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주자와 증산의 상생이론 비교 고찰

안유경 1 , *
Yoo-kyoung An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
1Researcher, Youngnam Culture Institute of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 E-mail: ykan20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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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May 31, 2021; Revised: Jun 29, 2021; Accepted: Aug 03, 2021

Published Online: Aug 31, 2021

국문요약

본 논문은 주자(1130~1200)와 증산(1871~1909)의 상생이론의 의미를 비교 고찰함으로써 이들의 이론적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생존뿐만 아니라 물질ㆍ명예ㆍ권력 등에 대해서도 무한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한편으로 생존을 위해서 화합ㆍ공생을 도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대립ㆍ갈등하고 경쟁한다. 이로써 인간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는 화합을 도모하는 상생의 동반자가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경쟁의 적인 것이다.

동시에 인간은 무한한 욕망을 극복하고 도덕성을 실현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경쟁구도의 다양한 사회문제는 인간의 노력과 반성을 통해서 해결해나갈 수 있는데, 이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지혜를 동원하여 사회문제의 해결에 주력하게 된다.

증산은 상생을 대순사상 종지의 하나로서 강조한다. 주자의 성리학에도 대순사상의 상생에 버금하는 이념이 존재하니 그것이 바로 인(仁)이다. 성리학에서는 ‘인’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보살피고 양육)함으로써 조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상생’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어떠한 갈등이나 원한이 없이 오로지 화해와 공존의 후천선경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또한 주자는 사욕을 제거함으로써 인(천리)을 실현해나갈 것을 강조한다. 이때 ‘인’과 ‘사욕’의 관계는 대순사상의 ‘상생’과 ‘원한’의 관계와 유사하다. 사욕이 제거되면 곧장 ‘인’의 원리가 실현되어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루듯이, 원한이 해소되면 곧장 ‘상생’의 원리가 실현되어 무궁한 후천선경이 이룩된다.

Abstract

This paper identifies what the theoretical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re in the concept of Sangsaeng held by Zhuxi (1130~1200) and Jeungsan (1871~1909).

Human beings cannot live alone. For humans to survive, they must live with others. However, humans have an infinite desire not only for survival but also for material things, honor, and power. In other words, humans, on the one hand, seek harmony and symbiosis for survival, and on the other, constantly confront, conflict and compete with one another to satisfy their infinite desires. Thus, human-to-human interrelationship is not a co-prosperity that creates partnerships for harmony but one of adversaries within competition that must be fought and defeated.

At the same time, humans can achieve harmony and cooperation by overcoming their infinite desires and realizing morality. Therefore, various social problems that originate from competitive structure, which are dominated by confrontation and conflict, can be solved through human effort and reflection, so that humans can focus on solving social problems by mobilizing their own wisdom.

Jeungsan emphasized Sangsaeng as mutual beneficence and it became one of the creeds of Daesoon Thought. In the Neo-Confucianism of Zhuxi, there is an ideology of Sangsaeng as co-prosperity and this is comparable to mutual beneficence in Daesoon Thought. In Zhuxi’s terminology it is called ‘In (仁), humanity.’ In Neo-Confucianism, a harmonious world is achieved by loving people and caring for and nurturing all things when the principles of humanity are realized. This means that when the principle of co-prosperity is realized in Daesoon Thought, there will be no conflict or grudges, and only an acquired vision of reconciliation and mutual beneficence will be achieved. Zhuxi also emphasizes the realization of humanity (cheonli) by eliminating self-interest. At this time,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ity and ‘self-interest’ is similar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utual beneficence and grievances in Daesoon Thought. Just as the principle of ‘In’ fosters love among people and the benefit of things immediately after self-interest is removed, the principle of mutual beneficence is realized immediately after grudges are resolved. This achieves an endless of paradise on earth.

Keywords: 주자; 증산; 상생; 인; 원한; 사욕
Keywords: Zhuxi; Jeungsan; Sangsaeng; co-properity; mutual beneficence; humanity; grudges; self-interest

Ⅰ. 서론

본 논문은 주자(朱熹, 1130~1200)와 증산(姜一淳, 1871~1909)에 보이는 상생이론의 의미를 비교 고찰함으로써 이들의 이론적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먼저 상생에 관한 사전적인 정의를 살펴보자. 옥스퍼드 랭귀지(Oxford Languages)1)에 따르면, 상생은 “상극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오행설에서 금(金)은 수(水)를, 수(水)는 목(木)을, 목(木)은 화(火)를, 화(火)는 토(土)를, 토(土)는 금(金)을 낳음을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낳음(生)’은 어느 하나의 오행이 다른 하나의 오행을 살리거나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물은 나무를 자라게 하니 물이 나무를 도와주는 것이고(水生木), 나무는 불을 살리니 나무가 불을 도와주는 것이며(木生火), 불은 재를 만들어 땅을 기름지게 하니 불이 흙을 도와주는 것이고(火生土), 땅속에서 금속이 생산되니 흙이 금을 도와주는 것이며(土生金), 금속이 녹으면 물이 생기니 금이 물을 도와주는 것이다(金生水).

또한 상생은 상극과 상대되는 개념이니 상극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옥스퍼드 랭귀지에 따르면, 상극은 “상생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오행설에서 금(金)은 목(木)을, 목(木)은 토(土)를, 토(土)는 수(水)를, 수(水)는 화(火)를, 화(火)는 금(金)을 이김을 이르는 말. 또는 둘 사이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늘 충돌함을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이김(剋)’은 어느 하나의 오행이 다른 하나의 오행을 죽이거나 이기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물은 불을 끄니 물이 불을 이기는 것이고(水剋火), 불은 금을 녹이니 불이 금을 이기는 것이며(火剋金), 쇠는 나무를 자르니 쇠가 나무를 이기는 것이고(金剋木), 나무(뿌리)는 땅속으로 뻗으니 나무가 흙을 이기는 것이며(木剋土), 흙으로 된 제방이 물을 막으니 흙이 물을 이기는 것이다(土剋水).

