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언
조호익(曺好益, 1545~1609)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이며, 창원에서 태어났다. 그는 퇴계의 문인으로, 저서에는 『지산집(芝山集)』, 『가례고증(家禮考證)』, 『역전변해(易傳辨解)』, 『주역석해(周易釋解)』, 『역상설(易象說)』 등이 있다.
『지산집(芝山集)』의 연보에 의하면, 선생은 55세(1599년)에 병이 극심하여 잡고를 모두 불태웠다고 하는데 그 중에 『역전변해(易傳辨解)』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지산의 저서 중 『역전변해(易傳辨解)』는 전해지지 않는다.1) 그리고 58세(1602년)에는 『주역석해(周易釋解)』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 저서도 오늘날에 전해지지 않는다.2) 다만 연보에 의하면 『주역석해(周易釋解)』의 특징은 정이천의 『이천역전』과 주희의 『주역본의』에 근거하여 단상(彖象)을 발휘한 것이 지극히 정밀했다는 점이다.3)
『역상설(易象說)』은 지산이 61세(1605년)에 주역을 읽다가 단상(彖象)의 의문 나는 뜻에 대해 그 의미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역상설』은 지산이 처음부터 온전한 체계를 갖추어 저술한 것이 아니고, 후인이 지산의 『주역』 두주를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4) 따라서 『역상설』은 『주역』 64괘 384효 용구, 용육 및 『십익』에 대해 모두 저술한 것이 아닌 건괘(乾卦)에서 풍괘(豐卦)까지의 55괘와 『십익』의 일부분에 대한 주해이다.
조호익 『역상설』에 대한 선행연구로는 우선 엄연석의 “조호익 역학의 상수학적 방법과 의리학적 목표”(2001년)가 있다. 이 논문은 조호익 『역상설』에 대한 거의 최초의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상수학적 방법이라 함은 호체론(互體論)과 괘변론(卦變論)을 말하고 의리학적 목표라 함은 중정(中正)과 비응(比應)을 통해 괘효사를 해석하여 유가의 도덕실천적 의리를 발휘하는 것을 역학의 목표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 논문은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방법과 의리학적 목표를 종합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2005년에는 김인철이 「퇴계와 지산의 『주역』 해석」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엄연석의 선행연구인 「조호익 역학의 상수학적 방법과 의리학적 목표」의 논지를 계승하여 조호익 역학이 퇴계 역학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윤석민이 「조호익 『역상설』의 해석틀 분석(Ⅰ) : 괘기와 괘변을 중심으로」과 「조호익 『역상설』의 해석틀 분석 (Ⅱ) : 효위ㆍ효변과 기타 해석틀을 중심으로」를 연이어 발표하였다. 이 두 논문은 조호익의 『역상설』에 나타나는 『주역』 해석의 방법론 즉 괘기(卦氣), 괘변(卦變), 효위(爻位), 효변(爻變) 등을 분석하였다.
필자는 위와 같은 선행연구에 기초하여 기존의 선행연구에서 다루지 못했던 조호익 『역상설』에 나타나는 『주역』 해석의 상수학적 방법론에 대한 연원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역상설』의 상수학적 방법론의 연원을 고찰하는 것은 우선 조선 전기 역학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상수학 저서라 할 수 있는 『역상설』에 영향을 준 중국의 역학을 논구해봄으로써 『역상설』과의 관련성을 규명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의의가 있다. 나아가 『역상설』의 상수학적 방법론의 연원을 고찰하는 것은 조호익 역학의 독자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Ⅱ.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해석 방법론
중국역학사에서 상수학(象數學)은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의 분류법 중의 하나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 의하면, 중국역학은 양파육종으로 분류된다. 양파는 상수파와 의리파이고, 육종은 상수파에 해당하는 한대(漢代)의 상수설, 경방(京房)ㆍ초연수(焦延壽)의 재이설, 진단(陳摶)ㆍ소강절(邵康節)의 도서설(圖書說)과 의리파에 해당하는 왕필(王弼)의 노장설, 호원(胡瑗)ㆍ정자(程子)의 유가설, 이광(李光)ㆍ양만리(楊萬里) 등의 사사설(史事說) 등이다.5) 상수파에 속하는 한대의 상수설, 경방ㆍ초연수의 재이설, 진단ㆍ소강절의 도서설 중 조호익 『역상설』이 속하는 것은 한대의 상수설이다. 물론 조호익이 주자의 『주역본의』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진단ㆍ소강절의 도서설에도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역상설』의 내용에 근거해보면 도서설에 해당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상수학이라는 용어를 『사고전서총목제요』의 분류법인 양파육종 중 한대의 상수설에 의거하여 『역상설』의 상수학적 측면을 고찰할 것이다.
