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풍경(風景)에 대한 대순사상적 접근*

노승복 1 , **
Seung-bok Roh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Professor, Divison of Visual Arts, Daejin University
**대진대학교 교수, E-mail: sbroh@daejin.ac.kr

© Copyright 2019,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Oct 30, 2019; Revised: Nov 25, 2019; Accepted: Dec 14, 2019

Published Online: Dec 31, 2019

초록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그 범위를 특정하기란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예술이란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환경, 경험과 기억을 작품 활동을 통해 창조적으로 표현한 미적 산물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작품의 대상을 풍경, 풍경 중에서도 외면과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무연고 묘지로 하였으며, 무연고 묘지가 된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매체를 통해, 또 그 묘지를 돌보는 사람들의 전언을 통해 확실히 인지한 후 작품을 형상화하였다.

본 작품은 무연고 묘지와 무연고 묘지를 돌보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풍경’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작품은 사회적 산물로서 사회로부터 동기부여를 받기 때문에, 작가는 시대적 사회상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하여 밝은 것 이면에 있는 어두운 것이나 어두운 것 이면에 있는 밝은 것을 찾아내 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더 나은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 논자의 작품 2013년 <조화(弔花, 造花, 調和)>, 2015년 <풍경의 가장자리>, 2017년~2018년 <풍경이 된 몸>과 <기억하는 풍경>은 묘원에 있는 조화(弔花), 오랫동안 찾지 않은 무덤, 버려진 무연고 무덤이 있는 풍경을 소재로 하였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의도한 생각을 작품에 반영하여 관객과 소통을 원한다. 더 나아가 창작의 성격과 목적이 명확하다면 관람객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본 논자는 지금까지 창작한 작품 중 대순사상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함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더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 글은 작품의 대순사상적 해석에 대한 하나의 시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순사상과의 연관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작품 해설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작품 <풍경이 된 몸>의 소재로 전남 나주, 대구, 경기도 안성에 있는 무연고 묘지, 작품 <기억하는 풍경>의 소재로 경기도 안산에 있는 선감학원과 제주도 4ㆍ3 사건의 무연고 묘지를 다루었다. 특히 <기억하는 풍경> 작품 중의 하나로 제주 4ㆍ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백비_기억하는 풍경>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리고 작품의 대순사상적 해석을 위해 작품 <풍경이 된 몸> 중 나주 무연고 묘지에 대한 것은 음양합덕(陰陽合德)에, 안성 무연고 묘지에 관한 것은 성ㆍ경ㆍ신(誠敬信)에, 대구 사형수 무연고 묘지와 <기억하는 풍경> 작품인 안산 선감학원의 무연고 묘지와 제주도 4ㆍ3 사건 백비(白碑)에 관한 것은 해원상생(解冤相生)에 적용시켜 대순사상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았다.

Abstract

Although it is difficult to define art in a word or to define its scope, art is generally a general term for an aesthetic product that creatively expresses a specific object, environment, experience, or memory through work activities. In this article, the artistic works to be examined are unmarked graves. Usually, in comparison with other landscapes, unmarked graves are regarded as objects of disgust that are best externalized.

The historical background and facts surrounding unmarked graves are clearly recognized by the media and imbued with deeper meaning through the words of the caretakers who look after these gravesites.

As artistic works, these are essentially ‘landscapes’ that were created by people who have devoted their lives to caring for unmarked graves. Since their works were motivated by society as a social product, these artists seek a better world by objectively and coldly judging the social situation of their times and finding brightness within something usually deemed dark. They sublimate this hidden beauty in their artwork. In this sense, my own works, 2013’s <Johwa (造 花, 造 花, 調和)>, 2015’s <Edge of Landscape>, 2017-2018’s <Body Landscape> and <Remembering Landscape> have come to be featured in cemeteries. These works were based on bringing landscape-harmony to long unclaimed tombs as well as abandoned tombs.

Artists want to communicate with their intentions to their audience by directly reflecting it in their works. Furthermore, if the nature itself and the purpose of the artwork are clear, the viewers can easily maximize their understanding of the work they are viewing. This paper tries to add meaning to my works by introducing my portfolio to date and interpreting in via Daesoon Thought. Therefore, this paper may be considered as an attempt to interpret the chronological ideology behind my art.

In order to examine the connection between my works and Daesoon Thought, commentary on the works should be presented first. <Scene of the Landscape>, are on display in Yeonju Cemetery in Naju, Daegu, Anseong, Gyeonggi-do, and at the Gamyeon Academy in Ansan, Gyeonggi-do. In particular, <Remembering Landscape> honors those who lost their lives in April Third Jeju Uprising of 1948-1949. This work is subtitled, <Unnamed Monument_Remembering Landscape>.

As interpreted through Daesoon Thought, the work (Body Scape) relates to Virtuous Concordance of Yin and Yang (陰陽合德) for the unmarked graves in Naju of pauper’s graves. And Sincerity, Respectfulness, and Faithfulness (誠ㆍ敬ㆍ信) correspond with the unmarked graves for the death-row convicts of Daegu prison house. The unmarked graves related to the scandal involving Ansan Sungam Academy are honored by the work titled <Remembering Landscape>. Along with the previously mentioned ‘Unnamed Monument’ for the Jeju Uprising, <Remembering Landscape> corresponds to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Keywords: 대순사상; 풍경; 무연고; 무덤; 백비; 사건
Keywords: Daesoon Thought; Landscapes; Unmarked Graves; Tombs; Accidents