이렇게 볼 때, 상생이란 상극처럼 서로 죽이고 이김으로써 화합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살리고 도와줌으로써 화합과 조화를 이루는 호혜적 관계를 의미한다. 이때 이러한 호혜적 관계는 양자가 직접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쌍방의 행위뿐만 아니라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으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을 의미한다. 즉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그가 누군가를 돕고, 또 그가 다른 누군가를 돕는 가운데 사회전체가 상생함으로써 결국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의 이치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상생의 주제에서 중요한 것은 상생의 주체에 해당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생존뿐만 아니라 물질ㆍ명예ㆍ권력 등에 대해서도 무한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한편으로 생존을 위해서 화합ㆍ공생을 도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대립ㆍ갈등하고 경쟁한다. 이로써 인간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는 화합을 도모하는 상생의 동반자가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경쟁의 적인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의 자유경쟁 체제에서 인간은 서로를 적대적 관계 속에서 인식한다. 이러한 경쟁구도는 그대로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적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이로써 빈부갈등ㆍ노사갈등ㆍ지역갈등ㆍ이념갈등 등 수많은 갈등과 불신이 산재하게 된다. 그럼에도 동시에 인간은 무한한 욕망을 극복하고 도덕성을 실현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경쟁구도의 다양한 사회문제는 인간의 노력과 반성을 통해서 해결해나갈 수 있는데, 이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지혜를 동원하여 사회문제의 해결에 주력하게 된다.

오늘날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심 개념으로 부각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상생’의 이념이다.2) 이것은 아마도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공존의 분위기를 이끄는데 상생의 의미가 갖는 신선함 때문일 것이다. 본 주제 역시 이러한 취지의 일환에서 제기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산재한 다양한 갈등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생태문제, 전쟁과 평화문제 등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하나의 담론적 대안으로서 상생의 이념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특히 대순사상에서는 ‘상생’이 그 종지의 하나로서 일찍부터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으며, 이로써 상생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연구 성과가 지속적으로 소개되어 왔다.3) 이러한 상생이념에 근거하여 정치, 생태, 4차 산업, 인류 미래의 방향 등 오늘날 현대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담론의 주제와 결부시켜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나가고 있다. 이와 달리 성리학에서는 상생에 관한 연구가 아직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

물론 주자의 성리학에도 상생의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생의 정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로 오행(수ㆍ화ㆍ목ㆍ금ㆍ토)과 오음(궁ㆍ상ㆍ각ㆍ치ㆍ우)의 특징이나 동정(動靜)의 끝없는 순환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때의 상생은 대순사상의 상생과 그 범주와 의미가 분명히 구분된다. 대순사상의 상생이 형이상적 원리에 해당한다고 할 때, 성리학에도 그에 버금가는 사랑의 원리인 인(仁)이 있다. 주자의 ‘인’과 증산의 ‘상생’은 모두 남과 조화를 이루는 이치이고 원리이다. 이러한 원리가 실현될 때에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보살피고 양육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루게 된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성리학에서의 ‘인’의 원리와 대순사상에서의 ‘상생’의 원리를 중심으로 상생이론에 관한 철학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성리학의 상생이론과 대순사상의 상생이론에 보이는 유사성과 차이점을 확인함으로써 이들의 상생이론이 학제 간의 관계로 확장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을 기대한다.

Ⅱ. 주자 성리학의 상생이론

주자는 인간사회에 만연한 대립과 갈등 및 부조리를 해결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본성과 그 근원에 대한 탐구에 주목한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1. 인간의 이중적 특징 : 천리와 사욕

인간은 한편으로 도덕성을 가지고서 남들과 조화와 질서를 이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무한한 욕망을 가지고서 남들과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이다. 무엇 때문인가. 먼저 주희는 인간(만물을 포함)을 리와 기의 두 범주로 설명한다.

천지간에는 리가 있고 기가 있다. 리라는 것은 형이상의 도(道, 원리)이며 만물을 낳는 근본이다. 기라는 것은 형이하의 기(器, 재료)이며 만물을 낳는 도구이다. 이 때문에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는 반드시 이 리를 부여받은 뒤에 본성(性)이 있고, 이 기를 부여받은 뒤에 형체(形)가 있다.4)

천지 안의 만물은 모두 리와 기로 구성된다. 리는 만물을 이루는 원리(道)이고, 기는 만물을 이루는 재료(器)이다. 원리에 해당하는 리는 형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형이상이라 부르고, 재료에 해당하는 기는 형상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형이하라고 부른다. 이러한 해석은 『주역』 「계사전」의 “형이상의 것을 도(道)라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器)라 한다”5)는 말에 근거한다.

이렇게 볼 때, 리는 만물을 이루는 원리(이치)에 해당하고 기는 만물을 이루는 재료(형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역시 리라는 원리와 기라는 형체가 결합하여 구성된다.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리와 기가 합할 따름이다.”6), “리와 기가 합하여 사람이 있게 되는 것이다.”7) 이때 원리인 리가 형체인 기와 결합하면 바로 성(性)이 된다.

주자는 『중용』 제1장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서 성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은 바로 리이다.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함에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리 또한 부여하니 명령하는 것과 같다. 이에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에 각각 그 부여받은 리를 얻음에 따라 건순(健順)ㆍ오상(五常)의 덕을 삼으니, 이른바 성이라는 것이다.8)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리와 기로 구성되니, 기가 형체를 이루면 또한 리가 부여된다. 이때 리가 기에 부여되는 것은 하늘이 “명령하는 것과 같으므로” 절대성과 필연성을 갖는다. 리가 기에 부여되어 내재하는 순간 성(性: 본성)이 되는데, 여기에서 성의 개념이 등장한다. 이렇게 볼 때, 성이란 리가 일정한 형체에 부여된 뒤에 생긴 명칭이다. 즉 천지간에 유행하는 리가 일정한 형체에 부여된 뒤에 성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체가 있는 사람과 사물에는 모두 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주자는 “천하에는 성이 없는 사물이 없으니, 사물이 있으면 성이 있고 사물이 없으면 성도 없다”9)라고 말한다. 물론 이때 하늘이 부여한 리와 사람과 사물 속에 부여된 성은 그 성질이 같다. 주자는 이들의 관계를 물속의 물고기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물속에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때> 물고기 뱃속의 물은 바로 물고기 몸 밖의 물과 같다.”10) 여기에서 물고기 몸 밖의 물은 리를 가리키고, 물고기 뱃속의 물은 성을 가리킨다. 즉 물고기 몸 밖의 물이나 물고기 뱃속의 물이나 그 성질이 다르지 않는 것처럼, 하늘이 부여한 리와 사람과 사물에게 내재된 성은 그 성질이 같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성즉리(性卽理), 즉 ‘성이 곧 리이다(성=리)’는 성리학의 중요한 명제가 성립된다.

