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대순사상의 인간 본성론(本性論) 연구

박병만 1 , *
Byung-mann Park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한국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1Researcher, Institute of Korean Philosophy & Thought

© Copyright 2023,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an 22, 2023; Revised: Feb 28, 2023; Accepted: Mar 08, 2023

Published Online: Mar 31, 2023

국문요약

본 논문은 대순사상에서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그 특징을 비롯하여 그 본성론이 대순진리회의 기본사업 및 3대 중요사업의 방향성과 어떻게 연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대순사상의 본성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자는 유학전통에서 나타난 여러 본성론을 유형(類型)별로 나누어 이를 분석하고 검토하였다. 이 유형적인 틀을 방법론적 기준으로 삼아 대순사상의 본성론을 살펴보았다. 대순사상에서는 인간 본성을 정직하고 진실한 양심(良心)으로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또한, 의(衣)·식(食)·색(色)의 추구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도 본성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도덕성과 생물학적 욕구를 아울러 본성으로 규정한 왕부지(王夫之)의 본성론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상당히 유사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순사상의 본성론은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하면서도 생물학적 욕구가 인간 삶의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었다. 또한, 초월적 절대자인 구천상제(九天上帝)의 명에 의해 본성이 내재화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여지를 보임으로써 종교적인 성향을 강하게 내포하는 특징을 보였다. 대순진리회의 기본사업인 포덕·교화·수도에서는 이 정직하고 진실한 본성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것을 하나의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3대 중요사업 가운데 사회복지사업과 구호자선사업에서는 의·식·색의 추구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인정하고 수용하여 적절한 차원에서 이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human nature in Daesoon Thought. In addition, it seeks to determine the characteristics of human nature and how the theory of human nature in Daesoon Thought relates to the direction of the Basic Works and the Three Major Societal Works of Daesoon Jinrihoe. In order to understand the theory of human nature in Daesoon Thought, I have classified various theories of human nature that appear in the Confucian tradition and have analyzed and reviewed them. I used this framework of types as a methodological criterion to study the theory of human nature found in Daesoon Thought. In Daesoon Thought, human nature is defined clearly as the conscience that is honest and truthful. Also, it accepts humans’ basic biological needs, the pursuit of clothing, food, and sexual desires as part of human nature. This view can be evaluated as quite similar, although not perfectly consistent, with the theory of human nature posited by Wang Fuzhi (王夫之), who defined human nature as a combination of morality and biological desires.

The theory of human nature in Daesoon Thought emphasizes human morality, but at the same time, it fully accepts that biological needs are basic elements of human life. In addition, it shows a characteristic that strongly implies a religious tendency as it recognizes that human nature is internalized through divine commands issued by the Supreme God of the Ninth Heaven (九天上帝 Gucheon Sangje), the transcendent and absolute ruler. The Basic Works of Daesoon Jinrihoe, which are Propagation, Edification, and Cultivation, aim to restore human nature to its innate state of honesty and truthfulness. Among the Three Major Societal Works, we can see that the works of Social Welfare and Charity Aid are implemented in accordance with the accepting acknowledgment of basic human needs (the pursuit of clothing, food, and sexual desires), and helping people meet their needs in appropriate ways and to appropriate degrees.

Keywords: 대순사상; 대순진리회; 본성론; 기본사업; 3대 중요사업
Keywords: Daesoon Thought; Daesoon Jinrihoe; theory of human nature; Basic Works; Three Major Societal Works

Ⅰ. 머리말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가?’에 대한 물음은 철학적으로 중요하게 논의되어 왔던 주제다. ‘본성’이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을 뜻하는 말이다. ‘본래’라는 말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지게 된다는 선천성이 내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다는 보편성을 상정하고 있다. 이 본성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담론으로는 공자의 “性相近也, 習相遠也.”1)라는 말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서 공자는 인간의 본성은 서로 가깝다고 함으로써 본성의 보편성을 주장하였다. 이후로는 주로 본성의 선악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맹자의 성선설(性善說),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비롯하여 성선악혼설(性善惡混說), 성삼품설(性三品說) 등등 여러 주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율곡학파 내부에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사람의 본성과 타 존재―주로 동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의 문제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2)

이러한 본성론은 주로 유학전통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불교전통에서도 수·당대에 불성(佛性)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 불성론은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근거로서 작용하였다. 그러므로 주로 선악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진행된 유학전통의 본성론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이를 보인다. 불성론은 이후 송대 성리학의 성론(性論)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도교의 초기 경전이라 할 수 있는 『태평경(太平經)』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규정하면서도 현실적인 성품은 반선반악(半善半惡)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인간의 성품을 본성은 선하나 사회적 현실세계에서는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것으로 이해하였다고 볼 수 있다.3)

이처럼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는 본성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나아가 개인적인 수양의 방법과 사회·국가적인 제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성을 선하다고 이해한다면 어떻게 이를 온전하게 발현하게 할 것인가 하는 자율적 수양이 강조된다. 반면에, 본성이 악하다고 여긴다면 자율적 수양보다는 타율적 교육이나 제도적 통제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한비자(韓非子)·이사(李斯) 등이 강력한 법률체계를 통해 국가를 다스리고자 했던 것도 성악설을 바탕으로 한 인간 이해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1980년대 이후로 덴마크·네덜란드·독일 등 북서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활발하게 제안되었고, 일부 나라에서는 현재 시험적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어느 지역에 국한하여 시행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 본성에 대한 이해와 연관되어 있다. “이는 인간은 본래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성선론적 이해에 바탕하고 있다. 이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다분히 인간의 본성은 게으르고 이기적이라는 이해가 기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4) 우리나라도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며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본성에 대한 이해는 개인 수양의 방법이나 제도적 장치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순사상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 이해가 대순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대순진리회의 사업 방향성과 어떻게 연계하고 있는가? 본 연구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종단 대순진리회는 포덕(布德)·교화(敎化)·수도(修道)를 기본사업으로 하고 있으며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을 3대 중요사업으로 설정하여 추진하고 있다.5) 이는 대순진리회가 지향하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 이념에는 분명 존재론적·가치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성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지는 본 연구는 대순사상의 인간관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먼저 기존 유학전통에서 다루었던 여러 본성론을 유형(類型)별로 나누어 이를 분석하고 검토할 것이다. 동아시아 철학사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가 가장 다양하고 심도 있게 이루어진 것은 주로 유학전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형적인 틀에 의거하여 대순사상에 나타난 본성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유용한 연구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6) 다음으로는 대순사상에서 인간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나아가 그 특징을 비롯하여 그러한 본성론이 대순진리회의 기본사업과 아울러 3대 중요사업의 방향성과 어떻게 연계하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대순사상의 본성론에 대한 연구는 거의 미개척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본성론보다 상위 범주라 할 수 있는 대순사상의 ‘인간관’에 대한 논문은 몇 편이 제출된 바가 있다.7) 이것은 연구자들이 인간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두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본성론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윤용복의 논문에서 대순사상의 본성론에 대한 논의를 일부 찾아볼 수는 있으나, 극히 미미한 수준일 뿐이다.8) 본 연구를 통해 대순사상에 나타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그 특징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대순진리회의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이 어떠한 본성론적 이해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Ⅱ. 본성에 대한 여러 관점의 이해