Ⅰ. 들어가는 말

풍경(風景)1)이란 감상의 대상이 되는 자연2)이나 세상의 모습을 말한다. 이러한 풍경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사람이 살다가 의도 혹은 의도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것이 있다. 본 논자는 후자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기획ㆍ완성했다. 여기서 소재가 된 풍경들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은 아니며, 누구나 아는 풍경이지만 개인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더 나아가 자의식(自意識)을 낮추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다’라는 태도로 접근한 풍경이다. 본 논자의 작품 2013년 <조화(弔花, 造花, 調和)>, 2015년 <풍경의 가장자리>, 2017년~2018년 <풍경이 된 몸>과 <기억하는 풍경>은 묘원에 있는 조화(弔花), 오랫동안 찾지 않은 무덤, 버려진 무연고 무덤이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무덤은 인생의 완결이며 종착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풍경이 만들어진 과정과 이유 그리고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 의해서 풍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본 논자는 무덤이라는 풍경을 통해 사건이 일어난 시대적 상황과 그 사건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가능한 한 사실에 입각하여 냉철하게 담아내려고 했다.

작품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전제로, 본 논자가 지금까지 창작한 작품 중 대순사상의 음양합덕, 해원상생, 삼요체인 성ㆍ경ㆍ신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함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자 했다. 이 글은 작품의 대순사상적 해석에 대한 하나의 시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Ⅱ. ‘풍경’ 작품 해설

1. <풍경이 된 몸> 작품

가족과 지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버려진 무덤에서 삶과 현실, 외면, 평화, 슬픔, 경외, 모순 등을 본다.

1) 나주 무연고 묘지(전라남도 나주시 대기동 산 175-1)

1991년부터 나주시 대기동 마을 주민들은 인근에 주인 없이 흩어져 있던 묘지를 조사해서 한 기씩 모아 마을 입구에 무연고 묘지 239기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매년 추석마다 벌초 봉사를 하고 있으며, 1994년 이창동 새마을협의회에서 비용을 마련해 작은 대리석으로 ‘무연고 묘소’ 비석을 새겨 관리해오고 있다.<그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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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풍경이 된 몸> 160*110cm/digital achieve pigment print/2017/리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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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풍경이 된 몸> 160*110cm/digital achieve pigment print/2017/리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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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구 무연고 묘지(대구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 산144-5)

대구 교도소 사형수 묘지는 1971년 대구 교도소가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서 달성군 화원읍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됐다. 당시 대구 교도소는 사형집행이 많이 이루어지기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곳이었다. 유신시대(제4공화국)나 후일 전두환 시대에 반정부 정치범들에게 가장 가혹한 처우를 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 간첩단 사건 등으로 수감된 사형수 등도 상당수 묻혀 있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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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풍경이 된 몸> 160*110cm/digital achieve pigment print/2017/리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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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풍경이 된 몸> 160*110cm/digital achieve pigment print/2017/리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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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전국적으로 간첩죄 명목의 사형이 빈번했으며 대구 교도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반공 이념이 철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가족들도 사형수 시신 수령을 꺼리거나 연고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사형집행 후 시신을 찾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대구 교도소에는 찾아가지 않은 시신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사형당한 시신들을 따로 안치하기 위해 비슬산 기슭에 묘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이 묘지에는 작은 봉분 70여 기와 42명을 합장한 큰 봉분이 있다. 그리고 1996년 11월 15일을 마지막으로 새로운 봉분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3) 안성 무연고 묘지(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계륵리 산24)

본 논자는 경기문화재단 중견작가 작품 제작지원에 선정되어 경기도 미술관에서 전시한 영상 작품으로 안성에 소재한 배나무 과수원과 솟아오른 무연고 묘지들을 3년 동안 촬영하였다. 이곳은 한 농부가 평생 산을 조금씩 깎아내고 개간하여 배나무를 심은 과수원이다. 농부는 개간 과정에서 산속에 있는 무연고 묘지들을 그대로 남겨 두었고, 이 무덤들은 50여 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과수원 속에 작은 산이 있는 모습으로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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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풍경이 된 몸> video still view/2017~2018/경기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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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풍경이 된 몸> video still view/2017~2018/경기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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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풍경이 된 몸> HD 5 channel, 6m*4m*5 pieces/drone. osmo. dslr. dolly/8m 22sec no sound/2017~2018/경기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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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풍경이 된 몸> HD 5 channel, 6m*4m*5 pieces/drone. osmo. dslr. dolly/8m 22sec no sound/2017~2018/경기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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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풍경이 된 몸> HD 5 channel, 6m*4m*5 pieces/drone. osmo. dslr. dolly/8m 22sec no sound/2017~2018/경기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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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풍경이 된 몸> HD 5 channel, 6m*4m*5 pieces/drone. osmo. dslr. dolly/8m 22sec no sound/2017~2018/경기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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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풍경의 가장자리>에 대한 작업을 해오면서 다양한 무연고 묘지를 보게 되었지만, 안성에서 발견된 배나무 과수원 속에 있는 무연고 묘지는 무덤의 형상을 벗어나 낯설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였다. 무덤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마치 움막집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작은 동산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고라니가 몸을 숨기는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세 번의 시절을 겪었지만, 항상 이곳은 예상했던 풍경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곳은 자연의 섭리와 한 인간이 평생 순수한 삶을 영위한 시간의 과정과 노고가 함께 만들어낸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은 <풍경의 가장자리>를 작업할 때와는 달리 지속적인 시간성과 다양한 시점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인 드론, 오스모, 디에스엘알, 달리 등을 이용하여 총체적이고 거시적으로 표현하였다.