이어서 주자는 성의 내용을 건순(健順)ㆍ오상(五常)으로 설명한다. 건순의 경우, ‘건’은 강건함(健)으로 『주역』 건괘인 양의 덕이고, ‘순’은 유순함(順)으로 『주역』 곤괘인 음의 덕이니, 음양의 덕을 말한다. 오상은 오행인 목ㆍ화ㆍ금ㆍ수ㆍ토의 덕이니 바로 인ㆍ의ㆍ예ㆍ지ㆍ신을 말한다. 오행을 줄여서 말하면 음양이 되듯이, 오상을 줄여서 말하면 건순이 된다.11) 결국 건순ㆍ오상은 음양ㆍ오행의 덕으로서 그 내용이 다르지 않다. 또한 오행의 덕인 오상은 주로 자연의 운행질서인 봄(元)ㆍ여름(亨)ㆍ가을(利)ㆍ겨울(貞)과 연결시켜 인ㆍ의ㆍ예ㆍ지의 사덕으로 말한다. “인ㆍ의ㆍ예ㆍ지는 성의 사덕(四德)이다.”12) 이로써 성의 내용은 통상 인ㆍ의ㆍ예ㆍ지가 된다.

물론 이때의 성은 가치론적인 측면에서 선(善)이 된다. 왜냐하면 성은 리가 부여된 것, 즉 리에 근원하니(性卽理), 이때 리는 자연의 질서이고 법칙이며 동시에 가치의 근원으로서 절대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절대선인 리가 사람에게 부여되어 성이 되니, 성 역시 선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선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은 동일하게 리를 부여받아 성을 가지게 된다. 누구나 동일하게 성을 가지기 때문에 내재적 가치의 측면에서는 모두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본질적으로 우열(優劣)의 차이가 없이 동등한 존재이다. 이와 같다면 이 세상에는 갈등과 다툼 없이 조화와 화합만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세계는 그렇지 않다.

또한 성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기(기질) 속에 내재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로써 형체를 이루면 리가 또한 부여되어 성이 되니’ 성과 기의 분리될 수 없는 관계가 설정된다.

성은 기품과 떨어질 수 없으니, 기품이 있으면 성이 비로소 안에 존재하고, 기품이 없으면 성은 기대어 탈 곳이 없다.13)

하늘의 명령으로 부여된 성은 만약 기질이 없으면 오히려 안착할 곳이 없다. 마치 한 국자의 물도 그것을 담을 물건(그릇)이 없으면 물이 귀착할 곳이 없는 것과 같다.14)

성은 기와 결코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은 형이상의 이치이니 반드시 형이하의 기(형체)가 있어야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과 국자의 관계와 같다. 예컨대 물은 국자와 같은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성 역시 기가 없으면 머물 곳이 없게 된다. 이것은 성이 반드시 기 속에 내재한다는 의미이다. 성이 기 속에 내재하면 반드시 기의 영향을 받게 된다. ‘성이 기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기가 성을 가리는 장해물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선한 성을 부여받지만, 이때 성을 담고 있는 기(형체)가 성을 가림으로서 성의 실현을 방해한다. 때문에 주자는 현실세계의 불선(不善) 또는 악의 원인으로 기를 지목한다.

품부받은 기가 맑은 사람은 성이 맑은 기 안에 있으니 이러한 맑은 기가 그 선을 막거나 가리지 않으며, 품부받은 기가 탁한 사람은 성이 탁한 기 안에 있어서 탁한 기에 의해 가려지게 된다.15)

사람은 모두 천지의 리를 부여받아 성을 이루고 천지의 기를 부여받아 형체를 이룬다. 물론 성은 기 안에 내재한다. 이때 맑은 기를 품수받으면 성은 맑은 기 안에 있으므로 기의 방해를 받지 않지만, 탁한 기를 품수받으면 성은 탁한 기 안에 있으므로 탁한 기의 방해를 받는다. 탁한 기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 하늘이 부여한 선한 성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으나, 탁한 기의 방해를 받으면 하늘이 부여한 선한 성을 실현하지 못한다. 따라서 성은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지만, 기의 청탁(淸濁) 차이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불선할 수도 있다. “사람에게 선이 있고 불선이 있는 것은 다만 품부받은 기질에 각기 맑거나 탁함이 있기 때문이다.”16) 이렇게 볼 때, 기 자체가 악은 아닐지라도, 결국 탁한 기에 의해 성이 가려져서 악이 발생하니 악의 원인은 전적으로 기의 몫이 된다.

특히 주자는 성리학에서 주로 악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욕(私欲) 역시 기(기질)와 연결시킨다.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에 성명의 바름은 참으로 천리(天理)의 실상이 아님이 없다. 다만 기질의 치우침으로 구비ㆍ이목ㆍ사지의 좋아함이 그것을 가려서 사욕(私欲)이 생겨난다.17)

사욕은 기질 중의 한 가지 일이다.18)

주자는 사람의 선악 문제, 특히 악의 문제를 사욕과 결부시켜 설명한다. 왜냐하면 인간사회에서 악의 모습은 사욕과 결부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욕은 천리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리를 부여받아 성을 지니는데, 이것이 천리이다. 그러나 형체를 이루는 기의 영향으로 구비ㆍ이목ㆍ사지와 같은 육체적 욕망이 생겨나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리의 실현을 방해하는데, 이것이 사욕이다. 예를 들어 입은 맛있는 음식을 원하고, 코는 좋은 냄새를 원하며, 귀는 아름다운 소리를 원하고, 눈은 아름다운 색을 원하며, 사지는 편안함을 원하는데, 이러한 육신의 좋아함과 편안함에 이끌리면 사욕이 일어난다. 인간이 사욕에 이끌리면 더 좋은 것을 욕망하게 되는데, 이로써 남들과 화합하지 못하고 대립ㆍ갈등한다.

이처럼 주자는 인간을 리와 기의 구조로 설명함에 따라 도덕성의 근거를 리(성)로써 설명하고, 또한 이 세상에 만연한 악의 현실을 기로써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한편으로는 리(성)에 근거하여 조화와 질서를 이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에 근거하여 무한한 욕망으로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19)

2. 인(仁) : 사랑의 원리

이상에서처럼,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모두가 하나 되는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욕을 극복하고 천리의 실현이 요구된다. 이때 사욕이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추구하는 개체적 욕망이라면, 천리는 남들과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원리라 할 수 있다.20) 이때 천리의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인(仁)이다. ‘인’은 천명에 의해 리가 성으로 부여된 것으로서 인ㆍ의ㆍ예ㆍ지의 사덕(四德) 중의 하나이지만, 의ㆍ예ㆍ지를 포괄하는 대표적 개념이다.

먼저 주자는 ‘인’을 천지의 마음과 연결시켜 해석한다.

