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한국 민족종교의 ‘민족’ 정체성에 관한 사상적 고찰: 대순사상에 나타난 ‘민족주체의식’의 윤리적 함의를 중심으로

김의성 1 , *
Eui-seong Kim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한국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1Researcher, Institute of Korean Philosophy &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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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Apr 20, 2026; Revised: Jun 01, 2026; Accepted: Jun 25, 2026

Published Online: Jun 30, 2026

국문요약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국가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21세기, 우리는 열린 ‘민족’ 정체성으로 그 지평을 확장해야 하는 시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민족’을 중심에 두는 민족주의를 폐기하지도 않으면서도 엇나간 민족주의에 함몰되지도 않는 정체성을 논해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족종교에서 지향해야 하는 특수한 ‘민족’ 정체성에 관한 보편적 지평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국 민족종교의 ‘민족’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는 민족종교의 역할에 대한 시대적 고민과도 직결된다. 한국 민족종교가 닫혀있는 편협한 가치가 아니라면,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확장 가능한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해명이 필요하다. 한국 민족종교는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적 민족주의를 역사적 동력으로 삼으면서도 그 저항성이 자민족중심주의에 경도되지 않는 열린 민족주의의 가능성을 내포해 왔다.

대순사상에 나타나고 있는 ‘민족’ 정체성은 ‘민족주체의식’이라는 보다 광범한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민족주체의식’은 인종적 배경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괴리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그것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순사상의 ‘민족주체의식’으로부터 형성된 ‘민족’ 정체성은 특수성을 딛고 서 있지만, 민족의 폐쇄성과 독단성으로 함몰되지 않는 주체적인 의식을 지닌다. 그 주체성은 도덕적 모범의식과 ‘해원’이라는 윤리적 실천의 주체의식으로 규정되고, 세계의 평화를 만들어내려는 주인의식으로 매듭지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윤리적 모범의식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이뤄내려는 ‘민족주체의식’을 내면화할 때 비로소 특수성과도 단절되지 않는 보편적 ‘민족’의 정체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In the twenty-first century, where exclusionary nationalism, which prioritizes national self-interest and justifies state violence, is once again rising across the globe, humanity finds itself confronted with the historical challenge of broadening its horizons through an open ‘Minjok’ identity. The possibility of a universal horizon regarding the particular ‘Minjok’ identity that ‘Korean Minjok Religion’ ought to pursue remains open.

How the concept of ‘Minjok’ in ‘Korean Minjok Religion’ is understood and interpreted is directly linked to the contemporary reflection on the role of ‘Korean Minjok Religion’ in this time period. If ‘Korean Minjok Religion’ does not represent a parochial and closed worldview, a more concrete and substantive account is now required of the ways in which it can establish an expansive and open identity.

The ‘Minjok’ identity found in Daesoon Thought shares the broader spiritual value of ‘Minjok Autonomous Consciousness.’ ‘Minjok Autonomous Consciousness’ serves as a ground for not being confined to racial background and for remaining aligned with the universal values of humanity. This is clearly manifested in its ethical dimension.

The ‘Minjok’ identity formed from the ‘Minjok Autonomous Consciousness’ of Daesoon Thought stands upon particularity, yet it possesses an autonomous consciousness that does not collapse into the exclusivity and dogmatism of ethnicity. This autonomy is significant in that it is defined by a consciousness of being a moral exemplar and an autonomous consciousness as the ethical practice of ‘Resolution of Grievances (解冤),’ and is ultimately concluded by a sense of ownership directed toward creating peace in the world. Only when one internalizes the ‘Minjok Autonomous Consciousness,’ a will to autonomously realize the role of world peace grounded in a consciousness of being a moral exemplar, can one advance toward a universal identity of ‘Minjok’ that remains unbroken from its own particularity.

