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신종교 연구는 죽음(thanatos)보다 창생(genesis)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사멸의 뒤안길보다는 생장의 확장일로를 둘러싼 사상과 실천을 모색하려 한다. 오늘의 연구는 1930년대 중후반에 외진 곳에 잠깐 등장했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소수 교단, 태극교(송병화의 유교계 신종교인 태극교와 정산 조철제의 무극도를 개칭한 태극도와는 무관)의 흔적을 다룬다. 일제에 의해 교주와 간부가 검거된 뒤 복역을 치르게 되면서 교단은 결정적인 와해를 맛보아야 했겠지만, 일제의 기록에 의해 그나마 그들의 마지막 장면이 되살아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남겨진 몇몇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그들의 종교인생을 무모하고 괴기스런 것으로 왜곡해서도 곤란하다. 종교사적 맥락을 간과한 채, 특정 종교의 소멸 장면을 심미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친다면, 이미 사라진 그들을 다시 불러주는 것 자체가 자칫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1930년대 강원도 김화와 경기도 가평 일대1)에서 정감록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대를 모색했던 임일봉(林一奉)의 태극교(太極敎)에서 생산하고 유통했던 종교가사를 발굴하고 번역하고 해석함으로써 잊히고 가려졌던 종교사의 일단을 재구성하는 밑거름으로 삼고자 한다. 따라서 질적으로 풍부한 두꺼운 해석을 기대하기에 앞서 자료의 체계적인 가공과 공개에 주안점을 둔 기초 연구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태극교의 교주 임일봉은 천간십이지(天干十二支), 오행설, 정감록의 비결(利在弓弓乙乙, 求人種兩白, 桃下之顧命), 삼강오륜설 등을 조합한 교의를 내세우며 1934년 10월부터 포교에 나섰으나 1938년 2월 교주를 포함한 11명이 검거된 이후(화천경찰서), 그해 11월 16명의 피의자 중 6명이 예심을 거친 뒤(춘천지청), 1939년 5월 최종 6명이 징역형에 처해지는(경성지방법원) 운명을 맞이하였다. 본 연구는 1938년 11월 지방경찰당국(강원도경찰부장)이 발신한 문서자료(경성지방법원 검사국문서, 사상에 관한 정보11, 江高 제1137호, 1938년 11월 18일. “太極敎ト稱スル不穩類似宗敎檢擧ノ件”)에 크게 의존한다.2) 그도 그럴 것이 이 문서 말미에 첨부된 별지에 태극교의 가사 7편이, 일역의 형태로나마 온전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총 84쪽 분량의 이 문서(이하 ‘검사국문서’로 약칭)는 태극교의 판결 상황을 다룬 『사상휘보』 24호(1940년 9월)의 정돈된 기록3)과는 달리, 교단에서 압수한 상당량의 자료를 별지(1호: 태극교 주문, 2호: 태극교 조직도, 3호: 태극교도 명부, 4호: 태극교 교설, 5호: 태극교 가사)로 첨부하고 있어 자료적 측면에서 귀중하다고 하겠다. 아마도 이 별지 문서들은 1938년 2월 교주 및 신도 11명을 검거할 당시 미리 빼돌려 암혈과 구들장 아래에 은닉했다 압수된 것으로 추정된다.4) 본 연구는 특히 별지 5호에 첨부된 38쪽 분량5)의 태극교 가사 7편(降仙歌, 仙遊歌, 奉運歌, 布德歌, 道德歌, 時節歌, 保險歌)의 정리와 해석을 통해 학계에 미지의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문서에 첨부된 7편의 가사는 교단의 1차 자료가 아니라 일제의 사법당국에서 참조할 수 있도록 한자와 일본어(가타가나)를 혼용한, 가공된 2차 자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원가사는 한국어의 음보와 리듬을 충실히 따랐을 테지만, 사법당국의 입장에서 가사의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본래의 가사 형식과 구절을 변용시켰다는 점에서, 애초 한글 가사의 구현은 현실적으로 요원할 수밖에 없다. 다만, 가사 7편의 내용을 파악하면서 한때 계룡-정왕과 조선의 영광스러운 운명을 대망했던, 1930년대 말 비밀종교의 제한된 흔적을 엿볼 수 있고 또 그들의 숨은 뜻과 실천을 헤아려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Ⅱ. 태극교 가사 7편
태극교 가사 7편은 교주의 탄생 내력과 그 취지를 밝힌 <강선가(降仙歌)>, 교주가 사방의 강산과 승지를 유람하며 각처의 진인과 도사를 회견하며 내공을 쌓고 난도난법과 역천역리를 경계시킨 <선유가(仙遊歌)>, 교주가 천정운수(天定運數)를 받들어 사술(四戌)의 때에 맞춰 태극교를 개시하며 교운이 장대하길 염원한 <봉운가(奉運歌)>, 금전과 적악이 판을 치는 혼돈과 탐욕의 세간에서 궁궁의 인종(人種)으로서 생명의 길을 펼쳐나가길 당부하는 <포덕가(布德歌)>, 선한 덕을 쌓아 도덕천지를 이루고 정심으로 수련하여 안빈낙토(安貧樂土)를 실현할 것을 독려하는 <도덕가(道德歌)>, 엄혹한 시절을 성실과 인내로 견뎌내면 계명(계룡)과 태평승지의 봄날을 맞으리라는 기대를 담은 <시절가(時節歌)>,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정성스레 천도(天桃)의 결실을 거둠으로써 도림승지(桃林勝地)의 세계를 보장받는 <보험가(保險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1) 교주의 탄생, 천운의 승계, 종교의 창립과 포덕 등에 이어 2) 신도로서 지켜야 할 도덕과 수도, 새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 이상의 실현과 영화로운 결실 등으로 종결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표 2>에서 보듯이, 태극교 가사 7편은 모두 596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6) 짧게는 54행(봉운가, 보험가)으로부터 길게는 116행(선유가)에 이르는 분포를 보이고 있다.
<강선가>는 임일봉의 탄생을 신선의 하강에 빗댐으로써 가사의 주인공인 교주를 성화하고 있다. 서사는 임일봉의 실부(實父)인 익종씨(西域眞人)의 꿈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익종은 꿈속의 현실에서 천계의 잔치 자리에 참여한다.
