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이 논문은 여성 한시 작가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는 최송설당(崔松雪堂, 1855~1939)의 삶과 작품을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분석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동안 대순사상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접근에서 분석이 진행되었다. 대순사상 자체에 대한 분석과 의미를 밝히는 연구에서부터 대순사상과 서양철학, 대순사상과 미술 등 예술 분야와의 융합 연구로까지 확장되었다.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대순사상에 입각하여 여성 한시 작품을 분석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대순사상과 여성(女性)’이라는 범주에서 연구를 시도한 선행 연구들은 몇 편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적극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또 이러한 선행 연구들 또한 대순사상에 나타난 여성상 또는 여성관에 대한 연구, 대순사상에서 논하는 여성성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현대적 의미로 부여하는 정도의 논의에 그치고 있다.1) 문학을 대순사상의 관점으로 읽어냄으로써, 문학과 사상의 융합 연구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여성 작가가 남겨놓은 한시 작품을 통해, 당대의 여성들의 삶, 그 중에서 가정 내에서의 역할이나 위치, 가정의 화목을 위해 부덕을 쌓는 모습과 함께 여성의 애환(哀歡)이 담긴 이야기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는 그 중에서도 대순사상의 출현과도 시대적 맥락을 같이 하는 20세기 초의 최송설당의 한시 작품을 여성의 해원이라는 틀 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여성 해원 사상을 토대로 ‘평(平)’과 ‘화(和)’의 개념으로 분석하여, 여성 한시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 작품 안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주체적 의식 및 한(恨)의 정서를 찾아보고 이를 풀어나가는 해원과 관련해서 가화(家和)와 상생(相生)의 의미를 확인하고자 한다.2)
이와 같은 시도는 문학과 사상의 융합이라는 학문적 확장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대순사상의 측면에서도 사상 자체에만 몰두한 연구에서 나아가 사상과 문학을 융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전통시대의 삶과 문화 속에서도 대순사상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고, 이것이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현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Ⅱ.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본 최송설당의 삶
현재 남아있는 여성 한시 작품은 대부분 조선 시대에 창작된 것으로, 작가는 약 200여 명, 작품은 약 2,500수이다. 작품은 사대부가(士大夫家) 여성과 기녀(妓女)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조선 시대는 유교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은 ‘삼종지도(三從之道)’나 ‘정절(貞節)’ 등과 같이 부덕(婦德)이었고, 작품의 내용 또한 이를 담고 있는 것이 많다.
이 중에서 여성 한시 작가의 마지막 세대인 최송설당(崔松雪堂, 1855~1939)의 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개인 문집을 발간하였으며 근대전환기를 살았던 여성 인물의 작품을 통해, 당대의 삶과 문화를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최송설당은 19세기와 20세기를 걸쳐서 살다간 인물로, 여성 한시 작가의 마지막 세대의 인물이다. 조선 시대의 문집 발간은 대부분 남성 문인들의 전유물이었기에, 문집을 남긴 여성 문인은 많지 않다.3)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아래 여성 문인의 작품은 남편 문집의 부록으로 남겨져 있거나 여러 책에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드물게 문집을 발간한 경우에는 사후(死後)에 자손이나 친인척 등 가족에 의해서 발간되었다. 하지만 최송설당의 경우는 생전에 본인의 의지로 출간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4)
그녀는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훈장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한문과 한글을 배우면서 성장하였다. 개화기와 일제침략기 시대에 생존했던 최송설당은 규방의 일에만 전념했던 조선시대의 여성과는 달리, 이러한 집안 배경을 통하여 교육을 받고 시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5) 최송설당은 전통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경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녀의 시에 나타나는 의식 또한 전통적인 여성들에게서 보이는 유교적 관념이나 가족에 대한 염려나 사랑, 고향을 그리워하는 등의 내용 뿐만 아니라 시에서 표현한 내용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녀는 무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최송설당의 한시 작품들을 보면 장녀이면서도 장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드러나기도 하며,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태어난 한의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반면에, 여성이나 남성으로서의 성(性)의 존재가 아닌 개인의 존재 자체로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최송설당의 생애는 대순사상의 관점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이 쓴 문집의 서문에 보면, “부인들의 거처에는 왼쪽이 바느질, 오른쪽은 반찬 하는 것만이 보일 뿐이었다. 내가 비록 송설당 여사를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듣기로는 송설당은 재앙을 입었던 집안에서 태어난 외로운 후손으로서 조상들을 위해 원통함을 씻어주고 재물을 다스리고 돈을 벌어서 완전히 집안을 다시 일으켰으니 진실로 사내 대장부들도 그렇게 행동하기는 어려웠던 일이다.”6)라고 서술되어있다. 주변에서 보고 들었던 송설당의 모습은 전통 사회에서 규정해놓았던 여성의 모습이 아닌, 집안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학문을 닦고, 문집을 편찬하는 주체적 여성의 모습이었다.