Keywords: 민족주의; 민족종교; 민족주체의식; 윤리; 대순사상
Keywords: Nationalism; Korean Minjok (ethnonational) Religion; Minjok Autonomous Consciousness; Ethics; Daesoon Thought

Ⅰ. 들어가는 말

‘nation’의 번역어로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20세기 초로 알려져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패전국가들의 식민지 해방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주창된 민족자결주의를 기점으로 세계는 국가적 정체성을 ‘민족’으로부터 확립하고자 하였다. 한자적 의미의 ‘민(民)’, ‘족(族)’이라는 의미가 사용됐던 것과는 별개로, 또는 종족적 문화적 공동체로서 비슷한 개념들이 사용됐던 것과는 별개로 근대적 국가의 핵심 요소로서 ‘민족’은 개념을 다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근대국가의 핵심어로 자리 잡은 ‘민족’은 21세기에 들어 다시 새로운 맥락에서 호출되고 있다.

‘민족’을 국가적 맥락 속에서 다시 주목하게 만든 배경 중 하나는 신제국주의(The New Imperialism)론의 부상이다. 이는 20세기의 영토적 제국주의가 21세기에는 자본과 금융의 논리를 통한 경제적 종속 관계로 변형되고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1)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신제국주의가 지닌 자국 중심주의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그늘진 단면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민족’은 외부 지배와 종속에 맞서는 자기규정의 언어로 기능해 온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공동체의 윤리와 연대의 기준을 형성하는 틀이 되어왔다. 문제는 신제국주의적 질서 속에서 ‘민족’이 호출되는 방식이 해방과 자율의 언어라기보다, 불안과 경쟁을 정당화하는 정체성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민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재구성할 것인가는 인간 공동체의 가치와 방향을 묻는 물음으로 확장된다. 민족주의의 그늘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동시에 ‘민족’ 개념이 지니는 잠재력을 다른 차원에서 조명하는 작업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된 것이다.

민족주의의 배타적 경향이 강화되며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는 시점에서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종교적인 맥락에서 다뤄 보고자 본 논문에서는 한국 민족종교의 ‘민족’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세계 종교사적으로 민족종교는 한국의 민족종교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다른 나라의 민족종교는 세계종교와 대비되는 용어로서 지역에 국한된 전통의 토착종교 의미와 가깝다.2) 이와는 다르게 한국의 민족종교는 19세기 중엽 이후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과 민족의식이라고 언급될 수 있는 사상적 배경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계종교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 민족종교들의 종교적 연합체인 한국 민족종교협의회의 창립은 이와 같은 특수한 민족종교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3) 한국 민족종교협의회는 한국의 민족종교가 “제국주의침략에 대응하여 외세와 외래문화의 충격으로 인해 손상되어 가는 민족문화와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에서 우리나라에서 창도”4)되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근본적으로 “구국제민(救國濟民)과 인류평화(人類平和)의 큰 뜻을 품고 … 새 종교사상(宗敎思想)을 제시(提示)”5)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 민족종교가 공유하는 민족의식은 단순히 혈연적, 혹은 지리적 공동체 의식을 넘어서는 종교적 사명감을 내포하고 있다. 동학(東學), 천도교(天道敎), 대종교(大倧敎), 증산(甑山)계 교단, 원불교(圓佛敎) 등은 모두 민족의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자 하는 종교적 비전을 담고 있다. 이들 종교는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격변기에 출현하여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자주독립을 종교적 이상으로 승화시켰다. 한국 민족종교가 지닌 민족의식이 닫혀있는 편협한 가치가 아니라면,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확장 가능한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해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본 논문은 대순사상에 나타난 ‘민족주체의식’을 중심으로 한국 민족종교의 ‘민족’ 정체성을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대순사상은 한국 민족종교 중에서도 특수한 민족의식과 보편적 세계화의 가치가 동시에 강조되는 사상 체계를 지니고 있다. 조선(朝鮮)과 한민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면서도, 동시에 전 인류의 구원과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이라는 보편적 이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민족성과 보편성의 관계를 탐구하기에 적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에는 민족종교와 세계종교, 혹은 특수와 보편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시각에 관한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종교학자 탈랄 아사드(Talal Asad)는 세계종교로 일컬어지는 보편주의적 종교 정의가 서구 중세 기독교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산물이라는 것을 비판하였다.6) 조너선 스미스(Jonathan Z. Smith)는 종교라는 범주가 학자의 일반화라는 상상적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범주이지 종교 공동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7) 이는 세계종교를 비롯한 종교 규정의 권위적 배경에 대한 문제 제기이며, 보편성이라는 것이 지닌 권위적 정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본 논문은 특정 종교 전통의 우열을 전제하는 패러다임을 답습하는 대신, 인간 공동체의 실천적 가치가 담겨있는 종교의 보편 윤리적 가치를 보편성의 기준에 두고자 했다. ‘민족주체의식’의 윤리적 의미를 중심으로 다뤄 보고자 하는 것은 종교적 보편성의 구체적인 의미를 보편 윤리적 가치에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민족적 이해를 통해 그것을 실천하는 역사적 주체의 특수성 또한 중요하게 들여다보고자 했다.

