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화해와 상생의 문화유산: 증산 탄생지 복원과 미래 비전

배규한1,*, 허정주2, 김민진3
Kyu-han Bae1,*, Jeong-ju Heo2, Min-jin Kim3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대순사상학술원 원장·대진대학교 교수, E-mail: khbai@daejin.ac.kr
2전북대학교 책임연구원·올댓해리티지연구소 소장, E-mail: hjjckbk@naver.com
3인도 CEPT 대학교 석사·HJDP건축사사무소 책임파트너
1Chairman,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Daejin University
2Senior Researcher, Jeonbuk National University / CEO, Allthatheritage Research
3MA, CEPT University / Manager, HJ Design Partners

© Copyright 2025,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Oct 20, 2025; Revised: Nov 24, 2025; Accepted: Dec 15, 2025

Published Online: Dec 31, 2025

국문요약

본 연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에 위치한 증산 강일순 성사의 탄생지가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정태적 보존이 아닌 동시대적 의미를 생산하는 살아 있는 문화생태계로서 재정의한다. 연구 목적은 탄생지의 역사성·학술성·고유성·세계성에 내포된 가치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하고,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종교·역사·문화가 통합된 복합 유산 모델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첫째, 탄생지의 역사적·문화적·사회적 함의를 분석하고, 둘째, 고증에 기반한 복원 구상과 공간 프로그램을 마련하며, 셋째, 교육·전시·순례·디지털 아카이빙 등 문화콘텐츠 활용 전략을 설계하고, 넷째, 국가유산 등재의 필요성과 해원·보은에 기초한 상생 윤리의 현대적 확장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 탄생지는 근대의 격변 속에서 형성된 공동체 기억과 인간적 성찰이 응집된 상징적 장소로서 지역 정체성의 회복과 문화정책의 혁신을 견인할 수 있으며, 국제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지속가능한 순례·교육·체험 플랫폼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나아가 화해와 상생의 철학은 사회적 분열과 생태 위기를 완화하는 문명전환의 실천 기제로 작동할 수 있고, 이에 따른 복원·활용 체계는 지역에서 세계로, 과거에서 미래로 연장되는 통합적 문화비전을 구체화한다. 결론적으로, 증산 탄생지의 체계적 보존·복원과 국가유산 등재는 지역이 주체가 되는 문화자주권의 실현이자, 한국 종교문화유산이 지닌 보편 가치를 세계적 차원에서 공유하는 길을 여는 것으로 평가된다.

Abstract

This study reexamines the birthplace of Jeungsan, Kang Il-sun, located in Sinwol-ri, Deokcheon-myeon, Jeongeup, Jeonbuk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from the perspective of religious and cultural heritage and explores the contemporary significance of its restoration and utilization.

The research begins with a transformative perspective that views cultural heritage not merely as an object of preservation but as a living cultural ecosystem that reconstructs the memory of eras and communities. The birthplace of Jeungsan is both the cradle of the philosophy of Haewon-Sangsaeng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and a symbolic space where the people and local communities of modern Korea, amid intense social upheaval, shaped a new worldview.

This study investigates the historical, ideological, and cultural meanings of this birthplace and proposes concrete directions for its restoration through comparative analysis with overseas restoration cases. Furthermore, it presents a restoration model that integrates Jeungsan’s life and thought, the human-geographical context of his birthplace, and its regional, historical, and cultural resources.

Through this process, this study seeks a new paradigm in which religious cultural heritage can be utilized in an integrated manner from academic, cultural, social, and economic perspectives. In conclusion, the restoration of Jeungsan’s birthplace represents the realization of an integrated cultural vision that connects regional identity with a global culture of mutual beneficence, and this task is a creative process of reconstructing meaning that links the past to the future.

Finally, this study proposes that Jeungsan’s birthplace should be developed into a symbolic cultural asset eligible for registration as a national heritage site that contributes to universal human civilization.

Keywords: 증산 강일순; 종교문화유산; 탄생지 복원; 해원상생; 보은상생; 국가유산
Keywords: Jeungsan; Kang Il-sun; religious and cultural heritage; birthplace restoration; Haewon-Sangsaeng; national heritage

Ⅰ. 서언

1. 연구 배경과 전환적 시각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는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에 위치한 증산 강일순 성사의 탄생지를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는 증산 성사(이하 증산)를 근대 민족종교운동의 선구자로 추앙하고, 그의 탄생지, 생애와 사상에 담긴 역사성·학술성·고유성·세계성의 가치를 공적으로 인정한 이정표적 사건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정책적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지정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보호를 넘어, 종교문화유산이 지역사회와 동시대의 삶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묻는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 본 연구는 문화유산을 ‘정체된 유산’이 아닌, ‘동시대적 의미를 생산하는 살아 있는 문화생태계’로 인식하는 전환적 시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종교문화유산 지정과 이에 관한 의미와 역할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관점과 전환적 시각에서 공간, 사람, 기억이 상호작용 하는 ‘살아 있는 장소(Living Heritage)’로서 종교문화유산에 응축된 증산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하고, 탄생지 복원이라는 물리적 공간 창출을 통해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할 현재적 함의를 탐색하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및 목적

본 연구는 증산의 탄생지를 문화유산으로 복원하고 정비하며, 그 활용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러한 시도는 생가 복원을 넘어, 근대 한국 민족종교운동의 선구자이자 역사적 사상가의 탄생지를 중심으로 사회·문화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구현하려는 총체적 논의이다. 특히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기반으로, 증산 탄생지를 종교·역사·문화가 융합된 복합적 종교문화유산 모델로 구축하고자 한다.

이 모델은 탄생지의 물리적 복원에 머물지 않고, 증산의 생애와 사상을 반영하여 근대와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삶과 사유를 재구성하는 상징적 공간을 구현하는 데 있다. 즉, 증산 탄생지의 복원은 역사·생태·문화가 상호작용 하는 통합적 공간 창조 행위로서,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지역 문화정책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실천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증산 탄생지 복원이라는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문화유산의 현대적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그 함의를 도출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다학제적 관점에서 ‘탄생지의 역사성과 공간적 맥락’이 지닌 의미 모색과 복원 구상에 필요한 해외 사례를 분석하여 탄생지 복원 방향과 실현 구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본 고에서는 첫째, 증산 탄생지 복원의 역사적·사상적·문화적 의미를 재구성하고, 둘째, 복원 구상 및 문화콘텐츠 활용 방안을 제시하며, 셋째, 지역 공동체 정체성 회복과 문화정책 발전 가능성을 탐색하고, 넷째, 증산 탄생지의 국가유산 등재의 필요성과 그 의의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로써 향토문화재, 전북종교문화유산, 국가유산으로 이어지는 문화유산으로서의 증산 탄생지 복원 연구의 새로운 사례를 제공하고자 한다.