천지는 만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에도 각각 천지의 마음을 얻어서 마음을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덕을 말하면, 비록 그것이 통섭하고 관통하여 갖추지 않은 것이 없지만, 한 마디로 포괄하면 ‘인’이라고 말할 뿐이다.21)

천지의 가장 큰 공능은 만물을 낳는데 있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천지의 큰 덕을 낳는 것(生)이라 한다”22)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로써 천지 속의 만물은 어느 것 하나 고정된 것 없이 끊임없이 생성ㆍ변화한다. 주자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것을 천지의 마음으로 해석한다. “천지는 만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 사람과 사물도 모두 천지의 마음을 얻어서 생겨나기 때문에 이들 역시 천지의 마음을 각각의 마음으로 삼는다. “천지는 이 마음을 가지고 만물에 두루 미치니, 사람이 그것을 얻으면 곧 사람의 마음이 되고, 사물이 그것을 얻으면 곧 사물의 마음이 되며, 초목과 짐승이 그것을 얻으면 초목과 짐승의 마음이 되니, 다만 하나의 천지의 마음뿐이다.”23) 천지의 마음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고 사물의 마음이며 초목과 짐승의 마음이니, 여기에서 천지의 마음에 근거하여 사람과 사물과 초목과 짐승이 하나 되는 유기체적 세계관이 성립된다.

주자는 이러한 천지의 마음을 ‘인’과 연결시킨다. “천지의 마음을 덕으로 말하면, ‘인’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로써 ‘인’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며, 사람과 사물 역시 이 마음(仁)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는다. 그러므로 ‘인’은 천지의 마음과 사람(또는 사물)의 마음을 맺어주는 ‘마음의 덕’으로 표현된다. 결국 ‘인’을 통하여 천지만물과 사람이 하나로 합일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니, 유학의 전통사상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주자의 ‘인’에 대한 해석으로 계승된다.

이어서 주자는 천지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천지의 마음에는 그 덕이 네 가지가 있으니,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이라 하며 ‘원’이 <그 나머지를> 총괄하지 않음이 없다. 그것의 운행은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의 순서로 드러나지만, 봄의 생동하는 기운이 <여름ㆍ가을ㆍ겨울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도 그 덕이 또한 네 가지 있으니,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라 하며 ‘인’이 <그 나머지를> 포괄하지 않음이 없다. 그것이 발하여 작용하면, 사랑하고(愛) 공경하고(恭) 마땅하고(宜) 분별하는(別) 정이 되는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관통하지 않은 곳이 없다.24)

천지의 마음에는 원ㆍ형ㆍ이ㆍ정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천지의 네 가지 덕(四德)이다. 천지의 덕인 원ㆍ형ㆍ이ㆍ정은 사계절의 운행으로 드러나니,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므로 ‘원’이 되고, 여름은 만물이 자라나는 시기이므로 ‘형’이 되며, 가을은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시기이므로 ‘이’가 되고, 겨울은 만물을 저장하고 다시 봄을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정’이 된다. 사람의 마음에도 인ㆍ의ㆍ예ㆍ지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사람의 네 가지 덕(四德)이다. 사람의 덕인 인ㆍ의ㆍ예ㆍ지는 사단(四端)의 정으로 드러나니, ‘인’은 남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정으로 드러나고(惻隱), ‘의’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거나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정으로 드러나며(羞惡), ‘예’는 남에게 공경하고 양보하는 정으로 드러나고(辭讓), ‘지’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정으로 드러난다(是非).

여기에서 주자는 천지의 덕인 원ㆍ형ㆍ이ㆍ정과 사람의 덕인 인ㆍ의ㆍ예ㆍ지를 하나로 연결한다. 천지의 마음인 ‘원’에 있어서 봄의 소생하는 기운은 사람의 마음인 ‘인’에 있어서 남을 사랑하는 마음과 관통하니, 결국 만물을 낳는 천지의 마음과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사람의 마음은 하나이다. 물론 원ㆍ형ㆍ이ㆍ정 가운데 ‘원’이 나머지를 총괄하는 개념이듯이, 인ㆍ의ㆍ예ㆍ지 가운데 ‘인’이 나머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바로 천지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그 구조를 같이 하는 근거가 된다.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천지에 있어서는 가득히 만물을 낳는 마음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따뜻하게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서 사덕(四德)을 포괄하고 사단(四端)을 관통하는 것이다.25)

사람 역시 천지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지만, 천지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그 내용이 구분된다. 천지의 마음이 만물을 낳고 기르는 것이라면, 사람의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사람의 마음은 바로 ‘인’에 근거한다. 왜냐하면 “사덕을 포괄하고 사단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사람의 마음에는 그 덕이 네 가지 있으니 ‘인’이 <그 나머지를> 포괄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사람의 마음은 ‘인’의 실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인’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할 뿐만 아니라 만물을 보살피고 양육함으로써 질서 있고 조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은 씨앗에 비유되기도 한다. 복숭아의 씨앗을 도인(桃仁)이라 하고 살구의 씨앗을 행인(杏仁)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씨앗에서 식물의 싹이 트는 것처럼, ‘인’이 있으므로 사랑이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상생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후천선경을 이룰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렇지만 사랑의 원리인 ‘인’ 또한 기질의 영향으로 사욕에 지배되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데, 이로써 대립ㆍ갈등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사욕은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즉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만물이 하나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된다. 여기에서 주자는 사욕을 제거함으로써 ‘인’을 실현해나갈 것을 강조한다.

만약 사욕이 조금도 남지 않고 천리가 유행하는 곳에 이를 수 있다면, 모두 ‘인’이라고 할 수 있다.26)

사욕을 제거하면 천리가 저절로 완전하게 갖추어진다.27)

사욕이 완전히 제거되고 천리가 유행하면 이에 ‘인’이 실현된다. 이것은 마치 거울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면 바로 밝게 빛나는 것과 같다. “거울에 먼지가 없으면 빛나듯이, 사람에게 조금의 사욕이 없을 수 있으면 인하다.”28) 비록 거울이 먼지에 가려져서 빛을 잃을지라도 본래 밝은 빛을 가지고 있듯이, 사람 역시 사욕에 가려졌을 뿐이므로 사욕을 제거하면 바로 본연의 모습인 ‘인’이 실현되어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한다.

주희는 이러한 ‘인’과 사욕의 관계를 해와 구름의 관계에 비유한다.

