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대순사상과 단군사상 비교연구: 서사구조와 모티프 분석을 중심으로

차선근 1 ,
Seon-keun Cha 1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Ph.D.Candidate,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1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
Corresponding Author : Cha Seon-keun, E-mail : chasung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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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Oct 23, 2018; Accepted: Dec 15, 2018

Published Online: Dec 31, 2018

초록

대다수의 증산계 종단들은 증산의 종교사상이 단군사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증산계 종단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대순진리회만큼은 1909년 종단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단군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의 신앙 대상이나 교리체계 그 어디에도 단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단군에 대한 대순진리회와 타 증산계 종단들의 입장이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 글은 대순사상과 단군사상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검토해 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대순사상과 단군사상의 서사구조와 모티프를 비교 분석한 것이 이 글의 핵심 내용이다.

사실 증산께서는 단군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러므로 증산 화천 후 해방 이전까지는 대순진리회를 포함한 모든 증산계 종단들이 단군사상에 주목하지도 않았고 단군을 신앙의 대상 가운데 하나로 여기지도 않았다. 해방 이후가 되면 한국사회에 민족의 구심점으로 단군이 크게 대두되고, 단군을 중심으로 한국인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단군민족주의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증산계 종단들은 거기에 편승하여 그들의 신앙과 교리를 변용시켰다. 명백히 그것은 시류를 이용하여 포교에 도움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오직 대순진리회만큼은 교조의 가르침이 아니므로 단군민족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해서 대순진리회는 단군을 교리나 신앙 체계에 채택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된다.

ABSTRACT

Most of the new religions derived from Jeungsan have claimed that Jeungsan’s religious thought reproduced Dangun [檀君] Thought in its original form. However, Daesoon Jinrihoe is the only religious order out of the many new religions within the Jeungsan lineage, which has constantly kept its distance from Dangun Thought since 1909 during the earliest period of proto-Daesoon Jinrihoe. Even a mere trace of Dangun cannot be found in the subject of faith or the doctrinal system of Daesoon Jinrihoe.

In this context, this study aims to examine possible connections between Daesoon Thought and Dangun Thought in order to determine why other Jeungsanist religions frequently exhibit Dangunist features. Specifically, a major part of this study will be devoted to comparing and analyzing the narrative structure of Daesoon Thought and Dangun Thought as well as their respective motifs.

In fact, Jeungsan does not seem to have ever mentioned Dangun in his recorded teachings, therefore, after his passing into the Heaven, most of the religious orders including Daesoon Jinrihoe derived from him did not pay any attention to Dangun Thought for almost for 40 years. These orders did not originally perceive Dangun as an object of belief. After Korea’s liberation, Dangun became widely accepted as a pivotal role among the Korean people.

As Dangun-nationalism claimed to unify Koreans as one great Korean ethnic society, the religious orders of Jeungsan lineage also climbed aboard this creed and their faiths or doctrines were acculturated to reflect this change. The reason for this has been attributed to following modern trends to increase success in propagation. In the meantime, Daesoon Jinrihoe was the only order that did not accept Dangun-nationalism because it was not a teaching given by the order’s founder. And the two systems of thought have more dissimilarity than parallelism in terms of philosophical ideology. These seem to be the main reasons why Daesoon Jinrihoe did not adopt Dangun into its doctrine or belief system.

Keywords: 단군; 단군민족주의; 홍익인간; 재세이화; 상제 강세; 상생; 해원; 보은; 지상신선
Keywords: Dangun; Dangun-nationalism; Benefiting Broadly in the Human World; Ruling the World with Reason; Descending from Sangje; Mutual Beneficence; Reciprocation of Favor; Immortals of the Earthly Paradise

Ⅰ. 여는 글

사실 하나, 근현대 한국의 정신문화 형성에 이바지한 분들을 꼽아보자면 구한말에 활동했던 강증산(姜甑山, 1871~1909)을 빼놓을 수 없다. 한민족 특유의 운세관(運世觀) 및 해원사상을 재해석하여 독창적인 종교관을 구축했던 그의 사상은 격동의 시대에 시달리던 한국인의 아픔을 잘 달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그 결과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이 막대했다고 평가받는다.1) 이를테면 오행의 관계를 설명하는 역학적 개념에 불과했던 ‘상생(相生)’이라는 단어를 윤리적ㆍ사회적ㆍ종교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갈등 해소의 만능열쇠로 만들었던 장본인이 증산이라는 것은 그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2)

사실 둘, 근현대 한국에서 한국인의 뿌리는 단군으로 인정된다.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그렇게 포장되어 사회적으로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구심점 역할을 했던 왕조가 쇠퇴한 구한말 이후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하다면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증산의 종교사상은 단군신화와 관계가 있는가? 있다면 어떠한 관계인가?’하는 물음이 자연스럽다. 이에 대해 대다수 증산종단은 증산사상이 단군사상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순진리회만큼은 양자 사이에 특별히 의미 있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으로 보인다(Ⅱ장). 왜 그러한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 글은 증산의 사상과 단군신화의 사상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두 사상 사이의 유사점 혹은 차이점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읽는 일은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증산사상과 대순사상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증산종단들 가운데 단군사상과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곳은 대순진리회가 거의 유일하다는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필자는 대순진리회를 제외한 증산종단들의 입장을 말하는 개념으로 증산사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에 비해 대순사상이란 대순진리회의 입장, 즉 증산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했던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 1895~1958) 그리고 도주의 유명(遺命)으로 그 뒤를 이은 도전(都典) 박우당(朴牛堂, 1917~1996)의 관점에서 증산의 사상이 해석되고 체계화된 것을 지칭한다.

대순진리회의 내부자 시선에서 대순사상과 단군사상의 관련성을 검토한 선행 연구로는 고남식(2002)의 것이 거의 유일하다. 대체로 그의 연구는 두 사상의 유사점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3) 이 외에는 다른 증산종단들의 관점이 반영된 연구들이 있다. 이들은 거의 모두 단군사상과 증산사상이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글의 구조와 편의를 위해, 서두에서 이들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고 본문에서 틈틈이 필요에 따라 끄집어내어 검토할 것이다. 아울러 이 글은 단군신화의 서사구조(narrative structure)와 모티프(motif)들을 대순진리회의 그것들과 비교 분석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Ⅲ장). 지금까지는 단군사상과 대순사상의 관계를 종합적 구성 속에서 체계적으로 비교ㆍ기술한 것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현대 비교종교학4) 관점에서 두 사상을 들여다보는 첫 연구라 할 수 있다.