2. <기억하는 풍경> 작품

<기억하는 풍경>의 배경은 죽음이 있었던 장소지만 죽음의 흔적이 지워지거나 사라진 장소들을 촬영한 곳이며, 제도와 책임에 의해 연고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을 바라본다.

1) 선감학원 무연고 묘지(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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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기억하는 풍경> 160*110cm/digital achieve pigment print/2017/리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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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기억하는 풍경> 160*110cm/digital achieve pigment print/2017/리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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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은 선감도라는 섬에 위치했던 소년 수용소이다. 1942년 일제가 부랑아 수용을 목적으로 만든 뒤 광복 이후에도 36년(1946~1982년) 동안 수도권에서 불량행위를 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8~18살의 청소년을 집단 수용해 인권을 짓밟은 곳이다. 부랑아로 지목된 아이들은 대다수가 알려진 것과 달리 집과 부모가 있는 빈민 아동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에서 이유도 모른 채 잡혀 온 아이들은 강제노동, 잔인한 폭력, 성폭행을 겪으며 감금되었다.

40여 년 동안 많은 청소년들이 폭력과 영양실조 그리고 탈출을 시도하다 죽었고 그 시신들은 이곳에 버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몇 년 전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경기도청은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었던 시신들을 수습하고 무고하게 죽은 아이들이 묻힌 무덤들을 보살피려고 계획 중이다. 또 그 당시 살아남은 생존자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2) 백비_기억하는 풍경

<백비_기억하는 풍경>은 2018년 제주 4ㆍ3사건 70주년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플로팅 홀로그램 영상 작품으로 본 논자와 신판섭 교수(본교 휴먼 IT 융합학부)와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제주 4ㆍ3사건(1947~1954년)은 대한민국 근현대사 중 6ㆍ25전쟁(1950~1953년)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사건이다. 제주도는 이때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4ㆍ3 평화 기념관에 큰 하얀 비석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백비(白碑)에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고 완전히 뉘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어디를 가나 온통 사람들이 죽은 곳이라고 해서 무덤의 섬이라고 한다. 억울한 죽음이 남긴 한(恨)이 서려 있는 슬픈 섬이다. 하지만 죽음이 있었던 장소에는 바다와 바람, 돌과 나무들만 무성하여 오직 풍경만이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비문이 없는 백비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전형적인 플로팅 홀로그램을 만들었다. 홀로그램은 Holo(전체) + Gram(메시지)를 의미한다. 즉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백비는 ‘죽음[전체]+기억[메시지]’을 상징한다. 그래서 인간의 삶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는 이 백비를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 풍경으로 가져왔다. 관객들은 두 개의 스크린을 통해서 작품을 보게 된다. 배경이 되는 스크린에는 사람들이 죽었던 장소[풍경]가 나오고 홀로그램의 스크린에는 백비와 장소 설명[텍스트]이 교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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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제주 4ㆍ3 평화 기념관 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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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제주 4ㆍ3 유적지 곤을동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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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제주 4ㆍ3 유적지 무등이왓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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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제주 4ㆍ3 유적지 빌레못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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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제주 4ㆍ3 서북청년단 주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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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제주 4ㆍ3 유적지 다랑쉬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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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제주 4ㆍ3 기념공원 행불인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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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백비_기억하는 풍경> 플로팅 홀로그램+영상설치/2018/대한민국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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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백비_기억하는 풍경> 플로팅 홀로그램+영상설치/2018/대한민국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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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본 풍경

1. 대순사상과 풍경의 만남

한국은 전통적으로 묘지를 집이나 마을 가까이에 쓰는 것을 터부시해왔기 때문에, 주변에 무연고 묘지가 있다는 것은 더더욱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돌보지 않고 혐오스럽게 여기는 무연고 묘지를 보살피며 삶의 터전과 죽음의 터전[무덤], 즉 삶과 죽음의 공존을 존중하며 상생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연고 묘지에 얽힌 감동적인 사실과 비극적 사실들을 함께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연이 없는 죽음은 없다고 하듯이, 그곳을 찾았을 때 무연고 무덤은 그동안 말하지 못한 사연들을 들려주고 싶은 듯했다. 그래서 여러 해에 걸쳐 그 무덤들을 자주 찾았고, 관계자들로부터 그 주변에 얽힌 이야기도 많이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외로운 무덤들도 있었지만, 역사적 진실이 완전히 규명되길 기다리며 묵묵히 누워있는 무덤들, 그리고 원한을 품은 채 사상적ㆍ정치적으로 희생되어 차디찬 공간 어디엔가 묻혀 있을 주검들도 있었다.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죽음이 머금고 있는 진실을 밝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순수한 마음이 본 논자를 창작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품 <풍경이 된 몸>의 소재로 전남 나주, 대구, 경기도 안성에 있는 무연고 묘지, 작품 <기억하는 풍경>의 소재로 경기도 안산에 있는 선감학원과 제주도 4ㆍ3 사건의 무연고 묘지를 다루었다. 특히 <기억하는 풍경> 작품 중의 하나로 제주 4ㆍ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백비_기억하는 풍경>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무연고 묘지와 그와 관련된 사실들을 표현한 상기 작품 모두를 음양합덕(陰陽合德), 해원상생(解冤相生), 성ㆍ경ㆍ신(誠敬信)과 두루 관련지어 볼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이를 더욱 세분화하여 작품 <풍경이 된 몸> 중 나주 무연고 묘지에 대한 것은 음양합덕에, 안성 무연고 묘지에 관한 것은 성ㆍ경ㆍ신에, 대구 무연고 묘지와 <기억하는 풍경> 작품인 안산 선감학원의 무연고 묘지와 제주도 4ㆍ3 사건 백비(白碑)에 관한 것은 해원상생에 적용시켜 재조명해 보았다.

