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2024년 12월 3일 윤석렬 전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선포와 이어진 계엄 해제 그리고 2025년 6월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경험하였다. 특히 늦은 봄까지 이어졌던 서울 도심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극우 개신교 집단들의 대규모 집회와 서부지법 폭동 사태 그리고 이들 극우 세력에 적지 않은 보수 정치인들의 동조는 많은 시민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이렇게 한국의 개신교회는 어느덧 극우 세력의 구심점이 되었다. 한국 개신교 보수 세력의 빠른 극우화와 정치세력화는 서구사회에서 기독교 우파조직과 결탁한 극우파의 약진과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개신교 극우 세력이 ‘광장’이라는 공적이고 열린 장소를 십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과시하고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려 함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근래에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종교의 ‘재유행’(resurgence) 혹은 ‘재출현’(reemergence)이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공적 종교’(public religion)’에 대한 학문적 담론은 세계정치에서 종교의 존재감이 뚜렷해진 8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 종교학계의 경우 ‘공적 종교’ 또는 ‘종교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뚜렷이 증가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이다. 당시 신천지교회를 비롯하여 종교단체에서의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정부의 엄격한 방역 대책이 실행되고, 일부 보수 (대형) 개신교회/교단의 정부 방역 방침에 대한 저항 또한 노골화되면서, 당시 일반 시민들의 ‘종교’ 전반에 대한 불신감은 매우 높았다. 이 시기에 종교계는 위기감과 함께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결국 종교계나 학계 모두 한국종교를 되살리려면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담론을 활발히 생산하였다.1) 그러나 비상계엄선포를 계기로 극우 개신교가 주요한 공론장인 ‘광장’과 디지털 공간(유튜브)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과 존재감을 키우면서 일종의 ‘공적 종교’로 떠오른 지금, 그간 종교의 사회참여 즉 ‘공적 종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던 학계나 종교계는 작금의 극우 개신교 현상을 더는 ‘공적 종교’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 이는 종교학계만 보더라도 그동안의 ‘공적 종교’ 논의가 상당 부분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만 강조하면서 무비판적으로 진행되면서, 기독교 근본주의와 같은 반민주적이고 퇴행적인 종교정치 세력이 공적 영역이나 공론장을 점유하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음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까지 진행된 ‘공적 종교’ 담론을 재고찰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관련 담론의 한계를 확인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우선 학계의 ‘공적 종교’ 논의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관련 논의에서 핵심적인 일련의 개념을 정리하고, 이러한 이론적 작업을 바탕으로 한국 종교(사회)학계를 중심으로 특히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공적 종교’에 대한 그간 학계의 담론은 어떤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에서 전개되었고 그 주된 관심사는 무엇인지 분석하였다. 이어서 작금의 한국의 극우 개신교를 둘러싼 제 현상은 ‘공적 종교’ 담론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평가되는지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선행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거쳐 필자는 기존의 ‘공적 종교’ 담론이 상당 부분이 ― 관련 종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 내부자적(emic) 시각에 치우쳐있으며, 무엇보다 규범적 논의가 지배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에 대한 대안적 연구방법은 무엇인가 모색해보았다.
Ⅱ. 주요 개념들
이 장에서는 ‘공적 종교’ 담론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이들 개념이 관련 연구자들의 합의나 동의에 기반한 단일한 정의를 가진 것이 아니기에, 개별 연구자의 관심사/관점이나 학문영역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한 개념(사)적 고찰이나 연구자들 간의 개념 사용의 차이점 등은 제한된 지면은 물론이고, 본 논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기에, 이 장에서는 다음 장에서 다룰 한국 학계의 ‘공적 종교’ 논의를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으로 일련의 주요 개념에 대한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19세기 서구의 사회학계를 지배했던, 종교는 근대화, 산업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잃고 결국 소멸한다는 ― 특히 단선적인(linear) ― 세속화 테제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기점으로 그리고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 발생 이후에는 세계정치에서 종교의 존재감을 더는 부인할 수 없게 되면서, 서서히 파기의 수순을 밟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재등장에 주목하면서 버거(Peter Burger)는 이미 1990년대 ‘탈세속화(desecularization)’를 언급하기 시작했으며,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9.11 테러 이후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파급력을 재확인하고 이는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인식하에 2008년 자신의 강연을 시작으로 현대사회를 ‘post-secular society’ 즉 ‘후기 세속사회’라고 표현한다. 하버마스는 이 용어를 통해 현대사회는 세속적 사회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종교 또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세속화에 대항하고 적응하고 진화하면서 공적 영역에 재등장하여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지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자 하였다.2) 종교가 공적 영역에 다시 등장하게 된 이유를 하버마스는 근대적 ‘도구합리적 이성(instrumental reason)’ 또는 세속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설명한다. 특히 도구합리적 이성은 과학주의와 자연주의에 몰두하여 그 외의 설명방식을 모두 비합리적이라고 거부하고, 계몽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세속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세속주의 또는 세속적 이성은 종교적 신념을 가진 행위자들을 정체성 위기에 빠뜨려 강력한 인정투쟁의 동기화를 추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세속사회에서 종교는 정체성 위협에 대응하는 인정투쟁에서 정체성의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3) 무엇보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후기 세속사회는 종교와 세속이 공존하는 사회로 그는 이 두 세력 사이의 소통과 대화를 통한 사회적 통합을 기대하였으며, 여기서 ― 뒤에서 다룰 ― 그의 ‘공론장(public sphere)’과 의사소통 행위이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카사노바(José Casanova)는 일찍이 1994년 자신의 저서 Public Religions in the Modern World(근대사회에서 공적 종교)에서 종교가 공적 영역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공적 종교(public religion)’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4) 무엇보다 카사노바는 앞의 저서에서 세속화 이론이 세 부분 혹은 세 하위명제 ― ① 종교의 영향력 감소로서 세속화, ② 기능적 분화, 즉 종교와 세속의 분화로서 세속화, ③ 종교의 사사화(privatization)로서 세속화 ― 로 구성되어 있다며, 이 가운데 ②는 인정하지만 ①과 ③은 경험적으로 반증할 수 있기에 수용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즉 그는 종교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종교가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되어 개인적 신앙에 집중한다는 사사화 이론에 반대한다. 오히려 그는 종교의 사사화 과정은 역전 즉, 탈사사화(deprivatization) 과정을 겪고 있으며, 그 결과 종교는 새로운 공적 영역에서 재등장하였고, 80년대부터 종교가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적인 집단행동의 선두에 서면서 하나의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 사례로 그는 미국의 ‘신기독교 우익(New Christian Right)’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근본주의, 반핵 투쟁과 경제/분배 정의에 관해 질문을 제기했던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브라질과 중남미의 민중교회, 폴란드의 민주화운동을 이끈 가톨릭연대 혹은 연대노조(Solidarność), 스페인에서 국가로부터 가톨릭교회를 분리하려던 탈제도화(Disestablishment) 운동을 제시한다.5)
