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본 연구의 목적은 대순사상의 윤리론인 상생윤리를 도덕형이상학적 차원에서 규명하는 데 있다. 대순진리회의 종교적 기조는 윤리도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대순지침』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도는 우주 만상의 시원이며 생성‧변화의 법칙이고, 덕은 곧 인성의 신맥(新脈)이며, 신맥은 정신의 원동력이므로 이 원동력은 윤리도덕만이 새로운 맥이 될 것이다.”1) 이것은 신(神)의 존재가 도덕형이상학적 이상(理想)으로 위치하며, 인간은 윤리도덕의 실현을 통해 신에게 다가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서구사상사에서 도덕적 주체2)의 개념이 근대성의 한 축으로 나타난 것처럼, 대순진리회의 수도와 신앙이 윤리도덕과 인존(人尊)의 주체를 중심으로 전개된 점은 사상사적으로 근대성과 공명하는 지점이다.
지금까지의 선행연구는 상생(相生)의 의미를 바탕으로 도덕 규범의 특성을 해명하는 데 집중했다. 김학택은 상생윤리를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원리이자 전일(全一)적 ‧ 유기적 윤리론으로 보았으며3) 김태수는 대순사상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인 무자기(無自欺)에서 상생윤리의 단초를 포착하고, 그 상생적 특성을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 개념과 연결 지어 해석한다.4) 김영주와 김승남은 상생윤리를 ‘남을 잘되게 하는 상생’ 및 ‘조화(調和)의 윤리’로 설명하며, 그것이 평화사상의 핵심임을 강조한다.5) 이들 연구는 각기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으나, 상생윤리를 인간 사회의 조화와 일체감을 지향하는 윤리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 방향성과는 달리 도덕 규범 이전의 근본적인 물음, 즉 도덕 성립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규명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도덕적 입법의 주체 개념을 바탕으로 상생윤리를 파악한다. 이를 위해 대순사상의 종교성과 인문적 근대성의 접점을 탐색하며, 중세적 종교 윤리와 구별되는 근대적 성격을 발견하는 틀을 마련한다. 특히, 도덕적 행위의 내적 동기라는 관점에서 ‘주체와 신(神)’, 또는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논의를 위한 분석 틀로 칸트 윤리론을 배치한다. 비교를 통한 사상적 우위나 귀속을 점하기 위함이 아닌 상생윤리의 도덕형이상학적 특성과 근대성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는 윤리론에서 인간 주체의 우위를 논하고 그로부터 종교적 신을 향해 나아간다. 도덕과 종교를 연결하는 그의 체계는 신앙과 더불어 윤리도덕을 강조하는 대순사상의 종교적 윤리론을 해석하는 유용한 모델이 된다.
칸트 철학에서 윤리학은 중심적 지위를 갖는다. 그는 실천이성의 우위를 통해 그의 체계 전체를 구상했으며, 신 존재는 그 체계의 정점에서 요청된다. 중세의 신이 초월적 권위의 근거였다면, 칸트에게 신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 안에 이념으로 내재하며 주체의 자율성을 근거한다. 중세의 신이 통치와 계급의 근거였다면, 근대 이후의 신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내적 도덕성의 원리이자 이상으로 전환된다. 이에 본 연구는 칸트 철학이 제시하는 인문과 종교의 통합 가능성을 토대로, 대순사상의 상생윤리를 새롭게 조명한다. 이로써 상생윤리가 단순한 도덕 규범을 넘어 주체성과 종교성을 동시에 사유할 수 있는 윤리론임을 밝히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이다.
Ⅱ. 근대 주체의 도덕적 자립성과 위계의 해체
인류는 국가라는 대규모 조직을 이루면서 체제와 사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도덕 질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고·중세의 지배자는 피지배자에게 도덕적 행위를 요구하면서 복종의 근거와 명령의 권위를 주로 신(神)에게서 찾았다. 세계 밖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자 미덕이었다. 그래서 종교는 인류 역사에서 국가의 통합과 질서유지를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근간이자 도덕적 행위의 절대 근거로 작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근대를 열면서 인류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식을 고양하고 지배자에게 종속되었던 개인에게 완전한 독립적 개체로서의 권리와 능력을 부여하게 되었다. 데카르트에 의해 이성적 사유 능력을 가진 모든 개인이 주체로서의 권리를 얻기 시작하고 칸트의 비판철학에 이르러 더욱 정밀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진화해나갔다.