지금까지 대순진리회의 민족종교적 특수성의 보편적 확장 가능성을 확인하거나 사상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들이 이어져 왔다.8) 그리고 대순사상에 나타난 민족주체성에 관한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9) 이러한 논의의 맥락은 이어가면서 기존의 ‘민족’과 관련된 사회학적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민족종교사상의 다양한 속살을 드러내고 제시하는 하나의 시도로서 본 논문은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Ⅱ. ‘민족’ 정체성 논의의 지형과 한국 민족종교

본 논문에서 다루는 ‘민족’ 정체성은 민족의식의 사상적 토대에 한정된다. 사회나 집단에 널리 공유되는 포괄적인 인식으로 형성된 민족의식은 역사적 혹은 사회적 조건 속에서 ‘민족’ 정체성으로 드러나게 된다. 민족의식은 전근대적인 종족적 정체성이 ‘민족’이라는 단일 범주 속에 흡수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라는 사상적 담론으로 이론화되기도 했다. 이처럼 민족, 민족의식, 민족주의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이 농후한 개념들에 관한 논의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제기되어 왔다. 첫째, ‘민족’의 개념은 언제 형성되었나? 둘째, 민족주의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두 가지 질문 자체는 다소 편협한 질문일 수 있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노력은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었다.

‘민족’ 개념의 형성 시기와 성격에 관한 논의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민족’을 전통적인 문화의 토대 위에 형성된 종족이라는 실재적 차원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대라는 특수한 시기에 형성된 구성물로서 한국의 ‘민족’ 정체성을 파악하는 관점이다.10)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을 벗어나서 ‘민족’ 정체성에 관한 새로운 논점으로 이어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은 두 관점이 ‘민족’을 이해하는 대립적인 시선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소하는 방법은 결국 ‘민족’ 개념을 시기의 문제에 함몰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신기욱은 한국인들의 종족적 ‘민족’ 정체성이 근대라는 특정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면서도 종족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고대부터 이어진 ‘민족’ 정체성이 하나의 실체를 낳아서 행동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았다.11) 한국 사회에 일정한 종족적 동질성의 기반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근대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된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민족’ 형성의 기원에 관해 논쟁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넘어 ‘민족’이라는 정체성의 작동 과정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12)

비슷한 맥락에서 박찬승은 ‘민족’ 개념을 추상적인 이론 개념의 문제로 가져가지 않고 과거부터 이어진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의식적 실체로서 다루게 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서양의 ‘nation’이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서 근대에 유입된 번역어라는 것을 자명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은 단순히 새롭게 지어진 단어가 아니라 기존에 있었던 혈연, 거주, 문화, 운명적 공동체 의식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13) 한국의 ‘민족’ 정체성을 파악할 때는 특히 ‘민족’을 고정된 실체로 전제하기보다, 종족적 토대와 근대적 조건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정체성으로 파악하려는 이러한 ‘민족’ 개념의 논의 방향이 적합해 보인다.