오악은 조종(朝宗)이고 사해는 근원이라
백두산의 일맥기세 동남낙맥 그아닌가
낙맥지류 흘러내려 대덕산이 그아닌가
한무제의 수도처에 선인하강 필연이네
서역진인 익종씨(임일봉의 부친)는 천하주유 하던끝에
승지대덕 찾아가서 계림궁서 결혼했네
대도불경 배우면서 허송세월 위안삼다
가을바람 소슬한날 한무탑(漢武塔)에 오르고서
단풍절경 조망하니 홀연히 좋은기운
승지대덕 최상봉에 풍악소리 성대하다
희한하다 여기고서 최상봉에 올라보니
노선관이 마주앉고 선관선녀 풍류로다7)
이야기는 백두산의 지맥인 함경북도 북청 소재의 대덕산에서 시작한다. 가사에 언급된 승지대덕(勝地大德)은 승지에 거하는 큰 인물을 뜻한다기보다는 손꼽히는 수도처이자 선인이 하강할 만한 승지로서의 대덕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천하를 주유하던 익종이 찾은 곳, 이어서 대도불경을 닦고 배우자(김씨)와 혼인하게 된 곳이 바로 승지대덕이다. 어느 날 익종이 승지대덕의 최상봉에 올라 풍악소리 성대한 선관선녀의 잔치 자리에 다다르게 된다. 인간의 누추한 몸으로 엄연히 선계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익종은 노선관으로부터 태양성이 상제에게서 얻었던 비거(飛車)를 건네받고 돌아온다. 천계 여행은 한낱 남가일몽이었으나 이로부터 김씨 부인의 태기가 있더니 드디어 열 삭 뒤인 6월 26일에 옥동자(임일봉)가 태어났다. 태극교에서는 이날을 강선봉축일(降仙奉祝日)로 기념하였다.8)
선녀는 간데없고 옥동자가 탄생했네
서역진인 대면하니 칠성정기 은은하다
꿈의일을 생각하니 태양정기 분명하다
무탈하게 자라나서 오륙년 금방지나
여섯살에 입학하니 문일지십(聞一知十) 총명이라
여덟살에 비운들어 모친영영 이별이라
혈혈단신 궁한몸이 학문힘쓸 도리없네
여덟살 유아로서 천하주유 애처롭다
문전걸식 하는거동 눈뜨고는 볼수없네
열여섯에 드는생각 문천세(文天世) 바랄까나
세상을 떠돌다가 서역필봉(西域笔峰) 다달아서
미륵진인 뵈옵고는 대도불경(大道佛經) 수도하고
지혜총명 달인수준 도통통영(道通通靈) 이아닐까9)
탄생한 옥동자의 얼굴에 칠성의 정기가 감돌자 익종은 이것을 태양의 정기라고 확신한다. 꿈속의 현실에서 얻어온 태양성의 비거(飛車)가 아들의 이미지에 비친 것이라 여겼으니 열 달 전의 남가일몽은 비범한 태몽이 아닐 수 없다. 칠성정기(태양정기)를 타고 태어난 임일봉은 6세에 입학하면서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총기가 있었으나 불행히도 8세에 모친을 여의면서 공부의 길이 막히고 사방을 떠돌며 문전걸식을 일삼을 수밖에 없었다. 신화적 영웅의 위기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6세 이래 서역필봉(西域筆鋒)10)에 이르러 미륵진인을 회견하였고, 그 뒤 대도불경을 닦은 끝에 도통통영(道通通靈)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여장꾸려 출세하니 세상만사 근심없네
일생토록 결심으로 수령신선 되려하네
세상공명 접어두고 청산은거 소원하네
진인교훈 전수하고 옥추봉행(玉樞奉行) 성심이라
심산유림 찾아드니 안빈낙토 그아닌가11)
수도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다시 나온 소회와 다짐을 밝히며 <강선가>는 마무리된다. 세속의 공명을 거부하고 심산유림(深山幽林)에 은거하며 수령신선(修靈神仙)을 염원하는 도가적 이미지가 강조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아닌, 공간적인 이미지가 부각된 ‘안빈낙토(安貧樂土)’가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도가적 선경뿐만 아니라 정감록의 지리적 이상향에 대한 감각이 깃들어 있는 표현이 아닌가 짐작된다. 20세기 전반기의 간행본에 수록된 『운기귀책(運奇龜冊)』에서 확인되는 ‘안심낙토(安心樂土)’의 전승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12)
<선유가>는 현존하는 태극교 가사 중에 가장 긴 편(116행)의 가사에 속한다. 임일봉이 중원 및 해동의 명산 승지를 찾아 그곳의 신성한 인물(도사, 진인, 성인, 대사, 직인)을 회견한 뒤 돌아오는 길에 괴물과 신병(神兵)을 퇴치하고, 요도(妖道)를 자복시키며 역천역리와 난도난법을 경계하도록 일깨우며 여로를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위의 <표 3>에서 보듯이, 가사의 내용은 전반부의 중원 여행과 후반부의 해동 여행으로 구분된다. 가사의 주인공은 중원 7처(곤륜산, 형산, 천축산, 광덕산, 철룡산, 마하산, 기룡산)를 찾아 직인, 도사, 진인, 성인 등을 면회하고는 포상팔경(蒲湘八景)을 유람하며 중원천지의 편답을 마무리한다. 중원의 승지강산을 찾아 도인과 회견하였다고는 해도 구체적인 대면의 행적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이에 반해 해동 5처에서 만났던 도사 및 대사와의 상론, 경론, 수훈 등의 내용은 빠짐없이 명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선유가의 비중이 후반부의 여로에 쏠려 있다고 하겠다.
먼저, 백두-철마-풍류-금강의 여로를 주목해 보자. 백두산은 무릉도원의 선경으로서 해동의 승지유람을 위한 좌처이자 출발점으로 묘사된다(백두산을 찾아와서 취운당 백운사이 운무로 바람막고 구궁팔괘 진을쳐서 선학을 농무하네 선경이 어디메뇨 무릉도원 여기로다 좌처를 정한후에 해동승지 유람이라)13). 철마산성에서 만난 용화도사로부터 천기순역(天機順逆)의 강론을 받고 소일거리로 바둑을 두기도 한다. 이후 풍류산에서 면회한 무궁도사와는 선화경을 상론(相論)하기도 하고 응신편에 대해선 접전(接戰)을 벌이면서도 운화경에 있어서는 화친(和親)하는 등 양자 간에 논쟁과 화의가 교차하였다. 주인공의 여로는 금강으로 이어지며 홀로 오십삼불 신령을 강론하기도 하고, 비류봉에 올라 화신대사와의 면회를 통해 세상의 흥망성쇠를 의론하기도 하였다. 철마산성 용화도사의 천기순역의 강론과 비류봉의 화신대사와 나눈 세간의 흥망론은 국가적 운명 및 예언에 관한 태극교의 교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남해도의 여로는 여러모로 범상치 않다. 무엇보다도 두 비범한 인물(운갑도사와 팔서대사)을 접하고 전수받은 수련과 예언에 대한 메시지가 각별하다.
