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호남 도교의 진인대망론(眞人待望論)과 강증산의 탄강(誕降)

정재서 1 , *
Jae-seo Jung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1Professor Emeritus, Ewha Woman’s University

© Copyright 2022,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Apr 25, 2022 ; Revised: May 30, 2022 ; Accepted: Jun 08, 2022

Published Online: Jun 30, 2022

국문요약

본고에서는 도교의 역동적, 실천적 본질이 강증산 탄강의 메시아적 의미와 여하(如何)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호남 도교의 진인대망론(眞人待望論)을 통해 논의해보았다. 이를 위해 우선 도교의 사회변혁 의식이 중국과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구현된 양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강증산을 위요(圍繞)한 호남 도교의 정황을 짚어 본 후 조선 말기의 진인대망론이 호남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강증산 탄강을 예비하게 되었는지 그 경과를 분석하였다. 논의의 결과 도교의 사회변혁 의식이 중국의 경우 초기 신선가의 반체제적 활동, 오두미도(五斗米道), 태평도(太平道) 등의 유토피아 건설 운동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본래 득도자를 의미했던 진인이 후대에는 구세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鸞郎碑序)」에서 역동적, 실천적 본질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후일 단학파(丹學派) 도인과 불승(佛僧)의 의병 투쟁으로 계승되었다. 아울러 고려 이후 도참설이 흥기하면서 ‘목자득국설(木子得國說)’이 출현하였고 뒤이어 조선조에는 『정감록』의 진인대망론이 대두하였음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호남 도교의 정황은 고대의 경우 최치원과 도선(道詵)의 영향을 염두에 둘 수 있으며 강증산의 배후에 남궁두(南宮斗), 권극중(權克中) 등의 도맥이 얽혀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온양 정씨 단학파 도인들과 장흥 고씨, 나주 임씨 등 호남 망족(望族) 및 권극중과의 긴밀한 교유 관계도 이번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마지막으로 조선 말기 호남의 진인대망론과 강증산의 탄강을 다룸에 있어 먼저 호남 도교의 강렬한 사회변혁 의식에 주목하였고 이것이 『정감록』을 이어 동학, 남학 등을 통해 표출된 것을 정렴(鄭磏)의 「궁을가」, 『전경』의 어록 등을 통해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강증산 탄강의 메시아적 의의가 수백 년 장구한 기간 이상적 미래를 갈구해왔던 민중적 소망의 기반 위에 놓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whether the dynamic and practical nature of Daoism has a significant relationship with the messianic figure Kang Jeungsan (姜甑山) via Honam (湖南) Daoism’s Jinindaemangron (眞人待望論, discourse on awaiting an immortal). To this end, the historical implementation of Daoism’s social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 in China and Korea is explored, and then the circumstances of Honam Daoism, in particular, are considered. Following that, analysis turns to the ‘Jinindaemangr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developed in Honam. As a result of the discussion, Daoism’s social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 was expressed in China through the anti-establishment activities of the early Daoist groups such as Wudoumidao (五斗米道) and Taipingdao (太平道), movements that sought to build utopias. Throughout this process, the term, zhenren (眞人, ‘jinin’ in Korean), that originally meant ‘master,’ was transformed into the idea of a future savior. In the case of Korea, the dynamic and practical nature of Daoism can be found in the preface of Nanrang tombstone (鸞郎碑序) written by Choi Chi-won (崔致遠) which was later inherited by the Danhak sect (丹學派) practitioners who struggled against Buddhist monastics. Additionally, examined is the Docham theory of geomancy (圖讖說) that rose after Goryeo, the prophecy of ‘Mokjadeuksul (木子得國說 a Lee clansman shall attain the kingdom)’ that appeared thereafter, and the Prophecies of Jeong Gam (鄭鑑錄)’s ‘Jinindaemangron’ in the Joseon Dynasty. Next, the circumstances of Honam Daoism can be considered with regards ti Choi Chi-won and Doseon (道詵) in ancient times, and it can be confirmed that Nam Gung-du (南宮斗) and Kwon Geuk-jung (權克中) were entangled behind Kang Jeungsan. The close relationship among the Daoist Jeong family of Onyang (溫陽鄭氏), the Koh family of Jangheung (長興 高氏), and Kwon Geuk-jung was also confirmed in this study. Finally, in dealing with the ‘Jinindaemangron’ of Honam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birth of Kang Jeungsan, Honam Daoism’s intense consciousness of social transformation receives first focus, and this is expressed through Prophecies of Jeong Gam, and the religious ideologies of Donghak (東學) and Namhak (南學). These expressions are analyzed through Song ofGungeul (弓乙歌), composed by Jeongryeom (鄭磏), and through Daesoon Jinrihoe’s The Canonical Scripture (典經). As a result,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messianic significance of the Kang Jeungsan’s advent lay on the basis of the people’s desire for an ideal future, which is a notion that had been ripening for several centuries.