사람은 사욕의 가져짐이 있어서 이 ‘인’을 볼 수 없지만, 마음속에는 ‘인’이 여전히 존재한다. 마치 해와 달이 본래 저절로 빛나서 비록 구름에 의해 가려지더라도 빛은 여전히 안에 있는 것과 같다. … 다만 사욕을 이기면 ‘인’은 여전히 그 안에 있다.29)

비록 사람에게 사욕의 가려짐이 있을지라도 ‘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천명에 의해 리를 부여받아 자신의 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기품의 차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노력(수양)을 통해 사욕을 제거하면 천명에 의해 부여된 사랑의 원리인 ‘인’을 회복할 수 있다. ‘인’의 원리가 회복되면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조화와 상생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증산의 상생과 원한의 관계와 유사하다. 사욕이 제거되면 곧 ‘인’의 원리가 실현되듯이(주자), 원한이 해소되면 곧 상생의 원리가 실현된다(증산).

이러한 사랑의 원리인 ‘인’에 근거할 때,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가치를 지니므로 우열의 차이가 있을 수 없는 동등한 존재가 된다. 우열의 차이가 없으므로 우수한 자가 열등한 자보다 우월하다거나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사람에게 내재된 ‘인’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하나됨을 의미한다. 이로써 인간은 다른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게 되며,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조화와 상생이 가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자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인간의 의무와 역할을 중시한다. 이로써 인간은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양육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부여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주자는 인간을 만물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존재로 규정한다.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남을 얻어 가장 영명하다. 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정신이 지각을 드러내고 오성(五性)이 느끼고 움직여서 선과 악이 나누어지고 온갖 일이 생겨난다.30)

대개 사람은 음양오행의 빼어난 기를 받아서 태어난다. 성인의 태어남은 또 그 빼어난 가운데 더욱 빼어난 기를 얻는 자이다.31)

인간은 음양오행의 빼어난 기를 부여받아 태어나므로 만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유하는 지각능력을 가지며, 또한 인ㆍ의ㆍ예ㆍ지(五性)와 같은 도덕능력을 가진다. 이로써 인간은 만물과 달리 옳고 그름과 같은 가치판단이나 효제충신과 같은 도덕행위를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은 수양공부가 가능한데, 이것은 인간에게만 요구되는 것이다. 수양을 통해 욕망을 극복하고 본성을 회복함으로써 자신을 반성하거나 변화시켜나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만물 가운데 가장 빼어난 기를 부여받은 이유이다. 이것은 증산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물론 주자의 말처럼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가장 뛰어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만물보다 더 귀하거나 가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과 만물은 모두 천지의 마음(仁)에서 생겨난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만물이 하나(同體)가 될 수 있는 근거이며, 동시에 인간이 만물과 소통ㆍ감응할 수 있는 근거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과 만물은 서로 분리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소중한 삶의 동반자가 된다. 이로써 인간은 만물과 유기적이고 상보적인 조화와 협력을 유지해나가야 하는 필연성과 만물을 함부로 파괴할 수 없는 당위성을 확보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우수성은 만물을 지배하는 정당성 확보의 의미가 아닌, ‘인’의 실현을 통한 도덕적 인간상의 수립과 함께 인간과 만물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책임과 의무로 귀결된다.

따라서 인간은 책임과 의무를 지닌 존재로서 천지를 도와 모든 만물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중용』에서 말한 “천지의 화육을 도우면 천지와 함께 참여할 수 있다”32)는 내용이다. 이로써 인간은 천지의 화육과정에 주체적ㆍ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천지의 일부에 불과한 인간이 천지와 같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에 천ㆍ지ㆍ인 삼재(三才)사상이 성립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율곡은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이 바르고, 사람의 기운이 화순하면 천지의 기운도 화순하다.”33)라고 말한다. 결국 인간이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가깝게는 인간과 인간 간의 조화와 상생을 이룰 수 있고, 멀게는 인간과 만물(자연) 간의 소통과 공생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만물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열쇠는 결국 인간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개개의 인간이 천부적인 ‘인’의 원리에 근거할 때에 조화ㆍ상생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고 ‘인’의 원리에 벗어나서 과도한 욕망에 근거할 때 대립ㆍ갈등하게 된다.

Ⅲ. 증산 대순사상의 상생이론

1. 상생 : 후천세계의 원리

대순사상의 종지가 음양합덕(陰陽合德)ㆍ신인조화(神人調和)ㆍ해원상생(解冤相生)ㆍ도통진경(道通眞境)이니, 상생은 대순사상 종단의 중요한 이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대순사상에서 상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증산은 『전경』에서 상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34)

먼저 증산은 선천과 후천, 상극과 상생의 개념을 대비적으로 설명한다. 선천이 상극의 원리가 지배하여 원한이 쌓여 고통을 겪는 세계라면, 후천은 상생의 원리가 지배하여 고통에서 해방된 무궁한 선경(낙원)의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선천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상극이라면, 후천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바로 상생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증산은 상생의 원리가 출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이것은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의 일을 지배하므로 원한이 세상에 쌓이고 천ㆍ지ㆍ인 삼계(三界)가 소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생겨났다.”35)는 말에 다름 아니다. 상극이 인간과 사물의 지배원리가 되면, 원한이 쌓여서 천지가 ‘상도’를 잃음으로써 온갖 재앙이 일어난다. 결국 인간 세상에 상극의 원리가 작용하면 적대적인 태도로 대립ㆍ갈등하는 참혹한 결과가 발생한다.

증산이 이 세계를 구제하기 위하여 삼계공사(三界公事)를 역사한 것도 결국 대립과 갈등을 야기하는 상극의 원리를 끝내고 새로운 상생의 원리를 정립하기 위한 것이다.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한다.” 삼계공사(또는 천지공사)는 증산이 인간 세상에 강림하여 행한 대역사이다. 1901년에서 1909년까지 총 9년에 걸쳐서 이룩된 이 공사를 통해 세계를 개조함으로써 기존의 세계인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쳐 쌓인 원한을 풀고 천ㆍ지ㆍ인 삼계가 소통하는 새로운 세계인 후천선경을 이룩한다.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36) “그러므로 상제께서 오셔서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를 세워 후천 선경을 열어 놓으셨다.”37) 이것이 바로 증산이 역사한 삼계공사의 내용이다.

