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한국 불교와 대순진리회 죽음관 비교연구: 윤회와 명부·시왕 관념을 중심으로

도미닉루타나 1 , *
Dominik Rutana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아시아종교연구원 선임연구원
1The Asian Institute for Religions
*아시아종교연구원 선임연구원, E-mail: dominik.rutana@gmail.com

© Copyright 2022,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an 20, 2022; Revised: Mar 03, 2022; Accepted: Mar 16, 2022

Published Online: Mar 31, 2022

국문요약

본 연구는 한국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죽음관을 비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한국 불교와 대순진리회는 죽음관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윤회(輪廻), 명부(冥府), 시왕(十王) 등의 다양한 개념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불교와 대순진리회에서 이 개념들은 그 내용과 범주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각각의 교리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중요성에서도 차이가 있다. 즉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윤회 개념은 많은 비슷한 점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윤회의 기간, 또는 윤회 과정에 있어서 타력(他力)의 중요성과 관련된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다. 명부 관념의 경우는 비슷한 점들보다 차이점들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순사상에서는 불교의 명부설에서 나타난 시왕에 의해 이루어지는 심판 교설도 있기는 하지만, 대순진리회 교리체계 속에서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위 ‘명부공사’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교설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각 전통에서 나타나는 윤회와 명부·시왕 관념들은 같은 개념과 범주를 갖는 것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불교의 윤회, 불교의 명부나 시왕과는 구분되도록 하여, ‘대순진리회 윤회’, ‘대순진리회 명부·시왕’과 같은 새로운 개념으로 독립적인 사상 체계 맥락에서 재정의해야 하며, 더 넓은 종교 이론에 포함시켜야 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death the Korean Buddhist understanding of death with that of Daesoon Jinrihoe. Various concepts, including reincarnation (輪廻), myeongbu (冥府, ‘the postmortem offices’ or ‘afterworld’) and the Ten Kings (十王) of the afterworld are used to explain views on death in both religions. However, these concepts differ not only in their content and categorization, but also in terms of the meaning they occupy within the doctrines of each religion. In other words, although many similarities can be found between Buddhism and Daesoon Jinrihoe’s concept of reincarnation, at the same time, differences between them can also be pointed out. The differences include the period of time between one’s death and reincarnation and also the importance of reliance upon other people or divine powers during the reincarnation process. With regard to ideas involving myŏngbu, there are far more differences than similarities. Both Buddhism and Daesoon Jinrihoe shares a similar notion of an afterlife judgment presided over by the Ten Kings. However, many differences can be found when it comes to Daesoon Jinrihoe other view of myŏngbu, known as ‘myeongbu gongsa(the Reordering Works of Myeongbu).’ These works are considered to be of great doctrinal importance in Daesoon Jinrihoe. Therefore, the concepts of reincarnation and myeongbu that appear in both traditions should not be considered identical and need to be redefined accordingly in comparative contexts. In other words, the concepts of reincarnation, myeongbu, and the Ten Kings as they appear in the Daesoon Thought should first be differentiated from their counterparts found in Buddhism and then be redefined in the context of the new and independent system of thought in which they exist. These concepts should then be applied to broader theoretical discourse on religion.

Keywords: 불교 죽음관; 대순진리회 죽음관; 윤회; 명부; 시왕; 비교연구
Keywords: Buddhist views of death; Daesoon Jinrihoe’s view of death; reincarnation; myeongbu; the Ten Kings of the Afterworld; comparative research

Ⅰ. 서론

종교연구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측면에서 본다면, 죽음이라고 하는 현상이 인간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대단함을 감안하여, 죽음에 대한 종교연구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분야의 대순사상 연구는 매우 빈약하다. 지금까지 대순진리회의 죽음관 연구 또는 다른 종교 전통의 죽음관과 비교하는 연구논문의 수는 한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1) 이런 문제점을 바로 보면서, 이 글은 한국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죽음관을 비교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한국 불교를 지렛대로 삼아 대순진리회를 신앙하는 사람들의 인생관(특히 죽음과 관련한)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교 연구가 두 종교의 죽음관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넘어, 윤회(輪廻)와 명부(冥府), 시왕(十王) 등의 종교 개념을 더 깊게 파악하도록 만들어주고, 그 개념들의 수용과 변용 상황은 물론이요, 각각의 교리체계 속에서 그 개념들이 차지하는 위상까지도 살피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연구는 윤회, 명부, 시왕 각 개념의 ‘재서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종교 연구자들이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 관념, 또는 도교와 불교의 명부 관념은 다르다고 주장하듯이, 대순진리회의 윤회와 명부의 관념도 힌두교·불교·도교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각 개념을 독립적 신앙·사상 체계 속에서 재서술해야 할 것이다. 대순진리회의 윤회와 명부 관념의 ‘새로운’ 정의는 ‘윤회’와 ‘명부’의 기존 정의를 확장하는 데 공헌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프라이베거(Oliver Freiberger)가 제시한 비교 연구 방법을 사용하고자 한다.2) 이 연구 방법은 조너선 스미스(Jonathan Z. Smith)가 “The ‘End’ of Comparison: Redescription and Rectification”3)에서 제시한 방법을 약간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다. 프라이베거가 말하는 비교 연구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선정(selection), 2) 서술(description) 3) 병치(juxtaposition) 4) 재서술(redescription) 5) 개정과 이론 형성(rectification and theory formation).4)

이처럼 비교 연구는 선정 단계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죽음관을 형성하는 윤회와 명부 등의 개념들을 선택하고, 그 각각의 내용을 서술하는 과정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Ⅱ. 한국 불교의 죽음관

1. 불교 윤회 관념

비교 연구에 있어서 병치, 즉 비교 대상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는 과정은 핵심에 속한다.5) 그러나 그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각 개념의 자세한 설명과 분석이 필요하다. 우선 불교의 죽음관, 정확하게는 한국 불교 죽음관의 핵심인 윤회 사상부터 먼저 고찰하려는 까닭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다. 그러나 불교의 종교적 세계에서는, 어떤 존재가 죽은 이후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지6) 않는다. 그 대신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경험을 겪는다. 그 이유는 불교의 죽음관이 고대 인도의 사상인 윤회(輪廻, saṃsāra)를 바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윤회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행한 행위, 즉 업(業)7)에 따라 내세에서 행복하거나 불행한 상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관념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涅槃, nirvāṇa)의8) 경지에 이르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다.