시작하기 전에, ‘사상(思想)’이라는 용어 문제에 대해 잠시 언급해두도록 한다. 대개 학계에서는 ‘사상’과 ‘철학’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의식이나 관념ㆍ종교ㆍ예술ㆍ제도ㆍ관습 등을 포괄하는 용어가 사상이고, 그 사상들 가운데 비교적 이론적 틀을 갖춘 것, 즉 사상의 최고 원리에 해당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한다. 즉 사상은 철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이다.5) 이 사실을 감안하여 이 글은 단군사상을 단군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들을 두루 포괄하는 것으로, 단군철학을 단군사상의 내용들 가운데 고도로 이론화되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마찬가지로 대순사상(大巡思想, Daesoon Thought)을 대순진리회와 관련된 폭넓은 종교적 이야기들을 총칭하는 용어로, 대순철학(大巡哲學, Daesoon Philosophy 또는 Philosophy of Daesoon)을 대순사상 가운데 고도로 이론화된 것을 특별히 추출하여 말하는 용어로 구분한다. 다시 말해서 이 글은 논의를 유연하고 넓게 전개하기 위하여 ‘철학’ 대신 ‘사상’, 즉 ‘대순사상’과 ‘단군사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Ⅱ. 단군민족주의와 증산종단

증산은 단군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6) 그래서인지 증산 화천 후, 증산을 받드는 각 종단들은 각자의 교리체계를 정비할 때 처음에는 단군의 존재를 중시하지 않았다. 초기 종단들인 고판례의 선도교(1911)와 차경석의 보천교, 안내성 교단(1913), 박공우의 태을교(1914), 장기준의 순천도(1920), 허욱의 삼덕교(1920), 김형렬의 미륵불교(1921) 등이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교리체계에 단군사상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7)

해방 후가 되면 증산종단들 가운데 상당수가 단군민족주의8)를 받아들여 단군을 신앙 대상에 추가시키고 단군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한다. 1949년 2월, 17개 증산종단들이 서울에 모여 증산교단통정원을 만들었는데, 그때 발표된 규약 제2조는 “본 교단은 동도(東道)를 신앙하는 각 분파교단을 통일 정리하여 단군시조, 수운선생, 증산선생의 삼단신앙체계 하에 거병해원보은상생(祛病解冤報恩相生)의 교의홍선(敎義弘宣)을 목적함.”이었다.9) 그러니까 증산교단통정원은 증산에게 단군과 수운을 계승한 분이라는 위상을 부여하고, 단군ㆍ수운ㆍ증산 세 분을 같이 모셔야 한다는 삼단신앙(三段信仰)을 주장했던 것이다. 아울러 증산의 해원사상을 ‘푸념, 푸닥거리의 발전적 종합개념’, 그의 상생사상을 ‘홍익인간의 발전적 종합이념’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증산의 종교사상을 무속 및 단군신화와 연결했고,10) 단군의 시원이념(始原理念)인 홍익인간ㆍ재세이화가 무극대도ㆍ보국안민ㆍ광제창생으로 나타나는 수운이념(水雲理念)으로 계승되었으며, 그것이 다시 증산대성(甑山大聖)에 의해 천지공사ㆍ화민정세(化民靖世)ㆍ제생의세로 집대성되었다고 설명했다.11) 증산은 단군과 수운의 사상을 본받아 발전시킴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펼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었다는 뜻이다.

증산교단통정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증산교본부의 이상호와 이정립, 보화교의 김환옥 등이었다. 특히 증산교본부는 증산대도회(1955), 민족신앙총연맹(1960), 동도교(1961), 증산신도친목회(1971), 증산교단통일회(1971), 증산종단연합회(1974) 등 증산종단들의 교리 통일 운동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상대적으로 교세가 약했던 다른 종단들에게 삼단신앙을 주입하려 노력했다.12)

배용덕은 이들의 주장을 이어받아 증산진법회(1973)를 조직하고 『증산사상연구』를 발행하였다. 그 학술지는 1975년 3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모두 22차례에 걸쳐 발간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학자들은 증산의 사상을 단군민족주의로 재해석하여 공포한 증산교단통정원의 관점을 대거 수용하였다. 몇몇 학자들을 열거해보자면, 이항녕(1980)은 증산사상의 연원이 단군사상에 있고 상생사상 역시 단군의 광명사상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증산은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고 주장하였고, 이현희(1983)는 증산사상의 원류가 단군의 광제창생 사상에 있다고 하였으며, 배종호(1985)는 해원상생의 천지공사가 홍익인간사상의 결정(結晶)이라고 하였고, 김홍철(1989, 2000)은 증산이 단군의 풍류도를 중광시키고 그곳으로 회귀하려 한 것이며, 증산이 말한 신교(神敎) 역시 단군사상을 표명한 것이라고 하였다.13)

이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대순진리회가 설립한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의 학술지 『대순사상논총』14)에 글을 기고하면서 기존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다.15) 하지만 대순진리회는 다른 증산종단들과는 달리 증산의 사상을 미증유(未曾有)의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 사실은 증산이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16)고 했던 말이나, “성사(聖師)께옵서는 신통자재(神通自在)로 구애됨이 없이 四十년간 유일무이한 진리를 인세(人世)에 선포하시고” 또는 “강증산 성사께서는…미증유의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시며”17)라고 적시한 『대순진리회요람』에 명백하다. 증산의 사상이 예전부터 전해지는 사상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 대순진리회의 입장이었던 만큼,18) 단군 계승을 강조한 증산교단통정원 및 『증산사상연구』의 주된 관점은 대순진리회에 아울리는 게 아니었다.

대순사상에 단군 캐릭터가 완전히 부재(不在)한 것은 아니다. 대순진리회의 단군에 대한 언급은 『전경』에 증산의 탄강과 화천 년도를 단기(檀紀)로 병기한 것,19) 대순진리회 달력의 기년(紀年) 표기에 대순(大巡)ㆍ서기(西紀)와 더불어 단기를 병기한 것20)이 있다. 그 외에는 여주본부도장의 포정문(布正門)에 “창생을 광제(廣濟)하시는 분이 수천백 년 만에 일차식(一次式) 내세(來世)하시나니 예컨대 제왕으로서 내세하신 분은 복희ㆍ단군ㆍ문왕이시요 사도(師道)로서 내세하신 분은 공자ㆍ석가ㆍ노자이시며 근세의 우리 강증산(姜甑山) 성사(聖師)이시다.”라는 글귀가 있다.21) 이에 따르면, 대순사상 속에서 단군의 위치는 먼 옛날 창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내려온 여러 제왕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설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전승되어왔던 단군 이미지는 국조로서의 단군, 종교적 숭배 대상으로서의 단군, 신선ㆍ선도 조종22)으로서의 단군, 이렇게 세 가지라고 한다.23) 대순진리회가 단기 표기를 일부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조로서의 단군 이미지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대순진리회에서 단군은 복희ㆍ문왕을 넘어서는 권위를 갖고 있지는 않으며, 증산교단통정원처럼 단군이 대순사상의 연원이라고 주장되지도 않는다. 그 이유를 추적하기 위해, 우선은 단군사상과 대순사상이 같은 궤도를 이어 달리고 있는지부터 들여다보도록 하자.

