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장화홍련전>은 조선 후기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가부장적 가족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억압과 저항, 그리고 기억의 변형과 재구성을 주요한 서사 축으로 삼고 있다. 전통적으로 <장화홍련전>은 권선징악적 성격, 효 이념의 구현, 가부장제적 질서의 복원을 중심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장화홍련전>을 가정 폭력, 성적 억압, 재산 분배 갈등 등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하며, 그 이면에 억압된 여성 주체의 서사적 목소리를 발견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본 연구는 <장화홍련전>을 단순한 피해자 서사나 권선징악의 틀로만 환원하지 않고, 폴 리쾨르(Paul Ricœur)의 삼중의 미메시스 이론에 기반하여 ‘기억의 서사’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특히 장화와 홍련이 겪는 상처와 죽음, 그리고 이후의 원한 서사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기억의 파편들을 통해 재구성되는 여성 주체의 정체성 투쟁으로 읽힐 수 있음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장화홍련전>이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소거되었던 여성들의 기억과 존재를 복원하고, 새로운 여성 정체성의 가능성을 서사적으로 모색하는 작품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첫째, <장화홍련전>의 서사 구조는 억압된 기억과 여성 주체의 재구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둘째, 폴 리쾨르의 삼중의 미메시스 이론은 <장화홍련전>의 기억 서사와 여성 정체성 재구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 연구는 리쾨르의 『시간과 이야기』와 『타자로서 자기 자신』에서 제시된 삼중의 미메시스 개념(Mimesis Ⅰ, II, III)을 분석의 이론적 틀로 삼는다. 첫째, Mimesis Ⅰ는 이야기 이전의 세계, 즉 <장화홍련전>의 사회적 배경과 당대의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정된다. 둘째, Mimesis II는 이야기의 구성 단계로서, 장화와 홍련의 죽음, 원한, 신원(伸寃) 과정을 통해 기억이 재구성되는 양상을 분석한다. 셋째, Mimesis III는 수용자(독자)가 이야기와 맺는 세계 구성으로, 장화와 홍련의 서사가 독자에게 어떤 윤리적 서사적 교섭을 제안하는지를 고찰한다.
<장화홍련전>에 대한 기존 연구는 주로 다음의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첫째, 가부장제적 질서와 효 담론이라는 사회사적인 관점에서, <장화홍련전>은 가족 질서의 붕괴와 재구성, 그리고 권선징악적 서사의 전형성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해석되어 왔다.1) 장화와 홍련의 죽음과 복수는 효의 이념과 가부장적 권위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혔다.2)
둘째, <장화홍련전>의 내용에 주목한 연구이다. 계모를 단순한 악인으로 보는 전통적 관점을 반성하고, 계모와 전처 자식 간의 갈등을 가부장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재산 분배 문제에 기인하는 것으로 재해석하였다.3) <장화홍련전>의 선인과 악인의 대립, 악인에 대한 징치와 선인에 대한 보상이라는 단선적 서사구도를 부녀자 독자층의 소망과 관계된 것으로 보거나,4) 작품의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 되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5) 그리고 이 작품이 리얼리즘에서 일탈한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6) 그러나 <장화홍련전>에 나타난 인식의 불일치가 오히려 작품의 사실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며, 이러한 현상은 가부장제의 어폐에 대한 피해자/방관자의 이중성7)을 드러내기도 하고, 당시의 <장화홍련전> 의 향유층은 이러한 소거와 봉합 형식을 빌어서 가부장제적 사회에서 느끼는 근원적 불안의식 또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8)이도 하였다.
셋째, 감정의 흐름과 정동 이론과 문학치료적 관점에서 <장화홍련전>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가부장제의 또 다른 희생양의 측면에서 계모의 분노와 좌절9)을 살펴보거나, 정동의 순환과 이행을 중심으로 서사적 긴장과 해소 과정을 설명하거나,10) 유소년기의 자기서사 형성과 치유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접근이 그것이다.11)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대체로 <장화홍련전>의 서사적 기억 구조에 대한 체계적 분석,12) 특히 기억과 서사의 관계를 통해 여성 정체성 재구성 과정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또한 리쾨르의 삼중의 미메시스를 적용하여 <장화홍련전>의 기억, 플롯, 수용자 관계를 통합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는 <장화홍련전>을 기억의 서사로 재해석함으로써, 전통적 효 담론이나 피해자 서사에 머물렀던 기존 독법과는 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13) 특히 폴 리쾨르의 삼중의 미메시스 이론을 적용하여 이야기 이전의 세계(Mimesis Ⅰ), 구성된 서사(Mimesis II), 수용된 세계(Mimesis III)를 연속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억의 단절과 복원 과정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장화홍련전>이 여성 정체성의 상실과 재구성이라는 문제를 서사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음을 밝히고, 한국 고전소설의 기억-서사-주체 연관성 연구에 한걸음 더 접근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2장에서는 연구의 이론적 토대로서 폴 리쾨르의 삼중의 미메시스 이론을 정리한다. 제3장에서는 <장화홍련전>의 서사 구조를 분석하여, 기억의 서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핀다. 제4장에서는 여성 주체의 정체성 재구성 과정을 서사의 흐름 속에서 분석한다. 제5장에서는 연구 결과를 종합하고, 본 연구의 의의 및 한계, 그리고 후속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II. 이론적 토대로서의 삼중의 미메시스
