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경향잡지는 한말에 첫 발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맥을 이어온 한국의 최장수 잡지이다. ‘경향’이라는 제호는 1911년 1월 15일 자 발행호부터 사용되었는데, 이는 1910년에 폐간된 경향신문을 향후 다시 발행하고자 했던 뮈텔(Mutel, 1854~1933) 주교의 뜻이 반영된 것이었다.1) 경향잡지로 이름이 변경되기 이전에는 ‘보감(寶鑑)’이라는 이름으로 잡지가 간행되었다. 『보감』은 1906년 경향신문의 부록으로 발행되었으나, 경향신문이 폐간됨에 따라 제호가 변경되었다. 한편, 『보감』은 경향잡지의 전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한정된 주제에 관해서만 연구가 이루어진 상태이다.2)
잡지는 근대적 출판 및 인쇄기술의 성과로, 19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출판되기에 이른다. 당시 잡지들은 개화사상과 계몽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특히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애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학교의 설립과 신문사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3) 천주교 역시 이러한 시대적인 영향을 받아 잡지를 창간하였다.4) 그것이 바로 『보감』이다. 『보감』은 참된 지식과 교리적 지식을 전파하여 사람들을 개화시키고, 이를 통해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간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감』은 일제시기 한국 천주교는 일제에 협조적이었다는 기존의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 20세기 천주교 연구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신문과 잡지가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배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5)의 주장처럼, 당시 4,000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보감』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리라 짐작된다.6) 그뿐만 아니라 경향신문과 『보감』은 한국 천주교의 첫 공식 기관지라는 점에서, 천주교가 18세기 조선에 전래된 이후 근대 변동기의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정립해나갔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1907년 53호부터 연재된 ‘우연히 수작’은 문답 형식으로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며 신앙을 변호하는 글이다. 여기에는 천주교인이 개신교인이나 외교인 등 여러 인물들과 문답을 주고받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개신교인과의 대화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외교인과의 대화에서도 개신교를 의식하고 있어, 이를 통해 천주교가 개신교를 상대로 어떻게 신앙적 정체성을 형성했는지 흥미롭게 파악할 수 있다.7)
이와 관련하여 ‘우연히 수작’이 연재된 시기도 함께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연히 수작’은 『보감』이 처음 발행되던 당시에는 연재되지 않았고 1907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했다.8) 1905년 천주교 신자는 64,070명, 개신교 신자는 37,407명이었던 반면, 1907년에는 천주교 신자 63,340명, 개신교 신자는 72,968명으로 교세가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했다.9) 이를 고려할 때, 1907년에 ‘우연히 수작’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을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1908년에 출판된 『예수텬쥬량교변론』10)을 직접 언급하면서 천주교를 변호하는 글이 실렸던 모습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1907년부터 천주교는 개신교를 비중 있는 타자로 의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11) 이때 천주교는 세 가지 근거를 내세우며 신앙의 정통성이 개신교가 아닌 천주교에 있다고 주장한다. 천주교는 개신교와 달리 예수가 만든 종교이고, 그 가르침이 성경을 비롯한 교회 전체에 전해지며, 예수의 권세는 교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보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러한 세 가지 근거를 중심으로 ‘우연히 수작’에 등장하는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의 대화를 분석하여 천주교는 개신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12)
Ⅱ. 『보감(寶鑑)』의 구성
『보감』은 국판 8면의 한글 주간지로 경향신문과 함께 발행되었다. 드망즈(Demange, 1875~1938) 신부13)가 잡지의 발행인이었고, 김원영(1869~1936) 신부가 실무를 담당했다.14) 『보감』은 대내적으로 교리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발간한 잡지였지만, 1905~1910년 당시 애국 계몽 운동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서 개화사상과 민주주의, 서양의 기술 및 지식 전달을 통해 조선인들을 계몽시키고자 했다.15) 이와 같은 『보감』의 창간 목적은 창간호의 논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참 개화를 한 나라는 강하고 참 개화를 하지 못한 나라는 약하니, 그 개화를 이루는 것은 지식이라. 이 지식이 마음의 본 양식이 되니, 사람이 이 지식을 가지면 강한 사람이요, 이 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약한 사람이 된다. … 근래에 대한 본국에도 새로운 지식이 많이 들어왔는데 참 지식과 거짓 지식이 있는 고로 이 신문지에 참 지식을 보이고자 하니, … 원컨대 이 신문 보시는 이들은 거짓 지식을 면하고 마음의 좋은 양식과 같은 참 지식을 받아 마음의 힘이 든든하고 복되이 살므로, 온 나라 개화가 참되어 부강함을 바라노라.16)
