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한국의 뇌신(雷神) 신앙과 술법의 역사적 양상과 민족종교적 의미

박종천 1 ,
Jong-chun Park 1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고려대학교 교수
1Professor,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orea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 Park Jong-chun, E-mail : baummens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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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Oct 31, 2018 ; Accepted: Dec 15, 2018

Published Online: Dec 31, 2018

초록

이 글은 한국에서 뇌신 신앙과 술법이 전개된 역사적 양상과 특징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로서, 역동적 종교문화의 이해를 위해 뇌신 신화를 통해 정치 권력을 초월적으로 정당화하거나 백성의 민생을 의례적으로 주관하는 국가권력 혹은 관방도교의 종교적 관심, 무교나 도교와 연관된 민간신앙 혹은 민족종교의 가능성 및 가뭄, 전쟁, 질병 등의 위기 혹은 문제상황에서 뇌신이 호출되고 신앙되는 다양한 종교적 관심의 유형을 파악하여 설명했다.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 국가의 신화에서 뇌신은 삼계를 다스리는 하늘의 지고한 주재자로 등장하고 지신 혹은 수신과 결합하는 신성혼을 통해 지상의 권력을 정당화했으며, 뇌신과 연관된 태일은 주변화되어 민간 도교 속에서 원시부려천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옥황상제 등의 종교적 상상력의 근간이 되었다. 고려부터 조선 중기까지는 도교적 재초와 농경사회의 기우제를 해결하는 의례적 차원에서 뇌성보화천존이 국가적으로 주목받았으나, 조선 전기에는 선사시대의 돌도끼가 뇌신의 벼락 도끼인 뇌부로 인식되면서 다양한 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신앙이 전개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뇌신이 전쟁 극복과 치병을 위한 존재로 부각되었는데, 전쟁 극복을 위한 다양한 도교 술법이 수용되기도 했고, 칠성검이나 사인검 등의 도검이 애호되었으며, 민간에서는 『옥추경』을 활용한 앉은 굿을 통해 면면히 영향력을 유지했다. 대순진리회를 비롯한 근대 민족종교에서는 후천개벽과 해원상생의 관점에서 뇌신의 위상이 초월적 주재자로서 조명되는 민간종교 혹은 민족종교로서 새롭게 재전유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ABSTRACT

I have examined some beliefs in the Thunder God and their magico-ritual techniques in Korea from the perspective of Korean national religious history and have classified these types of beliefs. In several myths from ancient nations in Korea, the Thunder God was the Supreme being governing the Universe including the sky, earth, and water, and he justified political power transcendently. In the medieval period, the Thunder God who was called ‘the Supreme God and Celestial Worthy of the Ninth Heaven Who Spreads the Sound of the Thunder Corresponding to Primordial Origin’ was the object of Daoist ritual for rain. In the early Joseon period, people believed that the prehistoric stone tools known as thunder axes were the tools of the Thunder God, and thereby were imbued with medicinal power. In the late Joseon period, beliefs in the Thunder God developed in various ways such as the overcoming of wars and healing of diseases. Modern Korean national religions including Daesoon Jinrihoe reappropriated the Thunder God called ‘the Supreme God and Celestial Worthy of the Ninth Heaven Who Spreads the Sound of the Thunder Corresponding to Primordial Origin’ from the perspective of the Great Opening (Kaebyŏk) and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Haewon).

Keywords: 뇌신; 민족종교; 술법;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대순진리회
Keywords: Thunder God; National Religions; Magico-ritual Techniques; the Supreme God and Celestial Worthy of the Ninth Heaven Who Spreads the Sound of the Thunder Corresponding to Primordial Origin; Daesoon Jinrihoe

Ⅰ. 머리말

동아시아 뇌신(雷神) 신앙에 대해서는 중국과 일본에서 신화학, 종교학, 미술사, 고고학, 문헌학 등의 분석을 기반으로 한 연구가 상당히 이루어졌으나,1)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다. 다만 조선 전기 소격서(昭格署)가 혁파된 뒤에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조선 후기에 민간에 확산된 『옥추경(玉樞經)』의 역사적 영향력을 주목하는 연구와 더불어,2) 증산 상제를 옥황상제(玉皇上帝)로 보는 타교단들과는 달리 중국 도교의 뇌신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으로 이해하는 대순진리회의 신학적 연구나 한국과 중국의 뇌신 신앙을 비교하는 비교종교학적 연구들이 일부 진행되었을 뿐이다.3) 그러나 선행연구에서 뇌신의 범위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에 국한되었으며, 한국 뇌신 신앙의 역사적 전개 양상과 특징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조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종교사에서 뇌신 신앙과 술법의 수용과 전개 양상을 검토하는 종교사적 접근을 시도하려고 한다. 선행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 이후 뇌신 신앙의 민간도교 혹은 민간종교적 측면에 대해서는 일부 해명되었으나,4)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뇌성보화천존으로 그 시기와 대상이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한국종교사에서 뇌신에 대한 종교적 관심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양상을 체계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뇌신 신앙의 종교사에 중국 도교의 역사적 맥락과 함께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비롯해서 고대의 신화와 종교문화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으며,5) 조선 초기까지 존재하던 도교(道敎)의 재초(齋醮) 신행과 기우제와 더불어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로부터 유입된 뇌신 신앙과 술법의 양상6)과 함께 군사, 의료, 문화, 종교 등의 관심에서 이루어진 뇌신 문화로 관심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뇌신 신앙과 술법의 종교사적 접근은 단순히 역사적 전개 양상만을 기술하거나 한국종교의 고유한 본질만을 과도하게 강조하기보다는 문화적 영향관계를 비교 검토하고 종교적 관심의 유형들을 고려하는 종교문화의 역동적 이해7)를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종교사적 서술의 과정에서 도드라지는 종교적 모티브를 유형화하여 뇌신 신화를 통해 정치 권력을 초월적으로 정당화하거나 백성의 민생을 의례적으로 주관하는 국가권력 혹은 관방도교의 종교적 관심, 무교나 도교와 연관된 민간신앙 혹은 민족종교의 가능성 및 가뭄, 전쟁, 질병 등의 위기 혹은 문제상황에서 뇌신이 호출되고 신앙되는 다양한 종교적 관심의 유형을 파악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종교사에서 뇌신은 문화적 정점 혹은 중심이 된 종교적 권위에서 점차 저항 혹은 타협을 하는 민간종교 혹은 민족종교의 종교적 상상력으로 확산되었으며, 외부에서 유입된 뇌신신앙 역시 문화적 필요 혹은 종교적 관심의 유형에 따라 독특하게 재전유(再專有, re-appropriation)8)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이는 한국종교사에서 뇌신이 이해되고 수용되는 민족종교적 의미이자 종교적 소구력에 따른 재전유 양상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Ⅱ. 고대 신화의 뇌신: 삼계를 다스리는 천제(天帝)

1. 뇌신: 우주를 다스리는 지고한 주재자 천신(天神)

동아시아에서 뇌신은 천둥과 번개를 주관하는 천신인데, 비와 기후를 조절하는 용신(龍神)으로 불리기도 했다.9) 천신으로서 뇌신은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지고(至高)의 주재자(the Supreme Being)로서 초월적 권위를 갖추어서 지상의 권력과 상응하며, 용신에 해당하는 특성은 기우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뇌신이 지닌 두 가지 성격은 모두 동아시아에서 군주의 권위를 종교문화적으로 정당화하는 특성으로서 기능한다.

세계의 신화 혹은 종교를 검토해 보면, 뇌신은 천신 혹은 천신의 아들이자 우주를 다스리는 지고의 주재자다. 예컨대, 고대 바빌로니아 신화의 마르둑(Marduk),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 인도 신화의 인드라(Indra, 帝釋天) 등은 모두 천신이자 신들의 왕이며, 천둥과 벼락으로 우주의 질서를 지배하는 주재자이자 최고신이다. 또한 뇌신은 천신으로서 대개 우주를 다스리는 신들의 왕인 경우가 대다수이다.10) 특히 고대 메소포티미아의 다양한 쐐기문자 토판이나 바빌로니아 창조신화인 『에누마 엘리쉬』를 중심으로 하는 고대 중근동 신화에서 태초에 마르둑이 티아마트(Tiamat)를 죽이고 해체할 때 사용했던 천둥과 벼락은 원초적 혼돈(chaos)에 우주적 질서(cosmos)를 부여하는 초월적이고 주재적인 권능의 상징이었으며,11) 유대-기독교 전통의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한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소리와 빛인 천둥과 벼락을 대체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라도 천둥과 벼락은 지고의 초월적 하늘에서 내려온 창조와 주재의 상징이고, 그것을 주관하는 뇌신은 우주 질서를 창조하고 주재하는 최고의 신적 존재다. 따라서 천신들 중에서도 천둥과 벼락으로 세계를 주관하는 뇌신은 ‘초월’과 ‘주재’의 종교적 권위를 지닌 지고한 존재로서 나타난다.

