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대순사상에서 쓰이는 용어에 관한 다양한 연구는 대순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선행 작업이다. 특히 동양사상의 핵심 범주라고 볼 수 있는 유·불·도1)에서 사용되어온 개념들이 대순사상의 고유한 개념과 사상적인 접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대순사상에서는 유·불·도의 사상을 종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비슷한 용어를 사용했을지라도 그 용어가 지닌 대순사상만의 미묘한 의미의 차이들을 가려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2) 그러나 고유한 의미로 쓰이는 용어의 중요성과는 다르게 용어의 의미나 경계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그것을 체계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순사상에서 쓰이고 있는 ‘삼계’라는 용어도 이러한 경우다.
대순사상에서 ‘삼계’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는 상제의 권능을 묘사하면서 등장 한다.3) 또한, 상제에 의해 시행된 ‘천지공사(天地公事)’의 종교적 작업을 ‘삼계공사(三界公事)’라고도 표현하는 것에서 ‘삼계’를 볼 수 있다.4) 여기서 ‘삼계’는 구체적으로 천(天)·지(地)·인(人) ‘삼계’를 말한다.5) 대순사상에서 ‘삼계’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모든 존재를 ‘삼계’라는 표현으로 특징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삼계’를 세계관의 문법으로 이해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종교사상에서 세계관의 연구는 다양하게 다뤄질 수 있다. 우주의 발생론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종교사상을 하나의 커다란 세계관으로 인식하고 그 안에 모든 제 요소의 범주를 분석하는 시도로 성립될 수 있다.6) 혹은 종교를 이해할 때 생각할 수 있는 인간, 세계, 신이라는 세 가지 특수한 요소 중에 하나를 대상으로 하는 관점일 수도 있다.7) 본 논문에서는 종교사상의 중요 주제인 인간과 천지와 신이라는 대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대순사상의 ‘삼계’ 세계관을 기존의 유·불·도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전경』이나 그밖에 문헌상에서 ‘삼계’에 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고, 천·지·인의 ‘삼계’로 규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교적 관점에서 사용되어온 천·지·인 삼재(三才)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삼계’를 삼재와 큰 구분 없이 사용하거나, 삼재라는 속성에 맞춰서 ‘삼계’를 이해하는 서술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8) 하지만, ‘삼계’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해할 때 삼재와 ‘삼계’는 동일하게 볼 수 없다. 더욱이 기존 불교와 도교의 세계관으로 나타나고 있는 삼계의 개념과도 차이가 드러난다. 대순사상에서는 인간과 천지, 그리고 신이 존재하고 관계 맺는 고유한 방식 속에서 ‘삼계’의 세계관이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불·도 삼교와 비교해서 ‘삼계’ 세계관의 특징을 규명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본 논문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선행연구로는 「개화기 강증산(姜甑山)사상에 나타난 천지인(天地人) 삼계의 상관원리 : 음양(陰陽) 및 신도(神道)와 관련하여」의 논문이 있다. 논문에서는 대순사상의 ‘삼계’를 천지와 신인의 상관성에 주목해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다만 ‘삼계’와 신명계가 음양의 원리하에 있다는 것을 위주로 서술하였고, 신도(神道)의 원리와 상관성을 다소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논증하려는 내용이나 ‘삼계’를 보는 관점에서는 차이가 드러난다.9)
다른 선행연구로는 「대순 신앙의 천계(天界) 관념: 무극도를 중심으로」이 있다. 논문에서는 대순사상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무극도(无極道)의 사료들을 통해 대순사상에서 대표적으로 제시되는 천계 관념을 논증하였다. 본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상제가 존재하는 ‘구천’을 ‘삼계’와 구분되는 천외천으로 설정하고 있는 내용이다.10) 이는 기존의 연구에서 ‘구천’을 ‘삼계’ 안의 천계로 보는 것과는 대조적인 입장이다.11) 본 논문에서는 ‘삼계’와 구분되는 천외천의 상정이 대순사상에서 천·지·인의 세계와 신·인의 세계라는 두 범주를 통합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논의를 전개하였다.12) ‘삼계’ 세계관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은 대순사상의 전체적인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삼계’의 삼교 세계관적 배경
불교에서 삼계라는 용어가 하나의 세계관으로 설명된 것은 분명하다.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를 삼계로 칭하고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세 가지 차원을 구분하고 있는 불교의 관점이 존재한다. 삼계의 세계에서 욕계는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어리석게 살아가는 중생들로 구성된 세계이다. 색계는 욕심은 버렸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이 남아 있는 세계이다. 무색계는 탐욕과 거부감이 모두 사라졌지만, 아직 ‘나[我]’라는 집착이 남아 있는 세계이다.13)