황운을 올라타고 남해도(南海島)를 찾아가니
무릉도원 이곳이라 운갑도사 면회하니
그도사 이르는말 영기(靈氣)만을 생각하소
금일일진 길하기에 의외만남 없을까나
용궁전에 들어가서 팔서대사(정) 알현하니
후일대사 경론하나 무지하여 알길없네
줄기차게 물어봐도 천기누설 불가라네
훗날만남 기약하고 표연히 돌아가네14)
먼저, 남해 무릉도원에서 만난 운갑도사(運甲途士)는 영기(靈氣)의 집중을 주문한다. 이는 가사에서 언급되는 수령신선(修靈神仙), 정심수령(正心修靈), 수령성심(修靈誠心) 등의 메시지와 통하며, 동학 전통의 수심정기의 맥락과 연관된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용궁전(龍宮殿)에서 대면한 팔서대사(八西大師)는 내용적으로 적잖은 위상과 비중을 차지한다. 여느 도인들과의 만남은 회견(會見) 또는 면회(面會)로 표현되고 있으나 팔서대사의 경우에는 알현(謁見)으로 묘사된다. 기록자가 팔서대사를 언급하며 별도로 괄호 안에 ‘정(鄭)’이라고 묘사한 것은 파자의 방식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글자 형태상 ‘팔서대(八西大)’를 각각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배치하면 ‘전(奠)’ 자가 되고, 여기에다 ‘사(師=阜+帀)’15) 자의 왼편 부분(阜=阝)을 덧붙이면 ‘정(鄭)’이 된다. 남해의 팔서대사는 당연히 남해의 정씨 진인을 염두에 둔 것임이 분명하다. 팔서대사의 경론 내용은 미래에 일어날 큰일과 관련되며, 함부로 누설할 수도 없고 지각없는 자가 알기도 어려운 천기 자체였다. 이는 정감록의 해도진인설과 태극교의 계룡-정왕론을 엿볼 수 있는 주요 대목이라 하겠다.
셋째, 남해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환하며 대면했던 반동인물(antagonist)과 얽힌 에피소드도 주목된다. 서해의 괴물을 퇴치한 뒤(서해돌아 오는중에 괴물하나 장난하니 구룡철장 높이들어 그괴물을 처치하고)16), 낙림산에서 파요경(破妖經)을 외우고 구룡편(九龍片)을 휘두르며 맹호신병(猛虎神兵)을 자퇴시킴으로써 선유를 통해 쌓아온 내공이 발휘된다. 진정한 반동인물은 조선의 실체로 여겨지는 ‘이모(李某)’로 등장한다.
천주(天呪)를 거듭읊자 천상역사(天上力士) 대기하네
역사에게 호령하니 요도(妖道)를 잡아오네
철장(鉄杖)으로 난타하며 경계하며 단속하니
자복하며 이르기를 성명은 이모(李某)인데(이모는 이왕인 듯함)
입산수도 십여년에 자연스레 통영해서
천하에 포덕하고 후생영광 보이려고
이산중에 깊이들어 장래를 연구타가
선생의 납시심을 전혀알지 못하고서
이런죄를 범했으니 부디용서 하옵시길
자선하는 빛나는삶 선교(善敎)를 베푸소서
애원하는 즈음에 훈계하며 이르기를
세상사 천정이니 역천역리(逆天逆理) 하지마소
난도난법(亂道亂法) 요망한도 후일을 경계하며
홀연히 헤어진뒤 백운타고 돌아간다17)
맹호신병은 물러났지만 요도(妖道)의 핵심 실체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위에서 보듯이, 주인공은 천주(天呪)를 읊어 역사(力士)를 불러낸 뒤, 그로 하여금 요도를 잡아오도록 명한다. 놀랍게도 그 요도는 다름 아닌 이왕(李王)으로 묘사된다. 앞서 남해에서 알현한 팔서대사(鄭)와 대비되는, 필연적으로 넘어서야 할 구체제의 표상인 셈이다. 그간 나름대로 쏟아온 정성과 구도의 모색은 가상하더라도 결국 이씨로 대표되는 요도는 새시대를 여는 새로운 주역의 등장을 가로막는, 역천역리와 난도난법을 일삼은 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주인공은 요도의 실체에게 자비와 더불어 강력한 훈계(역천역리와 난도난법의 금지)를 베풀며 귀환을 마무리짓는다.
54행 분량의 <봉운가>는 보험가와 더불어 가장 짧은 가사에 속한다. 비록 길이는 짧다고 해도 천운을 받들어 태극교를 창립했던 배경과 교단의 취지 및 이상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가사라 할 수 있다.
천기(天機)는 순환하고 삼양(三陽)은 돌고돈다
천이준걸 안받으면 되려재앙 받게되리
일생토록 결심한바 수령신선 소원이라
세상흥망 무심하고 안빈낙토 제일이다
인간생활 잠깐이나 선계영광 무한하리
선과선주(仙菓仙酒) 포식하고 선학으로 춤을추네
세상희망 뭐있겠나 나의바람 그뿐이다
천하승지 사는선인 마음모두 그뜻이라18)
우선, 주목되는 것은 하늘이 부여해 준 것을 제대로 받들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게 된다는 천정운수(天定運數)에 대한 믿음이다. “천이준걸 안받으면 되려재앙 받게되리(天ガ與フルヲ受ケズンバ 却ッテ災殃ヲ受ケルナリ)”의 구절은 괴통(蒯通)이 한신(韓信)으로 하여금 유방 및 항우와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도록 권하며 건넸다는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허물을 받고, 때가 이르렀는데도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天與弗取 反受其咎 時至不行 反受其殃)”는 『사기(史記)』(淮陰侯列傳)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전근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널리 공유된 상투어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871년 영해지역에서 동학 교조의 신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물리적인 행동을 모색했던 이필제가 만류하던 해월에게 고서(古書)를 운운하며 언급했던 말도 다름 아닌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天與不受 反受其殃)”19)는 표현이었다. 사람의 태도에 따라 천운(天運)은 천앙(天殃)이 될 수 있으므로(오는운을 거부하면 천앙도래 두렵도다)20) 결코 가벼이 처신할 수 없다. 천하승지(天下勝地)의 선인처럼 수령신선(修靈神仙)을 염원하며 안빈낙토(安貧樂土)를 우선했던 태극교주로서는 잠시간의 인간세보다는 무한의 선계에 뜻을 두었기에 선택은 분명했다.