이렇듯 최고의 주재자는 천신이자 뇌신인 경우가 많고, 하늘은 물론 하늘로부터 땅으로 떨어지는 천둥과 벼락은 ‘초월성’과 ‘지고성’ 및 ‘주재성’의 권위를 상징한다. 자연현상으로서 천둥과 벼락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소리와 빛인데, 초월적이고 지고한 하늘에서 기원한 것이라서 하늘과 동일하게 신성한 권위를 갖는다. 예컨대, 메카의 카아바 신전의 성스러운 돌처럼 하늘에서 내린 우석(雨石)이나 운석(隕石) 등이 신성시되는 것도 그것이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12) 동아시아에서도 천둥과 벼락을 치는 뇌신의 뇌부(雷斧)는 갑골문, 금석문, 벽화 등에 초월적 주재의 권위와 연관되어 강력한 힘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13) 조선시대에 선사시대의 돌도끼를 뇌신의 뇌부로 이해하여 질병의 치유를 위해 사용했고 도검(刀劍)에 뇌신과 관련된 내용을 형상화하여 벽사(辟邪)용 기능을 부여했던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14)

2. 고조선의 뇌신과 신성혼을 통한 삼계 통합

동아시아의 뇌신 신앙은 중국 도교 전통에서 분명하게 부각되었지만, 그 역사적 연원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 한국의 고대 국가의 기원 신화들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고조선의 단군신화는 천신인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풍백(風伯), 운사(雲師), 우사(雨師) 등을 비롯하여 3천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태백산(太白山)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의 천손강림(天孫降臨)형 신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었다.15)

그런데 고조선 건국신화에는 두 가지 계열의 전승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에는 환웅의 아버지인 ‘환인’을 ‘제석’(帝釋)으로 풀이하는 주석이 있는데, 이는 번개를 뜻하는 바즈라(Vajra)를 무기로 삼는 뇌신 인드라(Indra)이며, 환웅이 웅녀와 결합하여 단군(壇君)을 낳는다. 이런 전승에 따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웅은 뇌신인 환인의 아들인 것이다. 이에 비해 『제왕운기(帝王韻紀)』 「전조선기(前朝鮮紀)」에서는 환웅의 손녀와 단수신(檀樹神), 즉 박달나무 신이 결혼해서 ‘단군’(檀君)을 낳으며, 상제(上帝) 환인의 자손인 단군은 ‘석제지손’(釋帝之孫)이 된다. 두 가지 전승이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인을 제석천 인드라로 이해함으로써 환인을 천신이자 뇌신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를 두고 불교 수용 이전에 고조선에서 제석을 모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광명숭배신앙과 연관하여 불교 수용 이후에 환인을 제석으로 설명할 만큼 태양신적 요소가 가미된 천신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다.16) 따라서 환인을 뇌신이자 천신으로 이해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17)

최근 고고학적 발굴자료를 활용하여 환웅을 풍백, 운사, 우사 등을 거느린 뇌부의 뇌신으로 설명하는 관점도 제기된 바 있다. 이 관점에 의하면,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천제의 수레가 강림하는 모습이 북두뇌거를 탄 뇌신 환웅의 모습이며, 환웅은 뇌신이자 천제의 아들이자 삼신 하느님인 북두의 화신으로서 강림한 것이다.18) 이런 설명은 북두칠성의 성수신앙과 연계하여 천제이자 뇌신인 환인과 환웅의 특성을 강화시킨다. 마치 그리스신화에서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와 제우스가 각각 천신과 시간신과 뇌신의 관계를 갖는 것처럼, 천신인 환인과 그 화신이자 뇌신인 환웅은 부자관계를 형성한다. 물론 아버지 세대신인 타이탄족이 아들 세대신인 올림푸스족에게 정복당하는 것과는 달리 양자 간의 갈등이 없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다.

한편, 환웅과 웅녀(熊女)의 혼인은 뇌신과 웅신(熊神)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19) 이는 기본적으로 천신과 지신(地神)의 결합이다. 이를 사회 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천신을 숭배하는 유목민과 지모신(地母神)과 연관된 농경민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20) 이는 단군신화의 모티브가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되는데, 만주 집안(集安)의 각저총(角抵塚)의 씨름 벽화를 보면, 나무 아래 곰과 호랑이가 씨름을 구경하는 장면이 나오고, 장천(長川) 1호분의 백희기락도(百戱伎樂圖) 중앙의 나무를 향하는 여인과 왼쪽 굴 안에 있는 곰이 웅크린 듯한 모습은 단군을 잉태한 웅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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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각저총의 씨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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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호랑이와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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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산신이 되는 단군이 수신(水神) 계열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감안하면, 환인-환웅-단군으로 계승되는 전승관계는 하늘, 땅, 물의 삼계(三界)를 아우르는 통합 우주질서의 주재자로서 의미가 있다.22)

단군신화의 모티브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확인되듯이, 신성혼(神聖婚)을 통해 우주의 각 영역들이 통합되는 내용은 부여와 고구려 신화를 비롯한 고대 국가의 신화들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 『구삼국사』의 「동명왕본기」를 인용한 『삼국사기』와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을 보면, 단군신화의 신화적 모티브는 천제의 아들로서 오우관을 쓰고 오룡거를 타는 뇌신 해모수가 수신 하백(河伯)의 딸 유화부인과 신성혼을 통해 주몽을 낳는 이야기로 재구성되기도 했는데, 이는 천신과 수신의 연금술적 결합과정이다.23) 또한 『삼국유사』 북부여조와 고구려조에는 부루(夫婁)가 각각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전승과 단군의 아들이라는 전승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말부터 조선 초기에는 북부여의 해모수와 고조선의 단군을 동일시하는 인식이 나타났다. 나아가 주몽의 어머니가 금와왕에게 유폐된 것을 수신혈(隧神穴)에서 제사를 지내는 방식으로 의례화한 것도 단군신화에서 곰이 삼칠일동안 굴에서 금기를 지킨 것과 상통하며, 주몽이 죽어서 승천한 것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처럼 주몽이 천신 계열의 자손임을 상기시키는데, 이러한 신화의 유사성은 주몽의 동명신화가 기본적으로 단군신화의 유산을 계승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24)

이런 해석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산신(山神)인 단군을 계승하는 송양(松讓) 세력과 수신과 연결되는 주몽 세력을 각각 유목과 농업의 신화적 요소로 분석하며 부계보다 모계의 차이를 주목하는 반론도 있다.25) 그러나 이런 해석도 하늘, 땅/산, 물/바다의 다양한 영역/세력이 결합하는 신성혼의 신화적 요소가 고대국가의 왕이 삼계를 통합하는 주재자가 된다는 사실을 지지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요컨대, 천신이자 뇌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지신이나 수신을 섬기는 세력과 신성혼을 통해 결합함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주재자가 된다는 단군신화의 모티브는 부여와 고구려는 물론 일본의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 신화 등 다양한 동아시아 천손강림신화의 기본형이 되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뇌신은 삼계를 다스리는 천제(天帝)로서 다양한 신화에서 유래된 신격들을 흡수하고 복속시키는 초월적 주재자인 것이다.

3. 태일과 칠성을 섬기는 고구려의 성수신앙과 천제관

한편, 고대 동아시아에서 뇌신은 북두칠성의 화신으로서 천제의 아들로 설명되기도 했다. 기린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뇌성보화천존은 북방 유목민의 채찍을 북채로 사용하고 치우문양의 갑옷을 입는 점으로 보아 북두뇌거를 타고 비상하는 고구려 동명왕이 원형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26) 동명왕신화는 뒤에 기린을 타고 벼락을 치는 뇌성보화천존으로 재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고구려의 동명왕신화는 천체의 중심인 태일(太一)과 칠성(七星)을 섬기는 고구려의 성수(星宿)신앙이 오두미도에서 일정하게 수용되는 과정에서 천신과 뇌신 및 태일신이 유사한 신격으로 연결되면서 그 이후 도교문화의 주변문화적 성격을 강화시켰다. 여기에 방상씨(方相氏), 병피태세(兵避太歲)와 형신(刑神) 치우(蚩尤)를 연결하면 전신(戰神)의 이미지까지 더해지는데, 이것이 후대 도교의 뇌법(雷法)의 역사적 기원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신화적 세계관은 무속적 기원을 지닌 방사(方士) 그룹을 통해 도교 혹은 선도로 전승되어 주류 유교문화에 대비된 주변문화로서 민간종교 혹은 민족종교의 강력한 동인을 형성하였다.27) 예컨대, 북극성과 연관된 태일신앙은 5천 년 전 치우 시대의 흔적이고, 동이계(東夷系) 세력이 중국 동북방으로 패퇴함에 따라 부여와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북방계 도교의 형성에 영향을 미쳐 이른바 부려(浮黎) 신앙을 낳았으며, 위(魏)ㆍ진(晉) 시대 이후 부려 신앙이 중원으로 흘러들어 제의도교의 근간이 되어 옥황상제 신앙을 배태했을 개연성이 크다.28) 또한 부려원시천존의 아홉 번째 자식인 대라천계의 옥청진왕남극장생대제가 구천천계에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으로 화신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영향이 『옥추경』에 반영되며, 명나라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는 강태공이 원시천존(元始天尊)의 명을 받아서 은나라 태사 문중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으로 ‘봉신’(封神)했다.29) 이러한 경향은 뇌신이 역사의 패자가 된 주변부 문화로서 승자의 중심부 문화에 의해서 포섭당하거나 저항하며 빚어내는 다양한 종교문화적 상상력과 양상을 잘 보여준다.