칸트의 실천이성은 도덕적 주체의 내적 충만성에 대한 요구와 그 실현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곧 중세의 타율적 도덕관념에 숨겨진 권력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모든 인간 개개인의 해방을 위한 근대적 전환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심이 없는 겉모습에 도덕이 있지 않고 하나의 도덕 행위를 주체적으로 발현하는 내적 과정을 충만하게 하는 것에 도덕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중세 윤리론에서 종교의 권력적 구조를 드러내고 그 문제의식으로부터 근대 도덕의 성립을 위한 새로운 신앙의 양식으로 이성신앙을 제시했다.
칸트는 종교 신앙을 크게 계시신앙과 이성신앙으로 구분했다. 계시신앙은 객체로서의 신으로부터 신앙이 시작되며 이성신앙은 주체로서의 개인으로부터 신앙이 시작된다. 계시신앙에 있어 절대적 권위를 가진 신은 개인에게 있어 객체로서의 타자이다. 여기에서는 분리된 타자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관념이 발생한다.6) 종교 일반에서 신성(神聖)은 인간이 도덕적 행위의 근본 지표로 삼는 신의 입법적 지위에 있다. 따라서 객체로서의 신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있는 신앙은 절대적 입법자의 권위에 대한 존경과 복종의 표현으로 발현되었다.7)
계시신앙은 명령된 신앙(fides imperata)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심정 안에 있고, 그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악에 관해, 그리고 자기의 행실에 관해 언제든지 신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신 앞에서 타당한 의의 필요성에 관해, 교회의 의식과 봉사를 올바른 성격의 결여를 보상하는 수단으로 하는 것의 부당성에 관해,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의무라는 것에 관해, 각자는 그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확신할 수 있다.8)
칸트의 논의에 따르면, 계시의 개념은 객체로서의 신이 인간 외부에서 입법과 복종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객체인 신이 타자로서 입법과 명령을 행사하면 인간에게는 그것을 수용하고 준수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이는 주체의 이성적 자발성이 중심이 아닌 객체의 권위와 지시가 중심이 된 상태를 의미한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칸트가 권위에 대한 인간의 맹종과 억압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 이성의 비판적이고 주체적인 작용을 요구했다고 해석한다.
신의 권위를 우선시하여 그것을 주축으로 한 종교는 ‘신에게의 봉사’라는 인간의 의무를 통해 대규모의 체제와 집단을 형성한다.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종교 안에서 도덕적인 것을 촉진하기 위한 공적인 제도들을 그 자체로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결코 아니라 오히려 단지 예식들과 계시된 율법들에 대한 신앙고백 그리고 그 자체로는 한낱 수단일 따름인 교회의 형식에 속하는 지시규정들의 준수를 통해 그들 말대로 그들의 신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 모든 계율들은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것과는 무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것들은 순전히 신을 위해 생겨야만 하는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신에게 그만큼 더 적의(適宜)한 것으로 여겨진다.9)
계시종교는 신에 대한 무조건적 봉사를 인간의 의무로 규정하고 자율보다는 절대적 권위 아래의 타율적 복종을 중요시한다. 이에 대해 칸트는 “인간이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선한 행실 이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두 종교적 망상이며 신에 대한 거짓 봉사라는 것이다.”10)라고 했다. 이것은 신을 중심에 두고 위계 근거를 형성해 윤리를 벗어난 지배자의 어떠한 명령에 대해서도 복종하게 만드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신앙의 이중성에 대한 강한 비판이다.
조직의 질서와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 계시종교의 즉각적 실행력은 신의 절대적 권위에 의한 것이다. 절대자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 겉으로 볼 때는 종교적 숭고로 비쳐질 수 있지만 안을 드려다 보면 인간 주체의 내적 충만성과 이성적 힘이 결핍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의식의 이성적 사유와 성찰보다 복종에 대한 의무감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자유와 평등의 근대성을 고민한 칸트의 문제의식이 깃들어 있다.