한대의 상수설의 내용은 이정조의 『주역집해』에 잘 나와 있다. 왕필의 등장이후 한대의 상수학은 거의 전승이 끊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대의 이정조는 한대 상수학자의 여러 설을 집록하여 『주역집해』를 편찬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한대 상수설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주역집해』를 참고해야 한다. 『주역집해』에 나와 있는 상수설은 대략 다음과 같다. 괘기설(卦氣說), 납갑설(納甲說), 비복설(飛伏說), 승강설(升降說), 호체설(互體說), 효진설(爻辰說), 방통설(旁通說), 괘변설(卦變說), 효변설(爻變說) 등이다. 이러한 상수설을 참고하여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설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주역집해』의 호체설은 2효, 3효, 4효가 내호괘가 되고, 3효, 4효, 5효가 외호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원래 괘는 초효, 2효, 3효로 구성되는 하괘와 4효, 5효, 상효로 구성되는 상괘로 구성되는데, 호체를 통해 내호괘와 외호괘를 추가로 얻음으로써 물상의 다양한 변화를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호체설은 한대 상수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주역』 해석 방법론이다. 조호익도 『주역』 괘효사 해석에 있어서 이러한 호체설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점괘(漸卦) 초육(初六), 기러기가 둑에 점점 다가가는 상이다. 소자(小子)에게 위태롭고 험담이 있으나 허물은 없을 것이다. … 호체(互體)로 말하면, 감(坎)이 아래에 있고 감(坎)은 물(水)을 상징하며, 리(離)는 위에 있고 리(離)는 새를 상징하니 물새의 상이 있다.6)
점괘(漸卦)의 호체는 2효, 3효, 4효로 구성되는 감(坎)과 3효, 4효, 5효로 구성되는 리(離)이다. 감(坎)은 물을 상징하고 리(離)는 새를 상징하므로, 이 두 호괘를 합하면 물새라는 물상을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조호익은 점괘 초육의 기러기를 해석하기 위해 이러한 호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망괘(无妄卦) 구오(九五), 무망(无妄)의 병이니 약을 쓰지 않더라고 희소식이 있을 것이다. … 쌍호(雙湖)가 말했다. “약(藥)은 하체(下體)가 진(震)이고 호체(互體)가 손(巽)이니 초목의 상에서 유래한 것이다.”7)
무망괘(无妄卦)는 하괘가 진(震)이고 3효, 4효, 5효로 구성된 외호괘가 손(巽)이다. 손(巽)은 초목의 상이니, 이로부터 약(藥)의 물상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사체(似體)는 괘의 전체 모양이 어떤 괘와 유사한 경우나 어떤 사물과 유사한 경우 그 유사한 괘나 사물의 상을 취하는 상수학적 방법을 말한다. 보통은 6효괘 전체 모양의 유사성을 통해 상을 취하지만, 때로는 6효괘가 아닌 5효괘나 4효괘의 모양을 통해 상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쾌괘(夬卦) 구삼(九三), 광대뼈에 기세가 세니, 흉할 것이다. … 기세가 세다고 한 것은 괘의 전체가 대장괘(大壯괘)와 유사하여 상을 취한 것이다.8)
쾌괘(夬卦) 구삼(九三)의 효사 중 ‘기세가 세다(壯)’라는 말을 해석하기 위해서 조호익은 쾌괘(夬卦) 전체의 모양이 대장괘(大壯卦)와 유사함을 통해 대장괘의 상징 중의 하나인 ‘기세가 세다(壯)’라는 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쾌괘는 초효에서 오효까지가 양효이고 상효가 음효이다. 대장괘는 초효에서 사효까지가 양효이고 오효와 상효가 음효이다. 따라서 쾌괘의 전체적인 모양이 대장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체(似體)는 이처럼 괘의 모양의 유사함을 통해 새로운 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다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익괘(益卦) 육삼(六三), 믿음을 가지고 중도를 행하며 홀을 가지고 공(公)에게 고한다. … 쌍호(雙湖) 호씨(胡氏)가 말했다. “전체가 홀을 닯았다.”9)
익괘(益卦) 육삼(六三)의 효사 중 ‘홀(圭)’이라는 말이 있다. 조호익은 이 ‘홀(圭)’의 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하기 위해 사체(似體)를 활용하고 있다. 즉 익괘 전체가 홀의 모양과 닮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육삼의 효사의 ‘홀(圭)’의 상을 도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정괘(鼎卦) 구이(九二)의 해석에 있어서도 조호익은 6효괘 전체가 아닌 5효괘 전체를 통해 사체(似體)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정괘(鼎卦) 구이(九二), 나의 손님은 병이 있어, 나에게로 오지 못할 것이다. … 괘 초효에서 오효까지의 전체가 감(坎)과 비슷하니 병의 상이 있다.10)
정괘(鼎卦) 구이(九二)의 효사 중 ‘병(疾)’이라는 말에 대해 조호익은 정괘 초효부터 오효까지로 구성된 괘의 모양이 전체적으로 감(坎)과 유사함으로 인해 ‘병(疾)’의 상을 이 감(坎)으로부터 도출하는 것이다.