초기불교 경전은 중생의 존재를 오취(五趣, gati), 즉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인간(人間), 천상(天上) 등으로 설명하였다. 중국이나 한국의 대승불교에서는 이 다섯에 아수라(阿修羅)를 더하여 일반적으로 육도(六道)라고 한다.9) 사람은 현생에서 쌓은 선업(善業)에 따라 다음 생에는 보다 나은 세계에 태어난다. 현생에서 선업보다 악업(惡業)을 더 많이 쌓았다면 다음 생에는 더 고통스러운 세계에 태어난다.10) 이러한 관념을 육도윤회(六道輪廻) 사상이라고 한다.

대승불교 사상에 따르면 육도윤회 과정에서 각 존재는 네 종류의 존재 변화, 소위 사유(四有)를 거치게 된다. 첫 번째는 생유(生有)라고 하며, 잉태되는 순간을 말한다. 두 번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의 일생, 즉 본유(本有)이다. 세 번째는 죽음의 찰나인 사유(死有)이며, 네 번째는 죽을 때부터 새로운 생유에 이르기까지의 순간인 중유(中有, antarābhava)라고 한다.11) 여기에서 중유 관념에 좀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음(中陰)이라고도 하는 중유 개념에 대한 사상적 근거는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중음경(中陰經)』,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또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문헌들은 중유(중음)의 기간에 대해서 다양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중에서 중유가 칠칠일(七七日=49일) 기간이라는 설은 나중에 보편화된 것이다.

칠칠일이라는 설은 부파불교 논서인 『대비바사론』에 처음으로 등장한다.12) 이 경전의 제70권은 “중유의 지위에서 머무르는 동안이 얼마나 되는가?”라는13) 질문으로 시작하며, 이어서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답이 제시된다. 그 가운데 칠칠일 설은 다음과 같다.

설마달다(設摩達多) 존자는 ‘중유는 극히 많아도 칠칠일(七七日) 동안 머무르는 것이니, 49일까지는 반드시 생을 받기 때문이다’라고 한다.14)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칠칠일 설은 중음 기간이 길어도 49일을 넘지 않고 그동안 중음의 존재가 반드시 인연을 만나 새로운 생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중유 자체에 대한 설명은 『대비바사론』보다 후대에 저술된, 이미 위에서 언급한 또 다른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경전들에는 중유 상태에 머무르는 기간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 가운데 칠일설이 대표적이다. 그 경전들은 망자의 혼이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까지의 시간이 최소 7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동안 중유의 중생이 인연을 만나지 못하면, 그 기간은 7일씩 연장되어 최대한 49일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그 기간 안에 중유의 존재는 반드시 인연을 만나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유가사지론』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 중간 몸으로서 만약 나는 인연을 얻지 못하면 7일을 한도로 하여 머무르되 태어날 인연을 얻게 되리라고 결정된 것은 아니다. 만약 7일을 한도로 하여 인연을 얻지 못하면 죽었다가 다시 나서 7일을 한도로 하여 머무른다. 이렇게 차츰차츰 인연을 얻지 못하면 칠칠일(49일)까지 머무르게 되는데 이로부터 이후로는 틀림없이 인연을 얻는다.15)

중유 상태에 있는 존재의 형상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된 『대비바사론』 제70권이나16) 『구사론』17) 등에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내용들에 따르면 중유 존재의 형상은 그가 쌓았던 업보(業報)로 결정되는 미래 본유의 모습과 동일하며, 그의 수량(壽量)은 오륙 세의 어린아이와 같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중음경』에 의하면 “이 중음들은 모습이 너무 미세하여 오직 부처인 세존만 볼 수 있다”고 한다.18) 어떻게든 이 경전들은 중유에 머무르는 존재의 정체성이 미래의 본유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대 동아시아 대승불교에서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과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 등과 같은 경전들의 등장에 따라 49일설이 구체화되면서, 49재(四十九齋)와 같은 불교의 죽음의례가 만들어지고 중유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도 변모되었다.

『지장보살본원경』에 따르면 죽은 뒤 49일의 기간 동안, 망자의 친척들이 망자 구제를 간절히 바라고 그를 위한 공덕을 쌓으면, 망자는 악도(惡道)를 피하고 좋은 세계에서 태어난다고 한다.19) 이렇게 보면 사람이 죽은 후에도, 즉 망자는 중음 기간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산 자들의 세계에서 친척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중음에 머무르는 동안 망자의 내세는 타력(他力)의 도움을 받아 변할 수도 있다고 본다.20)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망자 친척의 도움 외에도, 망자가 더 나은 세계에서 윤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격들도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보살이다.21) 동아시아의 49재 전통에서는 지장보살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는 모든 중생이 해탈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로서 죽은 사람이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구원해주고자 한다.22) 그 역할은 49재와 같은 의례에서 잘 표현된다. 49재 때 망자의 가족들은 지장보살에게 기도를 올리고 이를 통해 그의 가피(加被)를 빌면 망자가 더 나은 존재로 환생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초기불교와 달리 동아시아 대승불교 전통에서 망자는 자신이 지은 업뿐만 아니라 보살과 친척들의 타력 도움도 윤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49재와 같은 불교의 죽음의례에 있어서는 중유 관념만이 아니라 명부·시왕 관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 절에서 이를 살펴보자.

2. 불교 명부·시왕 관념

불교 지옥관의 기원은 인도 브라만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옥(地獄)이란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나라카(Naraka, 那落加)’라고 하며, 악마, 마술사, 살인자들이 사는 빛이 없는 어두운 지하 세계를 의미하는데,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였다.23) 지옥 개념은 일찍부터 불교에 수용되어, 이미 초기 팔리어 경전인 『법구경(法句經)』에도 “악을 행한 사람은 지옥으로 들어가며,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표현으로 나타난다.24)

초기 경전 가운데 지옥과 관련된 내용은 『장아함경(長阿含經)』이나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아함경』에 속하는 『세기경(世紀經)』에는 소위 「지옥품(地獄品)」이란 부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전적으로 지옥과 관련된 내용, 즉 지옥의 위치, 종류, 명칭, 각 지옥의 형벌과 고통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8대 지옥과 16소지옥, 그리고 10지옥설이 제시되어 있다.25) 그 후 불교에서는 다양한 지옥 관념이 많은 경전을 통해 발달하여 후대에 전달되었다.