Ⅲ. 고려말 - 조선 전기의 뇌신 의례: 도교적 재초, 기우제, 뇌부(雷斧)

1. 도교적 재초의 뇌신과 농경사회의 기우제 의례

소격서는 고려 이후 조선 전기까지 국가적으로 과의도교(科儀道敎)를 행하는 기관으로서, 제단을 만들고 재초를 행하는 국가 기관이었다. 뇌신은 비, 바람, 구름 등을 대동하며,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가뭄이 들어 비가 내리지 않는 위급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기우제(祈雨祭)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비가 오지 않을 때 소격전 혹은 소격서에서 뇌성보화천존(雷聲普化天尊)에게 기도하거나 기우(祈雨)하는 초제(醮祭)를 행하였다.30) 뇌성보화천존을 대상으로 기우제의 재초를 지내는 청사(靑詞)에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기우초례는 중종대 소격서의 폐지와 함께 사라지게 된다.

조선 초기까지 소격서는 삼청성신(三淸星辰)에 대한 초례를 행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중국 도교를 본따서 태일전(太一殿)에서 제사를 모시는 제수(諸宿)와 함께 모시는 칠성(七星)이 여성신인 반면, 삼청전(三淸殿)에서 모시는 옥황상제, 태상노군, 보화천존, 재동제군(梓潼帝君) 등은 모두 남성신이며, 기타 제단에는 사해용왕(四海龍王)과 그 신장(神將), 명부시왕(冥府十王) 및 수부(水府) 제신들을 모셨다.31) 신들의 특성은 크게 보면 태일전, 삼청전, 기타 제단 등 3가지 종류로 구분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태일전에는 성수신앙, 특히 칠성신앙이, 삼청전에는 뇌신을 포함한 천신 그룹이 들어가며, 바다와 죽음의 영역은 별도로 구별되었다. 『경국대전』에 실려있는 『연생경』, 『태일경』, 『옥추경』, 『진무경』, 『용왕경』 등도 이러한 신들의 특성과 영역 구분과 연계되며, 근대 증산 교단의 신단 구성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표 1. 소격서의 신단 구성과 신격의 특성
소격서 신격 특성
태일전 칠성 성수신앙, 여성신
삼청전 옥황상제, 태상노군, 보화천존, 재동제군 천신 계열, 남성신
기타 제단 사해용왕과 신장, 명부시왕, 수부제신 바다와 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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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뇌부(雷斧): 선사시대 뇌신의 벼락 도끼

조선 전기에는 뇌부가 임질과 요로결석 등의 치료 약재로 수용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32) 예컨대, 세종대에는 세종의 임질(淋疾), 특히 석림(石淋)으로 불리는 요로결석을 치료하기 위해 뇌부를 널리 구할 것을 의관들이 건의하고 세종이 승낙했는데, 광해군대까지 뇌부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었다.33)

뇌부는 산이나 들에서 발견된 석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의 돌도끼인데, 전통시대 사람들에게는 벼락과 번개를 담당하는 뇌신, 즉 뇌공(雷公)의 벼락 도끼가 땅에 떨어진 것으로서 이해되었으며, 특히 벽사와 치료의 기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임신하지 못한 부인이 잉태할 수 있도록 하는 효험이 부각되었다. 본래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나 벼락 등이 초월적 하늘에서 비롯된 신성한 물건이라는 인식은 세계종교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34) 이런 인식은 손에 검을 움켜쥔 뇌신이 벼락과 번개를 만드는 북과 망치를 짊어진 모습으로 형상화한 김덕성(金德成, 1729∼1797)의 「뇌공도(雷公圖)」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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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김덕성의 뇌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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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도 8세기 전반에 당나라에서 이미 뇌공의 도끼라는 인식이 유포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뇌부는 조선에서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의 특성상 초월적이고 남성적인 위력을 지닌 존재로서 벼락과 연관된 신성한 물건으로 이해되었다. 물론 성리학이 착근되기 시작하던 16세기부터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기(氣)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적 산물이라는 합리적 이해가 비판적으로 제기되면서 신성성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전기까지 정부 차원에서도 치유의 약재로서 주목받았던 뇌부는 중종반정 이후 공식 기록에서 치료의 약재로 활용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다만 민간의 차원에서는 기자석(祈子石)처럼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뇌부는 조선 전기에 뇌신 신앙이 치료와 기복적 차원에서 실제로 활용된 사례의 하나로서 주목할 만하다.

Ⅳ. 조선 후기 뇌신 신앙과 술법의 전회: 전쟁과 치병의 술법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임진왜란을 비롯한 각종 전란과 홍수, 가뭄, 전염병 등은 사회적 차원과 자연적 차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재난에 대한 ‘기복양재(祈福禳災)’의 기원을 강화시켰다. 이에 따라 『옥추경』의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은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국가적 차원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기우제의 신격에서 점차 신선이 되기 위한 수련과 뇌법을 비롯한 술법의 신격, 화액을 막고 귀신을 녹여서 병을 치료하는 삭사와 치병의 신격으로 점차 변화했다.35)

1. 전염병을 치료하는 뇌신 신앙과 술법

조선 후기에는 학질(瘧疾, malaria)을 비롯해서 많은 전염병이 유행했다. 이에 따라 『옥추경』과 뇌성보화천존은 전란이 휩쓸고 전염병이 창궐한 17세기경부터는 민간에서 귀신을 부리고 학질 등 전염병을 막는 경전이자 신격으로 위상이 강화되어 갔으며, 이와 연관된 수련과 우보(禹步)와 주문(呪文) 수행 및 술법의 실천 등이 이루어졌다.

허균(許筠, 1569∼1618)의 한문소설 「장산인전(張山人傳)」에 나오는 대표적 도인 장한웅(張漢雄, 1519∼1592)은 그 아버지가 98세 때 집을 떠나면서 『옥추경』과 『운화현추(運化玄樞)』 등을 남겨주었는데, 장산인이 그것을 수만 번 읽고 나서 귀신을 부리거나 학질을 낫게 할 수 있었으나, 마흔 살에 지리산으로 출가하여 이인을 만나서 연마법과 도교의 수진법 관련 서적 10종을 읽었으며, 임진왜란에도 죽지 않는 영험함을 선보이다가 홀연히 떠났다.36) 이러한 내용은 『옥추경』 수련이 학질의 치료와 연관되며 위중한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인식을 잘 보여준다.

또한 내단 수행을 넘어서서 과의도교에서 잘 나오는 도교의식이나 주문 수행 등도 개인의 수행이나 치유에 활용되었다. 허균의 「남궁선생전」에 의하면, 조선 중기의 도사 남궁두(南宮斗, 1526∼1620)는 내단수행과정에서 일정한 성취를 보이자 벽에 삼재경(三才鏡)을 걸고 좌우에 칠성검(七星劍) 두 개를 꽂고서 우보와 주문을 외어 마귀를 물리치고 도(道)를 이루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단련한 지 거의 6개월 만에 단전(丹田)이 가득 채워지고 배꼽 아래서 금빛이 나오고 있었다.37) 칠성검은 북두칠성과 검결이 새겨져 있고 그와 연관된 뇌신 혹은 태일과 연결되어 벽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오숙(吳䎘, 1592~1634)이 1630년에 실제 사용했던 「축학귀문(逐瘧鬼文)」은 그러한 상황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다. 그는 학질의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축귀 의식을 했다. 오숙의 생애동안 3월 24일이 갑진(甲辰)일이고 4월 27일이 병자일인 해는 1630(인조 8)년뿐이다. 이 해에 3월 24일 갑진일부터 4월 27일 병자(丙子)일까지 34일 동안 학질이 극심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과 28수(宿)를 움직이는 축귀의 의식을 행했다.38)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을 비롯한 뇌신들이 전염병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의 근원이 되는 귀신을 쫓아내서 치료를 하는 것은 도교의학과 무의(巫醫)의 전통과 직접 연계된다.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맹인들이 『천수경』이나 『팔양경』 등 불교와 연관된 경을 간간히 외우지만 전문적으로 읽는 것은 『옥추경』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러한 전통이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전승되는 앉은굿 법사들의 법술에서 지속되고 있다.39)

현대에도 『옥추경』을 송독하는 법사들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을 중심에 둔 5천존 혹은 다양한 뇌부의 신장들을 깃발에 새기고 제단을 마련하여 의식을 행하는 경우가 있다. 대전 충청지역 앉은굿에서는 천존기를 세우고 천존제를 지내는데, 규모가 작은 기복굿과 위령굿은 『옥추경』 같은 축사경문을 송독하지 않지만, 규모가 커서 2~3일에서 4~5일간 진행하는 구병굿과 강신굿에는 축사경문을 송독한다.40) 규모가 큰 경우에는 대부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을 중심에 두고 『옥추경』의 48장을 나열하곤 한다. 충청지역 이용구 법사의 경우에는 천존기 중앙에 ‘봉청천상위대상로군옥청선경옥황상제천존지위’(奉請天上位大上老君玉淸仙境玉皇上帝天尊之位)를 최고의 신격으로 모시면서도 3일 이상 병굿에서 종이를 접어 칼로 도려낸 문양으로 굿당을 진설하고 팔문팔진과 금쇄진으로 설위(設位)한 뒤 3층의 천존단에 각각 4, 3, 2개상을 배열하였으며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을 중앙에 두고, 삼청삼경천존, 상청영보천존, 태청도덕천존, 옥청원시천존과 39신장을 함께 모셨다.41) 이러한 천존단 구성은 중국 도교적 특성이기도 하지만 만신전의 근대화 양상이기도 하다.