2. 대순사상의 적용
1) 음양합덕

앞서 소개한 무연고 묘지를 모두 음양합덕에 적용해 볼 수 있지만, 특히 나주 무연고 묘지에 이 사상을 적용한 이유는 마을 사람 전체의 합의에 의해 묘지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연고 묘지는 개인이나 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개인인 경우 자신의 소신에 따라 관리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단체인 경우 그 단체가 추구하는 목적이나 이념에 합당하면 일을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마을 사람 모두의 동의로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묘지를 마을에 조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묘지 조성지가 자기 소유의 건물이나 임야 가까이에 위치해 재산권 침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기피의 대상인 무연고 묘지의 조성을 기꺼이 용인했던 것이다. 그리고 묘지를 마을 입구에 만든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무덤을 배척하지 않고 삶속으로 끌어 앉았다고 생각한다.

음양합덕(陰陽合德)이란 직역하면 ‘음과 양의 덕(德)을 합한다.’는 말인데, ‘음과 양이 조화하여 상생을 이룬다.’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음양사상은 우주나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과 생성ㆍ소멸을 음양의 법칙에 따라 설명하는 이론이다. 대순사상에서는 “천지의 일은 모두 이 음양 속에서 이루어지고, 만물의 이치는 모두 이 음양 가운데서 이루어진다.”3)고 하여, 음과 양이 서로 정반대의 개념이면서도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음과 양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의존하는 관계’,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자기가 존재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서로 어느 한쪽을 부정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긍정함으로써 존재가 확인될 수 있는 필연적인 관계 하에 있다.

본래 죽은 자의 공간인 무덤을 음택(陰宅), 산 자의 공간인 집을 양택(陽宅)이라고 하여 음과 양으로 구분하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여 죽음을 음, 삶[현실]을 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주 대기동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주인 없이 버려져 있던 무연고 무덤들을 폐기하기 위한 무연고 이장 신청을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을 주변에 흩어져 있던 239기의 묘를 모아 마을 입구에 무연고 묘지를 조성하였다. 그 후 그들은 매년 추석 때마다 벌초를 하며 보살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연고 묘소’ 비석을 대리석에 새겨 관리해오고 있다. 그들은 ‘터부시하는 것’ 혹은 ‘혐오하는 것’들을 포용함은 물론, 삶과 죽음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 상생을 실천한 좋은 본보기이다. 고려시대에는 인삼 밭에 매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삶의 터전인 밭에 매장을 같이 하여 조상을 돌보기도 하고 삶을 영위하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선산문화가 발달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다. 선산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풍수가 좋은 묘지가 곧 복을 불러온다는 믿음 덕분으로 생과 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우주관의 영향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당시 권세가들은 선산을 통해 토지를 소유하는 방법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성내에 매장을 금하는 법이 만들어졌으나 풍수가 뛰어난 장소를 선호하는 정서 때문에 규제를 어기는 일도 잦았다. 선산이 없는 서민들을 위해 성 밖에 임야를 제공해 매장을 허락하였는데 이를 집장지라 불렀다. 이곳에는 선산과 달리 혈연을 따지지 않고 매장을 할 수가 있었다. 노장(路葬)이란 장묘형태도 있었다. 이는 미혼자가 죽었을 경우 길가에 매장하는 풍습을 뜻한다. 덕망 높은 승려, 나쁜 일로 죽은 경우 부모와 인연을 끊기 위해, 역병에 걸렸을 때, 그리고 전쟁에서 사망한 경우에는 화장을 치르기도 했다. 이러한 장묘는 ‘특수장’으로 분류되었다.4) 한국에 공동묘지가 설립된 것은 일제 식민 정책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식민 정부는 선산 중심의 묘지 문화가 토지 정리 및 개발에 어려움을 준다는 이유로 공동묘지를 만들고 화장법을 권장하였다.5) 한국인에게 죽음은 현실에서 배척되기보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강압적인 근대화 정책에 의해 일상 속에 공존하던 죽음이 배척되면서 한국인에게 죽음은 서서히 현실 바깥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죽음에 대한 관습은 식민 정부의 통제에 의해 수량적인 것으로 번역되어 제도의 틀 안으로 흡수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예(禮)’ 개념은 점차 희박해졌고 그 빈자리는 점차 위생이나 경제논리가 대체하게 되었다.”6) 그 이후로 묘지는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 우리는 삶과 죽음이 분리된 현실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등 서양의 나라들은 묘지들이 시내 중심에 있거나 마을 중심부에 있어 한가한 오후에 묘지를 자연스럽게 산책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럽게 상생의 세계를 실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베를린의 홀로 코스트, 파리의 공동묘지(몽파르나스, 페르-라셰즈, 파시)는 묘지의 개념을 벗어나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맨하탄과 같은 국제도시에도 83개의 묘지가 있다.7)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장례문화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여 공동묘지보다는 묘원으로 불리게 함으로써 혐오 시설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어 대량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림 22> 그리고 묘지의 형태도 친환경에 대한 생각과 묘지의 관리에 대한 부담으로 수목장과 같은 새로운 접근이 있다. 그러나 나주 대기동 마을의 주민들이 만든 무연고 묘지의 풍경은 사욕(私慾)을 위한 목적과 계획에 의해 의도된 것이 아니라, 천성(天性) 그대로의 양심(良心)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음양합덕과 상생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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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풍경의 가자장리>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평화공원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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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원상생

한국의 현대사에서 독재라는 굴곡진 역사는 이 세상에 무수한 원한을 양산해냈다. 대구 교도소와 안산 선감학원의 무연고 묘지, 그리고 제주 4ㆍ3 사건 백비(白碑)에 관련된 죽음 중 상당수가 정치적ㆍ사상적으로 희생된 억울한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죽음의 당사자들은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때로는 권력자에 대항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또는 증오와 적개심을 품은 채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당사자 가족과 지인들도 가혹한 핍박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시신조차 거둘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나약함을 자책하며 한 많은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둘러싼 그 주변엔 온통 원(怨)과 한(恨)으로 점철되어 있다.