복체(伏體)는 漢代 역학 중 경방의 비복설(飛伏說)에서 유래한다. 비복설(飛伏說)은 괘의 드러난 모습 이외에 숨어있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괘의 드러난 모습을 비(飛)라 하고 숨어있는 모습을 복(伏)이라 한다. 예를 들어, 건괘(乾卦)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여섯 양효이지만, 동시에 곤괘(坤卦)라는 숨어있는 모습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복설은 『주역』의 음양 변화 관념의 적극적인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상수학적 방법에 있어서는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비복설은 대성괘인 6효괘 뿐만 아니라 3효괘인 소성괘의 차원에서도 적용되는 이론이다. 이러한 비복설은 우번의 방통설, 래지덕의 착종설 등으로 계승된다. 조호익도 이러한 비복설을 적극적으로 계승하여 복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호익 복체설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인괘(同人卦) 상구(上九), 교(郊)에 사람들이 함께 하는 상이다. … 건(乾)의 복체는 곤(坤)이다. 삼효에서 오효까지가 곤(坤)이고 상효가 곤(坤)의 바깥에 있으니, 교(郊)라 하였다.11)
동인괘(同人卦) 상구(上九) 효사 중 ‘교(郊)’라는 말에 대해 조호익은 복체설을 활용하여 해석하고 있다. 즉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체인 건(乾)의 복체는 곤(坤)이다. 상효는 복체인 곤(坤)의 바깥쪽에 있으니, 교외의 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규괘(睽卦) 육삼(六三), 머리를 깍이는 형벌과 코를 베이는 형벌을 당할 것이다. … 태(兌)의 복체(伏體)는 간(艮)이다. 복체인 간(艮)은 코이고 태(兌)는 훼절의 뜻이니 코를 베이는 상이 있다.12)
규괘(睽卦) 육삼(六三)의 효사 중 ‘의(劓)’에 대해 해석하면서 조호익은 복체설을 활용하고 있다. 규괘(睽卦) 하괘인 태(兌)의 복체는 간(艮)이다. 간(艮)은 코를 상징한다. 동시에 하괘인 태(兌)는 훼절을 상징한다. 따라서 간(艮)의 코와 태(兌)의 훼절을 합하면 코를 베이는 상이 도출되는 것이다.
반체(反體)는 주로 소성괘인 3효괘의 아래 위를 뒤집어서 얻는 괘를 말한다. 팔괘 중 진(震)과 간(艮)은 서로 반체의 관계에 있고, 손(巽)과 태(兌)도 서로 반체의 관계에 있다. 반면에 건(乾), 곤(坤), 감(坎), 리(離)는 형태상 아래 위를 뒤집어도 같기 때문에 반체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함괘(咸卦) 초육(初六), 엄지발가락을 느낀다. … 내가 생각하기에 진(震)이 발이 된다. 간(艮)은 진(震)의 반체이니 또한 엄지발가락의 상이 있다.13)
함괘(咸卦) 초육(初六)의 효사 중 ‘엄지발가락(拇)’의 물상을 도출하기 위해서 조호익은 반체를 활용한다. 함괘(咸卦)의 하괘는 간(艮)으로 이 자체로는 엄지발가락의 상을 도출할 수 없다. 따라서 조호익은 간(艮)의 반체인 진(震)을 활용함으로써 진(震)의 상징을 통해 엄지발가락의 상을 얻는다. 하나의 예를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괘(鼎卦) 초육(初六), 솥의 다리를 뒤집어서 … 첩을 얻으니. … 혹자가 말했다. “손(巽)의 반체는 태(兌)이다. 태(兌)는 첩(妾)이 되고, 초효를 뒤집어서 위로 향하게 하면 태(兌)가 되니, 첩을 얻는 상이 있다.14)
정괘(鼎 ) 초육(初六)의 효사 중 ‘첩을 얻는다(得妾)’는 말이 있다. 정괘의 괘상을 통해 이 말을 해석하기 위해서 조호익은 반체를 활용한다. 정괘 괘상에는 첩을 상징하는 태(兌)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호익은 정괘 하괘인 손(巽)의 반체인 태(兌)를 활용한다.