민족주의의 선·악에 관한 두 번째 쟁점은 조금 더 첨예한 부분이다. 이것은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형성한 민족의식이 체계적인 신념체계로 주창되면서 나타나는 성격에 관한 문제다. 역사적으로 민족주의가 인류에게 해악을 가져다준 사례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대륙의 제국주의 배후에서 작동하던 힘으로 종족 민족주의를 지목하기도 한다.14) 그러나 민족주의를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으로 간주하고, 청산해야 할 과거의 적폐로만 규정하는 태도는 민족주의를 둘러싼 역사적 조건과 사상적 다양성을 간과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민족주의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민족주의는 단일한 이념으로 고정되어 전개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 조건과 정치 사회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시되어 왔다. 분명 한국의 민족주의는 국권 상실의 위기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문화적 민족주의로 출발하여 20세기 한국사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대한제국기 지식인들은 국혼(國魂)과 국수(國粹)를 강조하며 역사와 언어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했고, 이는 3·1 운동을 거치며 정의나 인도와 같은 보편적 가치와 결합하여 전 국민적 독립 투쟁으로 확산하였다.15)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침탈의 시기에 한국인을 하나로 묶고 저항의 근거를 마련해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때로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정치적 입장이나 시대적 압박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배타적인 국가주의로 변질되며 파시즘적 논리로 변형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국가주의를 주창하며 조선을 일제에 병합하려는 시도나, 해방 직후 민족청년단이 내세운 개인의 권리보다 민족의 이익을 절대화하는 논리, 분단 이후 경제개발의 논리로 개인을 대상화했던 과정들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16) 아마도 국제사회에서 ‘민족’이 지닌 양가적 시선은 민족주의의 명암이 만들어낸 시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한국 민족종교가 민족종교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질문해야 했던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민족종교에 관한 규정이 ‘민족’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 민족종교의 개념은 일제 강점기의 총독부에 의해 유사종교로 치부된 신흥종교에 대한 차별화의 노력으로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17) 민족종교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처음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노력은 민중종교의 개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황선명은 민중의 개념을 종교적 맥락에서 재정의하고자 했는데, 그가 사용한 민중은 기성 질서에서 밀려난 소외된 위치에서 공통의 신앙을 가진 집단으로 규정된다.18) 이는 민족종교에서 ‘민족’이 지니는 정체성의 의미를 개념적으로 명확히 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류병덕은 민중종교의 개념을 더욱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19)

하지만, 민중종교라는 구체화된 정체성을 민족종교와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에 강돈구는 민중종교와 민족종교 사이의 개념적 차이를 드러내 보려 하였고, 유의미한 연구지표를 제시하기도 했다.20) 그는 이러한 구분이 학술적 논의의 가능성과 한국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보았다.21) 결과적으로만 보면 민족종교라는 규정을 민중종교로 새롭게 정착시켜 보려는 시도에 일종의 경계를 긋는 작업이 되었을 수도 있다. 민중종교와는 달리 민족종교는 독자적인 담론의 권위를 유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22)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민족종교라는 명칭은 대체되거나 소멸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응집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85년에 발족한 한국 민족종교협의회는 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민족종교의 규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와 관련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1992년 한국 민족종교협의회는 『한국 민족종교총람』을 발간하였는데, 여기서 윤이흠은 한국의 민족종교가 시대적 특수성 때문에 민족주의에 강한 친화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23) 같은 해에 강돈구가 한국의 근대종교와 민족주의의 관계를 심도 있게 다루기도 했다.24) 이처럼 민족종교를 민족주의와 결부시키는 논의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바람직한 민족종교의 민족주의를 피력하기 위해 사상적 규명의 노력 또한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분명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윤이흠은 개벽사상을 민족종교의 민족의식이 지닌 공통 사상으로 제시하고자 하였다.25) 민족종교의 민족주의적 요소를 사상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연구는 이와 같은 논의의 연속선상에서 민족종교의 규정을 더욱 시대적으로 부합한 가치로 확장해야 할 길목에 서 있다. 민족주의라는 사상을 어떻게 바람직한 민족종교의 정체성으로 가져올지에 관한 세밀한 사상적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기존의 사회학적 시선에서 다루어진 민족주의에 관한 연구들은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민족’적 특수성을 내려놓아야 할 것으로만 보지 않고 양자를 조화하는 학문적 노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열린 민족주의라는 개념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양가적 시선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