비로소 운명적인 선택의 날이 다가왔다. 천사가 전해주는 천서를 받든 때는 사술(四戌)이 겹치는 1934년 10월 31일 술시였다. 교단에서 봉운대축기념일(奉運大祝紀念日)을 9월 22일로 설정했던 것22)은 그날이 천운을 받든 사술의 음력일(9월 23일)의 전날에 해당되기 때문일 것이다. 임일봉이 받든 천서의 핵심 메시지는 새로이 도래할 세계의 종민(種民), 즉 생명구원의 종자를 얻는 것이었다. 다분히 정감록의 ‘구인종어양백(求人種於兩白)’의 맥락을 전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운수 아니라면 나란사람 누가알까
도덕문을 크게열고 숨은비감 꺼내어서
공평정대 순화하니 대통정법(大通正法) 이아닌가
하늘의 권능이란 강바다도 바꾸리라
못할것이 무엇이랴 운수라면 그뿐이다
청송녹죽 길이사니 이내운도 영생하리
건곤불로 장생하니 이내운수 갱생하리
도화낙지 삼십육춘 모두와서 출세하리23)
운수를 받아놓고 걱정이 앞서겠지만 하늘의 권능과 운수를 믿고 나아갈 일만 남았다. 열린 도덕(道德)과 숨겨진 비감(祕監)은 정법에 달통하는 두 밑천이다. 특히 태극교 가사에서는 비(秘)와 정(正)이 의미적으로 상응한다. ‘숨은 비감’은 정법으로 통한다. 앞선 선유가의 팔서대사의 내용에서도 보듯이, 보결(寶訣) 또는 옥결(玉訣)일수록 범인에게 쉽게 허락되지 않고 함부로 누설될 수도 없는 진정한 가르침일 가능성이 높다. 교주는 하늘로부터 받은 자신의 운수가 청송녹죽(靑松綠竹)의 영생과 건곤불로(乾坤不老)의 갱생을 보장받을 것이며, 종국에는 도화낙지(桃花落地)의 삼십육춘(三十六春)을 실현시킬 것이라 확신하며 대중의 동참을 권면한다. 도화낙지 삼십육춘에 대해서는 후술할 보험가의 천도(天桃) 서사에서 보다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포덕가>(112행)는 <선유가>(116행)에 이어 두 번째로 긴 태극교의 가사로서, 혼탁한 세상에서 새로이 떠오른 운수(종교)에 부응하며 궁궁(弓弓)의 가치를 보전할 인종(人種)으로서 생명구제의 역할에 진력하기를 기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1) 현세의 진단 2) 지각 있는 선택 3) 포덕에 대한 당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가사의 첫머리부터 삼강오륜과 예의범절이 무너진 적악무도하고 무정한 혼돈천지를 묘사하면서 새로운 운수가 도래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설득한다.
오호라 이세상아 어찌하여 요란한고
삼강오륜 무너지고 예의예절 없어진다
금전으로 천지되고 잇속으로 정치하네
탐욕세간 되고나면 적악무도(積惡無道) 절로되리
재귀탐욕 하던중에 형제간엔 화기없네
돈을써서 정을사고 생명써서 돈을산다
혼돈천지 세상중에 불선자(不善者)가 제일이다
부모형제 무정하니 믿을자가 전혀없네
외면상의 화순심은 성인에 방불하여
치료한다 선약(仙藥)주나 내심으론 사약(死藥)주네
이세상 이런거야 사람모두 알겠지만
천정심(天定心)이 이같으니 욕망이 탐욕되네
광활천지 이세상에 과연운수(종교) 많지만은
어둠속에 방황하니 진실거짓 미판(未判)이라
방황하는 사람들아 나의노래 들어보소24)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도덕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잇속을 챙기는 정치(금전으로 천지되고 잇속으로 정치하네), 생명과 인정을 앞서는 금전주의(돈을써서 정을사고 생명써서 돈을산다), 선약 아닌 사약을 베푸는 불신사회(치료한다 선약주나 내심으론 사약주네), 다수의 종교가 난무하는 종교의 각축장이 연속된다(광활천지 이세상에 과연운수 많지만은). 진실과 거짓은 모호하고 민중은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어둠속에 방황하니 진실거짓 미판이라 방황하는 사람들아 나의노래 들어보소). 이 혼돈을 돌파할 만한, 새로운 운수와 도법을 예고하는 노래가 요청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지혜 있는 자들의 유감 없는 선택을 기다리는 태극교의 핵심적이고도 비밀스런 가르침이 제시된다.
상고부터 혼란하니 오래도록 도가없네
지각없는 저사람들 탐금취물(貪金取物) 사지(死地)가네
적선유지(積善有志) 현사들은 이재궁궁 하는거동
잘못알고 들어가면 그곳이 험지로다
궁을이치 쉽지만은 세상사람 미지로다
싫다싫다 나는싫다 적악불선(積惡不善) 나는싫다
나의운수(종교) 무미(無味)하고 우리도법 무령(無靈)해도
지각자는 그걸알고 무지각자 그걸몰라
깊다하면 깊을거고 얕다하면 얕으리라
진리심천(深淺) 판별하면 주야없이 성심진력
운무속의 비밀보감 꺼내보니 정도로다
깊은숲속 은좌(隱座)하여 티끌세상 조망컨대
풍우속에 갇힌백성 진실로 가련하다
구인종(求人種)에 뜻을두고 운수따라 포덕하세
방황하는 저사람들 이것저것 따져보되
대도에 불참하면 후회해도 도리없네25)
지각이 없으면 사지(死地)와 험지(險地)의 선택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태극교의 운수가 맛이 없고(無味) 도법이 영험하지 않은(無靈) 것처럼 보여도 그것의 묘미와 깊이를 헤아려 보는 지각이 요청된다. 아울러 운무에 감춰진 보감(寶鑑)이야말로 티끌 세상의 혼돈을 헤쳐나갈 정도(正道)이니만큼 후회 없는 동참의 결단이 요청된다. 숨은 비감을 정법으로 연결했던 <봉운가>의 논리대로 여기에서도 운무 속의 비밀스런 보감은 정도와 동일시된다. 역시 비(秘)와 정(正)의 상응이랄 수 있다. 지각 있는 결단자에게 남겨진 과제는 풍우 속에 갇힌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구인종의 포덕에 진력하는 것이다(구인종에 뜻을두고 운수따라 포덕하세).
세 번째로 천운이 도래한 호시절에 양백 간의 생명로를 개척하는 길에 나서라는 당부를 끝으로 <포덕가>가 마무리된다.
만화방창 호시절 벌나비에 좋은시절
만개화초 지천이고 여기저기 향기로다
시절따라 너도탄생 여광여취 인듯하다
화계위(花階上)는 어디인가 자비박등(自飛撲灯) 무엇인가
탑상에서 봉황놀다 날아가니 허공이네
강남풍월 폐대란(閉對欄)을 자세하게 생각하라
영기(靈氣)로 부른노래 천운이 그아닌가
뜻있는 현인들아 방황난지(彷徨乱志) 하지말고
양백간을 찾아와서 치명로를 개척하라26)
그간 냉혹한 민족적인 역경 속에서 금수조차도 누릴 수 있었던 호시절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던 조선인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일이야말로 태극교도의 종교적·역사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정감록 문헌이 길지로서 예시했던 양백간(兩白間)27)의 활로는 일제강점기의 상황에서 민족적 소생과 포덕의 목표를 지향하는 표상으로 지속된다.
<도덕가>는 도덕천지(道德天地)와 안빈낙토(安貧樂土)의 실현을 위해 적선과 수련을 권고하는 가사다. 먼저, 도덕은 우주적 차원(우주에 베푼법은 하늘의 도덕일세)과 사회적 차원(이세상 행할바는 화순이 도덕이라)을 아우른다. 전자는 흥망성쇠와 복선화음을 주관하고 후자는 전쟁의 풍진 속에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한다. 태극교에서 표방하는 도덕은 경천(수련)으로 권능받은 선하고 유한 것이지만 사나운 전쟁의 시대를 억누를 수 있는 무적의 도덕임이 강조된다. 소위 도덕천지 무적론이라 할 수 있다.