조호익의 『역상설』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체(變體)는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효변이고 다른 하나는 괘변이다. 효변이라 함은 하나의 효가 변함으로써 생성되는 새로운 괘체를 통해 효사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한 괘에서 한 효가 양효에서 음효로 변하거나 혹은 음효에서 양효로 변할 경우 새로운 괘체가 생성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상을 생성하여 효사 해석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괘변이라 함은 64괘의 변화를 의미한다. 즉 한 괘에서 다른 괘로의 변화나 혹은 벽괘에서 연괘로의 변화 등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괘를 생성하거나 혹은 본괘가 변화되기 이전의 원래의 괘를 통해 다양한 상을 생성하여 괘사 해석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역상설』에서는 주로 효변을 통한 변화를 활용한다. 따라서 『역상설』에서 주로 쓰이고 있는 변체(變體)도 이 효변을 통한 변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겸괘(謙卦) 육오(六五), 침벌(侵伐)하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 내가 생각하기에, ‘침벌(侵伐)’이라 한 것은 오효가 변하면 리체(離體)가 되니 리(離)에는 전쟁의 상이 있기 때문이다.15)
겸괘(謙卦) 육오(六五)의 효사 중 ‘침벌(侵伐)’을 해석하기 위해 조호익은 변체를 활용한다. ‘침벌(侵伐)’은 전쟁의 상이니, 괘에 전쟁을 상징하는 리(離)가 있어야 하나 현재의 괘에는 이 리(離)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조호익은 변체를 통해 리(離)를 생성해낸다. 즉 오효가 변동하면, 3효, 4효, 5효로 이루어지는 호체가 리(離)가 된다. 예를 하나 더 들면 다음과 같다.
이괘(頤卦) 육사(六四), 호랑이가 탐탐히 노려보다. … 내가 생각하기에, ‘보다’고 한 것은 전체의 모양이 리(離)와 비슷하여 눈의 상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했다. “사효가 변하면 리(離)가 되니 탐탐히 아래를 노려보는 상이 된다.”16)
이괘(頤卦) 육사(六四)의 효사 ‘보다(視)’에 대한 해석을 위해서는 ‘보다’는 상을 나타내는 리(離)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괘는 상괘가 간(艮)이고 하괘가 진(震)이어서 리(離)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효가 변동하면 상괘가 간(艮)에서 리(離)로 변한다. 이러한 이유로 변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Ⅲ. 조호익 『역상설』과 호일계 역학과의 관련성
조호익은 『역전변해(易傳辨解)』, 『주역석해(周易釋解)』, 『역상설(易象說)』 이렇게 『주역』에 관한 저서를 지었다. 『역전변해』와 『주역석해』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그 내용도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지만, 다만 조호익 연보에 의하면 『주역석해』는 그 대략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즉 “정이천의 『이천역전』과 주희의 『주역본의』에 의거하여 단상(彖象)을 발휘한 것이 지극히 정밀했다.”는 것이다.17) 이에 근거한다면, 『주역석해』는 『이천역전』과 『주역본의』에 의거하여 『주역』의 괘효사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역전변해』도 그 제목에서 저서의 대략적인 성격을 유추해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역전변해』와 『주역석해』는 조호익 역학의 의리학적 측면을 담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반면에 『역상설』은 그 내용이 매우 명확하게 『주역』 역상(易象)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조호익 역학의 상수학적 측면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앞 장에서 필자는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측면을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의 분류법의 하나인 한대(漢代) 상수설의 틀을 통해 고찰해보았다. 한대 상수설에는 괘기설, 납갑설, 비복설, 승강설, 호체설, 효진설, 방통설, 괘변설, 효변설 등 여러 설이 존재하는데, 『역상설』의 주요한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으로 호체(互體), 사체(似體), 복체(伏體), 반체(反體), 변체(變體)를 들었다. 