한편, 『옥추경』 수행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한중록』에 의하면, 1752(영조 28)년 사도세자(경모궁)는 18세 때 밤마다 『옥추경』을 읽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뇌성보화천존이 보인다고 말하면서 무서워하는 병이 발발했으며, 이후 1753년 경계증이 나고 1754년에는 고질병화 양상이 나타났다.42) 1762년 사도세자의 죽음과 함께 『옥추경』은 공식영역에서 금서화된다.

19세기 남평문씨의 고문서를 살펴보면, 귀신, 질병, 원귀 등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과 연관된 주문과 법술에 의해 저절로 없어진다는 인식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갈수록 뇌신은 한 맺힌 귀신과 질병을 치유하는 존재로 그 역할이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떨치면 금강이 없어지고 두 번 떨치면 귀신을 없애며 세 번 떨치면 질병을 없애고 네 번 떨치면 나무를 다섯 번 떨치면 모든 원귀(寃鬼)가 저절로 없어진다. 모든 부처님, 모든 하느님,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자리[位]를 지나가노라. 옴∼ 옴∼, 급급여율령! 사바하!”43)

2. 뇌신을 전신으로 호출한 『약포선조유묵』

조선시대의 전쟁은 승리를 위해 뇌신을 전신으로서 호출했다. 임진왜란은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신(戰神)에 대한 신앙과 도교적 술법을 수용할 만한 기반을 제공했다. 전신에 대한 신앙은 전신으로서 관운장에 대한 신앙과 의례를 관왕묘를 통해 실현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신인 뇌신에 대한 신앙과 술법도 과감하게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탁(鄭琢, 1526∼1605)의 『약포선조유묵(藥圃先祖遺墨)』은 그 구체적인 양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약포선조유묵』은 임진왜란 당시 정탁이 국난의 극복을 위해서 법술(法術), 부록, 주문, 수결, 기문둔갑(奇門遁甲)과 육임(六壬) 등 중국 병가(兵家)와 도교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술법을 필사한 책으로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주술-의학적 처방, 전쟁 부적과 작법, 뇌신들을 중심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는 신들의 도움을 받아 신병(神兵)을 제련하는 신장과 신병 제련을 위한 법술, 전쟁 수행을 위한 수결, 전쟁 승리를 위한 뇌법(雷法)44)의 주문, 전쟁시 군대의 배치와 포진을 위한 기문둔갑의 법술과 포국 등을 망라하여 수용했다.45)

먼저, 『약포선조유묵』에서는 전쟁과 직접 연관된 뇌부(雷部)의 신장(神將)들을 소환하는 부적들과 그 구성 및 효능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주수부격(主帥符檄)」, 「주수두뢰부(主帥斗雷符)」, 「뇌자부(雷字符)」, 「주수긴급가호(主帥緊急加號)」, 「주장화차부(主將火車符)」 등은 뇌법(雷法)을 수행하기 위해 도교에서 우주창조신인 반고진인(盤古眞人)이자 최고신인 원시천존이기도 한 선천도조(先天道祖) 원양상제(元陽上帝)로부터 조사(祖師) 살공대진인(薩公大眞人), 주수(主帥) 왕영관(王靈官) 등을 거쳐서 뇌공(雷公)과 오방만뢰사자(五方蠻雷使者)에 이르기까지 뇌부(雷部)의 모든 신장들을 소환하는 부적들이다.

또한, 이러한 부적들은 사용하여 천체의 움직임과 연계된 ‘답강보두(踏罡步斗)’의 의례적 보법(步法)을 하거나 도교 의식인 존상(存想) 혹은 존사(存思)를 실행하면서, 뇌부의 38명의 신장(神將)들을 부르는 「뇌부삼십팔수총주(雷部三十八帥總呪)」 혹은 신병(神兵)을 제련(祭練)할 때 쓰는 「상청경비조조국안민연병신주(上淸經祕助祖國安民練兵神呪)」 등을 염송하거나,46)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으로 보이는 ‘구천’(九天)이나 ‘구천현녀’(九天玄女)가 뇌부의 뇌신을 움직이는 오뢰법(五雷法)을 실천하기도 하고 전쟁을 수행할 신장과 신병을 제련하기도 하는데,47) 9번의 의식을 통해 뇌신이 몸에 실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운천감지”(運天撼地)를 염송하고 하늘을 우러르면 천문(天門)이 열리고, 땅을 의지하면 지호(地戶)가 찢어진다. 한 번 구르면 천지(天地)가 움직이고, 두 번 구르면 일월(日月)이 어두워지며, 세 번 구르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네 번 구르면 혼백(魂魄)이 몸을 떠나며, 다섯 번 구르면 산악을 옮기고, 여섯 번 구르면 36태광(台光)을 거두어 잡으며, 일곱 번 구르면 8만 내영(內影)을 거두고, 여덟 번 구르면 8만 4천 정광(精光)을 거두며, 아홉 번 구르면 뇌신(雷神)이 빨리 몸에 붙는다.48)

요컨대, 임진왜란은 전쟁 수행을 위해 뇌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뇌신 관련 신앙과 의식들을 수용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약포선조유묵』은 뇌신을 전신으로 호출했던 것이다.

3. 벽사(辟邪)의 사인검(四寅劍)과 삼인검(三寅劍)

조선시대 뇌신 신앙과 술법과 연관된 한 양상은 사인검과 삼인검 등에서 잘 나타난다.49) 이 검들은 양의 기운이 극대화된 날에 특별한 의식을 거쳐 제작하여 음귀를 제압하는 벽사의 효능이 있었다.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에 주조하면 삼인검이라 하고 인년, 인월, 인일, 인시(寅時)에 제작하면 사인검이라고 한다. 철이 백팔십년이 되었거나 천년고철 혹은 고사철(古寺鐵)을 가지고 5월 경(庚)일이나 신(辛)일에 주조하는데, 검을 만들면 북두성 방향으로 사찰이 세 곳 모여 있는 곳의 냇물에 담구어 사벽한 기운을 막으니 귀신이 두려워하며 복종한다고 한다. 또는 가을 경신(庚申)일 유시(酉時)에 김씨 성을 가진 장인 또는 경신(庚申), 신유(辛酉)년에 출생한 장인을 찾아서 태을(太乙) 방향에 화로를 설치하고 36번에 걸쳐 철을 불에 달구면서 매번 왼손으로 유자결(酉字訣)을 꼭 만들고, 검주문을 한 번 읊는다. 검면을 두들기기 전과 후에는 검면에 음양두(陰陽斗)를 새기고 북두칠성을 순(順)과 역(逆)으로 그린다. 은과 동 또는 순금으로 상감할 때도 꼭 주문을 읊는다. 잡인이나 개와 닭, 스님, 비구니, 효부(孝婦), 불결한 사람 등의 접근을 금한다. 검을 만들고 나서는 술, 과일, 흰닭, 향촉을 준비하여 단을 마련하고 검을 제사지낸다.50)

이러한 과정은 연금술적 의례의 진행과 같으며, 이를 통해 만들어진 검은 실용적 목적보다는 참마나 벽사의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목적이 강하다. 특히 검신에는 뇌신 신앙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북두칠성을 중앙에 배치하고 28수를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별로 7수씩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금입사 혹은 은입사 방식으로 칼에 새겨넣었을 뿐만 아니라 검결을 통해 뇌신 신앙의 의례적 술법을 잘 표현했다. 실제로 사인검 혹은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의 검신(劍身)에는 다음과 같은 검결(劍訣)이 새겨져 있다.

