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인문지리학자의 ‘장소’와 ‘경험’에 대한 도가적 접근: 제프 말파스와 노장사상을 중심으로

김덕삼 1 , *
Dug-sam Kim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Professor, Division of Interdisciplinary Studies for Creativity, Daejin University.
*대진대학교 교수, E-mail: konglai@naver.com

© Copyright 2019,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Oct 31, 2019; Revised: Nov 25, 2019; Accepted: Dec 14, 2019

Published Online: Dec 31, 2019

초록

장소는 공간과 구분된다. 인문지리학에서 장소는 공간과 달리 사람과 사람의 경험이 강조된다. 본고에서는 인문지리학자들과 방향을 같이하면서 지리학이 아닌 철학에서 출발한 제프 말파스(Jeff Malpas)의 관점과 老莊의 관점에 기초하여, 장소와 경험에 대한 말파스와 노장의 견해를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사전적 의미를 기초로 장소와 공간을 구분하고, 이를 말파스와 노장적 견해로 정리하였다. 이어서 ‘경험’과 ‘장소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장소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경험은 장소를 장소이게 하는 것으로 말파스가 강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장소의 장소됨을 확인하고 장소의 특징을 규명하면서 老子와 莊子에서 언급된 견해와 말파스의 견해를 비교하며, 장소와 장소 경험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본 연구를 통해 장소가 왜 장소여야 하는지, 장소에서 경험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러한 것에 대하여 노장사상에는 어떤 관점과 입장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장소연구에서, 장소는 동서양을 떠나 모두에게 의미 있는 주제이다.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동양적 장소론이 보다 정교하게 대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Abstract

In this paper, the approach to ‘Place’ and ‘Experience’ typically adopted by anthropogeographers will be reconsidered in light of the Taoist perspective to these phenomena. In order to develop the discussion more specifically, this exploration will be based on Jeff Malpas’s philosophical theories rather than geography, and the Lao-Zhuang (Laozi and Zhuangzi) perspective will also come into pace as place and experience are examined. In this paper, I have divided place and space on the basis of their dictionary meanings and have reconsidered each via Malpas and Lao-Zhuang views. I then discuss place in terms of ‘Place’ and ‘Place experience.’ Experience is what Malpas emphasizes as having Place in regards to place. Through this, I check the placing of place and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place, while comparing the views mentioned in Lao-Zhuang with those of Malpas and considered their meanings. In this study, I look at why a place should be a place, what experience in a place means, and what view and position Lao-Zhuang Thought has on this matters. Place is a meaningful subject for both the East and the West. Based on this work, I hope that Asian place theory can emerge anew.

Keywords: 인문지리학; 도가; 장소; 공간; 경험; 말파스; 노장사상
Keywords: Anthropogeographers; Taoism; Place; Space; Experience; Jeff Malpas; Lao-Zhuang Thought

Ⅰ. 들어가는 말

1970년대 이후 인문지리학자들은 공간과 장소를 구분하는 시도를 하였다. 인문지리학은 장소에 대한 학문이다. 물론 인문지리학은 다른 많은 무엇에 대한 학문이기도 하다.1) 하지만 인문지리학은 장소를 핵심 연구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의미가 없는 영역으로서 공간은 장소와 구분된다. 인문지리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을 개척한 이푸 투안(YI-FU TUAN, 段義孚)은 ‘토포필리아’를 “사람과 장소 또는 배경의 정서적 유대”라고 정의했다.2) 이푸 투안과 더불어 인문지리학을 대표하는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장소와 장소상실』로 출간하며 장소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했다.3) 정치지리학자인 조 애그뉴(John Agnew)는 ‘의미 있는 곳’으로서 장소의 세 가지 기본적인 특징을 위치(location), 로케일(locale), 장소감(sense of place)으로 제시했다.4) 도린 매시(Doreen Massey)의 경우 “장소는 지도 위의 점이나 구역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의 통합물이다. 곧 장소는 공간-시간적 사건”5)이라고 했다. 인문지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간에 애착을 갖게 되면, 그 공간은 장소가 되었다.6)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심오하고도 복잡한 측면의 것이 장소다.7)

본고에서는 공간과 장소를 구분한 인문지리학자들과 방향을 같이하면서 지리학이 아닌 철학에서 출발한 제프 말파스(Jeff Malpas)에 더 집중하였다.8) 말파스는 철학은 경이로움에서 시작하고, 장소와 장소의 경험에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사상 속에서 장소의 철학적 의미와 철학적 사고방식에 초점을 두어 연구하였다.9) 장소 개념의 본질과 철학적 중요성을 다루고, 장소를 철학 연구의 중심 개념으로 검토하면서 장소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지향하고 현상학적 관심을 연결하면서 인간의 자아 개념과 자아 정체성의 본성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세계 안의 인간’이 근거를 둔, 존재론적인 종류의 장소 연구를 논의하였다.10)

본 연구에서는 인문지리학자들이 말한 장소를 도가적 사유, 즉 말파스의 생각과 텍스트를 기초로 老莊의 사상과 텍스트를 투영시켜 보았다. 기존에 노장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이명수의 논문에서는 장소, 공간, 공간성, 장소성, 경계를 함께 다루면서 근대성의 메커니즘에서 이들의 문제를 성찰하고, 노장철학의 시각에서 인간을 위한 경계를 고찰하였다. 논문에서 다루는 대상이 장소 외에 공간, 공간성, 경계 등으로 넓고, 노장에 대한 것도 지리학의 담론에 대한 설명으로 제한되어 있다.11) 본고에서는 선행 연구와 달리 인문지리학자와 말파스가 강조한 장소에 집중하여 노장사상을 고찰하였다. 물론 노장의 장소 철학을 다루는 것은 다음으로 넘기고 본고에서는 말파스의 장소와 경험과 비교하며, 말파스의 장소와 경험이 노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를 알아보려한다. 노장은 중국 도가 사상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도가는 유가와 더불어 중국 사상을 대표한다. 물론 오래전부터 중국 사상에서도 공간에 대한 논의는 있었다.12) 그러나 공간과 장소에 대한 구분과 이에 대한 탐구는 인문지리학자들이 했던 것과 사뭇 다르다.