카사노바는 종교의 탈사사화를 “종교가 사적 영역에 할당된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비분화된 시민사회의 공적 영역에 진입하여 논쟁, 담론적 정당화, 경계의 재편이라는 지속적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6) 이런 맥락에서 카사노바는 시민사회를 근대성의 긍정적인 결과물로 그리고 종교를 시민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보아, 종교가 시민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시민사회를 국가와 시장과는 구분되는 자발적인 영역으로, 공정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위치하며, 동시에 이 두 영역 모두에 침투할 수 있고 이 두 영역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카사노바가 그의 초기 저술에서는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재등장을 시민사회로 제한하면서, 그가 공적 종교를 시민사회와 같이 규범적으로 개념화하였다면, 후기 저술에서는 현대의 공적 종교를 시민사회의 공적 영역으로 제한하였던 자신의 이론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였다는 것이다.7) 한편 카사노바는 ― 이상태(ideal type)로 ― 세 가지 유형의 공적 종교를 구분했는데, 이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세 주요 영역인 ① 국가, ② 정치사회, ③ 시민사회와 일치하는 것으로, ① 기성 국가교회, ② (정당, 사회운동, 로비 기관을 통해) 정치적 경쟁을 위한 제도적 자원을 동원하는 종교, ③ 시민사회에 진입하여 공공 문제/정책, 공동선 등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에 참여하는 종교가 그것이다.8)
하버마스는 1962년 그가 정치학과 교수자격심사(Habilitation) 논문으로 제출한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Untersuchungen zu einer Kategorie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공론장의 구조변동 :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에서 서구에서 공론장의 등장과 변화과정을 추적하여 근대사회의 특징을 도출하고자 하였다.9) 앞의 논문에서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기원 또는 이상적 모델을 17~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살롱과 커피하우스 등에서 발견하고, 이곳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민들이 사적 개인의 영역을 넘어 공공의 문제를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며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공론장은 기능적으로 분화한 근대사회에서 시민사회와 정치체계 혹은 사회와 국가 사이에 자리하면서 이 둘을 매개하기에, 사적인 영역에서 형성된 의견이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가능케 하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에 기여한다는 것이다.10) 이런 맥락에서 하버마스는 혈연이나 종교에 토대를 둔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숙의/토의 민주주의를 거친 시민들의 의지가 결합된 규범을 기반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핵심으로 사회 질서 확립을 기대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11) 무엇보다 그는 공론장의 중요한 특징으로 ‘공개성’과 ‘접근가능성’을 들었으며, 이는 정보가 모두 공개되어야 하고 어떤 권력의 감시나 억압 없이 공론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12)
그러나 공론장에 대한 이러한 기대와 달리 하버마스는 공론장이 20세기에 들어와 껍데기만 남고 쇠락하면서 당시(1960년대) 서구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그는 1990년 같은 저술의 재판(再版)에서 1960년대 이후에도 서구 자유주의 사회에서 공론장은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살아 있으며 시민 주체의 저항 능력도 작동하고 있다고 자신의 이전 판단을 수정한다. 그러다가 하버마스는 다시 자신의 최근(2022년) 저술 Ein neuer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und die deliberative Politik (공론장과 숙의 민주주의의 새로운 구조변동)에서 급속한 디지털화로 인한 미디어 구조의 변화는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고, 이는 숙의/토의 민주주의에 커다란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는 비관론을 펼치고 있다. 다시 말해,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플랫폼으로 인해 정치적 공론장이 변하면서 합리적 토론이 훼손되고 가짜 뉴스와 (알고리즘으로 인해)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고 강화하는 정보나 의견만을 접하게 되는 환경이 생성되면서, 숙의 민주주의의 ‘경합’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화한 의사소통의 기술적 진보는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여 시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훨씬 더 촘촘한 분리와 경계를 통해 공론장의 파편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소셜 미디어의 배타적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공사의 구분이 약화하고 단편적이고 순환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자리를 잡으며, 정치적 공론장 자체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왜곡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변화된 미디어 조건이 결국 포퓰리즘이 만연하는 환경을 만들어 공적인 의견 형성의 토대인 숙의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3)
더불어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특별한 방식의 의사소통을 제안하였다. 그는 1981년 자신의 저서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s (의사소통적 행위이론)에서 개인의 주관적 이성을 넘어 상호주관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합리성이 도출되고, 결국 사회적 통합과 연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하버마스는 종교가 공론장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언어를 세속의 언어로 번역하여 모든 참가자에게 접근 가능해야 하고, 상호비판에 개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모더니티의 특성인 세속적 언어는 표준화와 공유 가능한 일반성을 추구하기에, 종교적 언어나 성스러움의 개념조차 오늘날에는 세속주의의 언어체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종교가 공공성 혹은 보편성을 획득하려면 합리성이라는 기준을 통과해야 하며, 합리적인 언어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4)
한편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반적인 비판은 그의 공론장 개념은 경험적 적합성보다는 민주적 의사소통을 위한 규범적 이상을 제시하면서 지나치게 규범적으로 논의가 흐른다는 것이다. 즉 그의 공론장에 대한 이상은 관념적이고 실현 불가하며, 무엇보다 감정과 신체성, 미디어의 중요성, 공공선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갈망 등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15) 유사한 맥락에서 그의 공론장 개념이 언어적 의사소통에 기반을 두면서 그 밖의 다양한 방식의 의사소통 ― 비언어적 소통, 신체적/감정적 퍼포먼스 등 ― 이 간과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 결과 의사소통에는 복수의 양식이 있으며, 특히 감정과 몸짓(퍼포먼스)도 상호이해 지향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언어적 방식뿐 아니라 비언어적 방식으로도 (특정 집단이나 주변인을 배제하는) 사회적 상상이 공론장을 구성하고 다시 공론장은 사회적 상상을 구성한다는 주장이 나온다.16)