초기 불교에서 삼계 혹은 세 곳의 생명계라는 의미가 등장한 경전은 팔리어로 전승된 경전 체계인 삼장(三藏) 중에서 경장(經藏)의 소부(小部)에 포함되어 있는 『테라가타(Théragāthā, 長老偈)』이다.14) 하지만, 이러한 내용에는 아직 구체적으로 삼계가 욕계, 색계, 무색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베다에서 말하는 3개의 생존영역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초기 불교에 등장하는 삼계를 힌두교에서부터 기원한 삼계의 의미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리그베다』에는 지상계(地上界), 공중계(空中界), 천상계(天上界)를 지배하는 제신들로 구분하면서 삼계의 세계관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신들이 존재하는 영역으로서 지계, 공계, 천계의 삼계가 신들의 위계질서를 나타나는 영역으로는 보지 않는다.15) 『리그베다』에는 삼계 각각의 세계에 존재하는 신들을 구체적으로 명시되기도 하는데, 하나의 신이 둘 이상의 영역에 존재하기도 한다.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구분의 삼계적 사고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경전은 『디가니까야』 제9경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자아가 설해졌다. 그것은 거친 자아,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물질이 아닌 자아이다.16) 이른바 삼종자아(三種自我)설은 모든 세계를 마음으로부터 근거하고 있는 불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사고인데 이것이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의 관점과 연결되고 있다.17) 불교에서 말하는 삼계설이 근본적으로 자아, 혹은 마음으로부터 구분된 세계라는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불교에서 드러나는 삼계유심(三界唯心)의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삼계를 마음의 작용으로 보는 초기 경전의 설법은 대승불교에서 삼계유심의 철학적 관점으로 발전하게 된다.18)
이러한 불교에서 삼계의 세계관은 그것 자체로서 불교적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부파불교 시대부터 이어진 인간의 마음과 마음작용을 삼계라는 틀로 분석하였던 논리는 결국 삼계의 세계관이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불교적 세계관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19) 물론 초기불교에서 삼계의 세계관이 실재적으로 묘사되면서 중생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세계의 모습을 그리고도 있지만, 각각의 세계가 깨달음의 경지를 바탕으로 나뉘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실재적인 외부 세계 또한 내부의 마음에 있는 현상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20)
한편, 삼계의 세계관은 본질적인 마음의 문제로 이해하는 관점과 더불어 윤회와 제신들의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도 설명되었다. 불교에서도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신이 아닌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로서 다수의 신들에 대해 인정하는 서술이 존재한다. 다만, 불교에서 신들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윤회를 반복하는 존재로서 수행을 통해 해탈을 추구해야 하는 중생의 한 유형으로 설정하고 있다.21) 삼계를 그러한 신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구분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삼계가 윤회하며 해탈을 추구하는 신들이 존재하는 세계라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깨달음의 단계로 설정된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 구조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불교에서 삼계의 구분은 인간세계를 중생이 윤회하며 왕래하는 세 가지 세계이면서 깨달음의 단계를 나눈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선종(禪宗)이 발달하였던 우리나라와 중국불교에서 삼계를 선정(禪定)이라는 정신적 체험의 세계로 해석하여 해탈을 위해 거쳐야 할 영역으로 생각하였다. 삼계를 깨달음의 3가지 차원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면, 삼계를 통해서도 역시 마음의 문제를 중심에 놓는 불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22)
조선시대 문헌들 속에는 이러한 삼계의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이 편찬한 역사서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고려(高麗)의 태조(太祖)가 남당(南唐)의 열조(烈祖)에게 올리는 전문(箋文)인 『남당서(南唐書)』에 기록되어 있는 “삼가 생각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도(道)는 삼무(三無)23)에 부합되고 은혜는 구유(九有)에 스며들었습니다.”24)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구유는 삼계구지(三界九地), 즉 욕계(欲界)를 1지(地)로, 색계(色界)를 4지로, 무색계(無色界)를 4지로 나누어 총 9개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다. 또한, 성종의 명으로 1478년 편찬된 시문 선집 『동문선집(東文選集)』에는 “구름 가에 탑이 솟아 기러기 나는 하늘에 걸렸네, 종소리는 멀리 삼계의 꿈 깨우고”25)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시문에서 세상의 풍경을 삼계로 그려내면서 불교적 세계관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삼계대초(三界大醮)라는 삼계의 신에게 거행하는 초례를 시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26)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이 의례는 세종 이후에는 거행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세종까지만 해도 불교에 관용적이어서 경복궁 내 문소전(文昭殿) 옆에 불당을 짓기까지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영의정과 좌의정 등이 모여서 내불당 철거에 관해 의논했던 기록이 보이는데, 그 기록에는 삼계의 개념이 불가의 설이라는 인식이 명확히 드러난다.27)
남북조 시대의 대표적인 도교 사상가 도홍경(陶弘景, 456~536)이 편찬한 『진고(眞誥)』에는 도교의 삼계설과 관련된 세계관이 묘사되고 있다. 다음 내용을 보자.
