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도교 생태사상이 반영된 도교 건축의 현대적 의의*

신진식1,**
Jin-sik Shin1,**
1Research Professor, Incheon Studies Institute of Incheon University
**인천대학교 연구교수, E-mail: shen67@hanmail.net

© Copyright 2020,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y 31, 2020 ; Revised: Jul 01, 2020 ; Accepted: Aug 01, 2020

Published Online: Aug 31, 2020

국문요약

이 논문에서는 중국 도교(道敎) 건축의 발전 과정과 그 문화적 함의를 살펴보고, 도교 건축에 반영된 도교 생태 사상의 핵심적인 원리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것은 바로 현대 도시의 지속가능 생태건축을 위한 하나의 사상적 롤모델을 탐색하는 기초 작업이다.

도교의 건축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변화, 발전하고 더욱 완숙한 단계에 이르게 된다. 초기 도교 교단의 최초의 건축 형식인 ‘치’, ‘려’, ‘정’은 후대 도교 궁관(宮觀) 건축 발전의 기초를 이룬다. 남북조(南北朝)시기를 거쳐 당대(唐代)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지원을 받는 관방(官方)도교가 성립되면서 의례가 끊임없이 규범화되었으며, 궁관은 이에 따라 점차 상당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고 형식은 더욱 정형화되었다. 12세기 초 청정(淸淨)수련을 강조하는 전진교(全眞敎)가 창립된 이후부터는 엄격한 수도(修道)에 적합한 외딴 자연공간에 수도를 위한 건축이 생겨난다. 한편 이때의 도교 건축은 여러 다양한 신(神)들에게 예배를 드리기 위한 건축 형식과 구조가 강화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성립된 다양한 도교 궁관들에는 도교문화의 관념적인 요소와 제도, 생태사상 등이 집약되어 있다.

도교 건축은 기본적으로 동천복지(洞天福地)라는 이상향을 추구하면서 장소 선택과 건물 배치에 있어서 자연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풍수 이론을 수용하였는데, 여기에는 철저한 생태주의가 반영되어 있다. 한편 도교 건축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건축재료를 선택할 때 현지의 천연자재를 이용하여 되도록 자연의 평형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한 도교는 소박한 마음을 유지하고 욕망을 억제하며 청정하고 순수한 자연본성으로 돌아가야 함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행(修行)과 제례(祭禮) 장소는 되도록 소박한 장소를 선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일종의 소박한 생태주의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며 도교의 검소한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도교 생태사상은 주거환경 조성 중에 생겨난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풍부한 사상 자원과 사유방법을 제공해 준다. 도교 생태사상이 반영된 도교 건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지속가능한 주거 환경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방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다.

Abstract

In this paper, we examined the development of Chinese Taoist architecture, its cultural implications, and comprehensively summarized the core principles of the Taoist ecological ideas that are reflected in Taoist architecture. This is a groundwork for exploring an ideological model for sustainable ecological architecture in modern cities.

Taoist architecture has a long history that has led to changes, developments, and a gradual maturation. Zhi (治), Lu (廬), and Jing (靖), were the first architectural forms of the early Taoist body. These formed the basis for the future development of Taoist Courts (宮觀). The state-sponsored government-run Taoist Courts established from the time of the North and South Dynasties to the time of Tang Dynasty led to a constant standardization of the rites, and these Courts gradually became more and more formalized. Since the establishment of Quanzhenjiao (全眞敎) in the early 12th century, a movement that emphasized putiy training, architecture for the ascetic practice emerged in remote natural spaces suitable for strict ascetic practices. Meanwhile, in Taoist architecture, the type and structure of buildings were strengthened in order to worship various gods. The various Taoist Courts established through this historical process embody the elements, institutions, and ecological ideas of Taoist culture.

Taoist architecture basically pursued the idealism of Paradise in a Deep Cave (洞天福地) and adopted a feng-shui theory of using natural terrain artfully in selecting a place and building a layout. This was reflected through their ecology. Meanwhile, Taoist architecture does not destroy the balance of nature by emphasizing the utilization of local natural resources whenever possible while selecting building materials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陰陽五行). In addition, Taoism aims to select simple places for practising asceticism and ancestral rituals whenever possible because of the need to maintain a simple mind, suppress desire, and return to a state of purity. This attitude is an indication of a kind of simple ecological ideas and value of frugality easily found in Taoism.

The ecological ideas of Taoism provide abundant resources for considering solutions to the ecological crisis that arises in the creation of residential environments. Through the ecological ideas of Taoism, we can find a direction to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 beings and nature while creating new, sustainable residential environments.

Keywords: 도교건축; 생태사상; 도교문화; 궁관; 동천복지
Keywords: Taoist Architecture; Ecological Ideas; Taoist Culture; Court; Paradise in a Deep Cave

Ⅰ. 들어가는 말

도시 주거환경의 악화 문제는 현재 인류가 공통적으로 당면한 해결 과제이다. 건축에 관련된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지금의 건축학을 비롯한 관련 분야 공학 전공자들은 대부분 인문적 사고가 결핍되어 있다. 인문사고가 결핍된 건축과 관련된 과학기술은 맹목적으로 외양적 화려함과 편리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 욕망의 집결지인 현대 도시를 중심으로 생태 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가령, 그나마 활용되던 천연자원마저 점차 고갈되어 우리의 건강에 치명적인 폐자재와 폐재료 등의 부차 물질로 이루어진 인공 건축 자재를 경제성을 명목으로 다량 사용하게 되었다.1) 도시 전체 환경부하의 커다란 발생원이 되는 건축에서 생태환경의 부하를 낮추고, 도시 생태의 회복을 위한 지속 가능한 건축을 달성하기 위해서 먼저 건축물의 물리적 구성요소인 건축자재 및 재료를 환경친화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생태환경을 최대한 유지하는 차원의 지속 가능한 주거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위해서는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건축 과학기술이 갖는 맹목성을 제어할 수 있는 인문적 사고로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바로 도교 생태사상은 주거환경 조성 중에 생겨난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풍부한 사상 자원과 사유방법을 제공해 준다. 도교의 생태사상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지속가능한 주거 환경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방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도교의 건축은 기본적으로는 도교문화를 폭넓게 반영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전통시대의 사회경제와 건축문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도교 건축물은 생태사상이 반영된 외재적 형식이자 구체적인 형상물이다. 일종의 물질 형식인 도교의 건축은 도교 사상이 반영된 산물로서 도교의 풍부한 생태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교 건축은 전통문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고 고대 건축의 주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바로 도교의 신도들과 도사들이 종교의식과 종교활동을 하는 중요한 ‘장소’2)이다. 도교의 발전과정에서 도교 건축은 자연스럽게 생태적 특징을 드러내게 되었으며, 동시에 전통문화와 지역 환경의 특징을 결합하여 전통 스타일과 지역의 특색을 갖추게 되었다. 도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자연에 순응함(順應自然), 소박함 추구(見素抱樸), 사사로운 욕망을 줄임(少私寡欲), 사치스러움을 억제하고 검약함을 숭상함(抑奢崇儉), 순환과 재생(循環再生), 만물과의 소통(融通萬有) 등의 생태사상은 현대 도시의 지속가능 생태건축을 위한 사상적 바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하나의 롤모델을 탐색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이 논문에서는 먼저 중국 도교 건축의 발전 경로와 그 문화적 함의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도교 건축에 반영된 생태사상의 기본 원리들을 분석 정리해 볼 것이다. 이 연구작업은 한국에서 아직까지도 전인미답의 영역인 도교 건축에 대한 연구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절대 부족한 도교 건축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이나마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이번 연구가 관련 연구자들의 관심을 촉발할 촉진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Ⅱ. 도교 건축의 발전과 문화적 함의

도교에서 도를 닦는 최종 목적은 도를 얻어 신선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수련에 매진해야 하며 이를 위한 좋은 자연환경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에 따라 도교 건축은 자연스럽게 ‘천인합일’의 경지를 추구하며 대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게 되었다. 도교에서 중시 여기는 ‘동천복지(洞天福地)’3)는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다.