Ⅲ. 단군신화의 서사구조와 모티프 비교 분석

1. 서사구조 비교 분석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단군 기록은 1281년 무렵에 저술된 『삼국유사』의 「기이(紀異)」편이다. 이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 후대의 기록물들은 『삼국유사』 유형의 단군신화라고 부를 수 있다. 서영대에 따르면, 단군 전승들은 이 외에도 단군의 신화적 요소를 축소하고 민족의 시조라는 측면을 부각한 이승휴의 『제왕운기』(1287년 저술) 유형,24) 단군이 국조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한 권근ㆍ권람의 『응제시주(應製詩註)』 유형, 단군이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왕호라고 주장한 북애자의 『규원사화』 유형으로 더 분류될 수 있다고 한다. 4종의 단군신화들은 단군에 대한 한자 표기[檀君과 壇君],25) 단군의 즉위년이나 통치 기간, 수명 등을 조금씩 다르게 전하고 있다.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요는 큰 변이 없이 유사한 편이다. 그 줄거리는 대략 ㉠천신 하강과 인간 구제(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고[弘益人間]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세워 다스리고 교화했다는 것[在世理化]), ㉡인간의 신격화(곰은 인간이 되고자 빌었고 각고의 고행 끝에 환웅에 의해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며 환웅과의 사이에서 단군을 낳았다는 것, 단군은 평양에 도읍하여 조선을 세웠으며 후에 도읍을 백악산의 아사달로 옮겨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고 그 후 은둔하여 산신이 되었다는 것) 두 가지로 요약된다.

대체로 단군 담론은 하늘에서 강림한 신이 인간 세상에 이상세계를 건설하고 승천했다는 ‘천계→하강→지상→승천→천계’의 서사구조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한다.27) 이 사실만 갖고 증산의 사상 뿌리가 환인ㆍ환웅ㆍ단군으로 일컬어지는 삼신제왕(三神帝王), 삼신제석(三神帝釋), 삼신왕(三神王)에 있다고 전제하면서, 단군신화와 증산(상제)의 강세는 같은 맥락에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28) 하지만 그 주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첫째, ‘천계→하강→지상→승천→천계’의 서사구조가 단군신화 또는 상제의 강세에서만 보이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구조는 한국의 부여ㆍ고구려 건국신화, 신라 혁거세신화, 가락국신화, 탐라신화에도 보이고, 무속 무가들 즉 성주 무가, 바리데기 무가, 바리공주 무가 등에도 나타난다. 심지어 샤머니즘 문화권, 이를테면 중앙아시아 투르크(돌궐) 계통의 오구즈 칸(Oğuz Kağan) 서사시와 투르크 건국신화, 우즈벡의 알퍼므쉬(Alpamish) 신화와 밤스 베이렉(Bamsɪ Beyrek) 신화, 몽골 및 바이칼 지역의 게사르(Gesar 또는 Geser) 신화에서도 비슷한 서사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29) 따라서 단순히 이 구조만을 갖고 단군사상과 대순사상이 유사하다는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하늘의 신이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세계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건설했다는 점에서 단군사상과 대순사상이 유사하다고 말해야 한다면, 대순사상은 부여ㆍ고구려 건국사상과도, 신라 혁거세사상과도, 성주 무가사상과도, 바리데기 무가사상과도, 심지어 오구즈ㆍ투르크ㆍ알퍼므싀ㆍ밤스 베이렉ㆍ게사르 신화사상과도 모두 닮았다고 말해야 한다. 한 마디로 대순사상은 천손강림 신화를 가진 모든 민족의 사상과 동일한 궤적에 놓여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계→하강→지상→승천→천계’의 서사구조가 유사하다는 것만 갖고 단군사상과 대순사상이 같은 맥락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대순사상의 고유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둘째, ‘천계→하강→지상→승천→천계’의 서사구조가 단군신화와 상제의 강세에 나타나는 양상이 현저히 다르다는 점이다.

단군신화의 경우, 천계에서 지상으로 하강한 주체는 환웅이다. 그런데 단군신화를 찬찬히 살펴보면 환웅이 승천했다는 내용이 없다! 단 한 곳, 『규원사화』 유형에서 환웅이 세상을 다스린 지 7,000년이 지나 신선이 되어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는 한다. 그러나 『규원사화』가 말하는 신선은 하늘을 난다든가 장생불사를 이룬 존재라는가 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신선, 그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고신의 아들인 환웅이 승천하기 위해서 그보다 신분이 낮다고 여겨지는 신선이 되어야 했다는 『규원사화』의 기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거의 모든 종류의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단군을 낳은 이후로 더 이상 그 존재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 대신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는 단군이다. 그런데 단군도 승천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단군은 아사달에서 산신이 될 뿐이다. 물론 산신은 신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30)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단군이 지상에서의 임무를 다 마치고 승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신선이 다 승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31) 설령 단군이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단군신화의 ‘천계→하강→지상→승천→천계’ 서사구조는 연속된 단층구조가 아니라, 환웅의 ‘천계→하강→지상’과 단군의 ‘지상→산신[승천→천계]’이라는 비연속적인 두 부분이 포개진 이중구조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구조는 상제 강세의 경우와 크게 다르다. 구천의 상제는 인간계에 강세하였다가 창생구제를 위한 공사를 행하고 화천한 후에 다시 구천의 제위에 임어하고 있다. 즉 ‘천계→하강→지상→승천→천계’ 서사구조가 단군신화의 그것과는 달리 연속적인 단층구조이다. 더구나 상제는 “내가 장차 열석자의 몸으로 오리라.”32)고 하였으므로, 대순사상은 상제 강세의 서사구조를 천계의 복귀로 완결시키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래의 예언까지 포함하여 ‘천계→하강→지상→승천→천계→하강→지상’인 셈이다. 단군신화에는 미래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다. 따라서 단군신화와 상제 강세는 같은 맥락의 서사구조라고 단언할 수 없다(<그림 1> 참조).

이상의 이유로 해서 필자는 단군신화와 상제 강세의 서사구조가 같지 않다고 본다. 세부 내용을 생략하고 개요만 갖고 유사성을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식의 주장은 각각의 고유한 색깔을 지워버리는 결과만 낳을 뿐 아무런 학술적 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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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단군신화와 상제 강세의 서사구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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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티프 비교 분석
1) 천신 하강

단군신화는 천신인 환웅의 하강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모티프를 두고 ①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세상을 구하려는 것이 신들이 상제(증산)에게 광구천하를 호소하는 것과 같고, ② 환웅이 태백산에 하강함은 상제가 모악산 금산사 미륵에 강림함과 같고, ③ 환웅이 태백산에서 천하를 굽어살핌은 상제가 대법국 천계탑으로 내려와 천하를 대순함과 같고, ④ 자의(환웅의 경우) 혹은 신명들의 청원에 따른 타의(상제의 경우)라는 차이는 있으나 천상의 신이 지상에 내려온다는 것에 있어서는 단군신화와 상제 강세가 동일하고, ⑤ 그 내려옴의 목적은 인간 세상의 구원으로서 동일하고, ⑥단군신화나 상제 강세에 보이는 세계관이 신계와 인계의 이중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는 주장들이 있다.33)

