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무속과 증산의 해원사상 비교를 통해 본 대순사상 연구 관점의 문제

차선근 1 , *
Seon-keun Cha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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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시아종교연구원 선임연구원
1Senior researcher, Asia Research Center of Religions
*아시아종교연구원 선임연구원, E-mail: chasung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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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May 11, 2021 ; Revised: Jul 02, 2021 ; Accepted: Aug 03, 2021

Published Online: Aug 31, 2021

국문요약

이영금은 무속에 해원과 상생 이념이 이미 있었으며, 증산은 그것을 답습하여 이론화하고 구체화했을 뿐이기에 그의 종교활동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차선근은 증산의 해원과 상생을 무속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그 내용이나 범주가 무속보다 더 크고 넓기에, 증산의 종교활동은 무속의 세계관과는 구별되는 나름의 독창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은 당사자들을 제외한 다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논쟁은 해원과 상생의 개념 해석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에 접근할 때 어떤 학술적 관점과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대순진리회 관점에서 그들의 논쟁에 발견되는 쟁점을 네 가지로 정리하여 검토하였다. 그것은 첫째, 증산이 무속의 해원 대상과 그 범주를 그대로 답습한 것인지, 확장한 것인지 하는 문제다. 둘째는 증산의 해원에 들어있는 상생과 보은의 윤리가 무속의 윤리를 재활용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셋째는 증산의 해원 방법이 무속 해원 방법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넷째는 증산의 종교 행위와 사상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이러한 쟁점 검토를 통해, 이영금과 차선근은 종교를 연구하는 태도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증산의 종교사상을 무속의 세계관 속에 가두어놓고 해석하려는 이영금의 접근법은 학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증산이 무속의 세계관, 불교의 교학, 도교의 사상, 기독교의 신학을 얼마나 충실히 잘 반영·재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 들기보다는, 증산을 증산 그 자체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무속·불교·유교·도교·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유형과 무형의 특정 요소들이 증산의 종교사상 내에서 관찰된다면 그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혹 재해석된 부분은 없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영금의 경우와 같이 유사점만 강조하는 방식은 과거의 낡은 학문으로 비판받는다. 현대 종교학은 차이점까지 동시에 살펴보고자 한다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Abstract

According to Lee Young-geum, the ideas of grievance resolution and mutual beneficence were already present in shamanism. She also insists that Jeungsan merely theorized upon these ideas by inheriting them and his religious activities must be identified from within a shamanistic worldview. Contrary to Lee’s claim, Cha Seon-keun argues that the grievance resolution of Jeungsan is far beyond the contents and level of development found in shamanism. He also insists that Jeungsan’s religious activities must be identified as having a certain orderly uniqueness distinct from shamanism.

The argument between these two different perspectives has not attracted other researchers besides those who are directly involved. However, this debate deserves attention with regard to the problem of how one approaches a given religion and which academic perspective should be applied.

Based on the perspective of the Daesoon Jinrihoe, this study examines their debate by considering four issues. Firstly, whether Jeungsan inherited or expanded upon the subject of grievance resolution and its range remains undetermined. Secondly, the ethics of mutual beneficence and grateful reciprocation in Jeungsan’s concept of grievance resolution should be analyzed as to whether that idea reasserts the ethics of shamanism. Thirdly, it is necessary to study whether his method of grievance resolution fully embraced the methods of grievance resolution that exist in shamanism. Lastly, it should be determined whether or not Jeungsan’s religious activities and system of thought should be identified within a shamanistic worldview.

Through this review, Lee and Cha can be shown to have different opinions on the academic approach to research on religion. Accordingly, this study concludes that Lee’s method of only interpreting Jeungsan’s religious thought via a shamanic worldview is incompatible with academic methodology. A scholar of religious studies should discuss Jeungsan on his own merits rather than just imply that Jeungsan thoroughly reflects the worldview of shamanism, doctrinal studies of Buddhism, and Daoist thought as well as other theologies. In other words, if certain tangible and intangible elements found in shamanism, Buddhism, Confucianism, Daoism, and Christianity are also observed in Jeungsan’s religious thought, it is necessary to comprehend how different or similar those elements are or whether they are re-interpreted in any manner. In the case of Lee, her method of overemphasizing similarities is now criticized as outdated. Nowadays, it is necessary to demonstrate awareness of modern religious studies tendency to pay equal attention to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Keywords: 비교종교학; 무속; 대순진리회; 해원; 상생; 보은
Keywords: comparative religious studies; shamanism; Daesoon Jinrihoe; grievance resolution; mutual beneficence; grateful reciprocation

Ⅰ. 논쟁의 전개 : 증산의 해원상생은 무속 해원의 답습인가?

해원(解冤)은 강증산(姜甑山, 1871~1909) 종교사상의 핵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씻김굿에서 보듯 해원은 무속의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증산의 해원과 무속의 해원은 비교의 지평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는 연구 주제다. 이에 대한 학계의 기존 견해는 증산의 해원이 살아있는 자를 포함하는 등 무속의 경우보다 그 규모와 범주가 크다거나, 이상세계를 지향한다거나 하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는 것이었다.1)

그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연구자는 여성 민속학자 이영금이었다. 그는 『(호남지역 巫문화)해원과 상생의 퍼포먼스』(2011)에서 전북 무속의 핵심이 한풀이 혹은 원풀이를 중심으로 하는 해원(解冤)·상생(相生) 사상에 있으며, 증산은 무속의 해원·상생 사상에 강력한 영향을 받아 근대적 민중사상을 열었다고 주장하였다.2)

이것을 비판한 사람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논자였다. 논자는 「현대사회와 무속의례」(2013)에서 해원 이념이 불교와 유교에도 있는 것으로서 무속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증산의 해원사상이 그러한 전통적인 종교들의 해원 이념들을 수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과는 다른 독창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자가 내렸던 결론은 증산이 무속적인 요소를 날 것 그대로 활용한 게 아니라 일정한 변화를 주었고, 무속은 그것을 재차 흡수했던 상황을 종합하여 결국 무속과 증산 사이에는 ‘양방향’의 종교 혼합(syncretism)이 일어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3)

이영금은 이에 대한 반론을 곧바로 내어놓았다. 그는 「무속 사상과 증산 사상의 상관성」(2014)에서 증산이 해원·상생 이념을 이론화·구체화한 것은 인정하지만, 무속은 증산이 말한 우주적 차원의 해원들을 하고 있었거나 할 수도 있으며, 윤리적이고 보은적인 요소까지 이미 갖고 있었다고 항변하면서, 증산의 세계관은 무속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4)

2014년 이후로 더 이상의 논쟁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논자는 여러 개인사에 파묻혀 이 문제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다른 연구자들도 이 논쟁을 주목하지 않았다. 아마 이 논쟁이 해원과 상생이라고 하는 종교사상 해설 차이에 국한된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종교학의 입장에서는 이 논쟁이 특정 종교에 접근할 때 어떤 학술적 관점과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은 배경을 두고 이 글은, 이영금과 논자 사이에 벌어진 무속과 증산의 해원사상 비교 논쟁을 대순진리회 관점에서 다시 검토하고(Ⅱ·Ⅲ장), 그 사례를 통해 대순사상 연구 태도를 재고(再考)하고자 한다(Ⅳ장).