스스로 쓴 글에서도 “가문의 조상들을 위해 원을 씻는 일에 어찌 남녀를 따지겠는가, 맹세코 죽을 때까지 반드시 풀어드리리라.”7)라고 썼으며, 혼인을 할 때가 되었을 때는 결혼을 하고 나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여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8) 이처럼 <송설당서(松雪堂序)>에는 자신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내용만이 서술되어있으나, 생애를 검토해보면 결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9) 그녀의 시 <꿈을 기록하다(記夢)>의 9ㆍ10구에서도 “살아서 남편 잃은 몸이 되어, 풍상을 겪으며 바삐 살아왔다(生爲巾幗身, 風霜自奔汨)”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혼인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송설당의 집안은 원래 문과 집안이었으며, 5대조부터 무관직을 지냈다. 증조부의 외가가 홍경래의 난에 가담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증조부가 평안도 선천군이 함락하였을 때 무관이었으면서도 대항하지 않았다고 하여 옥사를 당하였으며, 송설당의 아버지대부터는 벼슬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10)
이처럼 송설당의 가계(家系)와 생애를 보면, 가문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재산을 축적하고 교육 사업을 하며 공부를 하는 것 등에 열정을 쏟았고,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으며, 그렇기에 여성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스스로 느끼기도 하였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여성 해원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한다.11)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구체적인 작품을 선별하여 여성 해원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대순진리회의 훈시 중 “가정화목ㆍ사회화합ㆍ인류화평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이다.”12)에서 ‘화(和)’는 핵심적 가치를 이루며, ‘신인조화(神人調化)’에서 조화(調化)는 조화(調和)와 조화(造化)의 재개념화라는 점에서 비추어볼 때 ‘화(和)’라는 핵심적 가치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또한, 상생법리인 ‘솔선수범ㆍ가정화목ㆍ이웃화합’의 훈시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대순진리회의 목적인 도통진경, 지상신선실현, 지상천국건설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에서 화(和)의 출발로서 ‘가화(家和)’의 가치가 주목되어야 한다.
대순사상에서 ‘화(和)’의 이념이 강조되고 있는 점에 입각하여, 『송설당집』에서, ‘한(恨)’과 ‘화(和)’를 포함하고 있는 시 먼저 선별하고자 한다. 『송설당집』에 한시 167제 252수,13) 가사 49제의 작품이 남아있는데, 이 중에서 ‘한(恨)’과 ‘화(和)’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시를 살펴보겠다.
Ⅲ. 한시에 나타난 한(恨)과 화(和)
이번 장에서는 최송설당의 한시 작품 중에서 ‘한(恨)’과 ‘화(和)’라는 시어를 포함하고 있거나, ‘한(恨)’과 ‘화(和)’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작품을 선별하여,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해원(解冤)이란 원(冤)을 푸는 것[解]인데, 이것을 송설당의 작품과 연결 지어본다면, 송설당이 지닌 원(冤)은 그녀가 느끼는 한(恨)과 맞닿아있다. 즉 송설당이 지닌 ‘한’은 여성으로서의 ‘한’으로, 집안의 원한을 해소하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더 증폭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으로서의 한계에 부딪히며 한의 정서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가족의 평안함과 화목함, 화(和)를 위한 길이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다음에서 살펴보자.