폴 리쾨르는 『타자로서 자기 자신』에서 서사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를 해석하고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 방식’14)임을 밝힌다. 그리고 그는 ‘시간은 서술을 통해 인간적으로 체험된다’15)고 전제하며, 시간과 서사의 불가분한 관계를 탐구하였다. 시간은 선형적 흐름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기대하는 가운데, 이 시간적 경험을 서사의 형태로 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리쾨르는 서사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의미 있는 이야기로 조직하고 해석하는 창조적 행위16)로 이해하였다. 즉 서사는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해석하는 인간 고유의 방식이며, 이때 플롯은 이야기를 하나의 ‘살아 있는 질서’로 엮어주는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그는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는 텍스트, 기호, 상징을 매개한 해석학적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17)고 보았다. 이는 인간 존재가 언어적이고 해석적인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이며, 서사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핵심적 수단이 된다. 서사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억과 상상, 기대를 통해 구성하고 해석한 세계’18)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점은 본 연구에서 <장화홍련전>을 기억의 서사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19)
리쾨르는 서사 형성 과정을 삼중의 미메시스(triple mimesi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미메시스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세계와 인간 경험을 재구성하는 창조적 과정이다. 삼중의 미메시스는 각각의 단계가 상호 연관되면서 서사의 세계를 구성하고 독자에게 의미를 생산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Mimesis Ⅰ은 서사가 구성되기 이전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특정한 규범, 문화, 상징체계 속에 위치한다’20)는 점을 전제한다. 인간의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코드와 규칙, 제도적 질서 속에 이미 ‘서사적 구성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현실 세계는 사건이 발생할 잠재적 의미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리쾨르는 ‘행위의 구성성(the configurationality of action)’21)이라 부른다.
<장화홍련전>의 경우, 장화와 홍련이 살아가는 세계는 가부장제, 효 윤리, 가족 질서 같은 문화적 맥락을 이미 전제한다. 이러한 이야기 이전의 세계는 이후 서사가 형성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Mimesis II는 실제로 이야기가 구성되는 단계이다. 사건들이 단순히 연쇄적으로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플롯(plot)이라는 통일성과 의미망 속에서 재구성된다. 플롯은 사건들을 선택하고 조직하여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낸다.22)
<장화홍련전>에서는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죽음, 원귀로서의 등장, 그리고 신원의 과정이 플롯에 의해 구성된다. 이 플롯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기억의 단절, 상처의 전승, 그리고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내포하는 방향으로 조직된다.
Mimesis III는 독자가 구성된 이야기를 수용하고, 자신의 세계와 대화하는 단계이다. 독자는 이야기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기억, 윤리적 감수성에 비추어 텍스트를 재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서사는 독자에게 새로운 현실 구성을 가능하게 하며, ‘자기 이해’와 ‘세계 이해’를 심화시킨다.
<장화홍련전>을 읽는 독자는 장화와 홍련의 서사를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기억과 정의, 여성의 존재성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리쾨르가 강조한 대로, 독자의 재구성은 이야기의 완성을 이끌어내며, 서사는 삶을 새롭게 이해하는 하나의 사건(event)이 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살펴보고자 하는 박인수본(朴仁秀本)은 1818년에 간행된 한문본 <장화홍련전>의 대표적인 초기 이본으로, 현재까지 전하는 가장 오래된 이본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본은 박인수가 편집 혹은 기록한 것으로, 조선 후기 철산(鐵山)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재현물로 간주되며, 이후의 수많은 변형된 텍스트들의 원형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장화의 죽음’과 ‘홍련의 투신 장면’은 <장화홍련전>의 가장 핵심적인 서사 구조인 신원(伸寃)의 출발점이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열쇠이다. 억울한 죽음이 없다면 귀신이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신원 구조가 작동할 수 없다. 즉, 이 두 장면은 전체 이야기의 당위성과 서사적 동력을 제공하는 필수불가결한 구성 요소이다.
상황 1. 장화의 죽음
필동이 장화와 함께 집을 나서 용추에 이르러 말했다.
“누이가 망측한 음행을 저질렀다고 아버지께서 나더러 누이를 죽이라 하셨소. 어서 몸을 던지는 게 좋겠소.” 장화가 놀라 말에서 떨어져 울며 말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악이 있기에 여자로 태어나 이런 누명을 썼을까? 천지신명이 모두 아시거늘 내가 죽고 나면 이 원통함을 씻을 길이 없구나! 이제 내 실낱같은 목숨이 네 손에 달렸으니 며칠만 여유를 다오. 그러면 외숙부를 찾아뵌 뒤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게.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필동이 말했다. “아무리 목숨을 빌어 본들 아버지의 분부가 지엄하니 자식된 도리로 사사로이 용서해 줄 수 없소.” 그러고는 장화를 발로 차서 용추로 떠밀었다.
(박인수본 171면)
박인수본23)에 나타나 있는 장화와 홍련의 장면을 미메시스의 이론으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Mimesis Ⅰ에는 “부권적 명령의 절대성, 여성의 정절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라는 서사 전형”의 문화적 코드가 강하게 깔려 있다.
첫째, 부권적 명령의 절대성
이 장면은 부친 좌수의 말 한마디가 곧 ‘죽음의 선고’로 이어지는 가부장적 질서 아래 놓여 있다. 필동은 장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지엄한 아버지의 분부’로 수용하며, 사사로운 동정은 용납되지 않는 것으로 전제된다. 이는 조선 후기 유교적 윤리 구조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자식의 생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구조를 반영한다.