그러나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은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나왔으며, 이중 프레이저(Nancy Frazer)와 영(Iris Young)은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주된 비판은 하버마스가 제시한 18세기 부르주아 공론장은 특정 계층과 성별에 국한된 것으로, 여성과 다른 주변 집단은 참여에서 배제되었다는 것 그리고 하버마스는 단일한 공론장을 상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에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참여하는 복수의 서로 경쟁하는 공론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17) 프레이저는 하버마스의 이론이 기본적으로 18세기 부르주아 공론장을 이상화하면서 여성들을 포함한 주변인들과 타자들을 공론장에서 배제했다고 비판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의사소통 합리성 또한 실제로 유사한 계층의 사람들끼리 토론이기에 이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공론장과 공동체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이러한 정치적 발언권의 불평등을 제거할 방법은 부르주아 공론장에 대한 도전과 저항뿐이라며, 대안적 공론장인 ‘서발턴 대항 공론장(subaltern counterpublics)’을 제시한다.18) 여기서 ‘대항 공론장’은 사회에서 주변화된 여성, 노동자, 빈곤층, 종족적/인종적/종교적 소수자 등을 동등하게 공론장에 참여시켜 지배적인 공론장에서 소외된 자들이 목소리를 냄으로써 기존의 공론장과 대등한 ‘대항 담론’을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프레이저가 제시하는 공론장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평등, 문화적 다양성, 참여 민주주의가 구현된 공간이라 할 수 있다.19)
아이리스 영 또한 기존의 공론장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하여 대안적 공론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후자의 역할은 침묵을 강요당한 민중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발화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공론장에 사회적 차원을 추가하여 개념 확장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사회적 갈등이나 긴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공론장에서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대한 페미니스트 진영의 비판적 접근은 결국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공개성’과 ‘접근성’을 보다 ‘급진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20)
한편 공론장을 이론화하는 데 있어 공공 공간(public space)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학계의 인식이 확산하고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공공 광장(public square)’이라는 용어 또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는 담론적/언어적 상호작용, 미디어 스펙터클, 소셜 미디어의 사용 등이 모두 공론장의 활성화나 사회운동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들이지만, 해당 활동이 지속되려면 이들 요소가 물리적 공간과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머레이(Billie Murray)는 ‘공공 광장(public square)’과 공공 스크린이 점유되는 방식을 조사함으로써 공론장 유지에 공공 공간의 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월가 점거와 같은 대규모 저항적 시위가 동시에 ― 공공 장소를 점거하는 ― ‘오큐파이(Occupy)’ 운동이라는 점은 공론장이 작동하는 데 공공 공간 점거가 핵심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21) 이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대중들의 대규모 자발적 정치집회에서 참가자들의 광장 점거가 그 파급력을 확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공론장(public sphere)’과 ‘공공 광장(public square)’을 개념적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으며, 여기서 전자는 토론/논쟁과 합의를 통해 공적 의견이 형성되는 ‘개념적 공간’이라면, 후자는 종종 모임이나 시민활동에 사용되는 도시나 마을의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공론장’을 토론을 위한 가상적 또는 은유적 공간으로, ‘공공 광장’은 상호작용과 행사를 위한 구체적인 ‘물리적 공간’으로 구분하려는 의도이다. 동시에 ‘공공 광장’의 개념은 더욱 확장될 수 있는데 A Practical Guide to Religion in Public Squares (공공 광장의 종교에 대한 실용적 안내서)에서는 ‘공공 광장’은 개인 주택과 예배소를 제외한 모든 장소를 의미하며, 보다 광의로는 인터넷과 같은 매체를 비롯하여, 대중에게 접근 가능하고 열려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22)
Ⅲ. 한국 학계의 ‘공적 종교’ 논의
이 장은 본 논문의 중심이라 할 수 있으며, 지식사회학적 시각에서 ‘공적 종교’가 한국 학계에서 언제부터 무엇을 계기로 하나의 중요 주제로 등장하였으며, 관련 담론이 현재까지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 데는 어떠한 구체적인 종교적/사회적 배경이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인문사회과학 분야로 종교학과 사회학에서 진행된 ‘공적 종교’에 대한 논의를 함께 다룬 것은 종교학에서는 종교사회학을 하위 분야로, 그리고 사회학에서는 종교사회학을 하위 분야로 두면서 이 두 학문 분과의 연구가 내용이나 방법론적으로 중첩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종교(사회)학계에서 공적 종교 혹은 종교의 공공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2014년부터 관찰된다. 2014년 6월 21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는 “종교와 공공성”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연구소의 심포지엄 안내문에는 ‘공공성’은 상식적인 공·사 이원론으로는 파악할 수 없으며, 단일 학문 분야만으로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기에, 통섭적 학문적 접근이 요구된다며,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가 불러온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서 ‘공공성과 개인’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되며, 현재의 글로벌 문제를 논할 수 있는 새로운 ‘포스트 이데올로기적’ 비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학술대회의 배경을 밝히고 있다.23)
더불어 학술대회 안내문은 발표자들이 다음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① ‘종교와 공공성’ 문제는 종교가 사적 영역에 속해 있다는 사고가 무너지면서 등장했으며; ② 종교와 공공 영역의 문제는 종교가 해야 할 일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근본적 전제이고; ③ 공적 영역에 대한 정의에는 국가권력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맥락 등 상이한 관점이 존재하며; ④ 다수의 한국 종교단체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기업집단과 유사하여 종교 내부의 공공성 문제 또한 중요하다.24) 해당 학술대회에서는 공공성이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① 생태적 불안사회에서 종교의 역할, ② 한국 개신교회/대형교회의 공공성 위기, ③ 미국 개신교 내 종교자유 담론투쟁, ④ 한국 신종교의 개벽사상, ⑤ 일본 국가신도와 공·사 관념을 다룬 총 5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25)
같은 해 8월 2일에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모임인 ‘연구집단 카이로스’가 “공공의 적, 공공의 신 : 한국 개신교는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이란 제목의 포럼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언급할 것은 해당 모임은 기독교(개신교) 배경을 가진 사회과학자들이 주로 개신교의 주요 이슈를 다룬다는 점이다. 이 포럼의 안내문에는, “기독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바람과 희망을 제시하는 ‘광장에 선 기독교’ 대신에 ‘광장에 선 호모포비아’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공공적’이고자 했으나 ‘공공의 적’이 되버렸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현재 한국의 광장과 공론장에는 다양한 신념의 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본 포럼을 통해 후기 세속사회인 한국에서 개신교의 공적 모습은 어떠하며, 한국 개신교는 공론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한다고 적고 있다.26) 이 포럼에서는 3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①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공공신학」; ② 「광장에 선 호모포비아? : 후기 세속사회 공론장에서의 공공성 투쟁」; ③ 「개신교의 동성애 논쟁 : 적대적/우호적 집단의 감정과 의례」. 특히 해당 포럼에서는 사회학적 시각에서 동성애를 둘러싼 한국 개신교인들의 담론과 집단행동을 사례로 ‘공적 종교’ 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인 ‘공론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중 ② 「광장에 선 호모포비아?」