하늘은 정(精)을 내리시고 땅은 영(靈)을 도우시니

乾降精 坤援靈

해와 달의 상징이요 산과 물의 형상일세

日月象 岡澶形

천둥 번개 치면서 현좌(玄坐)를 움직이네

撝雷電 運玄坐

산같은 악(惡) 밀쳐내고 현참(玄斬)으로 바루리라

推山惡 玄斬貞51)

해모수와 유화의 고대 신화와 벽화에서 잘 나타나듯이, 하늘과 땅, 해와 달, 산과 물은 감리교구(坎離交媾)의 연금술적 상호작용을 보여주는데, 앞의 두 구절은 이러한 연금술적 연단과정을 통해 음과 양, 산과 물, 정과 영의 우주 질서가 구성됨을 보여준다. 이렇듯 초월적 질서와 권위를 상징하는 사인검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나오는 해모수의 용광지검(龍光之劍)을 상기시킨다. 이에 비해 뒤의 두 구절은 천둥 번개를 몰아치는 뇌신의 위력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술적 의례 효과를 잘 나타낸다. 여기서 현좌는 북극성으로 표상되는 원시천존, 옥황상제 혹은 현무대제(玄武大帝) 등이 머무는 천체의 중심을 말하며, 이를 통해 악한 문제 상황을 제거하여 바른 질서를 구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2년에 1번씩 제작되는 벽사용 검의 제작은 좌도(左道)라는 점에서 일정하게 견제받으면서 오랜 기간 동안 막대한 인력과 재정이 소모된다는 현실적 문제점으로 인해 중지되곤 했으나 대체로 왕실과 종친들을 중심으로 국한된 범위에서 지속되었다.

사인검은 1398(태조 7)년 이후 조선시대 내내 전승된 벽사용 검이다.52) 순양(純陽)의 기운이 충만한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제작한 검이다. 사인검의 제조는 16세기 초반인 연산군 대까지는 대규모로 제작된 바 있으나, 중종반정 이후에는 ‘좌도’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인력과 물자가 들어가는 문제점으로 인해 중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1506(연산군 12)년 정월 12일에는 사인검 2백 자루를 주조하라는 지시가 내렸으며, 5월 8일에는 시인(市人)을 가두고 사인검을 만드는 잡물을 바치도록 독촉하는 지시가 내렸다.53) 사인검의 제작을 위해서는 1개월간 산역(山役)을 하고 사장(私匠)을 모아야 하는 등 과도한 인력과 물자가 투입되었기 때문에, 사헌부 등에서는 정지를 건의했고 중종은 흉년임을 감안하여 그 건의를 실제로 수용했다.54) 그러나 1542(중종 37)년에는 흉년임에도 불구하고 중종은 이미 사인검 주조가 상당히 진행된 점을 감안하여 그대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재앙을 물리치는 ‘좌도’(左道)라는 점을 들어 비판했던 승정원과 사헌부의 건의에 따라 담당 환관의 잘못을 문책하고 마침내 몇 달간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역사를 멈추게 된다.55) 이를 계기로 해서 사인검 제조는 흉년에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인력과 물자가 투입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대규모로 공식 제작하는 것이 잠시 중지되었다.

그러나 사인검과 유사한 삼인검은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실제로 연산군 7년인 1501(신유)년에는 조관들이 역사를 감독하고 일을 하는 군사가 수백 명에 이르며, 대장간을 궁중에 설시해서 밤낮 작업을 하는 데 대한 대사헌 성현(成俔)의 비판적 상소가 있었다.56) 소요 예산도 상당했다. 1686(병인)년 숙종은 삼인검 제작에 물력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내수사(內需司) 비용으로는 충당이 힘든 점을 감안하여 선혜청(宣惠廳)의 쌀 30석(石)과 돈 2백 냥(兩) 및 호조와 병조의 면포(綿布) 각 2백 필(匹)을 제급(題給)하도록 분부했다.57) 이로써 삼인검 제작비용을 기본적으로 내수사에서 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수사는 기본적으로 왕실 재정을 담당하는 곳이므로 삼인검이 주로 왕실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고, 재정을 담당하는 선혜청과 호조 및 군사를 담당하는 병조의 재정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검은 그 이후로도 주로 왕실에서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용도로 지속적으로 제작된 사실이 확인된다. 예컨대, 1478년 창원군(昌原君) 이성(李晟)이 고읍지(古邑之)를 살인한 사건에서 삼인검과 삼진검을 집안에 갖고 있었다는 것58)과 신흠(申欽, 1566∼1628)이 1614(甲寅)년 정월에 선조의 둘째딸 정숙옹주와 혼인한 그 아들 동양위 신익성이 주조해 준 사인검을 받고 사인도가(四寅刀歌)를 지은 사례 등은 왕실이나 종친 혹은 왕실과 직접 연계된 사람들이 사인검이나 삼인검을 소장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59)

한편, 신흠의 사인도가는 사인검이 천신과 통하며 귀신을 막는 효과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유언호(俞彦鎬, 1730∼1796)는 삼인검으로 귀신을 물리치는 실제 경험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장유(張維, 1587∼1638)의 삼인검부(三寅劍賦)와 온양 정씨로서 선도에 조예가 깊어 『해동이적』의 서문을 쓴 동명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삼인검가(三寅劍歌)를 보면, 삼인검은 벽사의 효능이 있어서 이매망량(魑魅魍魉)을 다스리는 힘이 있다.60) 이 검들은 칠성검(七星劍)으로도 불리는데, 앞서 살펴본 남궁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칠성검은 뇌신과 연계된 칠성신앙과 우보와 주문을 통해 신화-의례적 실천을 완성하게 된다.

Ⅴ. 근대 민족종교의 뇌신 신앙과 술법의 재전유 양상

1. 뇌신 신앙과 술법의 유입 계기와 전승의 특성

조선시대, 특히 중종 이후 관방 도교의 활동이 대체로 정지되면서 뇌신 신앙과 술법은 공식적 영역에서는 군사 활동과 관련된 부분에 극히 파편화되고 위축된 상태로 일부 인사들에 의해 개인적 차원에서 비공식적으로 전승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배층은 벽사 목적으로 뇌신과 연관된 의례적 도검을 만들거나 『약포선조유묵』처럼 전쟁 수행을 위한 뇌법 등의 도교 술법을 수용했다. 민간에서도 전쟁과 질병과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뇌신이 지속적으로 호출되었다. 『옥추경』이 고려시대에 들어온 뒤 도교적 재초 형태로 뇌신 신앙과 의례가 지속되었으나, 조선 전기 소격서 폐지 이후 민간으로 전승된 『옥추경』이 계룡산본처럼 조선적으로 재구성된 판본으로 재구성되거나 법사들에 의해 자유롭게 재전유되어 앉은굿의 의례적 수행에 활용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뇌신 신앙과 술법은 어떤 계기를 통해 어떤 경로로 유입 혹은 전승되었는가? 『옥추경』의 수용, 임진왜란과 명청교체, 조선말기 난단도교의 등장 등이 중국으로부터 뇌신 신앙과 술법이 유입되는 계기였다. 『옥추경』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계기로 금서가 되면서 민간의 법사들을 통해 암암리에 확산되고 『약포선조유묵』의 경우처럼 명나라로부터 뇌신 신앙과 술법이 비밀리에 파편화된 채 전승되었던 것처럼, 도교와 선도 관련 자료들은 비밀리에 혹은 파편화된 채 전승되었으며, 『약포선조유묵』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민간에서 일용유서(日用類書)나 그것이 파편화된 형태로 일부 유입이 되었거나 조선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선서의 형태로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있다.61)

임진왜란과 명청교체기는 뇌신 신앙과 연결된 명나라의 술법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명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 명나라의 도류(道流)들은 율력, 산수, 음양, 성명 등에서부터 태을, 기문, 육임 등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술법들을 조선에 전수하거나 직접 조선으로 건너와서 비밀리에 구두로 전수해 주기도 했는데, 조선 사람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거나 배우더라도 깊이 감추는 경향이 심했다.62) 명나라 황제의 아들로서 조선으로 건너온 지리산장자(智異山長者), 풍수와 병법으로 유명했던 성거사(成居士)로 불리는 장세성(張世成)과 그 손자 장숙(張䎘), 천문과 책력 및 삼식(三式)으로 유명했던 서도(西道)의 이인(異人), 역점(易占)과 진법(陣法)에 통달한 민응성(閔應聖)과 어영대장까지 지낸 장지항(張志恒, 1721∼1778)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의 사례는 『약포선조유묵』처럼 명나라로부터 유입된 뇌신 술법의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으나, 뇌신과 연관이 있는 병법이나 기문둔갑 등의 내용을 전수한 사실을 잘 보여주며, 특히 군사활동과 연관되어 활용된 술법이 민간으로 유포되는 단서를 제공한다.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 술법은 이러한 과정에서 일정한 변용을 거쳐 재전유가 일어나서 민간도교 혹은 민족종교의 모태가 되었다.