이 주장들 가운데 ⑥은 의미가 없다. 샤머니즘과 무속의 세계관 자체가 신계와 인계의 이중구조로 된 것이고, 전 세계의 많은 신화나 종교에서도 신계-인계의 이중적 세계관은 쉽사리 발견되기 때문에, 신계-인계 이중구조 운운은 단군신화나 상제 강세의 유사성 항목에 끼워 넣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부분은 ①에서 ⑤까지의 주장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천신 하강 모티프에서 나타나는 여러 차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동기(動機)를 보자. 『삼국유사』 유형은 환웅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뜻을 세웠던 것으로, 『제왕운기』 유형은 환인이 그 뜻을 세웠고 실행은 아들인 환웅에게 맡긴 것으로 묘사한다.34) 두 경우 모두 단군신화의 천신 하강 동기가 천신의 적극적인 의지에 있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대순진리회에서 상제 강세는 신성ㆍ불ㆍ보살이 회집하여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괴롭기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된다.35) 최고신의 적극적인 신념이 아니라 신명들의 청원에 응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대순사상의 천신 하강 동기는 단군사상의 그것과 같지 않다.36) ④는 그 차이를 지적하면서도 천신 하강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말하지만, 동기가 다르다는 점은 결코 무시되어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다.

둘째, 목적을 보자. 단군신화에서 천신의 하강 목적은 인간의 구제이다. 다음 절에서 다루겠지만 천신인 환웅의 인간 구제 내용은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생업 도모와 안정된 사회 유지였다. 대순진리회에서 천신의 하강 목적은 인계만이 아니라 전 생명체, 심지어 천계 및 지계와 신명들까지 포함하는 전 우주의 구원에 있다. 그 구원의 내용은 생업이나 사회 안정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세상인 선천을 심판하고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며 그 결과 완전히 새로운 후천 세계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단군신화와 대순진리회의 천신 하강 목적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셋째, 주체를 보자. 단군신화에서 하강 주체는 환웅이다. 최고신 환인이 아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상제가 하강 주체이다. 즉 우주의 최고신인 구천상제가 직접 하강한 것이다.37) 단군신화의 최고신은 자신이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뜻을 세웠든지, 혹은 아들 환웅의 뜻을 받아들였든지 간에 인계에 직접 나타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 엘리아데가 말한 ‘데우스 오티오수스(deus otiosus: 隔絶神)’ 범주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38) 이에 비해 대순진리회의 최고신은 원래 데우스 오티오수스의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신명들의 청원에 따라 드러나는 신으로 변모하여 적극적으로 세상사에 개입하고 있다.39) 이와 같이 단군신화에서는 최고신이 하강한 게 아니며 대순진리회에서는 최고신이 하강한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최고신의 세상사 개입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넷째, 방법을 보자. 단군사상에서 환웅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인계에서 곧바로 인간들을 만나고 있다. 상제는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 삼계의 현실과 문제점을 살피기 위하여 대순하는 작업, 인간에게 제세대도를 내리는 과정까지 거친 연후에야 인계로 왔다. 즉 하강 여정이 즉각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40) 또한 환웅은 신의 모습 그대로 무리를 거느리고 인계로 내려오는 방식을 취했지만, 대순진리회에서 상제 강세는 인신(人身)을 빌림, 즉 ‘출생→성장’이라는 인간의 정상적인 일생에 기대는 방식이다. 이는 매우 중대한 차이점이다. 천신이 인계에 올 때 이러한 방식을 취한다는 것은 한국종교사에서 증산의 경우가 처음이다. 물론 상제의 첫 하강은 인간의 출생이었지만, 두 번째 미래에 벌어질 하강은 환웅과 동일할 것으로 믿어진다. 어쨌든 최초 하강은 환웅의 하강과는 그 방법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 동안 단군신화와 증산 강세는 천신의 인계 하강이라는 동일한 모티프를 갖는다는 주장이 있었다. 위에서 살폈듯이 실제로는 동기ㆍ목적ㆍ주체ㆍ방법 등 여러 측면에서 꽤 많은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앞에서 보았던 주장 ①~⑤는 이런 식으로 고쳐져야 한다. ① 환웅이 세상을 구하려는 것과 신들이 상제(증산)에게 광구천하를 호소하는 것은 동기ㆍ주체ㆍ목적이 다르다. ② 환웅이 태백산에 하강함은 직접 인계에 도착함이지만 상제가 모악산 금산사 미륵에 강림함은 영(靈)으로서 머문 것이지 직접 인계에 하강한 것이 아니다. ③ 환웅이 태백산에서 천하를 굽어살핌은 인간의 통치행위로서 정치적인 것이고, 상제가 대법국 천계탑으로 내려와 천하를 대순함은 신명들의 호소에 따라 삼계의 문제점을 진단한 종교적인 것이니, 양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④ 천상의 신이 지상에 내려온다고는 하나, 동기ㆍ주체ㆍ방법 측면에서 단군신화와 상제 강세는 차이가 있다. ⑤ 두 경우에 있어서 천신의 하강 목적은 인계 구원과 삼계 구원으로 다르다.

2) 홍익인간

단군신화의 핵심은 홍익인간에 있다. 이에 대해 ⑦ 홍익인간이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듯이 증산의 천지공사도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다고 전제하면서, 홍익인간사상은 해원상생사상과 같다고 하거나, ⑧ 증산의 해원사상은 단군의 평화사상에 근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41)

이들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홍익인간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는 사실부터 지적할 필요가 있다. 홍익인간이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뜻이기는 하다. 그러나 왜 그리 하겠다는 것인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42) 해방 직후 정부도 홍익인간을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교육이념으로 채택하였으나, 그 내용은 무엇인지 규정하지 못했다. 1986년에야 홍익인간사상에는 4대 기본 이념, 즉 인본성, 민족주체성, 도덕성, 진취성이 깃들어있다고 공포했지만,43) 그 내용이 원래 단군신화에 내포된 홍익인간사상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현재 전해지는 단군 전승들에서는 성문화과정에서 외래종교인 유불도의 요소가 덧붙여졌으므로, 원래의 홍익인간사상을 알기란 사실 불가능하다.44)

홍익인간사상의 원형을 최치원 난랑비 서문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도 있다. 그러니까 홍익인간 이념이 최치원에게 이어졌다고 보고, 그가 쓴 난랑비 서문의 내용 중 깊고 오묘함, 풍류라고 불림, 모든 사람을 접하고 다 교화함[接化群生], 유불도 삼교의 요지를 포함하는 게 홍익인간사상이라는 것이다.45) 하지만 난랑비 서문에는 단군 이야기가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최치원의 설명 방식은 고대의 사상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김일권에 따르면,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는 6세기 무렵에 이미 유불의 사상에 덧칠되어 있었기에 최치원이 활동하던 9세기 무렵에는 풍류의 원형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고 한다. 최치원은 한국 고유의 선(仙)사상을 이미 중국 성립도교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설명은 중국사상을 접한 9세기 지식인들의 사고체계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홍익인간사상의 원형을 난랑비 서문에서 찾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46)