는 해당 포럼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발표자들은 다양한 개신교 주체들이 한국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논쟁거리를 만들며 공공성을 새롭게 규정하려 한다며, 이들이 광장을 만들어나가는 공적 영역의 주요 행위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행위자는 소통 방법에서 대별되는데, 즉 공론장에서 종교적 언어로 말하고 종교적 의례를 행하면서 신성함을 경험케 하거나, 이와는 반대로 공론장에서 세속을 신성하게 만들고자 세속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발표에서는 특히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찬·반운동 집단의 상이한 공공성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 현재 한국 개신교(보수와 진보)의 공적 모습은 어떠하며, 이들은 공론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27) 따라서 이 포럼은 최근 급성장한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을 그동안 변화된 공론장의 역학이나 주도권 경쟁 속에서 이해하는데 매우 생산적인 출발점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언급하고자하는 것은 앞에서 소개한 종교문화연구소의 심포지엄과 연구집단 카이로스 포럼이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후 같은 해에 열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전자의 경우 세월호 참사 두 달 뒤에 개최되었기에 학술대회 준비기간을 고려하면 세월호 사고가 해당 학술대회의 주제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6월 초 작성된 해당 심포지엄의 안내문에는 세월호 사고를 연상시키는 ‘도덕적 불감증’, ‘무차별 사리사욕을 채우는 개인주의’ 등의 표현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당시에는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즉 세월호 참사와 같은 전대미문의 대형 사고가 일어나면서 국가/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재난 경험은 개인과 공동체에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기면서 종교학자들이나 종교 주체들이 대규모 사고/재난에 직면하여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학계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할 만큼 세월호 사고는 교회의 성찰과 변화를 요구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의 신학이 주로 교리적이고 개인 구원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후에는 ― 물론 진보 진영의 신학계에 국한되지만 ― 사회적 책임과 연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신학으로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28) 그러나 한국 종교학계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 앞의 종교문화연구소 심포지엄 이후에도 ― 유의미한 연구가 발견되지 않는다.29) 이에 반해 (종교)사회학자 오세일과 박진우는 2016년 논문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공공 영역에서 전개되었던 천주교와 개신교의 찬반 논쟁을 분석하였다. 이들은 이 두 종교집단의 갈등 원인인 상이한 세계관을 경험적 조사 ― 세월호 관련 문헌/자료 분석과 인터뷰 ― 를 통해 확인하고, 이를 통해 이 두 종교집단이 가진 사회통합에 대한 대응방식의 차이와 공론장에서의 갈등을 설명하고자 하였다.30)
한국 종교학계의 공적 종교 담론에서는 무엇보다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대상은 주류 신종교들이다. 관련 연구에서는 ‘한국 자생종교’ 또는 ‘민족종교’로 불리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소위 근대 신종교 ― 동학/천도교,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 에 초점을 맞춰 이들 종교의 시대 인식이나 사회개혁 사상을 비롯하여 이들이 실제로 추진한 복지/구호/교육 사업 등을 ‘공공성’의 차원에서 재해석 혹은 재평가하였다. 여기에는 국가의 대폭적인 지원도 한몫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은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이 “근대문명 수용과정에 나타난 한국종교의 공공성 재구축”(2016~2018) 그리고 “한국종교운동의 시민적 공공성의 세계적 확산”(2020~2022)을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의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을 연이어 수행하면서, ‘종교와 공공성’ 총서 5권을 연구 결과물로 내놓은 것이다: 『근대 한국개벽종교를 공공하다』(2018),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2019), 『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읽다』(2020), 『근대 한국종교, 세계와 만나다』(2021), 『근현대 한국종교의 생태공공성과 지구학적 해석』(2022).
앞의 총서의 제목들이 보여주듯 신종교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에서는 한국의 주류 신종교들이 공유하는 ‘개벽(開闢)’ 사상 ― 즉 당대를 낡은 세계가 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일종의 우주론적 전환기로 믿는 사상이자 구원 논리 ― 이 중심에 놓여있다.31) 이는 개벽사상이 당시의 시대 인식으로, 신종교들의 현실 비판의식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기존의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제도와 관행 및 윤리 규범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기획/실행하는 데 중요한 우주론적/초자연적 근거로 작동하였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부 연구자들은 개벽사상이 보여주는 공공성이 한국의 정신문화 유산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표방함으로써 인류사회의 공공성에도 이바지한다며 그 의미를 확대해석하기도 한다.32) 한국의 신종교를 ‘공공성’의 차원에서 재해석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다시 말해 현재를 통해 과거를 해석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공적 종교’나 ‘종교의 공공성’은 전 지구적으로 현대사회의 공적 영역이나 공론장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다시) 증가하는데 고무받아 이를 기술/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론이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 신종교는 여전히 봉건사회이거나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등장하였기에 이들에게 현대적 개념인 ‘공공성’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제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관련 연구에서는 ‘공공성’ 논의를 통해 근대 신종교의 사회개혁 사상이나 구체적인 실천내용을 객관적으로 재평가하기보다, 이들 종교의 ‘공공성’을 선험적으로 미리 전제하거나, 이들 종교를 이상화하는데 ‘공공성’ 논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그 결과 ‘공공성’에 대하여 자의적인 정의를 내리거나, 개념의 외연을 극도로 확장하는 사례도 관찰된다.33) 무엇보다 관련 담론에서는 한국의 근대 신종교를 일괄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 종교는 서로 다른 종교적 그리고 사회역사적 배경을 가진 독립적 실체이고, 사회참여의 방식이나 정도에서도 서로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세밀한 비교작업 없이 공공성 담론에서 이들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담론 형성은 ‘민족종교’ 즉 주류 신종교에게 긍정적인 아우라를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오며, 이런 맥락에서 이들 종교에 소속된 대학연구기관이 관련 담론의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 종교학계에서 종교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대폭 증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제도종교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확산이었다. 무엇보다 종교모임에서의 집단 감염, 방역지침 위반으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행정조치, 방역 조치(대면예배 금지)에 대한 개신교 일부 보수 교단의 저항과 방역 당국과의 충돌 등은 개신교회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물론이고 ‘종교’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높였다.34) 이러한 당시의 현실적 상황은 종교계와 학계 모두 종교와 국가/사회/시민사회와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팬데믹 동안과 그 이후 종교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었으며, 종교의 ‘공공성’ 또한 중요 의제로 다루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팬데믹 동안 한국의 종교학 관련 학술단체들은 거의 모두 (비대면) 학술대회를 열고 위드/포스트 코로나 시대 종교의 역할(변화)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한국종교문화비평학회(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2021년 5월 “코로나 이후 종교와 종교학”이라는 제목으로 상반기 정기심포지엄을 열었으며, 한국종교학회는 2021년 6월 “재난과 종교 : 위드 코로나 시대의 한국종교”라는 제목으로 춘계학술대회 그리고 12월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종교”로 추계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한국신종교학회 또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신종교와 신종교학”이라는 주제로 2020년 11월에는 추계학술대회 그리고 2021년 6월에는 춘계학술대회를 연이어 개최하였다.