Keywords: 강증산; 진인(眞人); 구세주; 호남; 정감록(鄭鑑錄); 궁을가(弓乙歌)
Keywords: Kang Jeungsan (姜甑山); jinin (眞人); messiah; Honam (湖南); Jeonggamrok (鄭鑑錄); Gungeulga (弓乙歌)

Ⅰ. 들어가는 말

초당(初唐) 사걸(四傑)을 대표하는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는 천고의 명문으로 일컬어지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걸지령(人傑地靈)’이라는 표현은 풍수가들 사이에서 “뛰어난 인물은 땅의 영기를 받아 태어난다.”는 의미로 자주 회자(膾炙)되어왔다. 그런데 ‘땅의 영기’는 신령스러운 지기(地氣)를 넘어 그 지역 특유의 풍토, 문화까지 함의(含意)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2021년 5월 14일 전북 정읍시가 강증산의 탄생지를 ‘정읍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을 기념하여 대순사상학술원은 <강증산(姜甑山) 성사(聖師) 탄강의 의의와 정읍문화의 재조명>이라는 제하(題下)에 대규모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그 결과 강증산 탄강의 모태가 된 정읍 지역의 고유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다룬 다수의 논고들이 제출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1)

그런데 시야를 조금 넓혀 정읍에 탄강한 강증산의 출현 동인을 설명하고자 할 때 지역적으로는 정읍의 역사, 문화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전북 내지 호남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고 다시 조선 말기에 태동한 동학, 증산 등 구세(救世) 종교의 교의와 지향 등 종교적 성격을 탐구하고자 하면 동아시아 공유의 토착 종교인 도교를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강증산의 탄강이라는 한국 신종교 역사상 대사(大事)를 설명하기 위해 ‘호남 도교’라는 전제적 인식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1990년대 이후 한국 도교학의 흥기2)와 더불어 집적된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강증산의 사상, 행적, 종교적 지향 등과 관련하여 도교와의 교섭, 영향 관계를 다룬 적지 않은 논문들이 생산되었고 근년에는 특히 강증산의 가계, 탄강 배경, 사상 형성 등을 한국도교사적 인맥 곧 도맥(道脈)을 통해 접근, 천착한 논고도 등장하여 자못 고무적이다.3) 기존의 이러한 업적들은 강증산에 대한 도교적 접근을 위하여 상당히 유효하고 앞으로의 연구에 대해 필요한 시사를 줄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지양해야 할 것은 종래 있어온 학계의 편견이지만 도교를 다분히 정태적, 비현실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따라 도교의 역동적, 실천적 측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으로 이것은 여전히 적지 않은 논고에서 발견되고 있다.4) 도교의 또 다른 본질이기도 한 이 측면을 잘 파악하면 증산 사상의 실체를 기존과 다르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젖어본다.

이에 본고에서는 도교 본질의 역동적, 실천적 측면에 주목하여 강증산의 탄강을 예비한 호남 문화의 한 특성인 호남 도교, 그중에서도 이른바 ‘진인대망론(眞人待望論)’에 주목하고자 한다. ‘진인대망론’이란 난세에 진인의 출현을 갈망하는 심리로 강증산의 구세 이념과 관련하여 사유할 때 강증산 탄강 전야(前夜)의 분위기를 조성한 호남 도교의 중요한 특성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종래 강증산의 탄강이 상징하는 천년왕국설(千年王國說)적 메시아 주의와 관련하여 불학, 유학 방면에서 미륵신앙(彌勒信仰), 정역사상(正易思想) 등이 유력하게 논의된 바 있으나 도교 방면에서의 접근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았나 싶다. 궁극적으로 본고에서는 단순한 영향론을 불식하고 도교의 역동적, 실천적 본질이 강증산 탄강의 메시아적 의미와 여하(如何)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호남 도교의 진인대망론을 통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도교의 사회변혁 의식이 중국과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구현된 양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강증산을 위요(圍繞)한 호남 도교의 정황을 짚어 본 후 조선 말기의 진인대망론이 호남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강증산 탄강을 예비하게 되었는지 그 경과를 분석하여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Ⅱ. 도교의 사회변혁 운동

현존 질서와 도덕 가치를 상대화, 전복하는 도가의 반가치(反價値)적 의식은 사회적으로 전유될 때 노장을 사회개혁자(Social Reformer)로 볼 여지를 남겼고 후대 도교의 사회변혁 의식에 대해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도가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초기 신선가(神仙家)는 새외(塞外)의 이야기꾼인 무사(巫師), 방사(方士) 계층에서 출발하여 대중을 기반으로 서사지식(narrative knowledge)을 유포하면서 중원의 정합적 보편이념에 대해 균열을 야기하였는데5) 신선가의 민중성, 반권위주의, 반역사주의적 성향은 초기 신선설화에서 뚜렷이 보인다. 신선들은 대개 익명성의 인물들이며 매약상(賣藥商), 채약부(採藥夫), 목공(木工), 목부(牧夫), 초부(樵夫), 걸인, 신기료, 점쟁이, 마경인(磨鏡人) 등 체제로부터 일탈해있는 하층, 주변부 출신이 많다.

신선설화에는 지배계층과의 충돌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적지 않은데 가령 『열선전(列仙傳)』의 마단(馬丹)은 진헌공(晉獻公)과 진령공(晉靈公)의 무도함에 대해 반항하고, 구선(寇先)은 송경공(宋景公)에게 죽음으로써 득선의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며, 『신선전(神仙傳)』의 광성자(廣成子)는 황제(黃帝)를 훈계하고, 왕원(王遠)은 한환제(漢桓帝)의 강압적인 초치에 순응하지 않으며, 유근(劉根)은 자신을 요적(妖賊)으로 체포한 태수를 징벌하고, 좌자(左慈)는 조조(曹操), 유표(劉表), 손책(孫策) 등의 살해 위협을 이겨낸다. 디워스킨(Kenneth J. Dewoskin)은 이러한 사례들 속에서 당시의 제국 통치에 대한 민중적인 적대감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6)