계시종교는 이것으로부터 집단의 위계를 형성하고 신과 인간의 거리에 따른 계급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신의 계시를 중간에서 매개하는 이는 최고의 권력과 권위를 신으로부터 위임받는다. 숭고한 신성과 계시로부터 생성된 고도의 권위와 통제력은 안팎으로 혼란했던 고·중세 사회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정치적 힘으로 이용하기 좋았다.11) 이렇듯 계시종교는 역사적 시대상과 사회 정치적 배경하에 형성된 종교 양태이다.
칸트는 도덕과 신앙의 합일을 지향하며 주체로서의 인간으로부터 신의 실현을 전망했다, 무엇보다 신의 본질을 도덕적 실체로 보았으므로 종교의 본질 또한 도덕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신앙의 시작이 도덕적 삶에 있을 때 그 신앙은 참다울 수 있다. 실천이성의 이율배반, 즉 도덕 실현에 대한 인간의 불완전성에 의해 신의 존재가 요청되었고 그 불완전성에 대한 극복은 종교적 심성 가운데 있다. 칸트에게 신은 도덕의 형이상학적 토대로서 전제되며 신앙은 인간 주체의 도덕적 삶의 완성을 위해 뒤따른다.12) 신에 대한 경배가 복종과 희생에서 도덕적 삶의 성실로 전환되면서 이성신앙에 의한 인간의 해방과 신성(神聖)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서는 새로운 관점이 가능해졌다.
계시 신앙에서 이성 신앙으로의 전환에 대한 칸트의 문제 의식은 아래의 텍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계시 신앙에서는 계시된 (이성 자신에게는 숨겨져 있는) 명제의 무조건적 신앙(unbedingler Glaube)을 앞세우고, 교학적 인식은 단지 후방으로부터 공격하는 적에 대한 방어로서 뒤에 따라오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명령된 신앙(fides imperata)일 뿐 아니라, 또한 노예적 신앙(fides servilis)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항상 적어도 역사적으로 자유로운 신앙(fides historice elicita)으로서 가르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학식은 기독교 안에서, 계시된 신앙 교리로서 후위(後衛, Nachtrab)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전위(前衛, Vortrab)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13)
신의 권위를 편향적으로 우선시하면 계시로서의 도덕 율법은 단지 인간에게 입력되는 명령어가 된다. 그가 이것을 명령된 신앙·노예적 신앙이라는 다소 강한 표현을 쓰면서까지 강조한 것은 신의 뜻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생명력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에 대한 성찰에 의한 것이다. 인간을 스스로 서게 하는 것이 신의 뜻이지 인간을 복종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신의 뜻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신의 계시와 도덕적 영혼, 즉 종교적 신성(神聖)과 인간 주체의 거리 좁히기를 향한 길을 칸트는 이성신앙에서 찾게 된다. 이성신앙은 도덕적 이상을 향한 종교의 본질을 성취하기 위해 도덕을 일차적 지반으로 확정한다. 신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아닌 이성에 기반한 주체적 의식을 토대로 그 위에 신앙의 탑을 쌓는 것이다.14) 여기에서 신과 인간의 주종적 위계는 해체되고 신과 인간의 일치와 거리 좁히기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또한 이것으로써 인간 개인의 자율적 권한이 확보된다.
종교적 제의와 예식의 엄숙함이 신과 인간의 상하 관계를 표현하는 듯하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주종의 관계는 인간 사회의 권력자를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빌미가 숨어 있다. 동일한 인간으로서 특정한 인간이 타인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위의 권력으로부터 지배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이는 신에 대한 직접적인 위치에서 신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얻은 권력에 의해 명령을 주는 이와 명령을 따르는 이의 관계 속에 타율과 억압이 발생한다. 도덕적 행위의 동기와 방식이 주체가 아닌 객체에 있는 계시종교가 이것을 잘 반영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도덕적 의무는 신의 명령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신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 앞서는 계시종교의 통제적 특성이다. 위계가 주는 신성의 이미지는 권력과 권위의 색채로 드러난다. 칸트는 이 지점에서 계시신앙에 치우친 중세적 종교관의 허상을 드러내고 신과 종교에 대한 근대적 시각을 열어준다.