증산 교단의 창시자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은 다양한 주문과 부적을 만들어서 사용한 바 있다. 예컨대 강증산이 만든 『현무경』의 부적들은 새롭게 창조한 부분도 있고 『도장(道藏)』에 들어있는 도교 부적들의 영향을 수용하여 독자적으로 재전유한 부분도 있다. 『칠성경(七星經)』63)은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을 일부 수용한 것인데,64) 『도장』을 직접 수용한 것이 아니라 『각세신편팔감(覺世新編八鑑)』 6권에도 들어있는 도교의 북두주(北斗呪)를 수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태일과 칠성을 신앙대상으로 하는 고구려 계통의 성수신앙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전승되다가 조선 말기 민간도교와 더불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난단도교(鸞壇道敎)의 영향을 일부 받아서 새롭게 재전유된 것으로 보인다. 북두주를 수용하면서도 서양의 도수를 조정하기 위해 “七星經에 文曲의 位次를 바꾸고”65) 증산의 독특한 공사(公事)의 실천을 위해 활용하는 내용은 그 종교적 맥락을 새롭게 설정하여 변화시키는 재전유로서 일방적 수용이나 계승이 아니다. 실제로 증산 자신도 공사라는 완전히 새로운 실천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민간도교의 전승들을 활용하면서도 언제나 일방적 수용이나 계승이 아닌 창조적 재전유로 이해하였다.66)

원불교의 지도자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1)는 선돌부인을 찾아가서 『영보국정정편(靈寶局定靜篇)』을 얻었는데, 이 책은 이옥포(李玉圃)가 정사초(鄭思肖, 1241∼1318)의 『태극제련내법의략(太極祭鍊內法)』67)을 입수하여 유교적 관점을 가미하여 재전유한 것으로서, 증산 교단의 유파인 삼덕교(三德敎)의 『생화정경(生化正經)』과 송규의 『수심정경(修心正經)』은 그것을 일정하게 재전유했다.68) 이는 중국의 도교 서적이 이옥포나 강증산 등을 거쳐 증산 교단의 유파와 원불교에 일정하게 수용되고 변용되는 재전유의 양상으로 주목할 만하다.

강증산의 경우는 세 가지 계기를 통해 이러한 난단도교나 일용유서 혹은 민간도교화된 전승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다른 민족종교의 전승과 재전유에도 고려해 볼 만한 과정이다. 먼저 강증산은 오래된 선도(仙道)의 전통을 계승한 전북 서부지역의 선맥(仙脈), 특히 남궁두로부터 권극중으로 이어지는 선도의 전통을 계승한 외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69)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외가로부터 뇌신 신앙과 술법을 비롯한 다양한 선도 계통의 전승을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1897년에는 처남인 정남기 집에서 상당한 자료를 접한 뒤 글방을 열었는데, 이때에도 유불선 삼교전통과 음양과 참위 등 민간 차원에서 유포 혹은 전승되었던 다양한 신앙과 술법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70) 나아가 외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다양한 전승들을 접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25세인 을미년 봄에는 고부지방 유생들의 동학농민운동 평란 축하 두승산 시회(詩會)에서 한 노인으로부터 작은 책을 전해 받아 통독한 적이 있다.71) 강증산이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주문이나 동학 가사를 일정하게 재전유하는 것도 동학도와 만나는 계기를 통해서 접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증산이 태좌법(胎坐法)을 써서 제자들을 교육한 기록도 나오는데,72) 이러한 수행을 주문과 부적 및 다양한 공사(公事)에서 나타나는 술법 등과 연결지으면, 내단과 법술을 결합하는 정사초의 도법융합의 경향을 독자적으로 재전유한 양상이 드러난다.

2. 근대 민족종교의 뇌신 신앙과 술법

한국의 근대 민족종교는 전래하는 선도 전통과 명나라로부터 유입된 도교적 신앙과 술법 및 근대에 유입된 난단도교와 일용유서 등으로부터 다양한 자원을 수용했으나 그것을 민간도교 혹은 민족종교적 관점에서 재전유했다. 특히 중심문화 혹은 정점문화에 의해 배제되거나 억압된 주변문화 혹은 저변문화의 관점에서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개벽(開闢)의 방식으로 재전유했다.

그 대표적인 양상은 한 맺힌 존재들을 해원(解冤)하는 강증산의 공사(公事)에서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을 통해 뇌신이나 천신을 비롯한 다양한 신격들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을 중시했던 강증산은 다양한 공사를 통해서 원한 맺힌 존재들을 해원하고 초혼장(招魂葬)을 통해 각 지역, 종교 전통별로 주관하는 사람들을 특정하여 봉신했다. 『봉신연의』에서 강태공이 중심문화 혹은 승자의 관점에서 주변문화 혹은 패자를 위무하며 통합질서로 수용하려 했던 반면, 강증산은 주변문화 혹은 원한 맺힌 자의 관점에서 해원상생과 후천개벽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재전유양상을 드러냈다. 이런 특징들은 무속과 도교 혹은 선도의 기원을 갖고 주변화된 민간도교의 영향의 수용과 주변문화와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민족종교적 재전유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민간 도교는 중국 도교의 신보(神譜) 중 동방 이족신계를 선별하여 숭배하는 경향이 있는데,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과 칠성과 관련된 태을신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며,73) 조선 후기부터 더 주목받았던 신격들로서 옥황상제, 북두칠성, 태을천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등은 한국 민속에서 숭배된 신격이거나 한국 민간 도교의 숭배 대상과 거의 일치한다.74) 소격서 폐지 이후 민간화 혹은 민속화된 도교적 신앙은 대체로 무속과도 연관되는 동이족 계통의 도교 신격들이 많으며, 이는 동방 방사들을 통해 중국 도교 초기 경전을 형성했던 내용과 잇닿아 있는데, 고종 대 난단도교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1856년 간행된 최성환의 『각세신편팔감』에는 사위 성호(聖號)로 옥황대천존현궁고상제(玉皇大天尊玄宮高上帝), 심성부감태을구고천존(尋聲赴感太乙救苦天尊),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옥허사상현천상제금궐화신천존(玉虛師相玄天上帝金闕化身天尊) 등이 나오는데,75) 이는 『옥추경』 이후 다양한 형태로 민간도교화되었던 이들 천신 혹은 뇌신에 대한 관심을 분명하게 환기시켰다. 실제로 동학의 최제우는 호천금궐상제(昊天金闕上帝), 곧 옥황상제에 대한 민간의 신앙 전승을 수용하여 시천주(侍天主)의 새로운 재전유를 시도했고,76) 증산교단 중 상당한 종파가 강증산을 옥황상제로 재전유한 반면, 대순진리회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을 재전유하는 것과는 별도로, 구천대원조화주신이라는 새로운 신격이 등장하는 특징도 있다.77) 특히 증산의 신격 재전유는 기독교와 유사하게 직접 인간으로 화신한 뇌신 혹은 천신 신앙이라는 독특한 면모를 선보였다.

특히 역사적으로 실패한 단주(丹朱)를 수명자로 설정하는 독특한 공사 사상, 태을과 칠성이나 뇌성보화천존 등 동이계 신화들과 연관된 주문 등은 모두 증산 교단의 민간종교 혹은 민족종교적 특색을 잘 보여준다. 강증산은 다양한 민간도교 혹은 민족종교적 신격들을 과감하게 포섭해서 주변문화로 억눌린 민간문화 혹은 민족문화를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해원이 필요한 피해자 정서를 강렬하게 움직였다.

예컨대, 태을주의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은 북두성과 관련된 도교의 최고신78)인 태을 혹은 태일을 천신 중에서 최고의 주재자로서 새롭게 재전유하는 양상을 선보였다. 본래 원군(元君)은 음양을 조절하고 귀신을 부려 비를 뿌리는 대신선을 말하거나,79) 도를 이룬 남자를 칭하는 진인(眞人)에 견주어 도를 이룬 여자를 가리키거나 도교의 여신(女神)을 뜻한다.80) 따라서 천상의 최고 주재자보다 격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강증산은 전통적 태일 혹은 칠성신앙81)을 넘어서서 과감하게 해원이 필요한 대상을 천지공사에 참여하는 신격이자 주체로 변모시키는 창의성을 보였다. 대순진리회에서는 단주의 해원도수는 회문산 오선위기혈(五仙圍碁血)과 연관되므로 회문리로 들어온 도주 조정산과 연관 짓는데, 이에 따라 조정산을 옥황상제로 이해하는 신앙이 있다.82) 따라서 만약 태일이 옥황상제와 연관된다면 조정산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으며, 태일 아래 칠성을 주재하는 칠성여래대제군(七星如來大帝君)이자 북두구진(北斗九辰)의 중천대신(中天大神)으로서 하늘[金闕]과 땅[崑崙]을 연결시키는 존재가 있게 된다.83) 아울러 서양의 도수를 조정하기 위해 “七星經에 文曲의 位次를 바꾸거나”84) 『칠성경』과 『대학』의 송독을 도통이나 치병에 활용하는 술법적 실천을 수행한 것도 독특한 재전유 양상이다.