우주에 베푼법은 하늘의 도덕일세
지극한 하늘은 청고청비(聽高聽卑) 하시리니
하늘의 성신(聖神)이여 재천재지(在天在地) 틀림없네
우리들의 흥망성쇠 하늘의 세찰(細察)일세
악자에겐 화를주고 선자에겐 복을주네
그런줄 안다면은 엄히할일 무량하네
이세상 행할바는 화순이 도덕이라
이세상 풍진속에 폭포무기(暴砲武器) 전쟁이라
경천으로 권능삼아 도덕천지 무적이라
전세계는 강력하나 우리도덕 선유(善柔)하다
유(柔)가능히 강(强)을이겨 대적할자 누구랴28)
소위 복선화음(福善禍淫)의 대원칙은 하늘의 세심한 살핌으로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지속되므로 개인적 차원에서 도덕주체인 인간은 선행을 엄수하면 그뿐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도덕의 우월성은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도덕의 유함이 전쟁과 무기의 강함을 능가한다는 도덕천지 무적론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로 도덕은 심령을 닦는 종교적 수련의 차원(수령성심 지극하면 하늘이 감응하리)29)으로 언급된다. 교단 내 수도자들에게 역천역리(逆天逆理)와 난도난법(亂道亂法)은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금단의 행위로 제시된다.
봉운수도(奉運修道) 제생들아 마귀시험 받지마라
도를닦는 사람들아 천도역리 하지마라
난도난법 하는자는 하늘사랑 없으리니
역천역리 하는자는 마귀속에 빠져든다
대명천지 세상에도 흑운(黑雲)속에 홀로가리
수도하는 사람들아 탐욕부귀 원치말고
안빈낙토 수본(手本)삼아 운무속에 명월되리
구름걷힌 청천(靑天)되면 이월의 빛일런가30)
도덕가는 태극교의 도인으로서 부귀탐욕을 버리고 안빈낙토를 기본으로 삼아 적선을 실천하고(적선사업 힘을쓰면 적선유애 아닐런가)31) 정심수령(正心修靈)에 매진하면 성신의 감응을 통해 청정한 승지청계(勝地淸溪)의 신선세계를 성취할 것(정심수령 해본다면 성신이 감응하리 승지청계 수려한곳 선관선녀 하강하고 우리도에 성심이면 소원성취 절로되리)32)이라는 메시지로써 대미를 장식한다. 적선과 수령은 별도의 차원일 수 있으나 태극교에서는 양자를 하나의 어구(積善修靈)로 강조하기도 하였다. 가령, 압수문건(별지 4호)에 들어 있는, 1937년 8월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태극운서(太極雲書) 말미에 실린 ‘성훈(誠訓)’에는 “지극한 천을 공경하고 성심으로 충효하고, 동법(同法)을 자선으로 하고 탐욕하지 않으며, 적선수령(積善修靈)하는 자에게는 생문이 탐욕무도적악(貪慾無道積惡)하는 자에게는 천벌이 내려지니 이것을 삼가며 영을 닦으라”33)는 내용이 적혀있다.
<시절가>는 춘하추동 사계절을 맞는 소회와 처신을 노래한다. 계절의 변화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19세기 말의 망국과 20세기 일제강점기의 현실을 한탄하며 비결의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소위 <시절가>류의 가사34)와는 일정 정도 구분된다. 태극교의 <시절가>는 정치사회적인 시절보다는 계절적 의미의 시절에 초점을 두면서, 계절의 흐름으로 시운의 변화를 비유하고 있다. 물론 계절을 노래한다고 해도 각 계절의 순환을 균등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겨울과 여름보다는 상대적으로 춘삼월 호시절의 시운과 가을 들판의 바쁜 농심이 인상적으로 묘사된다.
한설북풍이 지나가고 온화한 동풍이 불어오면서 만물이 소생하는, 우순풍조의 봄날이 온다. 춘삼월 호시절의 시운이 겨울의 엄혹한 현실을 뚫고 기지개를 켜면서 움츠렸던 천하인민은 태평시절을 맞는다. 춘삼월이 가고 남풍에 훈기가 배면서 만물이 울울창창 성장하는 무더운 여름이 되고, 다시금 때에 맞춰 훈풍이 가시면 바쁘디바쁜 가을이 돌아온다.
훈풍이 다지나고 맹호출림(猛虎出林) 계절되니
찬기러기 날아가고38) 큰기러기 바람맞네
추수시절 다다르자 세상도처 농부네들
농구챙겨 어깨걸고39) 가을드니 바쁘구나
온들판이 황금구름 그경색 찬란하네
유수세월 화살같네40) 좋은경치 지나치면
다시보기 어려워서41) 농부에게 이르는말
굉장한 경색이니 수확일랑 늦추어라
그농부 답하기를 시절을 놓친다면
끼니어찌 채울손가 지체하면 화근될라
농주농가(農酒農歌) 흥을돋워 마석(磨石)에 연장갈아42)
넓은들로 나아가서 기탄없이 베어낸다43)
<근농가>류의 가사에서 밭을 가는 봄농부가 강조되는 것에 비해, <시절가>에서는 추수에 여념 없는 가을농부의 일상이 길게 묘사되고 있다. 추국단풍(秋菊丹楓)의 경색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한눈팔지 않는 농부의 손길은 쉴 새 없이 계속될 뿐이다. 엄혹한 현실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시절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 가을에 임하는 농심이었다. 어느덧 추색이 저물고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
그리도 멋진경치 한날한시 사라지고
추국단풍 만추경색 어느새 다지나니
애틋하고 애처롭다 호시호경(好時好景) 다지난다
한설북풍 웬일이고 펄펄백설 웬일인가
첩첩강산 바라보니 멋진단풍 사라지니44)
슬픔에 눈물나니 슬픔어찌 가눌손가
무심한 소슬한풍 쓸쓸한 맘보탤뿐
어이없는 이내처지 천하강산 바라보니
남은게 무엇인고 청송녹죽 그뿐이네
은색세계 된바에야 청송녹죽 벗하련다
동짓달 기나긴밤 등불밝혀 독서하세45)
가을의 성실함은 겨울의 인내로 전환된다. 다시금 한설북풍이 찾아와 쓸쓸한 처지에 놓이지만 냉혹한 현실에 주저앉기보다는 청송녹죽 벗하며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독서로 지새우며 새봄을 대비하려 한다. 어느덧 대기 너머로 겨울이 넘어가고 새봄이 밝아온다.