김귀옥이 말하는 열린 민족주의는 민족주의를 국수적 이념으로 환원하는 시각과 한편으로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민족주의 자체를 해체하려는 탈민족주의적 경향을 동시에 비판한다. 그러면서 한국 민족주의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개방성과 민주성을 평가해 보고자 하였다. 민족주의가 다양성과 보편성 속에서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이자 실천적 정치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26) 세계화 시대의 대안으로 열린 민족주의를 논한 것이다.

윤대식은 한국의 근대가 시작되었던 역사적 상황을 검토하면서 열린 민족주의의 가능성을 논하고자 했다. 그는 문명개화파가 문제를 내부 체제의 후진성에서 찾았기 때문에 민주성의 확립을 우선시 생각했던 반면, 위정척사파는 외부 문명의 침탈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대외적 저항성을 중심에 두었다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조선의 역사를 민주성과 저항성이라는 민족주의의 두 필수 요소가 엮여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와 공존할 수 있는 개방성을 지니면서도 민족의 자존과 민주적 주체성을 분명히 유지하는 민족주의로서 열린 민족주의를 논하고자 했다.27)

‘민족’의 종족적 토대와 근대적 조건의 관계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열린 민족주의를 말하는 학문적 관점들은 현재 시점에서 한국 민족종교의 ‘민족’ 정체성을 고민해 보는 데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과거를 매개로 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 수 있는 ‘민족’ 정체성에 대한 학문적 고민으로 드러난 성과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민족종교의 문제로 들어가 보자. ‘민족’이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을 조화하는 열린 민족주의의 기조가 한국 민족종교의 사상에는 적용될 수 있을까? 민족종교를 통해 드러나는 ‘민족’의 정체성은 시대적으로 유익한 가치를 제시해 줄 수 있을까? 그 하나의 가능성을 한국 민족종교인 대순진리회의 사상적 검토를 통해서 발견해 보고자 한다.

Ⅲ. 민족의식 발현 양상과 ‘민족주체의식’

1. 한국 민족종교의 민족의식 발현 양상

한국 민족종교의 민족의식이 발현되는 양상의 가장 큰 하나의 축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드러난 민족주의적 양상이다. 세계사적 흐름에서 볼 때 한국의 민족종교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진 신종교(New Religion)의 맥락에서 다뤄진다. 일반적으로 신종교란 ‘일정한 시기에 기성의 전통종교와는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새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종교’28)로 정의된다. 신종교의 발생은 중세를 관통하던 신분제적 가치 체계가 한계에 봉착하고, 국가 권력에 수단화되며 전통종교가 변질되었으며, 제국주의적 폭력이 팽창하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의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조선은 내적으로는 관료들의 부패로 인해 계급 질서를 뒷받침해 주던 유교의 규범적 권위가 해체되고 있었고, 외적으로는 서양에서 시작된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와 인도를 거쳐 동아시아까지 조여 오며 이행기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한국 신종교의 발생을 분석할 때, 종교적 현상을 단순히 사회적 변수의 산물로 치부하는 사회학적 환원주의의 오류는 경계해야 하지만,29) 신종교의 출현이 근대사회의 여명기였던 19세기 조선의 시대적 조건과 밀접한 조응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민족종교에서는 유독 이러한 시대적 환경이 종교의 근본적인 동력으로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30)