홍익인간사상의 원형과 의미가 불분명하다보니, 그 사상의 원류를 불교 혹은 유교에서 찾고자하는 시도도 있었다.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기신론소(起信論疏)』 등의 불교 경전에 ‘홍익중생(弘益衆生: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한다)’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홍익인간사상은 불교에서 차용되었다고 보는 것, 홍익인간은 유교의 성선설 혹은 천인합일 세계관과 통한다는 점을 들어 유교적 이념이라고 평가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47)

다소 지루하게 홍익인간의 내용이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늘어놓았던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홍익인간사상을 증산의 상생사상과 같다거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덮어버린다고 하더라도, 홍익인간사상을 상생사상과 유사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 이유를 기술하기 위해 우선 작업가설적 정의로 홍익인간사상을 이렇게 적어보자: “홍익인간은 천상의 신이 인간계에 내려와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으로서, 인류 만민을 하늘의 아들로 규정하며 인류를 사랑하고 존중하여 영원한 낙원을 이룩하자는 사상이다.”48) 대순진리회의 상생사상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이와 다르게 읽힌다.

첫째, 주체와 대상이 다르다. 홍익인간은 환인 혹은 환웅이 인간 개인, 인간 사회, 민족, 국가를 이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천신이 인간을 이롭게 만드는 것이므로 주체는 천신이요, 대상은 인간이다. 이를 본받은 인간이 그 이념을 실천한다면 인간이 인간을 이롭게 만들겠다는 것이 된다. 어쨌든 홍익인간의 이념이 어디까지나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순진리회의 상생사상은 그 범주를 넘어선다. 천신이 인간을 이롭게, 인간이 인간을 이롭게, 일반 신명이 인간을 이롭게, 인간이 신명과 천신을 이롭게,49) 더 나아가 인간이 자연을 이롭게, 자연이 인간을 이롭게 등, 한 마디로 삼계가 모두 주체이자 대상으로 상정되는 것이 대순진리회의 상생사상 범주이다.

둘째, 홍익인간사상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헌신하고 봉사함을 말한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일방향적인 생(生: 살림)을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대순진리회의 상생은 서로가 서로[相]를 살리는 것[生]을 말한다.50) 즉 상생은 쌍방향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홍익인간과는 차이가 있다.

셋째, 증산은 우주가 상극에 지배되어 만물의 원한이 창천하게 되었다고 보고, 그것을 해소하며 상생의 도를 편다고 하였다.51) 그런데 홍익인간사상에는 상극이나 원한과 같은 요소가 없다. 한국에는 씻김굿ㆍ진오귀굿 등 무속 해원제, 천도재와 수륙재(水陸齋), 여제(厲祭)나 엄격매자(掩骼埋胔) 등과 같은 종교적 해원문화가 이어져 내려왔다.52) 고구려 점쟁이였던 추남(楸南)의 억울한 죽음과 복수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데서 보듯이53) 원한과 그 해소 관념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관념이 단군신화에까지 소급되는 것은 아니다. 단군 전승에 상극과 원한, 그리고 그것의 철폐와 해소가 없다는 것은, 증산의 상생사상과 환웅의 홍익인간사상의 배경과 내용이 같지 않음을 의미한다.

넷째, 증산의 상생사상을 성립시키는 또 하나의 배경은 보은관념이다. 대순진리회에 따르면, 인간의 존립(存立)은 은의(恩誼)의 인과에 의한 것이니만큼, 생ㆍ수명ㆍ복록을 준 천지의 은혜, 인간의 존재ㆍ지위ㆍ가치를 유지해 준 사회의 은혜, 강녕(康寧)ㆍ번영을 준 국가의 은혜, 생장양육을 시켜준 부모의 은혜, 교양육성을 시켜준 스승의 은혜, 생활의 풍성을 가져다 준 직업의 은혜를 갚아야 하니, 그것이 곧 보은상생의 대의라고 한다.54) 그러니까 상생을 위해서는 반드시 보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대순사상이다. 하지만 환웅의 홍익인간사상, 더 나아가 단군 전승에서는 보은 관념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상의 사실들을 감안하면, 대순진리회의 상생사상은 홍익인간사상과 같은 궤도를 달리는 사상이라거나, 근원을 환웅의 홍익인간이념에 둔다고 말하는 ⑦과 ⑧의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3) 신시(神市)와 재세이화

단군신화의 또 다른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는 한국 최고(最古)의 이상사회인 신시(神市) 건설과 그곳에서의 재세이화(在世理化: 하늘의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림)이다. 그 내용은 환웅이 하늘에서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곳에서 농사ㆍ생명ㆍ질병ㆍ형벌ㆍ선악 등 인간의 360가지 일을 주관하며 정치와 교화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 모티프에 대해 ⑨ 환웅의 신시정부는 증산(상제)의 조화정부와 같고, ⑩ 환웅의 일백이사[풍백ㆍ운사ㆍ우사]는 증산의 명부 임명과 같고, ⑪ 환웅의 재세이화는 증산의 조화정부 제반 내용과 같고, ⑫ 증산의 원시반본 사상은 환웅의 신시인 지상천국사상에 근원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55)

이 주장들 가운데 ⑩에서, 환웅이 거느리고 내려온 풍백ㆍ우사ㆍ운사는 각각 바람과 비, 구름을 다스리는 존재로 농경과 관련이 깊다. 증산의 명부 임명이란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다는 이유로 증산이 조선명부를 전봉준으로, 청국명부를 김일부로, 일본명부를 최수운으로 하여금 각각 주관하게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56) 이때의 명부는 인간의 수명 혹은 운명과 관련되는 기관 내지 직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바람ㆍ비ㆍ구름의 자연현상 혹은 날씨를 주관하는 기능신과는 다르다. 환웅의 일백이사가 증산의 명부 임명과 동일하다는 ⑩의 주장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나머지 다른 주장들 ⑨⑪⑫는 신시와 증산이 추구하였던 이상세계[지상천국, 지상선경]가 동일한 맥락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을 검토해보자.