도덕이 신학적 권위 뒤에서 지시 명령적 계율로 자리하고 있는 계시종교와 달리 이성종교에서는 도덕이 인간의 능동적 주체성의 원리가 되고 신학적 경건이 개인의 주체적 권리를 뒤에서 보장하게 만든다. 따라서 종교적 계시를 대할 때도 그것에 대한 자아의 주체적 자각이 먼저 작용하고 나서 그것을 수용한다.15) 개체로서의 주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성종교에서 신성은 도덕적 주체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보조적 기능이 된다. 자아 내부의 도덕적 본성에 의지해 주체를 굳건히 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도덕적 이상으로서의 신과의 동일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계시 신앙에서 자아가 객체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과 다르다. 주체 내부의 도덕적 본성을 기반으로 스스로 도덕적 이상인 종교적 절대자와의 합일을 향해 정진하는 것이다.
칸트는 도덕적 이성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계시종교가 가진 신적 권위의 역할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권위적 객체에만 의존하는 계시 신앙과 주체의 이성에만 고립된 신념이라는 양극단을 경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그는 주체의 도덕적 자립을 굳건히 하되 객체로서의 신에 대한 경건함을 배제하지 않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16)
필자는 이러한 관점이 신앙의 출발점을 개인의 주체에 두면서도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객체로서의 신을 요청하는 칸트 철학의 독특한 구조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신을 향한 주체적 의지가 근본이 될 때 자신과 신 모두에게 참되고 조화로울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7) 따라서 신을 향한 길은 객체로서의 신에 대한 일방적 복종이 아닌 인간의 도덕적 각성과 발현을 통한 주체의 의지가 중심인 것이다.
부연하자면, 칸트는 도덕적 이성이 중심이 되지 않은 교의와 종교적 의식은 신에 대한 존경과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자각과 이해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교의와 예식이 표현하고 있는 신화적인 색채를 걷어내고 그 내부의 도덕적 의미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18) 신의 만족이 인간의 맹목적 숭배와 복종에 있는 것이 아닌 그가 부여한 도덕적 본성이 인간을 통해 제대로 발현되는 것에 있다는 의미다.
칸트는 맹목적 숭배와 복종을 신에 대한 거짓 봉사로 보았고19) 우리 안에 신이 부여한 도덕적 능력을 발현하여 신의 궁극적 특성인 도덕적 이상성을 증명해 보이는 것을 진정한 종교적 숭배 행위로 보았다. 칸트가 보는 참된 종교는 인간의 도덕적 자기완성20)을 통해 신을 발견하는 것일 뿐, 권력적 존재에게 아첨하여 기복(祈福)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칸트의 종교는 결국 도덕에서 출발해 도덕에서 완성된다.21)
순수한 실천적 이성 신앙은 그러므로 명령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적인 것으로서 도덕적인 의도에 유익하고, 게다가 이성의 이론적 요구와도 일치하는 저 신의 실존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서 그것을 이성 사용의 기초에 두도록 우리 판단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도덕적 마음씨에서 저절로 발생한 것이다. 이성 신앙은 그러므로 건전한 사람에게 있어서조차 때때로 자주 동요하는 수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결코 무신앙에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22)
주체 안의 도덕성이 중심이자 출발점이지만 결과적으로 칸트에게 있어 신의 실존성은 그의 체계 전반에 걸쳐있다. 위 인용문에서 주체 중심의 이성신앙에서 인간의 도덕적 삶에 대한 결심과 지속 자체가 신의 실존성과 본질적으로 매개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칸트는 중세적 계시신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신을 중심으로 한 위계적 타율을 비판한다. 이것은 인간의 측면에서는 인간의 억압이지만 신의 입장에서는 신성의 왜곡이다. 도덕적 명령자로서의 신과 신에 종속된 개인의 관계에서 억압된 인간에게 있어 신은 어쩔 수 없는 권력 이데올로기의 모태가 된다. 