Ⅱ. 탄생지의 역사성과 공간적 맥락

종교문화유산은 특정 지역이나 사회가 지닌 역사적 경험, 사상적 흐름, 종교적 실천, 문화적 상징을 집약하고 전승하는 복합적 의미체계이다. 구체적으로는 ‘종교적 정체성과 역사적 고유성을 지닌 건축물이나 장소’, ‘순교지 등 특정 종교의 초기 역사적 배경이 되거나 종교 활동을 기념하는 종교 성지’가 해당한다.1) 특히, 탄생지는 개인의 출생지일 뿐만 아니라 그 인물의 사상과 생애,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사회·문화적 토대가 응축된 공간이다. 민중적 삶의 터전이자, 시대의 갈등과 치유, 상생의 실천이 이루어진 현장이며, 근현대 사회에서 탄생지는 문화적 기억의 장소이자 정체성 형성의 기반이며, 동시에 순례, 기념, 재현의 장으로도 발전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탄생지가 가지는 의미는 그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의 정체성과 문화적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통해 파악될 수 있다.

1. 역사·사회적 의미 : 공동체 형성과 연대의 공간

종교문화유산은 특정 종교의 신앙 공간에서부터 지역사회의 관계망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역사·사회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고정적으로 기념하거나 보존하는 정태적 유산이 아니라, 기억과 신앙, 생활이 이어지는 ‘살아 있는 장소’로 작동한다.

증산이 태어난 19세기 말은 임오군란(1882), 동학농민운동(1894), 한일병합(1910) 등 격변의 시기였으며, 그의 사상과 종교적 실천은 민중의 고통과 시대적·세계적 위기에 응답한 종교운동이었다.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에 위치한 증산의 생가는 개인의 생애를 담는 장소이자, 민중의 삶과 지역의 집단기억이 교차하는 사회문화적 장이다.2) 이러한 공간은 당시 농촌 서민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응축된 전형적인 가난한 농촌의 가옥으로서, 사람·장소·시대가 교차하는 집단기억의 장으로 기능한다.

증산이 탄생한 마을의 이름은 사람과 시대가 바뀌면서 지명이 여러 번 변화한다. 당시 이름은 손바래기 즉, 객망리(客望里)였는데, 이전에는 선망리(仙望里)라고 불렀고, 증산의 화천 후에는 신월리(新月里)라는 오늘날의 지명으로 바뀌었다. 증산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랐다. 그는 뒷산인 시루산을 오르내리면서 종교적 수행에 몰두했으며, 대원사에서의 공부 이후 동곡에서 천하대병을 치유하는 약방을 운영하였고, 1901년부터 1909년까지 해원상생의 법리에 의한 구제창생과 후천 선경을 이루는 ‘천지공사’를 수행하였다.

증산의 탄생지는 문화적 기호와 지형적 구조를 통해 지역의 상징 체계로 조성된다. 정읍시 객망리 일대는 인문지리적으로 주목받는 공간으로, 방장산에서 시작된 용맥이 망제봉과 시루산을 지나 증산의 탄생지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갖는다.3) 이 일대 망제봉(望帝峰), 객망리(客望里), 선망리(仙望里) 등 지명들은 특정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이 지역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한민족의 기대와 희망, 기원의 장소로 기억되어 왔음을 시사한다.4) 또한 인근의 필동(筆洞), 연촌(硯村)과 같은 지명은 증산의 사상 및 지식 활동과 상응하는 의미를 지닌 문화기호로 해석되며, 집단기억과 상징적 의미를 생성하고 재생산하는 ‘문화기호(cultural sign)’로 작용한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 따르면, 문화기호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며, 이를 통해 물리적 공간은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공간으로 전화된다. 그는 문화 속의 기호들이 당대 사회의 가치와 이념을 자연스럽고 자명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작용을 ‘신화(myth)’라 명명하였다.5)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증산 탄생지는 출생지로서의 의미보다 지역의 공간적 정체성과 문화적 상징성을 재구성하는 ‘신화화된 공간’으로 전화되고, 그의 화해와 상생의 철학은 미래세대와 세계변화를 추동하는 구조적 동력으로서 문명전환(Civilizational Transition)과 문명창출(Civilizational Creation)의 실천기제(實踐機制, practical mechanism)로 기능한다.

나아가 기억의 사회적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증산의 탄생지는 암울한 시대의 고통받던 민중의 역사, 기억, 염원이 교차하는 장소로서 의미를 가진다.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제시한 ‘기억의 장소(lieux de mémoire)’개념에 따르면, 증산의 탄생지는 그의 생애와 사상이 투사된 사회적 기억을 축적하고 재생산하며,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형성하는 상징적 문화 기호이자 유산으로 기능한다. 노라는 이러한 장소를 물질적(material), 상징적(symbolic), 기능적(functional) 차원의 복합체로 본 것이다.6)

요컨대 증산의 탄생지는 과거의 유적이 아니라, 공동체 형성과 문화적 연대로 작동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그 보존과 활용은 역사적·문화적·종교적 관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보존하는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2. 문화적 의미 : 전통과 창조의 접점

종교문화유산은 과거 신앙과 실천의 공간이자, 동시대 문화 창조의 장이다. 종교적 상징과 의례는 예술, 건축, 음악, 음식 등 다양한 문화 형식과 융합되며, 지역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한다. 예를 들어 증산 탄생지를 중심으로 열리는 의례나 축제는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 전통음식, 공예 체험 등과 결합되어 생활 문화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참여적 문화유산은 단순 보존을 넘어, 세대 간 기억의 단절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연속성을 복원하며, 나아가 세대 간 전승의 매개체로도 작동한다. 기성세대가 주도하던 문화와 기억이 젊은 세대와의 축제와 체험활동을 통해 공유되면서 단절된 기억의 회복과 공동체적 연속성이 회복된다. 문화는 끊임없이 복원되어 가는 일련의 행위이며, 이는 리차드 쉐크너가 말한 ‘행위의 복원(restoration of behavior)’과 상통한다.7) 이것은 ‘지금 이곳’의 창조 주체가 과거의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을 덧입혀 살아 있는 문화의 흐름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며, 새로운 문화 흐름을 창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종교문화유산은 그 지역과 사회의 문화다양성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오늘날 문화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증산의 탄생지는 마을 단위로 전승되고 제도화된 문화정체성을 복원하고 부활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8) 종교문화유산이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고유하면서도 탁월한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고, 외부적으로는 색다른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며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한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많은 종교문화유산이 사라지고 있으며, 국가와 국제사회는 이러한 유산의 보존을 위해 강제적이고 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종교문화유산의 외형적 보존에 치중한 나머지, 그 내재적 의미는 일상에서 분리되어 고립되고 박제화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종교문화유산이 민족의 우월성이나 정치적 정당성의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진정한 문화적 활용을 가로막는 문제도 발생한다.9)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문화유산은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문화다양성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그 고유한 의미와 가치가 올바르게 조명될 수 있다.10)