대저 천지간(天地間)의 사물의 도리는 가슴으로는 추측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아울러 전 세계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는 신선의 세계이며, 가운데는 인간의 세계이며, 아래는 귀신의 세계이다. 사람 가운데 선(善)한 사람은 신선이 될 수 있으며 신선 가운데 죄를 범한 존재는 다시 인간이 된다. 사람 가운데 악한 사람은 귀신이 되고 귀신 중에 복(福)이 있는 존재는 다시 인간이 된다.28)
『진고』는 도교 신선 전승을 다루는 문헌 중 하나이다. 위 인용구절에는 전 세계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 내용이 보인다. 구체적으로 가장 위층부는 신선이, 가운데 층에는 인간이, 하층부에는 귀신이 존재한다. 선하냐 악하냐의 기준에 따라 각층의 존재는 상위로도, 하위로도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상·중·하층은 위계적 질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9)
삼계의 세계관을 상정할 때 천·지·인의 삼계를 지칭하고 있는 문헌상의 기록도 있다. “지극한 도는 최고이며, 지극한 도는 무한하며, 최고는 대적할 자가 없다. 삼계(三界)의 스승이자, 천지인(天地人) 삼계의 종사(宗師)이다.”30) “천추도사과(天樞都司科) 법률에 따라 관직에 임명되는 자격은 효제(孝悌), 충절(忠節), 수행(修行), 행지(行持), 음덕(陰德), 양덕(陽德)을 갖추어야 하며, 천지인 삼계(天地人三界)에서 큰 공로를 세운 자는 출신에 따라 문무 자격으로 임명된다.”31)와 같은 내용에서 천·지·인 삼계는 세계를 총칭하는 표현으로 드러나고 있다. 앞서 인용문에서 신선의 세계, 인간의 세계, 귀신의 세계를 구분하는 삼계구분 방식을 보았다. 이에 천·지·인 삼계를 적용해 보면, 천·지·인의 삼계는 신선이 사는 천상계와 인간이 있는 인간계, 그리고 귀신과 같은 사자들이 머무는 지하세계를 공간적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32)
한편으로 도교에서 삼계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천계에 관한 내용이다. 도교의 천계 관념에는 삼계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도교에 등장하는 몇 가지 천계설이 있다. 주로 5세기 이전을 주도하던 천계설로는 삼천(三天), 구천(九天)과 삼십이천(三十二天)설이 있는데, 남북조 시대, 수, 당대에 걸쳐서 체계화된 도교교리 속에서 만들어진 천계설은 삼십육천(三十六天)설이 있다.33) 여기서 특히 삼십육천설에는 삼계를 포괄하는 관점이 드러난다.
삼십육천으로 천계를 구분하는 세계관에서는 신선이 거처하는 천계에는 삼십육 개의 하늘이 있고, 각각의 하늘마다 득도한 천신(天神)이 다스린다고 한다. 북제(北齊)의 위수(魏收, 506~572)가 지은 역사서 『위서(魏書)』 「석노지(釋老志)」에는 이러한 내용이 처음 보인다. “두 기(二儀: 하늘과 땅) 사이에는 서른여섯 개의 하늘이 있으며, 그 안에는 서른여섯 개의 궁(宮)이 있고, 각 궁에는 한 명의 주관자가 있다. 가장 높은 자는 무극지존(無極至尊)이며, 그다음은 대지진존(大至真尊)이고, 그다음은 천복지재음양진존(天復地載陰陽真尊)이다. 그다음은 홍정진존(洪正真尊)인데, 홍조(洪趙)라는 이름의 도사(道士)로, 은(殷)나라 시대에 도(道)를 얻어 ‘목토지사(牧土之師: 땅을 다스리는 스승)’가 되었다.”34)
그리고 후세의 도교는 삼십육천을 욕계 육천, 색계 십팔천, 무색계 사천, 거기에 사범천(四梵天), 삼청천(三淸天), 대라천(大羅天)의 육중천으로 정리하면서 불교의 삼계를 삼십육천에 포함하고 있다.35) 이러한 내용은 도교의 삼십육천이 불교의 삼계를 수용하며 더욱 구체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적 세계관이 습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도교의 신으로 재물과 관련된 신이면서 천계를 수호한다고 전해진 관성제군(關聖帝君)36)의 신격(神格)에는 삼계라는 수식어가 표현되고 있다. 명(明)나라 신종(神宗)은 1614년 10월에 ‘삼계복마대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神威遠震天尊關聖帝君)’으로 시호(諡號)하며 관운장을 처음으로 황제에 반열에 오르게 했는데37) 여기서 삼계라는 표현은 도교적 천관에 불교적 삼계관이 투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관운장이 도교는 물론이고 불교에서도 신앙이 되고 있다는 사실로도 짐작된다. 이처럼 도교에서 삼계 세계관이 신선과 인간, 귀신이 존재하는 영역이며 각 존재의 상태가 변화되는 가능성을 위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동일한 측면에서 도교의 천관에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인간의 일정한 경지가 반영된 불교적 삼계 관념이 수용되는데 무리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순사상의 ‘삼계’는 천·지·인을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삼재의 구성과 다르지 않다. 삼재의 사상은 유교 경전인 『주역』의 논리에 바탕이 되는 사상으로 『주역』을 해석한 ‘십익(十翼)’의 내용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계사전(繫辭傳)」에는 『주역』의 괘상(卦象) 자체가 천·지·인 삼재의 도(道)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삼재를 두 번 겹치면 6개의 효(爻)로 이루어진 괘상이 된다는 것이다.38) 또한 「설괘전(說卦傳)」에는 삼재의 원리에 의해 괘가 만들어졌음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그 구절의 내용이다.