장소는 동서양을 떠나 모두에게 의미 있는 주제이다. 특히 말파스가 하이데거와 서양의 문학 작품을 통해 장소를 논했다면, 노자와 장자의 사상과 이야기를 통해 말파스가 말한 장소를 고찰해보는 것은 장소학 연구나 동양학 연구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13) 말파스는 『장소와 경험』에서 장소를 단순히 시공간적 거리에 국한된 것으로 제한하지 않으면서, 장소의 개념을 재고하려는 시도를 펼쳤다.14) 물론 여기에 동원되는 소재로는 철학적 담론뿐만 아니라 문학작품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마르셀 프루스트, 워즈워스, 가스통 바슐라르로, 스트로 손, 하이데거, 도널드 데이비드슨 등을 언급하였다. 말파스는 이것을 언어철학, 해석학, 철학사 등에 기초하여 지형학적 접근법을 통해 다루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문에서는 먼저 장소와 공간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사전적 의미를 기초로 장소와 공간을 구분하고, 이를 말파스와 노장적 견해로 재조명하였다. 이어서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장소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경험은 장소를 장소이게 하는 것으로 말파스가 강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장소의 장소됨을 확인하고 장소의 특징을 규명하면서 노장과 말파스의 견해를 고찰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인문지리학자나 말파스가 주장한 내용과 노장에서 언급된 것을 통해 장소가 왜 장소여야 하는지를 공고히 하려 했다. 본 연구를 토대로 동양적 장소론이 새롭게 대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Ⅱ. 장소와 공간

오늘날 장소에 대해 이야기해 온 전통이 대부분 무시당하거나 잊혀져 온 이유는 “장소가 추정상 절대적인 것(putative absolute)으로 여겨진 다른 용어들, 특히 시간과 공간에 종속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기기도 한다.15) 그렇다면 먼저 공간과 장소에 대한 사전적 의미부터 알아보면, ‘공간’은 사물과 사물의 위치의 차이를 측정하는 명칭이다. 공간은 물질존재의 객관형식으로 길이, 넓이, 높이로 나타난다. 공간은 일반적으로 사방(四方)과 상하(上下)를 가리킨다. 공간의 의미에는 우주공간, 사이버 공간, 가상공간, 디지털 공간까지 포함한다.16) 공간은 시간과 분리할 수 없다.17) 철학의 기본 범주인 시간과 공간은 포괄적이고 기본적인 범주이다. 공간과 시간은 상대적이다. 우리는 위치의 변화를 시간으로 잰다. 유대백(劉大白) 『국경(國慶)』 시를 보면, “누가 공간을 벌려 어떤 국경을 그렸는가? 누가 시간을 끊어 어떤 국경일을 만들었는가? (誰隔開了空間劃成什么國界? 誰截斷了時間造出什么國慶)”18)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고대 중국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두 독립된 개념이나 두 독자적 실체로 인식하지 않았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에서 제각기 하나의 구체적인 집단, 하나의 작용체와 다를 바 없는 여러 항목들로 된 하나의 복합통일체를 보았다.19) 이 복합통일체는 공간의 개념보다 장소의 개념에 더 가깝다.20)

서양에서 공간 개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근대 ‘진공’개념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Principles of Philosophy)』에서 장소(Loci)와 공간(spataii)은 어떤 장소에 있다고 이야기되는 몸만을 나타냈다. 이 둘의 차이는 “장소가 크기나 형태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좀 더 분명하게 위치를 지시하는 반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간은 크기와 형태에 집중된다.”고21) 볼 수 있다. 그리고 뉴턴은 “장소는 하나의 몸이 취하는 공간의 일부이다. 장소는 주변 환경이나 몸의 외피가 아니라 공간의 일부로”22) 보았다. 말파스는 공간 개념의 파악이 인간의 경험과 사유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이해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공간의 파악이 동작 능력과 직결되고, 주관적 공간은 피조물이 ‘거주하는’ 공간인데, 태생적으로 관점(perspectivity)의 공간이라고 보았다.23)

동양에서도 장소의 의미는 공간과 약간의 차이를 둔다. 먼저 장소의 해석을 참고하면 장소는 활동하는 곳(活動的處所, 地方)으로 공공장소(公共場所)나 오락장소(娱乐場所)를 들 수 있다.24) 말파스는 ‘장소’에 대한 의미를 다섯 개로 정리하였지만 이것으로 장소가 지닌 뉘앙스를 모두 포착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의미 가운데 일부는 긴밀히 연결되지만 나머지는 대립한다고 보았다.25)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장소는 사람들이 의미 있게 만들어 온 공간이며, 사람들이 애착을 갖게 된 공간이다. 이는 장소에 대한 간단하고 공통적인 정의로서 장소란 ‘의미 있는 곳’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던 조 애그뉴는 장소의 세 가지 기본적인 특징을 위치, 로케일, 장소감으로 요약했는데, 모든 장소가 위치를 가지고, ‘로케일’이 사회적 관계를 위한 물질적 배경을 의미한다고 애그뉴는 생각했다. 더불어 애그뉴는 사람들이 장소에 대해 가지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애착을 ‘장소감’이라고 보았다.26)

