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신종교영화의 유형과 특성

박종천 1 , *
Jong-chun Park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Professor,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orea University
*고려대학교 교수, E-mail: baummensch@naver.com

© Copyright 2019,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Oct 31, 2019 ; Revised: Nov 25, 2019 ; Accepted: Dec 14, 2019

Published Online: Dec 31, 2019

초록

이 글은 신종교운동을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소종파(cult)로 비판하면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영상화하여 소비하는 신종교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신종교운동을 기성종교에서 벗어나려는 소극적 주변종교와 기성종교를 대체하려는 적극적 대안종교의 관점에서 신종교영화를 분석할 수 있는 유형론을 제시하였다. 특히 신종교현상의 반사회적 일탈을 강조하면서 세뇌와 탈세뇌의 관점에 치우친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와는 달리,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신종교영화의 새로운 유형으로 공감성찰형 신종교영화와 신앙참여형 신종교 영화의 특성에 대한 분석을 전개하였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2018)를 비롯한 공감성찰형 신종교영화들이 규범적인 단일 프레임을 넘어서서 다면적인 구성과 다성적인 목소리를 갖춘 열린 프레임을 통해 내부자의 자기성찰과 외부자의 타자공감이 가능하도록 한 반면, <화평의 길>(1984)을 비롯한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들은 후천개벽이나 해원상생 등의 대안종교적 비전을 통해 기성종교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었던 주변인들의 원한을 풀고 말할 수 없었던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새로운 영상적 방식을 선보였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some important issues in films about new religious movements (NRMs) that express and represent NRMs in sensationalistic ways and criticize them as immoral and antisocial cults. I presented a typology to analyze films about NRMs from the perspective of marginalized religions separated from established religions and also as alternative religions that replace the established religions. In recent times, films about NRMs have changed from being social criticisms that represents NRMs as perpetrators of brainwashing and the need for deprogramming to that of faithful participation and empathetic reflection. Films about NRMs that utilize empathetic reflection, including Wild Wild Country (2018), go beyond the normative, single-perspective formula to enable insiders to conduct self-reflection and outsiders to empathize through openness, varied perspectives with multi-faceted composition and polyphony. In contrast, films about NRMs that adopt the perspective of faithful participation, including The Road to Peace (1984), present a new visual way to unravel the voices of silenced subalterns with alternative religious visions and those who needed relief from the marginalization due to alienation or exclusion from established religions. In the Korean context, these visions are expressed as ‘the great transformation into the creation of a paradise of the Later World (後天開闢)’ or as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解冤相生).’

Keywords: 신종교영화; 소종파; 주변종교; 대안종교; 하위주체; <화평의 길>;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Keywords: Films about New Religious Movements; Cults; Marginalized Religions; Alternative Religions; Subaltern; The Road to Peace; Wild Wild Country

Ⅰ. 신종교영화의 현황과 영상적 형상화의 문제점

종교영화는 1895년 무성영화로 영화의 역사가 시작된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예수영화(Jesus film)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교적 소재와 주제들을 아우르면서 10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서양 문화권과 그리스도교를 넘어서서 다양한 문화권과 종교전통으로 확대되고 있다.1) 최근까지도 종교영화는 대체로 그리스도교나 불교처럼 거대한 문화권을 형성한 다수의 주류 세계종교(world religions)를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소수의 비주류 민족종교(national religion)나 신종교(new religion)를 다루는 종교영화는 제작 편수가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제작된 경우에도 소재와 주제도 한정적이며 신종교에 대한 가치평가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신종교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학문적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이루어진 소수의 학문적 접근도 이데올로기 분석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영화의 소재는 주로 컬트(cult), 세뇌(brainwashing), 탈세뇌(deprogramming), 신-이교주의(neo-paganism), 마녀(witch), 주술(magic), 악마주의(satanism) 등이다.2) 신종교영화의 소재가 이렇게 제한되었던 것은 신종교현상을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비윤리적인 위험으로 비판하는 주류 사회와 기성 종교의 비판적 관점을 반영한다. 신종교현상이 언론, 방송,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상하고 공포스럽고 괴물같은 이미지로 소비되면서, 신종교영화도 자연스럽게 악의적인 심리-통제(mind-control), 사악한 악마와 마녀사냥(witchcraft), 부두(Voodoo)교와 연관된 좀비(Zombie) 등의 심리, 스릴러, 공포영화 장르로 형상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관점과 양상은 언론이나 방송의 추적-고발성 기사나 다큐멘터리(documentary)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3)

그런데 심리, 스릴러, 공포 등의 장르영화나 추적-고발성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자극적인 소재로 형상화하여 소비하는 내용들은, 대체로 일부 신종교운동의 극히 제한적인 일탈임에도 불구하고, 신종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선입견만을 과도하게 강조하여 투사하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기성종교에서 강조하여 종종 영상화한 사랑, 희생, 구원, 헌신 등의 보편적 주제를 구현하는 신종교영화의 사례는 극히 드물다.4) 신종교인들도 그러한 보편적 주제를 개성적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종교영화가 보편적인 ‘정상’적 주제의 영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세뇌, 괴물, 마녀, 악마 등 주로 몇몇 장르영화의 이질적이고 ‘이상’한 소재로만 채택되고 있는 현상은 종교적 헤게모니의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신종교현상 자체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순수 창작 영화는 드문 편이지만, 신종교현상을 사회적 스캔들의 관점에서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최근 새로운 영화 유통 서비스로 부상한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제작과 방영이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5) 예컨대, 15년간 사이비종교에 감금되었다가 구출된 주인공 이야기를 다룬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Unbreakable Kimmy Schmidt, 2016년 시즌1 ~ 2019년 시즌4)는 인기리에 시즌을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유대교 하시디즘(hasidism) 공동체의 사회적 문제점을 다룬 <홀로 걷다> (One of Us, 2017),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의 문제점을 세뇌의 관점에서 폭로한 <정화: 사이언톨로지와 신앙의 감옥> (Going Clear: Scientology and the Prison of Belief, 2015) 등은 신종교에서 불거지는 강압적 폐쇄성, 물리적 폭력과 학대, 물질적 착취와 성적 일탈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으며, <제임스 아서 레이: 구루의 탄생과 몰락> (Enlighten Us, 2016), <거룩한 지옥> (Holy Hell, 2016), <비크람: 요가 구루의 두 얼굴> (Bikram: Yogi, Guru, Predator, 2019) 등은 역사적 사실과 도덕적 기준을 근거로 삼아 인도 계통의 구루(guru)들이나 그 영향을 받은 소종파 공동체들에서 불거지는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 행태를 선정적인 스캔들 형태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종교 다큐멘터리들은 대체로 보편적인 종교적 주제가 아니라 지극히 자극적이고 제한된 소재를 비판적 카메라의 시선으로 집중적으로 파헤친다는 점에서 타락과 일탈의 스캔들을 과도하게 증폭시키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신종교인들의 에토스(ethos)나 종교적 맥락을 있는 그대로 전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들 신종교 다큐멘터리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의 신종교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한국의 신종교영화는 제작 편수가 극히 미미하고, 다른 종교전통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6) 실제로 신종교영화는 60~70년대 2편, 80~90년대 3편, 2000년대 이후 2편으로 총 7편으로, 종교전통별로 가장 적은 제작 편수를 기록하였다.7) 이 가운데 <백백교> (1961, 하한수; 1992, 최영철)가 이른바 ‘사이비종교’의 ‘스캔들’을 자극적인 흥미의 소재로 삼은 반면, <개벽>(1991, 임권택)은 인간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사람이 곧 하늘이고 하느님을 모시고 살며 피차 존중하고 사는” ‘종교’의 자리를 보여주었다.8) 전자가 신종교를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일탈의 프레임(frame)으로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반면, 후자는 역사적 맥락의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수탈과 학정(虐政), 무기력과 절망의 사회적 맥락에서 출현한 새로운 종교운동으로서 ‘동학(東學)’의 가능성을 포착했다. 특히 후자의 경향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 신종교영화가 새롭게 열어가고 있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신종교영화는 대체로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일탈의 스캔들이라는 비판적 관점이 주류 프레임을 형성하는 가운데 기존 사회질서와 문화를 혁신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의 역동성에 주목하는 공감적 관점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주류 프레임은 신종교를 사회적 악으로 규정하거나 선정적 스캔들의 소재로만 소비하는 고발적 다큐멘터리나 상투적 장르영화로 구현되곤 하지만, 신종교의 새로운 종교적 이상과 신앙의 진정성을 무시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종교의 내부의 신앙고백적 목소리에 담긴 진정성과 그것이 역사-사회적 맥락에 호응하여 구성된 문화적 양상들을 적절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강증산의 종교사상과 근대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영화적 이야기 전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신종교영화 <화평의 길>(1984)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선행연구는 주목할 만하다.9)

한국의 신종교영화 연구는 역사-사회적 맥락과 종교적 이념의 관계를 중심으로 신종교영화에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을 선보였다. 분명히 <개벽>과 <화평의 길>처럼 동학과 대순진리회 등 한국의 신종교를 형상화한 영화들을 분석한 연구들은 신종교가 지닌 종교적 비전과 그것이 비롯된 삶의 정황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신종교의 부정적인 일탈을 주목했던 기존의 비판적 설명과는 차별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에서도 영화의 주제나 이야기 전개 등에 집중하느라고 영화적 형상화 방식에 대한 고려는 충분하지 않았다.