옛날에 성인(聖人)이 역(易)을 만든 것은 장차 본성과 천명의 이치를 따르고자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하늘의 도(道)를 세워서 음(陰)과 양(陽)이라 말하고, 땅의 도(道)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말하고, 사람의 도(道)를 세워 인(仁)과 의(義)라 한다. 삼재(三才)를 겸하여 둘로 중첩하였기 때문에 역(易)은 여섯 획이 되어 괘(卦)를 이루게 되었다.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눔으로써 번갈아 유가 되고 강이 된다. 그러므로 역은 여섯 자리가 되어 모든 이치를 이루었다.39)
위의 내용은 삼재로부터 괘의 의미가 시작됨을 나타냄과 동시에 천·지·인 각각의 원리가 무엇으로 대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천도(天道)를 음·양으로, 지도(地道)를 강·유로, 인도(人道)를 인·의로 설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주자(朱子, 1130~1200)는 “‘천도를 세운 것을 음·양이라고 했다’란 기(氣)로써 말한 것이고, ‘지도를 세운 것을 강·유라고 했다’란 질(質)로써 말한 것이며, ‘인도를 세운 것을 인·의라고 했다’란 리(理)로써 말한 것이다”40)라고 하였다.
삼재의 사상 속에서 천도의 성립을 음·양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기(氣)의 원형으로 설명한 것은 만물을 태생시키는 근원적 존재를 천으로 개념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41) 이러한 천도로서 음·양이라는 존재의 원리는 물질적 대상에 적용되어 강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성질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 물질적 대상을 상징적으로 지(地)라고 표현한다. 지도(地道)인 강·유가 재질이나 물질을 말하는 질로써 설명된 것이다.42)
천·지·인 삼재에서 천과 지에 관한 설명은 속성과 기능에 따른 분류로 볼 수 있다. 우주 천지만물을 기적인 속성과 질적인 속성으로 구분하여 하늘과 땅이라는 상징적인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생명을 낳고 기르는 주체와 완성의 주체를 나누어 각자의 역할을 설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43) 그런데 『주역』의 삼재에서는 우주 만물을 이루는 천지안에서 인간만을 따로 구분하여 천과 지의 가운데에 위치시켜놓고 있다. 이는 우주 만물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학적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44) 그리고 천지의 원리가 인간에게는 인과 의라는 윤리·도덕으로 발현되며 인간존재의 의미를 윤리적 덕목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삼재사상의 특징은 한대(漢代)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기원전 104)의 삼재합일(三才合一)사상을 통해서 그 관계가 조금 더 구체화 되었다. 그는 “천·지·인은 만물의 근본이다. 하늘이 만물을 낳고, 땅이 만물을 기르며, 사람이 만물을 성숙시킨다. 하늘은 효제(孝悌)로써 낳으며, 땅은 의식(衣食)으로써 기르며, 사람은 예악(禮樂)으로써 성숙시킨다. 이 셋은 서로 수족이 되어 하나의 몸을 이루니 한 가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45)라고 하였다. 이것은 천·지·인 각각의 역할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통일된 원리로 운용된다는 것을 말한다. 삼재를 만물의 근본적인 요소이면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전체로 이해한 것이다. 결국, 동중서는 이를 통해 천과 지를 따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46) 삼재사상이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윤리적 타당성을 천지로부터 찾고자 하는 의도가 잘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인 삼재의 사상은 우리나라에 고대부터 전해진 『천부경』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천부경』을 최초로 주석했다고 평가되는 전병훈(全秉薰, 1857~1927)은 『정신철학통편(情神哲學通編)』에서 『천부경』의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구절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사람 역시 태극(太極)의 일(一)이 근본이 되는데 천일(天一)과 지이(地二)의 물과 불이 이미 생(生)한즉 해와 달이 운행하고 감(坎)과 이(離)가 성립되어 기화(氣化)하여 사람을 낳으니 삼재(三才)가 되므로 ‘인일삼(人一三)’이라고 했다.”47) 『천부경』의 천·지·인을 삼재로 보고 우주 생성론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48)
또한, 『천부경』을 주요 경전으로 보고 있는 대종교에서는 “천부경은 … 조화(造化)의 원리(原理) 즉 우주(宇宙) 창조(創造)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참경(眞經)으로 1에서 10까지의 숫자로 하늘(天) 땅(地) 사람(人) 3극(三極)의 생(生) 장(長) 소(消) 병(病) 몰(歿)의 무한(無限)한 반복의 경로(徑路)를 설파(說破)하였다.”49)라고 서술하고 있다. 우주창조의 이치를 삼재가 낳고 생성과 소멸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천부경』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50)
『천부경』의 삼재사상은 우주 생성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의미를 논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의 생성순서는 만물의 생성결과라 할 수 있는데,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천지가 있고, 그 안에 사람이 나온다는 동북아의 주요사상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는 본래 하나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인간의 신성(神性)을 통해 천지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인생의 방향성이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51) 이러한 내용은 삼재사상이 우리나라에도 고대부터 존재했고, 우주의 발생론과 인생론적 측면에서 다뤄질 정도로 근본적인 세계관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유·불·도 삼교에서 ‘삼계’와 관련되어 논의될 수 있는 세계관들을 살펴보았다. 대순사상은 유·불·도를 조화하고 종합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일정부분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삼계’는 유·불·도의 배경 아래 통용될 수 있는 개념 요소들이 들어있으면서도, 새롭게 드러나는 고유한 특징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유·불·도에서 보이는 삼계의 세계관적 차이를 토대로 대순사상에서 드러나고 있는 ‘삼계’ 세계관의 특징을 살펴보자.