실제 미시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면, 장소 개념은 다른 개념들과 섞이어 혼란스럽게 사용될 수밖에 없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에서 보면,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의미는 사람과 시대마다 달랐다. 장소와 공간의 사용에서도 혼란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생산된 ‘사회적 공간’이란 개념 때문에 장소의 개념 사용에 혼란이 생기기도 하였다.27) 공간과 장소의 사용에 대한 서양에서의 역사적 변천은 『장소의 운명 : 철학의 역사』에서 철학적 사상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28) 장소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얘기하지만 장소가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문제이기도하다. 그래서 장소라는 단어는 친숙하지만 보다 발전된 방식으로 이해하기도 어렵다.29) 이것은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학자마다 장소를 정의함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인문지리학자의 장소는 인간이 중심이 된다.30)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세계 내에서 각자의 자리, 각자의 장소를 갖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31) 말을 할 수 있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인문지리학자나 노장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인문지리학자가 인간을 중심으로 장소를 공간에서 분리하였다면, 노장은 이들처럼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열자(列子)』 황제편(黃帝篇)의 “천공에 올라 탄 것이 마치 신발을 신은 듯 하고, 허에 누운 것이 마치 침대에 누운 것 같다. (乘空如履實, 寢虛若處牀)”는 말에서 공(空)이 천공(天空)으로 공간(空間)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이것도 올라탄 나와 관련이 있는 장소로 볼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 공간은 하늘 혹은 천계(天界)를 가리켰다. 천계를 포괄하는 우주는 각각 천지사방(天地四方)과 고왕금래(古往今來) 즉, 공간과 시간을 포함하여 말했지만,32) 모두 인간과 관련되어 있다. 애초부터 인간과 관련된 것들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고하였기에 공간적 의미는 적고, 장소적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천지인(天地人)에서 천(天)도 지(地)도 인간과의 관련 속에 의미 있게 존재한다.33) 어떤 면에서 중국인은 규정되고 구별된 개념보다는 상관성이 풍부한 표상을 시간과 공간에 설정해야 했다. 그래서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인은 추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34) 중촌원(中村元)은 중국인들은 온갖 것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추상적인 관념까지도 인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여 인간과 분리된 ‘존재’가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았다.35)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노장은 이미 그들의 인식 속에서 인간과 관련된 공간을 상정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과 무관한 공간은 인식 대상에서 주로 다룰 것이 아니고, 인간과 관련된 공간으로서 장소가 그들 사유의 주요 대상이었다. 그것은 사유의 뿌리도 현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비록 노장이 형이상학적 측면의 道를 상정하고 그 속에서 추상적 공간이 언급될 수 있지만 그 뿌리는 결국 인간과 장소에 두고 있다.

『노자』 25장에 나오는 “어떤 물건이 혼돈스럽게 이루어져 있어, 천지보다 앞서 생겨났다.(有物混成, 先天地生)”는 것은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보다 앞서 생겨난 도를 말하는 데, 이 도는 하늘이 본받는 것으로 종국에는 사람이 본받는 땅과 관련된다. 즉,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다시 말해 하늘과 땅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유의미하다. 『노자』 11장에서는 이와 다른 관점을 볼 수 있다.

삼십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곡에 모인다. 그 비어있음에 차의 쓸모가 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나, 그 비어있음에 그릇의 쓸모가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나, 그 비어있음에 방의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이롭게 되는 것은 비어있음이 사용되어지기 때문이다.36)

위 문장에서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나(埏埴以为器)” 이하의 글은 가장 오래된 건축 실체와 건축 공간의 변증관계를 설명하는 말로도 연구된다. 건축에서 이러한 정의는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집, 담장, 지붕을 짓는데, 실용적인 것은 비어있는 부분이다. 집, 담장, 지붕은 ‘있음’이지만,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없음’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유”는 수단이고, “무”는 목적이 된다.37) 그러나 노장철학에서 유와 무는 다투지 않고, 서로 이룬다. 有無가 相生한다.38)

말파스는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안의 존재’가 공간 ‘안’에 현존재가 물리적으로 봉쇄되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반대하듯이, 장소 개념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안에 위치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39) 생각했다.40) 장소는 물리적 공간, 물리적 세계에 그냥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물리적 공간과 세계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그릇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그릇의 사용과 그릇이라는 쓸모가 장소를 만드는 것과 같고, 도시 공간이 특별한 뜻을 부여받은 후에 장소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있음’에 의해 만들어진 ‘없음’의 부분을 사용한다. ‘공간’의 ‘있음’에 의해 만들어진 ‘없음’에 생겨나는 것이 ‘장소’이다. ‘공간’이라는 ‘있음’에 의해, ‘인간’은 ‘없음’에 ‘경험’을 이용하여 ‘장소’를 만든다.41) 공간은 장소가 되면서 쓸모가 있게 된다. 그릇은 그릇으로 방은 방으로 그 쓸모가 있게 되고, 그 쓸모가 공간을 장소로 있게 한다.42) 결국, 공간과 장소의 구별에는 쓸모가 있고, 그 ‘쓸모 있음’은 ‘경험’과 경험을 쌓는 ‘인간’이 있다.

‘장소’라는 말에는 인간에 의해 인간만의 감정이 존재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투영되어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에서도 인간 중심적 사고에 기초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한 홉’이라는 말은 목마른 사람이 단숨에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장소에 있어서도 ‘한 마지기’라는 말은 한 말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땅의 넓이를 말한다. 이것은 공간이 아닌 장소라는 의미와 맞아 떨어진다. 순전히 인간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신이 다룰 대상을 단위화 한 것이다.43)

장소의 역할은 인간 세계에서 훨씬 심층적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사회적인 것, 자연적인 것, 문화적인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힘이며, 세계를 접합시키고 부분적으로는 그 세계를 생산한 어떤 현상이라고 색(Robert Sack)은 생각했다. 이것은 말파스도 마찬가지다. 말파스는 사회적인 것은 장소에 우선하여 존재하지 않으며, 장소 안에 또는 장소를 통하지 않고는 표출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회적인 것의 가능성은 바로 장소의 구조 안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44)

이러한 설명에 근거하면, 행위 활동을 벗어난 것을 장소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말파스나 인문지리학자가 장소에 대하여 말하는 것과 『노자』 11장에서 말하는 비어있음에 의해 바퀴와 방의 쓸모가 생기는 것은 공간에 의해 인간에게 가치 있는 장소가 되는 것과 흡사하다. 물론 『노자』에서는 장소와 공간에 대하여 일부러 구별하거나 이에 대하여 언급하지는 않지만, 인문지리학자와 말파스가 말하는 장소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이러한 장소는 장소에서 발생한 행위를 담고 있다. 결국 이것은 ‘경험’과 맞닿아 있다. 어떤 면에서 경험이라는 말은 체험이라는 말과 비교하여 ‘과거’의 ‘행위’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다루지는 않는다.