1. 맹자·주자·정약용의 도덕적 관점

당의 한유(韓愈)는 「원도(原道)」에서 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으로 이어진 유학의 도통(道統)이 공자를 거쳐 맹자에게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다시 주자(朱子)가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에서 공자 뒤에 증자와 자사를 추가하고 맹자 다음으로 정호·정이 형제에게로 도통이 이어졌다고 하여 유학의 도통론을 확립하였다. 동아시아 사회에서 성리학이 수백 년 동안 신유학으로서 확고한 권위를 차지함으로써 주자의 이 도통론은 유학의 정통론으로 수용되었다. 이러한 도통론은 유학사에서 처음으로 인간 본성의 선함을 주장한 맹자의 설이 유학적 정론으로 굳어지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나 조선의 실학을 대표하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모두 맹자의 성선설을 수용하였다.

맹자가 말하길, “사람의 실제적인 정감의 바탕에서 말하자면 선을 실천할 수 있으니, 곧 내가 말하는 바의 선하다는 것이다. 만약 불선(不善)을 행한다면 타고난 재질의 죄가 아니다. 측은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수오지심도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공경지심도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고, 시비지심도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 측은지심은 인(仁)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이며,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이다. 인·의·예·지는 밖으로부터 나에게 녹아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본래 소유하고 있는데도 단지 자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9)

위의 인용문에는 성선에 대한 맹자의 주장이 잘 나타나 있다. ‘실제적인 정감의 바탕(情)’이나 ‘타고난 재질(才)’이라는 말은 모두 ‘타고난 선천적인 성질’을 뜻하는 말로 곧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맹자는 위와 같이 인간의 본성은 선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하며, 모든 인간이 측은·수오·공경·시비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인·의·예·지는 본래부터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인데, 이 네 가지 심(마음)은 각각 인·의·예·지가 내재한다는 단서라는 것이다.10)

이렇게 맹자는 선한 본성의 구체적 내용으로 인·의·예·지를 제시하며 도덕적 관점에서 본성을 규정하였다. 하지만, 맹자의 다른 언설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눈·귀·코가 맛있는 음식이나 아름다운 색깔·소리·향기 등을 좋아하고 사지(四肢)가 편안함을 좋아하는 것도 본성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운명적인 요소가 있으므로 군자는 이를 본성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의·예·지나 천도(天道)도 운명적인 것이나, 본성에 속하는 것이므로 군자는 이를 운명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11)

‘운명적(命)’이라는 말은 원하는 대로 모두 얻거나 구현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본성(性)’이란 『중용』의 “天命之謂性”이라는 명제에서 보듯이 유학에서는 천명이므로 반드시 구현해야 할 필연성을 담고 있다. “감각적 쾌락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 보편의 본성이나, 운명적인 요소가 다분하여 모두 충족할 수 없는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본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의·예·지나 천도도 구현되기 어려운 이상이므로 운명적 요소가 강하지만, 군자는 이를 본성으로 삼아 반드시 구현해야 할 필연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곧, 맹자 성선의 성은 ‘선택된 성’이라는 것이다.”12) 결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 보편의 본성으로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맹자의 성선설에는 인·의·예·지의 도덕성을 본성으로 여겨야 한다는 선택적이며 당위적인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흔히 유자입정(孺子入井)으로 알려진 ‘불인인지심장(不忍人之心章)’(「公孫丑 上」)이나 제선왕(齊宣王)이 흔종(釁鍾: 새로 만든 종에 짐승의 피를 바르는 것) 의식에 희생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맹자와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곡속장(觳觫章)’(「梁惠王 上」)에서 보듯이 주로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여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는 보편성과 절대성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형이상학적 방법론을 동원하여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맹자 성선설의 정당성을 확고히 한 사람이 바로 주자다. 주자는 “성(性)은 곧 리(理)이고 리는 선하지 않음이 없으니, 맹자가 말한 ‘성선(性善)’이 이것이다.”13)라는 정이천의 주장을 수용하며, 이를 이기론을 통해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명하였다.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변화시키고 낳을 적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게 하고 리(理)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다. 사람과 자연 사물이 생겨남에 각각 부여받은 바의 리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健順)·오상(五常)의 덕을 형성하였으니, 이른바 “성(性)”이라는 것이다.14)

인간과 자연 사물은 음양·오행의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천리(天理)가 그 형체에 내재하여 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리’는 곧 형이상의 천리를 말하는 것으로 보편성과 절대성을 가진다. 또한, 가치론적으로는 절대선(絶代善)이므로 순선(純善) 그 자체다. 이렇게 인간 본성을 ‘리’라는 형이상학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본성은 순선하다는 논리를 확립하였다. 곧, 성선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확립함으로써 맹자 성선설의 정당성을 정초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주자는 도덕 실천의 당위적 근거를 확고하게 구축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산은 성리학의 이기론적 세계 인식을 비판하였으므로 본성을 형이상학적 실체인 리로 규정하는 주자의 인식에도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선악과 관련한 마음의 반응 내지는 현상에 근거하여 성선을 입증하고자 하였다.15) 곧,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무릇 사람은 매번 하나라도 선한 일을 할 때면 마음이 여유 있고 호연(浩然)하여 막힘이 없이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고, 하나라도 악한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근심스럽고 두려우며 답답하여 물이 막혀 흐르지 못하는 것과 같으므로 여기에서 본성이 선함을 알 수 있다.”16)라는 말이 대표적인 실례다.

다산은 본성을 우리의 마음이 좋아하는 것, 곧 ‘마음의 기호(嗜好)’로써 규정해야 한다며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주장하였다. 다음의 말을 살펴보자.