요컨대, 신종교영화는 사회적 비평과 종교적 이해를 중심으로 제작되었으나, 신종교영화에 대한 연구는 장르영화에서 선정적 관심으로 소비하는 양상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신종교의 종교적 비전과 역사적 역할에 주목한 연구가 일부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21세기 들어 상당히 활발하게 제작되는 사회비평적 신종교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학문적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고, 신종교영화의 종교적 비전에 대한 연구에서도 주로 종교적 주제와 영화 내러티브 전개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이루어졌으나 영화적 형상화의 문제는 본격적 설명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신종교현상의 영화적 형상화 양상 이해를 위한 단서를 마련하기 위해서 신종교영화의 유형 분류와 더불어 신종교의 에토스와 영화적 맥락을 규명하려고 한다.

첫째, 신종교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연관된 신종교영화의 유형과 성격을 검토할 것이다. 신종교를 주변종교와 대안종교의 개념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고, 그것이 영화적으로 재현 혹은 표현되는 방식을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 ‘공감성찰형 신종교영화’,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 등으로 나누어 유형론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둘째, 신종교영화가 보여주는 영화적 에토스가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맥락을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을 검토할 것이다. 특히 지배종교를 넘어서서 신종교가 지향하는 새로운 종교적 관심과 역사-사회적 맥락을 영화가 어떻게 형상화하는지를 논의함으로써 주변종교의 소극적 저항과 대안종교의 적극적 비전이 기성종교 혹은 주류사회와 갈등하는 양상을 신종교영화의 유형별로 설명하고자 한다.

셋째,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신종교의 대안문화적 가능성과 영화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분석하려고 한다. 신종교를 주변종교로 억압하고 대안종교로서 대체하려고 했던 기성종교의 에토스와 주류사회의 사회질서를 넘어서는 신종교의 새로운 에토스가 지닌 대안문화적 가능성을 살펴보고, 그로 인해 신종교영화가 단일한 규범적 프레임을 넘어서서 다면적인 프레임과 다성적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점을 규명할 것이다.

Ⅱ. 신종교운동의 스펙트럼과 신종교영화의 유형

1. 신종교운동의 스펙트럼 : 주변종교와 대안종교

신종교(new religion)는 기존의 규범적 가치와 사회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움을 제공한다. 인류학이나 사회학에서 신종교운동(New Religious Movement)은 역사적으로 제3세계에서 근대화와 연관되어 새롭게 등장한 흐름으로서, 이미 종교적 헤게모니(hegemony)를 장악하고 있는 주류 기성 종교에 비해 종교적 위계질서에서 주변화된 비주류 신흥종교의 움직임을 가리킨다.10) 신종교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접근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제도화된 전통을 갖춘 기성종교(established religion)에 대해서 분리하거나 대체하려는 종교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신종교는 분리나 대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지배적’(dominant) 종교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주류의 ‘주변적’(marginal, fringe) 종교라고 할 수 있다.11) 신종교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신앙고백과 실천은 근대 혹은 탈근대라는 시간과 제3세계를 비롯한 주변부의 공간을 계기 혹은 토대로 삼아 기성종교의 규범적 가치평가와 위계적 사회질서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새로움’을 드러내며, 전근대 혹은 근대의 시간적 맥락과 중심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 지배적 주류에서 벗어나 주변적 비주류로 움직이는 신종교운동은 ‘신선한 매력’과 ‘생경한 이질성’의 이중적 함의를 지닌다.

신종교가 추구하는 새로움은 제도화된 규범과 문화의 한계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억압과 구속을 넘어서는 해방과 자유의 종교적 ‘매력’을 선사하지만, 기성 규범과 질서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저항적 ‘일탈’로 비판되기도 한다. 따라서 해방과 자유의 새로운 매력을 주목하는가 아니면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일탈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접근이 이루어지게 된다. 전자는 기성 종교의 한계를 넘어서서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종교’(alternative religion) 혹은 ‘대체종교’(alternate religion)로서 이해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합법적으로 제도화된 주류 기성종교에 의해 평가절하되는 ‘주변종교’로 설정할 수 있다.12)

따라서 신종교는 주류 내부자의 ‘기성종교’가 중심이 되는 종교적 위계질서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분리되는 양상의 ‘주변종교’가 드러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양상과 더불어 기존 질서를 아예 새로운 질서로 대체하려는 ‘대안종교’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양상을 모두 포함한다. 예컨대, 중동 이슬람 문화권의 수피(Sufi), 미국 기독교 문화권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등이 주변종교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면, 티벳의 불교는 전통적인 뵌교와 갈등 속에서 대안종교로 출발하여 기성종교로 발전했다. 기성종교에서 분리된 주변종교가 대안종교로 발전하면서 대안적 헤게모니로 부상할 수도 있지만, 대안종교의 비전과 활력을 소진하고 대안적 헤게모니의 위상을 상실하면 기성종교에 의해 게토화된 주변종교로 규정되어 그 사회적 위상이 전락하게 된다. 한 사회에서 주류 혹은 다수의 기성종교가 세계종교일 경우 민족종교는 비주류 혹은 소수의 신종교로서 주변종교가 되고, 민족종교가 기성종교일 경우 세계종교의 비전을 가진 신종교는 처음에는 주변종교로 배제되다가 선교를 통해 새로운 문화권의 기성종교로 성장할 수 있다. 현대 한국에서 주변종교로 자리 잡은 민족종교가 전자의 대표적 사례라면, 유대교에서 독립한 기독교와 힌두교에서 분리되어 나온 불교는 후자의 대표적 사례다.

요컨대, 신종교는 대안종교로 출발하여 기성종교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기성종교에 의해 주변종교로 규정되어 주변화될 수도 있으며, 기성종교와의 관계에 따라 소극적 주변종교와 적극적 대안종교의 양상을 띠게 된다고 할 수 있다.

2. 신종교영화의 특징과 유형론적 접근

종교영화는 종교적 이상과 사회적 현실 및 예술적 형상화가 어우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 차원, 사회적 차원, 예술적 차원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며, 종교적 이상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신앙고백적 종교영화, 사회적 현실의 맥락에서 종교를 비평하는 사회비평적 종교영화, 감독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종교적 주제나 소재를 재전유하는 상상적 종교영화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13) 이런 유형론은 각각 종교 공동체 내부적 시선, 종교 외부 사회의 외부적 시선, 개별 예술가의 창조적 시각 등을 전제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종교적 소재들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비하는 일부 장르영화나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최근 많이 제작되는 신종교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신종교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사회비평적 종교영화로 분류할 수 있고, 한국에서 제작된 신종교영화인 <화평의 길>은 종교 내부적 시선에 대한 공감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신앙고백적 종교영화에 근접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종교 외부의 객관적 성찰과 종교 내부의 주관적 고백, 사회적 비판과 종교적 공감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잘 보여준다.14)

그러나 신종교영화는 일반적으로 종교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양상이 나타난다. 서구의 종교영화들이 대체로 주류종교인 기독교의 성서의 무오류성과 신앙적 전통을 묵수하거나 강화하는 방식으로 종교적 보수주의와 대중적 욕망을 영화적으로 결합시키면서 장르화된 반면,15) 신종교영화는 일반적으로 주류사회와 비주류종교가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구도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여기서 주류사회의 규범적 관점은 기성종교의 관점으로서, 주류사회와 기성종교의 관점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된 비주류의 주변종교 혹은 기존 질서를 벗어나서 새로운 질서로 대체하려는 비전의 대안종교로서 등장하는 신종교와 대립한다. 이로 인해 신종교의 사회적 문제점을 다루는 신종교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비판적인 사회비평형 종교영화로 형상화되며 신종교현상에 대해 공감적 이해를 선보이는 신앙고백적 종교영화나 예술적 재전유 혹은 재구성이 이루어지는 상상적 종교영화가 드물다.