Ⅲ. 장소와 경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문지리학자에게 장소는 공간과 분리되고, 그 분리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은 경험을 장소에서 갖는다. 말파스는 책의 제목을 『장소와 경험』으로 하면서, ‘장소’와 ‘경험’을 부각시켰다. 공간과 다르게 장소를 규정함에 ‘경험’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말파스는 과거의 장소에 대한 단순한 이해에서 더 나아가, 장소와 경험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논의의 초점은 장소 자체가 아니라 장소의 구조를 형성하는 요소들이었다. 그 결과 가장 자주 무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공간성, 주관성, 객관성 같은 개념들이다”고45) 말했다. 이러한 성찰 위에 말파스는 장소의 개념, 장소에 있는 경험의 성격을 파악하고,46) 경험된 것으로서 장소가 아니라 장소를 그 안에서 경험(과 행위, 사고, 판단)이 가능한 구조로 볼 수 있다는 방식에47)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장소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자아의 파악이나 심지어 타자들의 상호 주관적 영역의 파악에만 중요한 것은 아니며 세계 자체를 파악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48)

모든 경험은 반드시 시간과 공간에서 생겨난다.49) 그래서 공간은 장소가 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간이라는 ‘있음’에 의해, 인간은 ‘없음’의 부분을 이용하여 경험을 만들고, 이로 인해 장소를 존재하게 하는 측면에서의 경험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경험과 관련하여 『장자』 천도편(天道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환공(桓公)이 대청에서 책을 읽을 때, 마당에서 장인(匠人)은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었다. 장인이 연장을 내려놓으며 환공에게 물었다. “읽고 계시는 책이 무엇입니까?”, “성인(聖人)의 말씀이다.”, “그 책을 지은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 “오래 전에 죽었다.”, “그렇다면 지금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이군요.”, “수레바퀴나 만드는 주제에 감히 성인을 모독(冒瀆)하다니, 그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수레바퀴 만드는 일을 비유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바퀴를 만들 때, 칼을 빨리 다루면 힘은 적게 들지만 바퀴가 둥글게 깎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천천히 다루면 힘은 들지만 둥글게 깎입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깎는 것은 저의 손과 마음이 느껴 행하는 것입니다. 저의 기술을 아들에게 전수(傳授)할 수도 없고, 아들 또한 저의 기술을 전수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칠십 노인임에도 지금까지 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할 수 없는 그것도 옛 사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읽고 계시는 것도 옛사람의 찌꺼기가 아닐까요?”50)

케이블은 철학이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여기, 사물들 가운데’라고 주장했다.51) 여기, 사물들 가운데의 장소는 자신이 직접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당연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지 못하는 것처럼, 성인이 왕에게 진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개인적인 어떤 것이 존재한다. 위의 말에 따르면 경험은 직접적인 것이다. 어쩌면 간접 경험이란 말은 이러한 측면에서 형용모순(形容矛盾)이다. 장소에서의 경험은 직접적이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여 익힌 기술을 구두로 전하거나, 도의 깨달음을 글로 전한다 하여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기술의 연마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며 깨우쳐야 한다. 운동을 하는 것, 악기를 연주하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등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며 익히는 과정 속에 완성된다.

경험은 직접적이고, 경험은 고유의 장소를 만들고, 개인적인 무언가를 존재하게 한다. 이것은 『장자』 추수편(秋水篇)에 혜자와의 대화에서도 발견된다. 장자가 연못의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가 즐거워한다고 말하자. 혜자는 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즐거운지 어찌 아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장자는 네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가라고 반박한다. “장소에는 개인적인 어떤 것이 존재한다.”52)고 말한 것을 확대해서 생각하면, 이미 서양의 학자들이 몸을 장소로 본 것처럼, 혜자의 몸도 장자의 몸도 하나의 장소가 된다.53) 말파스가 자주 이용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경험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콩브레에서 내 잠자리의 비극과 무대 외에 다른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랜 어느 겨울 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54)

특별한 생각 없이 무방비 상태로 맞이한,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은 목구멍을 통한 음식의 이입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추억과 경험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매개 역할을 했고, 콩프레 시절 레오니 고모가 홍차와 함께 과자를 주던 기억을 불현듯 떠올리게 했다. 자연스레 어릴적 보고 듣고 느끼던 것들을 하나 둘 떠오르게 했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다양한 소재를 통해 장소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지금 스타벅스 커피 전문점에서 바라는 것은 스타벅스 커피의 맛이 아니라,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와 존 애그뉴가 말한 장소감이다. 나아가 밥집[食堂]이 아닌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에는 장소감이 포함된다.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보다 고급스럽거나 남과 달라 보이거나 혹은 자기만의 그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갈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에는 상응하는 장소와 장소감이 존재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러한 것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클레어 쿠퍼 마커스(Clare Cooper Marcus)는 “청소년들에게는 스테레오와 운동기구(자기중심적이고 현재적인 경험)가 가장 소중할 테지만 그들의 조부모에게는 가족사진이나 가구 같은 의미 있는 물품들(과거의 친밀한 관계와 가족의 연결망을 일깨우는 것들)이 소중할 것”이라고 말했다.55) 커피가 그런 것처럼,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그런 것처럼 이러한 물질은 경험과 추억이 묻어 있고, 경험이 묻어 있는 물질은 새로운 장소에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역할과 동시에 장소의 연장을 수반한다. 그래서 마커스는 “노인들이 다른 비개인적 거처나 양로원에 자신의 가구를 가져오도록 허용하는 것은 개인적 연속성을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서 그런 객체를 박탈하는 것은 자아 자체를 분리시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56)

이처럼 개인적 기억과 정체성이 장소에 직결된 것처럼, 문화적 ‘기억’과 정체성 역시 풍경과 물리적 환경에 묶여 있다.57) 그러므로 장소는 경험을 담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경험은 개인적이고 직접적이고 주관적이다. 이러한 경험은 노인과 청소년이 다르듯이, 수레바퀴를 만드는 노인과 아들, 혹은 노인과 왕, 성인과 왕이 다르듯이, 혹은 같은 나여도 어릴적 레오니 고모가 홍차와 함께 주던 과자를 먹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르듯이 경험은 주관적이다. 그리고 각각의 경험에는 각각의 장소가 존재한다.