한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나 태일 등의 신앙 및 술법 전승을 종교적으로 재전유한 강증산의 사상과 실천을 극대화한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증산 교단들은 자연스럽게 고대 동이계 신화전승으로부터 후대 도교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천제 혹은 뇌신과 천신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신격 이해를 갖추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조선 후기에 유행한 『옥추경』을 통해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은 이미 옥청진왕의 화신이라는 신앙이 있었는데, 증산 교단에서 그것을 수용하여 재전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무극도를 만든 도주(道主)가 1928(무진)년 포유문을 선포하던 당시에 교단에서 전승하던 주문들에는 ‘옥청진왕’과 그 화신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을 받드는 내용이 유독 자주 나와 주목을 요한다. 특히 대순진리회는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오던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위상을 구천대원조화주신이자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높였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도교적 전통의 신격을 수용했다.85) 이에 대해 기존 도교 전통에서 뇌성보화천존은 구천상제처럼 최고의 지고한 주재자라는 신격의 위상을 지니지 못했다는 비판적 성찰이 제시되기도 했다.86)

이러한 양상은 주문의 주된 봉헌대상의 다양성과 연관성에서도 확인된다. 구령삼정주(九靈三精呪)에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음양경(陰陽經)과 운합주(運合呪)에는 ‘태일성철(太一聖哲)’, 개벽주(開闢呪)는 ‘태일성철(太一聖哲)’과 ‘구천상세군(九天上世君)’, 오방주(五方呪)에서는 ‘태일성철(太一聖哲)’과 ‘삼청진왕(三淸眞王)’ 등이 주 봉헌대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들 간에는 상호간 독특한 함의와 더불어 중층적이고 유기적인 연관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신학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대순진리회는 뇌신을 지고의 주재신으로 설정하고 강증산을 인간으로 화신한 뇌신인 구천상제로 신앙함으로써 민족종교의 근대적 면모를 일신하는 한편, 이러한 구천상제 아래 다양한 신격들을 천상의 위계질서 아래 통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재전유를 선보였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서 (1)옥황천존신, 옥황상제, (2)성신, 노성신, 노신, 칠성신, 일월성군신, 문창제군신, 남정성신, 용궁칠성신, (3)선녀신, (4)산신, 산천신, 산천장군신, (5)용신, 사해용왕신, (7)수신, 수부신, 수령신, (8)토지신, 토신, (9)성황신, 서낭신, (10)오방신, 오방신장신, (11)신장신, (12)명부시왕신, (13)조왕신 등 다양한 신들을 섬겼다.87) 이러한 신격은 대체로 송 대에 유행했던 옥황상제를 비롯하여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대중성을 공유한다.

한국의 근대 민족종교에서는 이러한 대중적 신관을 개혁하는 두 가지 상이한 방향이 나타났다. 전통적인 유교가 비인격적 원리로서 태극이나 리를 주장하는 데 비해, 근대 민족종교는 인격적 하느님을 되살렸다. 다만 최제우는 신비의 인격천을 향해 나아간 반면, 강증산은 권화(avatar)의 인격천을 활성화시켰다.88) 특히 강증산의 경우에는 원시천존처럼 최고신이면서도 멀어진 신 혹은 사라진 신(Deus Otiosus)이 아니라 수많은 사명신(司命神)을 관장하는 주재자로서 직접 활동하는 최고신으로서 구천상제로 등장한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나아가 강증산은 최고의 주재신 아래 민간의 다양한 신격들을 일정한 원칙에 따라 부여한 위계질서 안에 통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재전유 양상을 선보였다. 예컨대, 진법주(眞法呪)는 “어느날 시루봉에서 진법주(眞法呪)를 외우시고 오방신장(五方神將)과 48장과 28장 공사(公事)를 보셨도다.”89)라고 했는데, 증산 교단들은 진법주에 등장하는 신격들을 신단에 모셔서 제사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대순진리회 본부도장의 영대(靈臺) 신단(神壇) 구성과 신격의 특성을 보면, 동이계 신격들을 중심으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다양한 신격도 음양합덕으로 재전유하여 통일적 신계보를 구성했다. 특히 대중성과 민족성이 높은 신격으로서 도교 혹은 불교에서 유래한 옥황상제와 서가여래90)를 가장 높은 위상의 하감지위(下鑑之位)로 설정하고 조상신과 연결된 유교 혹은 무속적 신격도 하감지위로 높이면서도, 그 조상이 포괄하는 범위 때문에 신격의 실제 위상은 다른 자연신 혹은 사명신의 범주인 응감지위(應感之位)로 조정했으며, 사명신들의 아래에서 특정임무를 수행하는 신격은 다시 내대지위(來待之位)로 분류하여 3단계로 위상을 설정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것은 구천(九天) 혹은 구천상제로서 증산 자신이 최고 주재자로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 놓는다는 점이다.91)

표 2. 대순진리회 본부도장의 영대 신단 구성과 신격의 특성
위격 신명 신위 특성 및 배례
元位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조성옥황상제>, (서가여래) 下鑑之位 上帝, (如來)
법배4회
<평배4회>
(평배3회)
再位 명부시왕, 오악산왕, 사해용왕, 사시토왕 應感之位
평배2회
三位 관성제군, 칠성대제, <직선조>, 외선조 應感之位<下鑑之位> 帝君, 大帝, 先祖
<직선조 하감지위>
평배2회
四位 칠성사자, 우직사자, 좌직사자, 명부사자 來待之位 使者
향남읍
48장 구천상제 호위 직속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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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추경』이 전래된 이후 국가적 의례인 재초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등장했던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은 소격서 혁파 이후 민간의 사적 영역으로 축소되었으나, 전쟁과 가뭄 등의 재난을 거듭하면서 민간에서 종교적 위상이 높아졌다. 1888년 계룡산본 『옥추경』 간행에 와서는 구청응원뇌성보화천존의 권속 48장이 정착되었으며, 뇌부의 신장들은 증산교단에 수용되었다.92) 다만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 뇌부의 신장들뿐만 아니라 다른 뭇 신들을 거느리는 지고한 초월적 주재자인 구천상제로 설정된다는 점이 대순진리회의 독특한 재전유양상이다.

또한 중앙의 구천상제를 중심으로 원위(元位), 재위(再位), 삼위(三位), 사위(四位)로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오던 신명들의 위계질서를 새롭게 재구성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93) 이러한 위계질서는, 소격서의 신단 구성이 성수신앙, 천신, 바다와 명부 등 영역적 계열화를 이룬 반면, 상제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계열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구천상제, 옥황상제, 석가여래 등 상제 혹은 여래 급의 원위 아래 자연신들을 왕(王) 급의 재위에 두고, 그 아래에는 인간으로서 신으로 봉신된 제군(帝君), 대제(大帝), 선조(先祖) 등을 삼위로 삼고, 사위에는 재위와 삼위를 돕는 사명신으로 사자(使者)들을 두었다. 요컨대, 대순진리회는 최고 주재신, 자연신, 인간신, 사자급 사명신의 순으로 수직적 계열화를 이룬 신명의 위계질서를 이룸으로써 신명의 새로운 재전유와 통합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신명의 구도는 원불교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은 ‘천지하감지위, 부모하감지위, 동포응감지위, 법률응감지위’를 제시했는데, 이는 사은(四恩)을 천지와 부모의 종적 은혜와 동포와 법률의 횡적 은혜로 나누고 그에 따라 기도의 대상을 각각 하감과 응감으로 분류한 것인데,94) 사은의 교리 체계 아래 증산 교단의 신격의 위상 중 내대지위를 제외하고 하감지위와 응감지위만을 새롭게 재전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원불교에서는 불법연구회 시기에 박중빈의 지도에 따라 『옥추경』 경문을 필사하고 구인단기도에서 특정한 조직 체계에 따라 『옥추경』 원문을 분담하여 집단적으로 옥추경 주문수행을 직접 활용했는데,95) 이것도 『옥추경』을 독특하게 재전유한 것이다.

요컨대, 동아시아의 신화와 종교문화 자원 안에서 뇌신 신앙과 술법이 주변화된 신화적 상상력과 종교문화적 방식을 민간종교 혹은 민족종교의 차원에서 후천개벽과 해원상생 등의 방식으로 재구성되는 양상은 한국 근대 민족종교의 특징이지만, 종교문화의 인지적 자원을 최적화하여 뇌신 신앙과 의례적 실천을 효과적으로 재전유하는 방식은 강증산의 사상과 실천에서 크게 부각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Ⅵ. 맺음말

이 글은 그동안 본격적으로 탐색되지 않았던 한국의 뇌신 신앙과 술법이 전개되는 역사적 양상과 특징을 종교사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다양한 시대적 양상과 특징을 정리했으며, 역동적 종교문화의 이해를 위해 뇌신 신화를 통해 정치권력을 초월적으로 정당화하거나 백성의 민생을 의례적으로 주관하는 국가권력 혹은 관방도교의 종교적 관심, 무교나 도교와 연관된 민간신앙 혹은 민족종교의 가능성 및 가뭄, 전쟁, 질병 등의 위기 혹은 문제 상황에서 뇌신이 호출되고 신앙되는 다양한 종교적 관심의 유형을 파악하여 설명했다.

고조선과 부여 및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 국가에서는 삼계를 다스리는 천제라는 모티브와 연관하여 우주를 다스리는 지고한 주재자로서 뇌신신화가 전개되었다. 특히 뇌신은 천신으로서 지신 혹은 수신과 신성혼을 통해 삼계를 통합했는데, 이는 후대 동아시아 천신강림신화의 원형으로서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태일과 칠성을 섬기는 고구려의 성수신앙은 신화 속에서 뇌신 혹은 천신과 연계되며, 방상씨, 병피태세, 치우 등과 연계하여 전신의 이미지를 갖게 되고, 북방계 도교의 부려 신앙을 파생시키는 한편, 봉신 설화를 통해 주변화된 민간 도교의 모태 속에서 원시부려천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옥황상제 등으로 연결되면서 주변부 종교문화의 상상력으로 부각되었다.