‘요긴한 지식이라’로 시작하는 창간호의 논설은 참된 지식의 전달과 개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보감』이 간행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대한제국에 많은 지식들이 유입되는 상황 속에서 참된 지식과 거짓 지식을 구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근저에 있는 것이지만, 천주교와 다른 종교와의 대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논설의 다른 기사에서 타종교에 대한 서술이 등장하며 천주교와 개신교를 참과 거짓으로 대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감』은 근대 문명과 관련된 내용 외에도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이분법적 태도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보감』에는 ‘논설’, ‘법률문답’, ‘대한성교사기’, ‘천주교 회보’, ‘우연히 수작’ 등의 기사들이 연재되었다. 이외 특별기사의 형식으로 성직자들의 부고 소식을 전달하였고, 216~219호에는 ‘압수한 책’이라는 제목으로 1910년 12월에 경무총감부에서 압수한 서적들의 목록이 실려있다. ‘논설’에는 천주교의 교리적 지식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지만, 진화론이나 유물론과 같은 서양의 새로운 이론에 대해 소개하고 이에 대해 평가하는 글도 자주 연재되었다. ‘법률문답’은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거나 법률적 해석이 필요한 내용들을 문답 형식으로 소개해 주는 기사이다. 당시 법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실생활에서 큰 도움을 주었으나, 사회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일제의 간섭이 있기도 하였다.17) ‘대한성교사기’는 샤를르 달레(Charles 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韓國天主敎會史)』를 번역한 것으로, 1910년 9월 206호부터는 ‘조선성교사기’로 연재되었다.18)
‘천주교 회보’와 ‘우연히 수작’은 1907년 53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하였다. ‘천주교 회보’는 천주교의 대내외적 정세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였다. ‘우연히 수작’은 한글로 ‘우연히 슈쟉’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 한자를 병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기사가 두 명의 인물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연히 수작’은 두 인물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주고 받는다(酬酌)는 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외교인과 천주교인, 개신교인과 천주교인, 선비와 천주교인 등 한 명의 천주교인과 다른 여러 인물들과의 대화가 등장하는데, 주로 상대에게 천주교를 전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연히 수작’은 총 165편으로 구성되며 그중 개신교인과의 대화는 총 83편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보감』의 다른 연재기사에서도 개신교를 의식하는 모습이 포착되는데, 이는 천주교가 개신교를 중요한 상대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보감』은 천주교의 공식 기관지로서 신자들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잡지라는 매체가 갖는 특성상 독자들의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감』의 기사에는 작성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일반 신자들이 기사 작성에 참여했는지 알 수 없고, 독자 투고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자와의 소통이 활발한 잡지는 아니었다. 비록 『보감』에 대한 신자들의 직접적인 반응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교회 지도층이 발행을 담당한 출판물이라는 점에서 『보감』에 나타난 천주교의 개신교 이해는 개신교에 대한 당시 천주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보감』의 ‘우연히 수작’을 통해 천주교와 개신교 논쟁에서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예수천교양교변론』에서 제기된 개신교의 비판에 대해 천주교는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Ⅲ. ‘우연히 수작’ 속 정통성 논쟁
‘우연히 수작’에 등장하는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의 대화는 첫 번째 편론과 두 번째 편론으로 나뉜다. 첫 번째 편론은 58편, 두 번째 편론은 25편으로 구성된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대표하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다양한 주제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화의 전반적인 흐름은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를 설명하고 개신교인이 제기하는 비판에 대해 천주교인이 반박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우연히 수작’이 천주교의 관점에서 저술된 것이기 때문에 논쟁에서 이긴 인물은 항상 천주교인이며, 천주교가 참된 종교라고 결론 짓는다. 그리고 그 근거로 신앙의 정통성을 제시한다. 개신교는 ‘루터’라는 인물이 세운 것인 반면, 천주교는 예수가 직접 세운 종교이며 예수의 정통성이 교회와 사도들 및 교황에게 전승된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편론에서는 루터와 성서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며, 두 번째 편론에서는 개신교가 제기한 교황에 대한 비판을 변론한다. 1절과 2절에서는 첫 번째 편론을 중심으로, 3절에서는 두 번째 편론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내세운 정통성의 근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천주교인 박씨과 개신교인 김씨의 첫 번째 대화는 ‘이름만 상관말고’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대화에서 양측은 예수가 세운 참된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지만, 어느 종교가 예수가 세운 종교인가를 두고 대립한다.