실제로 신종교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판적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는 기성종교와 주류사회의 관점에서 신종교를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종교에서 벗어난 비도적이고 반사회적인 ‘컬트’(cult)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주류사회의 지배적 시각을 정당화하면서 신종교의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행태를 스캔들의 형태로 추적하여 고발하거나 일부 신종교의 이질적 문화현상을 장르영화의 소재로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유형에는 <백백교>처럼 신종교 소재의 이질성을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상업적 장르영화가 주류문화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된 타자를 허구적 상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신종교의 부정적 이미지를 흉측한 좀비나 사악한 마녀 혹은 악마 등으로 표상하는 상업적 장르영화가 있는가 하면, <거룩한 지옥>이나 <정화: 사이언톨로지와 신앙의 감옥>처럼 역사적 사실과 도덕적 기준을 근거로 일부 신종교의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 행태를 선정적인 스캔들 형태로 재구성하는 신종교 다큐멘터리도 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는 사실주의(realism) 영화의 문법에 충실하게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관적인 종교적 의미를 객관적인 사실로 재단하는 동시에 선정적인 스캔들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사회비평과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 중첩되는 경향이 강하며, 신종교 내부의 종교적 진정성은 희석되거나 거세되는 문제점이 노출된다.

이러한 양상은 지배적인 주류종교가 사회적 권력과 야합하거나 사회적 위계질서를 사유화하는 양상을 비판하는 사회비평형 종교영화와 차이가 난다. 예컨대, <미션> (Mission, 1976)이나 <로메로> (Romero, 1989)가 남미에서 기독교가 유럽 출신의 백인 주류사회의 편에 대항하여 원주민 비주류사회를 보호하는 주류종교의 사회적 봉사를 긍정적으로 형상화한 반면,16) 넷플릭스의 <더 패밀리: 미국 권력 심장부의 은밀한 근본주의> (The Family: The Secret Fundamentalism at the Heart of American Power, 2019)는 1953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국가조찬기도회(National Prayer Breakfast)가 특정 정당을 막론하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종교적 차원에서 권력을 공유하는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어 근본주의의 종교적 신념에 충성하게 만들었는지를 비판적으로 보여주었다. 요컨대, 사회비평형 종교영화는 주류종교에 대해서는 종교의 예언자적 비판을 통한 사회적 공헌을 긍정적으로 형상화할 수도 있고 종교와 사회의 야합을 향해 비판적 메스를 들이댈 수도 있는 반면, 신종교에 대해서는 기성종교의 권위와 주류사회의 권력이 결합한 사회적-윤리적 기준에 의해 신종교의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일탈을 규범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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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영화 백백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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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종교의 사회적 일탈과 종교적 역기능을 강조하는 비판적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에 비해, 신종교가 지닌 대안적 가능성을 강조하고 종교적 매력을 주목하는 공감적 이해의 신종교영화들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규범적이고 비판적인 사회비평을 넘어서서 종교와 사회가 상호작용하는 교호적 관점에서 신종교의 종교적 진정성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와 더불어 신종교에 대한 외부의 공감적 이해와 내부의 자기성찰이 병행하는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경향은 주목할 만하다.

먼저, 종래의 사회비평형 신종교 다큐멘터리가 공동체 이탈자의 일방적 고발을 주류 사회의 규범적 시선을 통해 비판적으로 증폭시켰던 것에 비해,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는 신종교 내부인의 고백과 외부인의 비판을 교차 편집하는 것은 물론, 신종교의 이탈자와 잔류자를 포함하여 신종교현상을 겪은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의 다양한 시각, 곧 규범적 비판 외에도 객관적 자기성찰과 공감적 이해 등을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다.

이에 비해 한국의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인 <개벽>과 <화평의 길>은 신종교의 주관적 신앙고백과 대안종교적 비전에 대한 공감적 이해를 구현했다. 다만 신앙고백적 종교영화의 특성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는 <화평의 길>과 달리, <개벽>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한 영화적 재구성으로서 종교의 사회적 존재 양상에 대한 성찰을 후천개벽의 종교적 비전과 연결하였다는 점에서는 사회비평적 종교영화의 시각에서 볼 수도 있고 상상적 종교영화로 이해할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특성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양자 모두 주류종교들의 종교적 차원의 주관적 신앙고백에만 머물지 않고 기성질서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맥락에서 종교적 이념을 구현하는 대안적 가능성을 형상화했다. 또한 사회적 비평의 시선이 주로 사실주의 영화, 특히 다큐멘터리 형태로 구현되는 반면, 공감적 이해는 역사적 맥락을 주목하는 사실주의적 양상에 종교적 의미를 부각시키는 극적 양식을 더하여 형식주의 영화의 경향까지 드러내곤 한다. 이는 신종교에 대한 종교적 비전에 대해 외부의 객관적 시선이나 규범적 평가가 아니라 주관적 신앙의 객관화와 객관적 비평의 공감화가 어루어지는 공감적 이해의 프레임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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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영화 개벽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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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단일한 규범적 프레임을 드러내는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들과는 달리, 공감성찰형 신종교영화나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들이 신종교의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프레임을 선보이거나 주류에 의해 소외된 비주류의 종교적 비전을 대안적 관점에서 부각시키는 반면, 영화 제작자의 예술적 상상력을 실험하는 신종교영화가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상상적 신종교영화 <쿠마레>(Kumare, 2011)>는 비크람 간디(Vikram Gandhi)가 인도의 요가 구루(Guru) 스리 쿠마레(Sri Kumaré)라는 가상의 인물로 가장하여 제자를 모으고 가르침을 펴는 연기를 할 때 그것에 열광하며 따르는 사람들의 실제 반응을 담은 신종교 다큐멘터리인데, 연기자가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직접 오랫동안 요가 연습을 한 뒤 구루의 복장과 의식을 선보이면서 많은 신도들을 얻고 가르침을 펴다가 마지막에 모든 것이 허구의 연기였다는 것을 밝히고 이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알아보는 상상적 실험이었다.17) 이 영화는 상상적 실험의 연기자가 직접 요가 수행을 연습하고 실연한다는 점에서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이고 사람들의 반응을 카메라를 통해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신앙의 허상을 폭로한다는 점에서는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이지만 공감과 성찰의 상호교호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공감성찰형 신종교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감독이자 배우의 허구적 상상을 테스트하기 위한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쿠마레>는 상상적 신종교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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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영화 쿠마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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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쿠마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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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신종교영화의 에토스와 영화적 형상화 방식

신종교영화의 내러티브는 실제의 역사-사회적 배경을 영화적 맥락으로 재구성한다. 재구성의 방식은 기성종교, 주변종교, 대안종교 등 신종교에 대한 관점에 따라, 또 사회비평형, 공감성찰형,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의 유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성종교와 주류사회를 중심으로 구축된 기존의 종교-사회적 위계질서에서 주변종교나 대안종교로 벗어나는 원심력이 크게 작동할 때 그러한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사회비평형 신종교 다큐멘터리가 부각되는 반면, 다종교 상황 속에서 신종교가 지닌 종교적 비전이 대안문화의 가능성으로 일정하게 인정받을 때에는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가 등장하며, 이 두 유형이 다면적이고 역동적인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나 상상적 신종교영화가 나타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신종교영화의 유형별로 에토스가 역사-사회적 맥락을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1. 사회적 일탈과 탈세뇌 : 사회비평형 신종교 다큐멘터리