이렇게 5가지 체례(體例)를 든 것은 이러한 5가지 체례가 『역상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체례이기 때문이며, 또한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의 대표적인 체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5가지 체례는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에 있어서 괘체의 변화를 통한 역상의 도출에 있어서 핵심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한대 상수설의 주요한 설인 괘기설, 효진설 등을 『역상설』의 주요 체례로 정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상설』의 주요한 5가지 체례의 연원은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역상설』에는 이러한 5가지 체례와 관련하여 중국 원대의 학자인 호일계의 학설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호일계(胡一桂, 1247~?)는 자가 정방(庭芳)이고 호가 쌍호(雙湖)이며 무원(婺源) 사람이다.18) 호일계의 학문은 그의 부친인 호방평(胡方平)19)에게서 나왔는데, 호방평은 주자 문인으로부터 배웠으니, 그의 학문은 주자 계열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특히 역학에 정통하였으며, 저서에 『주역본의부록찬주(周易本義附録纂注)』, 『주역계몽익전(周易啓蒙翼傳)』 등이 있다. 호일계의 저서 중에서 『역상설』의 주요 5가지 체례와 관련이 있는 부분은 『주역계몽익전(周易啓蒙翼傳)』 중의 「단효취상례(彖爻取象例)」이다. 「단효취상례(彖爻取象例)」의 내용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역(易)』 중의 괘효(卦爻)와 『단전(彖傳)』 중 취상(取象) 체례에는 변체(變體)ㆍ사체(似體)ㆍ호체(互體)ㆍ복체(伏體)ㆍ반체(反體) 등 하나만 아니고 많다. 변체(變體)는 가령 소축괘(小畜卦) 상구(上九) 효사 중 ‘기우(既雨)’라 하여 괘에 감(坎)이 없지만 비오는 상을 취한 것은 상구(上九)가 변동하면 감(坎)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체(似體)는 가령 이괘(頤卦)가 전체 모양이 리(離)와 유사해서 ‘구(龜)’라 칭하고 대장괘(大壯卦)가 전체 모양이 태(兌)와 유사해서 ‘양(羊)’을 칭한 예와 같다. 호체(互體)는 가령 진괘(震괘) 구사(九四) 효사 중 ‘수니(遂泥)’라 한 것이 삼효부터 사효까지가 호체인 감(坎)이기 때문인 것과 같다. 복체(伏體)는 가령 동인괘(同人卦) 단사(彖辭)에 ‘대천(大川)’이라 칭한 것이 하체(下體) 리(離)의 복체가 감(坎)이기 때문인 것과 같다. 반체(反體)는 가령 정괘(鼎卦) 초육효(初六爻)의 효사 ‘첩(妾)’이라 칭한 것이 하체(下體) 손(巽)이 정체이고 태(兌)가 반체이어서 초음효(初陰爻)가 첩이 되기 때문인 것과 같다. 이 설은 내가 무원(婺源)의 주판(州判)인 담재(澹齋) 오선생(吳先生)으로부터 얻었는데, 이러한 것들을 모두 빠뜨리지 않아야 상의(象意)가 통하게 된다.20)
위의 인용은 호일계의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의 제요에 해당한다. 『주역계몽익전』의 하편은 호일계가 「선천후천(先天後天)」 「역존양비음(易尊陽卑陰)」 등 『주역』의 주요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요약하여 적어놓은 것이다. 따라서 위의 인용인 「단효취상례(彖爻取象例)」는 호일계 자신의 『주역』 해석 체례의 핵심적인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호일계는 자신의 『주역』 해석 체례의 핵심으로 5가지 체례를 제시한다. 첫째는 변체(變體)이고 둘째는 사체(似體)이고, 셋째는 호체(互體)이고 넷째는 복체(伏體)이고 다섯째는 반체(反體)이다. 변체(變體)는 효변을 통해 생성된 새로운 괘체를 통해 새로운 물상을 도출해내는 방법이다. 사체(似體)는 괘의 전체적인 모양이 어떤 괘와 유사할 경우 그 괘의 상징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호체(互體)는 6효괘의 2효, 3효, 4효로 구성되는 내호괘와 3효, 4효, 5효로 구성되는 외호괘를 말한다. 복체(伏體)는 동인괘(同人卦)의 하체인 리(離)에 감(坎)이 숨어있다고 보는 것과 같이 팔괘의 각 괘에는 이면에 음양이 변화되어 있는 괘가 존재한다는 설이다. 반체(反體)는 팔괘 각 괘체를 뒤집어서 생기는 괘를 통해 새로운 상징을 생성해내는 설이다. 이와 같은 설명은 대체로 앞 장에서 정리한 조호익의 『주역』 해석 체례와 거의 일치한다. 이를 통해 보면, 호일계의 5가지 체례는 기본적으로 소성괘인 팔괘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상징을 생성해낸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따라서 호일계의 체례에는 64괘의 상호 간의 변화를 의미하는 괘변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이상과 같은 논의에 근거하면, 조호익의 주역 해석 방법론은 대체로 호일계의 주역 해석 방법론에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조호익의 5가지 체례가 호일계의 5가지 체례와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상수학적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조호익과 호일계는 거의 일치한다. 예를 들어, 사체(似體)라는 용어는 위의 인용인 호일계의 저서 『주역계몽익전』 뿐만 아니라 호일계의 또 다른 저서인 『주역본의부록찬주』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21) 반면에 중국역학사의 다른 주요한 상수학자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용어이다. 그리고 변체의 개념도 조호익의 변체 개념과 호일계의 변체 개념이 거의 일치한다.