무수한날 보냈더니 대기너머 겨울가네
어느새 얼음녹고 새봄이 돌아왔네
고목이 봄을만나 계명성이 처량하다
좋은시절 벗님들아 옥춘화류(玉春花柳) 경사로다
가지마다 푸릇푸릇 만개화초 가경이네
여보시오 님들이여 답청가를 불러보세
명승지 찾아가서 태평연(大平宴) 차려놓고
팔복장삼 꾸며입고 태평고를 둥둥울려
행진곡 불러대며 북장단에 춤춰보세46)
얼음장 같은 겨울을 견뎌내니 새봄의 시운을 재촉하는 계명성(鷄鳴聲)이 들려온다. 태극교에서는 계명을 정왕(鄭王)의 운수가 열리는 계룡으로 받아들인다.47) 가사의 전반부에도 봄이 묘사된 바 있지만, 후반부에서는 다시 맞는 새봄의 희열을 노래와 장단과 춤으로 만끽하는 장면을 더욱 부각시킨다.
54행의 짤막한 내용으로 구성된 <보험가>는 태백노인이 서왕모로부터 얻어온 복숭아(나무)를 무릉승지에 심어놓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정성 들여 싹 틔우고 성장시킨 뒤 결국 좋은 결실을 거둠으로써 태극성군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천도(天桃) 서사를 담고 있다. 20세기 신종교 전승에서 소두무족(小頭無足)의 재앙을 벗어나 머무를 수 있는 대안으로 지목된 비결어 ‘도하지(道下止)’가 주목을 받았는데,48) 태극교에서는 이를 ‘도하지(桃下止)’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복숭아의 이미지는 각별하다고 하겠다. 천도 서사는 곤륜산의 잔치에서 시작된다.
태백산의 한노인이 요지연서 돌아올 때49)
서왕모께 요청하여 천도한개 빌려오고
무릉승지 찾아가서 복사나무 심었더니50)
춘삼월 화창한날 새싹이 돋아나네
기쁘고도 즐거워서 애지중지 덮어주고
음양로로 잘키우니 이삼년이 걱정없네
태백산 노인은 장생불사의 여신 서왕모가 주 목왕과 함께 곤륜산의 요지(瑤池)에서 베풀었다는 신선들의 잔치(瑤池宴) 자리에 참여했다가 천도 하나를 얻어온다. 그리고 그것을 무릉승지51)에 심었는데, 춘삼월의 시절에 맞춰 새싹이 돋아난 뒤 이슬 먹고 이삼 년간 그럭저럭 문제없이 자라난다. 그러나 어린 복사나무에 호된 시련이 찾아온다.
태백노인 이르는말 천도(天桃)길흉 모른다네
구궁팔괘 펼쳐놓고 한번던져 괘를보니
다름아닌 산풍고(山風蠱)라 벌레셋이 갉아먹네52)
염려하며 이르는말 호사다마 틀림없다
천운이 불길한가 칠년가뭄 도래하여
가지절로 말라가니 떨어질라 염려하네
용녀(龍女)시켜 물을긷고 물을주고 지켜냈네
무궁조화 이룬천도 별탈없이 피한(避旱)했네
우로(雨露)받아 자라나서 열두가지 푸릇푸릇53)
가지마다 맺은열매 삼십육이 아니던가54)
태백노인은 천도의 길흉을 점친다. 그렇게 해서 산풍고(山風蠱) 괘를 얻었는데, 괘사 자체보다는 고(蠱)자의 문자형태에 대한 풀이에 주목하며 호사다마를 직감한다. 점괘대로 칠년 가뭄이 도래하고 나뭇가지는 고사 직전의 위기 상황으로 몰린다. 그러나 강우를 관장하는 용녀를 통해 가뭄을 이겨내고(避旱) 우로의 혜택을 얻어가며 무성한 열매를 얻어낸다.
어느성군(聖君) 찾아와서 과실(果実)매도 당부하네
정성들여 맺은과실 팔수있다 답해놓고
공임들여 이룬성과 이도또한 천운이라
이열매 사려면은 천운대장(天運坮帳) 들춰보라
천운대장 조사하고 천표낙점(天表落奌) 확인한다
정자에서 강론후에 진주성군(眞主聖君) 틀림없이
삼십육개 천도열매 운성전(運聖殿)에 반출하여
태백노인의 36개 천도는 진주성군의 종실(種實)로 보관된다. 하늘의 표징(天表)을 얻은 36개의 천도를 매도하면서 진주성군으로부터 종자를 키워낸 공로로써 상급(장생부의 낙점과 보호운관선봉)을 얻는다. 태극교에서 36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교단 조직도를 보자면, 교주의 측근에 좌우태백(左右太白)과 좌우태을(左右太乙)이 있고, 그 예하에 역학의 범주에 따라 35봉도가 갖춰져 있다. 35봉도는 세부적으로 오행봉도(五行奉道) 5인, 천간봉도(天干奉道) 10인, 지지봉도(地支奉道) 12인, 팔괘봉도(八卦奉道) 8인 등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에 교주(天門奉道)를 합쳐 36봉도라 칭하였다.58) 36은 역학의 범주에 있어서도 포덕을 위한 조직에 있어서도 완전체에 해당한다. <봉운가> 말미에서 읊은 “도화낙지 삼십육춘”도 이와 연관되며, 의미상 완전한 이상이 실현된 온누리의 시공간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궁을가〉류의 가사에, 온 세상에 모두 봄이 왔음을 뜻하는 노랫말로 흔히 “삼십육궁(三十六宮) 도시춘(都是春)”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천도의 서사를 끝으로 <보험가>를 마무리하면서 신세계를 향한 태극교의 웅기를 되새기고 있다. 궁을기(태극기), 생명고, 도덕문 등으로 구체화된 깃발·북·문은 힘찬 전진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사를 향유하는 태극교도는 진주성군을 보필하며 신천세계의 진정한 종자의 구실을 하게 된다. 다분히 암시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이와 유사한 구절이 압수된 태극교의 문서(별지 4호)에서도 확인된다. “궁을기(태극기)를 높이 게양하고 생명고를 두드리면서 무릉도원을 찾아가 성황진주(聖皇眞主)60)를 기다리며 삼년도(三年道)를 닦으면 가절앵가(佳節鶯歌)의 때에 雞鳴山川(계룡산)을 찾아가서 무궁의 도를 즐기니 아아 좋도다 성황진주의 선정치에 천정종민(天定種民) 격양가로 만만태평하다”61)는 내용이 그것이다. 두 내용을 견주어 보자면, 가사에서 언급된 ‘별유천지’는 무릉도원으로서 계룡산의 다른 표현이라 하겠고, ‘진주성군’은 성황진주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는 태극교의 계룡-정왕론을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내용이다.
Ⅲ. 비결가사 : 계룡정왕(鷄龍鄭王)과 안빈낙토(安貧樂土)
지금까지 살펴본 태극교 가사 7편에서 비중 있게 공유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비결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가사 사이에 높낮이와 셈여림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예언의 암시, 시운의 지각, 비밀의 실천과 성취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결가사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비결가사의 주제와 내용은 기존 정감록류의 비결과 밀접한 관련성을 띠고 있다. 민중 수용층에게 익숙하고 중요하게 생각되는 비기도참의 예언적 기표(記表)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기의(記意)를 신종교의 사유 내용으로 바꾸는 전유(專有, appropriation)의 과정을 거쳐 비기도참의 사유를 수용하면서도 전복한다. 예언의 기표들은 감춰져 있고, 그 비밀은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만이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정감록을 비롯한 비결의 내용들은 일부 키워드, 혹은 구절 등으로 압축되어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고, 머리 속에 자리 잡게 된다.