둘째, 여성의 정절에 대한 이데올로기
장화가 저지르지도 않은 ‘음행’은 그녀가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로 제시된다. 이는 여성이 ‘정조’를 중심으로 사회적 존재 가치를 평가받던 당대의 규범을 반영하며, 여성의 말보다 남성의 시선과 판단이 우선하는 질서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Mimesis II에는 “장화의 절규, 필동의 냉혹함”이 적절히 구성되어 있다.
첫째, 장화의 절규와 ‘정조의 누명’
장화는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여자로 태어나 이런 누명을 썼을까”라고 절규한다. 이 절규는 서사의 중심이 단순한 사건 기술이 아니라, 억울함과 원통함의 감정적 심연을 중심에 둔 서사적 구성임을 드러낸다. 플롯은 장화를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억울한 자이자 증언하는 자로 형상화한다.
둘째, 필동의 냉혹한 수행자 역할
필동은 자신의 누나가 목숨을 구걸함에도 “자식 된 도리”라는 말로 살해를 정당화한다. 플롯은 필동을 단순한 가해자가 아니라, 부권 명령에 의해 내면적 갈등 없이 자동화된 윤리의 수행자로 그린다. 이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강화하는 장치다.
이 장면을 통해 독자24)는 “장화에 대한 감정 이입, 필동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판, 억울함”을 회고하게 된다.
첫째, 장화에 대한 독자의 감정 이입과 분노
독자는 장화의 절규를 통해 그녀의 무고함과 고통을 체감하게 되며, 나아가 여성으로서 겪는 부당한 희생에 분노하게 된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가정 내 갈등을 넘어, 여성의 억압된 목소리와 저항할 수 없는 권력의 폭력을 고발하는 감정적 기제로 작동한다.
둘째, 필동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판의 유도
독자는 필동이 “아버지의 분부”를 이유로 누이를 죽이는 데 내면적 갈등조차 보이지 않는 데서 충격을 받는다. 이는 그를 단순한 피해자라기보다는, 부권제의 무비판적 내면화자, 동조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필동은 리쾨르가 말한 “자기 이해 없이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행위자”로 형상화된다.
셋째, 억울함
장화의 죽음은 서사의 끝이 아니라, 원혼 서사와 정의 회복 서사의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이 장면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이후 서사에서 죽은 자의 기억과 응보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정서적 토대로 작용한다. 독자는 이 억울한 죽음이 ‘기억되어야 할’ 서사적 정의로 인식하게 된다.
상황 2. 홍련의 죽음
홍련은 땅을 치고 통곡하며 말했다. “내 꿈이 맞구나! 어여쁜 내 언니가 죄 없이 죽었으니 밝은 하늘은 필시 그 원통함을 알 것이다. 혼자 외로이 사느니 언니의 손을 잡고 죽는 게 낫다.” 즉시 용추로 가서 곡하며 말했다. “내가 죽은 뒤 석 달 동안 가뭄이 들면 내가 원혼이 된 줄 알라!”
그러고는 몸을 던져 죽었다. 바람이 불어도 물결은 고요하고 구름이 일어 강을 뒤덮었다. 그 뒤 과연 홍련의 말대로 석 달 동안 큰 가뭄이 들었다.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릴 것 같은 날, 별이 비끼고 달이 져 가는 깊은 밤이면 곡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박인수본 172면)
Mimesis Ⅰ에서는 ‘자매 간 연대의 혈연의식, 하늘에의 호소’라는 문화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첫째, 자매 간 연대
이 장면은 남성 중심 질서에서 소외된 자매가 서로를 의지하고 끝내 함께 죽음에 이르는 ‘여성 간 연대’의 비극적 형상이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종속된 타자의 위치에 있었고, 사회적으로 보장된 자아의 목소리는 없었다. 이들은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한 존재로, 죽음을 통해서만 진실을 주장할 수 있었다.
둘째, 하늘에의 호소
홍련은 죽음을 단지 절망의 표출이 아니라, 하늘(초월적 존재)을 향한 정의의 ‘호소’로 구성한다. “석 달 동안 가뭄이 들면 내가 원혼이 된 줄 알라”는 선언은, 죽음을 초월한 윤리적 책임을 묻는 형이상학적 예고이며, 자연 현상을 통해 진실을 증명하려는 상징적 장치이다.
Mimesis II에서는 ‘장화의 죽음을 꿈을 통해 인식, 자연현상으로 감정 표현, 죽은 자의 말의 성취’의 소재를 바탕으로 묘사가 진행된다.
첫째, 장화의 죽음을 꿈을 통해 인식
“내 꿈이 맞구나!”라는 구절은 단지 꿈의 성취가 아니라, 플롯상 ‘예감–현실화–의미화’라는 구조적 리듬을 형성한다. 독자는 이미 장화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으므로, 홍련의 말과 행동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며 그녀의 죽음을 감정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둘째, 자연현상으로 감정 표현
“바람이 불어도 물결은 고요하고, 구름이 강을 뒤덮었다”는 묘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자연이 홍련의 죽음을 ‘존중’하고 ‘응답’하는 것으로 서사화된다. 이러한 자연의 참여는 플롯이 ‘개인 감정에서 하늘 질서의 동조’로 확장되도록 돕는 장치이다.