1. 도교 건축의 발전 과정
1) 도교 건축의 형성

도교 건축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도교 건축은 도교 궁관(宮觀)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건축으로서 도교의 신들을 모시는 전당(殿堂)과 회랑(回廊), 정각(亭阁), 정원(庭园), 묘탑(墓塔), 편액(匾额), 조상(彫像), 벽화 및 궁관(宮官) 건축물의 배치 방식까지 모두 포괄한다. 이것은 도교도들이 종교활동을 하는 주요한 장소이며 고대 건축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다.”4) 도교의 건축은 궁관을 중심으로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신앙을 체현하는 종교 건축으로서, 통상 사(祠), 묘(廟), 궁(宫), 관(觀), 사(寺) 등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주요 기능은 도교 신도들이 신을 모시고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며, 수련과 생활을 하는 주거 공간이자 도교의 의례인 제초의식(齋醮儀式)을 거행하는 장소이다.

최초의 발전단계에서부터 도교 건축은 공간의 실질적 효용성의 추구에서 비롯되었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고대에 원시 숭배에 쓰이던 ‘영대(靈臺)’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에서 “영대(靈臺)를 처음 지으려 할 때, 땅을 재고 푯말을 세우니”5)라고 하였는데, 영대는 바로 원시 종교의 제사 활동을 위해 흙을 쌓아 올린 일종의 건축물이다. 상고시대의 군왕은 신명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기 위해 흙을 쌓아 올려 이를 ‘고(高)’라고 지칭하였고, 이 ‘고대(高臺)’ 위에서 제사를 지냈다. 한편, 고대와 영대에서 사용되는 물은 모두 사람과 신을 통하게 하는 매개체라고 믿었기에 고대의 주위를 물로 에워싸게 하고 신명에게 제사를 올리는 이상적인 장소로 삼았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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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고대(高臺)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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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夏) 왕조는 대략 기원전 2세기에 건립되어 성읍(城邑) 국가 연합체를 세우면서 각 성들을 세속의 정부 관원들이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이 성들은 각각의 성황이나 토지신과 같은 신명들의 관할 지역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명들은 이후 도교 신의 계보에서 그 중심을 이루며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하(夏), 상(商), 주(周) 삼대(三代)에서 춘추전국 시대까지 이루어진 ‘우사직, 좌종묘(右社稷, 左宗廟)’의 제사 제도는 이후 전체 전제왕조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되었으며, 도교 건축의 전당(殿堂)과 사묘(祠廟)의 점진적 발전을 통해 점차 완성되어 간다. 당시의 성황묘(城隍廟)와 토지묘(土地廟)는 관방 건축의 주체가 되는 기본 기구이자 신명의 거주지였으며, 도교 건축의 원형을 이루는 곳이다. 이후 진한(秦漢)시대에 이르러 영대는 방사(房舍) 건축 형식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명당(明堂) 개념이 더불어 생겨나기 시작한다. 태묘(太廟)와 명당은 바로 영대가 변화 발전한 것이다. 명당을 건설할 때 『주역』의 구궁(九宮) 원리에 따라 서남 방향에 신위를 모시게 되었는데, 이후의 도교 건축에서 이를 매우 중요시 여기며 건축물 배치의 기본 원리로 삼게 된다. 초기 도교에서 명당의 주요한 기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높이 올라가 ‘살펴보고(觀)’ 신명을 불러들이는데 편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명당이 발전하여 ‘관(觀)’이 되는데, 이 ‘관’은 곧 천도를 살피고 수용하는 장소이다. 이리하여 ‘도관(道觀)’이라는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섬서성(陝西省) 주지현(周至縣)의 누관대(樓觀臺)6)는 도교 최초의 궁관 건축이다. 주대(周代)의 함곡관(函谷關) 관령(關令) 윤희(尹喜)는 이곳에서 천상(天象)을 관찰하였다고 하는데, 바로 노자가 이곳에서 『도덕경』을 강설(講說)하고 떠났다 하여 ‘설경대(說經臺)’라고도 일컫는다.

도교 건축이 형성되는 초기에는 백성들의 주거 장소 중에 좀 은밀한 곳 또는 비교적 독립된 공간이 활용되다가 후에 세속적인 공간과 분리가 되면서 공공의 건축으로서 독립적으로 형성된다. 여기서부터 도교 건축은 더욱 폭넓은 발전 공간이 열리게 된다. 고대에는 거의 모든 부락마다 토지묘가 있었는데, 이곳은 사람들이 풍요를 바라며 비가 때에 맞추어 알맞게 내려주기를 기원하는 곳이었다. 토지묘는 바로 사람들이 신명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는 장소였다. 성황묘는 토지묘가 성내(城內)에서 변화 발전한 것으로 도교 건축의 원형과 분포 형식을 가장 광범위하게 갖추고 있다.

도교가 형성되기 이전 또는 형성 초기에 ‘치(治)’, ’려(廬)‘, ‘정(靖)’은 종교의 조직과 활동의 장소였다. ‘정’은 ‘정실(靜室)’이라고도 칭해진다. ‘정’과 ‘치’는 초기 도교도들이 제사를 지내고 수련을 하며 제초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였다.7) 이 둘은 동한(東漢)의 오두미도(五斗米道)에서 시작되었는데 현재는 그 구체적 유적 등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여기서 ‘치’와 ‘정’은 서로 구별된다. 『요수과의계율초(要修科儀戒律鈔)』에서는 “일반 백성들의 집을 정이라 하고 천사의 집을 치라고 한다.”8)라고 하였는데, 이 둘 사이에는 등급이 나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치’는 오두미도에서 세운 포교의 거점으로 각각의 등급이 나뉘어져 있다. 모옥(茅屋) 또는 와옥(瓦屋)이 등급을 나타낸다. ‘정’은 확실한 격식은 없으며 일반 신도들이 세운 곳으로 『진고(眞誥)』에서는 정실이 모옥(茅屋), 방류실(方溜室), 환도(環堵) 세 가지 형식으로 나뉜다고 하였다.9) 초기 천사도는 일종의 정교합일의 조직이었다. 천사도의 개조(開祖)인 장릉이 세운 ‘이십사치(二十四治)’는 도교 사원의 기원이다. 천사도(天師道)는 한중(漢中)과 파촉(巴蜀) 지역에 체계적인 교단 조직을 건립하였고 각 지역 교단의 건축인 ‘치’를 중심으로 조직이 이루어졌다. ‘치’는 초기 도교의 건축으로 통상 건축물의 형상과 구조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불명확하여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확인하기가 어렵다. 다만 건축 규모가 크지 않고 형식도 비교적 단순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밖의 ‘모실(茅室)’, ‘신단(神壇)’, ‘도관(道觀)’ 등 또한 도교의 원시 건축의 형식을 포함하고 있다. 도교 초기의 건축인 ‘치’와 ‘정’은 건축물의 형상과 구조에 있어서 도교의 등급 관념이 반영되었는데 이는 이후 궁관 건축 발전의 기초가 된다.

도교도들이 수행하는 최종 목적은 도를 얻어 신선이 되어 영혼은 불멸하고 육체는 영생을 얻어 현실의 속박을 초월하는 것이다. 도교의 교의에 바탕을 둔 초기 도교의 건축은 독립된 공간이나 독립된 형상과 구조를 강조하지 않았기에 세속의 건축과 혼동되기도 하였다.