종교문화유산은 인류의 지혜가 담긴 삶의 총체로서,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공동체의 문화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증산의 탄생지는 증산 사상이 탄생하고 확장된 문화적 발원지로 이해될 수 있다. 증산은 ‘해원상생’과 ‘후천개벽’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통해 기존 질서의 조화·발전적 해체와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강조하였다.11) 증산은 개벽의 과정을 파괴적 붕괴가 아닌 윤리적·우주론적 전환으로 이해하며, 그 핵심 개념으로 ‘해원상생(解冤相生)’을 제시하였다. 이 사상은 근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인간과 자연, 인간 상호 간의 윤리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탄생지는 이 사상의 실제 출발점이자, 지역 공간 속에서 민중과 사상이 만나는 접점으로 기능하였다. 후일 다양한 민족종교에서 증산의 사상을 계승하며 각종 사회개혁운동과 공동체 실천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그 사상이 현실 사회와 깊은 접점을 맺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증산의 탄생지는 전통과 창조가 맞닿는 지점에서 종교문화유산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계승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해원상생의 사상은 이러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며, 단절이 아닌 연속, 배제가 아닌 포용, 파괴가 아닌 재창조의 정신을 통해 살아 있는 문화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정치적 의미 : 해원상생과 갈등의 해소

종교문화유산은 단지 종교적 흔적이나 과거의 기념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자신들의 역사와 가치를 정치적으로 표상하고 공론화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이 공간은 기억을 선별하고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는 장이자, 사회적 연대와 문화적 주권이 구체화 되는 상징적 무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문화유산의 지정과 활용은 곧 정체성의 정치이며, 상징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문화정치의 핵심 쟁점과도 맞닿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제정한 「종교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는 그러한 정치적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조례는 단편적 행정 절차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문화적 정통성을 선언하고 이를 제도화한 ‘문화 주권’의 실천이라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증산의 탄생지가 전북특별자치도 첫 종교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례는 지역사회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공공적으로 인정받은 상징적 사례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근현대사 속 민족종교들이 전개한 사회 운동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천도교, 대종교, 증산계 종단, 원불교 등은 단순한 신앙 공동체를 넘어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민족의 독립과 자존을 추동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2) 이에 이들이 남긴 성지와 유산은 오늘날에도 ‘민족의 기억’이자 ‘민중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종교문화유산의 지정은 특정 종단의 성지에 대한 보편적 이해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역사적 정당성과 정체성을 국가적 문화 담론 안에 위치시키는 정치적 실천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정치 양극화와 정체성 갈등의 현실은, 이러한 종교문화유산과 민족종교의 사상적 자산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한국 사회는 이념, 세대, 계층, 빈부 그리고 젠더 등의 다양한 갈등 유형으로 분열되고 있다. 유례없는 압축 성장과 단기간의 급격한 사회변동은 이러한 갈등 구조를 양산하며, 우리 사회를 다중적이며 중첩된 갈등의 장으로 변모하게 했다. 최근에는 전통적 갈등 요인에 더하여 세계적인 갈등 외에도 디지털, 사이버 공간, 반려동물, 성소수자, 이주민 등의 폭넓고 복합적인 갈등 소재들이 추가되고 있다. 이제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하는 갈등의 고리는 사회 결속과 유대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약화하고 있다.13) 무엇보다 세대와 계층 간의 인식 격차는 사회적 신념 또는 정치적 성향과 연결되어 분열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일상적 견해 차이를 넘어선 극단적 이념화는 미래 사회의 안정과 균형을 저해하고 있다.

증산이 제창한 해원상생은 억눌린 원한을 푸는 ‘해원’과 모든 존재의 조화를 지향하는 ‘상생’을 결합한 상생 철학이자 실천 이념이다. 이는 천지자연과 부모에 대한 감사, 신명과 인간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포함하며, ‘생명의 순환과 상호 연계’라는 상생 윤리로 실천된다. 따라서 상생은 공생, 공존, 윈윈(win-win)과 본질적으로 다른 관계 조화의 실천 원리를 담고 있다.14) 또한 보은상생은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는 ‘보은’과 모든 존재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상생’을 결합한 상생 윤리이자 실천 원리이다. 다시 말해 해원상생은 원한을 풀어서 이루어지는 상생(相生) 관계이고, 보은상생은 은혜를 갚아서 도달하는 조화(調和) 관계이다.

증산의 해원상생사상은 억눌린 원한을 풀고 존재 간 조화를 지향하는 윤리로서, 오늘날의 사회적 분열과 양극화를 치유할 수 있는 사상적 자원을 제공한다. 이는 공생·공존을 넘어선 관계조화의 원리로, 지역공동체의 통합적 연대를 실현하는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

결국 증산의 탄생지는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의 상생사상이 태동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상생정신이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상호 화해와 지속 가능한 상생의 정치 문화가 구현될 수 있는 정신문화유산의 거점이라 하겠다. 따라서 증산이 남긴 진정한 유산은 그의 상생 철학에 담긴 화해와 상생의 정신이며, ‘남을 잘되게 하는’ 실천윤리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오늘날 다툼과 갈등이 심화되는 한국의 정치문화 속에서 더욱 소중한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4. 경제적 의미 : 순례, 콘텐츠 그리고 지역 재생의 자원

종교문화유산은 종교적 신념이나 역사적 상징을 넘어, 이제는 지역사회와 지역경제를 재생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문화경제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순례는 개인의 영적 행위로 인식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관광 산업과 접목되며 체류형 소비, 콘텐츠 산업, 지역 커뮤니티 회복의 기반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일본의 시코쿠 순례처럼 종교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순례길은 이미 국제적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성공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도 종교문화유산의 순례길 조성은 지역 기반 경제와 문화콘텐츠 산업을 연결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 증산의 탄생지 또한 종교적 장소를 넘어, 한국 근대 민족종교의 공동 발원지로서 순례의 성지이자, 역사·문화 콘텐츠의 핵심 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무극도, 보천교, 대순진리회 등 다양한 증산계 종단들은 이곳을 종교적 성소로 인식해 왔으며, 이는 민족종교의 상징 자원이자 지역의 공동 기억이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증산의 탄생지 주변으로 제안되고 있는 ‘상생의 순례길’은 신앙과 여행, 교육과 체험이 융합된 융복합적 순례 콘텐츠로, 지역의 숙박업, 음식점, 전통공예, 해설사 등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15) 순례객의 단발적인 방문이 아닌, 지역사회와 지속적으로 접속하고 체류하는 방식으로 종교문화유산을 경험할 수 있다면,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파급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나아가 증산의 종교적 활동 영역을 공유하는 지역들이 협력하여 관광자원 개발과 문화 행사를 추진한다면, 광역적 문화벨트를 구축하여 문화·경제적 시너지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생가터 주변의 성적지와 전주와 김제를 아우르는 성적지들을 연계한 마스터플랜을 계획하면 역사적·문화적으로 큰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다.16) 또한 증산 탄생지 인근 지역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다양한 종교기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우물을 중심으로 물이 맑고 풍부한 정읍(井邑)이라는 지역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우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상생으로 어우러지는 공간 정읍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태생적으로 지향하는 세계적 문화도시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이 공간은 증산의 사상과 정읍의 인문지리적 의미가 융합되는 공간으로서 순례길, 축제, 의례와 같은 활동으로 공동체 구성원 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지역 주민, 종교인, 관광객, 문화예술 종사자 등 다양한 주체 간 상호 공감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호작용은 빅터 터너(Victor Turner)가 ‘경계적(liminal) 경험’으로 명명한 ‘커뮤니타스(communitas)’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터너는 순례를 하면서, 일상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을 일시적으로 벗어나 비일상적 평등성과 집단적 유대를 경험하는 상태를 강조한 바 있다. 종교문화유산은 바로 이러한 커뮤니타스가 생성되는 상징적 장소로서, 수직적 위계가 일시적으로 유보되고 수평적 만남, 상호 공감, 그리고 집단적 유대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된다. 특히 순례길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종교인뿐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 간의 접촉과 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다층적 커뮤니티의 형성과 재구성을 촉진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17)