셋째, 죽은 자의 말의 성취
홍련이 예언한 대로 “석 달 동안 큰 가뭄이 들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억울함이 단지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징후로 입증된 진실이라는 플롯을 구성한다.
Mimesis III에서 ‘숭고함, 자연의 반응’를 통해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첫째, 홍련에 대한 숭고한 감정 형성
독자는 홍련을 단지 피해자가 아닌, 언니를 위해, 정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고결한 인물로 수용하게 된다. 이는 고전 서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열녀형 인물의 숭고화 전략과도 통하지만, 여기서는 단지 순종이 아닌 정의의 구현자로서의 자기 선택이 강조된다.
둘째, 자연의 반응을 통한 정의의 확인
“가뭄”과 “밤마다 들리는 곡소리”는 단지 미신적 현상이 아니라, 서사의 윤리적 판결이다. 독자는 이러한 초자연적 반응을 통해, 이 자매의 죽음이 무의미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고통이 세계 질서 속에 ‘기억’되고 있다고 해석하게 된다.
삼중의 미메시스 이론은 여성 주체의 형성과 재구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리쾨르는 인간 주체가 단일하고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서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해석하고 변형하는 존재25)라고 보았다. 주체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 즉 자기 이야기(self-narrative)를 통해 자기 이해를 지속적으로 갱신한다.26)
Mimesis Ⅰ에서 여성 주체는 가부장적 질서와 사회적 규범 속에서 이미 특정한 기대와 역할을 부여받는다. <장화홍련전>의 장화와 홍련은 효녀, 순결한 처녀라는 문화적 코드에 의해 초기 정체성이 규정된다. 그러나 이 정체성은 사건의 전개(Mimesis II) 속에서 균열을 맞이하고, 상처와 억울함이라는 기억을 통해 새로운 자기 이해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장화와 홍련은 억압된 기억을 신원(伸寃) 서사를 통해 표면화하고, 이를 플롯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기존의 정체성 서사를 전복하거나 재구성한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피해자의 위치를 넘어, 적극적으로 기억을 호출하고 새로운 존재 의미를 구성하는 주체적 행위27)로 이해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Mimesis III에서는 독자의 수용을 통해 여성 주체의 재구성이 사회적 인식 속에 반영된다. 독자는 장화와 홍련의 서사를 수용함으로써 여성의 억압, 기억, 정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획득한다. 삼중의 미메시스는 여성 주체가 주어진 사회 질서 속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과 서사를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하고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낸다.28)
III. <장화홍련전>의 기억 서사 구조
<장화홍련전>은 전통적 서사의 권선징악 구조를 기본 골격으로 하면서도, 기억의 발굴과 재구성이라는 서사적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전체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장화와 홍련의 성장과 행복했던 유년기, 둘째, 계모 허씨의 등장과 가정 내 갈등의 심화, 셋째, 두 자매의 죽음과 이후 원귀가 되어 신원(伸寃)하는 과정이다. 초기 서사는 장화와 홍련의 탄생을 신화적 기원 서사로 포장하면서 시작된다. 하늘에서 선관이 내려와 장화의 태몽을 전하는 장면은, 두 자매의 특별한 존재성을 예비한다. 이는 서사의 출발점을 초월성과 연결시키는 동시에, 이후 발생하는 비극이 단순한 가정 내 사건이 아니라 보다 심층적 의미를 지닌 서사적 운명으로 독자에게 인식되도록 한다.
계모 허씨의 등장 이후, 서사는 급격히 전환된다.29) 허씨의 시기와 모함, 좌수의 무책임과 맹신,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죽음이 일련의 인과적 사건 배열 속에 배치된다. 이 과정에서 두 자매는 폭력의 대상이 되면서, 억압된 기억의 주체로 변모한다.
특히 계모가 쥐를 이용하여 낙태 누명을 씌우고 좌수가 이를 빌미로 장화를 제거하는 장면은, 현실적 시간의 흐름을 넘어 기억의 파열이 발생하는 지점을 서사적으로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신임 철산부사 전동흘의 등장과 재판 장면은, 기억의 회복과 정의 실현이라는 서사적 클라이맥스를 구성한다. 그러나 이 신원 장면은 단순한 해결이나 복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억압되었던 기억이 사회적 질서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로써 <장화홍련전>의 서사 구조는 ‘초기의 이상적 세계 → 갈등과 파열 → 복원과 재구성’이라는 연쇄 구조를 이루고 있다.30)
<장화홍련전>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서사 구조를 넘어, 기억의 재구성과 그 기억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고전소설적 성찰을 담은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서사에서 기억은 단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인물의 정체성 형성과 억압된 진실의 복원을 위한 ‘기억의 실천’으로 기능한다.
서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억은 자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회상과 호소다. 이 기억은 단지 개인의 회상으로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적 장치인 송사 장면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거친다. 장화와 홍련은 죽음 이후에도 망각되지 않고, 원혼이 되어 공적인 장에서 자신들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호소함으로써 기억의 주체로 기능한다. 이는 리쾨르(Paul Ricœur)가 강조한 ‘기억의 서사화’(narrativization of memory) 과정을 연상케 한다. 리쾨르에 따르면,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서사의 형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윤리적으로 해석되며, 이러한 서사를 통해 기억은 과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해석적 실천으로 자리매김한다. <장화홍련전>에서 이러한 기억의 서사는 특히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형성되고 전개된다.