Ⅱ. 논쟁을 들여다보기 전에

이영금은 2011년과 2014년에 증산계 교단들을 하나의 통일된 목소리를 내는 집단으로 보고 논의를 전개했다. 논자는 2013년에 증산계 교단들 가운데 하나인 대순진리회의 관점에서 무속과 증산의 관계를 말하고 이영금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렇다면 논쟁을 살피기 전에, 이영금이 이해하는 증산과 ‘해원·상생’, 논자가 이해하는 증산과 ‘해원상생’이 같은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짚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증산의 주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교단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영금이 말하는 증산의 주장과 논자가 말하는 증산의 주장은, 어떤 교단의 자료를 활용했는가에 따라 다르게 기술될 수밖에 없다.

논자는 「증산계 신종교 일괄기술에 나타난 문제점과 개선 방향」(2014)에서 증산계 교단의 해원과 상생에 대한 입장이 통일되지 않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 글의 내용 일부를 요약하자면 첫째, 해원상생은 증산계 교단 전부를 포괄하는 핵심 교리가 아니다. 증산계 교단들 가운데 ‘해원’, ‘상생’, ‘해원상생’을 교리로 채택하고 있는 곳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둘째, ‘해원’·‘상생’을 교리로 채택한 교단과 ‘해원상생’을 교리로 채택한 교단은 그 교리에 대한 이해를 다르게 가져가고 있다. ‘해원’·‘상생’을 교리로 채택한 대표적인 교단은 증산교본부·증산법종교 등인데, 이들은 증산을 단군과 수운을 계승한 존재로 보는 삼단신앙(三段信仰)을 채택하고, 증산사상을 단군사상과 무속의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산의 해원 역시 무속의 푸닥거리와 같은 맥락을 갖는 것으로 본다. ‘해원상생’을 교리로 채택한 교단은 대순진리회다. 이 교단은 증산이 자유 의지에 따른 해원을 인정하면서도, 후천 이상세계를 위해서는 해원에 상생이라는 벡터값이 반드시 붙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자유 의지에 기반한 ‘임의의’ 해원은 증산이 강조한 ‘상생을 지향하는 해원’과 다르다고 파악했다.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하여 증산의 해원사상을 ‘해원’이 아니라 ‘해원상생’이라는 고유한 종교용어(Religious Language)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 장본인은 조정산(趙鼎山, 1895~1958)이었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가 말하는 해원상생은 무속이나 다른 종교가 말하는 해원과는 그 내용에서 일정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본다.5)

논자는 2013년의 글에서 대순진리회의 관점으로 증산의 ‘해원상생’을 해설하였다. 이영금은 2011년과 2014년의 글에서 대순진리회가 아닌 다른 증산계 교단들의 관점으로 ‘해원’·‘상생’을 해설하였다. 그러므로 이영금의 주장은 ‘해원’·‘상생’을 교리로 채택한 교단들의 관점을 충실히 반영했던 반면,6) ‘해원상생’을 교리로 삼은 대순진리회의 관점과는 부딪히게 되었다.

이영금과 논자의 논쟁이 연구 자료의 불일치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 논쟁은 서로 간의 오해에서 빚어진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잘 모르는 독자들은 그 논쟁이 무속과 증산계 교단 전체의 입장인 것으로 오해하기 마련이다. 대순진리회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이영금의 주장 가운데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도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증산교본부나 증산법종교 같은 ‘해원’·‘상생’을 교리로 채택한 교단들의 관점이 아니라, ‘해원상생’을 교리로 채택한 대순진리회의 관점에서 논쟁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Ⅲ. 쟁점 검토

논쟁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2014년까지 이어진 이영금과 논자의 주장을 더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이영금이 2011년에 했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속의 죽음 의례는 원혼들을 해원시켜 신과 인간이 상생할 수 있도록 만든다. 둘째, 마을 공동체 굿은 끄트머리에 음식을 주변에 뿌려 굶주린 동물을 먹인다는 점에서 신과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까지 유기적으로 얽는 상생적 문화다. 셋째, 그러한 전북 무속 특유의 해원·상생 사상이 과거 불교의 미륵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미륵이 현세인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민중사상을 이끌었다. 넷째, 전북 무속의 해원·상생은 무속의 접신 경험을 한 최제우와 동학농민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동학의 중심은 현세 인간을 해원시키는 것이 되었다. 다섯째, 전북 무속의 해원·상생 사상은 증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이로써 증산은 귀신의 원한은 물론이요, 살아있는 사람의 원한까지 풀 것을 주장함으로써 무속의 해원·상생 사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신들과 인간들을 모두 해원시키는 근대적 민중 사상을 태동시킬 수 있었다.”7)

이에 대한 차선근의 2013년 비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증산은 무속을 포함하는 전근대 종교들의 해원 범위·대상·내용을 더욱 확장했으며, 해원과 윤리적 요소를 결합했고, 후천이라는 종교적 이상세계를 목표로 해원을 말했다는 점에서 무속의 해원과는 그 내용이 다르다고 보는 게 기존 학계의 견해다. 둘째, 증산이 말한 상생은 이영금이 굿의 음식 보시를 근거로 삼아 전통 굿에 상생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과 다르다. 무속에는 증산이 말한 수준의 상생 개념이 없었고, 증산이 고유한 종교용어로 재전유(再專有, re-appropriation)했던 ‘상생’이라는 단어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채희완이 1990년대 초엽 증산의 종교용어인 ‘해원상생’을 채택하여 ‘해원상생굿’을 연행하면서부터 무속은 ‘해원상생’을 자기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무속이 ‘해원상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적이 없었다. 셋째, 결국 무속과 증산 사이에는 ‘양방향’의 종교 혼합이 일어났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8)

이영금이 2014년에 이 주장을 비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재앙을 일으키는 원혼을 위무하여 안녕과 복락을 이끌어오게 하는 무당굿은 가정·마을·고을·국가·우주로까지 확장하여 연행할 수 있다. 무속은 동물을 숭배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장자풀이>에서 보듯 저승에 주인 대신 끌려간 백마의 원한을 풀어주기도 하므로, 동물까지 해원하는 기능이 있다. 무속의 굿은 신명을 해원하는 것이지만 놀이적 성격도 가지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도 해소하는 기능이 있다. 무속 굿은 살아있는 인간의 해원도 포함한다는 말이다. 무속은 원혼만이 아니라 생령·민족·신명·동물로 해원 대상을 정해두고 있었기에, 증산이 원혼을 넘어 해원의 대상을 확장했다고 하는 것은 무속을 본뜬 것에 불과하다. 둘째, 원혼을 위무하면 그 원혼이 보은의 감정을 가져 복을 주는 신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무당굿에는 보은을 포함하는 윤리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증산이 기존의 해원에 보은의 윤리를 덧붙인 것이 아니라 무속의 윤리를 그저 가져다 쓴 것일 뿐이다. 셋째, 증산은 유기적 통합체로서 세계를 인식하는 것에 그 사상적 기반을 두었는데 그것은 무속의 세계관이다. 증산은 무속의 해원 풀이 방식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였으며, 그가 9년간 실시한 천지공사도 무속의 천지굿 해원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었다. 그는 무속의 해원 풀이 방식만이 신명계와 인간계 사이에 얽힌 원한을 풀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증산의 종교적 행위는 무속의 행위인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9)

이들의 논의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첫째, 증산이 무속의 해원 대상과 그 범주를 그대로 답습한 것인지, 확장한 것인지 하는 문제다. 둘째는 증산의 해원에 들어있는 상생과 보은의 윤리가 무속의 윤리를 재활용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셋째는 증산의 해원 방법이 무속 해원 방법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넷째는 증산의 종교 행위와 사상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10)