당시 개신교는 예수교19)라고 불렸는데, 김씨는 예수교가 이름 그대로 예수를 믿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 이름이 예수교이며 예수가 세운 종교라고 주장한다.20) 그러나 박씨는 이름만으로 진위를 판단할 수 없고 각 교의 도리를 살펴야 한다고 반박한다. 이름이 아니라 누가 세웠는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씨는 예수가 세운 종교는 오직 천주교뿐이라고 답변하며,21) 이어지는 대화에서 왜 천주교만이 예수가 세운 종교이고, 개신교는 그렇지 않은지 설명한다. 그 핵심은 바로 천주교는 예수가 직접 만들었지만, 개신교는 루터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데 있다. 김씨는 천주교가 쇠락하여 이를 쇄신하기 위해 개신교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반박하지만, 박씨는 루터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천주교와 개신교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먼저 박씨는 마태오 복음서22) 28장 20절을 인용하며, 예수가 세상이 끝낼 때까지 교회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근거로 김씨의 주장을 반박한다.23)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교회의 부패나 쇠락을 이유로 새로운 종파가 등장하는 것은 예수의 약속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도리어 박씨는 이름이 중요하다면 개신교는 루터가 세운 종교이기에 개신교가 아니라 루터교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4) 이어서 박씨는 루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루터는 천주교가 싫어서 떠난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제77호부터 제80호까지 네 편에 걸쳐 그의 악한 품행에 대해 설명한다.25) 천주교의 관점에서 루터는 수도자가 되기로 천주와 서원을 맺었으나, 사제가 되어서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천주와의 약속을 배반한 인물이다. 더구나 사람은 신이 세운 종교를 마음대로 고칠 수 없고, 루터처럼 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더더욱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은 불가하다. 박씨는 마태오 복음서 18장 17절을 인용하여 루터는 교회를 등진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말은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겨야 한다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26) 그리고 루터가 오직 믿음(sola fide)을 주창하여 사람들이 쉬운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하였다고 지적한다. 박씨는 마태오 복음서 7장 13절을 인용하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좁고 어려운 길이기 때문에 예수의 가르침을 준수하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종교는 천주교밖에 없다고 주장한다.27)
위의 대화에 나타난 천주교의 개신교 비판 논리는 개신교가 예수가 직접 세운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에 기반한다. 개신교는 루터라는 개인이 만든 반면, 천주교는 예수 자신이 세운 종교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앙의 정통성과 뿌리가 천주교에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천주교의 입장에서, 수도자였던 루터가 천주교회를 이탈하여 세운 개신교는 결코 예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천주교는 예수의 고난을 몸소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는 반면, 개신교는 신앙의 내적 확신만을 강조한다고 대비시키며, 천주교가 개신교에 비해 신앙의 실천이나 정통성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인식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위 기사들에 나타난 천주교의 개신교 비판은 시대적 맥락이나 신학적 논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루터에 대한 평가는 그가 종교개혁을 추진한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서원을 저버린 수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게다가 독자들에게 루터의 부정적인 면모만을 드러내어 루터가 만든 개신교가 참된 종교가 아님을 보이고자 했으며, 개신교의 구원관 및 신앙생활에 대한 평가에서도 천주교의 일방적인 비판이 드러난다.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천주교에 비해 개신교가 쉬운 신앙생활을 실천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개신교도들 역시 부흥회, 새벽 기도회 등 다양한 실천을 통해 종교적 헌신을 지속해 왔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비판은 단편적인 인식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루터 생전에 면죄부를 판매하던 가톨릭 교회의 관행을 고려한다면, 개신교가 천주교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택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루터와 개신교에 대한 천주교의 편향된 이해는 천주교가 당시 개신교와의 대립 구도 속에서 일정 부분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라는 인물에 대한 천주교의 비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절과 3절에서 살펴볼 성서와 교황에 대한 논의는 개신교의 비판에 대해 천주교가 대응한 것이었지만, 루터에 대한 비판은 천주교가 개신교에 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1907년에 발행된 천주교의 개신교 비판서인 『예수진교사패』에 루터를 비판하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진교사패』의 개신교관을 다룬 신광철은, 『예수진교사패』가 개신교를 루터가 세운 역사적 정통성이 결여된 종교로 간주하며, 교회의 네 가지 표지인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갖추지 못한 거짓 종교로 규정하였다고 분석하였다.28) 특히 ‘우연히 수작’에서는 개신교의 비판에 대응하는 작업과 함께 루터 개인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는 전략이 전개된다. 