지옥사상이 불교에 도입됨에 따라, 지옥의 종류나 형벌 등과 함께 지옥에서 중생을 심판하는 장면에 관한 내용과 그 업무를 담당하는 염라왕(閻羅王, Yamarāja), 그리고 그의 궁전(宮殿) 등과 관련된 서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염라왕은 역시 고대 브라만교에서 비롯된 신격이다. 염라왕은 본래 야마(Yama)라고 불렸다. 그는 최초로 죽은 사람으로서 죽음의 길을 개척하여 사계(死界)의 왕자가 되었다. 또한 그 죽음 세계는 천국과 같은 쾌락의 세계로 이 지상에 위치하는 여러 신들과 조상령(祖上靈) 등이 거주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거주하는 자 가운데 제식(祭式)을 지키지 않고 태만한 자는 다시 죽어 타계(他界)에서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악한 사람들은 삼타계(三他界)의 밑으로 떨어진다고 하였는데, 그곳이 나중에 지옥의 관념으로 변화하였다.26)

나아가 야마의 성격도 변모되었다. 즉 후기 베다(Veda) 문헌에서는 야마가 인간의 선악 행위를 심판하는 신격으로서 사후의 심판자가 되었으며, 야마가 관장하는 사후의 쾌락 세계는 사후 심판을 하는 장소로 그 관념이 바뀌었다. 그 후 야마, 사후세계 및 사후 심판 등의 관념은 불교 체계에 수용되었고, 야마는 한편으로 하늘의 야마천(野摩天)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옥계의 주재자인 염라왕이 되었다.27)

염라왕에 대한 신앙은 추후 중국에서 명부에 있는 중생들을 심판하는 10명의 왕에 대한 신앙, 즉 명부시왕(冥府十王)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중국 명부시왕 신앙의 기원은 후한대(後漢代)까지 올라간다. 고대 중국 도교에서는 동악(東嶽)인 태산(泰山)을 혼령이 머무르는 곳으로 여겼는데 그곳에는 인간의 사명(司命)을 다스리는 신인 태산부군(泰山府君)이 머무르고 있다고 믿었다. 남북조시대에는 불교의 지옥사상과 함께 염라왕에 대한 신앙도 전개되었다. 이즈음에 태산부군 신앙은 명부와 관련지어졌고 염라왕 개념과 결합했다. 그리고 시왕들 중에 염라왕은 다섯 번째, 태산부군은 일곱 번째 왕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명부(冥府)’라고 불리게 되었다. 불교의 명부시왕 신앙은 이것을 바탕으로 발달하였다.28)

명부시왕 신앙에서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져 있는 중생들의 구원자이며, 시왕들은 중생들을 심판하는 역할을 맡은 신들이다. 중국 지옥사상과 불교 지장신앙의 결합은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 『예수시왕생칠경』의 편찬을 통해서 더욱 구체화되고 널리 신앙되었다.29) 일반적으로 『시왕경』이라고 하는 이 경전은 고려 때 한국에 도입되었고, 이 경전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앙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불교의 죽음관과 죽음의례의 대중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30)

『시왕경』은 10대 지옥설을 제시하며, 각 지옥의 명칭과 각 지옥을 다스리는 왕을 소개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지옥은 도산지옥(刀山地獄)이며, 왕의 이름은 진광대왕(秦廣大王)이다. 두 번째 지옥은 화탕지옥(火湯地獄)이며, 왕의 이름은 초강대왕(初江大王)이다. 세 번째 지옥은 한빙지옥(寒氷地獄)이며, 왕은 송제대왕(宋帝大王)이다. 네 번째 지옥은 검수지옥(劍樹地獄)이며, 왕의 이름은 오관대왕(五官大王)이다. 다섯 번째 지옥은 발설지옥(拔舌地獄)이며, 왕은 염라대왕(閻羅大王)이다. 여섯 번째 지옥은 독사지옥(毒蛇地獄)이며, 왕의 명칭은 변성대왕(變成大王)이다. 일곱 번째 지옥은 거해지옥(鋸骸地獄)이며, 왕의 이름은 태산대왕(泰山大王)이다. 여덟 번째 지옥은 철상지옥(鐵床地獄)이며, 왕은 평등대왕(平等大王)이다. 아홉 번째 지옥은 풍도지옥(風塗地獄)이며, 왕의 이름은 도시대왕(都市大王)이다. 그리고 열 번째 지옥은 흑암지옥(黑闇地獄)이며, 이 지옥을 다스리는 왕은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이다.31)

『시왕경』에 따르면 죽은 후 중음 동안 명부를 다스리는 시왕에게 생전의 지은 행위에 대해 10번 재판을 받는데, 그때 망자의 살아남은 가족이 시왕에게 재를 올려 망자의 명복을 빌 수 있다고 한다. 진광왕은 첫 번째 칠일에 망자를 심판하며, 두 번째 칠일에는 초강왕, 세 번째 칠일에는 송제왕, 네 번째 칠일에는 오관왕이 망자의 행동을 심판한다. 그 다음으로는 망자가 다섯 번째 칠일에는 염라왕, 여섯 번째 칠일에는 변성왕, 일곱 번째 칠일에는 태산왕을 차례로 만난다. 그 후 죽은 지 100일 뒤에는 평등왕, 1년 뒤에는 도시왕, 3년째 되는 날에는 오도전륜대왕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날부터 새로운 생을 얻을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49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명부시왕 신앙에 따라 본래의 칠칠재가 백일재(百日齋)와 일주기(一週忌), 그리고 삼회기(三回忌)까지 더하여 진행되었다. 이들은 합쳐서 시왕재(十王齋)라는 의례를 이룬다.32) 타이저(Stephen F. Teiser)의 주장에 따르면 시왕재 의례의 마지막 3가지 재는 중국의 토착적 의식 풍습, 즉 유교 제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33) 이렇게 보면 명부시왕 신앙과 그것을 바탕으로 형성된 의례는 단순히 불교보다 인도 브라만교를 비롯해, 불교·도교·유교 등 다양한 문화권과 다양한 신앙체계를 비롯한 요소들의 결합으로 보아야 한다. 그 신앙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한국인의 죽음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인의 인식에도 깊게 뿌리를 내렸다.34) 또한 명부와 시왕 관념은 대순진리회 세계관에도 수용되었다. 이것은 다음 장에 살펴보도록 하자.