여기서는 이들 학술대회를 중심으로 ‘공공성’이나 ‘공적 종교’를 중요 주제로 다루고 있는 두 논문을 살펴보고자 한다.35) 한국신종교학회 춘계학술대회(2021년 6월)에서 신광철은 자신의 논문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신종교와 신종교학」에서 일부 종교계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하여 저항하면서, 대규모 집단 감염의 주요 발생 사례 중 상당 부분이 종교(개신교)와 관련되었음을 언급한다. 그는 이렇게 종교인들의 모임이 시민들에게 두려움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종교가 공공성을 담지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며, 이는 종교가 공공성 앞에서 위기에 봉착한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코로나19는 종교의 지향에 대한 전면적 성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간 신종교학회 춘계와 추계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크게 세 주제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① 위드 코로나 국면에 대한 (신종교의) 인식 및 종교적 의미부여; ② 위드 코로나 상황에 대한 교단의 대응 및 평가; ③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망. 이를 바탕으로 그는 학술대회 발표자들이 공통으로 제기한 개념이 ‘공공성’이었다며, 종교와 국가, 종교와 시민사회는 ‘공공적’ 맥락에서 서로 힘을 나누어야 한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신종교학’은 ‘다시 개벽의 신종교학’, ‘공공성의 신종교학’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또한 그는 지금 한국의 신종교계는 ‘재난 거버넌스’라는 공통의 과제를 가지고 있기에, 신종교는 ‘공공적 배려’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하며, 신종교학은 이를 위한 이론적 토대와 실천적 지향점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36)
안신 또한 자신의 논문 「위드코로나 시대에 한국 신종교의 인식과 대응」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국내 신종교의 반응을 분석하면서 공공성 논의를 펼친다.37) 그는 여기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외래 신종교와 자생 신종교를 언급하며 코로나 사태에 대한 기독교(개신교/천주교)와 불교의 인식이나 대응과 달리, 이들 신종교 공동체는 팬데믹에 의한 질병과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에 과학적이고 영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종교적 맥락에서 효과적이고 창조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에서 그는 국내 신종교 공동체들은 신천지교회에서의 코로나 확산을 타산지석으로 “종교의 사회적 책임 즉 신종교의 공공성” 증대를 위한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사회적 책임의 차원에서 종교교육과 종교복지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며, 한국의 신종교 공동체는 코로나19를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생의 대상으로 보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38)
앞서 다룬 두 편의 연구물은 한국 종교학계의 팬데믹 시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나 공공성을 다룬 다른 연구물과도 일련의 공통점을 가진다. 즉 대다수의 연구는 (신종교 포함) 제도종교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이는 한국 종교학계가 코로나 사태를 한국 제도종교의 커다란 ‘위기’ 또는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면서,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서 조직종교의 대응과 역할을 핵심 주제로 삼았음을 말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 담론에는 연구자의 객관적 시각과 함께 ― 관련 종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 내부자적 관점이 혼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공적 종교’로서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규범적 논의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종교 학자들이 팬데믹 시대 종교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는 논의에서 전면에 나선 것은 한국의 신종교가 소수 종교로서 팬데믹 사태와 같은 전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 신천지 사태와 같이 ― 쉽게 공공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기에 이에 대한 자기방어적 태도가 간접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코로나 사태를 다룬 종교학 연구에는 팬데믹으로 인한 특정 종교조직의 구체적 변화를 기술하고 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보다는 코로나가 종교에 미칠 부정적 혹은 긍정적 영향을 조망하고, 팬데믹을 계기로 이들 종교가 변해야 할 당위성을 논하는, 즉 규범적 논의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코로나 사태를 제도종교 그리고 ‘종교’ 전반에 대한 하나의 중대한 위협으로 보았던 종교계와 종교학자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한국 종교학계의 팬데믹 담론에서는 종교의 공공성 논의와 함께 규범적인 종교 역할론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물론 코로나 사태와 같은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종교의 순기능을 기대할 수는 있어도, 종교 역할론이 종교학계 코로나 담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문제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한국종교의 다차원적인 ― 의례/예배 방식, 조직구조, 공동체 의식, 성직자의 권위 등에서 ― 변화를 객관적으로 조사·분석하고 기술하는 것을 넘어, 종교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 종종 특정 종교(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 위드/포스트 코로나 시대 종교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제언하는 것이 과연 종교학자의 역할인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한국종교사회학회 또한 2022년 9월 17일 “뉴노멀 사회의 도래와 한국 종교 공동체의 변화”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커다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3대 종단인 천주교, 개신교, 불교의 개별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종교에 대한 발제를 이들 종단의 종교인이며 동시에 사회학자인 ― 천주교의 최영균(시몬) 신부; 개신교의 정재영; 불교의 박수호·정승안 ― 연구자들이 맡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앞서 언급한 종교학자들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관련 현상의 분석과 이어진 대안모색과 제언에는 객관적(외부자적) 시각과 내부자적 이해관계가 함께 작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학술대회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종교의 ‘공공성’이나 ‘공적 종교’를 특별히 이슈화하지 않았기에, 여기서는 한국의 (종교)사회학자들이 팬데믹과 종교의 공공성과 관련하여 ‘거버넌스(governance)’를 중심 개념으로 차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일련의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학계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팬데믹을 포함한 생태학적 제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면서 시야를 확장하게 된다. 여기서 일부 (종교)사회학자들은 생태학적 난제의 해결을 위한 공공정책의 전환에 종교의 공적 역할과 참여가 중요하다며, 기존의 ‘종교의 공공성’ 논의를 넘어서는 ‘종교 거버넌스(religious governance)’라는 새로운 접근방법 혹은 개념을 제안한다. 거버넌스는 학문분야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정의와 접근방법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문제해결 방식이 아닌, 다양한 주체/행위자 ― 종교단체, 정부, 기업, 비정부기구, 전문가, 시민단체 등 ― 가 상호협력과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여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줄이면, “함께 결정하고 실행하는 방식”인 것이다.39)