더 나아가 증산은 상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후천세계 건설의 전제조건으로 해원을 강조한다.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한다.” 여기에서 ‘원을 푼다’는 것이 바로 대순사상의 종지 중의 하나인 해원(解冤)을 말한다. 이때의 해원은 바로 후천세계의 지배원리인 상생의 근거가 되니, 상극의 원리가 지배하는 선천세계의 역사가 해원의 과정을 통하여 상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후천세계로 전환된다. 결국 상극의 원리에 의해 쌓인 선천의 원한이 모두 해소되면 바로 상생의 원리에 의한 후천선경의 건설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에서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된다.”는 해원과 상생의 역학적 관계가 성립한다.38) 이것은 사욕이 제거되면 바로 ‘인’의 원리가 실현된다는 주자의 해석과 유사하다. 사욕이 제거되어야 ‘인’의 실현이 가능하듯이, 원한이 종식되어야 원한의 원인이었던 대립과 갈등이 사라지고 함께 사는 ‘상생’의 세상이 실현된다. “이로써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이 서로 상생하게 되었다.”39) 즉 상생이 지배적 원리가 될 때, 신들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후천선경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생은 대순사상의 종극 목적에 해당하는 후천세계의 지배원리가 된다. 상생이 인간세상의 지배원리가 되면, 인간사회도 상생의 원리에 따라 서로 살리고 도와주는, 즉 주자의 말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실천이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상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후천세계에는 어떠한 갈등이나 원한이 없이 오로지 화해와 공존의 지상선경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대순사상의 상생이념은 후천세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후천은 증산이 천지공사를 통해 역사한 세계인데, 이 과정에서 상극의 원리가 지배하는 선천세계의 도수를 뜯어고쳐 상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후천세계를 건설한다. 이것이 바로 대순사상의 종지 중의 하나인 ‘해원상생’이 가지는 사상사적 의미이다.

2. 상생의 실천 : 해원

주자는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만물이 대립ㆍ갈등하는 원인으로 사욕(私欲)을 지목한다. 이와 달리 증산은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만물이 대립ㆍ갈등하는 원인으로 원한(冤)을 지목한다. 증산은 원한이 이 세상의 모든 불상사를 불러일으키는 원인라고 설명한다.

예로부터 쌓인 원을 풀고 원에 인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리라. …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해원공사를 행하여야 되느니라.40)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 이를 없애려면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야 하고 이것이 이룩되면 천지는 개벽되고 선경이 세워지리라.41)

증산에 의하면, 인류가 반목 투쟁하다가 파멸하게 되는 원인은 원한 때문이다. 원한으로 말미암아 서로 반목으로써 대립과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원한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종자가 퍼지고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파멸은 인류가 서로 화합ㆍ상생하지 못하고 대립ㆍ갈등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파멸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는 원한의 해소가 요구된다. 때문에 인류의 모든 대립과 갈등을 없애고 영원한 평화, 즉 후천선경을 이룩할 수 있는 단서는 바로 원한을 푸는데서 시작된다. 원한이 해소되면, 원한의 원인이었던 대립과 갈등이 사라지고 인류의 영원한 평화가 이룩되는데, 이로써 상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후천선경이 실현된다. 이렇게 볼 때, 상생을 실현하는 우선적인 실천방법이 바로 해원(解冤)이다.

이러한 해원은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새와 짐승과 같은 미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갑자기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함인가’하시니 금수들이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숙이는도다.”42) 이것은 해원이 인간의 원한뿐만 아니라 새와 짐승과 같은 미물의 원한까지도 모두 종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증산의 해원공사는 인간과 미물을 포괄하는 우주전체의 해원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해원은 어떻게 가능한가. 즉 해원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남에게 억울한 원한을 짓지 말라. 이것이 척이 되어 보복하나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43)

증산은 해원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원한(척)을 짓지 말라’, ‘남을 미워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척을 지으면 반드시 보복이 있을 것이고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남도 그를 미워할 것이니, 이로써 원한이 쌓이게 된다. 원한이 쌓이면 서로 반목하여 대립ㆍ갈등하니 결국 파멸하는 지경에 이른다. 반대로 척을 짓지 않거나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원한이 쌓이지 않고, 원한이 쌓이지 않으면 어떠한 대립과 갈등도 없는 조화로운 세상이 된다. 여기에서 척을 짓지 않거나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 해원의 소극적인 방법이라면, ‘남을 잘되게 하라’는 해원의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 “우리의 일은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이니라.”44)

특히 증산은 해원의 방법으로서 언덕(言德)을 강조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45) 남을 좋게 말하면 그 복이 결국 자신에게 미치고, 남을 나쁘게 말하면 그 해가 결국 자신에게 미친다. 여기에서 ‘남을 좋게 말하는 것’은 남을 잘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생의 원리에서 도출된 해원의 적극적 실천방법의 하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증산은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46) “나와 네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해원하리라.”47) 그렇지 않고 “내가 만일 같이 헐뜯어서 그것을 갚으면 나는 더욱 어리석고 용렬한 자가 되니라.”48) 결국 상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해원의 시대에는 악을 선으로 갚으며, 너와 내가 서로 화해하며, 남을 비방하지 않은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볼 때, 증산의 해원공사는 선천세계의 한계와 모순이 해원에 의해 극복되고, 이러한 해원이 전제가 된 상태에서 상생의 이념이 실현됨으로써 어떠한 대립과 갈등도 없는 후천선경의 세상을 이룩한다. 왜냐하면 원한이 쌓인 상황에서는 상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상생의 원리는 그대로 전체적 세계관으로 전개된다. 대순사상은 천지 속의 만물이 각각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전체의 일부라는 전체적 세계관을 견지한다. 모두가 전체의 일부이므로 그 중에 하나라도 막힌 곳이 있으면 전체가 제대로 순환하지 못한다. 인간 역시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니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기운이 막힌다.”49)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천지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한 것으로서, 인간 역시 천지의 일부분임을 강조한 표현이다. 이로써 이 세계의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동체(同體)의식이 성립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해원의 적극적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남과 나는 모두 전체의 일부이므로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결국 나를 잘되게 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상생의 원리가 요구된다. 결국 상생의 당위성은 전체적 세계관으로부터 도출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분리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전체의 일부(또는 하나)라는 유기체적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유기체적(또는 전체적) 세계관에서는 모든 존재가 동일한 내재적 가치와 권리를 가지는 동등한 관계이다. 이것은 성리학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과 만물(자연)은 더 이상 주체와 대상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또한 인간은 만물에 대해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가질 수 없다. 여기에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생태와 환경 등 다양한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의 이론적 근거가 마련된다.

그럼에도 증산은 주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천지보다 우위에 둠으로써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다.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50)

증산은 인간이 다른 만물보다 존귀한 이유를 설명한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60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들여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51) 주자가 인간을 오행의 빼어난 기를 얻은 우수한 존재로 규정하듯이, 증산 역시 인간을 조상신들의 오랜 공(기도)을 쌓아서 태어난 존귀한 존재로 규정한다.