Ⅲ. 대순진리회의 죽음관

1. 대순진리회의 윤회 관념

물론 대순진리회의 죽음관은 유불선(儒佛仙) 3대 종교의 요소들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대순진리회의 죽음관을 단순히 기존 종교 죽음관의 합으로만 주장할 수는 없으며, 독립적인 사상 체계로 다룰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순진리회 죽음관 형성 과정에서, 기존 종교 요소들의 본래 의미가 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요소들의 위상도 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윤회나 명부·시왕의 경우가 그렇다. 본 절에서는 대순진리회의 윤회 관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그러나 이 부분에 들어가기 전에 대순진리회의 죽음 관념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앞 장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불교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과 비슷하게, 대순진리회 세계에서도 죽음은 일반적으로 끝이 아니다. 대순진리회의 근본 경전인 『전경(典經)』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타난다.

사람에게 혼과 백이 있나니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후손들의 제사를 받다가 사대(四代)를 넘긴 후로 영도 되고 선도 되니라. 백은 땅으로 돌아가서 사대가 지나면 귀가 되니라.35)

이처럼 대순진리회의 죽음 관념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정기(精氣) 관념과 연결된다고 파악할 수 있다. 제시된 구절은 인간 존재가 혼(魂)과 백(魄)으로 구성된다고 전하는데, 사람이 사망하면 혼과 백은 갈라져, 혼은 하늘로 올라가 신(神)이 되고, 백은 땅으로 들어가 귀(鬼)가 된다고 한다. 하늘로 올라간 혼은 4대가 지나가는 동안 후손들이 지내는 제사를 받다가 영(靈)이나 선(仙)과 같은 존재로 변할 수도 있다고 한다.36) 이렇게 인간은 죽은 다음에 내세에서도 한정된 기간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관에 비해 대순진리회는 죽음이 존재의 완전한 끝으로 보는 관념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관념은 개벽시대의 대심판설과 연결된다. 설명하자면 개벽시대 때는 천상계에 있는 구천상제로서의 증산이 이 세상에 다시 출좌하여 만물을 심판하겠다고 한다. 그때는 참된 자가 큰 복을 얻지만, 그렇지 않고 거짓된 자는 영원히 멸망한다고 전한다.37) 이러한 죽음은 끝인 죽음이며, 개인 차원을 넘어 가족과 가문 전체로 확대되는 공동체적 죽음이다.38)

위와 같이 대순진리회 세계관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죽음이 존재한다고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죽음 관념들에 더하여 환생, 즉 윤회도 인정되고 있다. 그 내용은 『전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날 금곡이 상제를 정중하게 시좌하더니 상제께 저의 일을 말씀하여주시기를 청원하였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그대는 전생이 월광대사(月光大師)인바 그 후신으로서 대원사에 오게 되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이 절을 중수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리니 九十세가 넘어서 입적하리라」 하시니라.39)

이처럼 대순진리회에서는 윤회가 인정된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윤회의 성격은 불교와 다르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윤회가 인정되지만, 그것은 불교의 윤회와 같이 사후 49일 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앞에서 제시했듯이, 대순진리회 세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4대, 즉 약 100년 동안 하늘에서 사령(死靈)으로 머물러야 하는 것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그 기간이 지나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윤회가 가능하다.40)

그러나 대순진리회의 세계관에 따르면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대순진리회는 사람이 출생하려면 천상에 있는 선령신(先靈神)들의 60년 적공(積功)이 필요하다고 한다.41) 그런데 그 적공으로도 인간으로 출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은 『전경』의 내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육십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내되 그렇게 공을 드려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같이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 하셨도다.42)

대순진리회의 세계관에서 보면,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선령신들의 도움, 즉 그들의 적공은 필수이다. 그 공덕에 힘입을 경우에만 인간으로 환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43)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후천 개벽 사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후천 개벽 시대를 맞이하여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 전체까지 살리고 하늘의 쓰임에 참여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계속 수행을 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선령신들의 60년 적공은 단지 자손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손을 수행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44) 이를 통해 대순사상에 있어서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과 그 과정에 있어서 선령신 역할의 중요성은 다시 확인된다.

대순진리회의 죽음관에 따르면 위와 같은 방법 외에 또 다른 경우에 인간으로 환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특별한 경우는 두 가지의 사례가 있다. 첫째, 인계에서 행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고 인계에서 태어나는 것이며, 둘째, 신계에서 어떤 잘못으로 징벌을 받아 인계에서 태어나는 것이다.45)

여기서는 특히 두 번째 사례가 흥미롭다. 이 사례에 의하면 인간으로 윤회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 신계에서 잘못한 것에 대한 징벌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런 경우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곧 어떤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불교의 윤회 관념과 구별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고자 하는데, 그전에 대순진리회의 명부와 시왕 관념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2. 대순진리회 명부·시왕 관념

대순진리회의 명부 및 시왕 관념의 내용은 불교와 다르다. 우선 시왕 관념을 살펴보면 그 신격들은 대순진리회의 영대(靈臺)에 모셔진 15신위(神位)에 등장한다.46) 또한 15신위 중에 망자의 혼을 인도해주는 명부사자(冥府使者)의 신위도 등장한다.47) 명부사자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혼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48) 그 하늘은 다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거기서는 거주하는 신격들 가운데는 명부시왕들도 있다. 만약에 사람이 사망하고 사후에 시왕들에게 심판을 받는다면 그것은 불교 명부처럼 어두운 지하의 모처에 자리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늘 어딘가에 일어나는 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시왕들이 거주하는 곳은 불교의 명부와 다르지만, 그것들의 역할, 즉 망자의 혼을 심판하는 것은 비슷하다. 다만 차선근이 지적하듯이 대순진리회의 경우는 인간이 살아생전에 지은 죄에 대한 심판이 명부시왕에게만 아니라 대순진리회에서 절대 신으로 모셔진 구천상제(九天上帝) 강증산에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49) 이것 역시 『전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부녀를 범하는 것은 천지의 근원을 어긋침이니 죄가 워낙 크므로 내가 관여치 않노라.50)