2) 도교 건축의 흥성

도교 건축 발전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도교 건축의 물질적 측면과 사용상의 기능이 강조되었다. 도교 건축물은 세속의 건축물과 공간적으로 분리된 뒤 풍경이 수려한 명산을 수도의 장소로 집중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선관(仙館)’은 남북조시기 도교 신앙 활동을 위한 장소에 대한 명칭이다. 북주(北周) 무제(武帝) 시기에 ‘관(館)’을 ‘관(觀)’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는데 여기서 ‘관(觀)’은 성상(星像)을 보고 하늘의 기운을 살핀다는 뜻을 지닌다. 이때의 도교 건축은 이미 상당한 규모를 갖추었고, 건축의 형태도 날로 질서정연하게 바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는 관방(官方)의 건축을 원형으로 하고 건축 배치 형태도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조(北朝) 후대에는 도관이 모두 관방 건축에 편입되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도교가 남북조시기에는 국가적 지원을 받으면서 제도화되는 과정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의례가 끊임없이 규범화됨에 따라 점차 상당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고 형식은 더욱 정형화되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당의 황족은 도교에서 신봉하는 시조인 노자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겨 노자를 ‘태상현원황제(太上玄遠黃帝)’로 모시게 된다. 이에 따라 당대(唐代)에는 노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도교 건축도 제왕의 거처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아 ‘궁(宮)’으로 불렸다. 이로부터 도교 건축이 당대에 이르러 더욱 성대하게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부터 궁관 건축의 중축선(中軸線)이 이미 확연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림 2>10) 산문(山門), 궁전, 강단 등이 차례로 중축선에 배치되었고 배전(拜殿)과 도교도가 사용하는 사랑방 등이 양측에 배치되었는데, 이는 정전과 편전은 앞부분에, 침전과 후원은 뒷부분에 배치하는 궁궐의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을 따른 것이다. 한편 다신(多神) 숭배는 도교의 특징으로서 사당의 규모도 이에 따라 비교적 크게 형성되었다. 천존(天尊)과 제군(帝君)에 제사를 지내는 곳을 궁이라고 하고 규모가 비교적 작은 곳은 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로 민속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부 도교 건축은 묘(廟)라고도 한다. 신명을 섬기는 방식이 다원화됨에 따라 각 지역마다 도교 궁관 형식도 제각기 독특한 색체를 드러내게 된다. 전형적인 도관의 건축군에는 산문(山門), 종루(鍾樓), 영궁전(靈宮殿), 주신전(主神殿), 옥황전(玉皇殿), 삼청전(三淸殿), 조사전(祖師殿) 등이 포함된다.11) 도교는 당송(唐宋) 시기에 이르러 더욱 크게 흥성하여 궁관이 각지마다 건설되었다. 「현종본기(玄宗本紀)」에 따르면, 개원(開元) 29년(741년)에 동경(東京)과 서경(西京) 양경(兩京)과 각 주(州)에 모두 현원황제묘(玄元皇帝廟)를 건립하였고,12) 천보(天寶) 2년(743년)에는 서경과 각 주 현원묘를 각각 태청궁(太淸宮), 태미궁(太微宮), 자미궁(紫微宮)으로 고쳤다. 『신당서(新唐書)』 「백관삼(百官三)」과 『당육전(唐六典)』 「사부(祠部)」에 의하면 당 왕조 시기에 전국의 도관이 모두 1,687개에 달하였다고 한다.13) 송대(宋代)에는 남아 있던 당 왕조 때의 도관 벽화가 수록된 방만 8524칸에 달하였다. 송대는 도교 건축역사에서 또 하나의 전성기로서 도교 궁관의 규모가 매우 방대하고 휘황찬란하였으며 공예와 설계도 날로 완벽해져 갔다. ‘도군황제(道君皇帝)’라고 자칭하던 송 휘종(徽宗)은 천하 곳곳에 궁관을 세웠는데, 송대의 건축 스타일은 부드러워지고 화려해지기 시작했으며, 지붕의 경사도가 높아졌고 유리와(琉璃瓦)로 가장자리를 섬세하게 둘렀다. 지붕받침(斗拱)은 진앙(眞昂)14)을 사용하였고 기둥의 앞쪽을 깍아내는 전추법(剪柱法)을 채택하기 시작하였으며, 문과 창문에는 마름모꼴의 능화(菱花)와 들어 올리는 격산(格扇) 형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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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당대(唐代) 궁관의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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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말기의 두광정(杜光庭)은 자신이 편찬한 『동천복지악독명산기 (洞天福地嶽漬名山記)』에서 도교를 ‘10대동천(大洞天), 36소동천(小洞天), 72복지(福地)’로 정리하였는데15) 이들 장소에는 모두 도교 궁관 건축군이 자리하고 있다. <그림 3> 청성산(靑城山,) 모산(茅山), 무당산(武當山), 노산(嶗山), 려산(廬山) 및 오악 등의 ‘동천복지’는 모두 역대 제왕이 제사를 지냈던 도교 성지이다. 도교 건축의 궁관은 대부분 풍경이 수려한 명산 승경(勝景)에 자리하며 도교의 청심과욕(淸心寡欲)과 청정무위(淸靜無爲) 사상을 담고 있다. 도교가 흥성했었음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는 도교 궁관의 형성으로 도교 건축형태가 더욱 규범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교의 건축 등급도 제고되었다. 이렇듯 도교의 건축은 도교 문화를 고양하는데 적극적인 촉진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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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10대동천(大洞天)의 하나인 청성산(靑城山)의 상청궁(上淸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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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교 건축의 성숙

도교 건축이 성숙 되어 가는 제3단계는 도교의 정서와 정취를 강조하는 단계이다. 이 시기의 도교 건축은 물질적 측면과 형식을 보완하는 동시에 정서나 정취의 측면을 더욱 중시하였다. 도교 건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통건축의 특징을 더욱 공고화하고 외래문화에서 수용된 건축에 창조성이 결핍되었음을 강조하고 이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도교 건축은 조성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전통 방식을 수용하면서 정서적 감정을 유발하기도 하고 이성에 호소하기도 하면서 신명에 대한 숭배심을 강화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즉 이 시기의 건축은 인간과 신명의 상호 소통을 통한 천신의 동기와 우주의 질서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인간과 신명, 천지자연의 조화와 질서를 건축 안에서 해석하고자 하였다. 송대(宋代) 때부터 청대(淸代) 말기에 이르기까지 도교 건축은 정서의 동질화 단계이자 직관적 발전단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국 고대 건축의 직관적 발전단계에서 그랬듯이 중축선(中軸線)에 건축물이 빈틈없이 분포되고 있다. 예를 들면, 명(明) 성조(成祖) 주체(朱棣)는 공자가 숭상했던 주(周)나라의 이상을 반영하여 원조(元朝)의 옛터를 도읍으로 정하자마자 페르시아제국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군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궁궐의 다섯 개의 문은 지하의 은밀한 건축군으로 통하게 될 정도로 규모나 기술에 있어서 크게 진보하게 되었다. 건축군은 대전이 열리는 외조(外朝)와 개인이 기거하는 내정(內廷)으로 나뉜다. 외조삼전(外朝三殿)은 국사를 다스리는 데 쓰였고, 외조, 내정 두 구역에는 모두 5개의 큰 광장과 6개의 대전이 있었으며 그 밖에도 9,000칸에 이르는 기타 용도의 방이 있다. 오문(午門) 앞의 금수(金水)는 5개의 다리를 흘러 지나는데 이는 유가의 오덕(五德),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상징한다.16)

12세기 초에는 전진교가 창립되어 청정(淸靜) 수련을 강조하고 결혼을 하지 않는 출가(出家)를 요구하는 등의 엄격한 수행이론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청정수련과 제사의 성격과 기능에 어울리는 공간이 나타났으며, 건축체제로는 시방총림(十方叢林)과 자손묘(子孫廟)가 생겨났다. 이때의 도교 건축은 여러 신들에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건축의 형식에서 다신 공존을 이론적으로 더욱 강조하였고, 신계(神界) 관료체제의 다층구조를 나타내는 축선이 있는 ‘다진방원(多進方院)’ 구조가 더욱 강화되었다.