도가와 신선가의 이러한 사회변혁 의식은 양자가 통합된 동한(東漢)의 원시도교 오두미도(五斗米道)와 태평도(太平道)에 이르러 오두미도는 한중(漢中) 지역을 기반으로 자립적 종교 정권을 수립하는 방식으로, 태평도는 교주 장각(張角)의 영도하에 부패한 한(漢) 왕조를 타도하고 이상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나타난다. 태평도는 특히 원시도교 최고(最古)의 경전인 『태평경(太平經)』을 교범으로 삼았는데 이 책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민중성과 평등주의에 입각한 사회변혁 사상을 담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7) 오두미도와 태평도의 반체제적 유토피아 운동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 이르러 정치, 사회 혼란이 우심(尤甚)해 지면서 하층 민중 혹은 주변 민족 등을 기반으로 활발히 계승된다. 당시 도교 반란 집단을 영도했던 이웅(李雄)은 도사 범장생(范長生)의 자문을 받아 촉 땅에 성한(成漢) 정권을 수립하고 상당 기간 나름의 이상 국가를 경영하기도 하였다.

범장생의 사례에서 보듯이 흔히 난세로 일컬어지는 왕조 교체기에 도사가 유력한 정치 지도자에게 부명(符命) 곧 미래에 천자가 될 운명임을 예고해주거나 정치 자문역을 담당하는 경우 역시 소극적이나마 도교의 사회 참여 방식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본래 도교 성립 이전부터 존재했던 주문왕-강태공, 한고조-장량의 관계처럼 역사 설화의 한 패턴이었는데 후대에는 저명한 도사들이 창업주의 파트너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령 제나라 말기 소연(蕭衍) 곧 후일의 양무제(梁武帝)가 유력한 군벌이었을 때 상청파(上淸派) 도사 도홍경(陶弘景)은 그를 위해 ‘수축목(水丑木)’8)이라는 동요를 지어 제왕이 될 것을 암시하고 격려하였는데 무제는 이를 좇아 ‘양(梁)’을 국호로 삼고 이후 도홍경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자문하여 그는 ‘산중재상(山中宰相)’으로 불리었다.9) 이러한 패턴은 수당(隋唐) 시대에도 활용되어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은 도사 장빈(張賓)으로부터,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도사 왕원지(王遠知)로부터 각기 천자가 된다는 부명을 받았다고 한다.

당대 도교의 사회변혁 의식과 관련하여 주목할 인물은 당말(唐末) 오대(五代)의 도사 두광정(杜光庭)이다. 그는 당과 전촉(前蜀)에서 관직을 맡기도 했으며 만년에는 청성산(靑城山)에 은거하여 『용성집선록(墉城集仙錄)』, 『도덕진경광성의(道德眞經廣聖義)』, 『도문과범(道門科範)』 등 도서(道書) 저술에 힘썼다.10) 그는 『도덕경』에 대해 “나라를 경영하고 몸을 다스림의 오묘한 경지가 이 책에서 다하지 않음이 없다.(經國理身之妙, 莫不盡此也.)”11)고 언명할 정도로 도교 이념을 현실적 차원에서 인식하였다. 그는 방사-신선가의 설화주의적 성향을 발휘하여 여선(女仙) 전기문학으로 보아도 좋을 『용성집선록』을 편찬하였고 「규염객전(虯髥客傳)」이라는 협객 소설을 짓기도 하였다. 이중 「규염객전」은 규염객이라는 도사이자 협객이 천하를 도모하려다가 이세민을 만나보고 그의 기상에 눌려 야심을 버린다는 내용으로 소설의 말미에 작자 두광정은 다음과 같은 논평을 가한다.

진인이 일어남은 영웅이 바랄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알겠다. 하물며 영웅도 아님에랴! 신하로서 잘못 난리를 꾀하는 것은 버마재비의 팔뚝으로 달리는 수레바퀴를 막는 일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우리 황실이 만년토록 복을 받으리니 이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乃眞人之興也, 非英雄所冀, 況非英雄者乎. 人臣之謬思亂者, 乃螳臂之拒輪耳. 我皇家垂福萬葉, 豈虛言哉.)

두광정은 망해가는 당나라의 정통성을 견지하기 위해 건국 초기를 다룬 소설을 통해 당태종 이세민이 천명을 받은 존재임을 역설하였는데 여기에서 그가 세상을 구할 인물에 대해 ‘진인’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였음에 주목해야 하겠다. 진인이라는 말은 『장자』에 처음 등장한12) 이후 복잡다단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도를 체득한 존재라는 원의(原義)를 넘어 난세의 구세주라는 함의까지 지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한의 『태평경』, 동진(東晉)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등 한대부터 위진 시대의 도서에 등장하는 ‘진인’이 아직 구세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남북조-당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확대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한 가지 추측을 더 보탠다면 불교의 메시아 주의라 할 수 있는 미륵신앙이 동진의 승 도안(道安)으로부터 시작되고 당대에 본격적으로 미륵 하생신앙(下生信仰)에 기댄 반체제적 운동이 전개된 것을 고려할 때 혹시 도교의 진인이 당시의 삼교합일(三敎合一) 조류 속에서 미륵신앙과의 일정한 교섭을 거쳐 더욱 메시아적 성격을 갖게 되고 함의가 확대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당대 이후 진인이라는 단어는 가령 진시황의 천하 통일과 몰락을 다룬 원대(元代)의 작자 미상 소설 『진병육국평화(秦幷六國平話)』에서의 “진인이 나와 통일하지 않으니, 어찌하랴! 칠국이 패권을 다투네.(未有眞人來統一, 奈何七國又爭雄.)”13)라는 언급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술한 구세주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근대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은 최초의 근대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전근대, 봉건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시대의 선각자를 ‘참된 인간(眞的人)’으로 불렀는데 그의 ‘진적인(眞的人)’은 곧 구세주 ‘진인(眞人)’에서 유래, 각색된 것임을 알 수 있다.14)