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고 삶의 영역 또한 남성들과는 다른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송설당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바라볼 줄 아는 자존감이 강한 여성이었다.14) 하지만 자신의 소망과는 달리, 현실은 그녀의 꿈을 실현시켜주지 못하였고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따라서 송설당의 시에는 여자로서의 탄식이나 시름을 표면으로 드러낸 작품들도 많이 있다.
毳幕風寒夢亦稀 | 얇은 천막 찬 바람에 잠들기 어려운데 |
邊天七月早鴻飛 | 변방 하늘 칠월에 저 기러기는 일찍도 날아가는구나. |
此身恨不爲男子 | 이 몸이 한스러운 것은 남자가 되지 못한 것 |
却羡蘓郞白首歸 | 아아! 부럽다 소랑15)은 늙어도 돌아갔는데.16) |
(밑줄: 필자, 이하 동일)
<왕소군의 원망(昭君怨)>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중국의 미녀였던 ‘왕소군’의 고사를 전고하여 쓴 것이다.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의 후궁이었으나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흉노에게 시집보내졌던 인물로, 이 이야기를 시로 지으면서 3구에 “이 몸이 한스러운 것은 남자가 되지 못한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남자가 되지 못한 한스러움은 왕소군의 마음이기도 하면서 송설당의 마음이기도 하다. 왕소군은 흉노와의 화친 정책으로 인하여 희생된 인물로,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한을 그려냈다면 송설당은 왕소군의 마음에 빗대어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조상의 누명을 풀고자 했던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없었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天地巍巍日月明 | 천지는 우뚝 솟고 해와 달은 밝아 |
資生萬物各成形 | 생장하는 만물이 각기 형체 이루네. |
惟是人生靈且貴 | 오직 인간만은 신령스럽고 또 귀하니 |
綱倫禮節體元亨 | 삼강오륜 예절을 원형17)에서 본받았구나. |
三才我亦參人品 | 삼재18) 중에 나 또한 인간에 들지만 |
却恨終爲女子身 | 한스러운 것은 여자 몸 된 것 |
心常洞洞而燭燭 | 마음은 항상 넓고 시원히 뚫려 반짝반짝 밝은데 |
遺訓何時不思親 | 남기신 유언 어느 때든 부모님 생각지 않으리. |
欲將至願訴上帝 | 지극 소원 하느님께 하소연하려고 |
黙黙垂鑑表情眞 | 잠자코 고개 숙여 진실한 정 비춰본다. |
他生做得何因果 | 후생에 어떤 인과를 얻어야만 |
忠孝家中快活人 | 충효 집안에서 쾌활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
共作賢良伊傳侶 | 어지신 이윤과 부열의 짝이 되어 |
遭逢聖代帝堯君 | 태평성대 요임금을 만나 |
東西事業經營後 | 이런 저런 사업을 경영한 뒤에 |
百世遺芳發達文 | 백세 뒤에 아름다운 모습 남겼으면. |
위의 시는 <스스로 쓰다(自述)>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지난 일에 대해 읊고 있다. 자신이 남자 형제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겪게 된 어려움, 여성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열등감이 시의 내용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을 삼재(三才)라는 토대 위에서 사람[人]에 위치시키고 있다. 이는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삼계(三界)와 같은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5ㆍ6구에 “삼재 중에 나 또한 인간에 들지만/ 한스러운 것은 여자 몸 된 것”이라는 구절에서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여자라서 느끼는 고뇌를 토로하고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7ㆍ8구에서 “마음은 항상 넓고 시원히 뚫려 반짝반짝 밝은데 / 남기신 유언 어느 땐들 어버이 생각 안 했으랴”라는 구절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남겼던 훈계를 항상 생각하고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송설당은 아버지가 남기신 유훈을 항상 생각하며 아버지가 생전에 이루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가문의 신원을 회복하고자 했던 그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이룰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며 시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자로서의 외로움이나 시름에 대한 시는 송설당의 삶의 후반부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대부분의 