신종교현상에 대한 일반적 접근 태도는 신앙의 자유라는 주관적 차원에서 존중하기보다는 사회적 스캔들, 도덕적 일탈, 불법적 범행, 정신적 억압 등으로 치환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따라 신종교현상은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법적으로 제재하며 의료적으로 치료해야 할 문제로 전락하고, 그러한 문제의 원인과 치료로 ‘세뇌’(brainwashing)와 ‘탈세뇌’(deprogramming)가 제안되는 경향이 강하다.18) 이러한 설명은 신종교를 통제의 대상으로 설정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로 전락시킨다는 데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 침해의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여지가 큼에도 불구하고, 가이아나의 인민사원이나 일본의 옴진리교를 비롯해서 일부 신종교의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폭넓게 유포되고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역사-사회적 맥락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비평형 신종교 다큐멘터리들에서도 반영된다. 신종교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섹스, 돈, 인권 등의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면서 신종교에서 일어나는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일탈의 스캔들을 부정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신종교를 사이비종교로 평가절하하는 주류 에토스의 가치평가에 의해 사회적 일탈로 규정되는 문화적 양상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데, 영화적 형상화를 통해 포착된 역사-사회적 맥락이나 종교적 모티브를 추출하면 기성가치에 의해 주변화되거나 기성질서를 전복시키고 싶은 종교적 비전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거룩한 지옥>와 <정화>의 프레임을 살펴보면, ‘거룩한 지옥’과 ‘신앙의 감옥’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들어 있는 작품 제목은 신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어떻게 사회비평으로 연결되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다큐메터리 포스터의 앵글은 모두 신종교가 지닌 사회적 문제점을 비판하기 위해 세뇌의 주체를 로우 앵글(low angle)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영화의 전개상에서도 대체로 세뇌의 주체로 지목되는 대상은 로우 앵글로 잡고 세뇌의 대상은 하이 앵글로 촬영하는 양상이 자주 등장한다. 포스터의 미장센도 동일한 양상이 나타난다. <거룩한 지옥>은 교주(Guru)의 즐거운 얼굴만 나오고 신도들은 손만 나오도록 한 프레임(frame)이 교주만 사회적 일탈과 쾌락의 주체가 되고 나머지는 그것을 위해 세뇌된 노예임을 표현하고 있으며, <정화>는 감옥을 연상시키는 육중한 건물만을 로우 앵글(low angle)로 크게 부각시킨 것은 신자들을 죄수로 길들이는 신종교의 위선적이고 억압적인 모습과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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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거룩한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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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정화: 사이언톨로지와 신앙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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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의 프레임은 기본적으로 신종교를 ‘거룩’한 종교의 외피를 갖고 있는 ‘지옥’이거나 ‘신앙’으로 만들어진 ‘감옥’으로 비춘다. ‘지옥’이나 ‘감옥’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구원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나 죄수로 만들고 가두는 ‘사이비종교’를 고발하는 형식으로 형상화된다. 이 다큐멘터리들은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소종파(cult)를 철저하게 비판하는 작품들이다. <거룩한 지옥>의 소제목 속에 언급된 ‘현대적 컬트’라는 표현도 그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이 다큐들은 해당 공동체 탈퇴자들의 고발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 입문할 당시 기대했던 ‘거룩’한 구원과 과학과 연계된 ‘신앙’의 종교적 이상이 배신당한 ‘지옥’과 ‘감옥’의 참혹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발한다.

이들의 고백이 사실이라는 전제 아래 해당 신종교의 비도덕성과 반사회성을 충분히 비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주관적인 종교적 체험을 넘어서서 객관적인 사회의 영역에서만 의미가 있다. 여전히 종교활동을 하는 신자들의 주관적 믿음과 그 의미의 문제는 별도로 남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종교적 진정성이 종교 전통 내부의 신앙적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신자의 주관적 믿음이 세뇌에 따른 이성의 마비와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권력의 남용을 초래했기 때문에 도덕적 권위와 합법적 권력과 의학적 능력을 갖춘 주류 사회의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프레임이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선포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한다. 객관적인 사실을 증거하는 화면과 영상 자료와 더불어 이탈자들의 고백은 도덕적 비난, 법적 통제, 의료적 치료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채택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신종교인들은 충분한 판단력과 자유의지를 지닌 종교적 주체가 아니라 세뇌와 탈세뇌의 통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신종교에 입문하는 것은 물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도 종교적 신앙의 자유와는 무관한 통제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정화>에서 ‘E-미터’라는 기계와 ‘감사’(Auditor)를 통한 감시, 억압, 착취를 진행했다고 날카롭게 비판 당했던 신종교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의 자리에 주류사회와 기성종교의 정신적 권위와 물리적 권력 및 의학적 능력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는 것만 달라진 셈이다.

오히려 사회비평형 신종교 다큐멘터리가 방기했던 중요한 포커스는 일탈의 양상과 모습보다는 기성질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탈주할 수밖에 없었던 문화적 에토스와 종교적 비전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컨대, <거룩한 지옥>에서는 포르노 배우 출신의 미셸이 최면치료사로서 신종교 붓다필드를 창시하여 많은 신자들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강제로 분리시키고 깨달음이라는 미명 아래 최면을 통해 세뇌시키면서 재산과 자유를 헌납하도록 강요하고 성적 억압과 착취를 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레깅스나 수영복 차림의 자유로운 복장을 입고 발레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즐기며 영성을 추구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던 신자들의 에토스다. <정화>에서도 억압과 착취의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문제점과는 별도로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종교적 관심이 과학기술을 통한 정신치료의 형태로 등장했던 종교문화적 에토스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사회비평형 신종교 다큐멘터리에서는 높은 교육적 혜택과 경제적 풍요로움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로운 문화예술적 표현욕구와 과학기술과 영성 문제를 결합시키는 시도가 신종교운동의 새로운 모티브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다큐멘터리들에서는 이러한 대안적 비전을 사회적 맥락에서 심층적으로 검토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거나 미성숙한 태도로 평가절하하고 공동체 이탈자들을 돌아온 탕자처럼 재단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2. 목소리의 다성성(多聲性)과 공감적 성찰 :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

사회비평적 신종교 다큐멘터리가 기성종교와 주류사회의 권위와 권력에 입각하여 일방적으로 배제하거나 의도적으로 거세해 버린 주변종교의 에토스와 대안종교의 비전은 어떻게 확인하고 회복할 수 있는가?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에서는 규범적이고 비평적인 프레임 대신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프레임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내부자의 주관적 시선과 외부자의 객관적 시선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 내부자의 자기성찰적 자세와 외부자의 타자공감적 자세의 병행과 균형을 취하고 있으며, 단일한 규범적 프레임으로 신종교인이나 관객을 통제하기보다는 상이한 시선과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다면적 구성을 통해 시청자가 스스로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열린 결말과 평가의 자유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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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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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Wild Wild Country, 전6편, 2018)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주류사회의 도덕적 권위에 따른 사회비평적 가치평가를 유보하는 현상학적 판단중지(epoche)를 통해 신종교현상을 둘러싼 내외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있게 복원시킴으로써 선정적 스캔들로 전락하던 신종교 다큐멘터리를 종교현상을 구성하는 종교적 신앙의 주관성과 실천의 사회적 효과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도록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프레임을 구성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6부작에 걸쳐서 시간에 따른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면서도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 1931~1990)의 공동체에 참여했거나 반대했던 공동체 내외부의 다양한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와 표정을 계속 번갈아 가면서 병행해서 교차편집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먼저 다큐멘터리의 모든 출연자들의 다양한 반응이 시작된 원인을 제공한 오쇼 라즈니쉬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조르바(Zorba)의 자유로운 욕망을 정신적이고 영적인 붓다(the Buddha)의 깨달음과 결합시킴으로써 서양과 동양, 정신과 물질을 급진적으로 연계하는 방식으로 열렬한 호응을 얻었으며, 그러한 호응을 기반으로 삼아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오레곤(Oregon) 사막 중간에 라즈니쉬뿌람(Rajneeshpuram)을 세우면서 스스로 “미국이 기다렸던 메시야”라고 선포하였다. 그는 보통 신비주의로 일컬어지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 본질적인 종교”를 선언하면서도 “모든 종교적 미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완전히 자유롭고 완전히 벌거벗은 나체의 종교”를 위해19) “인류 역사상 최고의 쇼우맨으로서 자신이 벌인 일이 서커스 혹은 카니발”을 즐겼으며, “1980년대 롤즈 로이스를 가진 섹스 구루”라는 이미지로 평가될 정도로 문제적 유토피아를 건설하였다.20) 그는 상반되는 두 가지 모순적 요소들을 결합시킨 문제적 유토피아, 곧 후기 자본주의의 영적 논리의 거대한 실험장을 운영한 것이다.21) 실제로 이 다큐멘터리는 프리 섹스와 명상의 결합이라는 실험을 주도하고 수많은 롤스로이스를 몰고 나타난 라즈니쉬에게 열광하는 산야신들의 표정과 몸짓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그 밖의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아쉬람의 구루인 라즈니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내부 헌신자들과 오레 곤 주 앤털로프를 중심으로 공동체 외부의 미국 주류사회로 나뉘고, 내부 구성원들은 다시 라즈니쉬의 비서이자 2인자로서 권력을 휘두르며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뒤 공동체를 떠나는 마 아난드 쉴라(Ma Anand Sheela, 1949~ )와 측근 이탈자 그룹들과 끝까지 라즈니쉬에게 헌신하는 그룹으로 나뉜다. 아쉬람의 산야신들은 그들이 구루(guru)를 만나고 공동체에 입문하게 된 계기부터 최고의 희열을 맛보았던 경험과 공동체의 분열과 와해 혹은 개인적 이탈을 담담하게 회고하고 있으며, 그와 반대로 그 공동체를 공산주의를 상기시키는 수행복인 붉은 로브 차림에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사회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일탈을 감행하는 위험한 소종파(cult)로 여겨서 적극적으로 대항했던 미국시민들도 차분하게 자신들의 처지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설명되거나 통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기 표정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로서 제 자리를 잡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1편의 도입부에서 공동체의 2인자이자 이탈자였던 쉴라가 구루와 함께 한 그녀의 삶이 완벽하고 충만한 ‘왕관’이자 그로부터 추락한 ‘단두대’라고 표현하고 ‘자신이 세상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자신을 암살한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면서 시작한다. 그녀는 구루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통해 외부 세력과 싸우고 내부를 통제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으나, 결국은 내부에서도 고립된 게토(ghetto)가 된 뒤 공동체에서 이탈한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내내 영적 자유의 이상에 더하여 육체적 섹스와 물질적 풍요를 자유롭게 누리는 지상의 이상적 공동체, 곧 유토피아적 코뮌(commune)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