Ⅲ. 신명계와 인간계를 통합한 천·지·인 ‘삼계’ 세계관의 특징
천·지·인 ‘삼계’에는 기본적으로 『주역』에서 표현하고 천·지·인 삼재의 속성과 의미들이 개념적으로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삼재의 재(才)가 근본이나 바탕을 이루는 요소를 설명한 것인데 반에 ‘삼계’에서의 계는 대상이 존재하는 세계로서 구분된다는 것이다. 다음 구절을 보자.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52)
위 『전경』 구절에는 ⓐ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53) ⓐ의 내용에서 하늘과 땅의 경계가 개방됐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경계가 존재했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어떠한 계기에 의해서 경계가 개방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경계를 개방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교운 1장 9절의 서술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천과 지의 개념이 단지 속성이나 기능적 차원의 분류가 아니라 ‘삼계’적 차원에서 경계를 지닌 세계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했다는 구절에는 천계와 지계에 존재하는 대상이 신명이라는 점이 나타나고 있다. 천계와 지계의 경계가 개방되었다는 것은 그 세계에 사는 신명이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천계와 지계는 하늘과 땅의 속성적 차이가 존재하고, 그에 맞는 신명이 존재하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54) 이것은 ‘삼계’ 각각의 구체적인 차이를 다루기에 앞서 본질적으로 ‘삼계’의 구분이 말하고 있는 중요한 세계관이 신명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는 차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순사상에서 신명의 존재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새로운 축을 제시하게 된다. 도교적 세계관에서 삼계가 인간과 신선과 같은 존재의 경지를 나누는 층위적 세계에 관한 묘사가 있었다면, 대순사상에서 ‘삼계’는 신명의 존재가 계층적으로 다뤄지는 세계관의 구분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 전반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체적 모습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다는 내용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 ⓑ의 내용에서 천상과 지하의 경계가 개방되었다는 것은 천계와 지계에 존재하는 신명이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세계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 세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은 대순사상이 지니고 있는 세계관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 신부가 청나라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사건을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천상계와 지하계라는 신명세계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16세기 이후 서양에서 시작된 과학과 산업 발전의 역사적 흐름을 지하계에 속한 신명은 천상계에 속한 신명과 서로 왕래하면서 천상계의 신묘한 방법들을 인간세상에 베풀어 문물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인과 관계 속에서 설명하는 것이다.55)
교운 1장 9절의 이러한 내용은 ‘삼계’에 존재하는 대상이 인간과 신명이라는 것과 인간세상의 현상들이 신명들과 관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삼계’를 논할 때 신명과 인간의 존재와 관계를 우선해서 설명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인지 ‘삼계’를 대상으로 하는 ‘삼계’공사 곧, 천지공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천계, 지계와 인계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신계와 인계로 통칭하는 서술도 나타난다.
해원상생의 윤리에 관한 말씀을 들자면 선천 수만 년이 지나는 동안 상극(相克)의 부조리가 인세(人世)를 지배하였고, 그로 인해서 모든 법칙과 윤리가 어긋나서 한이 맺혀 쌓이며 삼계에 넘쳐 마침내 살기가 터져 나와 참혹한 재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상제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여 극에 달해있는 신계(神界)와 인계(人界)의 원한을 풀어주시고 이제는 그러한 재겁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법리를 짜놓으시고 실천하도록 하신 것이다.56)
상극의 부조리가 인간 세상을 지배하였고 윤리가 어긋나 원한이 ‘삼계’에 넘쳐 재앙을 일으켰기 때문에 증산은 천지공사를 행하게 된다. 천지공사는 ‘삼계’를 대상으로 한 공사이다. 천지공사에서 원한을 해소하는 대상을 신계와 인계로 특정한 것은 ‘삼계’가 신명과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이기도 하지만, 천지공사가 지향하는 가치인 해원의 과정에 인간과 신명의 관계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세계 질서에 관한 중요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는 “비겁에 쌓인 신명과 재겁에 빠진 세계창생을 널리 건지시려고 … 해원을 위주로 하여 천지공사를 보은으로 종결하시니 해원 보은 양원리인 도리로 만고에 쌓였던 모든 원울이 풀리고”57) 세상이 도화낙원으로 이루어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신명과 인간 간의 문제를 해원의 원리로서 풀어내는 천지공사가 이루어져서 이상적인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삼계’의 원한을 풀어간다고 할 때 신명계와 인간계의 원한은 해원의 중요한 고려대상이 된다.
‘삼계’를 이해할 때 신명계와 인간계의 관점이 투영되고 있지만, 여전히 천·지·인의 구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삼계’를 어떻게 신명계와 인간계로 나눌 것인지에 관한 의문은 남는다. 삼재의 사상에서 드러나는 천지의 속성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과 땅은 만물을 서로 다른 속성과 역할에 따라 구분하는 동양적 사고를 배경에 두고 있다. 대순사상의 천계와 지계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구분할 수 있다. 다음 절에서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자.
삼재사상에서 천·지·인은 유형적 구분을 보여주고 있다. 유교에서 천과 지는 우주를 음과 양의 물리적 성질로 나누는 사유로부터 출발한다. 단지 공간적 ‘하늘’을 ‘천’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지표면’을 ‘지’로 보는 것도 아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과 만물이 있고, 하늘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땅에는 강해산악(江海山嶽)이 있다고 보는 관점58)은 세상 만물을 음과 양으로 구분하는 데에서 비롯된 천지관념이다.59) 하늘과 땅은 상징화된 표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늘이 비가시적인 존재를, 땅은 가시적인 물질적 존재로 구분하는 것이다.60) 그리고 특히 천관념은 더욱 상징화 되어 최고신의 존재를 대변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61) 이러한 천·지·인의 유형적 구분은 대순사상에서 ‘삼계’를 이해할 때도 적용될 수 있는데, 가장 먼저 짚어보아야 하는 것은 일단 ‘삼계’의 하나인 천계에 관한 내용이다.