도교는 초기에 인적이 드문 외딴 지역에서 수도하거나 도시에 건설되어 관변 도사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거주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또 시정(市井)에는 선인(仙人)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도관도 있었다. 북위(北魏)시기에 이르러 유불도 삼교합일 추세가 나타나면서 도교 건축은 도시의 변두리에 자리 잡으면서 신도와 도사들이 제사를 지내고 청정수련을 하는 데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도교 건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경관을 이루면서 동시에 사회화된 경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렇게 주변 지역과 더불어 도교 건축의 풍경구를 구성하는 취락형 공간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도교 수행은 은밀한 과정의 수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늘 한적한 곳을 선택한다. 또한 이러한 선택으로 도교도가 자체적 농경 활동을 통해 기본적인 생활자원을 획득하는데 유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관 공간은 그 풍모가 독특하였으며 전통시대 고도의 권력 집권 상황속에서도 자립적인 농경 생활을 통해 독자적인 존재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2. 도교 건축의 문화적 함의
1) 도교문화의 매개체로서의 도교 건축

인간은 먼저 감관을 통해 외적인 낯선 세계를 탐측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바로 도교 건축은 도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통로가 된다. 루쉰은 일찍이 “중국문화의 뿌리는 모두 도교에 있다.”고 말했다. 도교는 중국 본토의 종교로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중국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그 문화의 양태는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도덕경(道德經)』, 『태평경(太平經)』 등 도교경전과 도교의 제사 의례와 묘회 등과 도교 명절에 이루어지는 행사 등은 중국인들의 사고와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또한 정월 대보름, 중양절(重陽節), 섣달 23일에 지내는 부뚜막 제사 등 이루 헤아리기도 힘든 민간의 전통명절은 모두 도교와 관련이 깊다. 도교문화의 현실적 매개체로서 도교 건축은 도교 문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바탕이 된다.

도교문화의 발전과정에서 도교는 점차 중국의 주류 종교가 되었다. 도교 건축은 ‘치(治)’와 ‘정(靖)’의 초기 형식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궁관(宮觀)을 형성하게 되었다. 도교 특유의 종교 관념과 문화적 함의는 도교 궁관건축의 출현과 변천의 근거가 되었다.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드리기 위해 모여든 유람객들은 우선 궁관에서 도교 문화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을 형성하였다. 궁관은 도교 문화를 전시하는 주요장소이자 도교 문화를 전파하는 기지이기도 하다.

도교 건축물은 도교 문화의 매개체로서 도교 문화의 정보를 담지하고 있는 원천이기도 하다. 도교 건축은 전도사업의 기본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도교도는 일반적으로 도교 궁관에서 도교와 도교 문화를 학습하고 연구하며 스승을 모시고 여러 기예를 배운다. 여기서 도교 건축은 도교 과의(科儀)와 도법(道法)의 주요 보존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도법의 전승(傳承)은 반드시 도교의 과의(科儀)를 끊임없이 수행하며 실행되도록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도법은 도교 문화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도교 건축에서 이를 보존하고 전수한다. 도법은 도교의 생생한 문화로서 현실 속에서의 도교도의 종교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도교 궁관은 부지를 선정할 때 흔히 산의 기세에 따라 자리를 잡는데, ‘자연을 숭상(崇尙自然)’하고 ‘자연을 따르며(道法自然)’, ‘청정무위 하는(淸靜無爲)’ 도교 생태사상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다. 도교 궁관건축은 형식과 공간설계에서 도교의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을 구현하고 있다. 궁관 내의 팔괘(八卦)와 신상(神像), 오뢰령(五雷靈) 등은 도교 특유의 신령과 세계관, 종교수행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도교 궁관의 규모와 사용하게 될 자재는 모시게 되는 신선의 등급과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는 엄격한 등급 관념을 나타내고 있다. 도교문화의 담지체인 도교 궁관 건축은 도교의 생태사상을 구현하고 있다. 도교문화의 역사적 변천 과정은 모두 도교 건축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각각의 도교 건축은 바로 도교 문화의 생동감 넘치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2) 도교문화가 집약된 도교 건축

도교문화는 방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이루고 있으며 그 내용이 매우 풍부하다. 도교문화의 구체적 형상화인 도교 건축은 필연적으로 도교문화 통합의 기초 요소가 된다.

도교 건축은 도교문화 제반의 관념 요소를 통합하는 것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였다. 도교문화 체계는 철학, 도덕, 생태, 신선이론(神仙理論), 건축, 음악, 회화, 조각 등 다방면을 망라하고 있으며 또한 이 모든 방면의 내용을 기록한 경전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도교문화의 제반 요소는 비록 각각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발전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다른 역할을 하지만 모두 도교문화의 주요 구성요소이다.

도교 건축물은 흔히 서로가 융합되어 서로 영향을 끼치며 도교의 종교이념에 따라 거의 완벽에 가까운 건축군을 구축함으로써 도교의 각종 교리와 교의가 가장 뚜렷하게 표현되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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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태산(泰山) 정상에 위치한 벽하사(碧霞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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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교 건축에서든 여러 다른 문화요소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황묘(城隍廟)이다. 서안(西安)의 성황묘는 명대(明代) 홍무(洪武) 20년(1387년)에 창립되었는데, 도교 성황 신앙 서열에서도 등급이 가장 높고 영향력도 크며 서북 각 성의 크고 작은 많은 ‘성황’을 통괄하고 있다. 600여 년의 풍파를 거치고 여러 왕조가 교체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위엄이 여전하다. 성황묘 내의 건축은 분포가 매우 질서정연하고 웅장하며 건축조각도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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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서안(西安)의 성황묘(城隍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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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문화는 많은 기본요소가 포함된 전일체로서 도교 건축에서 그 관념과 종교행위, 제도의 통합을 구현하고 있다. 도교문화의 제도 체계란 주로 도교도가 준수해야 할 계규(戒規)와 계율(戒律)을 가리키는데 이를 바탕으로 도교도의 조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도교도의 신앙, 도교의 행위체계, 도덕 관념 등을 제약하고 있다. 도교생활은 사실상 각종 제도의 제약하에 존재하는 관념과 생활이다. 도교 건축은 도장(道場)의 법사(法事)를 여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도인(道人)들이 평소 수련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세속과 도교 문화의 통합은 일반적으로 도교 궁관 건축 내에서 완성된다. 일반인들은 도교문화의 심오한 현리(玄理)에 바탕을 둔 수행과정의 고난을 견디기 어렵지만, 한편으로 도교문화에는 일반 신도들이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요소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도교도는 도교건축인 도관에서 향을 피우고 신을 섬기며 복을 빌고 경전을 접하면서 도교의 문화와 도덕을 취하여 도교문화 전승(傳承)을 완성한다. 심원한 영향을 미치는 일부 민간제사의 주체, 예를 들어 관제(關帝), 토지(土地), 성황(城隍) 등 각양각색의 신들은 도교 주신(主神) 체계의 보조 체계로서 함께 도교의 신앙체계를 구성한다. 민간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방법도 도교에 의해 전파되어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보조적인 신들의 체계는 도교 건축의 중요한 내용을 구성하여 도교 신 가운데의 민속적인 부분과 지역문화 중의 도교 건축을 보완하였다. 도교는 이런 방법으로 도교의 세계와 세속을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는 동시에 일반 사람들의 관념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도교문화가 중국문화의 대표로 성장하도록 하였다.