천명의 성은 또한 기호로써 말할 수 있다. 대개 사람의 배태(胚胎)가 이미 이루어지면 하늘은 곧 영명무형지체(靈明無形之體)를 부여하니, 그 존재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며 덕을 좋아하고 오명(汚名)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것을 일러 “성”이라 하고, 이것을 일러 “성은 선하다”라고 한다.17)

성은 마음이 좋아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떳떳한 성품을 잡고 있어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라고 하였으니, 성을 논하는 자는 마땅히 좋아함과 싫어함으로 말해야 한다.18)

‘영명무형지체’는 이성적 추론 활동을 통해 선악을 판단하고 도덕을 실천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을 가리키는 다산의 용어다.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마음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성향이 ‘본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마음은 항상 선을 좋아하므로 이것이 곧 ‘성선’이라고 말한다. 다산은 본성을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 성향 내지는 속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산의 본성론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마음이 좋아하는 바’, 곧 ‘마음의 기호’로써 본성을 규정하였다는 사실이다.

한편, 다산은 몸을 가짐으로써 비롯되는 기질적인 욕망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절대로 이를 본성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몸이 금수(禽獸)처럼 운동하고 지각할 수 있는 품성을 가지고 있으나, 운동·지각 위에 도의(道義)를 지향하는 마음이 있어 주재하니 도의를 주로 하여 본성을 말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19) 이것은 금수와는 다르게 도의의 마음이 있으므로 이를 본성으로 보아야 인간만의 고유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산이 이렇게 선을 지향하는 도덕성을 인간 본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맹자가 감각적 쾌락을 지향하는 인간 보편의 성향을 본성으로 보지 않고 도덕성만을 본성으로 규정한 것과 같이 선택적이고 당위적인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선택적이고 당위적인 본성 이해는 인간에게만 고유한―금수에게서는 일관된 연속성이 확보되지 못하는―도덕성을 강조함으로써 도덕 실천의 당위적 근거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처럼 주자와 다산은 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규정을 달리하며 나름의 본성론을 제시하였다. 성선이라는 맹자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본성 개념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양자는 색다르게 본성에 대한 독자적인 유형을 구축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 주자와 다산의 본성론을 살펴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외에도 선악과 관련한 다양한 관점에서 본성을 이해하고자 한 여러 설이 있다. 본성 속에는 선과 악이 혼재한다는 전한시대 양웅(揚雄)의 ‘성선악혼설’, 선한 본성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악한 본성을 타고난 사람도 있다는 후한시대 왕충(王充)의 ‘성유선유악설(性有善有惡說)’, 본성은 선한 정도에 따라 상·중·하의 3등급이 있다는 한유의 ‘성삼품설’ 등을 꼽을 수 있다.

2. 고자·순자의 생물학적 관점

도덕성을 인간 본성으로 보려는 관점과는 다르게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논의는 대표적으로 순자에게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효시는 문헌상 고자(告子)라고 할 수 있다. 고자는 『맹자』의 편명(篇名)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인데, 그의 본성론은 맹자와의 대화 속에 간략하게 드러나 있다.20) 여기에서 그는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본성으로 보아야 하며, ‘식욕과 색욕을 추구하는 성향’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였다.21) 또한, 본성은 여울물과 같아서 동쪽을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트면 서쪽으로 흐르니, 인간의 본성에 선과 불선의 구분이 없음은 물에 동·서쪽의 분별이 없음과 같다고 주장하였다.22)

생명 활동을 하는 모든 존재에게 있어 ‘식·색’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의 번식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이다. 곧, 이 식·색을 추구하는 욕구는 생리적이고 자연적인 것이며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인 성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인간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보편적인 생물학적 욕구라고 말할 수 있다. 고자가 말한 이 성무선무불선설(性無善無不善說)은 인간의 본성이 생명체의 현실적 모습인 생물학적 욕구이므로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도덕성보다 더욱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생물학적 현실의 관점에서 본성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맹자와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순자는 고자의 이러한 성무선무불선설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였다.23) 성악설은 본성이 악하다는 것이므로 맹자 성선설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관점에서 본성을 이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순자 주장의 의미 맥락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결코 본성이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함이 있다. 이를 따르므로 쟁탈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게 된다. 나면서부터 시샘하고 미워함이 있다. 이를 따르므로 잔악함이 생기고 충신(忠信)이 없게 된다. 나면서부터 귀와 눈이 아름다운 소리와 색깔을 좋아함이 있다. 이를 따르므로 음란함이 생기고 예의문리(禮義文理)가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을 따르고 사람의 감정을 따르면 반드시 쟁탈하는 데로 나아가 분수에 넘치고 이치를 어지럽히는데 합치되어 난폭한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사법(師法)의 교화와 예의(禮義)의 가르침이 있는 후라야 사양하는 데로 나아가 문리(文理)에 합치되고 다스려지는 데로 돌아갈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그렇다면 사람의 본성이 악함은 분명하다. 그 선한 것은 위(僞)다.24)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본성에 있는 것이라고 제시한 ‘이익을 좋아함’, ‘시샘하고 미워함’, ‘귀와 눈이 아름다운 소리와 색깔을 좋아함’ 등은 결코 악이 아니다. 이러한 본성을 따름으로써 이루어지는 ‘쟁탈’, ‘잔악함’, ‘음란함’ 등등의 행위가 악인 것이다. 곧, 순자가 말한 ‘성악’은 사람의 본성은 악한 행동을 낳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악의 잠재태’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악의 잠재태가 본성이므로 반드시 ‘사법의 교화’와 ‘예의의 가르침’을 통해야 비로소 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화나 가르침은 인위적인 통제다. 이것을 순자는 ‘위(僞)’라고 하였다. 이 ‘위’라는 타율성이 없이는 결코 선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순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본성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갖는 원초적인 삶의 욕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은 굶주리면 배불리 먹으려 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입으려 하며 피로하면 쉬려고 하니, 이것이 사람의 성정이다.”25)라는 말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순자는 맹자가 본성으로 여기지 않았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성향을 본성이라 한 것이다. 이는 도덕 이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기 보존을 위한 본능이다.26) 곧, 인간이 생명체로서 갖는 생물학적 자연성을 본성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27)