대순사상에서 천계는 ‘구천’62)과 ‘삼십육천’63)으로도 구분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박상규는 “대순 신앙의 구천은 삼계를 초월하는 천외천 중 최고(最高) 최중(最重)의 하늘, 삼십육천은 구천이 기(氣)의 분화에 따라 나뉘어져 사방으로 펼쳐진 천외천”64)이라고 서술하여 상제가 존재하는 ‘구천’ 혹은 ‘삼십육천’의 세계와 ‘삼계’를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구천’에 존재하는 상제가 ‘삼계’를 주재하고 다스릴 수 있다는 관점에 설득력을 실어줄 수 있는 내용이다. 다음 『전경』구절에는 ‘삼계’를 주재하는 상제의 권능에 관한 서술이 등장한다.
상제께서 삼계의 대권(三界·大權)을 수시수의로 행하셨느니라. 쏟아지는 큰 비를 걷히게 하시려면 종도들에게 명하여 화로에 불덩이를 두르게도 하시고 술잔을 두르게도 하시며 말씀으로도 하시고 그 밖에 풍우·상설·뇌전을 일으키는 천계대권을 행하실 때나 그 외에서도 일정한 법이 없었도다.65)
인용문 속에서 상제는 ‘삼계’대권의 주재자로 표현되고 있는데, 특히 천계대권에 관한 설명이 등장한다. 상제가 주재하는 천계의 대권을 행하셨다는 내용에는 비, 바람, 눈, 서리, 벼락과 같은 자연현상이 묘사되고 있다. 천계가 물리적, 공간적 하늘의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연현상의 작용과 관련해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삼계’의 영역이 상제가 존재하는 ‘구천’의 영역과는 질적으로 다른 영역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천’에 존재하던 상제가 ‘삼계’대권을 주재하고 인간 세상에 강세하여 ‘삼계’공사를 하였다는 사실은 천·지·인의 ‘삼계’가 기본적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한 전제하에 ‘삼계’에서의 천계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안에서 유형을 달리하는 영역의 경계로서 얘기될 수 있는 것이다.66)
‘삼계’가 ‘구천’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그 안에서 천계와 지계, 그리고 인계는 유형적인 구분에 의한 의미가 중요하게 남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지·인 삼재의 개념을 그대로 투영해서 대순사상의 ‘삼계’를 이해하면 혼선이 생긴다. 삼재사상이 속성적 측면에서 천·지·인을 구분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세계의 차원으로 확대되면 개념상 모호해지거나 설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대순사상에서 ‘삼계’는 천·지·인이 지니고 있는 속성적 차이와 경계로서의 특징뿐만 아니라 신명계와 인간계의 구분이라는 특징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기에 통합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67)
천·지·인의 유형적 구분과 인간계와 신명계라는 특수한 세계관을 통합적으로 적용시켜보면 논리적으로 ‘삼계’ 세계관은 몇 가지 통합적 세계관의 가능성이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천계와 지계를 신명계로 인계를 인간계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현상세계를 구성하는 ‘삼계’의 차원에서 천지의 자연환경을 신명계로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계를 신명계에 국한하는 것이 대순사상의 전반에 부합하는지는 따져 보아야 한다. 인간계가 인간이 활동하는 자연세계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계와 지계의 관계를 인간계와 신명계라는 이분구조로 나누기가 모호해 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천계만을 신명계로 보는 방법이다. 가장 직관적으로 나눌 수 있는 구분이긴 하다. 실제로 『전경』상에 상제가 존재하는 세계를 천상으로 명시하고 있는 내용이 있고, ‘구천’에서 인간세상에 강세하게 되었다고 본다.68)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상제를 위시한 제신명이 존재하는 ‘구천’, 혹은 ‘삼십육천’의 천계를 천외천으로 ‘삼계’의 천계와 구분하고 있는 관점에서는 역시 정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 천외천의 천계를 신명세계로 보는 것은 고전적으로 하늘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고려하면 무리가 없지만, ‘삼계’차원에서 천계는 공간적 대상을 상정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신명의 존재가 지계에는 설정될 수 없다는 점도 숙고해야 할 부분이다. 『전경』상에서 지하신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계를 인간계에 배속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에서 드러나는 의문은 ‘삼계’에 신명계와 인간계를 적용할 때 인계를 인간계에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지막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신명계와 인간계가 공간적, 물리적으로 나뉘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뉘는 세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천·지·인의 ‘삼계’에 한 단면은 인간의 세계, 한 단면은 신명의 세계로 구분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 세계를 반영한 ‘삼계’를 대순사상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명과 인간의 관계를 음양으로 보는 대순사상의 관점에서도 설명된다.69)