Ⅳ. 조호익 『역상설』과 주진 역학과의 관련성
조호익의 『역상설』에는 호일계 뿐만 아니라 주진(朱震, 1072~1138)도 인용된다. 그 빈도는 호일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주진의 역학 저서인 『한상역전(漢上易傳)』의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그 중요성은 적지 않다 할 것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는 『한상역전(漢上易傳)』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를 하고 있다.
『한상역집전(漢上易集傳)』 11卷ㆍ『괘도(卦圖)』 3卷ㆍ『총설(叢說)』 1卷. 양강총독부채진본(兩江總督采進本) : … 그 설은 상수(象數)를 종으로 하여 본류를 탐구하였고 여러 학설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포괄하였으며 노장(老莊)의 허무(虛無)의 잘못을 수정했다. … 주자(朱子)는 ‘왕필(王弼)이 호체(互體)를 깨트렸지만 주자발은 호체(互體)를 드러내 사용했다. 호체는 좌씨(左氏)가 이미 말한 것으로 또한 이치가 있으며 다만 지금 미루어보면 부합하지 않는 곳이 많다.’22)라고 했다. 위료옹(魏了翁)은 ‘『한상역(漢上易)』은 너무 번잡하지만 그렇더라도 폐할 수 없다.’라고 했다. 호일괘(胡一桂)도 또한 ‘변(變)ㆍ호(互)ㆍ복(伏)ㆍ반(反)ㆍ납갑(納甲)의 등속은 모두 폐할 수 없으니, 어찌 모두를 잘못이라 하여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 취상(取象)을 보면 또한 매우 좋은 점이 있지만 견강부회하는 곳이 많고, 또 문사(文辭)가 번잡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드는데, 보자 하니 이는 단지 작문을 잘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평가들은 그 득과 실을 서로 드러내었는데, 이는 선유의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23)
위의 인용에는 조호익의 『역상설』과 관련해 중요한 내용이 나온다. 즉 호일계의 주진 역학에 대한 평가이다. 호일계는 주진의 『한상역전(漢上易傳)』을 평가하면서 『주역』 해석 방법론으로서 ‘변(變)ㆍ호(互)ㆍ복(伏)ㆍ반(反)’을 언급했다. 호일계의 짧은 평가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 『주역』 해석 체례이다. 이는 호일계의 주진 역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주진도 자신의 역학에 대해 이러한 『주역』 해석 체례를 가장 핵심적인 이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호일계의 역학 저서인 『주역계몽익전』에도 나온다.24)
그러면 주진의 『주역』 해석 방법론의 대강이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주역집전서(周易集傳序)」의 내용을 중심으로 주진의 『주역』 해석 체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일ㆍ삼ㆍ오는 양이고, 이ㆍ사ㆍ육은 음이다. 하늘과 땅은 서로 머금고 물과 불은 서로 교류하니 이를 일러 위(位)라 한다. 칠과 팔은 음양의 어린 것이고 육과 구는 음양의 지극한 것이다.25)
위의 인용은 효의 위(位)와 육(六)ㆍ구(九)를 설명하고 있다. 효의 자리인 일ㆍ삼ㆍ오는 양의 위가 되고 이ㆍ사ㆍ육은 음의 위가 되며, 효제의 육(六)과 구(九)는 음양의 지극한 것이므로 변동하게 된다.26) 이렇게 효가 변동하는 것을 주진은 동효(動爻)라고 한다. 동효(動爻)는 호일계 및 조호익 역학에서 변체(變體)에 해당한다. 동효(動爻)에 해당하는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겸괘(謙卦) 육이(六二)의 효사 중 ‘명(鳴)’을 해석하기 위해서 주진은 동효를 활용한다. 이효가 변동하면 이효, 삼효, 사효로 구성되는 새로운 괘체인 태(兌)가 생성된다. 태(兌)는 입을 상징함으로 ‘명성’이라는 의미를 도출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주역집전서(周易集傳序)」에 나오는 호체(互體)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괘는 네 괘를 함유하고 있고, 네 괘의 가운데에 다시 변동이 있다.28)