특히 증산은 인간이 우수한 이유 중의 하나로서 인간의 마음을 거론한다. 인간에게는 마음(心靈)이 있으니 “마음은 신명이 <머무는>중추기관이요 <드나드는>문이요 <다니는>길이다.”52) 때문에 증산은 마음, 즉 심령을 인간의 가장 보배로운 것으로 이해한다. “지극한 보배가 곧 나의 심령이니, 심령이 통하면 귀신과도 응대할 수 있고, 만물과도 순서를 함께(나란히)할 수 있다.”53) 천지의 일부에 불과한 인간이 천지(귀신ㆍ만물)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마음 때문이다. 이로써 마음은 천지의 중심으로 천ㆍ지ㆍ인 삼재(三才)사상이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인간의 마음은 천지보다도 크다”54)라는 말 역시 이러한 의미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만물과 달리, 마음의 작용에 해당하는 주체적인 노력(수도)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함으로써 자신을 성취하거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55) 인간은 정음ㆍ정양의 존재이니 정심(正心)으로 끊임없이 수련하면, 자기의 완성뿐만 아니라 타인 또는 만물의 완성을 이룰 수 있으며, 이로써 천지만물과 조화로운 상생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

Ⅳ. 결론

이상으로 주자와 증산의 상생이론을 ‘인’과 ‘상생’의 원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주자의 상생이론은 인간의 이중적 특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간은 한편으로 도덕성에 근거하여 남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무한한 욕망에 근거하여 대립ㆍ갈등하는 존재이다. 이때 인간의 도덕성은 리(성)에 근거하고, 인간의 욕망은 기에 근거한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의 이기론적 해석이다. 도덕성의 근거인 리가 천명(天命)에 의해 성으로 갖추어짐으로써 인간은 남들과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물론 이때 성의 내용에는 인ㆍ의ㆍ예ㆍ지가 있으나, 이들 가운데 ‘인’이 나머지를 포괄하는 총괄적 개념이며, 동시에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의 덕이 된다.

주자는 ‘인’에 근거하여 인간의 마음과 천지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한다. 천지의 마음이 만물을 낳고 기르는 것이라면, 인간의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다.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은 ‘인’의 실현에 다름 아니다. 즉 ‘인’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보살피고 양육)함으로써 조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상생’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어떠한 갈등이나 원한이 없이 오로지 화해와 공존의 후천선경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럼에도 ‘인’은 기 속에 내재하므로 기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기의 영향으로 사욕에 지배됨으로써 대립ㆍ갈등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사욕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즉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만물이 하나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된다. 여기에서 주자는 사욕을 제거함으로써 인(천리)을 실현해나갈 것을 강조한다. 이때 ‘인’과 사욕의 관계는 대순사상의 상생과 원한의 관계와 유사하다. 사욕이 제거되면 곧장 ‘인’의 원리가 실현되어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루듯이, 원한이 해소되면 곧장 상생의 원리가 실현되어 무궁한 후천선경이 이룩된다.

이러한 ‘인’의 원리에 근거할 때,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만물은 우열(優劣)의 차이가 없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인’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며, 사람과 사물 역시 이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는다. 여기에서 인간과 만물이 모두 하나 되는 유기체적 세계관이 성립한다.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만물은 서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상호 조화하고 협력하여 함께 살아가야 할 소중한 삶의 동반자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대순사상 역시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의 기운이 막히는 것처럼, 인간 역시 천지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모두가 하나라는 동체(同體)의식이 성립한다.

그럼에도 주자는 인간이 만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로 규정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만물보다 더 귀하거나 가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그대로 인간의 의무와 역할로 드러난다. 인간은 수양을 통한 도덕적 인간상의 수립과 함께 사람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사물을 보살피고 양육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과 책임감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인간의 책임과 의무는 그대로 천지를 도와 만물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천ㆍ지ㆍ인 삼재(三才)사상이 성립한다. 이것은 증산도 다르지 않다. 증산 역시 인간을 다른 만물보다 존귀한 존재로 규정하니, 인간은 귀신과도 소통하고 만물과도 함께 하는 천지의 중심으로 자리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만물과 달리 주체적 노력(수도)을 통하여 자기의 완성뿐만 아니라 만물의 완성을 이룸으로써 조화와 상생을 이룰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다만 주자가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한다’는 인의 보편적 실천방법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증산은 ‘척을 짓지 말라’, ‘남을 미워하지 말라’, ‘남을 잘되게 하라’, ‘좋은 말을 하고 나쁜 말을 하지 말라’는 등 상생의 구체적 실천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보편성과 구체성이 바로 이들 상생이론의 이론적 차이라 하겠다. 물론 이때 주자의 사랑은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親親)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仁民),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자연만물에 대한 사랑(愛物)으로 확대되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주자의 상생이론인 ‘인’의 원리와 증산의 상생이론인 ‘상생’의 원리는 그 사유구조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리가 실현될 때에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보살피고 양육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루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인’의 원리와 ‘상생’의 원리는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만물(자연)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인’의 실현 또는 ‘상생’의 실현은 결국 인간과 인간 간의 조화뿐만 아니라 인간과 만물(자연) 간의 조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부조리뿐만 아니라,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생태와 환경문제 등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Notes

1) 옥스퍼드 랭귀지는 세계 최고의 사전 출판사로서 구글 한국어 사전을 제공하고 있다. 《Oxford Languages》 https://languages.oup.com/google-dictionary-ko (2021. 5. 20 검색).

2) 이경원, 「대순진리회의 상생이념에 관한 연구」, 『대순사상논총』 18 (2004), p.26 참조.

3) 양무목, 「대순사상과 한국정치 : 해원상생 사상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1 (1996); 김방룡,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서 해원상생의 재해석과 지평」, 『대순사상논총』 29 (2017); 배규한, 「인간과 세계의 미래에 관한 해원상생사상 연구」, 『대순사상논총』 30 (2018); 차선근, 「대순진리회 생태론 연구서설 : 상생생태론」, 『대순사상논총』 35 (2020) 등.

4) 『朱熹集』 卷58, 「答黃道夫」, “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是以人物之生, 必稟此理然後有性, 必禀此氣然後有形.”

5) 『周易』, 「繫辭傳(上)」, “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

6) 『朱子語類』 卷4, “人之所以生, 理與氣合而已.”

7) 『朱子語類』 卷60, “理與氣合, 所以有人.”

8) 『中庸章句』, 第1章, “性, 卽理也. 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 氣以成形, 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9) 『朱子語類』 卷4, “天下無無性之物, 蓋有此物, 則有此性; 無此物, 則無此性.”

10) 『朱子語類』 卷98, “如水中魚, 肚中水便只是外面水.”