하지만 종교문화유산의 상업화가 지나칠 경우, 그 신성성과 정신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주목해야 한다. 존 디건스(John Digance)는 순례지가 ‘세속의 시공간이 신성의 장으로 전환되는 영적 자성(spiritual magnetism)의 장소’라고 설명하며, 순례길을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닌 정신적 전환의 여정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18) 그러므로 종교문화유산의 경제적 활용은 ‘신성의 경제학(economics of the sacred)’에 입각하여, 절제와 존중의 원칙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증산의 탄생지를 비롯한 증산 관련 성적지는 한국 근대의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고통의 시기를 견뎌내고 극복해 온 정신문화를 계승하고 공유해온 문화유산으로서, 종교적 가치와 지역사회의 역사‧문화가 결합된 소중한 자산이다. 과거에는 문화유산이 특정 시점의 모습을 보존해야 하는 ‘물질적 산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유산(heritage)’개념으로 진화하며, 나아가 지역 발전과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 ‘자원(resource)’으로 인식하는 관점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19) 이러한 변화된 인식은 문화유산을 단순한 보존의 대상이 아닌, 지역사회와 함께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고 활용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결국 증산의 탄생지는 과거의 성소에 머물지 않고,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문화적 의미를 함께 품은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지역경제 재생의 거점이자, 사상과 실천이 결합 된 공공자산, 종교문화유산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지역이 가진 전통과 정체성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미래지향적 산업과 연결해 가는 중요한 매개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Ⅲ. 문화유산 복원의 문제와 해외 사례 분석

1. 보존과 복원의 문제

위대한 인물들의 생가를 찾는 이유는 성소와 같은 공간을 방문함으로써 어떤 감흥과 숭고함을 공감하거나 심미적 영감을 얻거나 그 인물을 자신과 관련지음으로써 어떤 성스러움의 공유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가’는 대개 성소(shrine), 유물(relic), 거룩한 집(hallowed home), 기념물(monument), 사원(temple), 순례지(place of pilgrimage)와 같은 종교적인 용어로 정의되어 존경과 숭배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곳20)을 의미한다. 복원된 생가의 인물들은 그 지역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이미지 제고,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내 공적, 사적 조직들은 생가의 유지와 보존에 심혈을 기울임과 동시에 파괴되거나 소실된 생가의 복원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와 관련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21)

건축문화유산의 보존 문제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것에 반해 보존과 복원을 위한 하나의 포괄할 수 있는 해답은 아직 없으나, 복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구체적인 계획 없이 소위 ‘짓고 보자’는 식의 인식론에 머무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지역의 볼거리 차원에서 형태만 갖춘 건축물로서 그 역할이 제한되기도 한다.

고증이라는 것은 복원에 앞서 진행해야 할 필수요건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으나, 복원(restoration)을 원형복구의 재건축(reconstruction)과 같은 것이라는 혼란이 내재한다.22) 그런 점에서 탄생지 복원의 문제도 종교문화유산이면서 동시에 건축문화유산으로 포괄된다는 측면에서 앞서 적시된 문제를 함께 천착할 필요가 있다.

생가의 복원은 그 해당 인물의 생전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철저한 고증을 전제로 하여 그 인물의 일생과 행적이나 업적 등과의 관련성 속에서 신화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사실, 실재, 확실에 집착하기보다 인물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테마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생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일회성의 관광코스가 아닌 인물의 생애나 사상 등을 들여다보며, 거기에서 불러일으켜지는 깊은 신화적 상상력을 줄 수 있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23) 특히 증산과 같은 역사적 종교-사상가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보존과 복원의 문제는 각 사회의 문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그 사회가 인식하는 가치 기준에 따라서 기인할 것이다. 증산 탄생지 및 주변 복원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상태(이미 여러 차례 변화되었지만)의 탄생지를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고증에 따른 건축물을 복원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보존과 복원이 더 이상 두 가지 선택사항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복원도 과거를 현재로 가져올 수 없는 것이고, 오직 과거와 현재 사이의 ‘새롭고 더 나은 중재’를 수행하도록 요구받을 뿐이라는 가다머의 말처럼, 기억을 보존하거나 동일성을 회복하기 위해 재해석 되어야 할 뿐이다.24)

이런 점에서 탄생지 복원에는 두 가지 선택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비록 현재 여러 차례 변화의 과정을 거친 상태에서 보존되게 할지, 기억의 재생으로 실물을 복원할 것인지 하는 문제이다. 전자는 지금 현재 탄생지에 벽돌 담장으로 둘러 경계를 지어놓은 상태에서 보존하는 것이고, 후자는 『전경』, 구술 채록 자료, 주민들의 증언 등에 따른 실재 건축물을 복원할지를 말하는 것이다. 즉 현재 탄강지에 벽돌 담장으로 둘러 경계를 지어놓은 상태에서 보존하는 것은, 본래의 것으로 복원되지 못한 사회적 시대적 맥락에 따른 ‘변화된 복원’이긴 하지만, 탄생지를 확보해 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현재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태가 보존 가치가 높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증산 탄생지 주변 정비계획에 관한 보고25)가 있었으므로, 본 고에서는 증언이나 고증에 따른 실제 생존 당시의 생가 건축물 및 우물터 등 시설 복원을 천착하여 복원 구상을 논하고자 한다. 이에 앞서 인도 마하트마 간디 생가 및 활동지 복원 사례를 살펴보고 그 가능성을 구체화할 것이다.