그렇다면 한국 도교에서 사회변혁 의식은 어떻게 표현되어 왔을까? 한국 도교의 고유성을 설명하고자 할 때 흔히 예를 드는 것이 한국 도교의 비조(鼻祖)로 추앙되는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鸞郎碑序)」이다.

나라에 오묘한 도가 있으니 그것을 풍류(風流)라고 한다. 그 가르침을 마련한 근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으니 그것은 실로 3교를 다 포함하고 있어 뭇사람들을 교화시킨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15)

최치원은 한국의 원시도교를 ‘풍류’라고 부르고 그것이 유불도 3교의 취지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한국 도교가 추상적이거나, 내세적인 데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 실천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진왜란 때에 단학파(丹學派) 도인이었던 곽재우(郭再祐), 불문(佛門)의 휴정(休靜), 유정(惟政), 영규(靈圭) 등이 의병을 일으켜 투쟁하였는데 이에 대해 일찍이 정인보(鄭寅普)는 이러한 현상을 신라의 국선(國仙),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등 한국 원시도교의 강건한 현실주의를 계승한 것으로 보았다.16)

이외에도 최치원은 진성여왕(眞聖女王) 때 쇠미한 신라의 국정을 개혁하고자 하였으나 신분상의 한계로 좌절되자 가야산 해인사로 퇴거하여 수련에 전념하였다는데 고려 태조 왕건에게 “계림은 누런 잎이오, 곡령은 푸른 소나무로다.(鷄林黃葉, 鵠嶺靑松)”라는 시구를 전했다고 한다. 곡령은 송악(松嶽)으로 이는 왕건이 삼한(三韓)을 통일할 것을 예언한 것인데 앞서 살펴본 바 중국의 도사들이 창업주들에게 전했던 부명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할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나말(羅末)의 도교 성향 불승(佛僧) 도선(道詵)의 영향으로 도참설(圖讖說)이 크게 유행하였다. 도참설 중 고려시대 내내 왕권을 위협했던 것은 이른바 ‘목자득국설(木子得國說)’로 이씨(李氏)가 왕씨(王氏)의 뒤를 이어 나라를 차지한다는 참언(讖言)이었는데 이씨의 기운을 꺾기 위해 실제로 숙종 때 지금의 서울 근처에 오얏나무를 심었다가 베어버리는 조치를 취한 적 있었고 급기야 인종 때에는 척신(戚臣) 이자겸(李資謙)이 참언을 믿고 역모를 꾀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의 ‘목자득국설’을 이어 가장 오랜 시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유포된 도교의 사회변혁 운동은 『정감록』의 진인대망론이다. 정씨 진인이 출현하여 난세를 수습하고 이씨 왕조의 뒤를 이어 새로운 태평 세계인 남조선을 연다는 참언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까지 작용이 멈추지 않고 있다.17) 진인대망론은 정쟁, 병란, 질병, 기근, 수탈 등으로 정권이 흔들릴 때마다 이씨 왕조 체제에 대해 불만을 갖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하층 사족, 기층 민중 등에 의해 시시(時時)로 분출되었다. 이중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으로 선조 때 동인, 서인 간의 갈등에서 비롯한 ‘정여립(鄭汝立)’의 역모 사건 이른바 ‘기축옥사(己丑獄事)’와 순조 때 서북인의 차별에서 기인한 홍경래(洪景來)의 반란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정여립이 『정감록』의 참언 “목자망, 전읍흥(木子亡, 奠邑興)”을 이용하여 은연중 정씨 진인으로 자임(自任)하고 역모를 꾀했다던가, 홍경래 역시 『정감록』에 의거하여 왕조의 운명이 다했음을 선전하고 개세진인(蓋世眞人)이 반란군을 도와준다는 혹설(惑說)을 조작했다는 사실 등은 진인대망론이 조선조 사회변혁 운동의 배후에서 크게 기능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좌(證佐)이다.

Ⅲ. 호남 도교의 정황

땅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습니다. …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 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 수염의 조 선달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게 꼭 거북이 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 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를 하러 간거여 … ”18)

다소 긴 인용이지만 미당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1975)에 실린 산문시 「신선 재곤이」는 선풍(仙風)이 공동체의 삶과 문화 속에 녹아있는 호남 도교의 자연스러운 정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바로 이 선풍을 바탕으로 길이 기념될 미당 특유의 신화적이고도 토속적인 정조의 시가 문학이 가능했을 것이다.19)

진인대망론과 강증산 탄강의 상관성을 논하기에 앞서 호남 도교의 정황을 일별(一瞥)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먼저 호남 도교의 기원과 관련하여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송광사(松廣寺), 선암사(仙巖寺) 등 고찰(古刹)에 잔존해 있는 선불습합(仙佛褶合)의 흔적들로20) 이는 최치원이 언급한 한국 도교의 ‘포함삼교(包含三敎)’적 특성을 잘 말해준다. 다만 이는 국내 다수의 고찰에서 보이는 경향이기 때문에 특별히 호남 도교의 기원만을 두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진시황 때의 방사 서복(徐福)의 삼신산 탐사대가 호남 지역에 정착했을 가능성을 고고학적 발굴, 설화적 유행 등의 측면에서 다룬 논고가 제출되어 주목을 요한다.21) 서복의 행선지에 대해서는 남해도, 영도, 제주도, 일본 큐우슈우 등 중설분운(衆說紛紜)하여 앞으로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나 호남 도교의 기원과 관련된 새로운 가설로 평가할 만하다.