3. 왕부지의 복합적 관점

명말청초의 유학자였던 왕부지(王夫之)는 유학전통의 여러 본성론를 계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창의적인 사유를 더하여 새로운 본성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우주 전체는 ‘태화인온지기(太和絪縕之氣)’이며, 이 기가 운동·변화하여 인간과 만물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태화인온지기를 천지만물의 본체로 여긴 것이다.”28) 왕부지는 이렇게 기일원론적 사유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였다. 이러한 기일원론적 세계관은 태허설(太虛說)을 주장한 북송의 장재(張載)와 명대 나흠순(羅欽順)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본성’이라는 것은 태어난 대로의 이치다. 다 같은 사람이니, 곧 이것은 태어남과 더불어 모두가 소유하는 이치라서 일찍이 어떤 경우에도 다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인·의·예·지의 이치는 아주 어리석은 사람도 소멸될 수 없고, 좋거나 아름다운 소리·색깔·냄새·맛을 추구하는 욕구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폐할 수가 없으니, 이 모두가 본성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29)

위의 내용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왕부지의 이해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이치(理)’는 만물의 본체인 기가 유행(流行)하고 분화(分化)하여 구체적인 사물을 형성한 후에 그 사물에 구비되는 리를 말한다. 곧, 이 리로 말미암아 사물이 그 사물답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본체로서의 리와는 다른 개념이다. 왕부지는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구와 더불어 인·의·예·지의 도덕성을 모두 본성이라고 이해하였다. 이는 앞서 살펴본 도덕적 관점과 생물학적 관점을 모두 아우르는 복합적인 성격을 띤다.

이러한 양상은 분명 맹자와 순자의 관점을 종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왕부지는 본성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선천적인 것으로 이해한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천명은 처음 태어나는 시점에 명하는 것도 있으나, 그 후에도 항상 날마다 사람에게 명하고 사람은 날마다 이 천명을 받으므로 본성(性)은 태어날 때뿐만이 아니라 날마다 생성되고 날마다 완성되어 간다고 하였다.30) 천명을 태어나는 시점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역동적이며 연속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본성(性) 또한 인간의 주체적 노력 여하에 따라 항상 변화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성’이라는 말 자체가 담고 있는 본래부터 타고난 그 ‘본래성’이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본성은 선천적으로 품부한 인간 보편의 심리적 성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하다. 따라서 일생동안 끊임없이 본성(性)이 생성된다는 왕부지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왕부지의 ‘성’ 개념이 ‘본성’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적인 ‘성향’이나 ‘성품’ 등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주장이 문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31) 이러한 왕부지의 본성론에서 중요한 점은 본성을 인간이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식하여 도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측면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유학전통의 여러 본성론은 크게는 이상의 세 가지 유형의 관점으로 종합할 수 있다.32) 유학자였던 이들이 ― 고자는 제외하고 ― 비록 이와 같이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있으나, 공통적으로는 도덕 실천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유학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통해 개인의 도덕성을 제고하고 사회·국가에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본성론은 이러한 유학적 이념 실현을 위한 중요한 이론적 근거로서 기능하였다. 이렇게 본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차이도 결국은 어떠한 관점이 유학적 이념 실현을 위해 가장 유용한가에 대한 견해차에서 비롯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유학전통의 여러 본성론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본성의 내재 근거를 천명에 둠으로써 본성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천명이 인간에게 내재화한다는 사유는 공자의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다.”33)라는 말이나 『중용』의 “天命之謂性”이라는 명제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성선설을 주장했던 맹자·주자·다산의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맹자는 천을 의지적이고 주재적인 속성을 지닌 존재로, 주자는 이법적(理法的)인 것으로, 다산은 인격천인 상제(上帝)로 보는 등 각자가 천을 인식하는 관점은 달랐으나 천명과의 관계 속에서 본성을 자리매김하는 특징을 보였다.

하지만, 순자의 경우 천은 자연적인 천으로서 단지 물리적인 세계일뿐이므로 천명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천과 인간을 철저하게 분리하여(天人之分) 이해함으로써 선악이나 화복 등은 천과는 무관한 오직 인간만의 문제로 인식하였다. 고자는 이 문제에 대한 문헌 자료가 없어 알 수가 없다. 왕부지의 천은 저절로 그러한 자연 현상으로서 기가 쌓인 것일 뿐이다. 그 기는 우주전체를 구성하는 ‘태화인온지기’다. 이 기가 굴신(屈伸)하며 변화하고 유행한 것이 천명이다. 그러므로 이 천명은 인격성이나 주재성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인격성과 주재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천명과 본성을 연결하여 논리를 정초했다는 점에서 순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Ⅲ. 대순사상에 나타난 본성론

유학전통의 본성론들은 형이상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주자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가 일상적인 인간 삶의 모습에 대한 깊은 경험적 통찰에 의존한 바가 크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본성을 도덕적 관점이나 생물학적 관점, 그리고 이 양자를 아우르는 관점 등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이러한 관점들은 본성을 이해하는 유형적(類型的)인 틀로써 충분하게 완비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세 가지 관점을 토대로 대순사상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정직하고 진실한 양심(良心)

대순사상의 본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대순진리회의 역사 및 정체성과 신앙·교리 체계 등을 함축적으로 설명한 『대순진리회요람(大巡眞理會要覽)』의 아래 인용문에 잘 나타나 있다.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이니 사람의 모든 언어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 두 가지가 있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慾心)이다. 원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인데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에 어긋나는 언행을 감행하게 됨이니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34)

여기에서 마음을 이렇게 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로 나누는 것으로 보아 대순사상은 인간의 마음을 ‘양심’과 ‘사심’으로 이분화하여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본성’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은 보이지 않으나, “양심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이라는 말에서 ‘양심’을 본성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천성(天性)’이나 ‘본심(本心)’은 ‘본성’이라는 개념에 내포된 선천성과 본래성이 담겨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단을 창설한 박우당(朴牛堂) 도전(都典)의 “우리도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올바른 사람, 즉 완전한 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도인이 되면 원래의 천성과 본성으로 돌아가 인간의 양심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35)라는 훈시에서도 본성을 ‘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위 인용문의 “인성의 본질”이란 말은 ‘인성의 본래적인 성질’이라는 뜻이므로 ‘인간 본성의 성질’이라는 말과 표현만 다를 뿐 의미상으로는 같다. 본성의 성질을 “정직과 진실”이라고 규정하며 본성을 “일체의 죄악”과 대립적인 가치를 지닌 형이상의 실체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곧 본성은 정직하고 진실하며 일체의 악이 없는 순선한 실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이와 같이 인간 본성이라고 규정한 ‘양심’이란 말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맹자』이다. 여기에서는 사람에게 보존되어 있는 ‘인하고 의로운 마음(仁義之心)’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36) 맹자가 말하는 양심은 ‘인간만이 본래부터 타고난 선한 마음’을 뜻한다.37) 이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우리나라는 물론 한자문화권에서 ‘선험적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고 선을 지향하는 인간 보편의 도덕적 의식’이라는 개념으로 통용되어 왔다. 위 인용문이나 도전의 훈시에서 말한 양심도 이러한 전통의 보편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을 대순사상에서는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렇게 ‘양심’으로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다. 곧, 본성은 선하다는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2. 의(衣)·식(食)·색(色)의 추구