2. 국외 주요 사례 분석
1)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생가

간디(Gandh)는 인도 구자라트(Gujarat)주 포르반다르(Porbandar)시의 작은 해안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 간디 가문을 기념하는 키르티 만디르(Kirti Mandir)라고 불리는 건축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힌두, 불교, 자인, 파르시, 교회, 모스크 스타일의 요소가 결합 된 전통적인 인도 건축 요소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특히 간디가 태어난 전형적인 인도 구자라트 상인들의 가옥 양식을 지니고 있다. 주요 기념 건물은 간디의 79년 삶을 상징하는 79피트 높이의 건축물이다. 간디가 태어난 집은 3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은 그의 아버지 집이고, 위층에는 그의 삼촌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간디가 태어난 정확한 위치의 바닥에 스바스틱(Swastik Marker 卍)<그림 2>을 표시해 두었다.<그림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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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생가 내부의 전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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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태어난 장소에 그려 스바스틱(Swastik Marker 卍) 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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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활 거주지 : 아흐메다바드 사바르마티 아쉬람 (Sabarmati Ashram)

인도 아흐메다바드(Ahmadabad)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 유역에 1917년 설립된 사바르마티 아쉬람(Sabarmati Ashram)이 있다. 1930년 3월 12일 식민지 소금법에 맞서 싸우기 위해 상징적인 소금 행진(Salt March)을 시작한 곳으로 투쟁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본래 마하트마 간디와 그의 배우자 카스투르바와 1917년부터 1930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부지 내에 간디 스마락 상그라할라야(Gandhi Smarak Sangrahalaya) 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시설이 있다.<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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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구자라트 암흐메다바드 사바르마티 아쉬람(Sabarmati Ash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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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1963년 개관한 이후, 51개의 모듈형 유닛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 구조를 확장하여 유닛을 증축해 왔는데, 이것은 간디의 삶의 단순함과 생활 기관의 점진적인 발전을 반영하기 위해 건축가는 6m × 6m 크기의 모듈형 유닛을 사용하여 개방형과 지붕형 공간을 연결함으로써 추후 확장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구조의 모듈화된 단순성은 소박하고 인간적인 규모(human scale)의 기념관으로, 석재 바닥, 벽돌 벽과 기둥, 돌바닥, 나무문, 유리가 없는 루버 창, 그리고 삐죽삐죽한 지붕 등, 기본 자재의 사용면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어 오고 있어 스와데시(Saedeshi) 정신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유닛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거나, 개방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폐쇄형이나 개방형 유닛들의 전시 공간은 방문객이 앉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되기도 하고, 어떤 신성함을 느낄 수 있는 건축적 아우라의 공간이 된다. 유닛들은 의도적으로 비대칭적인 방식으로 배치되어 인도 마을의 길과 무질서하게 배치된 건물들, 그리고 만남의 장소들을 연상시킨다.

이 박물관의 아카이브에는 34,066개의 편지, 8,633개의 기사, 6,367개의 사진 네거티브 필름, 134개의 마이크로필름 릴, 간디의 책, 그리고 간디의 삶과 자유 투쟁과 관련된 210편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어 간디의 삶과 이념, 일상적인 생활을 엿볼 수 있게 마련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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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전시장 단면도(위) 및 옥상 평면도(아래)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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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사회적 공간 : 뭄바이(Bombay)

인도 전역에 걸쳐 간디 관련 박물관이나 전시관, 기념관들이 있다. 특히 간디가 잠시라도 머물렀던 곳이면 어김없이 그러하다. 델리, 뭄바이(봄베이) 등이 그러하고, 그의 사상을 이어가려는 지역에서는 간디 학교, 간디 기념관이 있으며, 간디 동상은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인도의 모든 지폐에 간디의 초상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인도의 정치 사회 문화적 통합 등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뭄바이에는 간디가 정치-사회적 활동을 할 때 주로 이용했던 마니바반(Mani Bhavan)이라는 건물은 현재 간디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은 롤라트법에 반대하는 1919년 3월 사티아그라하(Satyagraha)가 시작된 곳이다. 이 박물관은 간디와 그가 이곳에 머물렀던 시간, 그리고 그가 이곳에서 시작한 활동을 기념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국내외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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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뭄바이에 있는 간디 박물관 내·외부 모습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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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뭄바이에 있는 간디 박물관 내·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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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탄생지 복원 방향과 실현 구상

1. 역사-문화적 배경

역사-문화적 배경을 어떠한 방향으로 복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증산 탄생지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 속에 어떻게 증산이 탄생한 시대-사회적 배경들을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증산이 태어난 시기는 고종6/1871~순종2/1909년간의 시기 곧 구한말의 역사적 변혁기, 양반-사대부 중심의 왕권시대에서 서민-민중 중심의 근현대 민주사회에로의 일대 혁명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시대, 갑오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같은 해에 갑오경장을 통해 계급사회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서민-민중 중심의 사회 질서 시대로 전환되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사회적 변화가 실제로 그가 태어난 공간/마을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고 현재까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고, 일련의 자연스런 변화까지 고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교적 선각자 혹은 사상가의 탄생지 복원 사업은 단지 그 탄생지의 생가 복원 문제로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가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연계공간, 적어도 그 탄강지 마을 전체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모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탄생지를 중심으로 한 확장적 복원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적어도 그 탄생지 및 그 주변의 마을 곧 문화마을 형태로까지 넓혀서 고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교적 선각자 혹은 창시자의 탄생지는 단지 그 생가 복원만으로는 그 창시자의 ‘종교적 아우라’를 높은 경지에서 구현시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마을복원 곧 ‘문화마을’ 복원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일종의 ‘복원마을 restored village’28) 형태를 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복원마을’과 관련하여 고려되어야만 할 몇 가지 문제점은, 첫째, 역사적으로 증산이 태어나 살던 구한말 당시, 이 지역 마을의 시대성을 잘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이러한 농촌마을 사진자료들, 각종 역사적 사료들, 그리고 현지 주민들이 제공하는 현장제보 조사 등의 다양한 활용이 이런 성격의 복원에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둘째, 사회적으로는, 탄생지 마을 주민들 및 인근 마을 주민들의 현장 면담조사를 통한 해당 탄생지 지역의 다양한 공간적-사회적 사실들의 전개와 변화에 관한 정보들을 심층적으로 조사 정리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복원마을’을 형성하기 위한 마을 복원 작업은 일시적-단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므로, 장기적인 실행계획을 세워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넷째, ‘복원마을’ 구축 작업은 마을 구성에 작동하게 되는 인문지리적 측면, 생태-환경적 측면, 그리고 증산 탄생지로서의 ‘문화마을’이라는 마을문화-콘텐츠 구성의 측면 등을 골고루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이 작업은 이 마을뿐만 아니라, 증산과 관련된 인근의 문화유적들과의 자연스러운 연계 문제도 함께 고려해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증산의 탄생지 및 주위 마을과 인문지리적으로 직접 연관이 되는 지역이나 마을 및 지명, 그리고 증산의 탄생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증산 외가의 청하 권극중이 태어난 마을과의 연계 부분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

2. 탄생지 복원 기본구상

증산의 생가 구조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들은 문헌 사료와 구술 기록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다. 우선, 증산 생가의 가옥 구조와 관련한 주요 전거는 『전경』과 그 외 증산계 초기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아홉 살이 되시던 기묘년(己卯年)에 부친께 청하여 후원에 별당(別堂)을 짓고 홀로 거처하사 외인(外人)의 출입을 급하시고 간일(間日)을 하여 암꿩 한 마리와 비단 두 자 다섯 치를 구하여 들이시더니 두 달 후에 문득 어디로 가셨는데 방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더라”(대순전경 1:8)29) 라는 기록이다.