Ⅳ. 장소와 장소 경험

도시 확장에 관련하여 45분 규칙이란 것이 있다. 도시 확장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데 소요되는 45분이 그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58) 영국 런던을 모델로 조사했지만, 한국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도시는 도시인의 이동 수단의 발전에 따라 확장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도시라는 공간은 그곳에 살고 있는 도시인의 경험 가능 공간에 따라 그 범위가 확정된다는 것 아닐까? 그것은 바로 장소 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도시 계획에서 장소는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이 차지하는 환경의 부분으로 특정한 건축물이나 활동 장소를 말한다. 물질 환경과 인문환경이 결합하여 형성된 것으로 특정한 의미의 도시 환경 공간을 구비한다. 도시 공간은 사회, 역사, 문화, 인간의 활동 등에게 ‘특별한 뜻’을 부여받은 후 비로소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59) 『노자』 80장에 나오는 작은 나라, 적은 국민의 소국과민(小國寡民)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라를 작게, 백성을 적게 한다. 열 명이나 백 명이 사용하는 도구가 있을 지라도 쓰지 않는다. 백성은 죽음을 무겁게 여긴다. 멀리 이사 가지 않는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을 지라도 타지 않는다. 비록 갑옷과 병기가 있을지라도 진을 치지 않는다.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 새끼를 꼬아서 쓰게 한다. 그 음식을 달게 먹는다. 그 옷을 아름답게 입는다. 그 사는 곳을 편안하게 한다. 그 풍속을 즐거워한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본다.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린다. 백성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고 가지 않는다.60)

소국과민에서는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장소를 충분히 이용하며 만족해하고, 다른 곳을 비교하거나 탐하지 않도록 한다.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고 그 속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참된 행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무지개를 찾아 혹은 파랑새를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경험과 장소를 일치시키는 것에서 존재와 행복을 찾았다. 각자의 장소 속에서 경험을 최대화하고, 서로의 장소를 넘보지 않을 때, 이상적이지만 장소와 장소 사이에 조화가 생기고 이것이 인류의 안정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전란 속에서 노자는 꿈꿨는지 모른다. 이는 말파스가 생각한 것처럼 “경험과 사유가 장소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드러내면서, “장소 자체의 복잡한 구조를 보여줄”61) 또 다른 예이다.

말파스도 케이시나 색처럼 장소를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기저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사회보다 ‘세계 내 존재’로서의 장소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도가도 유가나 법가처럼 사회보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칙으로서의)도 안의 존재로서 여기 이곳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선진시기 노장사상에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현대의 말파스에게는 경험적 상세성이 부족했다. 말파스에게는 특정 장소에 대한 확장된 설명이 거의 없다. 일반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기때문에 특정 사례를 들어 설명하지 못한다. 말파스는 하이데거가 예로 든 흑림지대의 오두막처럼 상상에 의한 그리고 이상화된 사례 또는 사고실험을 했다. 그러기에 장소와 관련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62)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정이나 도시 내 공원의 형성 등 지역을 흔들어온 사회적 불안을 설명할 수 없다.63) 적어도 데이비드 하비 같은 마르크시스트 지리학자는 장소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주장을 통해 이러한 것을 설명하고자 하였다.64) 물론 말파스가 상정한 공간의 범위는 노자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게 확장되었다. 그럼, 그 확장이란 것은 무엇일까? 45분 규칙처럼 교통 통신이 발달하면서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되는 것일까? 또는 장소와 장소 경험이 확장되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 1880~1918』에서는 다음과 같이 회화 속 공간의 문제인 장소와 장소 경험을 제기한다.

입체파의 개척자인 피카소와 브라크는 직선 원근법의 균질적 공간을 버리고, 엑스선이 내부를 들여다보듯이 복수 시점에 따른 복수적 공간들 속에 대상을 그려 넣었다. 그래서 1911년에 장 메칭거는 “대상 앞에서 움직여선 안 된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때까지 화가들을 구속했던 편견을” 입체파 화가들이 “뿌리째 뽑아 버렸다. … 과거에는 그림이 공간만 소유했지만 지금은 시간까지도 지배한다.”고 말했다.65)

정말 공간을 넘어서 시간까지도 담아내고 있을까? 그 시간은 누구의 시간인가? 모델 혹은 화가? 그림을 그릴 때의 시간 혹은 모델이 담겨진 다양한 모습의 시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시간을 담을 수 없다. 그저 모델의 ‘여러 장소’를 하나의 캔버스에 중첩시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캔버스에 담은 “과거는 장소로부터 떨어져서 평가될 수 없다.”고66) 지적할 수 있다. ‘장소’는 ‘장소 경험’과 함께 인식된다. 말파스는 자아의 물질적 구현을 강조하지만 물질성이 공간적인 것에만 제한된 것은 아니다. 공간화는 언제나 시간화이며 또한 시간화는 언제나 공간화이다. 그것은 공간도 시간도 장소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67)

스티븐 커는 현대 미술도 그렇지만 영화는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펼쳐 보였다고 말했다. 연극 관객들은 동일한 틀, 단일한 각도, 일정한 거리라는 공간적 조건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았다고 했다.68) 그러나 영화는 달랐다. 스크린에 무한한 것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화는 과연 연극과 다르게 새로운 공간을 확장했을까? 영화는 연극에 비해 확장된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는 있었지만, 그 공간에 관객의 ‘직접적 경험’은 부재되어 있기에 장소의 확장은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는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다양한 전통 예술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판소리나 창극도 그렇지만, 중국의 경극은 상징된 약속으로 ‘장소’와 ‘장소 경험’을 전달하려 했다. 경극은 민국시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영화가 전해지고 나서 사람들은 영화로 시선을 돌렸다. 경극은 당시 기술적 한계를 관객과 배우의 상징된 약속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장소를 확장하려 했다. 그래서 배우의 분장, 의상, 장식 등을 통해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끄는 장군도, 청중의 마음을 녹이는 여인도, 구름을 타고 하늘을 다니는 역할도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징을 통한 약속보다 시각적으로 직접 확인하는 영화가 쉽고 편했다. 영화의 변화도 많았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2D에서 3D로 그리고 시각을 넘어 후각과 움직이는 관객 의자를 통해, 관객들에게 ‘경험의 동시화’를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럼 영화는 이러한 문제를 말끔히 해소했는가? ‘장소’와 ‘장소 경험’을 잘 전달하고 있는가? 이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것에 불과하다. 5G시대에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최초의 영화보다 지금 영화가 더 큰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뮬라시옹(Simulation)에서 나온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인 시뮬라크르(Simulacra)에 지나지 않는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는 인간의 사고와 경험은 근본적으로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토대를 둔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구체성과 직접성에서 주변 세계와 긴밀히 연결된다. 노자의 소국과민도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이 가능한 장소에서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일치 속에 직접 체험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시간이나 공간의 대체를 통해 경험을 전달할 뿐이다. 결국 문자라는 것을 통해 이러한 것을 이행한다는 측면에서 문학 작품도 회화, 연극, 영화 등과 같다. 소설 속 장소를 소설 속 경험에서 확인한다해도 그것은 나의 장소와 경험일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상(appearance)은 순수한 범위로서 공간 안에는 없으며 오직 장소의 분화되고 일원적인 구조 안에만 있다.69) 장소 경험에는 경험과 장소가 있다. 장소의 개념을 이해하고 납득하는 데 경험의 구조와 가능성을 이해하는 일이 필수적이다.70) 그래서 이러한 것을 기초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는 장소를 탐사함으로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71)