여기서 하나의 괘가 네 괘를 함유하고 있다는 말은 호체를 가리킨다. 별괘는 상괘와 하괘 이렇게 두 괘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호체설을 활용하여 2효, 3효, 4효로 이루어지는 내호괘와 3효, 4효, 5효로 이루어지는 외호괘를 만들면, 하나의 별괘가 네 괘를 함유하게 된다. 이러한 호체설은 호일계와 조호익의 호체와 일치한다. 『한상역전(漢上易傳)』의 호체에 해당하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겸괘(謙卦) 초육(初六),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니 큰 내를 건너는데 길할 것이다. … 삼효의 감(坎)이 큰 내가 된다.29)
겸괘(謙卦) 초육(初六)의 효사 중 ‘대천(大川)’을 해석하기 위해 주진은 호체를 활용한다. 겸괘는 상괘가 곤(坤)이고 하괘가 간(艮)이다. 따라서 ‘대천(大川)’을 상징하는 감(坎)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주진은 2효, 3효, 4효로 구성된 호체 감(坎)을 활용한 것이다. 다음으로 복체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궁극에는 조급함의 괘가 된다.”는 것은 손(巽)의 세 효가 변동하면 진(震)이 된다는 것으로 진(震)과 손(巽) 두 괘를 함께 들어 나머지 괘의 예로 삼은 것이다. 천지만물에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있을 수 없어 지극하게 되면 서로 반대가 되니, 끝내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30)
진(震)과 손(巽)은 음양이 변화된 괘이다. 팔괘에서 건과 곤, 감과 리, 간과 태도 이러한 음양이 변화된 괘이다. 주진은 이러한 괘의 관계를 비복(飛伏)으로 이해한다. 드러나 있는 괘가 비가 되고 드러나지 않은 괘가 복이 된다.31) 이러한 복체의 개념은 호일계와 조호익도 같다. 주진의 복체를 예를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몽괘(蒙卦) 육삼(六三), 여자를 취하지 말라. 돈 많은 남자를 보고 몸을 지키지 못하니, 이로울 바가 없을 것이다. … 감(坎)에는 복체 리(離)가 있다. 리(離)는 눈으로 본다는 의미가 된다.32)
몽괘(蒙卦) 육삼(六三)의 효사 중 ‘견(見)’을 해석하기 위하여 주진은 복체를 활용한다. 몽괘는 상괘가 간(艮)이고 하괘가 감(坎)이다. 따라서 ‘견(見)’을 상징하는 리(離)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진은 하괘 감(坎)의 복체인 리(離)를 활용하여 ‘견(見)’의 상징을 도출한다.
다음으로 주진의 ‘반(反)’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주진 역학에 있어서 ‘반(反)’은 앞의 ‘변(變)ㆍ호(互)ㆍ복(伏)’의 체례에 비해 많이 쓰이지 않는 편이다. 주진에 의하면 ‘반(反)’의 개념은 괘의 위아래를 뒤집어서 만들어지는 괘를 의미한다. 이는 『잡괘전』에 나오는 개념이기도 하다.33) 『잡괘전』에 의하면 『주역』 64괘는 위아래를 뒤집어서 만들어진 괘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몽괘(蒙卦)는 준괘(屯卦)를 뒤집어서 만들어진 괘이다. 『한상역전(漢上易傳)』에 나와 있는 ‘반(反)’의 용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복괘(復卦) 초구(初九), 멀리 가지 않아서 돌아오니 후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 변하여 복괘가 되면 구(九)가 바깥에서 오니 내(内)는 멀지 않다. 반대로 움직여서 강(剛)이 돌아오는 것이다.34)
복괘(復卦) 초구(初九) 효사 중 ‘복(復)’을 해석하기 위해 주진은 ‘반(反)’을 활용한다. 주진에 의하면 복괘는 박괘(剝卦)에서 온 것이다. 박괘를 뒤집으면 복괘가 된다. 이에 근거해서 보면, 복괘에서 초효는 박괘의 상효가 돌아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 필자는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의 『한상역전(漢上易傳)』 제요에 나오는 호일계의 평가에 의거하여 『한상역전(漢上易傳)』의 ‘변(變)ㆍ호(互)ㆍ복(伏)ㆍ반(反)’의 개념과 용례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주진의 주역 해석 방법론으로서의 ‘변(變)ㆍ호(互)ㆍ복(伏)ㆍ반(反)’이 조호익의 주역 해석 방법론인 변체(變體)ㆍ호체(互體)ㆍ복체(伏體)ㆍ반체(反體)와 거의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주진의 ‘반(反)’은 대성괘 차원에서의 변화를 위주로 하는 반면 조호익의 반체(反體)는 소성괘 차원에서의 변화를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존재한다.