대순진리회는 대순사상을 이념적 기제(機制)로 삼아 이를 실천해 나가는 수도를 기본사업의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수도는 여러 종교적 의식과 행위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간략하게 한두 가지 개념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대순진리회 소속 도인들의 종교적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 『대순지침(大巡指針)』에서는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이라고 규정하며, “이것을 어기면 도통(道通)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할 정도로 인륜의 실천과 도덕을 밝힘을 수도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38) 그러므로 도덕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인간 본성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도의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인간이 육체를 지닌 이상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초월하여 수도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종단의 소의경전이라 할 수 있는 『전경(典經)』에는 이러한 삶의 모습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강증산(姜甑山) 구천상제(九天上帝)의 언설이 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며 재미[滋味]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의(衣: 입는 것)’라 할 수 있고 ‘식(食: 먹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의·식 다음에는 ‘색(色: 색을 지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색의 도(道)에 이름은 각기 천지의 기운을 받아서이다. 혹세무민 하는 자나 기인취물(타인을 속이고 재물을 취함) 하는 자 또한 천지의 기운을 받아서이다.39)

‘자미(滋味)’라는 한자어는 ‘재미’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40) ‘색(色)’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남녀 간의 애정 행위’를 가리킨다. ‘의·식·색의 도에 이름’이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생에서 의·식·색의 추구를 재미로 삼아 살아감을 삶의 길로 여기며 살기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천지’는 다의적(多義的)인 낱말로 ‘우주론적인 차원의 천지’나 ‘이 세상’을 뜻하기도 하고, ‘이 양자를 아우르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의·식·색의 도에 이름’이나 ‘혹세무민 하는 자’, ‘기인취물 하는 자’ 등이 모두 천지의 기운을 받아서 그러한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여기에서 ‘천지’는 이 세 가지 사태의 원인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타당성을 갖는 의미로 해석되어야만 할 것이다.

먼저 ‘의·식·색’은 생명 유지와 종족 보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이므로 이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생물학적인 속성이다. 따라서 우주론적 차원의 천지 기운을 받아 그렇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색의 추구를 재미로 삼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요소로서의 차원을 넘어 이를 ‘즐기고 좋아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질적으로 더욱 즐겁고 좋아하는 만족감을 얻는 방향으로 의·식·색의 추구가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선천적인 속성이 바탕이 되어 더욱 만족감을 얻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사회적으로 공유·전승된 문화적인 양식에 의해 습득된 측면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는 이 세상, 곧 우리 인간이 만든 사회적 환경의 영향도 포함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혹세무민이나 기인취물 하는 행위도 선천적인 속성과 더불어 사회적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며 시샘하고 미워하는 본성을 지녔다는 순자의 말에 비추어 보면, 혹세무민이나 기인취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혹세무민과 기인취물의 행위는 비록 그 가능성은 잠재해 있으나 사회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빈곤·범죄·도박 등등의 여러 해악에 의해 조성된 환경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비롯할 수도 있으므로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여기에서 ‘천지’는 단지 우주론적 차원에서 말하는 천지만이 아니라 인간 세상의 사회적 환경까지를 포함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위 인용문에서 의·식·색의 추구를 인간의 본성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재미로 삼는다는 것은 곧 ‘즐기고 좋아한다’는 말이므로 성기호설을 주장한 다산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기호(嗜: 즐기다, 好: 좋아하다)’이며, 순자의 “귀와 눈이 아름다운 소리와 색깔을 좋아함(好)이 있다.”라는 말에서 보이는 ‘좋아함’이다. 또한, “좋거나 아름다운 소리·색깔·냄새·맛을 추구하는 욕구(欲)”라는 왕부지의 본성 이해에서 볼 수 있는 ‘욕구’와도 같은 것이다. 곧, 이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인간이 보편적으로 즐기고 좋아하며 욕구하는 것을 본성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의·식·색을 추구하는 욕구는 본성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색의 추구는 인간의 생존과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이며 기본적 욕구이므로 이 또한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볼 여지는 ― 본성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Ⅳ. 본성론의 특징과 대순진리회 사업의 방향성

대순사상의 본성론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존의 유학전통에서 다양하게 제시되었던 여러 본성론과 내용적인 면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위의 세 가지 관점 가운에 어느 하나의 유형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생물학적 본성이 인간에게 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인간에게 고유한 도덕성만을 오직 본성으로 규정하는 선택적이고 당위적인 성격의 맹자나 다산 본성론과 같은 면모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왕부지처럼 생물학적 관점과 도덕적 관점을 모두 수용하여 복합적으로 본성을 규정하지도 않고 있다. 대순사상에서는 양심을 인간의 본성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의·식·색을 추구하는 생물학적 욕구도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본성으로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본성론의 특징은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하면서도 생물학적 욕구를 지향하는 것이 생명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인간 보편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정화목·사회화합·인류화평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이다.”41)라는 말에서 보듯이 대순진리회가 인간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된다. 가정·사회·인류라는 공동체의 화목이나 화합, 화평은 반드시 도덕성이 기반이 되어야 하며 인간으로서 필연적인 생물학적 욕구가 원만하게 충족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본성을 초월적 절대자인 구천상제(九天上帝)의 명에 의해 내재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여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대순사상에서는 인간을 구천상제의 주재 하에 놓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42) 또한, 모든 천체(天體)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이 모두 천명, 곧 구천상제의 명에 의해 생성된다고 명시하고 있다.43) 그렇다면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그 본성까지도 구천상제의 명에 의해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 본성의 근원으로서의 ‘천’을 인격천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는 다산과 다르지 않으나, 상제의 신격을 명시하며 구체적인 차원에서 천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은 다르다. 하지만, 이 또한 본성의 내재 근거를 천명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형태를 보인다. 다만, 본성만을 천명과 연관시키지 않고 삼라만상 모두를 천명과 결부한다는 점은 종교적 성향이 매우 강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구천상제의 명과 연관하여 볼 수 있는 이러한 특징은 인간은 하늘의 소명(召命)을 받고 태어난다는 소명론적 인간관과 관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60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들여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같이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 하셨도다.44)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주체는 자신의 선령신들이다. 이 선령신들을 ‘하늘’이라 지칭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쓸 만한 자손’과 ‘타 내되’라는 말이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은 하늘이 쓰기 위해 부여한 어떠한 소명을 받고 태어난다는 것이며, 선령신들의 의지만이 아니라 상위(上位)의 무언가에게 승낙을 받아 태어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타 내는 대상인 ‘무언가’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궁극적으로는 구천상제라고 할 수 있다. 구천상제는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의 주재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의 본성 또한 하늘이 부여한 소명과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이러한 본성론이 대순진리회 사업의 방향성과 어떻게 연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겠다. 종단의 기본사업(포덕·교화·수도) 가운데 하나인 수도는 순선한 본성의 회복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이는 다음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45)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 본래의 청정(淸淨)한 본질로 환원토록 수심연성(修心煉性)하고 세기연질(洗氣煉質)하여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 이것이 영통(靈通)이며 도통(道通)인 것이다.46)