이는 루터와 그의 종교개혁이 천주교의 정체성과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루터의 품행과 출신, 특히 수도자였다는 점을 부각시켜 그를 교회로부터 이탈한 배신자로 규정한다. 그 결과 루터가 주도한 종교개혁과 그로 인해 세워진 개신교가 신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견해가 도출된다. 이와 같은 비판 전략은 루터의 개혁을 정당한 신학적 시도로 인정할 경우 천주교가 루터 당시 교회의 부패와 과오를 직접적으로 승인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전개 배경보다는 루터 개인의 일탈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어 개신교 비판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천주교의 정통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앞서 천주교가 예수가 만든 참된 종교이지만, 개신교는 루터라는 사람이 만든 종교에 불과하다는 천주교의 개신교 이해를 살펴보았다. 이처럼 천주교와 개신교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각 종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박씨는 개신교가 성경만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성경이 아닌 천주교회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29) 이러한 박씨의 주장은 천주교만이 예수가 세운 참된 종교라는 주장과 연결되는데, 천주교의 사제들이 열두 사도의 계승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제95~98호, 제114~115호, 제120호, 제128~129호, 제131~138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95호에서 개신교인 김씨는 천주교 신자들이 신약성서를 잘 알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성서를 우선시하며 이에 대한 신자들의 접근을 중요시여기는 개신교의 입장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김씨는 각 교인이 성신의 비추심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성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30)
이에 대해 천주교인 박씨는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도 하느님의 말씀이 있다고 지적하며, 천주의 가르침은 성서만이 아니라 천주교회를 통해서도 전승된다고 반박한다. 특히, 성신이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예수교파가 존재하는 것을 근거로 성신을 통한 개신교의 올바른 성경 해석을 문제 삼으며,31) 제114호에서는 천주교 역시 성신을 믿지만 성경을 통해 각 사람이 성신의 비추심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음을 논증한다. 그리고 제115호에서 천주교는 성경도 중시하지만 천주교회 자체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개진하는데, 비유적인 방법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제115호에서 박씨는 재판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성경과 천주교회를 법률책과 재판관에 비유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법률책만 있고 재판관이 없을 경우 각자가 법률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재판관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32) 성경만 있으면 된다는 개신교의 주장을 이에 빗대어 비판한 것이다. 제120호 대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교황은 베드로의 전승을 받은 인물로서 결국 천주교회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신교가 성경만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천주교는 사도로부터 계승된 교회의 전통을 더욱 중요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제129호의 말라키서 7장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천주교 사제는 주님의 사자(使者)로서 그를 통해 천주의 가르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33)
제115호에서 사용된 비유를 통한 설득은 ‘우연히 수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비유적인 방식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데에는 논리적 정합성 측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대상 간의 단순한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 비유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함축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비유 자체의 타당성 또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증방식은 개신교 측에서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상적인 수준의 비유가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한편, 제131호부터 제137호는 ‘먼저 바쁜 일을 하지’라는 제목의 연속 기사들로 구성된다. 이 기사의 요지는 개신교가 성경만 중시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성경이 가장 요긴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신교를 비판하는 근거로 아직 성경을 다 번역하지 못한 개신교의 상황을 지적한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예수 승천 후에 만들어진 것인데, 신약을 보지 못한 사람들과 현재 문맹이라 성경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물론 성경을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지만, 요한의 둘째 서간 12절을 근거로 예수의 사도가 사람들과 대면하여 가르침을 전했기 때문에 성경에만 모든 도리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34) 박씨는 개신교가 성경만 고집하는 것은 루터가 개신교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낸 명분35)일 뿐이며, 천주교에서는 천주의 권을 받은 사제의 가르침을 익혀서 성사를 받고 천주의 자녀가 되는 것이 가장 요긴한 일36)이라고 설명한다.