현존하는 자료와 유적으로 삼국시대의 호남 도교를 얘기하고자 하면 단연 최치원을 거론해야만 한다. 최치원은 충남과 전북의 서해안 일대에 걸쳐 출생, 벼슬살이, 유람, 서원 배향 등과 관련된 많은 설화와 유적을 남겼는데 이 과정에서 호남 기층의 도교문화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사료된다.22) 아울러 통일신라 말기 도참설을 창시한 광양 옥룡사(玉龍寺)의 고승 도선 역시 호남 도교의 고유한 풍토에서 탄생한 인물로 그의 학설은 본고의 주제인 진인대망론과 관련하여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호남 도교에 관해서는 서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강증산을 위요(圍繞)한 전북 도맥에 대한 탐구 성과를 들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조선 후기의 문인 허균(許筠)은 부안에 살 때 고부(古阜)의 저명한 도인 남궁두(南宮斗)와 교유했는데 남궁두는 또한 같은 고을의 도인 청하자(靑霞子) 권극중(權克中)과 교유 혹은 척분(戚分)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리되고 있다. 그런데 강증산의 외가가 권극중의 집안이었으므로 강증산은 조선 도교사상 중요한 인물인 남궁두, 권극중의 도교학과 일정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 호남 도교의 중핵과 지근거리에 있었다 하지 않을 수 없다.23)

조선시대의 호남 도교는 강증산을 중심으로 한 남궁두, 권극중 등 재지(在地) 도인과의 관련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화(京華) 단학파인 온양 정씨 도인들과도 긴밀한 연계성이 있다. 일찍이 단학파 태두 북창(北窓) 정렴(鄭磏)의 아우인 고옥(古玉) 정작(鄭碏)은 호남의 망족(望族)으로 의병장이었던 장흥 고씨의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고인후(高因厚), 고종후(高從厚) 3부자와 깊은 교유 관계에 있었다.24) 그의 조카 총계당(叢桂堂) 정지승(鄭之升) 역시 장흥 고씨 뿐만 아니라 호남의 강개한 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와 막역한 사이였는데 후일 진안(鎭安) 용담(龍潭)에 은거, 수련하였고 인근 산봉에서 제천(祭天)을 거행하기도 하였다.25) 1717년 봄, 김창흡(金昌翕)은 진안의 정지승 고거(故居)를 탐방한 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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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정지승의 도교 유적 제천봉(祭天峰), 전북 진안군 주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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叢桂幽人自逸豪, 은자 총계당은 홀로 뛰어난 인물이었거니,

祭天臺與紫霞高. 제천대는 자색 기운 속에 솟아있네.

村翁不記飛昇歲, 시골 늙은이 그가 신선 되었을 때를 기억 못하고

潭上春風老碧桃. 호수 가의 봄바람에 벽도(碧桃)는 늙어가네.26)

호남 도교와 온양 정씨와의 교류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북창의 종손(從孫)으로 저명한 단학파 시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은 호남 도인 권극중과 교유하였는데 권극중은 당시 간행 중이던 『북창고옥양선생시집(北窓古玉兩先生詩集)』의 서문을 써주었고 정두경은 권극중이 『참동계(參同契)』를 주해(註解)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찬(賞讚)하는 시를 지어 보내기도27) 하는 등 양인은 친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강증산은 일찍이 종도 박공우에게 정렴의 천재성과 도력을 거론하며 분발을 촉구한 바 있다.28) 상술한 바 온양 정씨와 권극중 등 호남 도인과의 교류를 염두에 둘 때 강증산의 정렴에 대한 각별한 언급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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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권극중의 『북창선생시집』 서문, 『온성세고(溫城世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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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조선 말기의 진인대망론과 호남 그리고 강증산

앞서 고찰하였듯이 호남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간단(間斷) 없이 형성된 도교 문화에 특유한 민정(民情), 풍토성을 더하여 종교적으로 고유한 경지를 이룩하는데 이것은 국난의 위기 상황에서 더욱 특징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을 한말 호남의 절사(節士) 황현(黃玹)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 사람들은 재능과 지혜가 많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을 잘해서 방술과 도참의 학문을 좋아한다. 단가(丹家)의 권극중(權克中), 의가(醫家)의 유상(柳尙), 감여가(堪輿家)의 이의신(李義新)과 박상훤(朴尙諠)과 같은 인물들이 머지 않은 과거에 있었으니 모두 명백하게 검토해볼 수 있다. 그 외에 괘명(卦命), 풍감(風鑑), 성력(星曆), 사복(射覆), 기을(奇乙), 임둔(壬遁)의 책이 집집마다 선반에 쌓여있어 이것을 바탕으로 유세를 한다.