여성 문집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이 실려 있는 점을 특징 중의 하나로 본다면, 송설당의 시는 초반부에서는 개인으로서의 자아의식이나 자존감 등을 표현하는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점점 후반부로 갈수록 고향이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면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한탄을 하기도 하고, 여성으로 느끼는 한계와 탄식, 그리고 시름을 표현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송설당의 시름을 표출하는 방식은 다양한데, 꿈 속의 상황을 비유하여 쓴 <꿈을 기록하다(記夢)>라는 시를 통해서도 여자로서의 시름을 보여주고 달[月]을 바라보면서 느끼며,19) 자신의 호를 소재로 하여 <송설당원운(松雪堂原韻)>20)이라는 시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가업을 이어가는데 부딪히는 여자로서의 한, 금강산에 올라서도 내가 남자라면 어찌 처음 왔겠는가라고 표현한다. 이와 같은 남자가 되지 못한 한에 대한 정서를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내고 있다.21) 몰락한 양반가에 딸로 태어나서 집안을 다시 복권시키려는 그녀의 의지는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한계,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이러한 시련과 좌절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집안의 평안을 위해 애쓰며 그 꿈을 잃지 않는 송설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송설당의 시 중에서 ‘화(和)’의 내용이 확인되는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송설당의 <정월 초하루(元朝祝)>라는 시의 4구에서 ‘화(和)’라는 글자가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今日爲元朔 | 오늘 첫 날 새해가 되니 |
門門喜氣多 | 집집마다 즐거운 기운이 가득하네. |
毋兮千歲壽 | 어머니! 천수를 누리시고 |
弟矣一家和 | 아우들! 온 집안 화목하기를. |
杯樽同里巷 | 술 한잔 마을 사람들과 나누니 |
雨露滿山河 | 은혜가 산하에 가득하네. |
仙李光中葉 | 선이는 중엽을 빛내고 |
新春我詠歌 | 새봄은 내가 노래하네. |
1ㆍ2구의 “오늘 첫 날 새해가 되니, 집집마다 즐거운 기운이 가득하네.”의 뒤에 “어머니! 천수를 누리시고, 아우들! 온 집안 화목하기를.”이라 읊고 있다. 새해 아침에 가족들의 화평(和平)을 위해 읊은 시로 보인다. 집집마다 즐거운 기운이 가득하고, 부모님의 건강을 빌고, 집안의 평화를 비는 내용이다. 이는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상생법리와 통하는 지점이며, 솔선수범ㆍ가정화목ㆍ이웃화합의 훈시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새해 첫 날 읊은 시이니, 가족의 화목과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 의례적인 내용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집안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 평생 노력했던 송설당의 삶에 연결시켜보면 새해 첫 날 가족들의 건강과 평안, 화목을 바라는 그녀의 마음은 간절했을 것이다. 이는 술 한잔을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속에 자연과 인간 삶의 조화와 평화가 있는 내용으로 연결된다.
灌圃蒔花樂在中 | 채마밭 물대고 꽃 심는 가운데 즐거움 있어 |
偷閒管領一春風 | 짬 내어 온 봄바람을 거느리네. |
就看和氣團圓處 | 화기 단란한 곳에 나아가 보면 |
好惡何關白與紅 | 좋아하고 미워함이 어찌 홍백과 관계되리. |
송설당의 또 다른 시인 <우연히 읊음(偶吟)>에서도 ‘화(和)’가 표출되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위의 작품은 <우음(偶吟)> 4수 중에 4번째 시로, 가정 내에서의 화목함에서 더 나아가 넓은 의미의 화(和)를 표현하고 있다. 송설당은 가문의 원한을 풀고자 했으며, 그것을 통한 지향은 가정의 화목함이었겠지만 이는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조화, 상생의 법칙 안에서 ‘화(和)’를 마주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채마밭 물 대고 꽃 심는 가운데에 즐거움이 있고, 봄바람을 거느리는 자연 속에서 ‘화기(和氣)’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는 여자로 태어난 한(恨)이 존재하나, 바라는 것은 가족의 평안과 화목이다. 가족들의 화목함을 바라고, 그 안에서 즐거움[樂]을 느낀다. 지금까지 작품을 통해 본 ‘한(恨)’과 ‘화(和)’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가화(家和)’와 ‘상생(相生)’의 관점으로 확장시켜보고자 한다.