이렇게 보면 신명계와 인간계를 체용(體用)의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계’ 안에서 체용 구조는 하늘과 땅과 인간이 존재하는 인간세계의 현상을 일으키는 주체로서 보이지 않는 신명의 세계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설정이 된다. 이는 대순사상의 전반적인 맥락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70)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시간적 변화의 맥락이다. 대순사상의 세계관에서는 특히 시간적 변화 속에서 규정되는 세계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다. 불교의 삼계가 깨달음의 변화를 상정하고 있지만, 삼계의 경지에 시간의 변화가 중요하게 대두되지는 않는다. 유교의 세계관에서 역(易)의 변화가 삼재의 통시적 변화를 상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삼재에 적용된 일관된 세계관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순사상에서 ‘삼계’는 천·지·인이 유형적으로 나누고 있고, 그 안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신명계와 인간계를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관통해서 통시적 변화의 관점이 더해질 수 있다. 다음 구절을 보자.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71)
옛날에는 신봉어천(神封於天)으로 모든 권한을 하늘이 맡아서 행사하여 천존시대였고, 현재는 신봉어지(神封於地)로 땅이 맡아서 행사하니 지존시대다. … 앞으로는 신봉어인(神封於人)으로 이 권한을 사람이 맡아서 하게 된다.72)
위 구절들에는 시대의 변화를 천존(天尊)과 지존(地尊), 인존(人尊)의 가치로 구분하고 있는 내용이 보인다. 천·지·인이라는 대상이 존귀해지는 시대를 구분하여 거시적 안목에서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인용문을 보면 천·지·인이 존귀해지는 원인으로 신이 봉해졌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모든 권한을 맡아서 행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봉어천의 천존시대, 신봉어지의 지존시대, 신봉어인의 인존시대라는 것이다.73)
여기서 천·지·인을 대상으로 신이 봉해진다는 것은 천계나 지계를 신명계로 보는 관점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계와 신명계를 체용의 측면에서 천·지·인 ‘삼계’의 전반에 종적으로 적용하는 관점과 함께 ‘삼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천외천을 상정하는 관점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면 좀 더 세밀한 설명이 가능하다.74) 천·지·인은 현실 세계를 구분하는 유형적 관념으로 인간세계와 신명의 세계가 이미 투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천·지·인의 세계에 신명이 이미 존재하므로 신이 봉해졌다 함은 주재의 권한을 맡은 신, 즉 ‘구천’ 혹은 ‘구천’과 비슷한 지위에 있는 천외천의 신이 ‘삼계’에 내려와 봉해졌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부터 존재해 오던 ‘삼계’는 하늘의 위상이 높았던 시대를 거쳐, 땅의 위상이 높아지던 시대, 마지막으로 인간의 위상이 높아진 시대를 겪으며 변화되어 왔다. 천외천의 신명이 시대를 거치면서 ‘삼계’에 걸쳐 모두 작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삼계’를 신명계와 인간계로 나눌 때 종적인 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삼계’의 세계에 투영된 신명세계는 천외천의 신명이 봉해질 수 있는 본질적인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봉어지’를 통해 땅이 지니고 있는 물질적이고 현세적 세계관을 고원한 형이상학적 가치로 격상시켰고,75) ‘신봉어인’을 통해 인간이 지닌 존재적 위상을 극대화하고 있다.76) 이러한 대순사상의 ‘삼계’ 세계관은 천·지·인 ‘삼계’의 소통과 조화, 완성을 지향한다. ‘신봉’의 시대적 변화는 천계와 지계, 인계의 단절이 아니라 천계, 지계, 인계로의 확장이며 완성의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 상제가 선포한 인존시대는 상제의 인신 강세와 천지공사를 통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적 상황에 서 있다. 이것은 신명과 인간이 조화하는 천·지·인 ‘삼계’의 궁극적인 완성이 투영되있는 시대적 천명이며, 천지가 개벽된 세계이다. 그렇게 천·지·인 ‘삼계’는 이상적 가치를 공유하며 온전한 후천세계를 지향하게 된다.