증산 탄강지 내부 가옥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근거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증산의 집안 배경에 대한 기록을 보면, “몰락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거나, “비상한 천분으로 태어났으나, 집이 가난하여 일찍 학업을 중단하고 14~15세 때에는 다른 지방으로 가서 남의집살이와 나무꾼 생활도 하였고, 결혼 후에는 인근의 처가에서 훈장생활을 하였다.”30)는 내용이 전해진다. 이에 따르면, 당시 증산이 거주하던 가옥은 당대의 호남지방 서민 가옥의 기본구조를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서민 가옥이라고 해서 안방·윗방·부엌으로 구성된 본채, 대문이 있는 문간채 그리고 별도의 외양간·측간/변소 등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농가의 구조와는 달리, 증산의 생가는 매우 협소하고 간소한 구조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술 기록에 따르면, “작은 초가집에서 상제님 가족이 살았었는데, 기어 나왔다가 기어들어 가야 할 정도로 집이 작았다고 들었다”31)고 한다. 이 증언에 따르면, 당시 정읍 지역에서 서민층이 거주하던 전형적인 삼 칸 초가집이 생가의 기본 양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행 연구에서는 증산의 생가가 사립문도 없고, 방 하나와 부엌 하나로 구성된 최소 규모의 주거 공간이었으며, 부엌의 외벽은 볏짚으로 둘렀고, 문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매우 초라한 형태였다고 전한다.32) 이러한 기술은 생가의 구조가 작고 협소했을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매우 빈곤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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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초가집 전경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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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초가집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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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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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양반이기는 하나 몰락한 양반으로 증산의 생가는 일반적인 양반집 가옥 형태의 구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크고 튼실한 양반집 가옥이었다면 촌로들의 기억에 상당히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며, 재목도 남아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지역에서 이렇다 할 당시의 가옥도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별당(別堂)을 지어 주었다는 언급도 있으나, 일반적인 양반집 가옥 구조에서 보이는 규모 있는 별당이라기보다는 사면 한 칸 정도의 흙담에다가 초가로 된 별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료 된다. 별당이라는 말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부모가 어린 증산의 청을 들어 그만이 사유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러 정황에서 볼 때, 증산 생가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정읍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서민들이 살았던 3칸 혹은 4칸 초가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이 지역의 가난한 농민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인 방1칸, 광1칸, 부엌1칸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이 지역에서 4칸 초가일 경우에는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 필요한 경우 터놓을 수도 있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었다. 두 방 전면에는 툇마루를 놓았으며, 문은 대살문으로 하고, 부엌은 전후벽에 널문을 달았다. 예를 들면 아래 복원된 전봉준 생가 <그림 10>과 같은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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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전봉준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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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증산 탄생지 가옥 외부 시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근거들은 생가의 마당 한쪽 구석에는 샘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후 동네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우물로 활용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35) 일반적인 조선 후기 민가의 외부 시설 구성은 가옥 본채를 중심으로 우물, 장독대, 뒷간, 담장(울타리)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당시 농촌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개인 우물을 소유한 가옥은 비교적 부유한 계층에 속했으며, 대부분의 서민층은 공동 우물을 이용했다. 따라서 증산 생가도 별도의 우물을 갖추기보다는, 현재 생가터 앞에 남아 있는 공동 우물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점에서 생가 복원 시, 집안에 우물을 설치하기보다는 생가터 앞에 있는 공동 우물을 보존·복원하는 방향이 더 역사적 현실에 부합한다. 아울러 이 우물은 훗날 종교적 성소의 의미를 감안하면 ‘성수(聖水)’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고, 우물을 중심으로 당시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는 만큼, 정밀한 수질 검사를 통해 음용 가능한 생수로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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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생가터 앞에 있는 우물터의 모습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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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장독대·측간(변소)·담장의 구성에 있어서, 장독대는 통상 부엌과 가까운 본채 뒤란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측간은 위생과 냄새 등의 이유로 부엌에서 먼 가옥 측면이나 전·후면부에 배치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 외에도 당시의 관습과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주요 생가 구성 요소들을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담장은 현재 생가터에 설치된 담장의 형상을 고려할 때, 일부 생나무 울타리를 고려하더라도, 과거에 존재했던 울바자 울타리를 복원하는 방식은 다소 부자연스러울 수 있으므로, 그 필요성과 현실성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 탄생지 입구 방향 우측 편에는 현대식 기와지붕의 다목적 시설이 건립되어 있다. 이 시설이 증산 탄생지와 어떻게 연계되어 활용될 것인지는 관련 종단에서 탄생지 복원과 부합되는 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3. 탄생지 주변 환경 조성 및 문화콘텐츠 구상
1) 자연·생태 환경 조성

증산 탄생지 주변 환경 조성에는 그 사상의 핵심인 ‘해원상생’의 철학과 정신을 반영하여 생태적 조화와 생명존중의 철학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지역 고유의 자연식생을 바탕으로 자생적 식물과 생태계를 보존하며, 생태 환경 복원은 자연스러운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증산 사상이 담고 있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의 정신을 공간적으로 구현하고, 탄생지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지형·지세·식생·동식물·물길·연못 등을 포함하는 자연·생태의 통합적 환경 조성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2) 인문·사회 환경 조성

인문·사회 환경에서는 탄생지 마을의 인문지리적 조건과 사회문화적 맥락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마을의 주거 구조, 생업 형태, 인구 구성, 역사와 성씨, 인물과 공동체 문화 등은 모두 증산 사상과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문화콘텐츠로 확장 가능하며, 예를 들면 이 분야의 국제적인 학술기관인 ‘대순사상학술원’을 통한 학술 자료를 종합적으로 편찬하고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탄생지 복원사업의 정체성과 지속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3) 인문지리적 환경 조성과 문화콘텐츠 개발

증산 사상의 토대에는 한국 전통의 풍수와 그의 독창적이고도 심오한 인문지리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전경 등의 문헌에 기반 한 탄생지와 지역의 풍수 형국, 특히 ‘오성귀언(五星歸堰)’, ‘선인좌부(仙人坐部)’, ‘선인포전(仙人布氈)’, ‘선인독서(仙人讀書)’ 등의 지형 구조를 반영한 환경 조성과 관련 콘텐츠 개발도 필요하다. 이는 실지조사에 기반한 지형분석을 바탕으로 문화답사 콘텐츠로 구성하고, 각 형국은 시각화 자료와 해설 콘텐츠로 개발하여 탐방객들에게 직관적이고 상징적인 체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증산 탄생지의 복원은 탄생지 자체의 단일 공간에 머물지 않고, 주변 관련 유적지와의 연계 복원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전경』 등에서 묘사된 상징적 장소와 역사적 일화들을 콘텐츠로 구현하며, 예를 들면 시루봉 → 국사봉 → 방장산 → 입암산 → 내장산 →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풍수체험 코스’나 등잔재/등판재·기름들·필동筆洞·베루물/연촌硯村 등의 지명들과 그 지명이 소재하는 장소를 연계한 ‘문화유적 답사 코스’, 순례길, 명상 사색의 길을 개발하는 등 지역 전체를 하나의 ‘통합 유산 네트워크’로 구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이것은 해외 사례와 같이 종교적 체험과 문화적 감흥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확장적 문화 복원모델로서 기능할 수 있다.