Ⅳ. 한시에 나타난 가화(家和)와 상생(相生)
송설당은 집안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앞장에서 살펴봤던 여성으로서의 한(恨)이며, 중요하게 여긴 것이 가정의 화(和)인 것이다. 그녀가 남긴 작품이 산문이 아닌 운문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에 해원(解冤)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있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했던 <꿈을 기록하다(記夢)>에서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총 5언 80행으로 쓰여진 장편고시인데, 중간 부분부터 옥황상제께 자신의 한을 아뢰는 장면이 등장한다.
위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최송설당이 옥황상제 앞에서 큰 절을 올리자 원통함을 모두 하소연하라고 하나, 송설당은 목이 메여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있다. 옥황상제가 송설당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마음 속에 맺혀있던 원통함도 씻겨 내려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옥황상제께 자신의 한을 아뢰는 장면은, 마치 고종에게 가문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이는 대순사상에서의 해원(解冤)을 떠오르게 한다. 시이지만 긴 호흡으로 서사처럼 써 내려간 시의 내용을 통해 원통함을 씻어내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원(冤)을 해소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집안의 화(和)를 위한 것인데, 『대순지침』에서 ‘가화(家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화’의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화’를 이루는 과정 또한 수도의 일환이며, 운수를 받느냐 못 받는냐의 차원까지도 직결되어있는 것이다.22) 또 ‘솔선수범ㆍ가정화목ㆍ이웃화합’의 훈시는 상생의 법리이다. 대순진리회에서의 ‘가정화목’은 수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전경과 대순지침의 말씀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지은 한시를 읽어낼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집에서 온 편지를 보고(見家書)> 3수를 차례로 살펴보자.
첫 번째 수에서는 고향 떠나 홀로 있는 ‘외로운’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늦은 밤 책상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든 꿈 속에서 가족을 만났지만, 현실은 외로운 나그네와 같은 심정이다.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꿈속에 투영된 것이다. 2수에서는 1수에서의 내용이 연결되고 있다. 집으로부터 편지가 오지 않아 집안의 사정을 알지 못해 심적으로만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그 후 갑작스럽게 온 편지에 좋은 소식일지 나쁜 소식일지 알 수 없어서 반가우면서도 놀란 마음이 표현되어있다. 마지막 3수는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두보의 <춘망(春望)>이라는 시를 차용하여, 집에서 온 편지에 대한 반가움이 표현되어있다.23) 반가운 편지 속에는 ‘평안(平安)’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다. 다른 작품인 <기러기 소리를 듣고 아우 생각을 하며(聞雁聲憶弟)>라는 시의 4구에서도 ‘평안(平安)’이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기러기 소리에 잠이 깨, 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보며 자신의 고향인 김천 땅을 지나는 길에 평안(平安)하다는 소식을 전해주라고 표현하였다.24) 고향을 떠나 지내고 있기에 그녀의 시 곳곳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드러나고 있으며, 부모에 대한 그리움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던 듯 하다.25) 외로움 속에서도 가화(家和)를 이루기 위한 시간이기에 견디면서 그로 인해 발현된 정서를 시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시는 <선조의 산소 일로 석태를 정주 선천으로 보내다(先塋事送錫台至定州先川)>이다. 시의 앞부분에서 집안의 상황에 대해 요약적으로 서술되어있다. 유훈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묘사하며, 자식된 도리[子職]를 말한다. 