그런 이상은 역설적으로 공동체 생활에 구속된 개인적 자유의 억압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와 독극물 살포 등의 방법을 통해 미국 주류사회와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을 초래했고, 결국 스승과 공동체로부터도 떠나게 된다. 그러나 6편의 마지막 회고 장면에서 그녀는 사회의 공적으로 지탄받고 스승에게 완전한 파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이 행한 헌신이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 문제점에 대해 자랑스럽게 회고하고 자신에게 코뮌의 이상을 가르쳐준 구루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평안한 모습으로 환자들을 도우면서 자신의 이상을 추구했던 순수성을 긍정적으로 회상한다. 그녀는 20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적 열정을 사회적으로 구현하는 코뮌의 이상을 스승을 배반하면서까지 철저하게 추구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한편, 쉴라를 좇아 독극물 살포와 살인 모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제인 스토크(Jane Stork)는 공동체를 이탈한 뒤에 몰려오는 정신적 충격을 겪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스승의 봉이 선사하는 깨달음을 줄 일격을 놓치고 만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부모의 사랑과 남편의 헌신,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관심 등 가족의 유대관계 속에서 ‘스스로 힘으로 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비처럼’ 고통스런 기억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6편 엔딩부분). 이는 주변종교로부터 벗어나는 이탈자의 전형적 모습이다.

이에 비해 라즈니쉬의 변호사로서 지속적 추종자였던 스와미 프렘 니렌(Swami Prem Niren)은 끝까지 스승을 추종하는 모습을 견지했다. 그는 라즈니쉬를 못 알아본 미국은 실패했다고 단언하면서 온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오쇼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고백하는 한편, 공동체의 진실을 밝히는 책을 출판하여 명예를 회복하도록 요구한 스승의 요청에 따라 지속적으로 종교적 이상을 추구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라즈니쉬 공동체가 탄압받았던 기억을 ‘마치 전우애처럼 함께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 생긴 유대감, 곧 사랑’(1편 도입부)이었으며, ‘그분(라즈니쉬)은 선물이었어요’(6편 엔딩부분)라고 고백했다. 이러한 지속적 헌신의 모습은 쉴라에게서 배척당한 헌신자 마 프렘 순요의 기록22)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이러한 이상에 여전히 매혹된 지속적 헌신자들은 그들의 아쉬람이 지닌 대안종교의 이상이 지나치게 오해받고 탄압받은 점을 아쉽게 여기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공동체와 활동을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기억한다. 이는 주류사회적 관점에서는 주변종교에 철저하게 세뇌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평가할 만한 모습이지만, 신종교의 관점에서는 자신들을 주변종교로 규정하는 주류사회에 대항하는 대안종교의 지속적 헌신자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다큐멘터리에는 신종교 공동체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 시각도 나온다. 라즈니쉬에게 고향을 빼앗긴 엔텔로프 주민들을 비롯해서 미국 주류사회의 인물들은 물론, 라즈니쉬 공동체에서 이탈한 사람들 중 일부는 라즈니쉬를 타락한 종교 사기꾼으로 비판했다. 라즈니쉬 공동체의 대변인 노릇을 하던 측근 중 한 사람은 주류사회와 거래를 하면서 공동체의 기밀을 넘기기도 했고, 중간에 환멸감으로 이탈한 라즈니쉬의 최측근 휴 밀른(Hugh Milne)은 스승의 카리스마에 취해 라즈니쉬가 저지른 과오와 언행불일치를 철저하게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쉬람의 일을 인민사원의 비극에 견주기도 했다.23)

이렇듯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경험을 함께 한 사람들이 실은 다른 경험과 기억과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각자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다성성(多聲性, polyphony)을 구현하는 열린 구성을 취했기 때문이다.24) 다성성의 구현은 자신의 일을 서커스 혹은 카니발로 묘사했던 라즈니쉬의 언급과 연관하여 미하일 바흐찐 (Mikhail Bakhtin, 1895-1975)의 유쾌한 카니발의 세계에 대한 설명을 떠올리게 한다.25) 바흐찐은 언어의 규칙이나 문법의 추상적 보편체계인 랑그를 중시한 구조주의자들과 달리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발화인 빠롤을 강조하면서 동일한 말이라도 서로 다른 느낌과 강세들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하여 등장인물들의 다성적인 목소리들을 작가의 목소리 하나로 통합시키지 말 것을 주장했다. 카니발은 본래 중세 사순절의 금욕 직전에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던 해방의 시공간으로서, 민중들이 엄숙한 공식문화를 조롱하고 위계질서를 전복시키며 통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욕망을 표현함으로써 유쾌한 민중적 웃음을 드러내는 계기였다.

이것을 신종교에 적용하면 억압된 주변종교 혹은 거세된 대안종교가 다성성의 구현을 통해 노동자, 유색인종, 여성, 농민, 소수자 등 소외되고 억압된 목소리의 하위주체들(subalterns)이 제 소리를 내어 유쾌한 상대성을 실현함으로써 주변문화의 전복성과 저항성이 자유롭게 기성종교의 권위와 기존질서의 권력에 대한 도전과 해체를 감행하는 적극적 대안종교로 거듭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오쇼 라즈니쉬의 아쉬람은 목소리의 다성성과 카니발의 전복성을 통해 혁명적 대안종교의 역할을 일정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구루를 비판하며 이탈한 사람들이나 지속적으로 헌신하며 아쉬람에 잔류한 사람들이나 모두 대안종교 속에서 겪었던 놀라운 경험의 매력과 강렬함, 그리고 그런 경험을 기다렸던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성찰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는 자기성찰적 사유와 타자공감적 자세를 잊지 않고 균형을 취하는 공감성찰형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할 만하다.

라즈니쉬 공동체의 실험은 20세기 자본주의와 종교적 영성이 결합한 새로운 신종교현상이었다. 실제로 라즈니쉬는 서양의 욕망과 동양의 영성을 결합시키려고 시도했으며, 라즈니쉬의 비서이자 2인자였던 쉴라도 주류사회와 기성종교가 자유를 억압하면서 강요하는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을 거부하면서 스승과 함께 했던 오레곤의 경험과 그곳에서 실험했던 새로운 코뮌의 꿈이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그 사건의 일부임을 잊지 마세요’(6편 엔딩부분)라는 대사로 상기시켰다. 6편 마지막에 라즈니쉬의 죽음 이후에도 전세계에서 여전히 대량으로 출판되는 라즈니쉬의 책과 인도의 푸나 공동체에 모여드는 많은 사람들의 춤과 명상을 곁들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욕망과 영성이 결합한 명상산업의 실상을 잘 드러내었다.