11) 존재(存齋, 이휘일, 1619~1672)는 성과 건순, 오상(인의예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의 성은 합하여 말하면 性이라 하고, 나누어서 말하면 健順이라 하며, 더욱 나누어서 말하면 仁義禮智라 하고, 더욱 세세히 나누면 만 가지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存齋集』 卷3, 「與應中」, “猶人之性, 合而言之, 則曰性, 分而言之, 則曰健順, 又分而言之, 則曰仁義禮智, 又細分之, 則曰萬理皆備於我也.”)

12) 『孟子集註』, 「盡心(上)」, “仁義禮智, 性之四德也.“

13) 『朱子語類』 卷94, “性離氣稟不得, 有氣稟, 性方存在裏面; 無氣稟, 性便無所寄撘了.”

14) 『朱子語類』 卷4, “天命之性, 若無氣質, 卻無安頓處. 且如一勺水, 非有物盛之, 則水無歸著.”

15) 『朱子語類』 卷94, “稟得氣淸者, 性便在淸氣之中, 這淸氣不隔蔽那善; 稟得氣濁者, 性在濁氣之中, 爲濁氣所蔽.”

16) 『朱子語類』 卷4, “人之所以有善有不善, 只緣氣質之稟各有淸濁.”

17) 『中庸或問』, “若夫人物之生, 性命之正, 固亦莫非天理之實. 但以氣質之偏, 口鼻耳目四肢之好, 得以蔽之, 而私欲生焉.”

18) 『朱子語類』 卷78, “私欲是氣質中一事.”

19) 또한 주자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성을 다시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구분하고, 선악이 혼재하는 현실세계의 다양성을 기질지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20) 사욕이 자신만을 위하는 사적인 마음이라면, 천리는 전체를 위하는 공적인 마음이다. 공적인 마음을 따르면 군자가 되고, 사적인 마음을 따르면 소인이 되니, 결국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천리를 따르느냐 사욕을 따르느냐에 달려있다.

21) 『朱熹集』 卷67, 「仁說」, “天地以生物爲心者也. 而人物之生, 又各得夫天地之心以爲心者也. 故語心之德, 雖其總攝貫通, 無所不備, 然一言以蔽之, 則曰仁而已矣.”

22) 『周易』, 「繫辭傳(下)」, “天地之大德曰生.”

23) 『朱子語類』 卷1, “天地以此心普及萬物, 人得之, 遂爲人之心; 物得之, 遂爲物之心; 草木禽獸接著, 遂爲草木禽獸之心, 只是一箇天地之心爾.”

24) 『朱熹集』 卷67, 「仁說」, “蓋天地之心, 其德有四, 曰元亨利貞, 而元無不統. 其運行焉, 則爲春夏秋冬之序, 而春生之氣, 無所不通. 故人之爲心, 其德亦有四, 曰仁義禮智, 而仁無不包. 其發用焉, 則爲愛恭宜別之情, 而惻隱之心無所不貫.”

25) 『朱熹集』 卷67, 「仁說」, “此心何心也. 在天地則坱然生物之心, 在人則溫然愛人利物之心, 包四德而貫四端者也.”

26) 『朱子語類』 卷96, “若能到私欲淨盡, 天理流行處, 皆可謂之仁.”

27) 『朱子語類』 卷6, “當其私欲解剝, 天理自是完備.”

28) 『朱子語類』 卷95, “鏡無纖塵則光明, 人能無一毫之私欲則仁.”

29) 『朱子語類』 卷101, “人有私欲遮障了, 不見這仁, 然心中仁依舊只在. 如日月本自光明, 雖被雲遮, 光明依舊在裏. … 只是克了私欲, 仁依舊只在那裏.”

30) 『周子全書』 卷1, 「太極圖說」, “惟人也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 而善惡分, 萬事出矣.” 이천(정이) 역시 오행의 빼어난 정기를 얻은 것이 사람임을 강조한다.(『二程集』 卷7, 「顔子所好何學論」, “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31) 「太極圖說解」, “蓋人稟陰陽五行之秀氣以生, 而聖人之生, 又得其秀之秀者.”

32) 『中庸』, 第22章, “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33) 『栗谷集』 卷14, 「雜著-天道策」, “人者, 天地之心也, 人之心正, 則天地之心亦正; 人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矣.”

34) 『전경』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공사 1장 3절(이하 『전경』의 인용은 공사 1장 3절의 경우 ‘공사 1-3’로 표기함).

35) 예시 8.

36) 공사 1-2.

37) 예시 9.

38) 『대순지침』에서도 해원과 상생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대순지침』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2), p.27, “해원(解冤)은 척(慼)을 푸는 일이며 척을 맺는 것도 나요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풂으로써 상대는 스스로 풀리게 되니, 양편이 척이 풀려 해원이 되고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39) 예시 10.

40) 공사 3-4.

41) 공사 3-5.

42) 행록 2-15.

43) 교법 2-44.

44) 교법 1-2.

45) 교법 1-11; 또한 『전경』에는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교법 2-50,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그가 잘 되고 그 여음이 밀려서 점점 큰 복(福)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남의 말을 악하게 하면 그에게 해를 입히고 그 여음이 밀려와서 점점 더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 삼갈지니라.”

46) 교법 3-15.

47) 공사 1-25.

48) 교법 1-27.

49) 공사 3-29.

50) 교법 2-56.

51) 교법 2-36.

52) 행록 3-44, “心也者, 鬼神之樞機也, 門戶也, 道路也.”

53) 교운 2-41, “至寶卽吾之心靈也, 心靈通則鬼神可與酬酢, 萬物可與俱序.”

54) 행록 3-44, “吾心之樞機門戶道路, 大於天地.”

55) 공사 2-16.

【참고문헌】

1.

『朱熹集』, 『朱子語類』, 『周易』, 『孟子』, 『孟子集註』, 『中庸』, 『中庸或問』, 『中庸章句』, 『周子全書』, 『二程集』, 『存齋集』, 『栗谷集』

2.

『전경』,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3.

『대순지침』,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2

4.

김방룡,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서 해원상생의 재해석과 지평」, 『대순사상논총』 29, 2017.

5.

배규한, 「인간과 세계의 미래에 관한 해원상생사상 연구」, 『대순사상논총』 30, 2018.

6.

배영기, 「상생윤리의 체계론적 연구」, 『윤리연구』 51, 2002. http://uci.or.kr/G704-000880.2002.51.3.001

7.

양무목, 「대순사상과 한국정치 : 해원상생 사상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1,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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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대순진리회의 상생이념에 관한 연구」, 『대순사상논총』 18, 2004.

9.

차선근, 「대순진리회 생태론 연구서설 : 상생생태론」, 『대순사상논총』 35,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