Ⅴ. 나오는 말

말파스의 말을 들어보면 “기존의 장소는 낭만적 겉치레나 해묵은 보수주의에서 발생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장소의 복잡한 구조, 단순한 범주화나 개념화에 대한 저항,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의 포괄, 행위와의 필연적 상관관계, 이 모든 것은 장소의 개념이 어떤 정치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 자체가 위치해야 하는 바로 그 틀을 규정하는 것임을 시사한다.”72) 그래서 장소 연구가 중요하다. 말파스는 장소에서 인간존재를 찾고, 이를 경험과 연관시켜 철학적 사고를 이어갔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것을 기초로 도가에서 언급된 문헌들 속에 인문지리학자와 말파스가 말한 장소, 경험, 장소 경험의 자취를 찾아 생각해 보았다.

본문에서 언급하였지만 중국인의 사유는 유가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도가조차도 현실주의적이다.73) 이것은 윤회나 천당과 지옥을 말하는 불가나 기독교와 다르다. 중촌원(中村元)은 “중국인들은 많은 문제에 대해 인간 중심적이고, 또한 현실의 일상적 인간생활만을 주시하여 초월적인 보편을 무시하는 (중국인의) 사유경향은 저절로 인간을 현세적이고 유물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74)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경향은 자연스레 인간을 중심에 놓고 생각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중국인들은 모두 이상적인 환경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환경관의 가장 직접적이고 민속적인 표현이 바로 풍수(風水)였다.75) 이상적인 환경의 이상은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찾을 수 있고 실현가능한 형태로서의 풍수였다. 자연스레 인간이 중심에 놓여 있다. 그래서 “시간관과 공간관은 비개인적인 것으로서 곧 범주로서의 권위를 갖는다. 그러나 중국인이 시간과 공간을 중립지대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간과 공간에 추상적 개념들을 설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는76) 발언도 나올 수 있다.

인문지리학자들이 공간과 장소의 구분에서 중요하게 여긴 ‘인간’은 어떻게 보면 동양사상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것이다. 물론 도가에서는 인문지리학자들처럼 장소나 공간의 차이에 대하여 특별히 주의 깊게 논하지 않았다. 이것은 시대적으로 2천 년 이상의 차이가 있기에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도 공간과 장소를 특별히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후세의 학자들이 고대철학자들의 글에서 유추하여 그 개념을 정리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aeus)』는 코라(Chōra)라는 공간을 중시하면서도 결국 물질적 사물을 위해 일정한 장소를 창조하는 것으로 끝난다.77)

물론 이러한 점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본고에서 다룬 도가사상에서의 장소론은 지금의 연구를 토대로 공간과 구분하여, 동양사상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 연구의 역할은 그러한 계기와 가능성을 타진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사실 장소에 대한 논의는 지리학에서 조차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투안, 랠프, 색, 말파스 같은 사람들이 “장소 개념을 인간 생활에서 중심적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 즉 인간의 상호작용을 위한 토대를 형성하는 의미의 중심이자 관심의 영역으로 발전”시켰다.78) 인문지리학자가 말하는 장소는 동양의 사상과 문화와 통하는 면이 많다. 그래서 동양적 장소학 연구가 보다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인간을 넘어 인간의 관계 속에 벌어지는 이해관계, 장소의 다툼, 공간의 분배 등에 대한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장소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그 해결할 방안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Footnotes

1) 팀 크레스웰, 『장소 : 짧은 지리학 개론 시리즈』, 심승희 옮김 (서울: 시그마프레스. 2016), p.20.

2) 이푸 투안, 『토포필리아 : 환경 지각, 태도, 가치의 연구』, 이옥진 옮김 (서울: 에코리브르, 2011), p.21.

3)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ㆍ김현주ㆍ심승희 옮김 (서울: 논형, 2017).

4) 팀 크레스웰, 앞의 책, p.9.

5) 도린 매시, 『공간을 위하여』, 박경환ㆍ이영민ㆍ이용균 옮김 (서울: 심산, 2016), p.254.

6) 팀 크레스웰, 앞의 책, p.15.

7) 에드워드 렐프, 앞의 책, p.25.

8) 1958년에 태어난 말파스는 현재 호주 테즈메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Tasmania) 교수이다. 하이데거(Thomas Heidegger)의 장소와 ‘토폴로지 (topology)’를 2006년에 출간한 『Heidegger’s Topology: being, place, world』에서 다루었다. 이를 확장하여 『Heidegger and the Thinking of Place: Explorations in the Topology of Being』을 출간했다.

9) 말파스는 하이데거의 생각을 기초로 Place-topos를 다루었다. 그가 장소와 하이데거의 관계를 넘어 철학적으로 장소를 다룬 것이 바로 『장소와 경험』이다. 특히, 이 책은 넓은 의미로서 경험의 가능성에 그리고 경험을 이해해야 할 틀로서 장소에 집중한다. 즉, 경험과의 관계 속에서 장소의 역할을 이해함으로써 장소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다듬는 것에 집중한다. 제프 말파스, 『장소와 경험 : 철학적 지형학』, 김지혜 옮김 (서울: 에코리브로, 2014), pp.28-29.

10) 말파스에 대한 연구로는 강학순의 「철학적 지형학으로 들여다 본 ‘장소와 경험’」, 『로컬리티 인문학』 15 (2016), pp.353-361)이 있는데 서평으로 말파스의 생각과 책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11)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다양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명수, 「공간, 장소 그리고 경계에 관한 노장철학적 접근」, 『동아시아문화연구』 51 (2012).