1. 해원 대상과 범주 문제

먼저, 해원 대상과 그 범주부터 살피기로 한다. 증산은 해원 대상, 즉 해원을 시켜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존재를 폭넓게 보았다. 그는 사령(死靈)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生靈]과 신명도 해원 대상이라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국가와 민족이라는 추상적 존재, 땅과 같은 사물까지 해원 대상으로 지목했다.11)

이영금은 이러한 증산의 해원 대상 설정이 무속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해원을 위한 무당굿은 개인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풍요와 평안을 위해 연행할 수도 있고, 대규모의 원혼들을 위한 무속 수륙재를 개최할 수도 있으며, 국가적 혹은 우주적 규모의 재앙이 도래했다면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제주도 당굿의 사례와 같이 수많은 신을 초빙하여 국가나 우주적 차원의 굿을 펼칠 수도 있다고 한다.12) 그러니까 증산이 설정한 해원 대상과 범위는 무속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무속 굿 의례의 해원 대상과 범위가 방대하다거나 확장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이영금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증산의 해원 대상과 범위가 무속에 한정되는 게 아님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첫째, 증산은 살아있는 사람을 해원 대상에 포함하였는데,13) 이영금은 무속에도 살아있는 자의 원한을 푸는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 사례는 동해안 별신굿이나 부안의 공동체굿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 행사들에서 마을 주민들은 뒤엉켜 한바탕 놀이를 벌임으로써 흥과 신명을 내어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를 결속시킨다는 것이다. 다양한 놀이 장치를 통해 살아있는 자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묵은 원한을 푸는 방법이 무속에 기존한다면, 증산이 해원 대상을 살아있는 자로 확장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영금의 주장이다.14) 그리고 그는 증산이 가부장 이데올로기에 희생되어 온 여성의 한을 풀어주려고 한 것이나, 계급 사회에서 억압받았던 천한 사람을 우대하는 것, 가진 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을 모두 그러한 무속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15)

그러나 증산의 해원 대상은 마을이나 지역 단위 거주민들이 놀이 문화를 통해 흥을 돋움으로써 해원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백 남신의 친족인 백 용안(白龍安)이 관부로부터 술 도매의 경영권을 얻음으로써 전주 부중에 있는 수백 개의 작은 주막이 폐지하게 되니라. 이때 상제께서 용두치 김 주보의 주막에서 그의 처가 가슴을 치면서 「다른 벌이는 없고 겨우 술장사하여 여러 식구가 살아왔는데 이제 이것마저 폐지되니 우리 식구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통곡하는 울분의 소리를 듣고 가엾게 여겨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어찌 남장군만 있으랴. 여장군도 있도다」 하시고 종이에 여장군(女將軍)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그 아내가 갑자기 기운을 얻고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를 지르는도다. 순식간에 주모들이 모여 백 용안의 집을 급습하니 형세가 험악하게 되니라. 이에 당황한 나머지 그는 주모들 앞에서 사과하고 도매 주점을 폐지할 것을 약속하니 주모들이 흩어졌도다. 용안은 곧 주점을 그만두었도다.16)

이영금도 이 사례를 언급한다. 그리고 증산이 사회적 약자인 영세 소상인을 해원시키려고 한 것이라고 해석한다.17) 그의 논리대로라면, 이 사례에서 백용안과 주모들은 한바탕 어울리는 세속 놀이를 통해 갈등을 풀 수 있어야 하고, 그 갈등 풀림은 묵은 감정의 해소로 이어져 해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백용안과 주모들이 무속의 별신굿이나 대동굿 놀이에 참여할 리도 없으려니와, 설령 참여한다고 해도 한바탕의 유흥을 통해 해원에 다다를 수 있다고는 기대되지 않는다. 이영금 본인이 설명한 바와 같이, 증산이 해원 대상으로 설정한 주모들의 원한은 경제적 문제, 생계와 관련된 것이다. 경제적 억압과 생존 문제가 만든 원한은 무속의 놀이로써 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생계 위기와 같은 원한의 원인을 내버려 둔 채, 유흥을 통해서 모든 원한을 풀 수 있다고 여기는 발상은 너무 안이하다.

증산이 과부·홀아비의 재혼을 허용함으로써 그들을 해원시키고자 했던 사례도 있다.18) 과부나 홀아비는 무속 해원 대상에 들지 못한다. 그들을 한바탕 놀이에 일시적으로 참여시켜도 그 원한을 풀어줄 수 없다. 서로 등 긁어줄 짝을 찾기 어렵다고 하는 원한의 근본 원인이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증산이 말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해원이란 한 개인의 소박한 원한은 물론이요(이런 원한은 놀이로써 풀릴 수 있다), 위 사례들과 같이 경제·문화·관습이 만들어낸 원한, 나아가 국가 간 전쟁이나 외교적 억압·수탈이 만들어낸 원한, 국가와 민족이라는 추상적 존재의 원한, 땅과 같은 사물의 원한까지 그 대상으로 한다. 이런 원한은 무속의 놀이 문화를 즐긴다고 해도 풀리지 않는다. 원한이 풀리려면 그 결원(結冤)의 원인, 소이연(所以然)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리하자면, 무속이 말하는 살아있는 자의 해원이란 일시적 놀이와 유흥으로써 성사 가능한 수준에 있는 것이고, 증산이 말하는 살아있는 자의 해원이란 그런 것을 포함하여 인간들의 노력이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까지 더 올라간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증산이 세속적 놀이를 즐기더라도 풀리지 않는 원한까지 풀어주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증산의 해원 대상은 무속이 설정한 해원 대상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증산은 원혼만이 아니라 신농씨·진시황 등 여러 신명의 해원을 주장했지만,19) 무속 역시 그러하니 증산이 해원 대상의 범주를 넓힌 것은 아니라는 게 이영금의 주장이다. 이영금에 의하면 무속의 씻김굿은 신명들도 해원 대상으로 삼는다. 씻김굿은 죽은 원혼의 해원을 위주로 하지만, 그 연행 과정에서 무주고혼·가택신·조상신까지 초빙하여 해원시키고자 하므로, 결국 무속은 원혼을 넘어 신명들까지 해원 대상으로 상정한다는 것이다.20)

그러나 증산이 말한 신농씨·진시황은 이영금이 언급한 무주고혼·가택신·조상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무속이 무주고혼·가택신·조상신 등 몇몇 신명의 해원을 도모할 수는 있겠으나, 신명들 전체를 해원시켜 왔던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증산의 해원 대상 범주는 무속의 그것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특히 증산은 무속과 달리, 가해자와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적으로 생각되는 신명들까지 해원 대상으로 상정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다음 증산의 발언을 살펴보자.