4) 디지털 문화박물관 조성

증산 탄생지 디지털 문화박물관은 증산 성사의 생애와 사상을 종합적으로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핵심 디지털플랫폼으로, 탄생지 복원사업의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 박물관은 탄생지 인근에 위치하여 전통가옥과 조화를 이루는 외형을 갖추며, 내부는 문헌·유물·디지털 미디어가 복합된 형태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곳은 교육, 탐방, 종교인 방문, 학술연구 등 다목적 기능을 수행하며, 역사·종교·문화 콘텐츠를 포함하여 정체성과 상징성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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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탄강지 주변과의 종교-문화관광 클러스터 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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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농악/풍물굿 콘텐츠 플랫폼 마련

정읍지역의 농악은 증산의 문화예술 사상 형성에 중요한 문화적 토양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근현대 한국 농악의 정통성을 대표한다. 이에 따라 농악 콘텐츠는 단순 공연을 넘어 종교문화적 의례 콘텐츠로 재해석되고, 이는 국제농악학교, 농악박물관, 연구소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 또한, 농악의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을 활용하여 문화예술과 종교사상의 융합 콘텐츠를 구현하는 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민족종교로서 시도할 만한 상징적 작업이다.

증산은 태생적으로 농악을 좋아하였고, ‘농악을 보시고 문득 혜각이 열리셨다’는 기록이 있기에, 증산과 농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것이라는 점37)이다. 증산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정읍 입암면 대흥리의 ‘보천교’에서는 농악을 종교 의례악으로 정하여 늘 상 농악을 통한 종교 의례를 행하였고, 교단 안에 전국에서 모여든 농악 전문인들 단체 거주지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38)

우리나라 전통 농악을 근현대사상과 연계하여 전국적, 세계적인 지평으로 끌어올린 종교·예술사적 공적이 바로 농악을 즐기고 좋아했던 증산에게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농악을 비롯한 국제민속악학교, 농악/풍물굿박물관, 농악연구소 설립 등을 증산 탄생지 복원과 관련한 시설 및 콘텐츠 조성 계획에 중장기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종교적·사회적·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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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스토리 및 체험 박물관/전시관 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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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탄생지 주변, 각종 부대시설 조성

탄생지 복원 구상에 있어서는, 비단 탄생지 복원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와 관련된 부대시설의 조성도 매우 중요하다, 탄생지를 찾는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의 확보는 체험 기반 강화를 위한 필수 요소이다. 안내센터, 해설 강당, 휴식 공간, 음식 제공 공간, 숙박시설 등이 체계적으로 조성되어야 하며, 계절별·수요별 운영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7) 문화마을 조성 및 콘텐츠 확보

증산 탄생지 복원사업의 최종 단계는 탄생지 마을을 문화마을로 조성하는 것이다. 물론 이 일은 마을 주민과의 유대 강화, 마을 정체성 정립, 마을 주민의 자발적 참여 등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 구상은 증산의 해원상생, 보은상생 사상을 반영한 세계적 힐링·문화마을 모델을 지향해야 하지만, 이 지역에 공존하는 다양한 종교, 문화와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가능한 모델이다. 예를 들어 예수의 탄생 장소를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성인의 탄생지들은, 그 탄생 장소를 포함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성소로서 기능하고 존재한다. 그래서 이미 다양한 사상과 문화 그리고 삶을 포용하는 정읍 지역은 세계적 문화마을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히 내재 되어 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주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축적할 필요가 있다.

Ⅴ. 결어 : 증산 탄생지 복원의 현재적 함의와 미래 비전

본 연구는 종교문화유산으로서의 증산 탄생지가 지닌 다층적 의미를 재구성하고 이곳을 근대 한국 정신문화가 응집된 상징적 기억의 장소로 조명하였다. 이곳은 증산의 생애와 사상이 형성된 기반이자, 근대의 격동 속에서 민중과 지역공동체가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한 정신사적 거점이었다. 증산을 따르던 종단과 종도들은 식민지 억압기에도 ‘해원’과 ‘보은’의 상생사상을 생활윤리와 공동체 실천으로 구체화하며, 근대 한국 민중의 자주적 종교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특정 종교운동을 넘어선 시대정신의 실천적 구현이었다.

당시 증산의 상생 사상과 세계관이 구한 말 사회에 미친 특별한 파급력은 그를 신앙하거나 따르는 수백만 명의 민중으로 확인되며,39) 이는 증산 사상이 하나의 종교적 교의로서가 아니라, 근대기 조선 민중의 사회적 자각과 연대의 언어로 작동하였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점에서 증산 탄생지는 역사적 인물의 출생지를 넘어, 상생의 정신으로 전근대적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고자 한 한국인의 근대적 자아의 형성과 공동체적 윤리가 교차한 ‘살아 있는 문화유산(Living Heritage)’으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의 복원은 과거를 재현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의미를 재구성하는 문화적 창조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공간에는 사상과 기억, 신앙과 실천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분열과 단절을 치유할 수 있는 문화적 매개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화해와 상생의 철학으로 민중의 아픔과 고통을 근원적으로 치유하고, 인류사에 누적된 원과 한을 근원적으로 해소하여, 항구적 평화세계를 구현하고자 한 증산의 역사적, 사상적, 종교적 문화유산은 분열과 갈등으로 혼란한 현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증산 탄생지 복원의 현재적 함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학술적 함의로서, 탄생지 복원은 증산 사상의 공간적 기원을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종교사·사상사·지역학 간 융합연구의 토대를 제공한다.

둘째, 문화적 함의로서, 탄생지는 종교문화유산이자 지역문화 콘텐츠의 핵심 거점으로서, 예술·교육·종교·디지털 미디어와 결합된 융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

셋째, 사회적 함의로서, 복원은 세대 간 기억의 단절을 회복하고, 공동체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열린 기억의 공간’을 조성한다.

넷째, 정책적 함의로서, 증산을 따르던 종단과 종도들이 남긴 신앙 전통과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국형 순례길과 종교문화유산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세계적 종교문화 네트워크에 편입될 수 있다.

다섯째, 시대적 함의로서, 증산 사상은 서구 근대 문명 비판 이후의 대안적 인류 문명 모델로 평가받을 잠재력을 지니며, ‘상생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문화생태계의 비전을 제시한다.

이상의 논의에 비추어 볼 때, 증산 탄생지는 이미 정읍시 ‘향토문화재’와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그 사상적·역사적·문화적 위상을 고려할 때 국가유산으로의 등재가 요구되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 (1) 역사적 근거 : 증산 사상을 신앙하던 종단과 민중(최대 6백만 추정)들은 식민지 억압 속에서도 민족적 자각을 실천하였으며, 그 규모와 영향력은 당대 조선 사회의 인구 규모(1926년, 조선인 인구 1,700만 정도)로 볼 때 지대하였다.

  • (2) 사상적 근거 : 증산의 해원상생 사상은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공존의 철학으로, 인류 보편문명에 기여할 가치 체계를 내포한다.40)

  • (3) 지역적 근거 : 정읍은 증산 사상의 발생지이자, 한국 근대 민중사상이 태동한 정신문화의 중심지로서, 지역적 정체성을 세계사적 맥락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 (4) 제도적 근거 : 「문화재보호법」과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 보전 및 활용 조례」(2023)를 통해 증산의 탄생지를 역사적, 사상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가 지대한 것으로 평가하여, 이미 정읍시 향토문화재를 거쳐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이를 국가문화유산으로 등재·등록할 당위성과 제도적 근거를 제시한다.