이런 맥락에서 서동은은 거버넌스를 ‘협치’로 번역하면서, 팬데믹 기간 불거진 종교와 국가 사이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협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정부가 종교단체에게 일방적으로 방역지침을 하달하고 실행하면서 공적 영역의 정부가 사적 영역의 종교를 침해하였고, 더 나아가 종교단체들이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종교활동이 현저한 제한을 받으면서, 이들 단체가 종교의 자유를 주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이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종교의 새로운 관계설정 즉 협치의 관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연구가 ‘거버넌스’란 다소 생소한 개념을 ‘종교의 공공성’ 논의에 새롭게 차용한 의도는 팬데믹 기간 종교단체가 정부와 겪은 갈등을 계기로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일방적인 통제/규제가 아닌 공적 영역에서의 협치의 관계로 재설정하고자 함이라 할 수 있다.40) 따라서 관련 담론은 일정 부분 종교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공공성’ 담론을 ‘종교거버넌스’의 시각에서 새롭게 전개한 대표적인 연구프로젝트로는 경희대학교 종교시민문화연구소의 “사회진보와 공화적 공존 : 개인, 종교, 공동체”(2013~2019)와 “포스트팬데믹 시대 종교거버넌스 패러다임 연구 : 종교생태 담론을 중심으로”(2021~2027)가 있으며, 이들은 각각 한국연구재단의 사회과학연구 지원사업과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3권의 ‘종교거버넌스’ 총서를 연구결과로 내놓았다: 『종교와 공공성 : 감염병과 기후 위기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2022), 『종교생태담론 : 인식과 실천』(2023), 『종교거버넌스와 종교영성』(2024). 앞서 소개한 국가지원 사업이었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연구프로젝트가 주로 종교(철)학적 시각에서 한국 근대 신종교의 공공성을 전제로 관련 사상이나 실천/사업을 소개하였다면, 경희대 종교시민문화연구소는 보다 융복합적 관점에서 종교의 공공성을 다양한 ‘현대적’ 주제 ― 거버넌스, 생태계 회복, 종교영성 ― 와 연결함으로써 공공성 논의의 외연을 확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무엇보다 종교 외 주체들과의 소통, 연대, 협업을 전제로 종교의 공공성을 구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주의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41)
한국의 극우 대중운동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 이후 개신교가 흐름을 주도하며 정치무대 한가운데로 들어오면서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남겼다. 극우 정치 세력의 빠른 성장과 이들 세력과 극우·보수 개신교의 결탁은 유럽에서 미국까지 이어지는 동시대의 전 세계적인 정치 흐름이라고는 하나, 유럽 극우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우익 포퓰리즘을 앞세우며 성장하면서 비교적 탄탄한 대중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극우 현상과는 차이가 있다. 한편 한국과 미국의 보수(복음주의) 개신교는 정치,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 왔는데, 이는 냉전 시대 이후 미국의 복음주의가 한국 개신교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일련의 공통된 보수적 가치관 ― 배타적 민족주의, 반공산주의, 가부장주의, 반동성애 등 ― 이 한몫을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보수적 개신교는 사회적 맥락이나 정치적 활동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미국 개신교는 건국 초기부터 사회적, 정치적 주류 세력이었고, 여러 정치적 이슈에 다양한 방법 ― 직접적인 정치 참여, 로비 활동, 선거 운동 참여 등 ― 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면, 한국의 보수 성향 개신교의 정치 참여는 최근 몇십 년 동안 그 영향력이 커진 것으로, 정치 참여 방법 또한 다변화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태극기 집회’로 대표되는 광장정치에 몰두하면서 빠르게 극우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의 극우 개신교에 관한 연구는 현재까지 종교사회학자들과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내놓았으며, 그 관심사는 크게 교리적 배경 ― 복음주의, 근본주의, 은사주의, 신사도 운동 등 ― 과 사회역사적 배경으로 나뉜다.42) 여기서는 한국 개신교의 보수/우익 세력이 정치 영역에 진입하면서 극우화되는 과정을 통시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두 연구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김현준은 한국의 개신교 보수 세력이 극우 세력으로 ‘발전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보수우익 개신교는 70~80년대 ‘국가조찬기도회 정치’를 시작으로, 90년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광장정치’와 기독당을 거쳐, 2000년대 역시 기독당과 기독교 뉴라이트라는 ‘전문적 사회운동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2010년 전후 에스더기도운동이라는 혐오와 차별 기반의 전방위적 세력으로 그 전략적 형태를 바꾸며 발전해왔다. 그 과정에서 극우 논리는 상대적으로 보다 치밀해졌고, 개교회와 하위 집단 내의 극우 이데올로기는 강화되어왔다. 기본적으로 개신교 보수주의는 반공주의와 근본주의를 그 핵심으로 하는데, 최근의 극우적 보수주의는 반공주의에 동성애혐오, 여성혐오(반여성주의), 이슬람/이주민혐오(인종주의)를 추가하며, 혐오와 차별 주장을 국가적 이익, 즉 ‘공공성’ 담론으로 포장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러한 배타주의와 내셔널리즘은 극우 이데올로기의 주요 특성이다. 극우 이데올로기는 자기 집단의 속성을 기준으로 정상/비정상, 국민/비국민을 구분하고 후자를 배제함으로써 자기 집단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구성하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다.43)
한편 강인철은 1990년대와 2003년을 개신교 우파의 등장에 결정적인 시기로 파악했다. 즉 1970·80년대에 개신교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고, 특히 보수 교단들이 그러했으나 다수였던 개신교 보수 그룹은 개별적으로 행동하면서 정치 참여를 멀리했지만, 소수였던 진보 단체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를 중심으로 결집,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면서 개신교의 대외적 이미지가 진보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1989년 말 한기총이 결성되면서 이를 중심으로 개신교 보수단체들이 결집하고, 1990년대 중반에는 보수 교단들이 재정위기에 빠진 교회협을 사실상 장악한 후 2000년대 이후부터 한국 개신교는 대외적으로 뚜렷한 보수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한국의 정치무대에서 개신교 우파의 존재감은 미미했으나, 2003년에 대규모 시국기도회를 두 차례 열면서 보수개신교의 ‘정치적 행동주의(political activism)’가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44)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국 극우 개신교의 전개 과정에 관한 연구는 그간 상당히 축적되어있으나 ‘공적 종교’의 관점에서 관련 현상을 분석한 연구는 드물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한국의 종교(사회)학계에서 ― 특히 팬데믹 이후 ― 활발히 진행되었던 공적 종교 혹은 종교의 공공성 논의는 작금의 극우 개신교의 정치세력화 현상을 맞이하면서 더는 진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의 극우 세력이 후기 현대사회의 주요한 공론장인 디지털 공간(유튜브, 카카오톡 단체방 등)은 물론이고 물리적인 ‘광장(public square)’ 