장화와 홍련의 죽음은 허위 사실(낙태 모해)에 기반한 것이며, 그들은 죽은 이후에야 억울함을 발설할 수 있다. 이 ‘말해지지 않은 과거’는 곧 기억의 결핍이자 왜곡된 역사로 기능하며, 기억의 서사화가 요청되는 지점을 제공한다. 이 지점에서 장화와 홍련의 원귀 등장은 기억의 재현이자 부정의에 대한 항의다.
서사에서 기억은 단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장화와 홍련의 호소는 철산부사의 판결이라는 제도적-상징적 권위를 통해 신원(伸寃)의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이때 철산부사는 기억을 단지 수용하는 청자가 아니라, 기억의 해석자이자 중재자 역할을 한다. 이는 기억이 제도적 승인 속에서 권위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기억의 공공화(publicization of memory)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장화홍련의 기억 서사는 단지 피해자의 정당화를 넘어서, 가부장제 질서에서 억압된 기억의 반전이라는 점에서 서사적 전복을 이룬다. 계모는 표면적으로 악의 근원으로 비난받지만, 그 이면에는 가부장제의 권력 구조가 숨겨져 있으며, 이는 ‘계모라는 타자에게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서사’로 기능한다. 기억은 기존의 권력에서 벗어나는 저항이며 억눌린 주체의 서사화다.
<장화홍련전>에서 기억의 서사는 단지 과거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누가 기억을 말할 수 있는가, 누가 믿어주는가, ‘누가 책임을 지는가’라는 질문을 야기한다. 원혼의 등장은 여성 주체의 회복이자, 억압된 감정과 기억의 복권이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삭제된 여성의 목소리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된다.
<장화홍련전>의 기억의 서사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억압된 진실의 복원을 위한 서사적 장치이며, 여성 주체가 다시 말하기를 통해 정체성을 복원하는 공간이다. 이는 서사에서 기억이 어떻게 권력, 윤리, 정체성과 교차하며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고전문학적 사례로 분석할 수 있다. 이처럼 <장화홍련전>의 기억 서사는 ‘망각에 저항하는 서사’이며, ‘말해지지 않은 자의 귀환’을 가능케 하는 문학적 장치이다.
<장화홍련전>에서 서사의 핵심 동인은 단순한 악행의 발생이 아니라, 여성 주체가 겪은 구조적 폭력과 그로 인해 각인된 상처의 기억이다. 이 서사는 계모라는 인물의 악행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 주체가 가족 질서 내에서 경험하는 억압, 배제, 침묵의 강요, 나아가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폭력이라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들이 자리한다. 이처럼 작품은 단지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의 ‘상처 난 기억(wounded memory)’을 중심으로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작품에서 장화와 홍련은 단지 계모 개인의 폭력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부친 배좌수의 침묵, 오라비 필동의 가담, 외부 공동체의 무관심 속에서 철저히 고립된다. 이는 물리적 폭력 이전에 구조적으로 주어진 상처의 공간이며, 피해자의 주체성이 철저히 지워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리쾨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해석 불가능한 고통’의 상태이며, 말해지지 못한 고통이 개인의 정체성 내에 응고되어 있는 상태다. 이 고통은 회상도, 화해도 불가능한 상처이며, 따라서 ‘말해지기 위한 서사’를 필연적으로 요청한다.
장화와 홍련은 죽은 뒤에도 소멸되지 않고 원혼으로 귀환하여 부사 앞에서 호소한다. 이 장면은 단지 원통함의 발화가 아니라, 고통의 정동적 표현이다. 이채은은 이를 “정동의 이행”이라 표현하며, 감정이 단지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서사를 밀고 나가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고통의 기억은 하나의 서사적 힘이자 설득력을 획득하며, 이를 통해 폭력은 단지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확장된다. 즉, 상처의 기억은 공적 차원에서 수용되어야 하는 서사적 요구로 전환된다.
폭력의 반복은 여성 정체성의 파괴와도 직결된다. 계모의 모해와 폭언, 낙태 누명, 물리적 제거는 여성 주체를 “침묵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때 장화는 말에서 떨어지며 오열하고, 홍련은 억울함을 하소연하다 물에 뛰어드는 행위를 통해 자기의 존재가 지워지는 과정을 몸으로 드러낸다.
장화와 홍련의 원귀 호소는 결국 부사에 의해 받아들여지며, 억울한 죽음은 ‘신원(伸寃)’이라는 제도적 구조 속에서 해소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원은 진정한 의미의 상처 치유가 아니라, 일정한 제도 내 봉합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상처의 기억은 여전히 서사에 남아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폭력은 계모 개인의 악의로 환원될 수 있는가? 부친과 오라비의 책임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서사가 끝난 이후에도 ‘기억의 윤리’를 지속적으로 호출하는 장치로 남는다.
<장화홍련전>의 폭력과 상처의 기억은 단지 피해자-가해자의 구도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부장적 사회 질서, 계모 담론의 구조화, 공동체의 침묵 속에서 재현되는 복합적 폭력의 서사이며, 그 기억은 죽음을 넘어 되돌아와 공동체 전체에 책임을 묻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기억과 상처를 둘러싼 서사의 장이며, 고통의 감응을 통해 독자에게 ‘상처의 윤리’를 성찰하게 하는 고전문학의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장화홍련전>의 서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두 자매의 ‘원한(怨恨)’이 ‘신원(伸寃)’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이때 ‘원한’은 단지 감정적 분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여성 주체가 말할 수 없었던 억압된 고통의 응축이며, 이 억압된 고통이 서사 속에서 귀환하고 반복됨으로써, 억압의 구조를 가시화하고 해체하는 매개가 된다. ‘신원’은 이러한 원한이 사회적으로 승인되고 제도적으로 해소되는 순간을 가리키며, 이를 가능케 하는 일련의 내러티브 장치들이 곧 서사적 기제다.