12) 이명수, 「중국문화에 있어 시간, 공간 그리고 로컬리티의 문제 - 로컬리티의 인문학을 위한 시공간 의미의 시론적 접근」, 『동양철학연구』 55 (2008); 강학순, 「한국 전통문화 속에 나타난 ‘장소론’ 읽기 - 하이데거의 ‘존재의 장소론’과의 대화의 시도」, 『현대유럽철학연구』 31 (2013). 강학순의 논문에서는 하이데거의 장소에 대한 의미를 한국 전통문화 속에서 비교 고찰하였다.

13) 인문지리학자 가운데 대표적인 이푸투안의 경우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중국 사상과 문화를 그 기저에 깔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도 장소학의 동양적 전개에 또 다른 가능성을 준다. 물론 기존에 장소, 공간, 경계 등과 동양사상에 대한 시도는 있었지만 초보적이고 국소적인 부분에 국한되었다. 더불어 동양사상과 통하는 면이 많은 인문지리학자들의 노력과 그 연구를 기초로 서양학문 중심의 장소론에서 동양적 장소론의 전개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의 연구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명수, 「「동양학적 기(氣)로 보는 장소성」, 『로컬리티의 인문학』 11 (2009); 이명수, 「로컬리티의 포섭, 갈등, 조화에 관한 존재론적 접근 - 진웨린의 보편과 특수 논리를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66 (2011); 이명수, 「전지구화, 대상과 지역 간 공생 사유의 양명학적 접근」, 『양명학』 28 (2011); 「한국 전통문화 속에 나타난 ‘장소론’ 읽기 - 하이데거의 ‘존재의 장소론’과의 대화의 시도」, 『현대유럽철학연구』 31 (2013).

14) 이와 비교하여 내용적으로 서양철학에서 공간과 장소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검토하고, 장소와 공간에 대한 철학사에서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정리하면서 자신의 장소철학을 정립한 에드워드 S. 케이시(Edward S. Casey)의 『장소의 운명 : 철학의 역사(The Facte of Place: A Philosophucal History)』 (박성관 옮김, 서울: 에코리브르, 2016; Unv. of Califonia Press, 1997)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15) 에드워드 S. 케이시, 『장소의 운명 : 철학의 역사』, 박성관 옮김 (서울: 에코리브르, 2016), p.15.

16) 공간에는 절대공간과 상대공간의 구분이 있다. 내함(內涵)이 나타내는 공간은 경계 없이 존재하는 것이고, 外延이 나타내는 공간은 임의로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기하학, 대수학, 논리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공간은 서로 다른 선으로 되어 있고, 선은 다른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선 안에 있는 것이 바로 공간이다.

17) 시간 공간 질량은 우주의 삼요소이다. 질량은 삼요소 가운데 원생요소(原生要素)이다. 질량없이 공간이 존재할 수 없고, 공간없이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

18) 『漢語大詞典』 8卷 (上海: 漢語大詞典出版社, 1994), p.420.

19) 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유병태 옮김 (파주: 한길사, 2015), pp.124-125.

20) 이러한 맥락에서 이명수는 동양의 공간관은 우주에 닿아 있고, 거기서 ‘시간’이란 ‘원초적 공간’ 속에 있다고 보았다. 연구자는 그 ‘공간’이 바로 인문주의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장소는 공간에 시간을 더한다. 피조물에 의해 점유되는 공간이 장소다. 이명수, 「중국문화에 있어 시간, 공간 그리고 로컬리티의 문제」, p.452.

21)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41.

22) 같은 책, p.42.

23) 같은 책, pp.66-68.

24)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洪深, 『戲的念詞與詩的朗誦』 六, “場所較廣,聲音自須較強,發音人所用氣力自須加多.” 王西彥, 『人的世界ㆍ第一家鄰居』, “如果房子歸兩家合住,這間堂屋就算是公用場所.” “袁家山(袁可立別業) … 解放後,黨和政府曾幾次整修,雄偉氣勢有增無減,現已成爲我縣廣大幹群學習遊覽的場所.” 『漢語大詞典』 2卷 (上海: 漢語大詞典出版社, 1994), p.1149.

25) 『옥스포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을 토대로 정리하였다. 첫째, 한정된 열린 공간, 특히 도시나 도회지 안에 위치한 경계가 있는 열린 공간. 둘째, 공간, 범위, 차원(dimentionality), ‘여지(room)’와 같은 더 일반적인 의미, 셋째, 어떤 질서(공간적 질서, 혹은 위계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다른 종류의 질서)안에서 위치나 자리, 넷째, 나름의 특성을 지닌 구체적 현장(local)이나 환경, 다섯째, 그 안에 어떤 것이 존재하거나 누군가 살아갈 수 있는 벽돌집(adobe)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p.35-36.

26) 이것은 사람들이 백인 또는 흑인, 남자 또는 여자로 자기 삶을 살아가게 되는 실질적인 장소를 말한다. 이러한 장소는 항상 구체적인 형태를 띤다. 그래서 장소는 어딘가에 위치해야 하고 물질적인 시각적 형태를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고, 의미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인간적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팀 크레스웰, 앞의 책, pp.9-12.

27) 같은 책, p.15.

28) 주요 내용은 ‘공허에서 그릇으로’, ‘장소에서 공간으로’, ‘공간-至高의 자리에 오르다’, ‘장소의 재출현’을 다루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본고에서 언급하는 인문지리학의 관점은 현대를 다룬 ‘장소의 재출현’에 위치하고 있다. 에드워드 S. 케이시, 앞의 책.

29) 팀 크레스웰, 앞의 책, p.12.

30) 김덕삼, 「장소화의 양상과 의미 탐구 – 신화 공간을 중심으로」, 『로컬리티 인문학』 22 (2019), p.57.

31) 팀 크레스웰, 앞의 책, 역자서문.

32) 『漢語大詞典』 8卷, p.408. 空의 의미 가운데 4번째.

33) 더 나아가 이러한 ‘天地人’ 일체의 사상을 『열자』에서 발견할 수 있다.