또한 최대한 이용하면서 여론 형성과 국내 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실질적으로(de facto) ‘공적 종교’로 작동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학계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공적 종교’라는 용어가 ― 현대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종교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 특정 현상을 단순 기술하는 것을 넘어,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 사회문제 해결과 공공선 추구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규범적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후자는 ‘공적 종교’에 대한 이상화된 이해 혹은 이상태(ideal type)로 종교의 선한 영향력은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긍정적 함의를 지닌 ‘공적 종교’의 시각에서 민주/헌정질서를 흔들고 헌법기관인 법원과 국회에 난입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극우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당연해 보이며, 이는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공공선(公共善, common good)에 기여해야 한다는 신학적 입장을 표방하는 공공신학에서 가장 신랄하다. 이런 맥락에서 극우 개신교는 흔히 공공선의 부재와 시민사회와의 소통/연대 부족을 이유로 그 공공성이 부정되어 ‘공적 종교’의 범주에서 배제된다.45) 여기서 공공선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치를 말하나,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에 따라 그 내용이 변하여 왔으며, 다분히 주류 세력의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공공선은 과연 무엇인가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한국의 극우 개신교가 ‘공적 종교’ 담론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상은 개신교계가 이들의 사회정치적 존재감을 인정하기보다 애써 축소하려는 경향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개신교계는 개신교인 중 극우는 소수(13.5%)이고, “다수 교인이 실제로는 중간 스펙트럼에 있으나, 여론 형성에서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광장의 극우는 한국 개신교를 과잉 대표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46) 그러나 극우 개신교 세력의 대중매체 노출정도나 화제성, 현실정치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한다면 개신교 보수 세력의 극우화를 한국 개신교의 지엽적인 문제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극우 개신교의 아이콘인 전광훈이나 손현보 목사의 경우 사회적으로나 교계에 큰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교단은 이들을 출교시키거나 크게 징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들 인물은 그간 직간접적으로 (대형) 보수 교단과 교회의 지원이나 비호를 받으며 지금까지 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다수가 정치적 중도층이라는 개신교인들이 교회 내 극우 세력에 대항하기보다 이들을 묵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우의 문제는 한국 개신교회의 밖이 아닌 바로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 개신교 목사는 “전광훈을 키운 건 팔할이 한국교회였다”라고 평한다.47)
그러나 작금의 극우 개신교의 정치세력화가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현상을 ‘공적 종교’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학문적 논의가 거의 없는 것은 무엇보다 기존의 공적 종교 담론의 서사가 고착되어 있어 확장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존 담론은 큰 틀에서 볼 때,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위기 상황에서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국가/정부/시민사회와의 갈등을 극복하거나 이들과 협치하여 문제를 해결하면서 종교의 공공성 회복하고 결국 종교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다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는 종교는 근본적으로 윤리적이며,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사고가 밑에 깔려있으며, 따라서 ‘공적 종교’는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과 거의 동의어로 이해되고 있다. 이렇게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개입에 대하여 무비판적인 한국 학계는 공공 광장과 디지털 공론장의 이점을 최대한 사용하여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작금의 극우 개신교에 대해서는 오히려 공적 종교로서의 자격이 없다며 이들 집단을 논외로 두는 전략을 취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학계는 공적 종교에 어떤 종교가 포함되어야 하는지 매우 규범적인 판단을 이미 내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공적 종교 혹은 종교의 공공성 논의에서 하나의 주된 흐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적 종교의 시각에서 한국의 극우 개신교를 분석한 연구가 드문 가운데 사회학자 정태식이 공적 종교로서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를 분석한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신교 근본주의는 일종의 정치종교운동으로, 근본주의는 “세속화에 대한 사회정치적 저항을 통해 종교의 사유화 또는 사적 영역으로의 주변화를 거부하고 공적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로 복귀하여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장악”하려 의도하지만, 근본주의 운동의 의미체계가 가지는 타협 불가, 배타적/공격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경쟁과 타협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로의 진입을 선택하는 대신 특정 정치 세력과의 동맹을 택하면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 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정치 권력과의 동맹이 오히려 근본주의의 종교 지향을 왜곡하고, 동시에 종교를 내적 모순에 빠지게 하기에 정치와 종교의 결합은 정치에는 물론 종교에도 치명적”이라고 평가내린다.48) 무엇보다 미국의 근본주의 운동이나 한국 개신교의 극우화와 같이 공적/정치 영역에 집중된 종교집단의 활동이 사회적 약자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거부하고 결국 사회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은, 한국 학계의 ‘공적 종교’에 대한 담론이 종교의 사회참여가 가져오는 순기능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당 부분 피상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신학자인 이용주는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의 주요 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적극적 활동이 해당 사회에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음을 지적한다. 비록 그는 엄격한 의미의 종교(사회)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연구는 탈사사화나 탈세속화 테제에 대한 학계나 종교계의 긍정적 해석이나 기대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본 논문에서 충분히 언급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용주는 ‘공적 종교’ 개념이 종교의 탈세속화 그중에서도 탈사사화를 전제로 하고 있듯이, 공공신학 역시 종교의 사사화, 즉 종교가 사적 영역으로 퇴진하는 것을 꾸준히 비판하여 왔다고 말한다. 