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 도덕적 주체로서 해방되고 평등과 자유를 구현할 때 신 또한 그러한 왜곡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칸트에게 있어 도덕 중심의 신앙은 신과 인간 양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인간 삶의 도덕과 그 근거로서의 신성이 조화로워진다는 것은 신과 인간 모두의 성공과 관련된다. 도덕이 결여되어 오직 계시에 편향된 신앙이 얼마나 신성을 기만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에 대한 거짓 봉사’23)라는 그의 표현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지시와 명령이 행위의 축이 되면 복종을 종용하는 지배체제가 강화되고 주종 간의 대립이 발생한다. 하지만 주체의 내적 자율성에 의한 행위는 주종의 대립이 아닌 자아와 타자의 합의와 합일에 이른다. 지배는 상극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해방은 상생의 시너지를 생성한다. 이성종교는 여기에서 신과 인간의 분리가 아닌 일치를 기대한다. 그 일치 가운데 신과 인간 모두가 본연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 즉 칸트가 말한 지상에서의 신의 나라24), 도덕적 이상이 실현된 세계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과 함께 진정한 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Ⅲ. 대순사상의 도덕주체와 상생윤리
도는 우주 만상의 시원(始原)이며 생성(生成) 변화의 법칙이고, 덕은 곧 인성(人性)의 신맥(新脈)이며, 신맥은 정신의 원동력이므로 이 원동력은 윤리도덕만이 새로운 맥이 될 것이다.25)
대순사상의 신앙적 특성과 종교적 윤리론의 근간은 위 도전의 훈시에서 읽을 수 있다. 주목할 점은 형이상학적 근원인 도(道)의 권위가 도덕적 주체로서의 인간에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도를 깨우치고 그것을 실천적 덕으로 승화하는 인간의 역할과 지위가 중요해진다. 따라서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인데 이것을 어기면 도통을 받을 수 있겠는가.”26)라는 도전의 훈시처럼 수도의 본질 또한 그러한 윤리도덕의 지향성을 근본으로 한 인간 주체의 완성에 있음을 알 수 있다.27)
또한 새 시대, 즉 중세의 상극적 억압으로부터 상생적 자유·평등을 향한 근·현대적 요구로서 주체로서의 인존을 향한 윤리도덕적 요구에 대한 언급으로 볼 수 있다. 객체적 신성에 대한 숭배와 복종에서 인간 주체의 도덕적 독자성과 자율성으로 전환된다. 대순진리회 수도의 주문(呪文)인 도통주(道通呪)의 ‘무극신(無極神) 대도덕(大道德)’에서 보여지듯 절대자로서의 신[무극신]을 도덕적 이상[대도덕]에서 찾고 인간의 궁극적 존엄성도 신으로부터 위임된 도덕적 주체의 자율성에서 찾게 된다.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冤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大巡眞理)를 종지(宗旨)로 하여 성(誠)·경(敬)·신(信)의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修道)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안신(安身)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修行)의 훈전(訓典)을 삼아 윤리도덕(倫理道德)을 숭상(崇尙)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根本)으로 하여 인간개조(人間改造)와 정신개벽(精神開闢)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구제창생(救濟蒼生)·보국안민(輔國安民)·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建設)을 이룩한다.28)
위 교리개요에서 종지·신조·목적과 ‘윤리도덕에 대한 숭상’의 내용은 신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과 그에 따른 인존(人尊)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능력과 지위의 변화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종지(宗旨)인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冤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을 보면 신과 인간의 관계 재정립과 인간의 완성이 곧 신과 인간의 합일이며 시작과 끝 모두가 인간을 중심으로 구성됨을 보게 된다. 즉 대대하던 두 대상이 합일하는 음양합덕의 원리를 근거로 신과 인간이라는 두 대상이 합일을 통해 상생을 실현하고 이 과정 끝에 인간 주체의 도덕적 완성이 궁극목적으로 놓여진다. 인간 위에서 명령을 내리던 신이 인간 내부로 들어와 대상이 아닌 도덕적 이상으로 인간 주체의 일부가 된다.29) 인존으로서의 주체가 중심이 되어 신과의 합일을 위해 수도를 하고 객체였던 신이 인간 안에서 도덕적 이상 실현에 의해 인간과 하나가 된다.