죄는 남의 천륜을 끊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나니 최 익현이 고종(高宗) 부자의 천륜을 끊었으므로 죽어서 나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볼지어다.51)

대순진리회에서는 망자의 영혼이 심판을 받는 관념이 나타나며, 불교에서 명부에 속하는 신격들, 즉 시왕과 명부사자 등이 영대에 모셔지기도 한다. 이런 관념은 본래 한국에 잘 알려진 명부와 시왕신앙을 수용하여 대순진리회 고유 사유인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종교의례에 따라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대순진리회에는 명부와 관련된 또 다른 교설이 있다. 이는 소위 명부공사(冥府公事)에 관한 교설이다. 명부공사는 증산이 설한 삼계공사(三界公事)52) 가운데 하나이며, 삼계공사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전경』에서는 명부공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이니라」고 김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53)

상제께서 가라사대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 일이 해결되느니라.」54)

이 구절들은 삼계공사와 명부공사란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다시 말하자면 선천인 현재는 상극으로 인해 천지인의 삼계가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이며,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상생(相生)55)의 도(道)를 세우고, 상극이 만들어 낸 원한, 즉 원(冤)을 신도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 방법은 도수를 굳건히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조화가 이루어지면, 인사(人事)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원한을 풀고[해원] 상생을 이루도록 만드는 처결은 곧 후천선경(後天仙境)을 열 수 있는 기반이라 한다.

또한 위에 제시한 구절들은 삼계공사를 시작하면서 착란에 빠진 명부를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명부공사는 삼계공사의 시작점으로 파악된다. 다시 말하자면 혼란에 빠져있는 세상 고치기는 착란에 빠진 명부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서 대순진리회의 명부 관념이 불교의 명부 관념보다 훨씬 광의적이며,56) 그 중요성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불교 명부신앙은 각 영혼의 개인적인 심판과 구원에 집중하는 것인 반면, 대순사상의 명부공사는 명부의 착란을 정리하는 것에 집중하며, 개인 차원을 넘어 모든 인간을 심판하고 구원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 경우에만 삼계공사가 완성될 수 있으며, 대순진리회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천지공사(天地公事)의 한 부분인 명부공사는 대순진리회의 궁극적인 목적인 후천선경을 이루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명부공사 교설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명부공사의 ‘명부’는 불교에서 말한 명부와 다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57) 그 이유는 바로 『전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다.

상제께서 김형렬의 집에서 그의 시종을 받아 명부공사를 행하시니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조선명부(朝鮮冥府)를 전 명숙(全明淑)으로, 청국명부(淸國冥府)를 김 일부(金一夫)로, 일본명부(日本冥府)를 최 수운(崔水雲)으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곧 「하룻밤 사이에 대세가 돌려 잡히리라」고 말씀을 잇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58)

이에 따르면 명부란 곳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각 명부는 다른 인물을 통해 주도되고 있다. 즉 한국의 명부를 전명숙, 중국의 명부를 김일부, 그리고 일본의 명부를 최수운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김성호는 증산이 각 명부의 신명을 새롭게 임명한 이유는 선천에서 명부를 주장하던 신명이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여 명부의 착란으로 인해 삼계도 혼란 상태에 초래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59) 물론 그들을 각 명부의 주장으로 선택한 것도 임의로 된 것이 아니다. 즉 그들을 선택한 것은 해원과 상생의 법리로 하는 천지공사 사상에 있어서 그들이 본 사상에 가장 부합되는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기 때문이고, 그들을 명부의 주장으로 임명함으로써 명부를 상생의 국면으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었다.60) 본 개념은 불교의 명부 개념과 달리 완전히 새롭고 색다른 명부의 관념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개념이 지금까지 여러 세계관을 통해 제시되어왔던 기존 명부 관념의 재서술 결과이며, 이 속에는 새롭게 제시된 요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순진리회의 명부 관념은 다른 종교들의 명부 관념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Ⅳ. 한국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죽음관 비교

본 장에서는 프라이베거가 비교 연구의 핵심 과정인 병치, 즉 비교 대상 개념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히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Ⅱ장과 Ⅲ장에 제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될 것인데, 우선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윤회 관념부터 비교해 본다.

불교 죽음관에 있어서는 윤회가 가장 중요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윤회설은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이며, 불교 세계관에서는 각 존재가 윤회의 원리에 따라 지속적으로 환생한다. 그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 즉 윤회에서 해탈하여 성불하는 것은 불교의 최종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불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그것에 있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불교에서는 사람이 현생에 죄를 짓지 않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선업을 쌓으면 인생을 마친 다음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스스로 선행하는 삶에 힘쓰는 것은 곧 인간으로 환생하는 결정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불교 교파의 공통적인 것이다. 그러나 Ⅱ장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한국 등 동아시아의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지장보살과 같은 신격이나 망자의 유족들도 그가 환생하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죽은 날부터 다시 태어나는 날까지는 중음 상태에 머무르는데 그 기간은 49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유족들이 망자를 위해 천도재(薦度齋)를 올리고 불·보살들에게 기도하고 그 공덕으로 망자가 더 좋은 세계에서 환생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대승불교의 윤회설에 있어서 신들의 역할뿐만 아니라 망자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대승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윤회사상에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본다.

앞 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순사상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은 윤회할 수 있도록 현재 천상계에 있는 선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즉 사망한 사람은 나중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선령신이 그를 위해 60년 동안 적공해야 한다. 망자는 그 적공에 힘입을 때 다시 사람으로 환생이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대순사상에 나타나는 윤회는 대개 자력(自力)보다 타력(他力)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승불교 사상에서도 49재를 행하는 것과 그것을 통해 불·보살의 힘을 빌리는 것, 그리고 가족이 쌓은 공덕에 힘입는 것이 타력의 범위에 속한다. 물론 불교에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은 살아생전에 지은 업이 그의 윤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신들의 힘이나 가족의 행동도 그 윤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천도재는 그것의 좋은 예이다.