고려부터 조선 전기까지 이어지는 중세에는 소격서에서 이루어지는 도교적 재초와 농경사회에 필요한 기우제를 통해 관방도교 혹은 과의도교를 통해 뇌신 신앙과 의례가 이어졌으며, 조선 전기에는 선사시대의 돌도끼가 뇌신의 벼락 도끼인 뇌부로 인식되면서 다양한 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신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치료용 약재로 쓰이기보다는 민간 차원의 기자(祈子) 풍습에 일부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을 비롯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뒤 이어진 홍수, 가뭄, 전염병 등의 재난이 기복양재의 종교적 소망을 극대화시켰고, 이에 따라 전쟁 극복과 치병을 중심으로 하여 『옥추경』과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 민간에서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17세기 이후에는 전염병의 창궐이나 악귀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수련을 하거나 칠성검이나 사인검 등의 도검을 통해 뇌성보화천존, 칠성과 28수의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영조 대 이후 공식적으로 금서화된 『옥추경』은 민간으로 퍼져서 법사들의 앉은굿을 통해 뇌성보화천존에 대한 신앙과 주문과 법술로 면면히 계승되었다. 임진왜란은 전신으로서 뇌신의 위력을 구현하기 위해 뇌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도교 법술들을 수용하게 했는데, 다양한 의례와 주문 및 부적을 통해서 뇌부의 신장들을 제련하는 방법들이 비밀리에 전수되기도 했다.

뇌신 신앙과 술법은 고대부터 전래되는 선도의 전통과 더불어 삼국시대에 유입된 도교 및 고려시대에 수용된 『옥추경』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는 가운데, 임진왜란과 명청교체기의 위기상황에서 명나라로부터 조선으로 전수된 도교 경전과 술법을 통해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파편화된 형태로 수용되고 변용되어 은밀하게 유통되었으며, 고종 대에 새롭게 등장한 난단도교를 통해서도 일정하게 전승되었다.

한국의 근대 민족종교는 그러한 전승을 수용하는 한편, 중심문화 혹은 정점문화에 의해 배제되거나 억압된 주변문화 혹은 저변문화의 관점에서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개벽(開闢)의 방식으로 재전유했다. 특히 강증산은 주변문화 혹은 원한 맺힌 자의 관점에서 해원상생과 후천개벽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재전유양상을 드러냈다. 이런 특징들은 무속과 도교 혹은 선도의 기원을 갖고 주변화된 민간도교의 영향의 수용과 주변문화와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민족종교적 재전유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근대의 종교문화적 지형 가운데 뇌신신앙을 재구성하여 기존의 뇌성보화천존을 최고의 초월적 주재자인 구천상제로 새롭게 재전유하면서 민간의 다양한 신격들을 수직적으로 계열화하여 새로운 신명의 위계질서를 구성한 대순진리회를 비롯한 증산 교단의 시도는 근대적 상황 속에서 주변화한 민간도교 혹은 민족종교의 전통을 새롭게 재전유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Footnotes

8. 재전유란 특정한 문화적 기호의 맥락을 변화시켜서 원래의 의미와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게 만드는 재의미작용(re-signification)을 말한다. 지배문화의 요소들을 차용하되 그것에 도전하거나 그것을 전복시키기 위해서 그 의미를 변형시키는 하위문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라주(bricolage) 개념과 유사하다.

9. 『山海經』 卷18, 「海內東經」.

10. 천신의 다양한 양태와 신성성에 대해서는 M. Eliade, 『종교형태론』, 이은봉 옮김 (서울: 한길사, 1996), 2장 참조. 예컨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신들의 제왕이자 뇌신인 제우스는 티탄 신들의 왕이자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Kronos)의 아들이고, 크로노스는 천공신 우라노스(Uranos)의 아들이다. 따라서 하늘-시간-벼락으로 초월적인 주재자의 계열이 연결된다.

13. 주석 1) 참조.

14. 뇌부와 도검에 대한 설명은 각각 본 논문 Ⅲ장 2절과 Ⅳ장 3절 참조.

15. 『三國遺事』 卷1, 「紀異」.

17.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환인을 제석으로 풀이할 뿐이고 상제나 천제로 표기하지 않았으나, 동부여조의 해부루신화와 고구려조의 주몽신화에서는 ‘천제(天帝)’라는 기록이 나오는 점을 양자의 차이로 주목한 연구도 있다. 袴田光康, 「『三國遺事』 における「桓因」と「帝釋」-日本における天神信仰の視点から」, 『淵民學志』 14 (2010).

19. 안동준, 앞의 책, 1장 참조.

22. 이는 오두미도(五斗米道)의 삼관신앙(三官信仰)과도 일정하게 상통한다. 안동준, 앞의 책, p.19.

23. 안동준, 앞의 책, p.25.

26. 안동준, 앞의 논문, pp.352, 365-369.

27. 안동준, 앞의 책; 정재서, 앞의 책 참조.

28. 안동준, 「북방계 신화의 신격 유래와 도교신앙」, 『한국 도교문화의 탐구』 (파주: 지식산업사, 2008) 참조.

29. 정재서, 앞의 책, 2장과 6장 참조.

30. 『세종실록』 9년 1427년 6월 11일, 25년 1443년 7월 6일; 7월 16일 참조.

31. 『임하필기』 제16권 「文獻指掌編」, <昭格署>; 『대동야승』 권1, 『慵齋叢話』 卷2 등 참조.

35. 구중회, 앞의 책 참조.

36. 許筠, 『惺所覆瓿藁』 卷8, 「張山人傳」.

37. 許筠, 『惺所覆瓿稿』 卷8, 「南宮先生傳」.

38. 『天坡集』 卷4, 「逐瘧鬼文」, 26b-28a.

40. 김연진, 「충청북도무속연구」, 『청주대학논문집』 10 (1976), pp.34-46.

43. 『고문서집성 22–영암 남평문씨편(Ⅱ)』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簡牘單」.

46. 鄭琢,『藥圃先祖遺墨』, 「雷部三十八帥總呪」; 「上淸經祕助祖國安民練兵神呪」.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뇌부 신장 38수는 『옥추경』의 48장과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47. 鄭琢,『藥圃先祖遺墨』, 「九天祭鍊六甲六丁神兵作用秘旨」; 「太乙靈章秘籙混鍊機兵靈文 先天主將練兵附體秘旨」; 「九天玄女祭練神兵預要附體一宗秘旨」.

48. 鄭琢,『藥圃先祖遺墨』, 「九天玄女祭練神兵預要附體一宗秘旨」.

49. 趙赫相, 「朝鮮朝 寅劒의 象徵性 硏究」, 『軍史』 62 (2007).

50. 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鑄劍辨證說」.

52. 같은 글, pp.77-88.

53. 『연산군일기』 12년 1506년 1월 12일; 5월 8일.

54. 『중종실록』 24년 1529년 12월 17일.

55. 『중종실록』 37년 1542년 4월 27일.

56. 『연산군일기』 7년 1501년 1월 30일.

57. 『숙종실록』 12년 1686년 1월 13일.

58. 『성종실록』 9년 1478년 3월 11일.

59. 『象村集』 권7, 「四寅刀歌」.

60. 『東溟集』 권9, 「三寅劍歌」.

62. 『증보 해동이적』, pp.187-188, 200-203.

64. 『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 (『正統道藏』 19冊, 「통신부」, p.5).

66. 같은 책, 공사 1장 2절,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68. 안동준, 앞의 책, pp.315이하 참조.

69. 『전경』, 행록 1장 9절. 모친 권양덕은 권극중의 후손이다. 김성환, 「한국 선도의 맥락에서 보는 증산사상-전북 서부지역의 선맥(仙脈)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20 (2009) 참조.

70. 『전경』, 행록 1장 20절; 2장 1절. 이상호, 『증산천사공사기』 (상생사, 1926), p.4. “丁酉(1897)에 이르러 다시 鄭南基 집에 書塾을 設하시고…이때 鄭氏의 所藏한 儒仙佛陰陽讖緯의 서적을 통독하신 후…”

72. 같은 책, 권지 2장 23절.

73. 정재서,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p.144.

74. 같은 책, p.136.

75. 『覺世新編八鑑』 권4, 「持誦鑑第2」, p.1.

76. 정재서, 앞의 책, p.137

77. 『대순진리회요람』, pp.6-7.

78. 정재서, 앞의 책, pp.141-142.

79. 『抱朴子』, 「內篇 金丹篇」.

80. 『女丹合編』(『道藏輯要』본), 「女金丹序」; 『洞眞高上玉帝大洞雌一玉檢五老寶經』(『正統道藏』본) 참조.

90. 대순진리회의 진법주와는 달리 일부 다른 증산교단의 진법주에서는 서가여래 대신 칠성여래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는 증산교단 일부에서 칠성여래가 칠성사자와 구별되는 높은 신격으로 상정했을 가능성이 보여준다.

93. 차선근, 앞의 글, pp.243-245.

94. 『정전』, 심고와 기도; 『대종경』 변의품 23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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