… 비결가사는 민중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비결과 관련하여,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이 감춰져 있는 ‘비밀’을 적극적으로 가사 내에서 해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보여준다. 이는 비결의 단순한 수용이 아닌 전유의 과정, 곧 비결의 기표와 상황을 수용하되, 그 핵심적인 의미를 신종교의 사유로 치환하는 과정이다.62)
한국 신종교가사의 전문 연구자인 박병훈이 제시한 위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비결가사는 가사형식을 빌려, ① 정감록류 예언 전승의 해석적 전유(專有)와 ② 비밀스런 예언의 집단적 공유(共有)를 실현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먼저, 태극교 가사 7편은 정감록의 이재궁궁(利在弓弓)과 구인종어양백(求人種於兩白)을 적극 활용하면서 이상향으로서의 길지(桃林勝地), 예언의 암시(桃下止, 桃下之顧命), 지각의 주체(種民, 天定種民, 民種), 이상적인 공간에서의 삶(安貧樂土) 등에 관한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둘째, 태극교 가사는 은미한 비밀의 가르침이 곧 보배로운 정도임을 표방하는, 비(秘)와 정(正)의 등치 관계를 내세우며 닫힌 비결의 문을 열어 공유를 권한다. 적어도 태극교 가사를 통해 전유된 비결은 내부자들에게 공유되며 독특한 사상과 의례를 뒷받침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사실, 현재로선 질적인 평가를 내리기 곤란한 상황이지만, 태극교 비결가사가 형성되기까지 백백교의 전승은 직간접적으로 크고작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일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태극교 교주 임일봉은 대략 1900년쯤63) 강원도 김화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 8세에 모친을 여윈 뒤 소학교를 중퇴하고 부친과 각지를 떠돌며 한문, 주역점, 지리서, 정감록 등을 익히다 1933년 강원도 김화(근북면 성암리)로 이거한 이래로 농업, 매약(買藥), 청매(請賣) 등으로 생업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64) 무엇보다 19세 때부터 2년간 백도교(백백교)에 들어가 신앙을 체험했다는 사실은 그의 종교인생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력이다. 1912년 백도교주 전정운이 강원도 김화(오성산)에 교단의 본거지를 정했었던 사실65)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그의 입교 시기는 전정운의 사망(1919년)에 이은 인천교(전용주), 백백교(전용해), 도화교(전용석) 등으로 교단이 분열되던 혼란기와 겹치는 때라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태극교가 성립(1934년 10월 31일)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백백교의 이력과 자원이 적지않게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태극교의 초기 포덕의 대상자는 과거 백백교 교도였고 곧 태극교의 핵심 간부가 될 오일보(吳一寶)와 현학근(玄學根)이었고, 그밖에 대부분의 교도도 백백교의 근거지였던 가평군과 그 인근 지역의 거주자들이었다.
태극교가 백백교의 종교적 유산(유불도 통합, 선경66) 및 신선사상, 정감록신앙)을 흡입하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임일봉은 비결적인 풀이를 통해 백백교(보천교 포함)와의 비교우위를 표하며 차별의식을 분명히 하였다.
盜滿(豆滿의 일) 江山에 淸風이 불고 일광의 暉中에 露와 함께 蘇한다(中國과 蘇國이 힘을 합친다는 뜻) 風前의 月免67)宮을 찾기 어렵고 白龍(庚辰)은 바다에 들어가 詳雲이 일어나 春園의 용꿈을 누가 알까 강남에서 온 제비가 문전에서 알리니 石井은 이미 파괴되고 寺畓은 사라지고(普天敎의 해산을 이름) 兩白은 장차 가고 黑鳥가 날으니(白白敎의 해산을 이름) 나무는 억조의 수만큼 많고 강산의 빽빽한 나무(密木)는 자연의 숲이 되고(林一奉 자신의 일) 명을 돌아보니 何處가 그중에 있고 세인은 지혜가 없어 찾지를 않고 兩鳥는 노닐고 달에는 雙弓이 모이니(弓弓乙乙 즉 太極을 가리킴) 八仙이 서는 방향에 살아날 문이 있다.68)
위 내용은 압수문건(별지 4호)에 들어 있는 ‘논하여 이르기를 亭下의 赤牛(丁丑의 일), 兩角에 紅血이 流々’라는 제하에 언급된 내용이다. 임일봉은 이재전전(利在田田)의 맥락에서 부상했던 석정(石井)과 사답(寺畓)의 비결어를 통해 1936년에 해산된 정읍(井邑)의 보천교의 운명을, 양백(兩白)의 비결어를 통해 1937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백백교의 퇴조를 강조한다. 반면에 숲을 암시하는 비결을 통해 임(林)을, 궁을(弓乙)의 비결을 통해 태극교의 시운을 내세운다.
그런데 태극교가 내세우는 비결의 내용은 식민지 당국을 긴장시킬 만한 시국의 건이 될 소지가 다분하였다. 일제는 교주 임일봉이 태극교를 기반으로 조선인의 단결과 독립을 추구한다고 의심하였다. 실제로 그는 보안법과 육군형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3년 6개월의 징역 처분을 받아야 했다. 당시 사법당국이 혐의를 둔 것은 그가 한일병합으로 인해 조선인의 생존권과 자유가 상실되었으므로 조선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완전 독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독립을 위한 조선민족 대동단결의 수단으로 종교를 창설하여 입교를 권유했다는 사실이었다.69) 당국의 시선에서 보자면, 교단의 좌우태백, 좌우태을, 36봉도 역시 조선의 독립을 꾀하는 조직일 뿐이었다.
당시 일제는 태극교의 교세가 14호 50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았으나 교도들이 공유한 계룡-정왕론을 더할 나위 없는 불온한 사상이라 여기며 이의 유포경로를 색출하는 데 골몰했다.