원한(怨恨)이란 무엇인가? 원(怨)은 상대방에 대한 보복의 감정이 수반되어 적극적이고 가학적(加虐的)인데 반해, 한(恨)은 억울함과 분노는 있으나 무기력감, 무능력, 비애, 후회, 열등감 등으로 인해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채 단념하거나 체념하는 소극적이고 자학적(自虐的)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한(恨)은 누리는 자의 말이 아니라 누리지 못하는 자의 말이며, 극복하는 자의 말이 아니라 극복하지 못하는 자의 말이다.8) 대순사상을 대표하는 해원상생(解冤相生)은 이렇게 쌓이고 맺힌 원한을 풀고 서로 잘살자는 사상이다.

한편 6년 가까이 버려진 무덤과 오래된 무연고 무덤 풍경을 촬영하다 보니<풍경이 된 몸> 작업 중 대구 교도소 사형수 무연고 묘지<그림 34>는 우연히 벌초와 묘지관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의 블로그를 보고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이 묘지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빽빽하게 붙어 있는 묘들은 세월이 오래되어 나지막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관리가 잘 되어 마치 평범하고 오래된 묘지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묘지에는 비석 대신 이름과 날짜만 적혀있는 작은 돌이 봉분들 앞에 있었으며 마치 죄수들의 이름표를 연상시켰다. 묘지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큰 봉분이 한 가운데 보인다. 이 큰 봉분은 사형수 42기 이상을 합장한 것으로 큰 돌이 무덤을 누르고 있는데, 무덤에 묻힌 한(恨)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돌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너무나 한가롭게 보이고 평화롭게 보이는 묘지들이지만 관심을 갖고 이곳을 살피게 되면 평범한 묘지와는 다르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형은 합헌이지만 1996년 이후로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최근 흉악 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사형집행에 대한 여론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9) 그러나 사형집행은 해원상생의 관점에서 볼 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척(戚)’을 짓는 것으로, 국가는 단순히 응보적 대응보다는 먼저 피해자와 가해자가 근본적으로 원(冤)을 풀 수 있는 대체 제도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해원(解冤)은 과거에 쌓이고 맺힌 원한을 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원한이 맺히지 않도록 하는 것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범죄도 과거와 달리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는 지금, 해원상생의 사상을 재조명해 본다면 분명히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선감학원 사건과 제주 4ㆍ3 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많은 죽음이 있었던 사건이다. 작품 <기억하는 풍경>은 그 사건의 배경이 된 곳을 다룬 작업이다. 선감학원 무연고 묘지는 JTBC의 뉴스를 보고 찾아가게 되었다. 2017년 4월에 그곳 무연고 묘지를 방문했을 때, 이를 알리는 두 개의 노란색 현수막이 산 밑에 설치되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묘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궁색해서 한껏 자세를 낮춰 살펴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림 1112>

1년 후에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노란색 현수막 옆에 선감학원 위령제를 지냈다는 현수막 하나가 더 걸려 있었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한 끈도 설치되어 있었다. 마침 촬영 중 우연히 동네 분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앞으로 이곳에 선감학원 추모탑이 세워질 것이라는 했다. 또 선감학원 사건이 보도된 후, 이와 관련된 흉흉한 얘기로 말미암아 관광객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많은 불화가 있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늦게나마 정부는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보상 문제와 숨겨졌던 역사의 문제10)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과, 어두운 역사의 현장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정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제는 해원(解冤)에서 상생(相生)으로 가는 길목에 진입했다고 본다.

제주는 한 마을이 제삿날이 같은 곳이 많다. 제주 4ㆍ3 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 넘었지만, 아쉽게도 아직도 완전한 해원과는 거리가 먼 듯 보였다. 이것을 일컬어 ‘미진한 해원’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본 논자는 촬영차 제주도를 최근 2~3년 동안 자주 방문했었다. 제주도 현지 분들과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얘기하던 중, 그들로부터 외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가리켜 ‘뭍에서 온 것들’ 또는 ‘육지 것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그 말 속에서 원한의 감정이 짙게 묻어 나왔다. 제주 4ㆍ3은 만 7년(1948~1954년) 동안 사망 10,890명, 행방불명자 4,406명, 후유장애자 245명, 수형자 302명, 유가족 61,030명을 발생시킨 불행한 사건으로,11) 6ㆍ25 전쟁 다음으로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아직도 가해자의 진상규명이 명백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제주 4ㆍ3에 대한 제대로 된 이름조차 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작년은 제주 4ㆍ3 70주년이었다. 70주년 기념행사로 신판섭 교수님과 함께 <제주 4ㆍ3 이젠 우리의 역사>에 대한 전시회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하게 되었다. 이 전시회에 초청되기 전 본 논자는 제주의 역사와 무덤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제주 4ㆍ3 기념관에 있는 백비를 처음 보았을 때 감정은 아주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백비의 기원과 제주 4ㆍ3과 같은 백비가 또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여순사건과 관련하여 여수 만성리 학살지터12)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백비13)가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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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여수 만성리 학살터 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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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4. 여수 만성리 학살터 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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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70주년 기념행사로 전시회에 초청을 받았을 때 백비를 서울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고심한 끝에, 전형적인 홀로그램 방식인 플로팅 홀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 이것을 작품 <백비_기억하는 풍경>에 담아냈다. 여기에 뉘어져 있는 하얀 백비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며 ‘역사의 연고를 잃은 비석’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해보았다. <그림 13>