또 지난 임진왜란 때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성공치 못하고 도리어 세 가지의 한만 맺었으니 소위 삼한당(三恨堂)이니라. 첫째로 저희들이 서울에 들어오지 못함이 一한이오. 둘째는 무고한 인명이 많이 살해되었음이 二한이오. 셋째는 모 심는 법을 가르쳤음이 三한이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저들이 먼저 서울에 무난히 들어오게 됨으로써 一한이 풀리고, 다음 인명을 많이 살해하지 아니함으로써 二한이 풀리고, 셋째로는 고한 삼년(枯旱三年)으로 백지 강산(白地江山)이 되어 민무 추수(民無秋收)하게 됨으로써 三한이 풀리리라.21)

증산은 임진왜란 침략자였던 왜군 역시 해원 대상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 신분의 원혼을 해원시키고자 하는 것은 무속이나 증산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군은 전투에서 희생된 자라고 하더라도 피해자라기보다는 절대적인 가해자다. 증산은 이런 경우까지 원혼으로 인정하고 해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산 출현 이전의 전근대 무속에서는 가해자나 악인을 원혼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원한을 풀어주려고 시도하는 사례가 흔치 않았다.22) 이영금의 주장처럼 씻김굿을 하면서 많은 신명을 초빙할 수 있다. 그러나 증산 이전 시대에 행해졌던 씻김굿에서 침략자나 가해자까지 불러 모아 그들을 원혼으로 인정하고 그 해원을 도모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 아니었다. 설령 그런 부류의 씻김굿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무속의 주류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민간에서는 가해자나 침략자를 억울함과 원통함을 가진 원혼으로 규정하는 인식 자체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해자와 침략자, 악인까지 해원 대상으로 삼았던 증산이 무속의 해원 대상 수준을 넘어선 것은 아니라는 이영금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

셋째, 증산은 동물의 해원을 인정했다.23) 이영금은 무속이 동물을 해원 대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증산은 무속의 해원 대상을 답습한 것일 뿐이고 그 범주를 넓힌 것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호남 제석굿에서 호랑이·뱀·두꺼비 등을 업신으로 청배(업맞이)하여 그들을 해원시키려고 한 사례, 동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사례, 무가 <장자풀이>에서 백마가 인간 대신 저승에 가서 갖은 고초를 겪었기에 원한을 품었고 그것을 푸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였다.24) 그러나 증산이 말한 동물 해원의 대상은 무속과 같더라도 그 해원의 범주는 무속의 그것보다 더 넓다고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증산의 동물 해원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영금은 무속의 동물 해원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갈등이 만들어내는 원한을 푸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25) 그러니까 무속의 동물 해원 내용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원한을 푸는 것이다. 증산의 동물 해원은 이것도 포함하지만, 그가 말한 궁극적인 동물 해원은 그게 아니었다. 증산이 동물 해원을 인정했던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갑자기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 함인가」 하시니 금수들이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숙이는도다. 상제께서 「알았으니 물러들 가 있거라」고 타이르시니 수많은 금수들이 그 이르심을 좇는도다.26)

위 인용문의 시기는 1901년 7월에 증산이 대원사에서 천지대도를 열고 대원사를 막 나섰던 때였다. 증산은 본가에 돌아와 그해 겨울부터 천지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하니,27) 동물들이 증산에게 해원을 요구한 시기는 증산이 인간과 신명을 위한 해원공사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니까 해원을 가장 먼저 요구해 온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었으며, 증산이 행한 해원의 개벽공사 첫 장을 장식한 것도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증산의 해원사상에서 동물 해원이 갖는 위상을 잘 보여준다.

주목할 부분은 증산이 동물 해원을 ‘후천 해원’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는 데 있다. ‘후천 해원’이란 후천과 관련되는 해원을 말한다. 증산이 말한 후천은 지상선경(地上仙境)의 이상세계를 말한다.28) 그렇다면 동물이 요구하는 해원 즉 증산이 인정한 동물 해원이란, 동물과 인간 사이의 가해와 갈등이 만들어내는 원한을 푸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후천 지상선경에 인간과 신명만이 아니라 동물도 들어갈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29)

정리하자면 무속은 동물과 인간 사이에 발생한 원한을 해원 내용으로 상정하지만, 증산은 그것을 넘어 동물이 이상세계에 진입하기를 원한다는 것까지 해원 내용으로 상정했다. 증산의 동물 해원은 이상세계 진입(또는 구원)이라는 종교적 색채를 띤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해원 대상이 동물이라는 점은 같더라도, 그 해원의 범주는 동물-인간의 갈등을 넘어 이상세계 진입까지 설정한 증산의 경우가 더 크다고 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핀 대로 증산은 해원 대상을 살아있는 자, 국가·민족·땅과 같은 추상적 존재, 신명, 동물로 설정했다. 그 해원 대상의 범주와 내용은 무속의 해원에 있는 기존 요소들을 재활용하여 적재적소에 재배치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따라서 증산은 무속의 해원을 답습한 것이라는 이영금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

덧붙이자면, 전근대의 무속은 증산이 설정한 수준의 해원을 시도한 적이 없지만, 지금은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런 말은 마치, 베토벤이 <합창교향곡>의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다고는 하나, 그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음악가들은 마음속에 그 선율을 이미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는 그 선율을 마음속에서 꺼내어 연주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합창교향곡>은 베토벤의 독창적인 음악이 아니라 과거 음악가들의 마음속에 있던 선율을 악보로 꼼꼼하게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30)과 같다.

2. 해원과 연계된 윤리 문제

다음으로 증산의 해원에 들어있는 상생과 보은의 윤리가 무속의 윤리를 재활용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를 고찰해보자.

이영금은 증산 이전에도 무속 해원굿에 화합과 상생, 보은이 있었으므로 윤리적인 요소가 이미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증산이 해원에 윤리를 덧붙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윤리적 요소를 정리하여 표현한 것 정도라는 게 이영금의 생각이다.31)

간과해서 안 될 것은 무속이 치유와 평화를 지향하지만, 반드시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무속의 대표 원혼 가운데 하나인 최영(崔瑩, 1316~1388)을 들 수 있다. 이성계 일파에게 죽임을 당한 그를 해원하는 무속 의례는 전국에서 활발하다. 그 본산은 개경 덕물산(德物山)의 최영장군사(崔瑩將軍祠)다. 이 사당에서 최영 해원굿이 벌어지면 돼지고기로 만든 성계육(成桂肉)과 성계탕(成桂湯)이 나오고, 참석자들은 이것을 씹으면서 가해자 이성계에 대한 복수심을 달랜다.32) 최영이 무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이 장면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한 풀이를 의미하는 성계육 씹는 행위는 폭력의 상징을 담은 것이다. 무고(巫蠱)나 염매(魘魅), 방자(方子), 시주병(尸疰病) 같은 저주 역시 무속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33) 이들은 무속이 언제나 평화를 추구하는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니까 무속은 윤리적 측면과 비윤리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무속의 비윤리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윤리적인 측면에 한정해서 이영금의 주장을 검토해본다. 첫째, 2013년의 글에서 이미 주장했지만34) 무속의 윤리적 요소를 ‘상생’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상생’은 증산이 재의미 작용(re-signification)을 통해 재전유했던 기호다. 증산 이전의 무속은 이런 의미의 ‘상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결코 없었다. 상생은 어디까지나 증산의 ‘발명품’이었다. 이영금은 무속 굿에 보시와 더불어 인간 사이의 갈등을 풀고 화합함이 있음을 들어 그것을 상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35) 그러나 그것은 더불어 ‘사는’ 공생·공존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고, 더불어 ‘살리는’ 증산의 상생 개념과 합치하지는 않는다.

둘째, 이영금의 주장과 같이 무속에 윤리적 요소가 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증산의 경우처럼 종교윤리로 기능하는 적극성을 띠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무속의 윤리는 굿이라는 의례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의례주의(ritualism)가 강하고, 일상생활의 윤리적인 요소는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36) 이것과 달리 증산은 오행의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였던 상생에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법칙이라는 정체성을 더 부과하고 윤리적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가해자의 윤리와 피해자의 윤리까지 포섭하도록 만들었다. 증산의 해원 윤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생을 추구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며 그 윤리 실천들은 구원론을 전제로 성립될 정도다.37) 무속 굿에는 가해자의 반성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는 실천 윤리가 증산의 경우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한 사안에 있어서, 이 문제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해자의 사죄를 도외시한 채 피해자의 용서만 강조하는 해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사죄를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가해자가 사죄를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대응을 설명하는 이론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증산의 경우에서는 종교적 수행과 구원론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무속 굿에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증산이 무속 굿에 기존하는 윤리적 요소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구체화·이론화)에 불과하다는 이영금의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셋째, 이영금은 무속에도 보은의 사상이 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는 원혼을 해원시키면 그 원혼이 그에 대한 답으로 복을 준다는 데 있다.38) 그러나 증산은 원혼 해원의 보응으로 설명되는 무속의 보은 개념을 답습하지 않았다. 다음 사례를 보자.