기나긴 발전 과정에서 도교 건축은 형식상에서 세속건축의 특징을 흡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설계, 배치 면에서도 세속건축의 새롭고 독특하고 교묘한 건축 방법을 활용하였다. 건축물의 배치와 구조 등의 면에서 도교 건축이 전통적인 건축에 담긴 사상과 건축 배치법, 건축설계 방법을 모두 계승하였다. 이와 동시에 풍부한 도교의 심미 사상과 생태, 도덕 관념을 융합하여 동천복지에 대한 추구와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조화를 중시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이루게 되었다. 도교 궁관건축은 전통시대 건축 양식의 발전이지만 한편으로는 세속의 건축이나 기타 종교 건축과 선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도교 건축의 다양성, 신성성(神聖性)과 세속성의 통일은 도교 신앙 특징에 따라 결정된다. 전원식(田園式)과 궁전식(宮殿式)의 도교 건축이 병존하는 것은 도교의 ‘신선의 도는 생명을 귀하게 여긴다(仙道貴生).’는 사상을 반영하며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세상을 떠나는 것을 똑같이 중요시하는 종교사상을 반영한다. 도교 건축의 건축물 배치, 건축기술 및 그 속에 일관된 생태사상은 도교문화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현대건축에서도 여전히 참고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Ⅲ. 도교 건축에 반영된 생태사상의 기본 원칙

1. 자연 숭상의 풍수(風水) 원칙

도교 수도(修道)의 궁극적인 목표는 득도하여 신선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자의 각고의 개인 수련이 요구되며 더불어 반드시 좋은 자연환경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도교 건축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추구하고 대자연과의 조화와 통일을 중시하였으며, 신선이 되기 위한 동천복지(洞天福地)’와 같은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두었다. 수련 환경의 선택에서 가장 좋은 지리적 위치와 방위를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도교 건축물이 산수가 수려한 명승지에 건설되었다. 궁관은 기본적으로 산과 물에 가까운 곳에 자리하였으며, 산의 형세에 따라 자연과 하나로 융합되어 도교 건축의 심미성을 구현하였다. 도교 건축은 ‘자연의 도(自然之道)’를 추구하는 생태윤리관을 기본적으로 표방하게 되었다. 도교는 감여(堪輿)17)를 중요시하여 자체 이론체계를 구축하였는데 그 속에는 도교의 생태사상이 구현되어있다.

한편으로는 도교 건축물은 주로 산림 속에 건설되어 기본적으로 자연 숭상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세속을 떠나 은거하여 수련하는 도교의 기본 사상을 체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첫째로, 많은 도교 궁관은 명산에 위치하며 하늘에 비교적 가까운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장소’는 신선(神仙)과 진인(真人)이 늘 출몰하는 하늘과 땅이 합류한 곳으로서 도를 닦고 신선이 되려는 수도자의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둘째, 동천복지(洞天福地)는 인간 세계를 넘어선 선경(仙境)으로서 도교에서는 건축물을 배치할 때 주로 선경의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설계하고자 하였다. 건축설계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는’ 사상을 관철하고자 하였다. 풍수에 관한 서적으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황제택경(黃帝宅經)』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위대하도다. 음양의 이치여! 경(經)에서 “음은 만물의 정을 낳고 변화시키는 어머니요. 양은 만물의 정을 낳고 변화시키는 아버지이다. 이들은 천지의 원조(元祖)이며, 잉태하고 육성하는 지존(至尊)이다. 그래서 순응하면 형통(亨通)할 것이고, 역행하면 불리한 것이다. 그것은 공명(公明)하고 충성(忠誠)하면 작위(爵位)를 받지만, 명을 거스르면 오히려 재앙을 받는 것과 어찌 다를 것인가?”라고 하였다.18)

복덕은 천도에 의지한다. 천덕, 월덕은 화기의 다스림이라. 즉 이끄는 자가 청렴하고 너그러우면 일가가 안일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린다.19)

도교는 인공적인 환경과 자연의 관계에 있어서 천인합일과 조화를 추구한다. 중국의 전통건축예술의 발전은 도교의 자연미 추구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 자연을 본받고(師法自然), 자연을 숭상(崇尙自然)하는 심미관이 그 안에서 일으키는 역할은 명백하다. 도교는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이해로 심미의식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다. 또한 이러한 심미사상이 원림(園林), 능묘(陵墓), 궁정제사(宮廷祭祀) 및 민거(民居) 등 모든 고대 건축에 미치는 영향은 자명한 것이다. 그 가운데 능묘는 일반적으로 산림 속에 건설되기에 주위의 산수 환경에 대한 선택에 있어 매우 신중하다. 건축의 배치, 형식, 색조, 규모 등은 모두 주변의 자연환경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당건릉(唐乾陵), 명13릉(明十三陵), 청동릉(清東陵)과 청서릉(清西陵) 등의 능묘는 모두 군산준령의 기세에 따라 인공적인 건축과 대자연을 교묘히 결합시킨 걸작들이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기 위한 도시 변두리의 건축은 인공적으로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환경에 바탕을 둔다. 그리하여 때로는 자연보다 높은 이상적인 경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북경 천단(天壇)의 주위에는 사계절 푸른 백송을 많이 심었는데 그 목적은 바로 대자연의 신비감과 그 원시적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데에 있다.20) 조셉 니이담(Jeseph Needham)은 일찍이, “중국의 위대한 건축의 대부분 형태는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겸덕을 지녀 일종의 시적 정취가 있고 조직적인 양식은 그 어떤 문화도 미치지 못하는 경지이다. 이런 형식은 15세기 초에 북경에서 천단을 건설할 때 이미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21)고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도교의 풍수는 자연계의 유기성을 중시한다. 도교 풍수이론이 채택한 개념은 주로 기(氣), 음양(陰陽), 오행(五行), 팔괘(八卦)인데 고대로부터 이들 개념은 모두 자연계의 유기성을 해석하는 데 사용되었다. 서진(西晉)시대를 대표하는 풍수서인 곽박(郭璞)의 『장서(葬書)』에서는 ‘기(氣)’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생기(生氣)’에 대해 상세하게 풀이하였다.

장사를 지낸다는 것은 생기를 탄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 기는 땅속에서 움직이다가 발동하면 만물을 낳는다. … 무릇 음양의 기가 내뱉으면(噫) 바람이 되고, 올라가면 구름이 되며 내려오면 비가 되고, 땅속에서 움직이다가 생기가 된다. 무릇 토는 기의 본체이니 이 토가 있어 기가 있게 되며, 기는 물의 어머니이니 이 기가 있어 물이 있게 된다. 경(經)에 이르기를 “토는 형기가 물로 말미암아 생긴다. 무른 땅속에서 그 기가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은 땅의 형세에 말미암은 것이며, 토가 모여 땅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기운이 멈추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22)

도교의 건축은 일반적으로 주위환경을 이용하여 산세에 따라 이루어지며, 도교 건축물과 주위환경이 혼연일체를 이루어 소박함의 생태사상을 구현한다. 도교 수도자들은 모두 도교의 ‘선경(仙境)’을 선택하고자 한다. 이 선경은 아름답고 그윽하며 구름이 피어오르고 풍수가 매우 뛰어난 곳으로서 도를 닦고 양생하며 연단(鍊丹)하는 데 적합하였다. 많은 도교 궁관 건축 가운데 어떤 건축물은 산의 정상에 세워졌다. 이런 건축물은 하늘의 신령과 통하기 위해 우뚝 솟아있다. 또 어떤 건축물은 산비탈에 세워졌는데 이런 건축은 일반적으로 지형을 이용하여 건축물이 자연환경에 가려져 있도록 하여 아늑하고 수려한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였다. 어떤 건축물은 동굴 옆에 자리 잡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섬서성(陝西省)의 여러 도관들은 모두 산세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토굴을 뚫고 지어졌다. 토굴 안에 들보와 기둥을 사용하여 이를 지탱한다. 이러한 도관 건축은 모두 산의 모양과 지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주위 환경과 혼연일체를 이루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변화무쌍한 건축미를 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웅장하면서도 소박한 자연미를 잘 표현하였다.