결론적으로 두 종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여러 가지 신들, 또는 조상이나 가족의 공덕에 의지해야 한다. 다만 그 중요성이 다르다. 왜냐하면 대순사상의 경우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은 선령신의 적공에 달린 것이나, 대승불교의 경우는 타력이 사람의 윤회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으로 환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윤회 관념 사이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 수행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다른 중생들을 돕는 것이다. 즉 두 종교에서는 인간으로 다시 환생하기를 추구하는 것은 곧 수행을 하기 위함이며, 긍정적으로 남들에게 돕기 위한 것이다. 한편으로 불교에서는 성불의 경지를 이르는 것에 있어서 사람이 최적인 조건을 갖고 있으므로 수행을 통해 다른 존재보다 그 경지에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성불, 즉 깨달음의 경지를 이르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서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대승불교 수행의 이상인 ‘자리이타(自利利他)’ 개념, 즉 ‘자신을 이롭게 하면서 타인들도 이롭게 하는’ 개념을 통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대순사상의 경우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을 추구하는 것은 곧 이 세상 인간으로서의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며, 이 수행을 통해서 대순사상에서의 최종적 경지인 도통진경(道通眞境)에 도달할 수 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조상들을 포함된 전체 가문도 구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사람으로서의 수행을 통해 후천 개벽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결국 두 종교에 있어서 인간으로 윤회하는 것과 그 뒤를 이어 발생하게 되는 일들은 개인적인 차원보다는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유사점으로는 두 종교의 죽음관에 있어서 사람이 죽은 후 유족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Ⅱ장에서 지적하듯이 초기불교의 경우는 사람이 죽은 직후 바로 재생(再生)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불교의 경우는 망자가 사망한 후 49일째까지 중음 상태에 머무르면서 유족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순사상의 경우도 인간인 사망하면 유족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 기간이 4대, 즉 약 100년까지 이어진다. 여기서는 그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만큼은 차이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그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이 차이 나는 이유는, 두 종교가 서로 다른 죽음관·영혼관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 세계관의 윤회 관념의 차이점에 집중하자.

대순진리회의 죽음관에 의하면 두 가지의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이미 앞에서 지적하였다. 하나는 인계에서 행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신계에서 어떤 잘못으로 징벌을 받아 인계에서 환생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특히 두 번째의 경우가 불교의 윤회 관념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이 곧 신계에서 어떤 죄를 지은 결과이며, 좋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본래 불교 윤회 관념의 경우는 신계에서 악업을 짓고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일어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이를 통해서 대순사상의 몇 가지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대순진리회 세계관에서 선천 세상에서는 신계가 인계보다 우위에 있다. 둘째,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존 종교의 윤회 관념을 기준으로 볼 때, 이러한 윤회 관념은 곧 그 관념을 다른 세계관에 적용하기 위해 변용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두 종교의 윤회설에 관해서 차이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완전한 끝인 죽음에 대한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 차원에서 존재의 끝인 죽음과 같은 관념이 없다. 그저 해탈은 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Ⅲ장에서 제시하였듯이 대순사상에서는 인간의 완전한 소멸, 즉 끝인 죽음이 존재한다. 이 죽음은 상제의 대심판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불교와 대순 죽음관에 있어서 명부·시왕 관념도 공통적이다. 그러나 두 관념은 같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두 개념의 경우는 이름과 죄의 심판, 그리고 십대왕이 존재하는 것 등과 같은 내용이 공통적이다. 하지만 구별되는 점들도 많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대순진리회에서 시왕이란 신격이 존재하면서 그것들이 하는 역할, 즉 망자를 심판하는 역할은 불교 명부시왕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들이 거주하는 곳의 위치는 전혀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대순사상에 나타나는 시왕들은 하늘과 땅의 천지 신명을 봉안한 영대에 모셔져 있다. 따라서 대순사상에 나타나는 시왕에 대한 개념은 불교와 다르며, 오히려 불교보다 고대 브라만교에서 나타나는 관념에 가깝다. 나아가 영혼의 심판 일부는 구천상제 증산에게 있다는 점도 불교보다는 고대 인도의 사상과 유사하다. 이를 잠시 살피자면, Ⅱ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브라만교의 경우도 죽음의 세계는 천국과 같이 지상에 존재한다고 하며, 여러 신들과 조상 영들이 거주하는 쾌락의 세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거주하는 신령들은 잘못된 행동으로 징벌을 받을 수도 있으며, 이 징벌은 다시 죽어 타계에서 환생하는 것이다. 후대에 이르러 그 쾌락 세계의 성격도 인간이 심판을 받는 세계로 변모되고, 심판의 업무는 그 세계의 절대 신인 야마, 즉 염라왕이 맡았다고 한다. 대순진리회 세계관의 경우는 인간에 대한 심판의 업무가 천상에 거주하는 염라왕을 비롯한 십대왕들에게도 있지만, 대순진리회의 절대 신인 구천상제에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순진리회 망자의 심판 관념의 성격은 고대 인도 개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대순진리회에서 신계에서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사람으로 환생하는 개념도 고대 인도 사람들의 세계관과 유사한 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대순사상에 나타나는 명부와 관련된 교설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그 이유는 바로 명부공사에 있다. 명부공사에서 제시된 명부의 관념은 고대 인도든, 도교 또는 불교든, 다른 세계관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 형성된 또 다른 관념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명부공사에 제시된 명부는 하나가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등 각 지역에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그 명부를 지배하는 신격이 염라대왕을 비롯한 십대왕들이 아니라 전명숙, 김일부, 그리고 최수운 등과 같이 실제로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증산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으로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명부에 원이 쌓이지 않도록 바르게 통치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 세계에서 그들이 명부를 담당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침내, 대순진리회 교리체계에서 명부가 차지하는 위상은, 불교의 교리체계에서 명부신앙이 차지하는 위상보다 훨씬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후천선경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며, 모든 인간의 심판과 구원하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본 장에서는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죽음관, 즉 두 종교의 죽음관에서 나타나는 윤회와 명부, 시왕 개념들을 비교해 보았다. 이러한 비교 작업을 통해서 각 개념에 있어서 유사점들이 있는 것도 밝혔지만 차이점도 많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각 개념의 근원과 명칭이 비슷하지만, 그 각 개념을 같은 것으로 파악하면 안 된다. 각 개념은 비슷한 명칭과 근원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내용을 갖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대순진리회의 윤회와 명부·시왕 관념은 독립적인 사상 체계 맥락에서 새로운 윤회, 새로운 명부, 새로운 시왕 관념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프라이버거가 사용한 용어로 말하자면 그 관념들은 ‘재서술’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윤회, 불교의 명부나 시왕과는 구분되도록 하여, ‘대순진리회 윤회’, ‘대순진리회 명부·시왕’과 같은 새롭고 독립적 개념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각 종교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의 형성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이론은 종교의 더 큰 이론에 통합될 수도 있다.61)