대순진리회에서 말하는 도통은 수도를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경지이므로 수도의 개인적 목적은 결국 도통에 있는 것이다. 여기 ‘거울과 같이 닦아서’나 ‘수심연성하고 세기연질하여’, ‘면이수지하고 성지우성하여’ 등은 모두 이 수도를 뜻하는 표현들이다. 자기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가 수도의 근본이 되며, 이러한 수도를 통해 인간 본래의 진실하고 정직한 본질을 회복해야만 비로소 도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수도는 순선한 인간 본성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종단 도인들의 행위 규범을 담은 「수칙(守則)」의 제3항인 “무자기는 도인의 옥조(玉條)니 양심을 속임과 혹세무민하는 언행과 비리괴려(非理乖戾)를 엄금함.”47)에서 무자기를 도인의 옥조라고 여길 정도로 양심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도인들의 행동 규범이라 할 수 있는 ‘사강령(四綱領: 安心·安身·敬天·修道)’ 가운데 하나인 “사람의 행동 기능을 주관함은 마음이니 편벽됨이 없고 사사(私邪)됨이 없이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서 허무한 남의 꾀임에 움직이지 말고 당치 않는 허욕(虛慾)에 정신과 마음을 팔리지 말고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항상 마음을 안정케 한다.”48)라는 ‘안심’에 대한 설명에서도 수도가 순선한 본성인 양심의 회복을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교화는 대순진리회의 교리를 상대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진리를 확신하도록 하여 참다운 도인이 되게 하는 일이다.49) 포덕은 구천상제께서 대순하신 진리로 구제창생하기 위한 대인접촉으로 협의적으로는 소정의 절차에 따라 입회하여 종단 소속의 도인이 되게 하는 일이며, 광의적으로는 구천상제의 덕화를 널리 선양하는 일이다.50) 포덕·교화·수도가 각각 독립적인 개념이지만, 이 삼자는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수도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수도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포덕과 교화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또한, 포덕·교화는 대인접촉이므로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여 개과(改過)하고 인격이 성숙하는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포덕과 교화 또한 넓게 보면 수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수도는 포덕·교화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포덕·교화의 과정 또한 무자기가 근본이 되어야 한다. 총체적으로 살펴보면 포덕·교화·수도가 대순진리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는 결국 도통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포덕·교화·수도는 정직하고 진실한 본성을 회복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곧, 대순진리회의 기본사업은 소속 도인들 각자의 타고난 본성 회복을 하나의 목적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의·식·색의 추구와 관련하여 『전경』·『대순지침』·『대순진리회요람』 등 종단의 주요 경전에서 그 실천적인 방향성에 대해 명시한 내용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만, 「수칙」 제5항에서는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갈 것.”51)이라고 명시하였다.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의 대상이 구체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도인들의 생활 전반에서 주로 언행과 처사의 문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는 의·식·색의 추구에 대한 과부족 없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또한, 종단 소속 도인들의 일반적인 생활상을 보면 이러한 중용적인 삶의 모습을 보인다. 도인들 또한 사회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본적인 삶의 기반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종단의 3대 중요사업에서는 의·식·색의 추구라는 인간 보편의 본성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으며, 이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그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교육사업은 이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회복지사업은 기본적인 의·식·색의 충족과 더불어 좋은 건강, 안락한 환경 등이 총체적으로 구비되어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이를 종합해 보면 사회문제의 해결 또는 사회적 욕구 충족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제도라고 정리할 수 있다.52) 의·식·색의 충족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이 사회적 욕구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호자선사업은 재난이나 재해, 가난이나 질병 등으로 어려움에 처하여 기본적인 의·식조차도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을 도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사회복지와 구호자선사업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의·식·색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의·식·색의 충족을 과도하게 보장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인 차원에서의 보장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업을 통한 의·식·색의 안정적 보장은 결코 도덕적 본성인 양심의 회복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맹자』에서 보는 것처럼, 특별하게 도덕성이 뛰어난 인격자(士)가 아닌 보통의 인간(民)은 지속적인 생업(恒産)이 보장됨으로써 도덕성(恒心)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53) 종단의 3대 중요사업이 생물학적 욕구의 기본적 충족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회복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강조하면서도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충분히 수용하여 인간 보편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순사상의 본성론과 연관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종단의 사업은 기본사업의 측면에서는 도덕성이 강조되고 있다. 3대 중요사업의 측면에서는 의·식·색을 추구하는 인간 보편의 본성을 충분히 수용하여 이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본사업이 종단의 구성원인 도인들의 수도적인 측면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수도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도덕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대사회적 활동이 주를 이루는 3대 중요사업의 이러한 특징은 구제창생이라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대순사상에서는 정직하고 진실한 양심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양심’은 한자문화권에서 오랫동안 통용되어 온 용어로 ‘선험적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고 선을 지향하는 인간 보편의 도덕적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대순진리회는 인륜의 실천과 도덕을 밝혀나가는 일을 수도라고 규정할 정도로 도덕성을 매우 강조하는데, 이는 본성을 이렇게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도덕성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갖는 생물학적 기본 욕구인 의·식·색의 추구도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의 영역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인간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초월하여 종교적 삶을 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바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대순사상의 본성론은 도덕성을 매우 강조하면서도 의·식·색의 추구라는 생물학적 욕구가 인간의 생명과 생활 유지의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대순진리회가 가정화목·사회화합·인류화평이라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과 연관된다. 이러한 가치의 실현은 도덕성을 기반으로 인간으로서 필연적인 기본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초월적 절대자인 구천상제의 명에 의해 인간 본성이 내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유학의 “天命之謂性”이라는 명제와 형식적으로는 동일한 양상을 보이나 천명을 구천상제로 구체화하며 종교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큰 차이를 보인다.