나아가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영성과 욕망의 결합은 신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라즈니쉬를 비판했던 엔텔로프의 주민은 라즈니쉬가 떠난 뒤 그 자리를 대신한 기독교 그룹 사람들을 두고 “자유 섹스주의 라즈니쉬에서 섹스 없는 영라이프(Young Life)로 바뀌었죠. 어린 친구들에게 금욕을 상당히 강조하더군요. 그쪽도 약간 컬트(cult)같아요. 그래도 총을 얼굴에 들이대진 않는다.”(6편 엔딩부분)고 평가했다. 라즈니쉬에서 기독교로, 성적 자유에서 성적 억압으로 그 방향이 바꾸었지만 기성종교와 주류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소종파(cult)의 흐름이 지속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욕망의 억압과 욕망의 방출 사이에서 진동하는 현대적 영성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3. 개벽과 상생의 새로운 종교적 비전 :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가 목소리의 다성성과 공감적 성찰을 통해 신종교운동의 다면성과 복합성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개방함으로써 사회비평적 신종교 다큐멘터리의 규범적 일방성을 극복했다면, 한국에서 주로 제작된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는 주관적 고백의 진정성과 대안종교적 비전에 대한 공감적 참여의 조화를 통해 역사적 맥락을 초월하는 종교적 의식(religious consciousness)의 창조적 비전을 역설한다.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인 <개벽>이 역사적 맥락에서 변혁하는 혁명이 아니라 종교적 맥락에서 일어나는 ‘후천개벽’을 강조한 것이나 <화평의 길>이 ‘해원상생’(解冤相生)을 역설한 것은 종교적 비전이 역사-사회적 맥락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대안종교의 에토스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개벽>이 상대적으로 주변종교의 저항성이나 전복성을 보여준다면, <화평의 길>은 해원상생의 종교적 비전을 대안종교의 초월성과 보편성으로 승화시켰다. 강증산(姜甑山, 1871∼1909)의 종교적 비전인 해원상생은 전봉준의 무력투쟁으로 구현되었던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살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하려는 것”이며,26) “원을 풀고 원에 인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 곧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는 해원공사”를 통해 성취된다.27) 이러한 방식은 역사-사회적 변혁을 앞세우기보다는 종교적 비전에 의해 그러한 변혁이 뒤따르게 된다는 점에서 <개벽>의 최시형(崔時亨, 1827∼1898)과 일정 부분 상통한다. 해원상생은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 대순진리회의 우당 박한경(朴漢慶, 1917∼1996) 도전 역시 평소 “원한이 없이 상생하고 화평한 사회를 이룩하고 천하가 화평하도록 공존공생(共存共生)하는 원리”로서 강조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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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화평의 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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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주류사회에서 주변화된 배제되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하위주체들의 자리를 새롭게 회복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강증산은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곧 나의 사람”이라고 하여 사회에서 배제되어 주변화된 인물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쏟았다.29) 대부분의 사회에서 빈천한 자들은 부귀한 자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으며, 병든 자는 건강한 자에게 소외되고, 약한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은 강한 자들과 지혜로운 자들에게 배제된다. 따라서 배제되고 소외된 자들은 원한이 쌓이게 되므로, 그러한 주변인들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화평을 이룩하는 것이 강증산의 대안종교적 비전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화평의 길>에서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하위주체들이 해원상생의 비전에 따라 자기 목소리를 내는 해원상생의 천지공사를 형상화하고자 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철저한 차별적 위계질서에 따라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를 갖지 못했던 주변인들, 예컨대 천시받던 무당들, 정절을 강요받는 여성, 학대당하는 양반가의 종 등이 강증산을 통해 원한을 풀고 사람 대접을 받는 이야기를 강조했다.30) 특히 영화에 나오는 간음한 부인을 구원하는 강증산의 에피소드는 실제로 『전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남존여비의 관습을 극복하기 위해 청상과부의 개가와 여성의 권리 존중을 도모하는 『전경』의 다양한 사례들31)과 간음한 여인을 구하는 예수의 에피소드32)를 결합시켜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33) 이렇듯 해원상생은 소극적 주변종교에서 적극적 대안종교로 발전하는 신종교로서 대순진리회를 포함한 증산계 교단의 대안종교적 비전이며, 이를 통해 철저하게 억눌리고 주변화되었던 목소리의 진성성과 다성성이 회복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종교적 비전에 의해 진정성과 다성성을 회복한 신종교의 주관적 고백에 대해 신종교 외부의 문화예술인들도 교감하며 공감적 참여관찰을 시도한 신종교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다. 다른 교단의 개입 없이 대순진리회가 직간접으로 관여한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 <화평의 길>과 달리, 전주 MBC의 다큐멘터리 <강증산, 이제는 상생이다>(1997)는 증산계 여러 교단과 외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신종교 내부와 외부, 종교와 사회와 문화를 아우르는 신앙참여형 신종교 다큐멘터리이자 공감적 사회비평형 신종교 다큐멘터리로도 볼 수 있다.

양자는 참여자는 물론 장르와 구성의 특성으로 인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화평의 길>은 기본적으로 조정산-강증산-조정산으로 이어지는 내부자의 교리적 시선에 따른 액자식 구성34)을 갖추고 있는 영화인 반면, <강증산, 이제는 상생이다>는 내레이션-드라마-전문해설으로 이어지면서 내부 종교인과 외부 전문가, 드라마와 해설이 교차하는 공감적이고 교호적인 시선의 복합적 삼중 구성을 지닌 다큐멘터리이다. 이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 구성을 지니는 영화에 비해, 해설이나 내레이션이 들어가는 것은 객관성과 역사성을 담보하려는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주류사회의 시선에 입각한 비판적인 사회비평형 다큐멘터리와 달리 공감적 이해를 드러내고 있으며, 종교적 시선과 지역적 관점과 문화적 시각이 어우러지는 중층적 구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난다.

또한 <화평의 길>은 정산의 이야기 사이에 증산의 이야기가 액자로 구성되면서 영화 전체가 하나의 몽타주(montage)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이러한 액자식 구성은 대순진리회 교단 내부의 교리적 시선에서 진리의 전수가 연속적임을 보여주면서 증산계 타종단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대순진리회의 종통(宗統) 계승과 연관된 교리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로도 기능한다.35) 이에 비해 특정 교단의 배타적 개입이 없는 <강증산, 이제는 상생이다>는 증산계 모든 교단이 공유하는 전승만을 보여주는 한편 지역 방송국과 연계된 다큐인 만큼 지역성과 연관된 공감적 시선의 프레임도 선보이고 있다.

영화와 다큐로 방송되는 목소리의 다양성도 조금 차이가 난다. 대순진리회 교단 차원의 감수와 참여가 있었던 <화평의 길>36)과는 달리, <강증산, 이제는 상생이다>는 증산계 교단의 종교 성직자는 물론 향토사학자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연구자, 시인 김지하를 비롯한 문화예술인 등이 다채롭게 출연하여 종교적 교리의 시선을 넘어서서 지역-문화-종교-역사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갖추게 되었다. 다양한 민족종교의 배경이 되는 모악산의 의미로부터 시작해서 여성 무당들의 한풀이를 해주는 드라마 구성 뒤에 ‘해원상생’에 대한 전문가 해설이 잇따르는 방식은 남녀평등과 반상평등은 물론, 병겁을 극복할 의통의 전수와 함께 세계 문명국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희망까지 아우르면서 주변종교에서 나아가서 세계종교가 지닌 보편성으로 확대되는 대안종교의 비전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확장되며, 세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장면은 그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증거로 설정된다.