Ⅴ. 결론

본 연구에서는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죽음관, 즉 두 종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윤회와 명부 사상을 비교 고찰해 보았다. 시기적으로 보면 윤회와 명부 관념은 대순사상이 형성되기 전 이미 한국에 잘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증산이 이 두 개념을 대순사상에 수용한 이유는 그것들이 한국 사회와 한국 사람들이 상상하는 죽음관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두 관념이 대순사상 속에서 원래 그대로의 형태나 모습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윤회 개념은 많은 비슷한 점들을 가지기도 하지만, 윤회의 기간, 또는 윤회 과정에 있어서 타력의 중요성과 관련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명부·시왕 관념의 경우는 비슷한 점들보다 차이점들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순사상에서는 불교처럼 시왕이 망자를 심판하는 것과 비슷한 교설도 있기는 하지만, 대순진리회 교리체계 속에서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위 ‘명부공사’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교설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각 전통에서 나타나는 윤회와 명부·시왕 관념들은 같은 개념과 범주를 갖는 것으로 파악할 수 없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대순진리회 세계 속에서의 윤회와 명부라는 두 용어는 대순진리회의 세계관 및 신앙과의 연계 속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이다. 그러므로 그 용어들은 대순사상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그 개념과 범주가 대순진리회 세계관의 맥락에 맞게 재서술되고 변모되었다. 그 결과 대순사상은 윤회와 명부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범주를 형성하여 제시하고 있다. 결국 대순사상에서 윤회와 명부는 한국 불교의 윤회와 명부 관념과 유사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념의 발명으로 보아야 한다. 즉 대순사상에서 제시된 윤회와 명부 관념은 불교와 구분되는 새로운 표상으로 간주해야 하며, 따라서 현재 사전에 등재된 윤회와 명부 해설 내용에 이 사실을 더 추가하여 새롭게 재기술할 필요가 있다.

Notes

1) 이 문제를 다룬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다: 고남식, 「대순진리회의 생사관 연구」, 『신종교연구』 23 (2010); 김성호, 「명부에 관한 고찰」, 『대순회보』 125 (2014); 차선근, 「대순진리회의 죽음관 연구서설」, 『종교연구』 76 (2016); 최명수, 「대순사상에 나타난 죽음관 연구」 (대진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3).

2) Oliver Freiberger, “Elements of a Comparative Methodology in the Study of Religion,” Religions 9:2 (2018).

3) Jonathan Z. Smith, “The ‘End’ of Comparison: Redescription and Rectification.” In Kimberly C. Patton and Benjamin C. Ray, eds. A Magic Still Dwells: Comparative Religion in the Postmodern Ag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0), pp.237-242.

4) 프라이버거는 1번부터 3번까지의 세 개의 작업들은 모든 비교 연구에 내재되어 있지만, 4번과 5번의 작업은 경우에 따라서 적용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Freiberger, op. cit., p.10.

5) Ibid., p.10.

6) 본 장의 다음으로 설명할 바와 같이 초기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직후 바로 재생(再生)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이나 한국 불교의 경우는 망자가 한정된 기간, 즉 길어도 49일 동안 유족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이 기간이 지나야 존재론적 변화를 겪는다.

7) 업(業)은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까르마(karma)’라고 했으며, ‘행위’라는 뜻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은 업의 세 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첫째는 ‘작용’을 의미한다. 둘째는 ‘법식을 갖춘다’란 의미로서 일정한 수속을 갖춘 업을 뜻한다. 그리고 셋째는 ‘과를 분별한다’는 의미이다. 즉 선악(善惡)의 행위는 그것에 상응하는 과보(果報)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또한 불교에서 업은 몸으로 짓는 업(身業), 입으로 짓는 업(口業),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업(意業)이 있는데 이를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정순일, 『인도불교사 : 그 사상적 이해』 (서울: 운주사, 2004), pp.286-287.

8) 일반적으로는 깨달음을 얻고 윤회에서 벗어난 것이 초기불교에서 열반, 대승불교에서 성불(成佛, buddhatva), 브라만교·힌두교에서 해탈(解脫, mokṣa) 등과 같은 표현으로 설명한다.

9) 같은 책, p.274.

10)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편), 『불교의 이해와 신행』 (서울: 조계종출판부, 2013), p.180.

11) 정순일, 앞의 책, p.275. 이와 반대 상좌부(上座部)에서는 존재의 세 가지의 변환 단계만을 인정하고 있다. 생유, 본유, 사유가 그것이다.

12) 구미래,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서울: 민족사, 2012), p.346.

13) 송성수(역),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70, 『한글대장경』 120 (서울: 동국역경원, 1999), p.450.

14) 같은 책, p.452.

15) 김명희(역), 『유가사지론』 권1, 『한글대장경』 110 (서울: 동국역경원, 1995), p.34.

16) 『阿毘達磨大毘婆沙論』 第70卷, 『大藏經』 26, p.530 참조.

17) 『阿毘達磨俱舍論』 第9卷, 『大藏經』 27, p.517 참조.

18) 『中陰經』 第1卷, 『大藏經』 13, p.556, “此中陰形極為微細, 唯佛, 世尊獨能覩見.”

19) 『地藏菩薩本願經』, 『大正藏』 13, p.784 참조.

20) 구미래는 49재와 같은 천도재(薦度齋)에서 구제의 대상인 존재는 복합적이지만, 크게 죽은 뒤 다음 인생이 결정되지 않은 중유의 존재와, 이미 업보의 심판을 받아 나쁜 세계에 머물고 있는 삼악도의 존재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구미래, 「사십구재의 의례기반과 지장신앙의 특성」, 『정토학연구』 15 (2011), p.115.