한국 민족종교는 한국 신종교에 한국의 자생적 종교라는 특수한 거름망을 장착해서 범위를 더욱 한정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대체로 민족종교는 자생적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신종교가 갖는 시대적 문제의식을 더욱 짙게 내포하고 있다. 민족종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윤이흠은 “민족종교란 한국 자생종교로서 한국 민족의 공동운명체 의식에 입각해서 외부로부터의 압박에서부터 자유와 영광을 추구하는 민중운동을 전개하든가 그러한 역사의식을 가진 종교”31)라고 정의한다. 김종서는 민족종교를 강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포함하는 용어라고 보며, “민족적 맥락에서 나온 신종교를 뜻하는 것이지, 결코 세계종교에 반대 짝이 되는 용어는 아니다”32)라고 설명한다.

민족종교는 19세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거나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여타 신종교들과 구분되는 기준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민족주의를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33) 그리고 그 민족주의는 구체적으로 외세에 의한 침략, 즉 제국주의에 대한 강한 저항으로부터 발현된 민족주의라고 볼 수 있다. 단순한 혈연 공동체 의식을 넘어, 근대적 주체 확립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긴밀히 맞물려 전개되었다.

전형적으로 동학은 한국이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족종교로 알려져 있다. 동학을 창도할 당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에게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문제의식이 분명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34) 물론 동학의 민족주의적 저항정신은 동학이 만들어진 그 당시에 발산된 것은 아니었다.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일제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적 저항정신이 발화되는 시작점이었다. 농민봉기에서 보여준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 속에 조선 정부를 교체하려는 역성혁명의 정신이 아니라, 계급적 탄압과 외세의 폭력에 맞서려는 주체적 시민의식이 흐르고 있던 것은 동학이 지닌 사상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동학농민군은 청일전쟁 중 조선에 진출한 일본군에 의해 궤멸당했지만, 동학의 정신은 이후 발생한 민족종교로 이어지며 일제에 맞서 민족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1861~1922)는 1905년 동학을 새롭게 천도교(天道敎)로 제창하며 교단을 정리하였다. 민족종교로서 천도교는 3.1 운동을 주도하기에 이른다. 3.1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각계의 독립운동을 하나로 결집해 내고, 전국 조직을 이용하여 확산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35)

증산계 민족종교로서 1920년대에 한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보천교(普天敎) 또한 민족운동에 역할을 담당했다.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은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종도 중 한 명으로 1909년 증산 사후에 조직을 운영하여 보천교를 만들었다. 그들의 민족운동은 대외적이기보다는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교단 자금을 독립 자금으로 유용하고, 상해임시정부와의 연계설은 일제의 감시를 강하게 만들었다. 독립을 기도한다는 명분으로 일제는 보천교인을 검거하고 특별법까지 제정하기에 이르렀다.36) 증산계 민족종교 중에서 새로운 지류로 대순진리회의 전신이 되는 무극도(無極道)의 민족운동도 일제의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37)

마지막으로 일제 강점기 때 민족의식을 보여준 대표적인 자생적 민족종교로 대종교(大倧敎)가 있다.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에 의해 1909년 중광(重光)된 대종교는 국조 단군의 신앙을 바탕으로 강력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나철은 이미 대종교를 창립하기 전부터 애국계몽운동과 을사오적 암살 기도 등 국권 회복을 위한 직접적인 노력을 해왔다고 알려져 있다.38)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대종교는 항일 무장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백포(白圃) 서일(徐一, 1881~1921)과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1889~1930)과 같은 대종교인이 중심이 된 ‘정의단(正義團)’은 군정부로 개편이 되었고, 청산리 대첩을 이끄는 등 무장 독립 투쟁의 선두에 섰다.39)