대순진리회가 기본사업으로 삼은 포덕·교화·수도는 각각 독립적인 개념이면서도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수도 개념을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포덕·교화도 모두 수도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기본사업은 대순진리회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종단에 소속된 도인들의 도통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도통을 위한 수도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 기본사업은 정직하고 진실한 인간의 순선한 본성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일을 하나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로 대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종단의 3대 중요사업에서는 의·식·색의 추구라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수용하고 있으며 이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대순사상의 본성론은 대순진리회의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의 이론적 근거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본사업의 영역에서는 도덕성이 매우 강조되고, 3대 중요사업의 영역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생물학적 본성을 충분히 보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기본사업이 주로 종단의 구성원인 도인들의 수도적인 측면이 중심을 이루고, 3대 중요사업은 대사회적인 활동으로 구제창생이라는 종교 본연의 역할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대순사상은 현실적인 인간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본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종단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Notes

1) 『論語』, 「陽貨」.

2) 이는 외암(巍巖) 이간(李柬, 1677~1727)과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1682~1751) 사이에서 우연하게 촉발된 것으로 흔히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 칭한다.

3) 윤찬원, 「『태평경』에 나타난 도교윤리」, 『도교문화연구』 10 (1996), pp.136-142.

4)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조현욱 옮김 (서울: 인플루엔셜, 2021), p.533 참고.

5) 『대순지침』,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2), p.97 참고.

6) 이러한 생각이 자의성이 강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동아시아 사상사에만 국한하건 서양의 사상사까지를 포함하든 간에 어떠한 형태로든 기존에 논의되었던 여러 본성론에 대한 선행적인 언급 없이 대순사상의 본성론을 조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어떠한 사상도 기존의 전통을 벗어나 평지돌출하는 경우는 없을 뿐만 아니라 본성론에 대한 일정한 유형(類型)의 틀 없이 어떠한 사상에서 그 사상에 나타난 본성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조명하기란 매우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7) 윤재근, 「대순사상의 인간이해」, 『대순사상논총』 16 (2003); 고병철, 「대순진리회의 인간관」, 『대순사상논총』 28 (2017); 안신, 「엘리아데의 관점으로 본 대순사상의 인간관 연구」, 『대순사상논총』 33 (2019). 대순사상의 인간관에 대한 연구는 이상의 논문들이 거의 전부다.

8) 윤용복, 「유교와 대순진리회의 심성론 비교 연구」, 『대순사상논총』 32 (2019), 이 논문은 대순사상의 심성론을 유교 심성론과의 비교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다. 특히, 주자의 인심(人心)·도심(道心)과 대순사상의 인심·도심 개념의 동이성(同異性)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 점은 대순사상의 심성론에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순사상의 심성론과 관련한 것으로는 이 논문 외에 ‘이경원, 「대순사상의 심체론(心體論)연구」, 『신종교연구』 6 (2002)’가 있을 뿐이다.

9) 『孟子』, 「告子 上」, “孟子曰, 乃若其情, 則可以爲善矣, 乃所謂善也. 若夫爲不善, 非才之罪也. 惻隱之心, 人皆有之, 羞惡之心, 人皆有之, 恭敬之心, 人皆有之, 是非之心, 人皆有之,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10) 위 인용문에서는 측은·수오·공경·시비지심을 각각 인·의·예·지라고 하였다. 하지만, 다른 구절에서는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公孫丑 上」)라고 하였다. 여기에 근거하여 일반적으로 이 네 가지 마음을 ‘사단(四端)’이라 하므로 이에 따라 이렇게 기술한 것이다.

11) 『孟子』, 「盡心 下」, “孟子曰, 口之於味也, 目之於色也, 耳之於聲也, 鼻之於臭也, 四肢於安佚也, 性也. 有命焉, 君子不謂性也. 仁之於父子也, 義之於君臣也, 禮之於賓主也, 智之於賢者也, 聖人之於天道也, 命也. 有性焉, 君子不謂命也.”

12) 김용옥, 『맹자, 사람의 길』 하권 (서울: 통나무, 2012), pp.822-823 참고.

13) 『論語集註』, 「陽貨」, “性卽是理, 理無不善, 孟子之言性善是也.”

14) 『中庸章句』 1章, “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 氣以成形, 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15) 박병만, 「정약용의 행사(行事) 중심적 수양론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2), p.80.

16) 『孟子要義』, 「告子 第6」, ‘告子曰性猶湍水章’, “凡人每行一善事, 卽其心悠然浩然, 沛然無滯, 如水之順流而逝, 人每行一惡事, 卽其心欿然赧然, 慘然不鬯, 如水之壅遏不通, 斯可以知性矣.”

17) 『中庸自箴』 卷1,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天命之性, 亦可以嗜好言. 蓋人之胚胎旣成, 天則賦之以靈明無形之體, 而其爲物也, 樂善而惡惡, 好德而恥汚. 斯之謂性也, 斯之謂性善也.”

18) 『孟子要義』, 「告子 第6」, ‘公都子曰告子曰性無善無不善章’, “性者, 心所好也. 故曰, ‘民之秉彛, 好是懿德.’ 論性者, 宜以好惡言.” 여기 인용된 시는 『詩經』, 「大雅」 ‘烝民’의 일부다.

19) 『孟子要義』, 「告子 第6」, ‘公都子曰告子曰性無善無不善章’, “大抵氣質之慾, 雖人之所固有, 而萬不可名之曰人性. … 又論禽獸之身, 明有生活, 亦有動覺, 然必以動覺言之者, 動覺貴於生活也. 人身雖有動覺, 乃於動覺之上, 又有道義之心爲之主宰, 則論人性者, 主於道義可乎, 兼言動覺可乎.”