조선과 같이 신명을 잘 대접하는 곳이 이 세상에 없도다.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고자 제각기 소원에 따라 부족함이 없이 받들어 줄 것이므로 도인들은 천하사에만 아무 거리낌 없이 종사하게 되리라.39)

신농씨(神農氏)가 농사와 의약을 천하에 펼쳤으되 세상 사람들은 그 공덕을 모르고 매약에 신농 유업(神農遺業)이라고만 써 붙이고 강 태공(姜太公)이 부국강병의 술법을 천하에 내어 놓아 그 덕으로 대업을 이룬 자가 있되 그 공덕을 앙모하나 보답하지 않고 다만 디딜방아에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강태공 조작(庚申年庚申月庚申日姜太公造作)이라 써 붙일 뿐이니 어찌 도리에 합당하리오. 이제 해원의 때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신농과 태공의 은혜를 보답하리라.40)

증산의 이 발언들은 신명들이 보은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그런데 그 신명들은 원혼 신분이 아니다. 또 해원을 시켜준 데 대한 감사로 보은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보은은 무속에서 말하는 원혼의 보답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갚음’을 말하는 것이다. 대순진리회는 그러한 보은을 실천 수행 항목 가운데 하나인 훈회(訓誨)에 넣어두고 있고,41) 구체적으로는 천지·국가와 사회·부모·스승·직업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함을 생활화할 것으로 명시해두고 있다.42) 보은은 무속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은을 말한다고 해서 무속에 속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다. 무속도 증산도, 그 누구도 보은을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그 다름이 각각의 특징을 만들어낸다. 지금 보듯이, 증산이 말하는 보은은 원혼이 보답함을 내용으로 하는 무속의 보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3. 증산이 사용한 해원 방법 문제

이영금은 증산이 무속의 해원 풀이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종교적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증산이 거울·북·고깔·종이 등과 같은 무구(巫具)를 사용했다는 점, 해원 의식 후 사용 도구들을 태웠다는 점, 부적을 사용했다는 점, 증산 부부가 자신들의 신분을 무당이라고 자처했다는 점, 무당집에 가서 빌어야 살 수 있으리라고 점, 그들이 무당굿과 풍물굿으로 해원을 시도했다는 점이다.43) 이를 하나씩 검토해본다.

첫째, 이영금은 증산이 거울·북·고깔·종이와 같은 무구를 사용하고, 사용 후에는 그것들을 소각했기에 무속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울은 논외로 하더라도44) 북·고깔·종이는 무구지만, 무구가 아니다. 불교의 승려도 그들의 의례를 할 때 고깔을 쓰고 북을 치며 종이를 사용한다. 종묘제례악에서 보듯 유교의 의례에서도 북[晉鼓]을 비롯한 여러 악기가 사용된다. 그러나 불교나 유교의 의례를 두고 그들이 무구를 사용한다고 하지 않고, 그들의 의례가 무속적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증산의 경우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타당하다. 증산이 북·고깔·종이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무구를 사용했다거나 무속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증산이 수많은 해원을 시도할 때 북과 고깔을 사용한 사례는 불과 한두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무구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은 드문 사례였을 뿐이다.

소각을 무속으로 보는 관점 역시 문제가 있다. 주지하듯이 유불도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종교의례에서 소각은 보편적 행위다. 무속이 소각이라는 특정 행위를 발명한 것도 아니고, 소각이 무속의 전유물인 것도 아니다. 증산이 소각한 행위를 두고, 무속에 소각이란 게 있으니 증산도 무속의 그것을 본받아 행한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둘째, 증산은 종종 부적을 사용했다. 이것을 두고 그의 행위를 무속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부적은 무속의 발명품도, 전유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적(talisman)은 고대에서부터 아시아·인도·지중해 연안, 유럽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사용된 종교적 물품이었다는 점, 그리고 각국의 민간신앙은 그 부적을 자신들의 의례에 활용해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래전부터 기독교·이슬람·불교·도교도 다양한 부적들을 사용해왔다. 부적을 무속의 발명품이자 전유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전 세계 거의 모든 종교는 무속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설명은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증산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해야 한다. 그가 부적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무속의 범주에 묶어둘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그가 사용했던 부적이 무속의 부적과 완전히 같은 형식과 내용을 가졌다면 이영금의 주장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부적은 아직도 해석 불가한 채로 남아있으며, 무속 부적과의 관련성 여부는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하다면 이영금과 같은 섣부른 판단은 곤란하다.

셋째, 이영금은 증산과 고수부를 ‘증산 부부’로 명칭하고, 이들이 스스로를 무당으로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고수부를 증산의 배우자로 보는 인식은 그를 증산의 후계자로 보는 교단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대순진리회는 증산과 고수부를 ‘부부’로 보지 않는다. 수부(首婦)는 증산이 천지공사를 시행할 때 음양을 조정하기 위해 마련한 캐릭터이며, 여기에는 고수부(고판례)와 김수부(김말순) 두 명이 있었다는 것이 대순진리회의 입장이다.45)

증산이 자신을 무당의 남편인 재인(才人)이라고 했다는 이영금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증산의 일화를 근거로 한다.

상제께서 하루는 무당 도수라 하시며 고부인(高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며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하시고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라. 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고 하셨도다.46)

증산이 무속의 굿을 연행하면서 무당과 재인을 언급하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은 인정된다. 그러나 그 행위는 억압받는 하층 신분이었던 무당을 위한 ‘무당도수’를 보면서 한 것이었다. 무당도수는 증산이 시행한 수많은 천지공사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무당도수는 증산의 천지공사 전체를 관통하는 총체적인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일화 하나만 가지고 증산의 신분과 행위를 무속적인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침소봉대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무당의 집에 가서 빌어야 살 수 있다고 했을 때의 무당은 무격(巫覡)이 아닐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문제가 있다. 증산은 종교적 행위를 하면서 수많은 상징을 사용했다. 그의 종교적 행위 속에 등장하는 특정 물품이나 사람은 그 자체일 수도 있으나, 대개는 그것이 상징하는 다른 것인 경우가 많다. 이영금이 위에 든 사례에 대해서, 대순진리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증산계 교단들은 증산이 말했던 무당을 무격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증산이 무속에 의지하려 한 것이라고도 해석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다른 상징성을 가지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고수부를 받들 뿐만 아니라 고수부와 증산을 부부로 인정하는 증산계 교단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단체인 증산교본부의 최고 지도자[宗領]조차, 이 일화에서 증산이 말한 무당은 무속의 무당(巫堂)이 아니라 이 당도 저 당도 그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는 ‘무당(無黨)’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47)

위 인용문의 사례는 증산이 천지굿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하나만을 갖고 그가 모든 해원을 천지굿을 통해서 했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 천지굿은 그의 수많은 천지공사 가운데 하나인 무당도수에 한정되어 시행된 것이었다. 증산이 천지굿을 하였지만, 그러나 그가 오로지 무속의 해원 방법만을 사용하여 모든 해원을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다음의 사례는 그 가운데 하나다.

