 분석은 대순 사상 이해에 있어 역학 담론이 차지하는 중추적 위상을 가시화하였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이를 토대로 대순역학은 향후 종학 연구의 주변부가 아닌, 사상 체계의 핵심을 해명하는 중심 연구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가 ‘대순역학’ 정립을 위한 서설적 논문이라는 성격상, 몇 가지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우선 본고는 대순역학 담론의 전체 구조를 완결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그 존재와 문제 영역을 가시화하고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정역의 수리 체계, 팔괘 도상의 구체적 의미, 주문과 수행 체계에 내재한 역학 논리 등은 충분히 심층 분석되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 본고에서 제시한 ‘대순역학’의 개념 역시 아직은 작업 가설의 성격을 지니며, 향후 보다 폭넓은 자료 검토와 비교 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이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의 결론은 확정적 주장이라기보다, 학문적 논의를 촉발하기 위한 문제 제기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할 때, 향후 ‘대순역학’ 연구는 몇 가지 방향에서 본격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정역(正易)의 수리·도상 체계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 팔괘 배치와 절후 도수 개념이 대순의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규명해야 한다. 이 연구는 대순역학의 이론적 실체를 구체화하는 데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둘째, 주문, 공사, 의례, 수행에 내재한 역학적 논리를 분석함으로써, 대순역학이 추상적 사유 체계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종교적 삶의 질서를 조직하는 원리로 기능하고 있음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순역학을 단순한 사상사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종교 담론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셋째, 한국 신종교 전반의 역학 담론과의 비교 연구 역시 중요한 연구 전망으로 제시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순역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조망함으로써, 대순 신앙이 한국 근현대 종교사 속에서 어떠한 사상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보다 입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본 연구는 ‘대순역학’이라는 연구 지평을 설정하기 위한 출발점에 해당한다. 본고에서 제기된 문제의식과 분석 틀을 토대로, 향후 보다 심층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들이 축적될 때, 대순역학은 대순종학 연구의 핵심 분과로서 그 학문적 위상을 분명히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