그리고 백비의 이미지 뒤쪽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제주 4ㆍ3의 유적지였다. 이 작품을 제작할 때 가장 중시했던 점은 ‘지워진 기억, 사라져 가는 기억’을 귀환시키는 것이었다. 기억의 귀환은 애도의 마음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4ㆍ3 사건에 의한 죽음을 둘러싼 해원은 진정한 애도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도(哀悼)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14)을 의미한다. 즉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 4ㆍ3 사건은 오랜 시간 동안 슬픔을 말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부모, 자식, 친구를 잃었어도 이념과 왜곡된 역사로 오히려 죄인처럼 긴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충분한 애도의 시간, 애도의 예, 애도의 마음을 나누었을 때 비로소 해원이 시작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비_기억하는 풍경>의 작품 마지막 이미지는 제주 4ㆍ3 기념공원 행불인 표석15)에 있는 이름들을 홀로그램으로 호명을 하며 끝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지난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에 뉴스에서는 기념식에 누가 참석을 해서 어떤 일 있었고 하는 식의 정치적 성향이 개입된 정보만 전할 뿐이었다. 정부는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기념할 것이고 어떻게 역사화 할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지만, 기념과 역사화는 애도가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애도란 행사 주최나 법의 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충분한 형태의 토로와 눈물 흘림, 가슴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 해소된 후, 근본적으로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는 시점의 상징적 표현이다. 아마 제주 4ㆍ3 사건도 여기서 출발했다면, 앞서 언급한 ‘미진한 해원’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3) 성ㆍ경ㆍ신

대순사상의 종지(宗旨)를 구현하기 위한 실천방법론인 신조(信條)에는 사강령(四綱領)과 삼요체(三要諦)가 있다. 사강령은 안심(安心)ㆍ안신(安身)ㆍ경천(敬天ㆍ수도(修道), 삼요체는 성ㆍ경ㆍ신(誠敬信)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요체는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실천적 자세로서 신앙적인 측면과 일반적인 측면으로 그 의미를 나누어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성(誠)은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 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마음의 자세를, 경(敬)은 예(禮)를 갖추어 상제님과 신명을 받드는 몸의 자세를, 신(信)은 신앙의 본의(本意)에 위배됨이 없음을 말한다.16) 이에 비해 후자의 경우 성(誠)은 성실한 마음을, 경(敬)은 매사에 예를 갖추어 처신 처세하는 것을, 신(信)은 일상의 일이나 대상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후자인 삼요체의 일반적 의미를 중심으로 작품제작 과정에서 경험한 사건과 감정에 적용해 보았다.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계륵리 산24번지에 있는 배 과수원과 무연고 묘지에 대한 작업은 3년이 걸렸다. 한 장소를 장시간에 걸쳐 자주 방문하면서 촬영한 것은 처음이었다. 2015년 초가을에 발견한 이곳은 50년 전에는 사과를 재배하던 산이었다. 과수원 주인 윤씨는 산을 매입한 후 사과 농사가 너무 힘들어서 배 농사로 전향하였는데, 매입 당시에도 그곳엔 무덤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누구의 무덤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비탈진 땅에 배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수로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에, 윤씨는 그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산을 평평하게 깎아냈다. 그러자 무덤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솟아올라 지금과 같은 형상이 되었다고 했다. “무연고 무덤인데 이장 신청을 왜 안 하셨나요? ”라고 여쭸더니, 윤씨는 “남의 무덤 건드려서 뭐 좋을 게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없앤다고 해서 배를 많이 심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 ”라고 소탈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는 욕심을 버리고 배 과수원과 무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과의 상생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평범한 농부로서 50년 전 이 산을 매입한 후, 오랜 시간에 걸쳐 무덤을 제외한 나머지 땅을 개간함으로써 지금의 경관을 만들어냈다.