상제께서 하루는 경석에게 검은색 두루마기 한 벌을 가져오라 하시고 내의를 다 벗고 두루마기만 입으신 후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고 여러 사람에게 「일본 사람과 같으냐」고 물으시니 모두 대하여 말하기를 「일본 사람과 꼭 같사옵나이다」 하노라. 상제께서 그 의복을 다시 벗고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 이웃 아이와 먹으로 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 그 서당에 오지 않고 다른 서당에 가서 글을 읽다가 얼마 후 병들어 죽었도다. 그 신이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해원을 구하므로 그럼 어찌 하여야 하겠느냐 물은즉 그 신명이 나에게 왜복을 입으라 하므로 내가 그 신명을 위로하고자 입은 것이니라」고 이르셨도다.48)

어린아이의 원혼을 해원시키는 위 사례에서 증산은 원혼의 요구를 들어주기만 할 뿐, 천지굿과 같은 무속의 그 어떤 방법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증산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원을 시도했다. 그것에는 동물 해원과 같이 화용론적인 언어를 구사하거나, 종이에 글을 쓰거나, 땅에 묻거나 하는 행위 등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49) 무속 등 특정한 종교의 해원 방법에 한정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는 폭 잡을 수 없는 일을 한다고 비판받았다.50) 증산은 여러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선천에서는 판이 좁고 일이 간단하여 한가지 도(道)만을 따로 써서 난국을 능히 바로 잡을 수 있었으나 후천에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도법을 합(合)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바로 잡지 못하리라.”고 설명했다.51)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산이 행한 해원 방법에는 한 가지의 일관된 원칙은 있었다. 그것은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요구를 들어주는 것, 즉 결원의 소이연을 해결하는 것이었다.52)

지금까지 살폈듯이 이영금은 증산의 원한 풀이 방식이 무속의 원한 풀이 방식과 같다고 하였지만, 증산의 해원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무속의 해원을 일부 차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극소수’의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극소수’라면 오히려 ‘전체적으로 볼 때 무속적이지 않다’라고 평가하는 게 더 타당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의 해원 방법을 무속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4. 대순사상을 무속의 세계관에서 파악하는 문제

이영금은 증산의 해원이 무속의 그것을 답습한 것으로 보고, 증산의 모든 행위 역시 무속의 세계관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와 관련되어 제시된 근거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이영금은 최제우가 무속의 무병과 신내림을 통해 도통했는데, 증산의 도통 수행 방식 역시 무속적인 접신에 있다고 본다.53) 그는 어느 증산계 교단에서 이 현상을 자신이 직접 체험했다고 말한다.54) 본인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니만큼, 그의 생각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증산계 교단의 수행이 무속의 접신 체험이라면, 증산의 세계관 일체가 무속적인 것으로 파악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증산계 교단 전부가 접신 체험을 수행의 중요 방편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교단도 있겠으나, 적어도 대순진리회는 접신을 광증(狂症)으로 보고 철저히 금한다. 그 이유는 피접신자(被接神者)가 자신의 인격을 잃는다고 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속의 피접신자도 접신 체험에서 빙의되는 신명으로부터 자신의 인격을 주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무당이라고 하는 사명을 수행할 수 있다. 대순진리회는 수행 과정에서 빙의 그 자체, 그러니까 신명을 본다거나 신명의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하는 신비경험을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허령(虛靈)’으로 간주한다.55) 유학에서 허령은 허령불매(虛靈不昧)의 긍정적인 의미이고 대순진리회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경우가 있지만,56) 대체로 대순진리회의 허령은 정기(正氣)를 잃고 사기(邪氣)에 침범당해 본래의 정신을 잃은 상태를 의미한다.57) 따라서 증산계 교단의 수행을 접신이라고 일괄적으로 말해서는 곤란하다. 교단마다 접신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철저히 금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증산계 교단의 수행이 접신이라고 하는 무속에 기반을 둔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둘째, 이영금은 증산이 삼신이나 칠성·조왕·관왕 등 무속의 신들을 수용했기에 무속적 세계관을 가진 것이고, 신과 인간이 상응한다는 증산의 생각 역시 무속적인 관념에 기반한 것이며, 특히 증산은 음양에 바탕을 두고 만물이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 무속의 유기적 세계관과 같다고 말한다.58) 그러나 이 견해들은 오류다.

이영금은 칠성과 조왕, 관왕이 무속의 신이라고 주장했으나 이 신들이 애초부터 무속 신분이었다는 생각은 학계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증산이 자신의 종교 행위에서 수용했던 신들은 여러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는 무속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무속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보자면 증산이 1900년대 초에 시루산에서 불러 모았다고 하는 신명들의 면면은 진법주(眞法呪)에서 살필 수 있는데,59)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구천의 초월적 존재나 옥황상제, 석가여래, 관성제군, 명부시왕, 사해용왕, 사시토왕[土地神]이나 칠성대제는 도교나 불교에도 있는 신명들로서, 한국의 무속을 그 기원으로 하지 않는다. 증산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신들 가운데 무속의 신들이 몇몇 보인다고 해도 그 모두의 정체성을 무속으로 한정할 수 없다면, 증산의 세계관 자체를 무속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증산이 신-인간 상응 관념이나 음양에 바탕을 둔 유기적 세계관을 가졌다고 해도, 그가 무속의 세계관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신-인간 상응이나 음양관, 유기적 세계관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만물 동원(洞源) 우주론에 그 뿌리를 두는 것으로서, 유교의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나 재이설(災異說), 도교 『태평경』의 천지인(天地人) 삼합삼통(三合相通) 등에서 이미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무속이 신-인간 상응 혹은 음양의 유기적 세계관을 창시한 게 아니라, 그러한 관념은 동아시아의 폭넓은 사고방식이었다는 말이다. 증산이 신-인간 상응 혹은 음양의 유기적 세계관을 가졌다면, 그것은 동아시아의 사상사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일이지, 무속의 세계관 속에다 놓고 이해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셋째, 이영금이 증산의 종교사상을 무속적인 것으로 단정 짓는 가장 큰 근거는 역시 해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속이 해원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는데, 증산 역시 그러하므로 증산은 무속적이라는 것이다.

해원이 무속만의 고유한 것이라면 그런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해원은 무속의 발명품도 전유물도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해원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원한을 갚기 위해 복수를 한다거나 용서를 한다거나 또는 원혼을 해원시켜 재앙을 면한다거나, 사랑이나 덕을 베풂으로써 원한을 푼다는 것은 오직 무속만이 가지고 있었던 관념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탈리오 법칙(lex talionis, 同害報復法)은 고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었던 것이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나 『노자(老子)』의 보원이덕(報怨以德) 사상, 원혼 해원을 목적으로 하는 유교의 여제(厲祭)나 엄격매자(掩骼埋胔), 불교의 수륙재, 중국 도교 『태평경』이 강조하는 해원결(解冤結)은 모두 일정한 해원사상을 품은 것들이다.60) 이들은 한국 특히 전북 무속에 그 기원을 둔 것도 아니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성된 것도 아니다. 원한을 풀겠다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해당하고, 그 내용은 다양한 문화나 종교 속에서 다채롭게 전개되어 온 것이지, 무속만의 고유한 것으로 논해서는 곤란하다.

해원을 무속의 전유물로 파악한다면, 역사 해석에 오류를 범하게 된다. 2011년의 이영금 주장에도 그러한 오류가 나타난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미륵사상과 동학사상에 대한 설명이다.