작품 속 장화와 홍련은 생전의 부당한 대우와 폭력, 오해와 낙태 모해로 인한 억울한 죽음을 겪는다. 이들의 ‘말해지지 못한 고통’은 사후의 귀환을 통해 비로소 발화되며, 이는 곧 죽음 이후의 ‘정동적 귀환’(affective return)이라는 서사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 귀환은 망각되지 않은 상처, 지워지지 않은 기억의 반복이며, 리쾨르가 말한 “과거를 말함으로써 현재를 변형시키는 기억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장화와 홍련은 단지 유령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서사의 중심 화자이자 주체로서 복귀한다.
신원의 서사적 전환점은 철산 부사와의 만남이다. 부사는 자매의 원한을 ‘믿고’, 그들의 서사를 ‘듣고’, 그 기억에 ‘응답’하는 인물이다. 이는 리쾨르가 말하는 ‘기억의 인정’에 해당하며, 피해자의 서사가 제도적 권위 안에서 공적 진실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특히 이 장면은 계모의 폭력에 가려져 있던 진실이 처음으로 말해지고 인정받는 서사적 전환점이며, 가해자가 처벌받고 피해자의 존재가 재정의되는 ‘정의의 재현’이다.
이처럼 <장화홍련전>은 원한의 감정이 서사적으로 정당화되고, 제도화된 응답을 통해 신원의 형식으로 완결되는 구조를 지닌다. 신원의 구조는 단지 정의 구현의 장면을 넘어, 서사가 요청을 수행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신원은 완전한 해결이 아니다. 계모는 처형되지만, 자매의 죽음을 방조하고 구조적으로 침묵했던 부친 배좌수와 오라비는 용서받는다.31) 홍련은 부사에게 “아버지는 살려주시옵소서”라고 말하며, 폭력의 구조적 공모자는 용인되고 계모만이 처벌된다.32) 이는 가부장제적 공동체가 갈등을 한 인물에게 전가하여 체제를 재생산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즉, 신원은 제도적 봉합이긴 하나, 진정한 해방이나 치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서사는 원한의 발화와 정당화라는 정동의 흐름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지만, 그 결말은 공동체 질서 유지를 위한 ‘부분적 정의’에 그친다. 이는 독자에게 껄끄러운 질문을 남긴다. ‘과연 이 서사는 여성 주체의 해원을 이루었는가?’ 아니면 ‘억압된 기억을 다시 봉합하는 장치에 불과한가?’
이처럼 <장화홍련전>은 ‘원한–신원’의 연쇄를 하나의 서사적 기제로 활용한다. 억울한 기억(원한)은 반복되고 증폭되며, 제도적 청문을 거쳐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단계(신원)로 나아간다. 이 구조는 단지 서사의 재미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억압된 여성 주체의 존재 회복을 위한 문학적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기제는 동아시아 설화, 고전소설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해원(解寃) 서사의 전형이기도 하며, 억압된 자의 서사적 발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요청하는 문학적 수사다.
<장화홍련전>에서 ‘원한–신원’의 서사 구조는 고통의 기억이 어떻게 공동체적 정의의 요청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 장치이다. 억압된 존재의 귀환, 공적 발화, 제도적 청문, 제한된 응답이라는 일련의 서사적 기제들은 이 작품이 단지 공포나 감정적 서사가 아니라, ‘기억의 윤리학’을 수행하는 고전문학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로써 <장화홍련전>은 과거의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기억의 문학, 곧 서사의 전범으로 자리할 수 있다.33)
Ⅳ. 여성 정체성의 재구성
<장화홍련전>에서 장화와 홍련은 단순한 피해자나 수동적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들은 생전에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말할 수 있는 유령적 존재로 복귀함으로써, 존재의 위상 자체가 변화되는 서사적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위상 변화는 단지 캐릭터의 변화가 아니라, 주체성과 존재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이며, 여성 정체성의 재구성이라는 담론적 층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장화와 홍련은 살아 있는 동안 부친의 외면, 계모의 폭력, 오라비의 동조 속에서 철저히 억압당하고 침묵을 강요받는 존재다. 이 시기의 자매는 ‘말할 수 없는 자’, ‘서사 밖의 존재’로서, 존재론적 결핍 상태에 있다. 이는 리쾨르의 개념을 빌려 말하면, “서사 이전(pre-narrative)” 상태의 주체로, 정체성과 자기 이해가 아직 구성되지 않은 존재다.
그러나 이들은 죽은 이후에도 서사 속에 남아 ‘말하지 못한 진실’을 반복하여 발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재구성하고, 타자(부사)로 하여금 응답하게 만든다. 즉, 죽음 이후에 비로소 자매는 ‘말하는 존재’, ‘자기 삶의 해석자’, ‘호소의 주체’로 재탄생한다. 이로써 이들은 존재론적 전환을 겪게 되며, 침묵의 주체에서 발화의 주체로, 삭제된 타자에서 기억되는 인격체로 전이된다.