머지않아 정왕이 계룡산에 등극하는 날에 본 교도만이 구인종(求人種)으로서 영화를 받을 것인데, 교도는 이 진리를 분별하고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고 훈화하고, 본교의 신앙결속에 따라 조선독립을 달성할 것이라 암시하며 결속시키는 것 외에 … 70)
같은 해(1934년) 11월 15일경에 자택에서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정태용에게 조선은 언제까지나 일본에 예속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4, 5년 후에는 나쁜병이 유행하고 병란재(病亂災)가 일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망하는데 그때 정왕이 나타나서 조선을 독립시키고 충청도 게룡산에 도읍을 정하여 왕위에 즉위하고, 태극교도는 정왕을 받들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니 태극교에 입교하여 독실하게 믿어야 한다는 취지의 권유를 하여 정태용을 입교시켰다.71)
첫 번째 인용문은 검사국문서(1938년 11월)에 들어 있는 내용이고 두 번째 인용문은 『사상휘보』 24호(1940년 9월)에 실린 피고 현학근에게 제기된 공소내용이다. 전자에 의하면, 계룡산의 정왕 등극을 대비하는 태극교도에게만 구인종으로서 삼재(병, 전쟁, 흉작)에도 생을 보장받고 번영을 누릴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정왕이 등극할 독립된 조선의 운명을 언급하는 것은 민감한 사안이었기에 계룡-정왕의 담론은 공공연하게 언급될 수 없는 비밀사항이었다. 후자를 통해, 포교 과정에서 계룡-정왕의 논리와 태극교도의 묵계적 특권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일제 사법당국은 계룡-정왕론을 배경으로 태극교 가사의 진의를 적극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가령, <선유가>를 두고, “임일봉은 신선을 찾아 여러 곳을 다니다가 남해도에 이르러 정왕을 만나 후일 계룡산에서 조선독립의 일에 관해 상의하여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졌는데 태극교는 진도(眞道)로서 이조시대(李朝時代)에 행해진 각종 사교(邪敎)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여 정왕의 세상을 실현해 천국으로 돌아간다는 취지를 나타내는”72) 가사라고 요약하였다. 남해의 팔서대사를 찾아가 미래의 일을 논했고 귀환하는 길에 이모(李某)라는 요도(妖道)를 굴복 및 설득시켰다는 가사의 내용을 독립투쟁의 실현과정으로 적극 해석한 것이다. 한편 <보험가>의 경우에도 “태극교가 여러 고난을 거쳐 36봉도(奉道)를 채우고 널리 포교를 완성하는 날에는 정왕을 보필해 신 조선국가에서 부귀영화의 생활에 들어간다는 취지를 나타”냈다고 평한 바 있다. 가사 자체는 느슨한 비유와 암시에 그치고 있지만 교설과 관련된 압수 문건을 통해 정치적으로 강화된 입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태극교의 독립투쟁은 엄밀히 말하자면 계룡-정왕의 예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전개한 ‘상상의 독립투쟁(imaginary struggle for independence)’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운동과 실천이 동반되지는 않았지만 관념상의 대결의식은 상당히 고취되어 있었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데 한몫했던 비결과 믿음도 여전하였다.73) 특히 일제강점기에 국권의 회복을 대망하는 상상의 독립투쟁에 있어 정감록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정감록은 왕조교체의 서사와 비결을 담은 정치담론으로 출현하였지만, 수운의 해석학적 전유를 거치면서 우주론과 도덕론을 함축한 영성담론으로 변용되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 근대사조의 파고를 넘지 못한 채 점차 문자적 힘을 잃어갈 것처럼 보였다.
길지에 대한 십승지(十勝地)를 심승지心勝地)74)로 변용시킨 20세기 후기 동학의 전승과는 달리, 태극교는 계룡 승지와 정왕의 문자적 의미를 좀 더 강화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무딘 칼을 쓸모없다고 내던져 버릴 수도, 반대로 고이 거두어 단단히 벼릴 수도 있었다. 태극교는 버림이 아닌 벼림의 길을 택했고, 그 일단을 잘 보여주는 것이 태극교 7편의 비결가사라 할 수 있다. 임일봉은 백백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정감록의 예언과 비결의 언어를 핵심적인 신앙의 키워드로 벼려냈다고 평할 수 있다. 정감록의 이재궁궁(利在弓弓)과 구인종어양백(求人種於兩白)을 적극 활용하여 파생한 종민(種民), 천정종민(天定種民), 민종(民種), 도하지(桃下止), 도하지고명(桃下之顧命), 도림승지(桃林勝地) 등은 그 예들이라 할 수 있다.
태극교 가사에서 주목된 안빈낙토(安貧樂土) 역시 도교적 선경의 이미지가 엿보이긴 하지만, 정감록의 길지 및 승지에 대한 공간적 인식과 부사빈생(富死貧生)이라는 생의 조건을 결합한 메시지라고 판단된다. 청빈(淸貧), 소욕(少欲), 안분(安分)의 상황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며 도(道)를 즐기는, 이른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은 유불도의 전통에서 공유해 온 간과할 수 없는 모범적 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너무나도 익숙했던 안빈낙도의 친숙한 어감을 살리면서도 결정적인 문자를 비틂으로써 차별화된 개념을 돋보이게 하려는 언어전략 속에서 안빈낙토가 창출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런 점에서 공간의식을 무화시킨 심승지(心勝地)와 공간의식을 강화한 안빈낙토는 정감록 수용에 있어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Ⅳ. 결론
지금까지 태극교 가사 자료를 통해 1930년대 중후반의 식민지 상황에 놓였던 소속 교단의 종교적 행적에 대해 간추려 보았다. 교단 스스로의 목소리가 아닌 사법당국의 조사기록, 특히 그들의 해석이 가미된 문서를 통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그간 가려져 있던 가사 자료는 물론 교주 및 교단의 흔적을 엿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본 연구에서 다룬 태극교 가사 7편은 하나의 논고를 통해 체계적으로 다루기에는 양적으로도 방대하고 내용적으로도 낯선 게 사실이다. 더구나 일제의 손에 의해 가공된 자료라는 점에서 가사 본유의 형식적 특성을 복원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가사는 문학성과 교술성을 갖추고 있을뿐더러 ‘교주-교의-신도’를 교차하는 주제로 체계화돼 있어 종교사 이해를 위한 자료로서의 활용성이 크다고 하겠다.
일제 사법당국은 태극교 가사가 조선의 독립과 국권의 회복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고, 비결 및 비유적 언어에서 계룡-정왕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읽어내려 하였다. 교단 내부적으로도 그랬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계룡-정왕론은 정감록의 문자적 전승을 보다 강화했다는 점에서 20세기 후기동학의 심승지론(心勝地論)과는 차별된다고 할 수 있다. 가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안빈낙토(安貧樂土)는 정감록의 공간 감각을 수용한 개념으로서 계룡-정왕의 논리를 더욱 두둔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의 시선에서 보자면 계룡-정왕의 논리는 일제의 식민체제를 부정한 보안법의 대상이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감록에 기댄 상상의 독립투쟁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차제에 비결가사의 특성을 지닌 태극교 가사의 질적인 분석과 평가를 위해서는 두 가지 비교연구가 절실하다. 먼저, 태극교 자료 사이의 대내적 비교이다. 태극교 가사 자체뿐만 아니라 가사 이외의 남겨진 자료들(검사 및 판결)과의 교차적 비교연구를 통해 교리의 설득과 내면화의 정도가 가늠되길 기대한다. 둘째, 태극교의 범주를 넘어선 대외적 비교이다. 태극교 가사와 주제적으로 통하는 동학계 가사를 포함한 동시대 신종교가사들과의 체계적인 비교가 추진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