현대 사회는 도시뿐 아니라 농촌까지도 수많은 장소와 장소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것을 경관으로 보여준다. 이 경관들은 일정한 목적과 계획하에 만들어진다. 계획을 세우는 주체는 기업, 정부, 행정제도이며 목적은 이윤, 효율성, 편리성 등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현대 경관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평준화된 경험, 대중적이고 이상화된 이미지에 기초한 단순한 감흥과 스펙타클17)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묘원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림 25> 최근에 만든 자하연 분당묘원과 <그림 26> 서울 근교에서 아주 오래된 용미리 묘지를 비교해 보면 한 눈에 차이를 알 수가 있다. 자하연 분당묘원은 우리가 사는 현재의 신도시 아파트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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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5. <풍경의 가장자리> 자하연 분당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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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6. <풍경의 가장자리> 용미리 제1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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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윤씨의 배 밭에서 느껴지는 경관이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관과 다르게 느껴지는 감흥은 무엇인가? 비록 그는 소유자지만 땅을 지배하지 않고 장소(무덤)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써 50여 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긴 세월 동안 기존의 장소가 가지는 정체성을 유지시키면서 의연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것은 그의 고귀한 정신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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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7. 경기도 안성시 미륵면 계산리 산 24번지 윤씨의 배 밭과 무연고 무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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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 경기도 안성시 미륵면 계산리 산 24번지 윤씨의 배 밭과 무연고 무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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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은 ‘성(誠) 그 자체는 하늘의 도(道)이며 성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道理)’라고 전하고 있다.18) 성(誠)은 마음의 자세로서 성실, 진실, 정직, 정성 등을 의미하며, 인간을 비롯한 천지만물에 두루 그 성정(性情)이 부여되어 있다. 농부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오랜 세월 동안 오로지 농부 본연의 길만을 걸으며 정성을 다한 것을 성(誠)이라 한다면, 아마 윤씨는 성(誠)을 충실히 실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誠)이 하늘의 이치에 따라 인간의 도리를 다하려는 마음의 자세라면, 경(敬)은 이를 실천하려는 몸의 자세이다. 경(敬)이란 모든 일이 인간의 본성인 양심에 따라 몸으로 표현되는 법으로 예의에 맞게 행해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경은 상제님과 천지신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인간 상호간에 예를 갖추어 처신 처세하는 것이다 예는 본래 종교의식에서 비록 되었으나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적 윤리적 행위에 있어서 알맞은 절도 또는 기준을 가리키게 되었다.19) 50년 동안 윤씨는 자신의 땅에 연고도 모르는 죽은 사람의 터를 예를 갖추어 돌보며 농사를 지어온 순수한 윤씨의 삶의 자세가 곧 경(敬)이라 여겨진다.

신(信)이란 어떤 대상의 가치를 인정하여 믿음을 갖는 일이다. 믿음을 가지려면 먼저 믿음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윤씨의 근면함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농작물은 아침마다 들려오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한다. 농부가 땅에 의지하여 농사를 짓는 것도 곡식을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다는 대자연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땅이나 사계절의 순환을 의심하고 자연재해를 걱정하는 등 불안한 생각만을 하게 된다면 농사를 지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믿음은 자신의 자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의심 없는 확신에 의해 형성된다. 한결같이 땅을 믿고 의지하여 5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농사일에 매진해 온 윤씨야 말로 신(信)을 온전히 실천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땅에 정성을 다하며 농부의 본분에 충실했고, 과수원을 가꾸고 무연고 묘지를 돌본 것은 땅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가 50년 동안 한결같이 농사에 매진해온 것은 땅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배나무 과수원과 무연고 묘지 풍경은 그의 성ㆍ경ㆍ신에 의해 만들어진 풍경이라 해석해 보았다.

Ⅳ. 맺는말

지금까지 대순사상으로 무덤(죽음)이 있었던 풍경을 살펴보았다. 대순(大巡)은 큰 대(大), 돌 순(巡)의 합성어로 ‘크게 돌아보다’ 즉 ‘크고 넓게 돌아보며 두루 살피다’라는 의미이다. 종결을 의미하는 무덤에서 대순을 따라 크게 돌아보니 다시 ‘삶’과 만났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덤[죽음]과 현세[삶]가 ‘지금’과 ‘여기’라는 같은 시ㆍ공간에 공존하고 있으면서도 무덤을 혐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묘원, 화장장, 납골당은 물론, 심지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장애시설, 이를테면 장애인을 위한 학교나 노인복지시설마저도 자신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지역이기주의에 밀려 거부당하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공공시설이지만 자신이 사는 곳에 설치하는 것만은 기피하는 이러한 현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생의 삶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또한 이념, 정치, 제도에 가려져 해원하기 힘든 현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수도 인이 아님에도 사람의 도리인 인도(人道)를 지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 경, 신, 음양합덕, 해원상생을 실천하며 무연고 묘지와 더불어 고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풍경’을 통해 바라보았다. 작품은 사회적 산물로서 사회로부터 동기부여를 받기 때문에, 시대적 사회상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하여 밝은 것 이면에 있는 어두운 것이나 어두운 것 이면에 있는 밝은 것을 찾아내 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더 나은 세계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 논자는 외면과 혐오의 대상인 무연고 묘지에 관심을 갖고, 무덤이라는 풍경에 나타난 현상을 형상화하고 그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상생이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았다.

앞서 적용한 음양합덕, 해원, 성ㆍ경ㆍ신은 ‘상생’이라는 두 글자로 귀결된다. 상생은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남을 잘 되게 하려는 이타심의 실천이 곧 상생의 첩경이라는 사실을 무연고 묘지 작업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어두운 곳을 보살펴 주변을 밝게 하고 자신의 삶을 한 줄기 빛으로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며, 상생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상생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실천되었으며 아울러 감동을 받는 풍경을 만들게 되었다.

Footnotes

* 이 논문은 2019학년도 대진대학교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한 것임.

1) 풍경(風景): ①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 ㆍ단풍이 곱게 물든 시골의 풍경은 그림처럼 보였다. ② 어떤 정경이나 상황ㆍ밤 기차 속의 풍경ㆍ시골의 장날의 풍경.《네이버 어학사전》(2019. 10. 30. 검색).