신시는 인간과 신이 공존하는 곳이고 인간의 질서를 신의 그것에 맞춘 곳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천상의 수준 높은 문명이 재현된 선경(仙境)이 아니라 소박한 농경사회이다. 신시의 풍백ㆍ우사ㆍ운사는 농경과 관련된 신이며, 재세이화의 구체적인 내용, 즉 수명ㆍ질병ㆍ형벌ㆍ선악 등 인간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한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 병 고치는 문제, 사회 질서를 세우는 문제, 사회윤리 정비 등을 이끈다는 것이다.57) 이러한 시대가 인류의 문명 초창기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 그곳에서의 민간 생활상이나 정치는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짓고 질서를 유지하며 풍요롭게 잘사는 정도였다고 보아야 한다.58)

신시는 한국사회의 이상세계에 대한 주류 담론으로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 대신 유교의 대동사회, 도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이나 무릉도원, 불교의 미륵정토가 더 많이 갈구되었다. 구한말 증산은 유불도가 각각 추구하는 이상세계 담론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상사회를 그려내었다. 그가 설계한 이상사회는 지상천국ㆍ지상선경으로서 개벽 후에 도래하는 신천지이며 상극과 원이 없이 오직 상생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증산은 이러한 곳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여러 차례 묘사하였다. 그것은 엇갈린 사상과 분쟁이 없으며 평화만이 존재하고 문명이기가 극도로 발달한다는 것, 자연재해나 해로운 동물들이 없다는 것, 인간은 질병을 겪지 않고 불로불사한다는 것, 전 세계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등이다.59)

대체로 지상선경의 자연적 환경은 불교적 외형에 가깝고, 인간의 사회생활 패턴은 유교적 윤리와 가까우며, 인간 존재 양식은 도교적 신선의 그것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물론 불교의 외형과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고, 유교 윤리를 그대로 채용하지도 않으며, 도교의 신선 존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모두 약간씩 변형되어 있다. 결국 상극과 원한이 없는 곳이라는 증산의 지상선경은 해원상생과 개벽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제의식과 해결방안을 뼈대로 하여 유불도 이상향을 변용시켜 부분적으로 살붙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지상선경은 한국 신종교가 완전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 낸 최초의 이상세계라는 종교사적 의의를 가진다.60)

따라서 불로불사한다든지 하늘을 난다든지 고도의 문명을 누린다든지 하는 초현실적인 것까지 포함하는 증산의 지상선경을 소박한 농경사회를 묘사한 환웅의 신시와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⑨ 환웅의 신시정부는 다스림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증산의 조화정부61)와 같을 수 없고, ⑪ 환웅의 재세이화는 증산의 조화정부 제반 내용과 현저하게 다르고, ⑫ 증산의 원시반본사상은 환웅의 신시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62) 것이다.

4) 단군 출생담

단군신화의 핵심 모티프 가운데 하나가 단군의 출생담이다. 이 모티프를 두고 ⑬ 증산의 천지공사사상이 단군의 천지인 합일사상에 근원이 있고, ⑭ 천상계의 신은 소망을 들어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대순사상과 단군사상은 유사하다는 주장이 있다.63) 단군의 천지인 합일사상이란 환웅[天]과 지모신 웅녀[地]의 결합으로 단군[人]이 출생함을 의미한다.64) 반면에 증산의 천지공사상이란 원한을 해소하고 우주의 지배원리를 상극에서 상생으로 바꾸며 천지인 삼계를 새롭게 개벽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산의 천지공사사상의 근원이 단군의 천지인 합일사상이라는 주장 ⑬은 성립되지 못한다. ⑭는 여러 종교들이 갖는 모습을 말한 것에 불과하므로 검토할 가치가 없다.

필자는 단군 출생 모티프를 대순사상과 비교한다면 그 대상을 증산이 말한 이상적 인간상, 즉 지상신선(地上神仙)65)으로 상정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단군은 환웅으로 인해 탄생한 인간이고 지상신선은 증산으로 인해 탄생할 인간으로서, 단군과 지상신선 모두 인간 존재 양태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단군은 환웅과 웅녀의 혼인으로 태어났고 조선을 개국하여 다스리다가 후에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 그는 지상에서 영생불사하지만 천상계의 신은 아니다. 반신반인이자 인간화된 신, 혹은 신화(神化)된 인간이다.66) 그러므로 단군신화는 하느님의 강림과 인간의 성화(聖化)로써 신인융합이 가능하게 된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67) 증산이 말한 지상신선은 다음과 같은 면 때문에, 단군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

첫째, 단군의 출생은 하늘과 땅, 즉 천신과 (짐승이 변한) 인간의 결합으로 인한 것이다. 인간의 일반적인 출생을 천지의 합일결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태생적으로 성스러운 혹은 범상하지 않은 출생담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단군은 보통의 평범한 인간은 아니다. 지상신선은 수행이라는 기나긴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일 뿐, 단군과 같이 특별한 출생담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대순진리회가 말하는 지상신선이란 단군처럼 천신과 인간의 혼인으로 태어난 신화적 존재가 아니다. 오직 수도에 의해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과 천품성(天稟性)을 회복한 후 자신의 기국에 맞는 신과 상합(相合)하여[神封於人] 그 신의 능력과 권위를 행사하는 존재이다.68) 요즘 세속 언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단군은 금수저이고, 지상신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단군은 천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났으므로 그를 두고 신인합일(神人合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69) 지상신선 역시 신인합일[神人相合]의 결과물로 표현된다.70) 그러나 단군의 신인합일은 천신과 인간의 혼인으로써 반신반인이 출생했다는 뜻이고, 지상신선의 신인합일은 인간의 수행 정도에 따라 그 기국에 맞는 신명이 그 인간에게 봉해진다는 개념이니, 양자는 완전히 다르다.

셋째, 단군은 인간 사회 또는 국가를 다스렸던 정치 지도자이다. 대순진리회는 지상신선이 천지가 이전에 행해왔던 모든 일을 대신 맡아서 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천지가 사람을 내서 사람을 쓴다. 사람으로 태어나 천지가 사람을 쓰는 때에 참여하지 못하면 어찌 인생이라 할 수 있으리오.”라고 하신 증산의 발언,71) 특히 “후천에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 해나가고 사람에 의해 돼간다. 그래서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안 된다.…후천에는 인간이 시, 분, 초 전체를 맡아서 행하니….”라고 한 도전의 훈시(訓示)에서 유추할 수 있다.72) 그렇다면 지상신선이 후천에는 단군과 같은 정치 지도자가 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역할과 임무는 단군의 인간 정치 범주를 훨씬 넘어선다.

3. 대순진리회가 단군을 적극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이유

1절과 2절에서 대순사상과 단군사상의 서사구조와 모티프들이 일정한 차이를 가짐을 확인하였다. 그러하다면 대순사상은 단군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거나, 혹은 연원을 단군사상에 둔다거나 하는 식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대순진리회는 단군민족주의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향후에는 대순진리회가 단군민족주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을까? 필자는 없다고 본다. 그 이유를 사상이 다르다는 점 외에 몇 가지 더 짚어보겠다.