대순사상에서 ‘삼계’의 유형적인 경계는 신명계와 인간계의 세계관과 통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러한 통합적 ‘삼계’ 세계관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삼계’라는 점에서 특징을 보여준다. 신명의 가치가 천·지·인을 관통하여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적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경계를 극복하고 소통하려는 ‘삼계’의 가치지향이 포함된 세계관인 것이다. 『전경』에 등장하는 천·지·인의 개념 중에는 천·지·인의 속성적 차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명의 주재적 작용이 드러나는 설명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천·지·인이 등장하는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하늘[天]이 우로를 박하게 쓰면 반드시 만방에 원망이 있고, 땅[地]이 수토를 박하게 쓰면 반드시 만물에 원망이 있고, 인간[人]이 덕화를 박하게 쓰면 반드시 만사에 원망이 있다. 하늘이 쓰는 것, 땅이 쓰는 것, 인간이 쓰는 것은 모두 마음[心]에 있다.77)
비와 번개가 치는 하늘과 물이 흐르는 땅은 일차적으로 천지를 물리적 대상과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지만, 하늘과 땅이 박하게 작용을 하면 만방과 만물에 원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구절은 이와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자연 변화 속에서 드러나는 하늘과 땅의 작용을 인간이 덕화를 베푸는 차원과 동일선 상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쓰는 것은 결국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78) 만약 위 인용 구절의 이러한 내용을 대순사상의 ‘삼계’적 차원에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하늘과 땅을 의인화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해석할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통합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삼계’의 세계관은 하늘과 땅이 일으키는 작용이 신명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늘과 땅을 단순히 의인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주체가 되는 신명이 실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세계에 존재하는 신명이 바로 우로와 수토를 박하게 쓰는 마음의 주체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이 쓰는 것, 땅이 쓰는 것, 인간이 쓰는 것은 모두 마음에 있다.(天用地用人用統在於心)”는 것은 천·지·인의 각각의 쓰임을 주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면서, 실체로서 신명의 주재가 전제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순사상에서 인간의 마음은 자신을 주관하는 주체로 밝혀지고 있지만79), 한편으로 신이 오가는 길로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관점이 드러나기도 한다.80) 이는 신명의 주재성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명의 주재성이 천·지·인에도 투영되어 마음의 작용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대순사상에서 사용되는 천·지·인이라는 표현에는 신명이 실체적으로 작용하는 양상이 함축되어 마음의 작용으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신명계와 인간계의 범주가 ‘삼계’에 종적으로 투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전경』에는 “사람이 마음을 정직하게 먹으면 하늘도 두려워 한다”는 구절이나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들어야 한다”는 구절은 모두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천·지·인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인간과 하늘, 땅이 본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전제된 것이다. 대순사상에서는 그 본질적 가치를 신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삼계’의 세계관이 지향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삼계가 개벽되지 아니함은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였으므로 원한이 세상에 쌓이고 따라서 천·지·인(天地人)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생겼나니라.81)
이 구절에서는 ‘삼계’가 통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여기서 천·지·인의 ‘삼계’가 통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신명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운 1장 9절에는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였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천도와 인사가 어겨진 상황으로부터 초래된 ‘삼계’의 혼란은 인류와 신명계의 문제로서 환원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삼계’의 혼란을 인류와 신명의 문제로 본다면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했다는 것은 천·지·인에 주체가 되는 신명의 막힘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말로 ‘삼계’의 마음이 소통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각자가 근본적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82)
그에 따라 상제의 권능으로 시행하게 된 ‘삼계’공사에는 인간과 신명 사이의 소통이 중요한 원리로서 제시된다. 대순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종지(宗旨)에서도 인간과 신명 사이의 이상적 관계에 관한 이념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구체적으로 신인조화(神人調化)의 이념이나 천지공사의 이법으로 제시된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원리로서 확인될 수 있는 내용이다.83)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에 중심을 둔 ‘삼계’ 소통의 핵심을 ‘삼계’가 본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신적 가치를 지닌 마음의 문제로 귀결하게 되는 것이다.84)
인간과 천지의 관계에서 마음이 통하는 단계를 인간의 마음에 천지의 신명이 오고 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천지 신명의 존재 양상은 인간의 실재적 존재 양상을 유비하면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대순사상에서 ‘삼계’의 세계관은 이처럼 천지와 인간의 소통에 관한 가능성을 신명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삼계’의 세계관에서 세계를 구분하는 천·지·인의 유형적 경계는 신명계와 인간계라는 범주를 만나면서 더욱 역동적인 생명력을 얻게 된다. ‘삼계’의 세계관이 지닌 특징은 이러한 맥락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Ⅳ. 맺음말
유·불·도 삼교에서 드러나는 삼계의 세계관에서 몇 가지 중요하게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불교에서는 삼계가 깨달음의 경지와 관련되어 설명되었다. 불교에서는 삼계가 실재하는 세계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마음을 중심에 놓는 불교 세계관의 틀이 반영되어 깨달음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는 세계관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도교에서는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는 다층의 하늘 세계가 삼계의 세계관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안에는 인간의 경지, 신의 경지가 투영되기도 하고, 천·지·인의 맥락에서 고유한 유형에 관한 구분 또한 희미하게 들어있다. 유교에서는 천·지·인이라는 유형적 차이에 집중하는 삼재의 세계관이 제시된다. 삼재의 세계관은 천·지·인이라는 유형을 어떻게 구분하고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관한 논의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삼계’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신명계와 인간계라는 구조가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교의 세계관과, 그리고 천·지·인의 유형이 구분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교의 세계관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도교의 삼계가 신들의 위계적 구분을 전제하고 있고, 유교의 삼재가 경계가 아닌 속성적 측면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은 차이를 보인다. 대순사상에서 천·지·인이라는 유형적 경계는 신명계와 인간계의 범주와 결합하여 ‘삼계’의 세계관으로 드러난다. 두 가지 범주의 통합에서 특징적인 점은 신명계와 인간계를 천계·지계·인계에 계층적으로 구분하여 배속하는 것이 아니라, 신명계와 인간계를 세계를 구성하는 두 가지 측면으로 보고 종적으로 ‘삼계’에 통합한 것이다. 이처럼 ‘삼계’의 세계에 투영된 신명세계는 천외천의 신명이 봉해질 수 있는 본질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삼계’의 세계관은 천·지·인 ‘삼계’가 신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며, 그래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삼계’의 소통을 지향하는 대순사상의 교리적 내용 속에는 이러한 내용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순사상의 ‘삼계’를 세계관의 차원에서 연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천지, 그리고 신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의 통합적 세계관으로서 ‘삼계’가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논문에서는 그러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하였다. 대순사상에서 유·불·도 삼교를 종합한다는 측면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사상적 측면에서 그 다름을 논의하는 하나의 시도로서도 ‘삼계’ 세계관의 연구는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