위의 기사들을 통해 천주교는 개신교가 ‘오직 성경’만을 강조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성경도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성경에만 천주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회 내부의 전통을 통해서도 가르침이 전승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주교는 성경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개신교의 오직 성경에 대한 비판이 『신교지기원』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우연히 수작’에서도 드망즈 주교의 비판의식이 동일하게 전개됨을 알 수 있다.37) 한편, 제95호에서 김씨는 천주교가 신약을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 기사 전반에서 박씨는 신약성서를 비롯한 여러 성경 구절들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한다. 이는 천주교가 신약성서는 읽지 않는다는 개신교의 비판을 의식하고 이를 반박하고자 의도적으로 신약성서의 구절을 내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의 첫째 편론에서는 개신교의 주요 신학적 입장을 비판하면서 참된 신앙의 정통성이 천주교에 있다는 입장이 드러난다. 이러한 변론은 루터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면서 천주교는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는 개신교 측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천주교가 개신교에 대해 단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방식이 논리적인 타당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천주의 가르침이 성경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며, 이에 대한 이해가 개신교와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특히 예수의 가르침은 열두 사도들과 그들을 전승한 사제들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신앙의 정통성이 사제들에게 전승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천주교가 주창하는 신앙의 정통성과 개신교 비판은 둘째 편론에서 개신교의 천주교 비판서인 『예수천주양교변론』에 대한 반박과 교황에 대한 변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개신교의 목사는 천주교의 사제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개신교는 교황에 대한 비판을 『예수천주양교변론』에 제기한 바 있다. 이어지는 둘째 편론에는 개신교의 천주교 비판서인 『예수천주양교변론』에 대한 반박과 교황에 대한 변론으로 이어진다.
천주교와 개신교에는 각각 사제와 목사라는 성직자가 있지만 다른 성격을 가진다. 특히 천주교에는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이라는 직위가 있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황제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비판하였다. 둘째 편론은 특히 『예수천주양교변론』을 자주 언급하며 개신교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먼저 『예수천주양교변론』과 교황에 대한 비판을 간략히 살펴보고 천주교의 대응을 분석하고자 한다.
『예수천주양교변론』은 1908년 정동교회에서 발행한 천주교 비판서로, 감리교 목사 최병헌(崔炳憲, 1858~1927)이 역술했다. 최병헌은 서문에서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에 관해 서술한다.
종교의 진리는 천상천하에 하나요, 고왕금래에 둘이 없는 것이라. … 천주교에서 예수교를 지목하되 열교인이라 하니 참 애석한 일이라 … 우리가 다 같이 한 주를 믿는 형제가 되야지 어찌 서로 미워하리오. … 이제 양교 변론을 번역함은 누구를 미워함도 아니오, 지식을 자랑함도 아니라, 다만 처음으로 교회에 들어오고자 하나 양교의 관계됨을 몰라 주저하는 자를 위하여 의심을 파혹케 하노라.38)
최병헌은 서문에서 입교하는 사람들에게 개신교와 천주교의 관계를 일깨워 주기 위해 본서를 번역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가 각립하게 된 상황을 설명하고 둘 중 어느 교에 들어가는 것이 옳은지 알리기 위해 간행된 것이었다. 『예수천주양교변론』은 최병헌이 직접 저술한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을 받았음이 확인된다. 본서의 천주교관이 그가 후에 저술한 『만종일련(萬宗一臠)』에도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39)
『예수천주양교변론』은 10가지 주제에 대한 변론인 ‘목록十론’과, 천주교가 바꾼 교리들을 논증하는 ‘천주교변경론’, ‘서론’, ‘범례’ 등으로 구성된다. 이때 『예수천주양교변론』에서 성서중심주의적인 입장에서 천주교를 비판하는 모습이 확인된다.40) ‘목록十론’의 첫 번째 논의가 바로 성경에 대한 것으로, 개신교가 천주교와 다른 점이 바로 천주교는 성경을 금하는 반면 개신교는 성경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또한 이어지는 논증에서도 먼저 성경구절들을 근거로 제시한 다음에 개신교와 천주교의 차이를 강조하는 구조가 발견된다.