(且其人, 多才慧, 善悟解, 喜方術圖讖之學. 若丹家之權克中, 醫家之柳尙, 堪輿家之李義新朴尙諠, 在近古, 皆斑斑可考. 而其他卦命風鑑星曆射覆奇乙壬遁之書, 家持戶蓄, 藉口遊談.)29)

호남 사람이 방술과 도참의 학문을 좋아하여 집집마다 그 방면의 서적들을 구비하고 있다는 언급은 신종교 태동 전야 호남의 종교문화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그런데 윗글에서 거명된 방술, 도참 그리고 괘명, 풍감, 기을, 임둔 등의 세목들이야말로 도교의 진인대망론과 긴밀히 연계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것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호남 지역에서 진인대망론이 가장 크게 표출된 역사적 사례는 기술(旣述)하였듯이 선조 연간 전주인 정여립의 역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호남 명류(名流)였던 이발(李潑), 이길(李佶) 형제를 비롯 지역 사림이 심대한 타격을 받았고 이후 전라도가 반역향(叛逆鄕)으로 낙인찍혀 호남인의 중앙 정계 진출에 장애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사건이 조선조 내내 호남의 소외 의식을 일정 정도 조장하였고 이에 따라 몰락한 사족과 대중 사이에서 왕조 체제의 변혁에 대한 열망 심리가 커가면서 진인대망론이 부식(扶植)될 여지도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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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용호도사 궁을가라」,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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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 사건 이후에도 홍경래 난 등 『정감록』을 빙자한 역모 행위가 수시로 일어나나 체제 변혁을 향한 진인대망론이 대중적 설득력을 갖고 광범위한 종교운동으로 전개된 것은 조선 말기 최제우에 의한 동학이라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이 운동이 가장 적극적, 실천적으로 구현된 것은 호남 지역에서였다. 동학에서는 궁을(弓乙), 남조선, 진인 등 『정감록』의 도참적 개념을 상당히 수용, 전유하였는데 동학 가사인 「궁을가」는 이에 따라 진인대망론의 취지를 잘 표명하고 있다.

jdaos-41-0-1-i1에서 ‘도통군자’는 『정감록』의 진인을 바로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시대의 역군으로서 미래를 이끌어갈 바람직한 인물로 간주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중국 도교에서는 쓰이지 않는 ‘도통군자(道通君子)’라는 용어이다. 이는 삼교합일, 그중에서도 유도합일(儒道合一)의 경향이 강한 한국 도교의 특징적인 표현으로 생각된다.31) 그런데 「궁을가」의 저자는 용호대사 혹은 북창 정렴으로 전해진다. 용호대사는 정렴이 내단(內丹) 수련서 『용호비결(龍虎祕訣)』의 작자인 사실에서 비롯한 별칭이다. 정렴은 『정감록』에 합본된 예언서 『북창비결(北窓祕訣)』의 저자로도 알려졌는데 사실상 이들 참서는 정렴에 가탁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민간설화에서 정렴은 도의 계제가 높아 신통력 특히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도교 인물의 시대적 요구에 따른 사회적 전변(轉變)을 엿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강증산이 「궁을가」의 이 대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명했다는 사실이다.

…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 32)

강증산은 미래의 역군인 도통군자의 출현이 자신의 소관임을 확언하였는데 도통군자에 대한 별도의 언급에서 장차 일만이천의 도통군자가 일어난다고 하였으니33) 두 발언을 합친 문맥으로 보아 강증산은 일만이천 도통군자를 기획, 주재(主宰)하는 존재 곧 구세의 진인을 자임(自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학과 비슷한 시기에 진인대망론적 견지에서 사회변혁을 주창한 교파로는 남학이 있다. 남학의 연원과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점이 있지만 일부(一夫) 김항(金恒)이 창도한 새로운 역학(易學) 곧 정역 관념에 의해 후천 세계의 도래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필연적으로 『정감록』 이래의 진인대망론적 의도를 함장(含藏)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남학에서 분기한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의 오방불교(五方佛敎)를 논외로 하면 김항의 정역파는 도교화된 유교 혹은 도교와 유교의 결합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34) 주목해야 할 것은 『전경』에서 남학의 대표격인 김항의 입을 빌어 강증산을 구세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제께서 광구천하하심은 김 일부의 꿈에 나타났으니 그는 상제와 함께 옥경에 올라가 요운전에서 원신(元神)이 상제와 함께 광구천하의 일을 의논하는 것을 알고 상제를 공경하여야 함을 깨달았도다.35)

김항은 정역을 수립하여 후천세계 도래의 이치를 밝힌 인물이다. 그러나 학문적 깨달음을 전하는 일과 널리 세상을 구원하는 일 곧 ‘광구천하’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김항의 꿈 이야기는 은연중 이 점을 구별 짓고 ‘광구천하’의 주체 곧 진인으로서 강증산의 위상을 확인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강증산에게는 정작 『정감록』의 참언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이 있어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계룡산(鷄龍山)에 정씨가 도읍하는 비결을 묻기에 상제께서 이렇게 이르시니라. 「일본인이 산속만이 아니라 깊숙한 섬 속까지 샅샅이 뒤졌고 또 바다 속까지 측량하였느니라. 정씨(鄭氏)가 몸을 붙여 일을 벌일 곳이 어디에 있으리오. 그런 생각을 아예 버리라.」36)

상제께서 어떤 사람이 계룡산(鷄龍山) 건국의 비결을 물으니 「동서양이 통일하게 될 터인데 계룡산에 건국하여 무슨 일을 하리오.」 그자가 다시 「언어(言語)가 같지 아니하니 어찌 하오리까」고 묻기에 「언어도 장차 통일되리라」고 다시 대답하셨도다.37)