공공신학은 그 명칭이 보여주듯, 교회와 신학이 개인의 내적 문제나 윤리로 축소되는 사사화를 넘어서야 신앙의 공공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용주는 이러한 공공신학이 주창하는 탈사사화 테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신념을 근간으로 하는 세속국가에 대한 비판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공공신학자들은 정치와 종교 그리고 국가와 교회의 분리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교회와 신학이 공공 영역에서 후퇴하고 오히려 개인의 신앙 영역에 머물게 함으로써 결국 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이용주는 공공신학자들이 정교분리에 기초한 세속국가를 비판하고, 신앙에 기초하여 공적 영역의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탈사사화 주장은 공적 영역의 탈세속화를 그 내용으로 하며, 후자는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공적 영역의 탈세속화 현상이 “다양한 종교들의 평화로운 공존이나 개인의 자유, 사회적 평등, 연대적인 공동체의 구성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근본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정치체제의 복귀를 가속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탈사사화를 국가/사회의 탈세속화와 동일시한다면 근본주의적 종교신념이나 전근대적인 윤리의 회귀를 강화하여 현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49)
Ⅳ. 나가며 : 방법론적 대안을 찾아서
본 논문에서는 한국 학계에서 ‘공적 종교’ 담론이 어떤 구체적인 사회적 배경에서 등장하고 주제를 확장했으며, 더 나아가 어떤 복합적인 이유로 ‘공적 종교’ 담론에서 작금의 극우 개신교의 적극적인 공적 영역 또는 공론장 개입이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서는 ‘공적 종교’에 대한 기존의 논의가 내포하고 있는 일련의 선입관과 경직된 시각 ― 탈세속화와 탈사사화 현상에 대한 친종교적 접근, 종교의 사회참여를 종교의 순기능으로 해석, ‘공적 종교’ 개념의 윤리적/규범적 함의 등 ― 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여기서 관건은 ‘공적 종교’의 개념을 어떻게 확장 또는 수정하여 보다 유연한 시각에서 다양한 관련 현상을 보다 총체적으로 다룰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필자가 한편 회의적인 것은 앞의 장에서 주요 개념들을 정리하면서 확인하였듯이, 관련 담론의 핵심 개념인 ‘공적 종교’와 ‘공론장’ 모두 규범적 가치관을 토대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의 종교(사회)학자들 다수가 직간접적으로 특정 종교(특히 기독교)에 관여하고 있는 현실에서 ‘공적 종교’와 ‘공론장’에 대한 이들의 연구에서 가치판단이 배제된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의 역기능까지 도출하는 작업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으로 보이는 것은 오히려 ‘공적 종교’라는 규범적 성격의 거대이론의 틀을 벗어나, 개별 종교의 다양한 사회적 대응/참여 방법과 이를 추동하는 내외부적 요인 그리고 이러한 대응을 정당화하는 논리/교리에 주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한국사회의 극우 개신교 사례는 현대사회에서 (광장, 거리 등의) 물리적 공론장과 (디지털 공간의 유튜브 같은) 비물리적 공론장이 공존하며 이들은 상보 관계에 있으며, 또한 다양한 비언어적 ― 육체적 퍼포먼스, 감정 표출 등의 ― 표현들이 공론장의 주요 구성 요소로 작동하면서 공론장의 다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극우 개신교의 공론장 진입/점거 그리고 이로 인한 세력 확장 등을 현대적 공론장의 다양한 층위와 성격과 관련지어 분석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된 연구주제로는 ① 공론장에서 광장 점거가 갖는 기능, ② 광장정치와 공론장 형성에서 뉴미디어와 유튜버의 역할, ③ 공론장에서 집합적 행동/퍼포먼스의 기능, ④ 주류 공론장의 변화, ⑤ 대항 공론장들의 등장과 경합, ⑥ 공론장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의 위치, ⑦ 공론장에서 종교와 정치의 결합이 가지는 (역)효과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최근 학계에서는 공적 영역 또는 공론장에서 종교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하는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그간의 고착된 연구 경향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는 기존의 ‘공적 종교’ 논의의 접근방식을 수정·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전면적으로 파기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연구물로는 The ‘Crossed-Out God’ in the Asia-Pacific : Religious Efficacy of Public Spheres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워진 신’ : 공적 영역의 종교적 효과, 2023)를 들 수 있다.50) 기존의 공론장 혹은 공적 영역에 관한 연구와 이론화 작업이 기독교 중심 서구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이 책은 조사지역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옮겨 이들 지역 사회의 다양한 전통의 종교인들과 종교단체들이 어떤 종류의 공론장에서 어떤 구체적인 실천을 모색하고 있는지 기술하고 있다. 편집자인 밀리(Julian Millie)는 서론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기존의 논의에서 자주 접하는 ― 즉 공론장에 특정 종교의 적절성을 묻는 ― 조사방식을 뒤집어, 대신 공론장에 대한 종교인들과 종교단체들의 심사숙고와 평가에 주목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적고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 다루는 종교 그룹들은 “우리가 공적 영역 혹은 공론장에 적합한가?” 대신, “어떤 공론장이 우리의 (종교적) 실천에 효과적인가”를 묻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기존의 접근방식과 대비되게, 종교행위자들이 공론장을 종교적 활동의 장으로 평가하는 관점을 탐구하는 것은 공론장에 대한 이론화 작업에서 구체적인 종교적 삶과 실천이 간과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말한다.51)
같은 맥락에서 편집자는 집필진들이 카사노바의 접근방법을 뒤집고자 했다고 밝힌다. 즉 카사노바가 종교가 공적 영역에 가져올 수 있는 공익을 명시하면서, 종교가 지닌 공공적 잠재력을 중시하였다면, 이들 연구자는 반대로 공적 영역이 종교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52) 흥미로운 것은 연구자들이 종교와 공적 영역의 경계를 획일적으로 나누지 않고 두 영역이 서로 침투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역에서 종교와 정치의 역동적인 관계가 포착되었으며, 이 밖에도 종교 전통의 부활, 종교의 매체화(mediatization) 증가 등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종교와 공적 영역의 역동적인 관계는 시민들의 참여의식과 평등한 시민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53)
앞의 소개한 기존 연구의 접근방법을 (의도적으로) ‘뒤집는’ 시도는 공적 종교와 관련하여 질문의 방향을 완전히 바뀌게 만든다. 즉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어떤 활동을 하여 공공선에 이바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종교가 공적 영역이나 공론장에서 활동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다양한 공적 영역 중 특정한 영역을 선택하며, 이러한 공적 공간에서 종교집단은 어떤 성장과 돌파구를 기대하며, 실제로도 도움이 되는가 등등. 이러한 시각을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에 적용하면, 후자는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얻으려 공동체의 ‘안전한’ (예배)공간을 벗어나 광장과 거리로 진출하였으며, 이들의 지도자, 열혈 추종자, 단순 신자/참여자들은 이러한 공적 영역에서 어떤 서로 같은 혹은 다른 효과를 기대하며, 열린 ‘광장’에서 진행되는 예배/기도/의례는 어떠한 종교적/심리적 보상을 가져오는가 등등.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정 종교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 또는 자기 확장을 ― 공공복리나 만인에게 보편타당한 공공선의 추구라는 원대한 기획으로 보기보다 ― 지극히 해당 종교집단 고유의 내적 동력과 필요성에서 이해하고자 함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