도관이 건설된 지역에 따라서 도교 건축의 평면 배치형식도 역시 다양하다. 어떤 도교 건축은 도시 중심에 건설되어 축선을 따라 건물 배치가 엄격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건축물도 기능에 의거하여 축선에 따라 분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서안 팔선궁(八仙宮)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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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팔선궁(八仙宮)의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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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도교 건축은 산지에 위치해 있는데 모두 ‘자연 순응’의 원칙에 의거한다. 바로 현지 실정에 따라 산을 의지하고 물을 가까이하며 기세에 순응하는 풍수의 원칙을 중요시하며 건물도 자유롭게 배치하고 있다. 도교 궁관은 대부분 속세와 멀리 떨어져 산 좋고 물 맑으며 풍경이 수려한 동천복지를 선택하고 있다. 동시에 도교는 ‘무위(無爲)’를 숭상하면서 궁관을 건축할 때 현지의 생태환경을 그대로 보존할 것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금(金) 왕조 말기에서 원대(元代) 초에 건립된 섬서성 용현(隴縣)에 위치한 용문동(龍門洞)은 카르스트지형에 속하며 자연풍경이 수려하고 천연동굴과 주위에 연못들이 있어 도교도들이 수련하기 좋은 곳으로 수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용문동의 도교 건축은 대부분 산세에 따라 동굴 속에 궁관을 지어 건축 자체가 주위 환경과 더욱 잘 어울리게 하였다. 이는 분산식(分散式) 도교 건축의 형식에 속하며 전체적인 분포 상황과 배치가 조화롭도록 자연환경을 교묘하게 이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연생태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림 7> 이와 유사한 도교 건축은 섬서성에는 주지(周至)의 누관대(樓觀臺), 보계(寶雞)의 금대관(金臺觀)과 가현(佳縣)의 백운관(白雲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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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용현(隴縣)의 용문동(龍門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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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해보면 도교 건축은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매우 중시하여 대부분 산과 물에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고 고요히 ‘텅 비워 고요하게(虛靜)’ 대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며 자연의 도를 체현하고 있다. 또한 지세에 따라 정자(亭), 대(臺), 누(樓), 사(榭) 등의 건축물 건설함으로써 고즈넉하고 우아하고 소박한 자연예술의 경지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도교의 건축 배치는 기본적으로 『주역』의 팔괘(八卦)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건남곤북(乾南坤北), 천남지북(天南地北)의 방위를 근거로 삼으며, 자오선(子午線)을 중심축으로 하고 양지(陽地)를 향하게 하면서도 대칭을 중요시하여 월동일서(月東日西)를 구현하였다. 또 풍수를 중시하여 ‘기운을 모아 신을 맞이(聚氣迎神)’하도록 설계하였고, 건축 환경을 중시하며 자연과 하나로 조회를 이루는 것을 추구하였다.

2. 건축자재의 현지 자연재료 사용 원칙

전통 도교 건축은 건축재료를 선택할 때 현지의 천연자재를 이용하여 되도록 자연의 평형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천연자재의 사용은 경제적으로 유리할 뿐만 아니라 자재를 부분적으로 순환 이용할 수 있게 되므로 생태에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만물이 저절로 그러함에 보조를 맞출 뿐 감히 억지로 어찌하려고 하지 않는다”23)는 것과 “무위하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다(無爲而無不爲).”는 노자의 사상을 충분히 발휘한 것이다. 노자의 ‘무위’ 사상이 도교 건축에 던져주는 의미는 바로 자연에 순응하여 되도록 자연을 교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방의 고대 건축에서 벽돌과 돌을 주요 건축재료로 삼은 것과는 달리 동양의 고대 건축은 흙과 목재를 주택의 주요재료로 삼았는데 이러한 건축은 토목구조 체계에 속한다고 한다. 도교 건축 역시 주로 토목구조를 채택하였다. 그런데 중국에는 높고 큰 바위산도 많아서 석재가 풍부하기에 석재 부족의 이유로 흙과 목재를 주자재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동양의 석재 가공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대에는 목재를 많이 사용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대의 능묘 앞의 석궐(石闕)은 한대 사람들이 이미 석재를 이용한 아치형 천장과 기둥을 만드는 기술을 장악하여 이를 묘혈(墓穴)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수대(隋代)의 조주교(曹州橋)의 석재 응용기술은 세계적으로도 훨씬 앞선 기술이다. 그리고 일찍이 삼국시대에도 이미 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부터 중국의 석재기술은 서양에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도교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루(牌樓)도 석재를 기본 건축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문화의 시각에서 볼 때 도교 건축에서 목조구조체계를 받아들인 것은 도교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도교는 특히 음양오행설을 신봉하였는데 목, 화, 토, 금, 수 다섯 가지가 요소가 서로 상생상극하며 세계만물을 구성한다고 여겼다. 오행은 동, 서, 남, 북, 중앙 5개 방위에 대응되는데 그중 ‘토’는 중앙에 위치해 있으면서 만물을 싣고 양육하는 대지를 상징한다. 그리하여 오행설에서 토덕(土德)은 매우 높은 지위를 차지하였다. 고대 궁궐은 모두 이 ‘토’라는 글자를 기초로 삼아 세워졌으며,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社稷壇)은 국가를 상징하였다. ‘목’은 봄을 상징하고 동쪽을 상징하며 생명과 생장의 힘을 상징한다. ‘금’은 무력을 상징하고 서방을 대표하기에 고대 건축에서 무력과 관련된 건축물은 모두 중축선(中軸線)의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수’는 북방을 상징하고 ‘화’는 남방을 대표한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오행의 재료 중에서 ‘토’와 ‘목’이 건축 자재로 삼기에 적절하다고 여겼다. 도교의 풍수사상에 따라 부지선정을 할 때 이른바 ‘선경’에 세워져야 한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도교 건축물은 풍경이 아름답고 풍수가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곳들은 대부분 인적이 드물고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는 당도하기 어려운 탓에 주로 현지의 재료를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토는 중국 고대 민가의 건축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던 건축재료로서 역사발전 과정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용되어왔다. 원시시대에 땅을 파서 만든 혈거(穴居)에서부터 이후의 토굴과 흙으로 만든 건축물, 흙벽돌로 만든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흙에서 벋어나지 않았다. 흙은 어디에서나 쉽게 얻을 수 있고, 가소성(可塑性)이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보온성과 단열성도 비교적 좋은 편이어서 전통적으로 도교 건축에서도 널리 응용되었다. 또한 도교에서는 목재를 자연 생명이 있는 물질로 여겨 이를 이용하여 건물을 짓고 이곳을 수련 장소로 사용하면 궁극적으로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목재를 이용하여 건축물을 짓게 되면 바람과 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게 된다고 여겼다. 동시에 나무는 돌과 달리 그 종자를 심으면 다시 자라나게 되기에 적당히 사용하기만 하면 순환재생이 가능하다. 이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도교의 생태사상과 부합된다.