전술한 대로, 이영금은 전북 무속 특유의 해원·상생 사상이 불교 미륵사상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함으로써 미륵이 현세인들의 원한을 풀어준다는 신앙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첫째 오류는 미륵신앙의 형성 과정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주지하듯이 인도에 기원을 두고 있는 미륵은 원래 해원과 무관한 존재였다. 미륵이 백성을 원통함에서 구제하는 구원자로 ‘창조적으로 오독된’ 것은 중국의 당나라 이후부터이고, 그 추동력은 중국 도교의 급진적 메시아니즘에 있었다. 한국에서 미륵이 백성의 원한을 풀어주는 존재로 인식된 것도 그 때문에 가능했다.61) 그러므로 전북 무속의 해원사상에 영향을 받아 미륵이 백성의 원한을 풀어주는 구원자가 되었다는 이영금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미륵신앙의 형성과 전개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둘째 문제점은 이 주장이 변란 사건의 중요한 캐릭터로 미륵이 활용되어 온 역사적 사실과 부딪힌다는 데 있다. 이영금의 주장대로라면, 전북 지역의 미륵신앙은 다른 지역의 미륵신앙과는 달리 해원·상생사상의 영향을 받아 저항의 성격을 상실하고 상생과 평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렀어야 했다. 그러나 견훤이 미륵을 자처하며 통일신라에 대한 저항의 근거로 삼았던 사례에서 보듯이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은 그렇지 않다. 김홍철은 미륵사상이 전북 지역에 뿌리를 내린 배경 가운데 하나로 전북 지역 특유의 비판과 저항정신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62) 이러한 민중의 한풀이 운동은 이영금이 주장하는 상생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투쟁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이영금은 또한, 글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전북 무속의 해원·상생사상이 최제우와 동학농민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어 현세 인간을 해원시키는 것이 동학의 중심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제우는 해원과 상생에 대해서 말한 바가 없다. 그의 행보에도 해원·상생과 관련되는 내용이 없고, 동학 관련 문헌들에도 해원·상생을 그의 중심사상이라고 규정할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동학농민운동의 중심이 전북이 된 이유는 이영금의 주장과 같이 전북 무속의 해원·상생사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 때문이었다. 폭정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생존 본능으로서 역사적으로 많은 사례를 보이는 것인데, 이것을 무속 해원으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이영금이 말하는 해원은 ‘저항의 해원’이 아니라 ‘상생과 평화의 해원’이므로, 그의 주장대로라면 상생과 평화를 지향하는 전북에는 항거하는 성격의 동학농민운동이란 것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을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증산의 세계관을 무속의 그것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이영금의 주장은 그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오류가 있다. 그러므로 증산의 세계관을 무속의 세계관과 동일시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Ⅳ. 대순사상,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과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문화로부터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으며, 오직 ‘creatio ex nihilo(無에서 창조된 것)’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유대교 외에도 헬레니즘, 바빌로니아, 시리아, 이란 등지의 종교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이 확인되자 그 주장은 폐기되었다.63) 이 글도 기독교의 과거 오류와 마찬가지로 증산의 해원사상이 ‘無에서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사상을 전근대의 무속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해원이 과거 무속이나 유불도의 해원과 비교하였을 때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지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증산의 해원에 무속의 해원 요소가 보이는 것은 인정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증산의 해원 일체가 무속에 모두 포섭되는 것은 아니다. 앞 장에서 살폈듯이, 이영금은 증산의 다양한 종교적 행위와 방법 가운데 ‘극히 일부’에서 나타나는 무속적인 모습을 가지고 그의 세계관 일체를 무속인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부분으로써 전체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이영금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fallacy of hasty generalization), 전체-부분의 오류(mereological fallacy)를 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이영금은 해원이나 상생과 같은 몇몇 종교적 개념이나 종교적 도구들을 무속의 발명품이자 전유물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설정은 잘못된 주장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증산을 교조로 하는 대순진리회, 나아가 한국의 신종교에 무속의 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무엇이 왜 첨가되었는지, 무엇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왜 그러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의미를 만들게 되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신종교에 대한 적확(的確)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신종교를 무속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는 이영금의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 오래전 강돈구는 이 사실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좀 긴 편이지만, 이 글의 논지를 담은 중요한 내용이기에 인용해본다.

신종교의 특징을 무속과 관련짓는 데서 생길 수 있는 문제 …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지니고 있는데, 먼저 신종교에서 전통적인 요소를 찾는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김열규는 동학 및 증산계 신종교의 전통적인 요소를 세 가지로 지적하면서 그중의 하나로 신비체험을 들고 있다. 이것은 하다크레(H. Hatdacre)가 일본 신종교의 치병 의례를 설명하면서 그것이 일본 전통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신종교가 신비체험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 신비체험을 모두 무속적인 현상이라고 간단하게 지적해버리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주장은 예를 들어서 서구의 오순절 운동을 무속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 아니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신비주의(mysticism)를 지니고 있다. 이때 이슬람의 수피 신비주의(Sufi mysticism)를 단순히 무속적인 현상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의 무속을 수피적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은 오류에 속한다. 따라서 무속의 공수, 기독교의 방언, 또는 신종교에서 발견되는 신언(神言), 토설(吐說) 등이 유사한 현상이라고 해서 이들을 모두 무속적인 현상이라고 간단하게 지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신종교의 특징을 무속신앙이라고 규정하고 그 무속신앙이 한국인의 심성에 미친 영향을 의타심, 운명신앙, 역사의식의 결여, 주술신앙이라고 열거한다면, 이것은 결국 신종교에 대한 정당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치 평가적인 설명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64)

한국 신종교를 무속의 틀로 재단하면 많은 오류를 낳는다는 그의 지적이 나온 지는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학자는 강돈구가 지적한 잘못을 여전히 범하고 있다.

특정 종교를 또 다른 종교의 세계관에 근거하여 이해하려는 태도는 강돈구의 지적대로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중국에 처음 불교가 도입될 때 도교의 관점으로 불교를 해석한 이른바 격의불교(格義佛敎)란 게 있었다. 격의불교는 불교의 원 뜻을 흐리게 한다는 부작용도 있었으나, 중국 사회에 자리를 잡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종교를 연구하는 학술적 태도만큼은 격의불교와 같은 방향으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순수한 학술 연구는 포교 전략과는 별도로, 종교 그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를 마주할 때 그 종교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대순사상의 연구를 위해서는 각종 자료의 섭렵·답사·체험·인터뷰 등이 필요하겠으나, 무엇보다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본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순진리회를 무속의 세계, 불교의 교학, 도교의 사상, 기독교 신학에 근거하여 논할 것이 아니라, 대순진리회를 대순진리회 그 자체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속·불교·유교·도교·기독교에서도 볼 수 있는 특정 요소들이 대순진리회 내에서 관찰될 때, 그 요소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혹 재해석된 부분은 없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유사점만 강조하는 방식은 과거의 낡은 학문으로 비판받은 지 오래이며, 지금은 차이점까지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 현대 종교학의 정체성이라는 점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어떤 종교학자는 종교라고 하는 것을 연구할 때 살살 밟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연구란 인간의 꿈을 밟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65) 대순진리회를 연구할 때도 이 학자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리라 본다. 편견을 버리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대순진리회를 대순진리회 그 자체로 대하는 연구는, 이 종교학자와 같이 살살 밟고 다니는 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Notes

1) 김열규, 「원한의식과 원령신앙」, 『증산사상연구』 5 (1979), p.19; 최준식, 「왕중양과 강증산의 삼교합일주의」, 『종교연구』 5 (1989), p.165; 최준식, 「증산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혼합주의의 구조」, 『종교·신학연구』 2 (1989), pp.33-46; 노길명, 『한국 신흥종교 연구』 (서울: 경세원, 2003), pp.56-59.