21) 보살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즉 불타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커다란 서원(誓願)을 세우고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수·관음·미륵, 또는 지장과 같은 ‘대보살’들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이념을 실천하는 신격으로 묘사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살은 깨달음에 있어서 아무리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고통을 받는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기 전까지는 성불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지장보살이 대표적으로 언급될 수 있다.

22) 『地藏菩薩本願經』, 『大正藏』 13, pp.777-779 참조.

23) 김정희, 『조선시대 지장시왕도 연구』 (서울: 일지사, 2004), p.22; 나라카는 한역하여 ‘나락가(那落加)’, 또는 ‘불락(不樂)’, ‘가압(可壓)’, ‘고기(苦器)’, ‘고구(苦具)’ 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장총, 『지장: I 경전과 문헌자료 연구』, 김진무 옮김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09), p.114.

24) 석지현(역), 『법구경』 (서울: 민족사, 2009), p.71.

25) 장총, 앞의 책, pp.122-123, pp.135-136; 『世紀經』 「地獄品」의 자세한 내용은 『大藏經』 17, p.964 참조.

26) 노현석, 「불교의 지옥고찰 : 정법염처경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85), p.12.

27) 김정희, 앞의 책, p.22.

28) 김태훈, 「죽음관을 통해 본 시왕신앙 : 불교와 도교를 중심으로」, 『한국종교』 33 (2009), pp.116-117.

29) 김정희, 앞의 책, p.55.

30) 한국의 명부시왕 신앙, 그 전개와 대중화에 대해서는 도미닉 루타나, 「한국지장신앙과 무속의 역동적 변용에 관한 연구 : 죽음의례를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19), pp.91-130 참조.

31) 『預修十王生七經』, 『卍續藏』 1, pp.777-781 참조.

32) 김정희, 앞의 책, pp.19-20.

33) 타이저는 죽은 후부터 100일, 1년, 그리고 3년이 지났을 때 올리는 불교의 재가 『시왕경』에서 나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행되는 데 대하여, 그 재들이 유교의 소상(小祥)과 대상(大祥) 기간과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확실히 유교적인 제사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Stephen F. Teiser, The Scripture on the Ten Kings and the Making of Purgatory in Medieval Chinese Buddhism (Honolulu: University of Hawai’s Press - Kuroda Institute, 1994), pp.24-25.

34) 명부시왕 신앙의 대중화에 있어서 신앙 관련 죽음의례만이 아니라 본 신앙과 그 실천 방법을 주장하는 불교 가사(歌辭)도 그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즉 <회심가(回心歌)>나 <별회심곡(別回心曲)>과 같은 가사들은 죽은 이후 지옥에 떨어져 시왕들에게 재판을 받은 과정이나 극락세계로 가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극락왕생의 주된 조건으로 공덕을 쌓아 선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였다. Boudewijn Walraven “Buddhist Accommodation and Appropriation and the Limits of Confucianization,” Journal of Korean Religions, 3:1 (2012), pp.109-111 참조; 그 가사들은 불교 신자들만 아니라 장례식을 참가하는 일반인들이나 무당들도 흔히 불렀다고 한다. Younghee Lee, “Hell and Other Karmic Consequences: A Buddhist Vernacular Song,” In Robert E. Buswell, Jr., ed. Religions of Korea in Practice,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 p.101.

35) 『전경』 13판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교법 1장 50절.

36) 차선근은 혼이든 신이든 선이든 그 모두의 본질은 영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살아 있을 때는 혼이 생령(生靈)이며, 죽은 후에는 혼이 백과 분리되고 하늘로 오른 다음 제사의 대상이 된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 혼을 사령(死靈)인 신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신(死靈)이 살아생전에 뛰어난 수행을 하고 공덕을 쌓았으면 선의 경지로 등극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 여전히 사령의 형태로 존재한다. 차선근, 「대순진리회의 죽음관 연구서설」, 『종교연구』 76 (2016), p.38.

37) 『전경』, 예시 30절, “상제께서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재제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 」.”

38) 차선근, 앞의 글, p.52.

39) 『전경』, 행록 2장 13절.

40) 차선근, 앞의 글, p.44.

41) 대순사상에 따르면 사람의 윤회하는 것에 있어서 조상신들의 적공은 곡 필요한 조건이지만, 생전에 사람이 스스로 행한 선한 행위와 공덕을 쌓는 것과 같은 요소들도 윤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42) 『전경』, 교법 2장 36절.

43) 차선근, 앞의 글, p.45.

44) 같은 글, p.46.

45) 같은 글, pp.46-47.

46) Gernot Prunner, “The Birthday of God: A Sacrificial Service of Chŭngsan’gyo,” Korea Journal 16:3 (1976), p.16.

47) lbid, p.17.

48) 차선근, 앞의 글, p.41.

49) 같은 글, p.42. 대순진리회에서는 또한 개벽시대의 심판 관념도 나타난다. 그때는 천상계에 있던 증산이 이 땅에 내려와 지상의 모든 생물을 심판하겠다고 한다. 그 심판에 따라 참된 자는 장생(長生)을 얻고 거짓된 자는 영원히 멸망하겠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같은 글, p.51 참조.

50) 『전경』, 교법 1장 51절.

51) 같은 책, 교법 3장 21절.

52) 삼계공사란 삼계, 즉 천계(天界)·지계(地界)·인계(人界)에서 쌓인 원한(怨恨)을 풀고 개벽을 여는 공사를 의미한다.

53) 『전경』, 공사 1장 3절.

54) 같은 책, 공사 1장 5절.

55) 일반적으로 상생이란 것은 ‘목화토금수’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돕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대순진리회 사상에서는 쌍방이 주고받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해석은 음과 양이 서로 돕는다는, 천지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고병철, 「대순진리회의 전개와 특징」, 『한국 종교교단 연구 Ⅱ』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p.200.

56) 김성호, 「명부에 관한 고찰」, 『대순회보』 125 (2014), p.110.

57) 차선근, 앞의 글, p.41.

58) 『전경』, 공사 1장 7절.

59) 김성호, 앞의 글, p.113.

60) 같은 글, pp.113-114 참조.

61) Freiberger, op. cit.,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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