3. 도교 건축의 검소함 지향 원칙

도교는 청정무위를 바탕으로 득도하여 신선이 되는 것을 추구하였기에 초기의 도교의 수행과 제례 장소는 매우 소박했다. 이는 도교의 ‘물욕귀검(勿欲貴儉)’, ‘청허자지(清虛自持)’, ‘반박귀진(返樸歸真)’의 생태사상을 체현한 것이었다. 건축에서는 궁전식 건축을 추구하지 않고 소박한 자연 공간을 활용하는 것을 더 중시하였다. 도교는 초기에 초가집이나 동굴 등을 수행 장소로 많이 이용하였는데 송나라 이후에도 건설된 석굴과 자연탑의 숫자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앞서 살펴본 용문동(龍門洞)에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산세와 지형에 따라 현지의 실정에 맞게 도관을 건축하였다. 이곳에서는 건축군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며 서로에 의해 가치가 높아지게 되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공 예술의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결합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기의 도교 건축 중의 동실(洞室)은 도교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도교 초창기 수도자들은 대부분 깊은 산속의 초가집이나 동굴에 거주하였는데 이런 건축물은 매우 초라하다. 당 석명개(釋明概)의 『결대부혁폐불법승사병표(決對傅奕廢佛法僧事並表)』에서는 “장릉이 한나라에서 새벽에 관사가 흥하자 … 24곳에서 소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지내고 이곳에 흙으로 된 단을 설치하고 초가집을 짓고 24치라고 칭하였다. 치관이 흥기한 것은 이때부터이다.”24)라고 하였다. 수도자는 산속의 동굴에 거처하였는데 이런 동굴에는 생명을 보호한다는 도부(道符)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어떤 도교도는 지하 통로를 거쳐 동천(洞天)사이를 오갔다고 하였는데, 비록 하나의 작은 세계이지만 숨겨져 있는 출입구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우리는 도교의 원시적인 수행지에도 ‘도법자연(道法自然)’, ‘물욕귀검(勿欲貴儉)’의 생태사상이 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교가 국가 차원의 교단 종교로 지정된 후에는 건축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지만 궁전식의 방대한 건축 스케일을 추구하지는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민가의 건축 방식을 많이 채택하였다. 민가 건축 방식은 산악 궁관의 건축형태와 재료선택에 충분히 적용되었다. 비록 도교가 국교로 채택된 후에 도사들이 석동(石洞)이나 초려(草廬)를 떠나 규모를 갖춘 궁관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지만 건축재료는 기본적으로 모두 현지에서 생산되는 소박한 재료를 사용했으며 건축도 관방 건축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순박한 민가의 형식을 채택하여 짙은 지방 특색을 지니게 되었다.25) 금대 전진도(全真道) 조사 왕중양(王重陽)의 『중양입교십오론(重陽立敎十五論)』은 도교 전승의 규범으로 추앙되였다. 왕중양은 만일 외공(外工)만 닦고 가르침을 베풀지 않는다면 마치 그림의 떡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한 도교사상은 인간의 생존과 실천도 ‘도법자연(道法自然)’, ‘무위자연(無為自然)’, ‘소사과욕(少私寡欲)’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생활 태도는 일종의 소박한 생태주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도교의 검소한 가치관을 나타내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삼보(三寶)’를 말하였는데, 그중 두 번째 보물이 바로 ‘검소함’이다.26) 그리고 “오색(五色)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五音)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오미(五味)는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하고, 말을 타고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발광케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다운 행위를 방해한다.”27)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데서 오는 재앙을 다스리라고 지적한 것이다. 소박한 마음을 유지하고 욕망을 억제하며 청정하고 순수한 자연본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도교는 초려(茅廬), 토굴, 석굴 등을 수행의 장소로 삼았고 ‘검소함을 숭상하는 것(尚儉)’을 원칙으로 삼았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지어진 건축물은 제조공정과 기술을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쉽게 장악할 수 있으며, 건축자재도 쉽게 얻을 수 있기에 매우 효율적이고 경제적이기도 하다.

Ⅳ. 나오는 말

이상으로 도교 건축의 발전과 그 문화적 함의를 살펴보고, 도교 건축에 반영된 도교 생태 사상의 핵심적인 원리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를 통해 도교의 건축은 기본적으로는 도교문화를 폭넓게 반영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전통시대의 사회경제와 건축문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면서 변화 발전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발전의 단계마다 이루어진 도교의 건축 안에는 도교의 풍부한 생태 사상이 체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교의 건축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변화, 발전하고 더욱 완숙한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초기 도교 교단의 최초의 건축 형식인 ‘치’, ‘려’, ‘정’은 후대 도교 궁관 건축 발전의 기초를 이룬다. 남북조시기를 거쳐 당대에 이르러서는 관방도교가 성립되어 국가적 지원을 받으면서 의례가 끊임없이 규범화되었고, 궁관은 이에 따라 점차 상당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고 형식은 더욱 정형화되었다. 12세기 초 전진교가 창립된 이후부터 특히 청정수련을 강조하고 출가를 요구하는 엄격한 수행이론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수행에 적합한 외딴 자연공간에 수도 장소가 세워지는 건축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때의 도교 건축은 여러 다양한 신들에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건축의 형식에서 다신 공존을 이론적으로 더욱 강조하였고, 신계(神界) 관료체제의 다층구조를 나타내는 축선이 있는 ‘다진방원(多進方院)’ 구조가 더욱 강화되기도 하였다. 이렇듯이 도교 특유의 종교 관념과 문화적 함의에 따라 도교 궁관건축이 출현하고 변천 발전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바로 역사 상황 속에서 다양하게 성립된 다양한 궁관들에는 도교문화의 관념적인 요소와 제도, 생태사상 등이 집약되어 있다. 도교 건축물은 바로 생태사상이 반영된 외재적 형식이자 구체적인 형상물이다. 일종의 물질 형식인 도교의 건축은 도교 사상이 반영된 산물로서 도교의 풍부한 생태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교 건축은 기본적으로 동천복지를 추구하면서 장소 선택과 건물 배치에 있어서 풍수 이론을 수용하였는데, 여기에는 철저한 생태주의가 반영되어 있다. 도교 건축은 기본적으로 풍수이론에 의거 자연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기본 바탕으로 주위 경관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기 때문에 빼어난 형세를 이룬다. 땅과 산, 물이 지닌 원래의 자연 상태를 훼손하지 않고 초목조차도 함부로 상하게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건물군은 모두 주변 숲과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진다. 도교의 건축물은 자연풍경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완벽하게 결합이 되도록 전체 건축군을 배치하였다. 자연환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이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한편 도교 건축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건축재료를 선택할 때 현지의 천연자재를 이용하여 되도록 자연의 평형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천연자재의 사용은 경제적으로 유리할 뿐만 아니라 자재를 부분적으로 순환 이용할 수 있게 되므로 생태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도교 수도의 과정은 철저하게 청정무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장소가 선택된다. 다시 말해서 도교는 소박한 마음을 유지하고 욕망을 억제하며 청정하고 순수한 자연본성으로 돌아가야 함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행과 제례 장소는 되도록 소박한 장소를 선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일종의 소박한 생태주의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며 도교의 검소한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도교 생태사상은 주거환경 조성 중에 생겨난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풍부한 사상 자원과 사유방법을 제공해 준다. 도교의 생태사상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지속 가능한 주거환경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방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생태 주거환경의 조성을 추구하는 현대 도시 건축에서 생태사상이 반영된 도교의 건축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최근 건축 분야의 새로운 방향인 지속가능건축(Sustainable Architecture)과 생태건축(Ecological Architecture), 녹색건축(Green Architecture) 및 친환경건축(Environmental Architecture) 등과 같은 환경친화적 건축 개념에 대해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이들의 실현을 위해 그 방향성을 좀 더 새롭게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앞으로 이 논문을 보완할 환경친화적 건축의 방향성 모색을 위한 좀 더 구체적인 도교 건축의 평면 배치 방식과 공간 특징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곧 이어지게 될 후속 연구로 잠시 미뤄두고자 한다.

Footnotes

* 이 논문은 2019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C2A03082865).

1) 예를 들어, 환경부가 1999년 산업쓰레기를 시멘트 원료ㆍ연료로 사용토록 결정함에 따라 이후로 국내 모든 시멘트공장들은 시멘트 제조에 연료비와 원자재 원가를 줄이기 위해 일본에서 수입한 폐타이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시멘트 공장에서는 폐타이어, 폐고무, 폐비닐, 폐유 등 각종 가연성 폐기물을 보조연료라고 부른다. 현재 국내 시멘트는 하수슬러지, 소각재, 분진, 철강쓰레기 등의 비가연성 폐기물과 석회석을 섞어 1450도의 고온에 구워 시멘트를 만든다. 60~70m 길이의 기다란 시멘트 만드는 용광로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돌가루들이 구워지고 있는 소성로 안에 폐타이어와 폐고무 등을 직접 투입하는 것이다. 폐타이어가 뜨겁게 달궈진 돌덩이들과 불이 옮겨 붙고, 타고 남은 폐타이어 중금속 덩어리인 재는 돌가루와 섞여 자연스레 시멘트가 되는데 우리나라 시멘트에 중금속과 유해물질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폐타이어엔 납, 카드늄 등의 제일 유해중금속도 가득 있다는 것이다. 「방사능 나오는 아파트, 이런 비밀 숨겨져 있다」, 《오마이뉴스》, 2014. 8. 29. 기사 내용 참조.