胡家聰, 「《列子ㆍ天瑞》中“天、地、人”一體的常生常化論」, 『道家文化硏究』 第十五輯 (1999), pp.151-162.

34) 마르셀 그라네, 앞의 책, pp.100-101.

35) 中村元, 『중국인의 사유방법』, 김지견 옮김 (서울: 까치, 1990), p.121.

36) 三十辐,共一毂,当其无,有车之用。埏埴以为器,当其无,有器之用。凿户牖以为室,当其无,有室之用。故:有之以为利,无之以为用.

37) 中国土木建筑百科辞典总编委会, 『中国土木建筑百科辞典』 (北京: 中国建筑工业出版社,1999).

38) 金德三, 「相生與老子思想」, 『中國道敎』, 73 (2003), pp.28-32.

39)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p.48-49.

40) 본고에서 직접적으로 다룰 것은 아니지만, 하이데거는 노장사상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졌다. 즉 하이데거가 생각한 노장사상에 대하여는 별도의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鄭湧, 「以海德格爾爲參照點看老壯」, 『道家文化硏究』 第二輯 (1992), pp.153-166.

41) 있음은 없음으로 인해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유무상성(有無相成)이고, 상반상성(相反相成)이다. 金德三, 「相生與老子思想」, pp.28-32.

42) 이석명은 이것을 다르게 표현했지만 의미하는 바는 같다. “존재로서 有와 공간으로서 無는 따로 덜어지지 않아서 상관관계에 있다. 노자철학에서 무, 공간은 존재를 위한 실체이면서, 존재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명수, 「동아시아적 공간과 생성의 문제」, 『동양철학연구』 78, (2014), p.213.

43) 김덕삼, 「장소화의 양상과 의미 탐구 – 신화 공간을 중심으로」, p.55.

44) 팀 크레스웰, 앞의 책, pp.49-51.

45)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204.

46) 같은 책, p.251.

47) 같은 책, p.94.

48) 같은 책, p.245.

49) 그래서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이 두 가지 범주는 아주 적절한 틀이다. 스티븐 컨,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 1880~1918』, 박성관 옮김, 서울: 휴머니스트, 2013, p.21.

50) 桓公讀書於堂上,輪扁斲輪於堂下,釋椎鑿而上,問桓公曰:「敢問,公之所讀者何言邪?」 公曰:「聖人之言也.」 曰:「聖人在乎?」 公曰:「已死矣.」 曰:「然則君之所讀者,故人之糟魄已夫!」 桓公曰:「寡人讀書,輪人安得議乎!有說則可,无說則死.」 輪扁曰:「臣也以臣之事觀之. 斲輪,徐則苦而不入. 不徐不疾,得之於手而應於心,口不能言,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 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然則君之所讀者,故人之糟魄已夫!

51)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54.

52) 같은 책, p.239.

53) 이러한 맥락에서 임마누엘 칸트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체, 그것의 변화는 곧 나의 변화다-이 물체는 나의 신체이며, 그 신체의 장소는 동시에 나의 장소다.” 칸트 외에도 화이트헤드, 후설, 메를로퐁티는 몸, 신체와 장소에 대하여 논하였다. 에드워드 S. 케이시 앞의 책, pp.403-478.

54)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김희영 옮김 (서울: 민음사, 2013), pp.85-87.

55)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238.

56) 같은 책, p.238.

57) 같은 책, p.242. 어쩌면 이에 관한 가장 충격적이고 잘 알려진 예는 오스트레일리아 애보리진들의 경우 풍경 자체가 ‘노래로 불려’ 존재하게 되는 수단으로서 서사-노래들-가 풍경을 구획하는 방식이다.

58) 김덕삼, 『문수창 : 문화의 수용과 창조』 (성남: 북코리아, 2013).

59) 이러한 장소의 특징은 점유성, 비공간성, 임의성이다.

60)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無所乘之. 雖有甲兵,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美其服,安其居,樂其俗. 隣國相望,鷄犬之聲相聞,民至老死不相往來.

61)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255.

62) 공간의 장소화는 ‘배치’의 문제이면서, ‘정치’와 ‘권력’과 ‘경제적 분배’ 등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러한 것은 마르쿠스 슈뢰르나 르페브르 등이 다루었고, 데이비드 하비 같은 마르크시스트 지리학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장소를 논하고 있다. 공간과 장소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는 장소의 정치학, 사회지리학, 비판지리학, 지정학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말파스와 색, 케이시는 일반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특정 사례를 들어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하이데거가 예로 든 흑림지대의 오두막처럼, 상상에 의한 그리고 이상화된 사례 또는 사고실험을 하고 있고, 그러기에 이들은 장소와 관련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정이나 도시 내 공원의 형성 등 지역을 흔들어온 사회적 불안을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더 나아가 한국의 농촌사회처럼 죽어가는 장소, 장소의 죽음에 대한 논의와 더 나아가 장소의 공간화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덕삼, 「장소화의 양상과 의미 탐구 – 신화 공간을 중심으로」, p.55.

63) 물론 말파스도 이러한 견해에 반박할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근본적으로 장소 안에 있고 장소를 통한 존재로서 우리의 존재에 합당한 정치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일은 정치적인 것이 생성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파악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파스는 보다 본질적인 것을 찾으려 했다.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256.

64) 팀 크레스웰, 앞의 책, pp.47-54.

65) 스티븐 컨, 앞의 책, p.363.

66)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234.

67) 같은 책, p.6.

68) 스티븐 컨, 앞의 책, p.360.

69) 제프 말파스, 앞의 책, p.50.

70) 같은 책, p.47.

71)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은 바로 이러한 것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같은 책, p.18.

72) 같은 책, p.256.

73) 중국의 지식사회에서 발달한 사상은 모든 인간의 현실 상황에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실체적인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장사상은 몸을 보존하는 길, 성공하는 방법, 혹은 백성을 다스리는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中村元, 앞의 책, p.122.

74) 같은 책, pp.122-125.

75) 劉沛林, 『風水-中國人的環境觀』 (上海: 上海三聯書店, 1999), p.339.

76) 마르셀 그라네, 앞의 책, p.99.

77) 에드워드 S. 케이시, 앞의 책, p.16.

78) 팀 크레스웰 지음, 앞의 책, pp.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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