20) 고자는 성이 ‘고(告)’이고 이름이 ‘불해(不害)’라고 한다. 김용옥은 고자를 묵자(墨子)의 제자로서 맹자보다 윗세대 인물로 보인다고 추정하였다.[김용옥, 앞의 책(상권), p.235; (하권), p.600] 고자의 본성론은 『맹자』 「고자 상」 편의 제1·2·3·4장에 수록된 맹자와의 문답에서 확인할 수 있다.

21) 『孟子』, 「告子 上」, “告子曰, 生之謂性. … 食色, 性也.”

22) 『孟子』, 「告子 上」, “性猶湍水也. 決諸東方則東流, 決諸西方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

23) 이철승, 「유가 철학에 나타난 인간 본성론의 구조와 현실적 의미 : 성선설과 성악설의 구조와 의미를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36 (2004), p.402, 이철승은 “사람의 본성에는 본래 예의(禮義)가 없고, … 본성이 예의를 알지 못한다(今人之性, 固無禮義, … 性不知禮義.)”라고 한 『荀子』, 「性惡」편의 말을 근거로 이와 같은 견해를 제시하였다.

24) 『荀子』, 「性惡」, “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 順是, 故爭奪生而辭讓亡焉. 生而有疾惡焉. 順是, 故殘賊生而忠信亡焉. 生而有耳目之好聲色焉. 順是, 故淫亂生而禮義文理亡焉. 然則從人之性, 順人之情, 必出於爭奪, 合於犯分亂理而歸於暴. 故必將有師法之化禮義之道, 然後出於辭讓, 合於文理而歸於治. 用此觀之, 然則人之性惡明矣. 其善者僞也.”

25) 『荀子』, 「性惡」, “今人之性, 飢而欲飽, 寒而欲煖, 勞而欲休, 此人之情性也.”

26) 이운구 역, 『순자』 1 (파주: 한길사, 2018), p.26.

27) 이렇게 순자의 본성 개념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순자 연구자들의 일반적 경향이다. 이는 이운구(같은 책, 같은 곳)를 비롯하여 다음의 연구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蔡仁厚, 『순자의 철학』, 천병돈 옮김 (서울: 예문서원, 2000), p.71; 方立天, 『중국철학과 인성의 문제』, 박경환 옮김 (서울: 예문서원, 2009), p.50; 이철승, 앞의 글, pp.400-402.

28) 안재호, 「왕부지의 인성론 연구」, 『유교문화연구』 2 (2001), pp.216-218.

29) 『張子正蒙注』 卷3, 「誠明」, “蓋性者, 生之理也. 均是人也, 則此與生俱有之理, 未嘗或異. 故仁義禮智之理, 下愚所不能滅, 而聲色臭味之欲, 上智所不能廢, 俱可謂之爲性.”

30) 『尙書引義』, 「太甲 2」, “夫天命者, 豈但初生之頃命之哉. … 天日命於人, 而人日受命於天, 故曰性者生也, 日生而日成之也.”

31) 왕부지가 ‘性’ 자를 과연 ‘본성’의 의미로만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본래성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성향’이나 ‘성품’ 등의 의미를 포함한 개념으로 사용한 것인지에 대해서 필자는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였다. 이 문제는 본 논문의 논지와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므로 향후의 연구 과제로 남기겠다.

32) 유학전통의 본성론에 대한 이러한 구분은 학계의 일반적인 중론(衆論)이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문헌은 일찍이 보지 못한 것 같다. 본 논문의 이러한 구분은 본성을 생물학적인 면, 도덕적인 면, 그리고 생물학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아울러 접근하는 경우 등이 있다고 구분한 이철승의 견해를 참고하였다. 이철승, 「왕부지와 정약용 철학에 나타난 본성론 문제」, 『동양철학연구』 108 (2021), p.109.

33) 『論語』, 「述而」, “天生德於予.”

34) 『대순진리회요람』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6), pp.18-19.

35) 「都典님年頭訓示」, 『대순회보』 12 (1989), p.2.

36) 『孟子』, 「告子 上」,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37) 맹자의 표현으로 등장하는 『孟子』의 ‘양귀(良貴)’·‘양지(良知)’·‘양능(良能)’ 등의 용어를 살펴보면 ‘良’은 ‘본래적이고 고유하다’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양귀’는 「告子 上」 17장, ‘양지·양능’은 「盡心 上」 15장 참고).

38) 『대순지침』, p.37 참고.

39) 『전경』 13판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교법 3장 47절, “人生世間何滋味. 曰衣, 曰食, 衣食然後, 曰色也. 故至於衣食色之道, 各受天地之氣也. 惑世誣民者, 欺人取物者, 亦受天地之氣也.”

40) ‘자미’는 ‘자양분이 많고 좋은 맛이나 그러한 음식’ 내지는 ‘소소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곧 ‘재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나, 이전의 한글문장에는 ‘재미’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네이버 사전》, 「표준국어대사전 」, ‘자미(滋味)’ (https://ko.dict.naver.com/#/entry/koko/128fecc3cec246e797121a92ab5c39d4, 2022. 12. 15. 검색) 참고.

41) 『대순지침』, p.20.

42) 같은 책, p.50,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이신 구천상제님의 주재하의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

43) 『대순진리회요람』, p.7, “응원(應元)이라 함은 모든 천체(天體)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이 다 천명(天命)에 응(應)하지 않고 생성(生成)됨이 없음을 뜻함이며 … .” 이 서술은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의 정체성에 대한 해설 가운데 ‘응원’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에서 ‘천명’은 문맥상 ‘구천상제의 명’을 가리키고 있다.

44) 『전경』, 교법 2장 36절.

45) 『대순지침』, p.38.

46) 『대순진리회요람』, p.9.

47) 같은 책, p.21.

48) 같은 책, p.15.

49) 『대순지침』, pp.44-45 참고.

50) 같은 책, p.21; 대순진리회, 『도헌(道憲)』 (1985년 개정판), p.1 참고.

51) 『대순진리회요람』, p.21.

52) 원석조, 『사회복지개론』 (파주: 양서원, 2007), p.17 참고.

53) 『孟子』, 「梁惠王 上」, “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 若民, 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辟邪侈, 無不爲已.” 지속적인 생업의 보장은 결국 의·식·색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의·식·색의 안정적 보장은 도덕성의 유지와 함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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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사전》https://ko.dic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