Ⅴ. 결어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연원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주자의 『주역본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조호익의 역학 저서인 『역전변해』, 『주역석해』, 『역상설』 등이 기본적으로 주자의 『주역본의』의 관점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호익의 『역상설』은 앞의 논의에서 살펴보았지만 한대(漢代) 상수학의 입장에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주자의 『주역본의』와 다르다. 『주역본의』는 조호익의 『역상설』에 나타나는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인 호체(互體), 사체(似體), 복체(伏體), 반체(反體), 변체(變體)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자의 『주역본의』는 한대 상수학의 계열의 저서가 아니며, 따라서 조호익의 『역상설』과도 다르다.
그렇다면 조호익은 주자의 『주역본의』를 존중하면서도 왜 『주역본의』와 다른 저서를 지었을까? 이 점은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周易本義附録纂注)』 저작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호일계는 주자의 『주역본의』를 기본으로 하고, 주자의 문집과 어록 등의 관련 내용을 찾아 부록이라 하였고, 그리고 제유의 역설 중 『주역본의』의 뜻에 부합하는 주석을 모아서 찬주로 하였다.35) 여기에다 호일계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의 ‘우위(愚謂)’나 ‘우안(愚案)’ 등이 있다. 그래서 이 저서의 이름이 『주역본의부록찬주』이다. 이러한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 체제는 사실상 조호익의 역학 저서 체제와 거의 일치한다. 즉 조호익은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의 부록, 찬주의 내용에 해당하는 저서로 『역전변해』, 『주역석해』를 지은 듯하다. 이러한 저서는 주자의 『주역본의』의 단상을 정밀하게 밝힌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주역본의부록찬주』 ‘우위’나 ‘우안’에 해당하는 저서로 『역상설』이 있다. 『역상설』은 원래 독립적인 역학 저서가 아니라 『주역』의 두주 형태로 기록된 것을 후인들이 모아 편찬한 것이다. 따라서 『역상설』은 『주역본의부록찬주』 ‘우위’나 ‘우안’과 거의 같은 형식이다.
그렇다면 조호익의 『역상설』과 『주역본의부록찬주』 ‘우위’나 ‘우안’의 내용적인 측면은 어떠한가. 『역상설』의 내용은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기본적으로 『주역』 괘효사의 상을 해석하는 내용이다. 즉 각각의 괘효사에 나타나 있는 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고찰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괘효사의 상을 도출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5가지 체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본의부록찬주』의 ‘우위’나 ‘우안’의 내용도 『역상설』과 마찬가지로 괘효사의 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 조호익은 『역상설』에서 호일계의 역설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호익이 『주역본의』와 다른 『역상설』을 지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측면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주역본의』의 기본적인 체제가 상(象)과 점(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연결된다. 주자는 『주역』의 기본적인 성격을 복서의 책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주역본의』의 기본적인 체제를 상과 점으로 본 것이다. 조호익은 『주역본의』의 내용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상(象)과 관련된 부분을 저술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지하듯이 점(占)과 관련된 부분은 특별히 보완할 것이 없다.36) 따라서 조호익은 『주역본의』의 상(象)과 관련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주자 역학의 완결성을 도모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호일계가 『주역본의부록찬주』를 지은 의도와 일맥상통할 것 같다.
한편,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연원을 검토하기 위해서 주진의 역학을 간과할 수 없다. 『역상설』이 주진을 인용하고 있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큰 이유는 『역상설』과 주진 역학의 골간적 측면 때문이다. 조호익의 『역상설』에 호일계의 역설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지만, 『역상설』과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만을 두고 비교했을 때, 골간적 측면에서 사실상 두 저서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의 양파육종의 관점에서 볼 때, 『역상설』은 한대 상수학에 속하는 저서이지만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는 양파육종 어디에도 속한다고 보기 어려운 상수파와 의리파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주진의 역학을 고려한 것이고 특히 주진의 『한상역전』이 『역상설』과 마찬가지로 한대 상수학에 속하는 역학 저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본론에서도 증명했지만, 『역상설』의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과 『한상역전』의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이 거의 일치하고, 『한상역전』의 내용이 상수학적 성격에 충실하다. 『한상역전』의 상수학적 성격은 『사고전서총목제요』의 『한상역전』에 대한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설은 상수(象數)를 종으로 하여 본류를 탐구하였고 여러 학설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포괄하였다.”37)
결론적으로,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연원은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와 주진의 『한상역전』에서 모두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주역본의부록찬주』의 ‘우위(愚謂)’나 ‘우안(愚案)’ 부분, 그리고 『한상역전』의 한대 상수학적 성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연원을 탐구하는 것이 목적으로,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이 가지는 독자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했다. 이 점은 중국역학사와 다른 한국역학사의 독자적인 특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내용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꼭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