묻는 사람이 『정감록』의 문자적 의미에 천착하여 계룡산이라는 공간과 정씨라는 특정 인물을 예언의 실체로 맹신함에 대하여 강증산은 그것의 무망(無望)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간 진인대망론과 관련한 강증산의 발언을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답변은 강증산이 『정감록』에 대한 대중의 통속적인 믿음을 경계하는 데에 뜻을 둔 것이지 난세에 새로운 시대의 구세주를 대망하는,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정감록』 본질 의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증산은 『전경』의 곳곳에서 동학의 경우와 같이 ‘궁을’, ‘남조선’ 등 『정감록』에서 유래한 용어와 개념을 긍정적으로 수용, 전유하고 있어 그의 메시아 주의가 수백 년 장구한 기간 이상적 미래를 갈구해왔던 민중적 소망의 기반 위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Ⅴ. 맺는말

본고에서는 강증산 탄강의 메시아 주의적 성격을 논함에 있어 기존에 주로 탐구되었던 미륵신앙과 정역사상의 관점에서 벗어나 도교의 역동적, 실천적 본질에 착안하여 도교 구세주라 할 진인의 출현을 고대하는 이른바 ‘진인대망론’의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우선 도교의 사회변혁 의식이 중국과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구현된 양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강증산을 위요한 호남 도교의 정황을 짚어 본 후 조선 말기의 진인대망론이 호남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강증산 탄강을 예비하게 되었는지 그 경과를 분석하였다.

논의의 결과 도교의 사회변혁 의식이 중국의 경우 초기 신선가의 반체제적 활동, 오두미도, 태평도 등의 유토피아 건설 운동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본래 득도자를 의미했던 진인이 후대에는 구세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최치원의 「난랑비서」에서 역동적, 실천적 본질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후일 단학파 도인과 불승의 의병 투쟁으로 계승되었다. 아울러 고려 이후 도참설이 흥기하면서 ‘목자득국설’이 출현하였고 뒤이어 조선조에는 『정감록』의 진인대망론이 대두하였음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호남 도교의 정황은 고대의 경우 최치원과 도선의 영향을 염두에 둘 수 있으며 강증산의 배후에 남궁두, 권극중 등의 도맥이 얽혀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온양 정씨 단학파 도인들과 장흥 고씨, 나주 임씨 등 호남 망족 및 권극중과의 긴밀한 교유 관계는 이번 연구에서 얻은 성과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선 말기 호남의 진인대망론과 강증산의 탄강을 다룸에 있어 먼저 호남 도교의 강렬한 사회변혁 의식에 주목하였고 이것이 『정감록』을 이어 동학, 남학 등을 통해 표출된 것을 정렴의 「궁을가」, 『전경』의 어록 등을 통해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강증산 탄강의 메시아적 의의가 수백 년 장구한 기간 이상적 미래를 갈구해왔던 민중적 소망의 기반 위에 놓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증산은 조선 민중이 대망했던 진인으로 탄강했지만 미륵불의 현신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는데38) 진인과 미륵불이라는 동아시아의 메시아 모델을 한몸에 구현한 존재로서 그 융합적 형상은 멀리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보이는 ‘포함삼교’의 취지와 맥락을 같이 하면서 강증산 자신이 조선 말기의 격랑 속에서 추구했던 유불선 삼교 통어(統御)의 정신과 수미일관, 상응함을 알 수 있다.

Notes

1) 대회에서는 강증산과 관련하여 정읍 지역의 문화와 종교, 사상 등을 다룬 총 17편의 논문이 제출되었는데 해륙(海陸)문화, 기우(祈雨)문화, 선비문화, 동학, 도참 등 다양하고 독특한 주제들을 망라하고 있다. 관련 자료로는 『2021 강증산 탄강지 정읍 향토문화유산 지정 기념학술대회 발표집』 (포천: 대순사상학술원, 2021. 12. 17) 참조.

2) 대체로 1987년 한국도교사상연구회(현 한국도교문화학회의 전신)가 성립되기 이전 한국학 체계에서 도교학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3) 이와 관련된 논문으로 김성환, 「한국 선도의 맥락에서 보는 증산사상」, 『대순사상논총』 20 (2009), 참조.

4) 가령 중국 학계의 경우 한때 신선설화를 유한계층의 백일몽으로 간주하고 ‘소극적 낭만주의’의 산물로 규정한 바 있었다. 袁珂, 『中國古代神話』 (北京: 中華書局, 1981), pp.27-28. 유학 위주 학풍이 두드러진 한국 고전학에서의 도교 인식도 중국 학계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여전히 강고(强固)하다 해야 할 것이다. 한국 도교학의 성립이 늦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정재서, 『불사(不死)의 신화와 사상』 (서울: 민음사, 1994), pp.244-249.

6) Kenneth J. Dewoskin, Doctors, Diviners, and Magicians of Ancient China: Biographies of Fang-shih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pp.30-31.

7) 이와 관련된 전반적 논의는 정재서, 「《태평경(太平經)》의 성립 및 사상에 관한 시론」, 『한국문화연구원 논총』 59 (1991) 참조.

8) ‘수축목(水丑木)’은 ‘양(梁)’의 파자(破字)로 이는 도참(圖讖)에서 상용하는 수법이다.

9) 牟鐘鑒, 『중국도교사』, 이봉호 옮김 (서울: 예문서원, 2015), p.128.