요컨대, 대순사상의 인존(人尊)은 주체를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 증산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있어 인간의 지위에 주목했다. 신(神) 아래에서 지배받고 명령받던 이전의 인간관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여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천명했다. 나아가 그는 신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통해 오히려 신과의 상생, 신과의 합일이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인 관계를 정립했다.30) 지배자로서의 신과 지배받는 인간 양자의 관계는 지위의 높낮이에 의해 상극의 상태로 합일되지 못하다가 인간을 축으로 서로가 해방되어 상생의 상태로 합일되게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인존은 신성을 발현한 주체이다. 여기에서 신성은 도덕적 이상이자 인간에게는 도덕적 천품성이다.
“성(性)은 마음이 밝아져야 천품성을 깨닫는다(開心見性).” 하였으니, 참된 성품을 살펴서 허망한 일을 하지 않는(眞實無妄) 지성(至誠)에 이르면 신(神)과 같아지느니라. <83. 6. 24>31)
대순지침에서 신과 같아진다고 하신바, 여기에서의 신은 무소불위의 권위와 기행이적의 신비적 신이 아닌 도덕적 이상으로서의 신을 말하며 인간이 신과 같아진다는 것은 참된 성품을 찾은 도덕적 완성체로서의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체로서의 신이 인간 내부에 도덕적 이상으로 자리하여 인간이 중심이 되더라도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의지 사이의 근본적 간극은 인간 혼자의 이성적 힘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다. 그 미세한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절대자인 신의 조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도의 삼요체인 성(誠)·경(敬)·신(神)은 신에 대한 공경과 신앙의 지속을 내용으로 한다. 인간은 성(정성)·경(공경)·신(믿음)의 극치에서 비로소 신의 조력·신의 응감(應感)을 얻게 되고 이로써 신인조화에 이른다. 이것은 칸트가 유한과 무한의 간극에 의한 실천이성의 이율배반을 통해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간극을 잇기 위해 신앙을 찾은 점과 유사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도덕의 성립에 있어 칸트가 제시한 계시신앙과 이성신앙의 두 틀은 종교적 윤리론을 바라보는 근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윤리론은 종교적 신을 요청하며, 인간의 한계를 통해 신을 이해하고 신을 향해가게 한다. 중요한 점은 칸트의 윤리론이 종교적 신앙에 이르게 되지만 그 시작과 완결은 인간 주체에 있다는 점이다. 신을 근거로 하고 신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모든 인간 주체의 자율과 해방이 중심이 된 상태에서 전개된다.
대순사상의 윤리론을 정립하는 데 있어 이러한 칸트의 종교적 입장과 인간 중심의 윤리론은 구천상제를 향한 종교성과 인존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인존의 성립은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冤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을 전제로 한다. 인존은 곧 인문적 심성과 종교적 신성의 합일에 의한 인간 주체의 모습이다. 종지에 비추어 볼 때, 인존은 신과 인간의 상생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인간 위에서 타자로서 명령하던 신이 인간 주체에 흡수되어 도덕적 이상으로서 현실화된다.
신과 인간이 분리되면 신의 절대성은 인간에게 권력과 명령의 형태로 나타나고 이것을 시작으로 모든 인간 세계의 위계가 수직적으로 직조(織造)된다. 타자로서 객체화된 신을 중심으로 인간과의 거리를 형성하고 그 거리의 정도에 따라 인간 사회의 위계가 구성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중세 신학자의 권력 그리고 신을 근거로 한 왕권의 형성은 이러한 분리에서 연유한다.
이와는 달리 신과 인간의 상생을 축으로 인간 사이의 평등·평화가 파생된다. 이러한 수평적 구조는 인간 밖에서 권력화된 신이 모든 인간과 합일하는 신인조화를 통해 가능해진다. 특정 권력층에 점유되던 신권이 모든 인간에게 균등하게 주어진다. 이것이 상생에 의한 인존이며 대순사상의 주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생윤리의 개념은 이런 맥락에서 정초할 수 있다. 서로를 잘 되게 한다는 통속적 의미에서의 상생윤리가 아닌 윤리의 토대가 신과 인간의 일치에 있다는 의미에서의 상생윤리이다. 주체로서의 인존과 그에 의한 평등의 가능성이 신과 인간의 상생에 있다는 것이 종지를 기조로 한 상생윤리의 개념 규정이다.