장화와 홍련은 단지 비극적 유령이 아니라, 요청을 수행하는 귀환 주체로서 기능한다. 이들은 단순히 “죽은 자”가 아니라, 정의를 요청하는 “귀환하는 자”, 기억을 회복하고 서사를 완성하는 주체다. 이러한 귀환은 서사적으로는 ‘신원적 귀환’이며, 존재론적으로는 ‘삭제된 존재의 회복’이다. 이는 곧 억압된 여성의 정체성이 사회적 질서와 기억 체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전형적 장면이다.
특히 철산부사와의 대면 장면에서 장화와 홍련은 더 이상 피해를 입은 소녀가 아닌, 판결을 요구하고 이끌어내는 ‘주체’로 등장한다. 이들은 부사에게 탄원함으로써 공동체의 윤리를 재정의하도록 하고, 계모의 악행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 판단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장화와 홍련은 단순한 복수의 도구가 아니라, 기억의 재구성과 공동체 윤리 회복의 주체다.
<장화홍련전>은 억압된 기억의 회귀와 그것의 서사적 재구성이다. 작품은 여성 주체인 장화와 홍련이 생전 겪은 부당한 고통, 폭력, 침묵의 강요라는 억압적 기억을, 죽음 이후의 귀환과 호소를 통해 사회적 장면에 다시 호출하는 서사 구조를 지닌다. 이는 리쾨르(Paul Ricœur)가 강조한 “기억의 서사화(narrativization of memory)”의 전형적 사례로, 개인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서사를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화되고, 나아가 주체 정체성의 구성과 공동체 윤리의 재정립에 기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장화와 홍련은 계모의 반복적인 모해와 폭력, 부친의 방관, 오라비의 동조 속에서 자기 경험을 말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는 단지 물리적 억압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서사적 억압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기억은 ‘발화되지 못한 기억’이다. 기억은 고통의 내면에 침잠되고, 이는 존재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 결과, 장화는 용추 앞에서 말을 멈추고, 홍련은 물로 뛰어드는 ‘침묵의 몸짓’으로 자기 운명을 종결한다. 이때 기억은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정체성의 기반에서 삭제된다.
그러나 자매는 죽음 이후에도 서사에서 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혼의 형상으로 재등장함으로써, 생전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을 다시 불러내고 이를 명료하게 발화한다. 이 발화는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설득의 담론이 된다. 장화와 홍련은 부사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사회적 청자에게 기억의 진실성을 인정받는다. 이와 같은 재현 과정은 억눌린 고통이 사회적 감응과 반응을 유도하는 과정이며, 감정이 서사를 밀고 가는 동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기억의 재현은 단순한 재생이 아닌 재구성을 수반한다. 장화와 홍련은 단지 피해 사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재해석하여 사회적 책임을 요청하고, 제도적 응답(부사의 판결)을 유도하는 주체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자매는 고통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주체’로 재구성된다. 이는 리쾨르가 말한 ‘기억의 윤리’ 개념과 맞닿는다. 곧, 기억은 망각에 저항하는 실천이며, 공동체가 과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도덕적 물음이 된다.
<장화홍련전>에서 억압된 기억의 재현과 재구성은 단지 플롯 전개의 장치가 아니라, 존재와 진실, 윤리와 공동체에 관한 본질적 성찰을 유도한다. 고통의 기억은 서사 속에서 타자에게로 옮겨지며, 이는 공동체의 반응을 요청하는 정동의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장화홍련전>은 억눌린 여성의 기억을 ‘말해지는 것’으로 변화시키고, 억압의 구조에 균열을 내는 문학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장화홍련전>은 억압된 여성의 기억이 어떻게 말해지고, 해석되며, 사회적으로 의미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침묵과 삭제 속에 갇힌 기억이 발화와 귀환을 통해 정체성과 윤리를 재구성하는 이 과정은, 단지 개인적 회상의 차원을 넘어, 기억을 통해 사회와 공동체를 으로 전환하려는 문학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장화홍련전>에서 장화와 홍련은 죽은 이후에야 사회적으로 발화할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하며, 그 귀환 방식은 인간이 아닌 귀(鬼)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 재현 방식은 단순한 공포 연출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자의 귀환, 억압된 자의 상징적 복귀, 사회적 비가시성에 대한 저항이라는 깊은 서사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때 ‘귀’는 단지 유령이나 혼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타자, 서사적 배제의 결과로서의 형상으로 작동한다.
장화와 홍련은 계모가 들어온 후부터 존재가 삭제되었고 말할 권리가 박탈되었던 인물이다. 이들이 귀(鬼)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곧 억압된 존재가 비정상적 형상을 통해야만 자기 존재를 말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는 사회에서 정당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식되지 못한 자들이 ‘괴기화된 타자’로서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귀신은 생전의 고통과 억울함을 고스란히 지닌 채 출현한다. 이는 곧 고통의 서사적 잔여, 말해지지 못한 기억의 육화이며, ‘귀’라는 형식은 그 자체로 기억과 진실의 반복적 귀환이자 경고의 형상화이다. 즉, 귀는 억압과 폭력의 결과로 사회적 경계 너머에 존재하게 된 자의 귀환이다.