2) 자연(自然): ① 인간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그대로의 현상과 그에 따른 물질 ② 산, 바다, 호수와 같은 자연환경 ③ 사람을 제외한 자연물 모두 ④ 사람을 포함한 하늘과 땅, 우주, 만물 ⑤ 인위적이지 않은 행동이나 현상.《네이버 어학사전》(2019. 10. 30. 검색). 자연(nature): 일반적으로‘자연(nature)’이라 번역되는 희랍어 퓌시스(physis)는 형태상 ‘낳다’, ‘생산하다’에서 나온 것으로, 퓌에인 혹은 ‘생산하다’. ‘생성하다’의 뜻을 가진 ‘퓌에스타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퓌시스의 원래 의미는 ‘탄생’ 혹은‘기원’으로 되어있다. 퓌시스를 라틴어로 옮긴 것이 나투라(natura)이고 이것이 오늘날의 nature로 된 것이다. 노영돈, 「근대적 자연관과 독일 자연주의」, 『인문학연구』 5 (2003), p.91.

3) 『전경』, 교운 2장 42절, 「陰陽經」, “天地之事皆是陰陽中有成萬物之理皆是陰陽中.”

4) 정현, 『<풍경의 가장자리> 전시 도록』, 서문 (2015), p.38; 다카무라 료헤이, 「공동묘지를 통해서 본 식민지 서울 - 1910년대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15, 2000.

5) 정현, 앞의 책, p.38.

6) 정일영, 「일제시기 장묘제도 변화의 의미 - <묘지규칙>과 공동묘지를 중심으로」, 『역사학연구』 25 (2013).

7)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파리의 공동묘지(몽파르나스, 페르-라셰즈, 파시), 맨하탄에는 78개의 묘지가 있다. 《Find A Grave》, 「Cemeteries in Manhattan, New York」 https://www.findagrave.com/cemetery-browse/USA/New-York/New-York-County-(Manhattan)/Manhattan?id=city_404557 (2018. 12. 30. 검색).

8) 최하림, 「한(恨)에 대한 성찰」, 서광선 엮음, 『한(恨)의 이야기』 (서울: 보리, 1988), p.14 참조.

9) 2018년 11월 리얼미터가 성인 511명을 대상으로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95% 신뢰도 수준, 표본오차 ±4.3%포인트)한 결과 사형집행에 찬성하는 응답은 52.8%로 집계됐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32.6%, 사형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9.6%로 조사됐다.

10) 선감학원에 대해 처음으로 알린 사람은 일제 강점기 당시 학원부원장의 아들인 이하라 히로마쓰이다. 그의 소설 『아! 선감도』 (1989)가 발표되면서 그 실상이 공개되었으며, 국내에서는 1995년 번역본이 출간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1)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제주 4ㆍ3 사건 희생자 신고현황」 http://pasthistory.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13&nttId=50763&categoryCode1=&categoryCode2=&categoryCode3=&searchCnd=&searchWrd=&pageIndex=1&rn=2 (2018. 1. 20. 검색).

12) 여수 만성리 학살터: 만성리는 한국전쟁 전인 1948년 발생한 여순사건의 민간인 집단 희생지로서 같은 해 11월 초순경 부역협의자로 잡혀있던 종산초등학교(현 중앙초등학교) 수용자 중 수 백 명의 민간이 이곳으로 끌려와 집단희생 된 곳이다. 진압군은 1948년 11월 초순부터 잡아온 사람들을 이 골짜기 속으로 몰아넣어 학살하고 흙과 돌로 암매장하였다. 만성, 오천 주민들은 공포의 땅이 된 이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먼 거리를 돌아가기도 하였다. 그 뒤 이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작은 돌을 계곡에 던져 넣어 희생자들의 위로함으로써 돌탑이 솟아오르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현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란 국가차원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출처: 여수 만성리 학살터 안내문 <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 149-2 번지>.

13) 여수 만성리 학살터 백비 비문 내용: 1948년 10월 19일 / …… / 2009년 10월 19일.

14) 《네이버 어학사전》「애도」 (2019. 10. 30. 검색).

15) 행불인 표석은 제주 4ㆍ3 사건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으로 시신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말함.

16) 『대순지침』, pp.51-53 참조.

17) ‘스펙타클’이라는 용어는 수사적으로도 너무나 많이 사용하기에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보통은 그저 멋진 장관, 멋진 구경거리 등을 표현할 때 사용하곤 하는 이 용어는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단순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하고 그랜드하며 추상적인 개념이다. ‘스펙타클’은 한마디로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달한 20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 자본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를 활성화시키고 완성시키는 지배 장치와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언급하는 개념이다. 조은평 「‘스펙타클-자본주의’와 이데올로기」, 『시대와 철학』 29-3 (2018), p.202.

18) 『중용』 제20장 참조,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19) 『대순진리회요람』, p.16 참조.

참고문헌(References)

1.

『전경』,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2.

『대순지침』,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2.

3.

『대순진리회요람』,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4.

『대순회보』

5.

『대순사상논총』

6.

『중용』

7.

노영돈, 「근대적 자연관과 독일 자연주의」, 『인문학연구』 5, 2003.

8.

다카무라 료헤이, 「공동묘지를 통해서 본 식민지 서울 - 1910년대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15, 2000.

9.

정일영, 「일제시기 장묘제도 변화의 의미 - <묘지규칙<과 공동묘지를 중심으로」, 『역사학연구』 25, 2013.

10.

조은평 「‘스펙타클-자본주의’와 이데올로기」, 『시대와 철학』 29-3, 2018.

11.

최하림, 「한(恨)에 대한 성찰」, 서광선 엮음, 『한(恨)의 이야기』, 서울: 보리, 1988.

12.

정현, 『<풍경의 가장자리> 전시 도록』, 서문, 2015.

13.

《네이버 어학사전》 https://dict.naver.com

14.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http://pasthistory.go.kr

15.

《Find A Grave》 https://www.findagra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