2) 이영금, 『(호남지역 巫문화)해원과 상생의 퍼포먼스』 (서울: 민속원, 2011), pp.248-259.

3) 차선근, 「현대사회와 무속의례」, 『종교연구』 72 (2013), pp.151-183.

4) 이영금, 「무속 사상과 증산 사상의 상관성」, 『한국무속학』 28 (2014), pp.271-306.

5) 차선근, 「증산계 신종교 일괄기술에 나타난 문제점과 개선 방향」, 『신종교연구』 30 (2014), pp.73-82.

6) 물론, 의문점은 있다. 증산계 교단들의 경전들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대순전경』에도 증산의 언행이 무속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입증하는 내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이 글의 주제를 넘어서므로 다루지 않는다.

7) 이영금, 앞의 책, pp.249-259.

8) 차선근, 「현대사회와 무속의례」, pp.167-171.

9) 이영금, 앞의 글, pp.280-285, pp.290-303.

10)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21), p.16.

11) 대순진리회 교무부, 『전경』 13판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행록 4장 54절, 공사 1장 25·32절, 공사 2장 19절, 공사 3장 2·14·15절, 교운 1장 32절, 교법 1장 67절, 교법 3장 6절, 권지 1장 17·18절, 권지 2장 37절 등;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pp.105-120 참고.

12) 이영금, 앞의 글, pp.281-283.

13)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pp.118-119.

14) 이영금, 앞의 글, pp.290-292; 이영금의 이 주장은 무속 연구자 조성제의 주장과 같다. 조성제는 굿판에서 참여자들이 한바탕 어우러져 걸죽한 춤을 추고 즐김으로써 반목과 오해와 갈등을 풀고 하나의 공동체를 만든다고 말한다. 조성제,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 상고사』 (서울: 민속원, 2005), pp.19-20.

15) 이영금, 앞의 글, pp.292-294.

16) 『전경』, 권지 1장 17절.

17) 이영금, 앞의 글, pp.293-294.

18) 『전경』, 공사 2장 17절, 권지 1장 18절.

19) 같은 책, 공사 3장 17·28절, 교운 1장 17절, 예시 22절 등;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pp.115-118.

20) 이영금, 앞의 글, p.281, p.286.

21) 『전경』, 예시 74절.

22)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pp.25-31, pp.85-87 참조.

23) 『전경』, 행록 2장 15절.

24) 이영금, 앞의 글, pp.294-296.

25) 같은 글, p.296.

26) 『전경』, 행록 2장 15절.

27) 같은 책, 공사 1장 1절.

28) 같은 책, 예시 81절.

29)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p.120.

30) 베네데토 크로체, 『미학』, 권혁성·박정훈·이해완 옮김 (성남: 북코리아, 2017), p.33 참조.

31) 이영금, 앞의 글, pp.290-292.

32) 최길성, 「한의 상징적 의미」, 『비교민속학』 4 (1989), p.48, p.54, p.63.

33) 무고는 독의 일종, 염(魘)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바늘로 찌르는 감염 주술의 일종, 매(魅)는 영혼을 유도하거나 매개하는 주술, 시주병은 죽은 사람의 혼이 다른 사람에게 붙어서 생기는 병이다. 방자는 무고와 저주하는 일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것. 최종성, 「무의 치료와 저주」, 『종교와 문화』 7 (2001), pp.118-126; 이능화, 『조선무속고』, 서영대 역주 (파주: 창비, 2008), pp.239-258.

34) 차선근, 「현대사회와 무속의례」, pp.169-170.

35) 이영금, 앞의 글, pp.290-292.

36) 박일영, 「샤머니즘에서 본 마음」,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편), 『종교, 마음을 말하다』 (고양: 공동체, 2013), p.129.

37)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pp.125-126.

38) 이영금, 앞의 글, p.275, pp.283-284.

39) 『전경』, 교법 3장 22절.

40) 같은 책, 예시 22절.

41)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요람』 (서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69), pp.19-20.

42) 대순진리회 교무부, 『포덕교화 기본원리(其二)』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03), p.10.

43) 이영금, 앞의 글, pp.297-301.

44) 거울을 무속의 전유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무속의 정의·기원·범주 문제와 닿아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45) 대순진리회 교무부, 「『전경』 용어」, 『대순회보』 103 (2010), p.37.

46) 『전경』, 공사 3장 33절.

47) 정발, 『(증보)대순전경 해설』 (이리: 원광사, 1990), p.300. 정발은 본명이 정영규(丁永奎)로서, 증산교 본부 대법사의 최고 지도자인 종령을 역임했다.

48) 『전경』, 행록 4장 54절.

49) 같은 책, 행록 4장 47절, 공사 2장 19절, 공사 3장 16·17절 등.

50) 같은 책, 교법 2장 41절.

51) 같은 책, 예시 13절.

52)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p.120.

53) 이영금, 앞의 글, p.275.

54) 같은 글, p.273.

55) 대순진리회 감사원, 「신도(神道)와 해원(解冤)에 대한 바른 이해」, 『대순회보』 86 (2008), pp.20-29.

56) 『전경』, 공사 3장 39절.

57)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지침』 2판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2), p.40.

58) 이영금, 앞의 글, pp.276-281.

59) 증산계 교단마다 사용하는 진법주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다음을 참고하라. 차선근, 「증산계 신종교 일괄기술에 나타난 문제점과 개선 방향」, p.71; 대순진리회의 진법주는 다음과 같다: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下鑑之位 趙聖玉皇上帝下鑑之位 釋迦如來下鑑之位 冥府十王應感之位 五嶽山王應感之位 四海龍王應感之位 四時土王應感之位 關聖帝君應感之位 七星大帝應感之位 直先祖下鑑之位 外先祖 應感之位 七星使者來待之位 右直使者來待之位 左直使者來待之位 冥府使者來待之位 天藏吉方하야 以賜眞人하시나니 勿秘昭示하사 所願成就케 하옵소서’. 대순진리회, 『주문』 (간행년 미상), pp.2-3.

60)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pp.44-55 참조.

61) 김호성, 「불교 경전이 말하는 미륵사상」, 『동국사상』 29 (1998), pp.64-65; 이봉호, 「『전경』에 나타난 ‘미륵’의 성격」, 『대순사상논총』 26 (2016), pp.61-63.

62) 김홍철, 「모악산하 민중종교운동의 발생원인에 관한 연구」, 『한국종교사연구』 5 (1996), pp.316-321, pp.328-329.

63) Kippenberg, Hans G., “In Praise of Syncretism: The Beginnings of Christianity Conceived in the Light of a Diagnosis of Modern Culture,” in Anita M. Leopold·Jeppe S. Jensen(eds.), Syncretism in Religion: A Reader (New York: Routledge, 2004), pp.30-35.

64) 강돈구, 「신종교연구서설」, 『종교학연구』 6 (1987), pp.204-205; 「신종교연구서설」은 강돈구, 『종교이론과 한국종교』 (서울: 박문사, 2011), pp.534-582에 재수록되었다. 인용문은 표현이 일부 수정된 2011년 판의 글을 옮긴 것이다.

65)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종교의 의미와 목적』, 길희성 옮김 (칠곡: 분도출판사, 1991)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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