첫째, 대순진리회는 증산을 최고신으로 상정하기에, 또 다른 최고신 혹은 최고신과 가깝다고 생각되는 환인ㆍ환웅ㆍ단군의 가르침을 굳이 수용할 까닭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최고신이 증산이라는 인간의 몸을 빌려 출생한 뒤 후천을 여는 미증유의 진리를 구축하고 천상계에 복귀했다는 것, 특정한 때가 이르면 다시 인계에 온다는 것, 증산이 천지공사로써 짜놓은 도수(度數)는 그로부터 종통을 차례로 계승한 도주 조정산과 도전 박우당에 의해 실현되는 중이라는 게 대순진리회의 신앙이다. 따라서 구천상제-도주-도전의 탄탄한 신학 구조 속에 이미 모든 가르침이 완비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하다면 대순진리회는 여기에 환인ㆍ환웅ㆍ단군을 위한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 줄 것 같지가 않다.

둘째, 대순진리회는 상생을 추구하고 상극은 배격하는데, 단군신화에는 정복과 지배라고 하는 상극적인 요소가 개입되어있다는 점 때문이다. 앞에서 사상 비교를 위해 부득불 홍익인간이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다는 작업가설적 정의를 세우기는 했지만, 사실 단군신화는 북방계가 남방계를 지배하면서 고안해낸 정복자의 논리라는 점을 지적해야만 한다.73) 이웃 중국의 경우 황제헌원의 사례에서 보듯, 대개 건국 시조는 타지에서 유입된 자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성장하고 쟁취한 자이다.74)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자가 시조가 된다는 것은 정복자일 가능성이 높다. 단군신화는 바로 그런 맥락을 갖고 있다. 단군신화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환웅 집단들의 선민사상이 있다. 지배자인 우세 부족을 중심으로 수립된 관념 체계라는 뜻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부족들 간의 정복과 지배가 빈번해지면서 그 정당성을 주장할 필요가 대두되었는데, 단군신화는 정확히 그에 부합한다.75) 정복자를 정당화시켜주는 배경을 갖고 있다면, 단군신화는 전 인류를 구제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단군신화는 한반도에 국한된 신화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신화이다.76) 곰이 호랑이에게 승리하는 방식은 곰 숭배와 관련이 있다. 곰을 숭배하는 것은 시베리아 등 북방민족의 신화에 흔히 등장한다. 하나라의 우임금이 곰이라는 전설도 있고, 환웅(桓雄)의 웅도 곰을 의미한다는 일부 견해도 있다.77) 이렇게 곰과 관련되는 단군신화는 동북아시아의 신화인 것이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동북아시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 전체의 신화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단군신화는 동아시아의 북방계 신화로서 고조선 개국신화일 뿐이지, 처음부터 우리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신화는 아니었다. 『삼국유사』 저술 이전에는, 한국인들에게 단군신화가 북방계뿐만 아니라 남방계 전체를 포괄하는, 한반도와 만주 일대 전체를 아우르는 한국사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고려 초기에는 북방의 고조선-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의식과 남방의 신라를 계승했다는 의식이 혼재하며 서로 부딪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13세기 말 몽골과의 오랜 전쟁 끝에 강화했지만 사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자주성 확립을 위해 몽골 더 나아가 중국과는 뿌리와 역사적 출발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생겨났다.78) 그렇게 해서 주목받게 된 것이 단군신화였다. 그러니까 몽골과의 갈등이 단군이 민족의 뿌리라는 위상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고조선이 개국할 때는 처음부터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왕권과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로 출범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고조선 이후로 한반도에는 많은 집단들이 존재했었다. 동만주의 송화강으로부터 압록강에 걸쳐 부여가 있었고, 고구려와 옥저 등의 동북 또는 중앙그룹, 특히 한반도 남부의 삼한사회에는 만여 가(家)에 이르는 대국부터 600가에 불과한 나라까지 78개 이상의 크고 작은 성읍국가가 존재했다고 한다.79) 대개 나라가 건설되고 그것이 체계 질서를 갖추게 되면 지배와 권력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신화가 만들어진다. 단군신화가 가장 이른 나라인 고조선 시절의 신화라고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전개에 따라 등장한 다양한 신화들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단군신화가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신화로 여겨져 왔던 이유는, 북방계가 남방계를 지배하면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였던 일련의 작업들 때문이다.80)

단군신화가 한국에서 전승된 신화 중 가장 오랜 국가인 고조선의 기원을 다루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가장 멀리 소급되는 신화임은 분명하다. 또 그 역사적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민족의 위기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구심점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81) 그러나 이 이유만으로는, 상극을 부정하는 대순진리회가 정복과 지배라는 복잡한 배경을 갖고 있는 단군 담론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해서, 구천상제-도주-도전에 의해 체계화되었던 교리체계의 고유성과 순수성을 강조하는 대순진리회가 그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단군민족주의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본다.

Ⅳ. 닫는 글

지금까지 대순사상과 단군사상의 서사구조 및 모티프를 비교하였다. 본문에서 누누이 언급했듯이 그 차이점들의 비중이 작지 않다. 대순사상이 단군사상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증산의 사상이 단군사상을 계승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겠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면에서 그러한 것인지 분명한 논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단군민족주의 담론에 기생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날 선 비판을 면키 어렵다.

다수의 증산종단 입장으로선 대중들에게 쉽사리 다가가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로 단군민족주의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해방이 되면서 한국인의 구심점으로 단군이 더욱 각광받던 시기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현재도 많은 증산종단들은 단군과의 연계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을 어필하고 있다. 그러나 증산은 단군을 언급한 적이 없었고, 그의 사상도 단군신화의 그것과 별 연관성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져야 한다. 대순진리회는 처음부터, 즉 무극도와 태극도 시절부터 단군민족주의에 입각한 단군 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타 증산종단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사회에서 단군 담론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김홍철은 그 원인을 서구의 영향으로 한국적인 문화나 신화가 멸시된 것, 단군의 정체성 규명 부족, 단군 관련 단체의 난립, 단군단체가 200여 개가 넘지만 모두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점에서 찾고 있다.82) 그러므로 단군 담론을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고, 심지어 한국에서 자생한 종교들은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어떤 식으로든 교리적인 측면에서 단군을 수용해야만 하며, 제의에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다.

그러나 한국의 모든 종교와 사상이 한국적인 것이 되기 위하여 단군민족주의를 받아들이고 단군을 계승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주장은 ‘에피스테메(episteme)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순사상이 한국에서 발아하고 꽃을 피운 이상, 대순사상이 한국적인 사상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대순사상이 단군사상과 결이 다르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증산이라는 한 천재적인 종교가의 출현으로 단군사상과는 별개인, 또 다른 범주의 한국사상이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한국사상의 외연과 깊이가 더 확장된 것이니 좋은 일일 따름이지 불편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Footnotes

4. 조너선 스미스가 기존의 비교연구 방법이 학술적이지 못함을 통렬하게 비판한 이후, 비교연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그것은 윌리엄 페이든 등이 주도하는 것으로, 비교 대상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균형 있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비교는 비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개념의 재기술과 교정을 목표로 삼는다. 이들에 의하면 비교당하기 싫어하는 종교를 비교의 장으로 내모는 것이 종교학의 역할이라고 한다. Jonathan Z. Smith, Relating Relig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p.29; 윌리엄 페이든, 『비교의 시선으로 바라본 종교의 세계』, 이진구 옮김 (파주: 청년사, 2004), pp.216-227; 조현범, 「한국종교학의 현재와 미래」, 『종교연구』 48 (2007), pp.15-21; 조너선 Z. 스미스, 『종교 상상하기: 바빌론에서 존스타운까지』, 장석만 옮김 (파주: 청년사, 2013), pp.73-81; 이창익, 「종교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조너선 스미스의 종교이론」, 『종교문화비평』 33 (2018), pp.187-189, p.231.