부연하면, 도덕적 주체는 상생윤리의 지반이다. 각 개인의 도덕적 홀로서기에서 상생윤리가 가능해진다. 대순사상의 윤리학에서 상생은 주체의 독립성·자유·평등·홀로서기·타자의 독립성 인정을 그 내용으로 한다. 상생윤리가 추구하는 세계는 도덕적 이상을 실현한 도덕적 독립체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도덕적 조화이다. 상생은 서로에 대한 의존이 아닌 개체의 독자적이며 독립적인 완성에 의한 조화이다. 증산은 물 한 모금도 서로에게 의지하지 말라32)고 했고 모든 것을 자유 의사에 맡긴다33)고 했다. 이것은 주체의 중요성을 담지한 경구이다.
또한 증산은 만국 제왕의 기운을 없애는 공사를 행했다.34) 왕이란 권력과 명령의 표상이다. 신을 권력화하면 인간과 함께 신 또한 권력 구조의 일부가 된다. 멀리서 인간과의 상대적 관계로 권력자와 명령자의 모습으로 표상된다. 인간은 신의 권력적 표상을 빌려 사회의 위계를 형성하고 이 위계는 인간 사이를 계급으로 구조화한다. 여기에서 위무와 형벌이 발생하고 도덕 질서의 자율이 실현되기 어렵다. 이것은 신을 권력의 표상으로 내몰아 그의 무한성과 절대성을 훼손하고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신과 인간의 대대가 아닌 합일에 대한 요구가 발생하며 대순사상에서는 그것이 인존 개념에서 이야기된다.
요컨대, 인존에서 인간 개체는 명령을 이행하는 이가 아닌 양심을 통해 스스로 입법하고 행위하는 자이다. 그러한 인간 각자의 자율적 입법이 모여 자연스러운 공론을 이루는 것이 상생윤리이다. 증산이 말한 요순의 도는 명력과 억압이 아닌 모든 도덕적 주체가 주인이 되어 이루는 질서이며 무위의 조화이다. 형벌과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도덕 질서를 지키는 것이 아닌 모든 도덕 주체가 서로를 세계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내부에 품부된 신의 이치를 함께 표현해내는 것이 상생윤리의 세계이다.
서양의 근대 또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향해 근대를 열면서 이러한 인간과 신의 합일에 주목한 경향이 있다. ‘인간에게 신의 특성이 부여된다’는 근대성의 주요 내용35)에서 보듯,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을 중심으로 신학을 재편하는 데서 인간 모두의 신적 권리와 자유를 찾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 칸트는 육체와 영혼의 간극에 의해 실천이성의 이율배반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신을 요청하고 이성과 신앙심을 통해 신적 주체를 희망했다.
칸트는 이러한 사유를 이성종교의 입장에서 체계화했다. 칸트에게 신은 인간의 도덕적 삶을 통해 요청되는 존재이므로, 이는 마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처럼 신 중심의 사유에서 인간 주체 중심의 사유로 전환하여 절대자를 주체 내부의 도덕적 원리로 내재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내재화된 신은 더 이상 외부의 지배자로 표상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주체가 지향해야 할 인문적 이상의 원리로서 기능하게 된다.
대순사상에서 이것은 인간에게 구천상제에 대한 성(誠)·경(敬)·신(信)을 통한 도덕적 수행과 종교적 신앙이 요구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신의 모습은 인간에게 천품성으로 내재해 있고 이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절대자인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와의 일치 즉 신인조화를 지향한다. 신인조화는 도덕적 완성이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일치에 있음을 알리는 종지이다. 종지 자체의 지향점이 도덕적 완성에 있다.