『예수천주양교변론』은 성경 외에도 우상, 혼인과 식물, 교황, 기도, 유전, 성찬, 세례, 사죄, 속죄 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그중에서도 교황을 변론하는 데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황에 대한 논의가 사죄나 속죄 등의 다른 주제들과도 연결되고 있으며, 언더우드(H. G. Underwood, 1859~1916)와 엥겔(Gelson Engel, 1868~1939), 번하이슬(G. F. Bernheisel, 1874~1958) 등을 비롯한 개신교 선교사들도 교황제도의 정당성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41) 즉, 교황에 대한 비판은 천주교에 대한 개신교의 주된 비판의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연히 수작’에서도 이러한 개신교의 비판을 의식하여 교황의 정통성을 변증하려는 노력이 발견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천주교는 교황으로 이어지는 사도계승을 강조하여 개신교와의 차별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교황을 비판하는 개신교의 변론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장에서는 교황에 대한 변론을 중심으로 개신교가 천주교를 어떻게 비판했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교황에 대한 변론은 ‘목록十론’의 네 번째 순서인 ‘四. 교황을 변론함’에 등장한다.42) 총 11면에 걸쳐 서술하고 있는데, 『예수천주양교변론』이 총 58면인 것을 고려했을 때,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변론을 전개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먼저 여러 성경 구절들을 인용한 후에 개신교와 천주교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인용하는 성경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이자 교회의 머리이며 유일한 스승이라는 것이다.43) 그러나 이러한 성경 말씀과 달리 천주교는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가 되며 마태복음 16장 19절44)을 근거로 베드로가 권세를 받아 대대로 전하여 그 권세를 받은 사람을 교황으로 세웠다고 주장한다.
『예수천주양교변론』에서 천주교가 성경을 잘못 해석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뿐인데 교황이 설립되어 교회의 머리가 많아졌다는 것이며, 둘째는 예수가 베드로에게만 권세를 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도에게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교황제도는 처음부터 지속된 것이 아니라 예수 강생 1216년에 설립된 것이고, 교황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기 때문에 교황은 진리에 위배된다. 후자에 대해서 여러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며 베드로만 권세를 받은 것이 아님을 논증하는데,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모른다고 했던 사실과 사도 바오로가 그를 면책했던 일을 근거로 베드로 홀로 그 권세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저자는 본인이 예전에 한 신부와 대화를 나눴던 일례를 소개한다. 신부에게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와 권세를 주었다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물었으나, 신부는 분명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이는 교회에서 해석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저자는 신부의 대답에 대해, 이는 천주교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교황을 세우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교황을 변론함’ 마지막 부분에서는 천주교 사제들이 천주의 권능을 얻은 것을 내세워 교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성경 읽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지적하며, 모든 교인이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천주교변경론’에서도 교황에 대한 변론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천주교가 변경한 11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마지막 장에서 교황 무류설에 대해 논의한다. 11장은 ‘교황은 조금도 그릇됨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데, 교황이 무류하다는 주장은 예수 강생 1870년에 옛날 규례를 고친 것이라고 지적한다. 교황이 하는 일에는 조금의 그릇됨이 없기 때문에 교황이 결정한 대로 준행해야 하며, 이에 대항하면 불신자로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야고보가 사도들도 허물이 많다고 말한 것을 근거로, 이는 성경의 뜻과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당시 예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조차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예수가 승천한 지금의 상황에서 교황이 무류하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45)
『예수천주양교변론』은 교황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과 베드로만 예수의 권세를 받았다는 천주교 측의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는 베드로 수위권설에 대한 반박하는 것으로, 교황제도의 역사적 모순과 함께 다른 사도들보다 베드로가 더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주장을 변론한다.46)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천주교 사제들의 오만하고 교인을 속박하는 태도와, 엄격한 교회법으로 인해 천주교인은 각자 성경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19세기에 개정된 교황의 무류성에 대해서도 과거의 사도들보다 현재의 교황이 더 뛰어날 수는 없으므로, 이 역시 성경과 위배되는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개신교가 『예수천주양교변론』를 통해 천주교의 교황에 대해 비판하는 조목들을 살펴보았다. 『보감』에서는 개신교의 비판을 낱낱이 반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천주양교변론』에 대한 언급은 『보감』 제117호 ‘우연히 수작’의 ‘천주교인과 예수교인의 첫 번째 편론’47)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며, 교황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은 ‘천주교인과 예수교인의 둘째 편론’에서 확인된다.
‘천주교인과 예수교인의 둘째 편론’은 천주교인 박씨와 개신교48)인 남씨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총 25편으로 구성된다.49) 제181호는 ‘왜 서로 도와주지 아니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를 통해 개신교에 대한 천주교의 완강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최병헌의 서문에서 그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형제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제181호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형제라는 표현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신이 세운 교인 천주교와 사람이 세운 교인 개신교는 결코 형제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한편, 교황과 관련된 기사는 제209호부터 제219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209호에서는 개신교인 남씨가 근래 자유교50)가 새로 생긴 것에 대해 염려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천주교인 박씨는 개신교인들은 각 사람이 성신의 비추심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교인이 따로 교회를 설립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만약 이렇게 분파가 나뉘는 것을 비판한다면 이는 개신교의 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주교인의 답변에는 개신교 교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씨는 천주교의 경우 개신교와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천주교인은 예수가 교황을 대리자로 세웠으며, 그 권세가 주교와 신부에게 이어진다는 점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부정하고 교회를 이탈하는 경우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본다.51) 이를 통해 천주교는 교황이 예수의 권위를 이어받은 존재로 간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어지는 권호에서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중심으로 개신교의 주장을 반박한다.