요컨대 증산 탄생지의 보존과 복원, 그리고 국가문화유산 등재는 근대 한국인의 사유와 공동체적 상상력이 응축된 세계사적 유산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는 과업이다. 무엇보다 증산의 해원상생은 역사적 격변기의 억압과 모순을 종교적 구제의 차원에서 진단하고, 이를 사회적 치유와 문화적 혁신의 동력으로 승화시킨 사상적 결정체로서, 상극의 질서를 넘어선 보편적 평화 윤리라는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는 지역이 주도하는 문화자주권의 실현임과 동시에, 인류 문명사에 기여할 상생문명 모델의 실천적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따라서 증산의 상생철학은 현대 사회의 분열과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대안적 문명 패러다임으로 기능할 것이며, 그 물질적 토대인 탄생지의 보존과 복원은 지역과 세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인류 공영과 항구적 세계평화 구축’이라는 거시적 미래 비전을 완성하는 구심점이 될 것이다.

Notes

1) 시행 2023. 5. 8. [전북특별자치도조례 제5273호, 2023. 5. 8. 제정]

2) 한국 신종교를 명명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유병덕은 이를 ‘민중종교’로 지칭하였다. 그는 민중종교란 한국 민중의 실존적 경험과 집단적 정서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종교로서 민중의 자각과 역사적 실천을 담아내는 종교현상으로 보았다. 즉, 한국 민중의 심혼을 대변하는 자발적인 종교 흐름으로 규정하였다. 유병덕 편저, 『한국민중종교사상론』 (서울: 시인사, 1985), pp.2-3.

3) 김상휘, 「정읍의 풍수」, 『정읍학』 3 (2016), p.12.; 신영대, 「상제 강세지 객망리 일대의 풍수지리적 의미에 관한 연구 : 지맥의 연결과정을 통한 형기론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46 (2003) p.81.

4) 고남식, 「강증산의 강세지인 정읍시에 나타난 구천상제 신앙과 그 양상」, 『대순사상논총』 40 (2022), pp.200-201.

5) Roland Barthes, Mythologies, trans. Annette Lavers (New York: Hill and Wang, 1972), pp. 129-131.

6) Nora, Pierre, Realms of Memory: Rethinking the French Past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7), pp.12-16.

7) 리차드 쉐크너, 김익두 옮김, 『민족연극학』 (서울: 한국문화사, 2004).

8) 허정주, 「정읍 세시풍속의 복원과 부활의 비전 찾기」, 『정읍학』 3 (2016), pp.105-106 참조.

9) 이진우, 『문화유산 활용의 이론과 활성화 체계 연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8), pp.1-2.

10) 류호철, 「종교 문화유산의 가치 인식과 선제적 보전 기반 마련」, 『대순사상논총』 48 (2024), pp.352-353.

11) 증산의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낡은 질서의 청산과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기약하는 ‘후천개벽’이고, 다른 하나는 삼계해원과 상생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항구적 평화원리인 ‘해원상생’이다. 후천개벽은 적극적 평화에 대한 종교적 표현이고, 해원상생은 전세계의 평화이며 전인류의 화평 원리이다. 배규한, 「해원상생사상의 평화적 가치와 현대적 의의」, 『대순사상논총』 40 (2022), p.4.

12) 강돈구 외, 『한국의 신종교 성지』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21), p.7.

13) 서영선, 「사회갈등 탐색을 위한 데이터 활용의 가치」, 정보통신정책연구원(2025. 1. 20.) https://bit.ly/kisdi_conflict-data-2025(2025. 6. 1.검색).

14)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20), pp.123-124.

15) 최승희, 「강증산 생가터 정비계획」, 『증산사상의 역사문화사적 재조명 학술대회 발표집』 (2018), p.104; 김진영, 「증산 순례길 제언」, 『대순사상논총』 31 (2018), pp.150-154 참조.

16) 같은 글 p.116.

17) Turner, Victor, Image and Pilgrimage in Christian Culture: Anthropological Perspectiv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8), pp.250-251.

18) Digance, John. “Pilgrimage at Contested Sites,” Annals of Tourism Research 30, no.1 (2003), p.144.

19) 이수정, 「지속가능한 발전에 있어서 문화유산 보존·관리의 원칙과 적용」, 『헤리티지 : 역사와 과학』 84 (2019), p.109.

20) Thomas, Julia. Bidding for the Bard: Shakespeare, the Victorians, and the Auction of the Birthplace, Nineteenth-Century Contexts, 30(3) (2008), p.222. 오헨리, 「지역문화 재생 프로젝트 연구 : 김복진 생가 복원을 중심으로 」 (목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4), pp.2-3.

21) 오헨리 앞의 글, p.3

22) 강현, 「건축문화재의 원형(原形) 개념과 보존의 관계」, Korean Journal of Cultural Heritage Studies 49, 2016, pp.120-145

23) 오헨리, 앞의 글, p.4.

24) 같은 글, p.3.

25) 최승희, 앞의 글.

26) Charles Correa, Edited by Hasan-Uddin Khan. Architects in the Third World. Singapore: Concept Media Ltd., 1987. pp.20-25.

27) 2013. 2. 10. 필자 촬영

28) 리차드 셰크너, 『민족연극학』, 김익두 옮김 (서울: 한국문화사, 2004), 제2장 참조.

29) 『대순전경』 1:8, p.18.

30) 『전경』, 행록 1장 20절, 행록 2장 1절; 이상호, 『증산천사공사기』 (서울: 상생사, 1926), pp.2-3.

31) 박인규, 「증산 강일순 생가터의 고증과 종교문화적 의의」, 『종교와 문화』 36 (2019), p.140. (2012년 12월 27일. 전대식 인터뷰 내용)

32) 같은 글, pp.144-145.

33) 정읍 지역의 일반적인 초가집 형태(김명관 고택 호지집)

34) 정읍지역에서 볼 수 있는 초가 삼칸집을 기준으로 하였음.

35) 박인규, 앞의 글, p.145.

36) 2025. 04. 24. 필자 촬영.

37) 허정주, 「증산사상 형성에 미친 영향원으로서의 농악·당산제에 관한 사례적 고찰 : 정읍지역을 중심으로 」, 『대순사상논총』 49 (2024), pp.127-156.

38) 김익두·허정주·이용찬, 『샘고을[정읍] 대흥리 마을: 한국 최고의 신흥종교 마을』, (서울: 광대와바다, 2019).

39) 김철수. 「식민권력의 형성과 민족종교의 성쇠 : 『보천교일반』(1926)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74-2 (2014); 장원아, 「1920년대 증산계 신앙운동과 조선사회의 대응」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3); 박상규, 「근대 한국 신종교의 조직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22).

40) 배규한, 앞의 글,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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