10) 두광정의 생애와 저술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羅爭鳴, 『杜光庭道敎小說硏究』 (成都: 巴蜀書社, 2005), pp.22-72 참조.

11) 杜光庭, 『道德眞經廣聖義』 卷1, 「叙經大意解疏序引」. 두광정의 이 책은 『도덕경』에 대한 정치적 각도의 주석서 중 대표성을 지닌다. 관련된 논의는 呂錫琛, 『道家, 方士與王朝政治』 (長沙: 湖南出版社, 1991), pp.15-22 참조.

12) 『莊子』 「大宗師」, “古之眞人, 其寢不夢, 其覺無憂, 其食不甘, 其息深深 … 古之眞人, 不知說生, 不知惡死, 其出不欣, 其入不距. 翛然而往, 翛然而來而已矣.”

13) 『秦幷六國平話』, 卷上.

14) 정재서,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파주: 문학동네, 2007), pp.62-63.

15) 金富軾, 『三國史記』 卷4, 「新羅本紀」.

16) 鄭寅普, 『薝園文錄』, 「義僧將騎虛堂大師紀蹟碑」, “釋氏之法, 以不殺爲敎 … 獨此土淸虛之徒, 高足名宿, 馳驅國難 … 蓋新羅之國仙, 高句麗之皂衣仙人, 蓋桓儉遺敎之聚, 尙驍健, 厲志義, 國有事則犀以處之 … 其遺液餘潤, 沁漸叢林.” 이와 관련된 자세한 논의는 정재서,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 pp.206-207 참조.

17) 일례로 6.25 전쟁을 진인(眞人) 곧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이 종식시켰다는 견강부회적 풀이가 운위(云謂)될 정도이다.

18) 서정주, 「신선 재곤이」, 『질마재 신화』 (서울: 일지사, 1975).

19) 미당은 잘 알려져 있듯이 전북 고창 출신이다.

20) 이들 고찰의 전각, 교량 등에 유존(猶存)해있는 강한 도교풍의 명칭들(송광사의 삼청선각(三淸僊閣), 선암사의 승선교(昇仙橋), 강선루(降仙樓) 등)이 이를 웅변한다.

21) 김성환, 「한국 선도의 맥락에서 보는 증산사상」, 『대순사상논총』 20 (2009), pp.319-321.

22) 이와 관련된 최근의 논의로 안영훈, 『2021 강증산 탄강지 정읍 향토문화유산 지정 기념학술대회 발표집』 (포천: 대순사상학술원, 2021. 12. 17), pp.137-149 참조.

23) 김성환, 앞의 글, pp.324-330.

24) 온양 정씨 문집 『온성세고(溫城世稿)』에는 이들 간에 창화(唱和)한 시편(詩篇)들이 남아 있으며 장흥 고씨 집안에서 보관해온 정작의 필적이 원광대 박물관에 기증되어 소장 중이다.

25) 정지승의 용담(龍潭) 고거(故居)에 대한 현지 조사는 1997년 7월 13일~14일과 2000년 4월 10일, 2차에 걸쳐 이루어진 바 있다. 자세한 조사 경위에 대해서는 정재서, 『한국도교의 기원과 역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pp.209-229 참조.

26) 「叢桂堂遺稿·附錄」, 『溫城世稿』.

27) 『溫城世稿』, 「東溟先生集·寄靑霞子」, “虛室本生白, 寒松長自靑. 俗流盡奔走, 之子獨沈冥. 初服芷荷製, 古文龍虎經. 無由向南極, 空望老人星.”

28) 『전경』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교운 1장 35절, “이 말씀을 마치시고 공우에게 「천지의 조화로 풍우를 일으키려면 무한한 공력이 드니 모든 일에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정 북창(鄭北窓)」 같은 재주로도 입산 三일 후에야 천하사를 알았다 하느니라」고 이르셨도다.”

29) 黃玹, 「首筆」, 『梧下記聞』. (한승훈, 「조선 후기 전북 지역의 종교문화와 도참전통」,『2021 강증산 탄강지 정읍 향토문화유산 지정 기념학술대회 발표집』 (포천: 대순사상학술원, 2021. 12. 17), pp.279-280에서 재인용) 이 논문에서는 전북 지역의 강한 도참 성향과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신종교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

30) 용호대사, 「궁을가」.

31) 사족 출신이 중심인 단학파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다분하다.

32) 『전경』, 권지 1장 11절.

33) 같은 책, 예시 45절, “상제께서 태인 도창현에 있는 우물을 가리켜 「이것이 젖(乳) 샘이라」고 하시고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응기하여 일만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 그러나 후천의 도통군자에는 여자가 많으리라」하시고 「상유 도창 중유 태인 하유 대각(上有道昌中有泰仁下有大覺)」이라고 말씀하셨도다.”

34) 金恒의 스승이자 남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蓮潭 李雲奎가 李書九 혹은 靑林道士라는 異人에게 도를 전수받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용엽 편, 『진안 지역 도교와 남학 연구』 (전북: 전북전통문화연구소, 2021), p.34.

35) 『전경』, 예시 3절.

36) 같은 책, 교법 3장 39절.

37) 같은 책, 교법 3장 40절.

38) 같은 책, 행록 2장 16절,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 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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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2.

『薝園文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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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4.

『溫城世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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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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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幷六國平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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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光庭, 『道德眞經廣聖義』.

8.

용호대사, 「궁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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