2) 여기서 말하는 ‘장소’는 단순히 추상적인 공간도 아니고, 우리가 그냥 머물러 있는 곳도 아니다. ‘장소’는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존재론적 질문이 응축된 장이자 사회과학 및 생명과학을 비롯한 현대 자연과학의 최첨단의 문제에도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의 ‘장소’는 공동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의 중심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단순히 도시라는 물리적 영역을 넘어서 도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한정된 주제를 넘어서, 예컨대 ‘생명의 장소’나 ‘정치와 경제의 장소’, ‘생태 환경의 장소’와 같이 지금 시대에 좀 더 절실히 요청되는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특히 나카무라 유지로가 생명, 관계, 존재, 형태 등 다양한 주제를 하나로 엮은 ‘장소’ 개념(나카무라 유지로, 『토포스: 장소의 철학』, 서울: 그린비, 2012 참조)과 데이비드 시먼의 주장에 따라 도시가 하나의 ‘장소’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인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발생’하고, 그 발생의 현장이 ‘장소’이다. 장소이론가라고 불리우는 시먼은, 인간은 언제나 장소 내 존재라는 현상론적 주장을 바탕으로, 이동성이 급격히 진전된 오늘날의 시대에는 이 장소현상학이 더 중요해졌다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지리적 이동성, 디지털 테크놀로지, 전 지구적 상호연결의 시대에도, 실제-세계 장소와 장소 체험은 인간의 삶과 안녕에 불가결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먼은 환경 사상가 에드워드 케이시, 제프 말파스, 에드워드 렐프 등의 최신 장소현상학 연구에 의거하여 장소 및 실감되는 장소 잡기가 어떻게 인간 체험의 필수적 일부인지, 인간 존재가 어떻게 언제나 이미 장소 내 인간 존재인지를 고찰한다. 케이시가 공언하듯이, “존재함은 장소 내에 존재함이다.”(데이비드 시먼, 『삶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서울: 앨피, 2020 참조) 이 밖에 인문지리학적 관점에서 도가의 장소 개념을 풀이하고 있는 김덕삼의 글이 참고해 볼 만하다. (김덕삼, 「인문지리학자의 ‘장소’와 ‘경험’에 대한 도가적 접근」, 『대순사상논총』 33, 2019.)

3)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이 거처하는 명산 명소로, ‘십대동천(十大洞天)’ㆍ‘삼십육소동천(三十六小洞天)’과 ‘칠십이복지(七十二福地)’가 있다. 당대(唐代)의 두광정(杜光庭)이 쓴 『동천복지악독명산기(洞天福地嶽瀆名山記)』가 있으며, 그 밖에 『雲笈七籤』 卷二十七에 ‘洞天福地’가 실려있다. 이봉호 외 역, 『도교사전』 (서울: 파라아카데미, 2018), p.966과 胡孚深. 『中華道教大辭典』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5), p.1644 참조.

4) 胡孚深, 앞의 책, p.1641.

5) 『詩經』 「大雅」, “經始靈臺,經之營之.”

6) 중국 섬서성 주지현의 동남쪽에서 15㎞ 떨어진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도교 사원이다. 도교에서는 이곳을 노자가 도를 닦고 연단하던 곳으로 여기고 있으며, 중국 최초의 도관이라고도 한다. 처음 명칭은 초루관(草樓觀)이었으나 주나라 목왕(穆王)이 누관궁(樓觀宮)으로 개명한 뒤 당나라 고조(高祖) 때 종성궁(宗聖宮)으로, 현종(玄宗) 때 종성관(宗聖觀)으로 다시 바뀌었다. 주요 건축물은 설경대(說經臺), 산문(山門), 상선지(上善池), 영관전(靈官殿), 장경각(藏經閣), 연단로(煉丹爐), 앙천지(仰天池), 서진정(栖眞亭) 등이 있다. 胡孚深, 『中華道教大辭典』, p.1644 참조.

7) 卿希泰, 『中國道敎史』 第一卷 (成都: 四川人民出版社, 1992), p.553.

8) 『正統道藏』 洞玄部 戒律類, 『要修科儀戒律鈔』 卷之十, “民家曰靖,師家曰治.”

9) 『正統道藏』 太玄部, 『眞誥』, “所謂靜室者, 一日茅屋, 二曰方溜室, 三日環堵. 制屋之法, 用四柱, 三桁, 二梁, 取同種材.”

10) 石衍豐, 「道教宮觀瑣談」, 『四川文物』 4 (1986), p.6 참조.

11) 胡孚深, 『中華道教大辭典』, p.1644 참조.

12) 『舊唐書』 「玄宗本紀」, “二十九年春正月, 詔命兩京, 諸州各設置玄元皇帝廟並崇尚玄學, 設置學生門徒.” 참조.

13) 『新唐書』 「志第三十八」, “百官三, 天下观一千六百八十七, 道士七百七十六, 女官九百八十八. 『湯六典』 「祠部」凡天下观总一千六百八十七所. 一千一百三十七所道士,五百五十所女道士. 每观观主一人, 上座一人, 监斋一人, 共网统众事.” 참조.

14) 지붕받침(斗拱) 전체의 기본 구조와 앙(昂) 등의 기본 형태는 아래 그림과 같다. 王其钧, 『中國建築圖解詞典』 (機械工業, 2007), 第十章 斗拱 참조.

15) 『洞天福地嶽漬名山記』 序, “大天之內, 有洞天三十六, 別有日月星辰靈仙宮闕, 主禦罪福, 典錄死生. 有高真所居, 仙王所理. 又有海外五嶽, 三島, 十洲, 三十六靖廬, 七十二福地, 二十四化, 四鎮諸山.” 참조.

16) 馮林, 「族群遷徙與道教建築民俗源流」 (武漢大學 博士學位論文, 2010) 참조.

17) 감여는 한대(漢代)에 많이 사용된 풍수의 초기 명칭으로 풍수라는 용어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쓰인 입지 선정 기술에 대한 명칭이다. 감여라는 말은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처음 보이는데 천지의 법칙에 의거해서 길흉을 판단하는 것 등으로 설명하였다. 또 『사기(史記)』에서는 택일과 관련하여 감여가를 들고 있다. 허신(許愼)은 『설문해자』에서 감(堪)은 천도이며, 여(輿)는 지도라고 하였는데, 이 개념 정의에서 알 수 있듯, 하늘과 땅의 이치를 모두 포함하여 입지를 고르려 했던 것이 감여, 감여술이다.

18) 『黃帝宅經』 序, “大矣哉, 陰陽之理也. 經之,陰者, 生化物情之母也. 陽者, 生化物情之父也. 作天地之祖, 爲孕育之尊. 順之則亨, 逆之則否. 何異公忠受爵, 違命變殃者乎.” 『道藏』 第四册, p.979.

19) 『黃帝宅經』 序, “福德之方, 勤依天道. 天德, 月德, 生氣到其位, 即修令清潔闊厚, 即壹家獲安, 榮華富貴.” 『道藏』 第四册, p.979.

20) 張育英, 「道教與建築藝術」 『文物鑒賞』 4 (1997), p.43 참조.

21) 조셉 니이담(Jeseph Needham), 『중국의 과학과 문명』 2권 (서울: 을유문화사, 2011), p.131.

22) 『葬書』, “葬者,乘生氣也. 五氣行乎地中,發而生乎萬物. … 夫陰陽之氣,噫而為風,升而為雲,降而為雨,行乎地中而為生氣. 夫土者,氣之體,有土斯有氣. 氣者,水之母,有氣斯有水. 經日: 土形氣物因以生. 夫氣行乎地中,行也,因地之勢; 其聚也,因勢之止.”

23) 『道德經』 第64章,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24) 釋明概, 『決對傅奕廢佛法僧事並表』, 『廣弘明集』 第十二卷, “張陵謀漢之晨,方興觀舍. … 殺牛祭祀二十四所,置以土壇,戴以草屋,稱二十四治. 治館之興,始乎此也.”

25) 毛麗婭, 「道教與基督教生態思想比較研究」 (四川大學 博士學位論文, 2006), p.232.

26) 『道德經』 第67章, “我有三寶, 持以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天下爲先.”

27) 『道德經』 第12章,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畋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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