제210호부터 제215호에 걸쳐 천주교는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데, 제210호에서 『예수천주양교변론』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박씨: 당신 말씀은 천주교회에 있는 교황의 권세가 오주 예수의 세우신 것이 아니라 하시지요?
남씨: 우리 목사들도 그렇게 말하고 또 ‘예수천주교변론’이란 책에도 그렇게 말하였지요.
박씨: 그 말을 나도 여러 번 들었지요. 그러나 그 까닭은 예수교라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오주 예수가 세우신 교의 으뜸은 다만 오주 예수이시니, 오주 예수의 대신으로 사람이 그 교의 으뜸이 될 수 없다하지요.52)
(밑줄은 필자의 강조)
개신교인 남씨는 목사들의 주장과 『예수천주양교변론』을 근거로, 교황은 예수가 자신을 대신해서 세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어지는 천주교인 박씨의 대답을 통해 천주교 또한 이러한 개신교의 비판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씨는 임금과 임금을 대신하는 관리를 각각 예수와 교황에 대응시킨다. 임금이 잠시 나라를 떠나는 경우 관리에게 그 역할을 대신하도록 직을 맡기는 것처럼, 예수가 지상에서 승천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교황이 대신한다는 것이다.만약 예수가 으뜸임을 믿지 않는다면 잘못된 일이겠지만 천주교는 예수가 으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교황은 예수의 명령으로 그를 대신하여 성교인들을 다스리는 직을 맡은 인물임을 믿는다는 것이다. 제211호에서는 천주교는 개신교와 달리 교황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로 결집될 수 있는 반면, 교황이 없는 개신교는 수백 개의 교회로 분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53) 이를 통해 천주교는 개신교와 달리 교황제도를 통해 교회의 일치를 실현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한편,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제212호부터 제215호에 걸쳐 전개된다. 이때 천주교인은 베드로의 수위권을 근거로 그것이 교황에게 전해진 것이라 주장한다. 제212호에서 예수가 시몬의 이름을 ‘반석’이라는 의미를 담은 베드로로 바꾼 것54)과, 예수가 그 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것55)을 근거로, 베드로는 천주교의 기초라는 것이다. 교황은 베드로의 뒤를 잇기 때문에 그 또한 교회의 기초가 되지만, 개신교는 그 반석을 버리고 세운 것이기 때문에 예수의 교회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56) 이를 바탕으로 제213호와 제214호에서는 마태오 복음을 근거로 예수가 베드로에게만 홀로 특별한 권세를 주었다고 설명한다.57) 이 구절은 『예수천주양교변론』에서 천주교가 잘못 해석한 성경 말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천주교인은 예수가 이 말씀을 하실 때 다른 제자들도 있었으나 베드로에게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는 점에서 예수의 권세는 베드로만 받은 것이고, 따라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분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58) 예수의 권세는 ‘천국열쇠(하늘 나라의 열쇠)’로 표현되며, 옛 풍속에서 열쇠를 넘겨주는 행위에는 권세를 이양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이는 예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베드로를 교회의 수장으로 세워 예수 대신으로 교회를 다스리게 했다는 것이다.59) 마지막으로 제215호에서는 예수가 베드로만을 목자로 세웠음을 다시 강조하면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세 번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은 것에 대해 설명한다. 앞서 『예수천주양교변론』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이나 저버린 행동을 비판하며 베드로만이 예수의 권세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감』에서는 이에 대해 예수가 베드로로 하여금 그가 자신에게 더 의지하도록 베드로의 죄를 허락한 것이며, 그의 용맹함을 일으키기 위해 세 번 물은 것이라고 해명한다.60) 천주교는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정당성을 베드로에게서 찾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베드로가 홀로 예수의 권세를 받은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예수천주양교변론』의 ‘천주교변경론’에서 개신교가 교황의 무류성에 대해 비판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보감』에서 천주교는 교황의 무류성을 인정하지만, 여기에는 분별이 있다고 덧붙인다. 먼저 제216호 ‘교황은 죄를 범치 못하시나’에서 남씨는 교황도 사람인데 어떻게 죄를 저지르는 일이 없을 수 있냐고 질문한다. 이에 대해 박씨는 교황도 사람이므로 죄를 범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른 교황도 있다고 답변한다. 그러나 교황의 무류성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며, 다음의 기사에서 그 논의를 이어간다.61) 교황이 모든 일에 무류한 것은 아니지만, 신덕과 관련된 사항에 있어서는 그르침이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예수와 교황을 선주와 선장에 비유하여 배가 파선되는 상황에 적용하여 설명한다. 만약 기상악화로 인해 배가 파선될 위험에 놓인다면, 전능한 예수는 이를 미리 다 알아 선장으로 하여금 배가 파선되는 일을 막는다.62) 즉, 천주교는 예수가 직접 세운 교이며 교황이 예수의 권을 받아 교회를 이끌고 있는데 어찌 그 교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제218호에서 이에 대한 근거로 베드로가 사탄에게 흔들리지 않도록 예수가 기구한 것63)을 제시하며, 베드로는 신덕을 그르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64) 따라서 그의 계승자인 교황 또한 신앙을 영위하는 데 있어 오류가 있을 수 없다.