6. 증산종단 경전들에는 단군과 관련되는 기록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증산도의 경전인 『도전』 한 곳만은 예외다. 이에 따르면, 증산은 기독교 목사와 교리 논쟁을 벌이면서 “조선사람의 조상은 단군이요 여호와는 유대사람의 지방신이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증산의 평소 행동을 보면 특정 종교인과 교리 논쟁을 벌일 분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 『증산도 도전』 2판 (대전: 대원출판사, 1996), p.444 참조.

8. 단군을 민족 공동 조상으로 상정하고, 단군 자손으로서의 동질성 인식에 토대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며 민족의 통합과 발전을 도모하려던 일련의 사상ㆍ의식ㆍ운동을 단군민족주의라고 부른다. 정영훈, 「최근의 단군관련 인식혼란과 과제」, 『고조선단군학』 7 (2002), pp.265-266.

10. 같은책,pp.342-349 참조.

14. 『대순사상논총』은 1996년 12월부터 2018년 말까지 31호가 발간되었다.

20. 기년법으로서의 ‘대순’이란 증산의 탄강 년도인 서기 1871년을 기원원년(紀元元年)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니까 1871년이 대순1년이 되고 2018년은 대순 148년이 된다.

21.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회보』 38호 (1993), p.2 참조.

22. 『해동전도록』처럼 신선사상ㆍ선도의 맥을 중국 전진교에서 찾으려는 경우도 있지만, 『해동이적』이나 『청학집』, 『오계일지집(梧溪日誌集)』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경우는 단군을 그 맥의 시원으로 본다. 정재서, 『동아시아 상상력과 민족서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4), pp.154-157.

24. 이승휴는 일연의 기록을 참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적었다. 고려시대 당시에는 단군신화가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 이익주, 「고려후기 단군신화 기록의 시대적 배경」, 『문명연지』 4-2 (2003), p.47.

25.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는 원래 제단(祭壇)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단수(神檀樹)가 아닌 신단수(神壇樹)이며, 천제를 지냈던 고조선의 실상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단군(檀君) 대신 제단의 의미를 함축하는 단군(壇君)이라고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보다 많이 통용되는 ‘단군(檀君)’으로 표기한다. 최병헌, 「단군인식의 역사적 변천-고려시대 단군신화 전승 문헌의 검토」,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편), 『단군-그 이해와 자료』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4), pp.147-148; 하정현, 「근대 한국 신화학의 태동-단군 담론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49 (2007), pp.240-241 참조.

30. 신선이 산에 들어가서 장생불사에 도달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와 후기에 편찬된 『해동이적』, 『청학집』, 『오계일지집』도 단군을 선(仙) 즉 신선으로 보고 있다. 정세근, 「한국 신선 사상의 전개와 분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 『한국고유사상ㆍ문화론』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4), p.292; 정재서, 앞의 책, pp.154-157 참조.

31. 예를 들어 갈홍은 『포박자』에서 신선을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최상위는 육체가 그대로 하늘로 오르는 천선(天仙), 그 다음은 명산에 거주하는 지선(地仙), 그 다음은 시해선(尸解仙)이다. 이에 따르면 산신은 지선에 가깝고 따라서 명산에 근거지를 둘 뿐 승천하지는 않는다. 『抱朴子』, 「論仙」.

37. 같은 글, p.11.

45. 정재식, 『전통의 연속과 변화-도전받는 한국 종교와 사회』 (서울: 아카넷, 2004), p.106.

49. 대순진리회 세계관에서 신명과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로 묘사된다. 『전경』, 교운 2장 42절.

60. 같은 글, p.244.

61. ‘조화정부(造化政府)’라는 용어는 대순진리회에서 사용하지 않지만, 글의 전개를 위해 부득불 사용하였다.

62. 특히 증산의 원시반본이 단군신화와 무관하다는 사실은 차선근, 「종교언어로서의 ‘원시반본’ 개념 재검토」, pp.178-179 참조.

67. 류동식, 앞의 책, pp.28-35.

71. 같은 책, 교법 3장 47절.

72. 신미[1991]년 5월 1일 도전 훈시(대순진리회 내부 자료).

76. 일부 논쟁은 있지만 147년경 중국 산동성의 무씨사석실(武氏祠石室)에 새겨진 화상석(畵像石) 조각이 단군신화와 거의 7, 8할 일치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고, 6세기경에는 일본에도 그 신화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김재원, 『단군신화의 신연구』 (서울: 심구당, 1977), pp.61-93; 이필영, 앞의 글, pp.111-112; 이찬구, 「단군신화의 새로운 해석-무량사 화상석의 단군과 치우를 중심으로」, 『신종교연구』 30, 2014, pp.199-206 참조.

77. 김재원, 앞의 책, pp.82-84, p.91; 특히 숙종 때의 승려 설암추붕(雪巖秋鵬)이 지었다고 하는 『묘향산지』에는 환웅을 ‘桓熊’으로 표기하고 있다.

81. 고려 이후에도 담군 담론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임재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도 단군이 민족의 구심점이라는 담론은 등장하였고, 그 이후인 17세기에도 허목과 홍만종이 주자학에서 탈피하여 육경 위주의 고학주의, 혹은 단학과 양명학을 추구하면서 단군론을 전개하였으며, 그 담론은 18세기의 성호 이익과 수산 이종휘를 거쳐 구한말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근대에는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중국 연호가 폐지되고, 1897년 황제즉위식과 대한제국 선포 등 자주독립의 고조된 분위기 속에 단군 담론이 등장하였고, 갑오경장 이후 국사 교육이 시작되면서 간행된 교과서에서 단군은 한민족의 시조라는 점이 집중 부각되었다. 특히 1905년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망국의 현실로 인해 충군애국을 외치던 사람들이 애국의 대상을 민족으로 바꾸었다. 신채호 등은 민족의 실력을 길러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하는데, 이때 민족의 구심점으로 단군을 설정하고 역사를 기술했으며 자주와 독립을 강조했다. 김일권, 「17세기 단군 이해의 민족주의적 경향」, 『종교학연구』 14 (1995), pp.53-54; 하정현, 「단일민족, 그 신화 형성에 관한 일고찰: 종교 가르치기의 한 사례 연구」, 『종교문화비평』 29 (2016), pp.101-103,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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