귀(鬼)는 단순히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무서움이라는 충격을 통해 독자와 청자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전략적 서사 장치이다. 사라 아메드(Sara Ahmed)의 ‘정동의 정치학’에 따르면, 감정은 사회적 질서를 조직하는 수단이며, 특히 공포는 경계를 설정하고 타자성을 지시하는 강력한 수사적 도구이다. <장화홍련전>에서 ‘귀’로 등장하는 장화와 홍련은 공포를 유발하는 동시에 정의를 요청하는 정동적 주체로 기능한다.
그들이 부사에게 나타날 때, 부사는 놀라 기절하고 결국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는 귀가 단순한 괴기적 존재가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강제로라도 청취하게 만드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즉, 귀는 침묵을 깬 존재이며, 억압된 기억의 발화를 정동적으로 유도하는 서사적 장치이다.
박시언34)은 장화와 홍련의 존재가 “꽃(花)에서 귀(鬼)로 전도되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여기서 꽃은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이며, 귀는 억압받고 분노로 귀환한 타자의 상징이다. 이러한 변환은 사회적 배반, 윤리적 방기, 정체성의 해체를 수반한다. 그들은 더 이상 딸, 누이, 소녀로 불리지 않고, ‘귀신’이라는 낙인을 통해야만 자신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귀(鬼)의 형상은 부정적 정체성의 고착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된 주체가 사회 구조의 모순을 폭로하고, 새로운 정체성의 가능성을 여는 서사적 균열이다. 귀는 끝내 억울함을 해명하고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한다. 이는 존재가 타자화되어야만 말해질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에 대한 역설적 저항이자 기억의 윤리학적 승화다.
신원 과정을 통해 계모는 처벌받고, 자매는 억울함을 해소받지만, 그들의 귀(鬼)로서의 존재는 단순히 ‘정의 실현’이라는 결과로 해소되지 않는다. 귀의 형상은 사회 구조가 야기한 폭력의 흔적, 치유되지 않은 역사적 트라우마, 여전히 말해야 할 기억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장화홍련전>에서 귀는 여성 주체가 죽음을 넘어 타자의 형상으로 돌아와,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와 힘을 회복하는 서사적 반전의 도구이며, 동시에 존재론적 복귀의 경로이기도 하다.
<장화홍련전>에서 ‘귀(鬼)’로서의 재현은 억압된 여성 주체의 존재를 문학적으로 복권하는 서사적 장치다. 그것은 침묵당한 자가 어떻게 귀환하여 공동체를 향해 요청을 수행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이며, 공포의 형상을 통해 사회적 무의식과 죄책감을 자극하는 기억의 힘이다. 이 작품은 ‘귀’를 단순히 퇴치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억되고 응답받아야 할 주체로 재구성함으로써, 여성 정체성의 문학적 재현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Ⅴ. 결론
<장화홍련전>은 억압된 기억과 상처의 발화, 그리고 귀(鬼)를 통한 복수 서사를 내포하면서 조선 후기의 가부장제 가족 구조 안에서 형성된 여성의 주체성과 윤리적 갈등을 드러낸 작품이다. 본고는 이 서사의 구조와 기억의 층위를 리쾨르의 삼중 미메시스 이론에 입각하여 분석함으로써, 억압된 기억이 어떻게 발화되고 서사화되는지를 탐색하였고, 이를 통해 여성 주체의 재구성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특히 ‘기억-서사-주체’라는 삼중 구조를 통해 고전 서사가 내포한 윤리적 요청과 치유의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첫째, <장화홍련전>의 서사 구조는 단순한 권선징악 구조를 넘어서, 기억의 부재와 왜곡, 재현을 통해 억압된 과거를 현재화한다. 장화와 홍련의 죽음은 계모의 악행이라는 외형적 사건 너머로, 가부장제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구조적 폭력을 함의하며, 그 기억은 유령적 방식으로 귀환하여 ‘귀(鬼)’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처럼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윤리적 재해석을 촉구하는 서사적 사건으로 작동한다.
둘째, 본 연구는 여성 정체성의 형성 과정에서의 서사적 균열과 회복의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장화와 홍련은 서사 초기에서 억압된 타자의 위치에 머무르지만, 귀로서 재현되는 순간 그들은 침묵의 피해자에서 발화하는 주체로 변모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위상의 변화는 기억의 서사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주체로 호명되는 이중적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당대 사회에서 여성 주체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셋째, 본 연구는 ‘정동 이행’과 ‘애도의 정치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텍스트가 독자에게 감정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며, 이를 통해 특정한 도덕 감정과 사회 질서를 재생산하는지를 분석하였다. 계모에 대한 집단적 분노, 홍련의 눈물, 그리고 장화의 하소연은 모두 텍스트 내부의 정동 흐름을 형성하며, 이는 독자와의 감정적 접속을 통해 ‘계모 처벌’이라는 봉합적 해결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원 구조는 실상 억압된 성 이념의 은폐 수단이기도 하다.35)
결론적으로, <장화홍련전>은 억압과 상처의 기억을 서사화하여 윤리적 응답과 치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고전 서사이다. 그러나 그 기억의 발화는 오로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성 주체의 구조적 부재를 드러내며, 동시에 그 서사는 철산부사의 판결이라는 남성 권력에 의해 ‘재서술’된 것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억압이 작동한다.36) 본 연구는 이러한 모순 속에서 고전 서사의 윤리성과 해석학적 생산성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장화홍련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억울한 죽음이 기억되기 위해, 여성은 반드시 유령이 되어야만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응답은 지금-여기서 기억을 어떻게 서사화할 것인가의 문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