대순사상의 신인조화(神人調和)·신봉어인(神封於人)·인존(人尊)의 개념은 신과 인간의 거리 없애기를 통한 도덕적 주체의 홀로서기를 전망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상생의 지평이 열린다. 생존을 위해 서로 의존하는 공생과 달리 상생은 상대에게 의지하고 상대를 목적으로 여기며 수단화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두가 독립된 주체로서 자립하여 그러한 도덕적 주체들 사이의 자유·평등의 연대적 관계가 상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완성된 주체가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는 조화로운 도덕적 질서가 인위와 강압이 아닌 무위의 양태로 지속될 수 있다. 상생윤리는 인간 각자가 고유한 도덕적 세계의 주인이자 절대자임을 인정하는 윤리관이다. 따라서, 영원한 평화로서의 화평의 세상, 즉 지상천국은 상생윤리의 실현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Ⅳ. 결론
본고는 상생윤리의 근대성을 칸트의 도덕적 주체와 이성신앙을 통해 원리적으로 규명하는 시도였다. 상생윤리에서 상생이란 신과 인간의 상생과 그에 따른 인존의 주체들 간의 근대적 연대를 말한다. 신과 인간의 상생은 신인조화와 인존을 성립하고 이것으로부터 모든 인간은 주체의 지위에서 자유와 평등 가운데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조화를 이룬다. 상생윤리는 자유와 평등의 근대적 지향점 가운데 신과 인간의 상생으로부터 주체를 형성하고 이것을 통해 모든 주체들 사이의 사회적 상생으로 나아간다.
인존의 도덕 주체는 신을 도덕적 이상으로 내면화하고 의식에 내재된 도덕적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이성적으로는 도덕적 원리를 깨우치고 종교적으로는 신앙과 수도를 조화한다. 대순진리회의 교리개요에 따르면 ‘윤리도덕(倫理道德)을 숭상(崇尙)한다’36)라고 전해진바, 대순사상의 신앙과 교리는 종교적 심성과 윤리적 이성의 균형을 지향하고 있다. 숭상(崇尙)이란 ‘높이고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숭상이 종교적 대상에 대한 경배의 성격을 가졌다면 윤리도덕은 이성에 의해 산출된 인문(人文)적 성격을 가진다. 윤리도덕에 대한 숭상이라는 표현 자체가 신앙적 심성과 이성적 이해의 양면적인 가치를 포괄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체 내부의 도덕적 프로세싱이 충만하게 채워질 때 도덕 행위의 생명인 진심(眞心)이 발생하고 진심에 의한 도덕 행위는 지속성과 창조성을 가진다. 여기에서 타자와의 자연스러운 무위(無爲)의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화합이 소수가 아닌 모두의 의식적 성숙에 좌우되듯 인간 사이의 상생은 각자의 주체성을 근본 전제로 한다. 어느 한 개인의 독보적 능력에 의존하고 기대는 것이 아닌 모든 개인이 깨어있고 스스로 입법하는 것에서 영원한 화평을 기대할 수 있다.
신과 인간의 관계와 일체감 형성에 대한 칸트의 근대적 의지는 대순사상의 상생윤리를 새로운 시대의 원리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되었다. 그는 신의 존재를 도덕철학적 당위 가운데 요청하고 신성을 도덕적 이상에서 찾았다. 그에 따라 인간으로 하여금 이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종교로 나아가게 했다. 이것은 근대적 신, 근대적 종교의 본질을 정립하고 신과 인간이 상생하는 인간 실존의 세계를 열고자 한 시도였다. 신인조화와 인존이 개인의 도덕적 권리와 역량을 포괄함은 칸트의 근대적 주체와 신에 대한 인식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과 인간이 위계에 의해 거리가 생기면 천상과 지상의 경계가 생기고 신과 인간의 대대가 발생한다. 이것은 신의 실현을 불완전하게 하고 인간의 본성 회복의 길을 차단한다. 보호자의 품에서 독립하지 못하고 지시와 명령에 기대고 의존하는 것과 같다. 얼핏 보면 복종과 숭배가 신을 향한 존엄의 행위 같지만, 신을 명령과 억압의 존재로 왜곡하여 그를 인간 사회의 권력 이데올로기의 근거로 오용되게 할 수 있다.
신(神)을 권력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세우면 종교적 권력은 소수의 개인에게 위임된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나아가 신성을 왜곡하는 길이다. 권력에 대한 복종으로서의 타율적 도덕 행위가 신의 권위에 대한 거짓 봉사라면 인존에 의한 자율적 도덕 행위가 바로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숭고의 길이라 여겨진다. 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닌 그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의 뜻에 동감하고 실현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숭배일 것이다. 신인조화37)는 모든 인간의 해방과 이어지고 이것이 곧 절대자인 신의 자기실현이 된다. 신성이 모든 인간을 통해 고르게 실현되는 데에 영원한 화평이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