『보감』의 마지막 권호인 제219호에서는 베드로의 특별한 위치를 드러내는 여러 성경 구절들을 이야기하면서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놓여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교황은 예수의 권을 받은 베드로를 계승했기 때문에 그 역시 예수가 세운 것이라고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한다.65) 앞선 절에서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근거를 베드로에게서 찾았던 것과 같이, 교황의 무류성에 대한 근거 또한 베드로에게서 찾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천주교는 ‘예수-베드로-교황’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계승을 통해 교황제도의 정통성을 입증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천주교는 교황에 대한 개신교의 비판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으며, 개신교에서 중시하는 성경을 근거로 개신교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변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수와 교황의 관계를 선주와 선장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교황이라는 지위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하였고 천주교만이 예수가 세운 종교라는 주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는 앞서 지적하였듯이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추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교황제도에 대한 비판에 대해 모든 교황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무리한 주장을 펴지 않고, 교황의 무류성이 인정되는 특정한 경우를 제시함으로써 비판에 대응하였다.
Ⅳ. 나가며
본고는 ‘우연히 수작’의 ‘천주교인과 예수교인의 첫 번째 편론과 두 번째 편론’을 중심으로, 한말 천주교와 개신교의 논쟁 양상을 검토하였다. 『보감』이 천주교 잡지라는 점에서 두 교인의 대화는 천주교인이 개신교인을 설득하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주요한 쟁점은 신앙의 정통성에 관한 것이었다.
천주교인은 세 가지 근거를 통해 천주교가 참된 종교임을 강조한다. 첫째, 개신교는 예수가 아닌 루터라는 사람이 만들었으나, 천주교는 예수가 직접 세운 역사적 정통성을 갖는다. 둘째, 성경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만이 예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아니며, 사도들과 교회 자체에도 가르침이 전승된다. 셋째,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권세를 받은 교회의 반석이 되는 인물로, 교황이 베드로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주교가 신앙의 정통성을 갖는 참된 종교이다. 이 과정에서 『예수천주양교변론』을 거론하며 개신교의 비판을 반박하기도 한다. 이는 천주교와 개신교 간의 문서논쟁이 『보감』에서도 이어지고 있던 상황을 보여준다. 성서와 교황에 대한 변론의 경우 개신교의 비판에 대응한 것이었지만, 루터에 대한 비판은 천주교 측에서 제기한 논점이었다. 이는 인물에 대한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천주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기능하였다.
한편, 두 교인이 나눈 대화를 검토해 보면 이러한 논박이 신학적 차원보다는 대중적 설득을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보감』의 주요 독자가 일반 천주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신학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개신교의 주장을 논박하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비유적인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천주교는 개신교에 대해 편향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서로를 적대적인 관계로 인식했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보감』이라는 사료를 중심으로 한말 천주교와 개신교의 논쟁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보감』에서 나타난 신앙의 정통성 담론과 루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천주교의 개신교 인식과 대응 논리를 확인하였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보감』 자체에 대한 선행 연구의 공백을 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다만, ‘우연히 수작’의 기사만을 중심으로 분석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번역된 『예수진교사패』에 대한 분석은 시도하지 못하였다. 향후 연구에서는 보다 다양한 사료를 분석하여 한말 천주교와 개신교의 논쟁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