표 1. 대순진리회 관련 신종교영화의 비교
<화평의 길> <강증산, 이제는 상생이다>
제작/방영 시기 1984 1997
제작사 신한영화주식회사 (강대진 감독) 전주 MBC
매체 장르 종교영화 종교 다큐멘터리 드라마
구성방식 내부자 시선의 액자식 구성 (조정산-강증산-조정산) 내외부 교차시선의 삼중구성 (내레이션-드라마-전문해설)
목소리 대순진리회의 교리적 시선 강증산 일화의 액자식 구성 지역-문화-종교-역사 + 범증산계 교리적 시선
특징 이형우 작가 시나리오 도전 박우당 감수, 배우 선정 다수의 도인 단역 출연 대순진리회의 제작비 지원 전문 연구자(향토사학자 등), 문화예술인(시인 김지하), 종교인 해설 출연
성격 교단의 교리적 시선 신앙고백적 내부 시선 타종파와 우호적 공감적 시선 지역성과 연관된 공감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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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현대 한국의 신앙참여적 신종교영화는 기성종교나 기존질서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거나 배제되었던 주변인들의 원한을 풀고 말할 수 없었던 하위주체들의 목소리의 제 자리를 찾아주었다는 점에서 적극적 대안종교의 새로운 비전을 잘 보여줌으로써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보천교를 비롯한 다양한 증산계 교단들은 식민지배를 받았던 일제강점기에 함께 민족적 고통을 함께 분담한 민족종교37)였기 때문에 식민지 치하에서 다양한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표현할 만한 창구 역할을 통해 다른 신종교들보다 공적 영역에서 일정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화평의 길>은 ‘해원상생’의 이념에 따라 주변종교를 넘어서서 보편적 세계종교를 지향하는 대안종교의 혁신적 비전이 있었던 것이다.

Ⅳ. 신종교영화의 가능성과 전망

지금까지 신종교영화의 제작이 부진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일천한 현상과 그 원인에 대해서 진단하고, 그 토대 위에서 기존 신종교영화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였다. 기존의 신종교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는 일부 신종교현상의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일화들을 선정적인 스캔들로 자극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일부 장르영화에서 부정적 소재로 소비하거나 일부 이탈자들의 증언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시사 고발 다큐멘터리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와 한국의 민족종교를 소재로 삼은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기존 신종교영화의 주류였던 사회비평적 신종교영화를 넘어서서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와 공감성찰형 신종교영화로 신종교영화의 범위와 특성에 대한 이해가 확장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론에서는 세 가지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첫째, 신종교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연관된 신종교영화의 유형과 성격을 검토했다. 특히 신종교를 주변종교와 대안종교의 개념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고, 그것이 영화적으로 재현 혹은 표현되는 방식을 유형론적으로 검토했다. 이를 통해 신종교운동을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소종파(cult)로 비판하면서 세뇌와 일탈의 관점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영상화하여 소비하는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와는 달리, 최근 주류사회나 기성종교의 일방적 프레임을 넘어서서 기성종교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주변종교나 기성종교를 대체하려는 적극적 대안종교의 관점을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타자공감과 자기성찰의 모습을 함께 드러내는 ‘공감성찰형 종교영화’, 나아가 한국의 신종교영화에서 분명하게 부각되는 새로운 영화적 경향, 곧 주류사회나 기성종교에서 억압되었던 소수자 혹은 비주류의 목소리를 신종교인들의 진정성으로 반영하면서 적극적 대안종교의 가능성을 반영하는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의 특성을 설명했다.

둘째, 신종교영화가 보여주는 영화적 에토스가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맥락을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을 검토했다. 먼저, <정화: 사이언톨로지와 신앙의 감옥>과 <거룩한 지옥> 등 사회비평적 신종교영화들이 세뇌와 일탈의 관점에서 신종교현상의 문제점을 규범적인 단일 프레임과 비판적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과학이나 예술과 접목된 영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종교적 관심이 나타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사회비평 일색이었던 신종교 다큐멘터리 가운데서도 미국의 라즈니쉬 푸람을 다룬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처럼 다면적인 프레임 구성과 다성적인 목소리를 갖춘 열린 프레임을 통해 종교적 신앙과 사회적 비판을 교차시키고 타자공감과 자기성찰의 목소리를 병행시킴으로써 균형을 취한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도 등장했으며, 신종교 구루를 가장하고 실제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여 종교적 반응을 이끌어낸 다음 모든 것이 가상의 허구였음을 드러내는 영화적 실험을 한 <쿠마레(Kumare)>처럼 상상적 신종교 다큐멘터리도 있음을 검토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신종교에 새롭게 부각되는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 혹은 신종교 다큐멘터리의 대표적 사례로서 대순진리회의 신앙적 참여가 이루어진 <화평의 길>과 아울러 증산계 다른 종단과 지역사회와 문화예술계가 함께 참여하여 다면적 구성을 이룬 <강증산, 이제는 상생이다>가 후천개벽과 해원상생의 대안종교적 비전을 통해 기성종교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었던 주변인들의 원한을 풀고 말할 수 없었던 하위주체들(subalterns)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새로운 영상적 방식을 살펴보았다.

셋째,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신종교의 대안문화적 가능성과 영화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분석했다. 특히 신앙참여형 신종교영화와 공감성찰형 신종교 다큐멘터리를 통해 구현되면서 기성종교와 기존질서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주변적 하위주체들의 목소리에 제 자리를 찾아주면서 영화적 형상화는 단일한 규범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다성적 목소리가 다면적이고 역동적으로 존재하는 실상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프레임으로 변화한다는 점을 밝혔다.

실제로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가 물리적 폭력과 성(性)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억압에 반대하여 주류사회와 기성종교의 구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반문화운동(counter-culture movement)을 배경으로 카니발의 수행을 통해 억압적 경건으로부터 벗어나서 해방적 자유로 나아가는 양상을 대안종교적 비전을 선보였다면, <화평의 길>은 왕조시대와 피식민지라는 구시대와 당대의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각종 차별과 갈등의 상극으로 인해 고통받던 사람들의 원한을 풀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상생(相生)의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또한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가 신종교 내부 구성원들의 신앙고백도 다면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목소리의 다성성(多聲性)을 보여주는 자기성찰을 드러내면서 신종교인이나 관객을 통제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했다면, <화평의 길>이나 <강증산, 이제는 상생이다> 등은 신종교의 대안적 비전에 대한 타자공감의 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주관적 고백과 공감적 관찰의 조화를 통해 사회-역사적 맥락을 초월하는 종교적 의식의 창조적 비전을 역설함으로써 기성종교나 기존질서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거나 배제되었던 주변인들의 원한을 풀고 말할 수 없었던 하위주체들의 목소리의 제 자리를 찾아주었으며, 후천개벽이나 해원상생의 적극적 대안종교의 새로운 비전을 통해 사회비평형 신종교영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본 연구는 신종교 내부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외부적 접근과 지나친 가치평가에 기댄 과도한 사회비평적 신종교영화의 한계와 문제점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내부자의 목소리가 지닌 종교적 진정성과 다성성을 기반으로 삼고, 신앙적 참여와 공감적 성찰을 통해 주관적인 내부적 시선과 객관적 외부적 시선을 넘어서서 양자를 두루 고려하는 교호적 시선에서 역사-사회적 맥락과 더불어 종교적 비전과 영화적 구성을 균형있게 고려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앵글과 미장센, 내러티브의 구성과 캐릭터의 특성 등의 영상적 형상화 방식을 분석하였다. 또한 신종교 다큐멘터리에서 잘 드러나는 목소리의 다성성 회복과 카니발의 수행을 통해 규범적이고 단성적인 프레임을 넘어서서 다성적으로 재구성되는 고백적 목소리들의 다면성을 포착하고, 그것이 신종교 내부와 외부 모두에 존재한다는 점을 분석함으로써 신종교들이 내부로 심화되고 외부로 확장될 수 있는 단서를 탐색했다. 아직 시론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다층적이고 다성적인 접근은 신종교의 성숙과 확장 및 사회의 신종교 이해의 심화를 위해서도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Footnotes

1) 예수영화 100년사의 흐름과 경향의 검토로는 W. Barnes Tatum, Jesus at the Movie: A Guide to the First Hundred Years and Beyond, 3rdedition (Salem, Oregon: Polebridge Press, 2013); David J. Shepherd ed., The Silents of Jesus in the Cinema(1897-1927) (New York: Routledge, 2016) 참조. 종교영화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서구 그리스도교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사와 연계하여 개괄적으로 검토한 연구로는 John C. Lyden ed., The Routledge Companion to Religion and Film (London: Routledge, 2009), pp.13-88 참조.

2) Paul Thomas, “New Religious Movements”, in John C. Lyden ed., The Routledge Companion to Religion and Film (London: Routledge, 2009), pp.214-234.

3) 예컨대, 대순진리회를 소재로 삼은 언론의 사회적 관심과 담론의 사례 분석에서 이런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우혜란, 「대순진리회 관련 미디어 담론의 분석」, 『종교연구』 78-2 (2018) 참조.