이와 유사한 시가 몇 편 보이는데, 선산에 가서 마주한 조상의 모습에 감정이 폭발하여, 집안의 사연에 대해 길게 서술한다.26) 이 시에서는 집이 몰락한 이후 계속 악재가 겹쳐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과 선조의 묘 앞에서 자손들에게 재앙이 없기를 기도 드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순진리회에서의 ‘가정화목’은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앞에서 살펴봤던 <자술(自述)>이라는 시에서도 만물이 각각 형체를 이루는데, 그 중에서 인간만이 신령스럽고 귀한 존재이며, 자신 또한 삼재 중에 인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삼재 중에 인간, 그리고 자식된 도리로서 외롭고 서글픈 상황 속에서도 ‘평안(平安)’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함이 전달된다. 송설당은 가정의 ‘원(寃)’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남자가 되지 못한 ‘한(恨)’을 느끼며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였지만, 가정을 위한 ‘평(平)’과 ‘화(和)’를 회복하고 이루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Ⅴ. 결론
이 논문은 여성 한시 작가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는 최송설당(崔松雪堂, 1855~1939)의 삶과 작품을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분석해보고자 하였다. 그동안 대순사상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접근에서 축적되었으며, 대순사상 자체에 대한 분석과 의미를 밝히는 연구에서부터 대순사상과 서양철학, 대순사상과 미술 등 예술 분야와의 융합 연구로까지 확장되었다.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대순사상에 입각하여 여성 한시 작품을 분석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대순사상의 관점으로 문학을 분석하였다.
이 연구는 그동안 고전문학에서도 시도되지 않았던 여성 한시와 대순사상의 융합 연구이자, 대순사상 분야에서도 시도되지 않았던 여성 한시와 대순사상의 융합 연구이다. 대순진리회에서 중요한 해원 사상을 고전 작품을 통해 밝혀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대순사상의 출현과도 시대적 맥락을 같이 하는 20세기 초의 최송설당(崔松雪堂)의 한시 작품을, 여성 해원이라는 틀 위에서 ‘평(平)’과 ‘화(和)’의 개념으로 분석하여, 가화(家和)와 상생(相生)으로 나아가는 지점을 찾고자 했다.
<왕소군의 원망(昭君怨)>, <자술(自述)>, <송설당원운(松雪堂原韻)> 등과 같은 작품에서 여자로서의 한(恨)이 표현되었다. 몰락한 양반가에 딸로 태어나서 집안을 다시 복권시키려는 그녀의 의지는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한계,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혔고 이러한 시련과 좌절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집안의 평안을 위해 애쓰며 그 꿈을 잃지 않는 송설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월 초하루(元朝祝)>, <우음(偶吟)> 등과 같은 작품에서는 가족의 평안을 바라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었다. 송설당은 여자로 태어난 한(恨)을 느끼고, 이러한 정서는 가문의 원통함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더 크게 와닿는다. 아들이 아닌 딸이었기에, 남자가 아닌 여자였기에 느끼는 정서와 고난 등을 시로 토로하면서도 계속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노력했던 이유는, 송설당 그녀가 바라는 것은 가족의 평안과 화목이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의 화목함을 바라고, 그 안에서 즐거움[樂]을 느끼는 송설당의 모습이 투영되어있었다.
즉, 송설당은 가정의 ‘원(寃)’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남자가 되지 못한 ‘한(恨)’을 느끼며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였지만, 가화(家和)를 이루기 위해 ‘평(平)’과 ‘화(和)’를 중요하게 여기며 평생을 노력해왔다. 송설당이 그 당시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조상의 신원(伸冤)과 김천에서 교육 사업을 행한 것은 여성의 해원의 측면에서 본다면 적극적인 실천이자 의미있는 부분이다.
이 논문은 대순사상에 입각하여 최송설당이라는 여성 문인을 분석하고자 한 시도였다. 문학과 사상의 융합이라는 학문적 확장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대순사상의 측면에서도 사상 자체에만 몰두하고 연구에서 나아가 사상과 문학을 융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전통시대의 삶과 문화 속에서도 대순사상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고, 이것이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전히 현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