4) 멜 깁슨 감독의 <핵소 고지(Hacksaw Ridge)>(2016)는 대표적인 예외 사례로서,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집총을 거부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를 다루고 있지만, 참혹한 전쟁에서 종교적 신념 때문에 차별받으면서도 그 신념과 애국심을 병행하면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주인공의 헌신을 형상화했다. 이 영화는 전쟁상황에서 애국적 헌신이라는 희생 덕분에 양심에 따른 집총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수용되는 계기를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헌신적 희생은 신종교의 이질성보다는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의 틀에서 해석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5) 넷플릭스는 기존 영화와 달리 개방형 인터넷을 통하여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OTT(Over-The-Top) 방식을 도입하여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관심과 접근성을 상당히 높였다.

6) 한국 신종교영화의 현황은 신광철, 「한국 종교영화의 현황과 전망」, 『한국종교』 28 (2004) 참조.

7) 박종수, 「한국 종교영화의 역사적 전개와 특징」, 『한국예술연구』 13 (2016), p.206.

8) 신광철, 「신종교와 영화 1: 임권택 감독의 영화 <개벽>의 경우」, 『신종교연구』 7 (2002), pp.39-42.

9) 안신, 「강증산(姜甑山)의 해원사상에 대한 이해 - 영화 <화평의 길> (1984)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23 (2014) 참조.

10) 신종교에 대한 개괄적 이해로는 Lorne L. Dawson ed., Cults and New Religious Movements: A Reader (Cambridge, MA: Blackwell Publishers, 2003) 참조. 신종교 개념과 그에 대한 접근방식의 다양한 관점과 특성에 대해서는 강돈구, 「신종교연구서설」, 『종교학연구』 6 (1987); 김태연, 「‘신종교’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 ‘신종교’ 개념 문제를 중심으로」, 『종교문화비평』 31 (2017) 참조. 신종교는 ‘세계종교’(world religion)에 대비한 ‘민족종교’(ethnic religion) 혹은 ‘공인종교’(official religion)에 견주는 ‘민중종교’(popular religion)와 일부 유사하지만, 근대화 이후라는 역사적 층위로 인해 다른 용어들과 분명한 개념적 차이가 있다.

11) Stephen J. Stein, Communities of Dissent: A History of Alternative Religions in Americ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pp.1-12; 강돈구, 앞의 글, pp.183-184; 김태연, 앞의 글, pp.297-299 참조.

12) 슈타인은 종교사회학에서 고전적으로 사용하는 cult나 sect 대신 alternative religions, outsider religious groups, marginal communities 등의 용어들을 대체 용어로 검토한 바 있는데, 이 글에서는 슈타인의 논의를 토대로 삼되, 좀더 적극적으로 기성종교에 대비되는 주변종교와 대안종교를 신종교의 유형으로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Stephen J. Stein, op. cit., pp.5-6 참조.

13) 박종천, 「영화가 종교를 만났을 때 - 김기덕의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2003)>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44 (2006), pp.293-298.

14) 내부자의 주관적 관점[within], 외부자의 객관적 관점[without] 및 양자의 교호적 관점[detached-within] 등으로 나타나는 현상학적 유형론에 대해서는 Winston L. King, Introduction to Religion: A Phenomenological Approach (New York: Harper & Row, 1968) 참조.

15) William R. Telford, “Jesus Christ Movie-Star: The Depiction of Jesus in the Cinema”, in Clive Marsh and G. W. Ortiz eds. Explorations in Theology and Film (Oxford, U.K.: Blackwell, 1997), pp.246-255.

16) 박종천, 앞의 글, pp.294-295 참조.

17) 영화 홈페이지 http://kumaremovie.com/; 홍보 홈페이지 http://www.kumare.org/ 참조.

18) 이 문제에 대한 자세한 토론으로는 Thomas Robbins, Dick Anthony, “Deprogramming, Brainwashing and the Medicalization of Deviant Religious Groups”, Social Problems 29/2 (1982), pp.283-297; James T. Richardson, “Cult/Brainwashing Cases and Freedom of Religion”, Journal of Church and State 33-1 (1991), pp.55-74; James T. Richardson, “A Critique of “Brainwashing” Claims About New Religious Movements”, Lorne L. Dawson ed., Cults and New Religious Movements: A Reader (Cambridge, MA: Blackwell Publishers, 2003), pp.160-166; James T. Richardson ed., Regulating Religion: Case Studies from Around the Globe (New York: Kluwer Academic/Plenum Publishers, 2004) 참조.

19) 오쇼, 『오쇼 자서전』, 김현국 옮김 (서울: 태일출판사, 2003), p.519.

20) Hugh B. Urban, Zorba the Buddha: Sex, Spirituality, and Capitalism in the Global Osho Movement (Oakland, 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5), p.65이하 참조.

21) Ibid., pp.111-118 참조.

22) 마 프렘 순요, 『오쇼, 삶의 기록』, 손민규 옮김 (서울: 태일출판사, 2013).

23) Hugh Milne, Bhagwan: The God That Failed (New York: St. Martin’s Press, 1986), pp.294-322.

24) 다성성에 대해서는 유지선ㆍ정재형, 「소노 시온(園子温) 영화의 원적 세계와 다성성(polyphony)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75 (2018) 참조.

25) 미하일 바흐찐,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이덕형 옮김 (서울: 아카넷, 2001) 참조.

26) 이는 영화 속에서 일경에게 취조받는 강증산이 한 대사인데, 일제라는 현실 권력에 의병처럼 정치적으로 갈등을 빚는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 아니라 ‘만인을 살리고 만국을 화평케 하는’ 종교적 비전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의 ‘하늘나라’라는 종교적 비전이 로마제국의 현실권력과 유사한 유비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재구성된 해당 종교적 비전은 다음과 같다. 『전경』, 예시 1장 80절, “후천에는 사람마다 불로 불사하여 장생을 얻으며 궤합을 열면 옷과 밥이 나오며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리라.”; 『전경』, 행록 4장 27절, “윤근은 「선생이 곧 만인을 살리는 상제시니라」고 고백하였도다.”

27) 『전경』, 공사 3장 4절.

28) 『대순회보』 35 (1993), p.2; 『대순회보』 45 (1995) p.2; 신상미, 「영화 “평화의 길”이 만들어지기까지」, 『대순회보』 140 (2013)에서 재구성하여 재인용함.

29) 『전경』, 교법 1장 24절,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빈천을 즐기지 않으며 강한 자는 약한 것을 즐기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을 즐기지 않으니 그러므로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곧 나의 사람이니라」 하셨도다.”; 교법 2장 11절,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후천에서는 약한 자가 도움을 얻으며 병든 자가 일어나며 천한 자가 높아지며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을 것이요. 강하고 부하고 귀하고 지혜로운 자는 다 스스로 깎일지라」고 이르셨도다.”; 교법 3장 1절, “상제께서 「나는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고 사람에게도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 속에 드나들게 하여 다 고쳐 쓰리라. 그러므로 나는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천하고 어리석은 자를 쓰리니 이는 비록 초목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게 되는 연고이니라」 말씀하셨도다.”

30) 안신, 앞의 글, pp.137-141 참조.

31) 같은 글, pp.137-139.

32) 『요한복음』 7:53-8:11.

33) 강대진(1933-1987) 감독이 기독교를 소재로 삼아 <사랑의 원자탄>(1977), <사랑의 뿌리>(1978), <석양의 10번가>(1979), <죽으면 살리라>(1982) 등의 종교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간음한 여성의 구원 이야기는 종교적 보편성의 극적 연출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만하다.

34) 이 영화의 액자식 구성의 의미에 대해서는 안신, 앞의 글, pp.112-121 참조.

35) 같은 글, p.112 참조.

36) 신상미, 앞의 글, pp.44-53.

37) 예컨대, 보천교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연관되어 탄압받았다. 박인규, 「일제강점기 증산계 종교운동 연구 - 차월곡의 보천교와 조정산의 무극도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9) 참조.

참고문헌(References)

1.

『전경』,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2.

『대순회보』.

3.

강돈구, 「신종교연구서설」, 『종교학연구』 6, 1987..

4.

김태연, 「‘신종교’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 - ‘신종교’ 개념 문제를 중심으로」, 『종교문화비평』 31, 2017. http://uci.or.kr/G704-SER000003135.2017.31.31.007.

5.

마 프렘 순요, 『오쇼, 삶의 기록』, 손민규 옮김, 서울: 태일출판사, 20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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