대종교의 항일 운동이 무장 독립운동으로 직접 연결되다 보니, 대종교를 종교가 아닌 민족운동에 활약한 단체로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군으로부터 이어진 대종교의 종교적 이상은 분명 본질적으로 민족운동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40) 이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 국학 분야의 활약이다. 일제의 일본어 교육에 맞선 신채호나 박은식, 주시경과 같은 국학 분야의 연구가들은 대종교의 신도이거나 교단과 밀접히 교유하면서 단군 민족주의적 정서와 논리를 공유하고 있었다.41)

이처럼 한국 민족종교들이 전개한 저항의 양상은 단순히 외압에 대한 물리적 반작용이나 정치적 독립운동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민족종교들의 저항적 활동의 저변에는 침탈당하는 현실을 사상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그 안에는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있었을 것이다. 제국주의라는 문명론적 우월주의 속에서 민족의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투쟁력만큼이나, 민족 구성원 개개인에게 역사적 정당성과 존재론적 자긍심을 부여할 수 있는 강력한 내적 논리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민족종교에서 발현되고 있는 민족의식의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민족중심주의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은 시대적 상황에서 발현되었던 민족주의적 저항정신과 연관되어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도 있기에 함께 짚어가야 할 문제이다. 한국 민족종교들은 우주 질서의 중심을 한국으로 재설정함으로써, 식민지적 열등감을 넘어 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주체적 저항의 근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때론 종교적 선민의식처럼 비칠 수도 있다.

노길명은 기독교적인 구세주 신앙과 선민사상이라는 표현을 원용하여 한국 신종교의 특징 중 하나를 설명하려고 하였다.42) 이후 논의는 민족종교의 민족주체사상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는데, 그는 민족주체사상에서 민족문화 계승사상 뿐만아니라 선민사상을 지적하고 있다.43) 선민사상은 『구약』에서 비롯된 것으로 계약을 통해 이뤄진 민족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적 특수성을 지닌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신종교에 선민사상을 보편화시켜서 적용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종교의 자민족 중심 사상이 드러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는 면에서는 유의미하다.

개별 민족종교의 내용을 살펴보면 종교적으로 선택받은 민족적 서사가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학 가사의 “한울님이 내몸 내서 아국 운수 보전 하네”44)라는 내용에는 하느님의 재림이 민족적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음이 유추된다. 증산계 민족종교에는 하느님의 강세 사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불·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45)라는 구절에는 조선 땅에 강세하신 하느님이 서술되고 있다. 대종교에서는 하늘로부터 이어진 민족이라는 천손사상(天孫思想)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신성성과 유구성을 직접 표현한 것이다.46) 원불교에서는 “조선은 장차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제일 가는 지도국이 될 것”47)이라고 설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배타적으로 흘러가듯이 민족종교의 보편적 지평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민족종교의 민족의식이 발현되는 양상에 관해서 우리는 다양한 논의를 해볼 수 있다. 시대적으로 민족주의가 일제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저항으로서 작동했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기는 힘들다. 폭력에 대한 저항의식으로서 민족주의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국가로서 존립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민족종교 본래의 사상적 문맥과 완벽히 합치되는 것인지는 따져 보아야 한다. 민족주의가 자민족중심주의로 드러나는 것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정말로 민족종교는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치를 고수할 수밖에 없을까? 오늘의 시점에서 종교적 가치가 어떤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지를 찾아보아야 한다.

2. ‘민족’ 정체성의 논점으로서 대순사상의 ‘민족주체의식’

한국의 민족종교는 대체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로 받아들여진다.48) 민족종교가 발생하던 시기에 아노미적 상황에서 민족의식은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강한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고, 형이상학적 이념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하려는 실천적 이데올로기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민족종교는 민족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민족주의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집단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공동체의 위기를 타개하는 강력한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타자와의 경계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배타적 긴장을 수반하는 이중적 성격으로 전개되어 왔다. 민족주의의 이중적 성격의 문제는 민족종교가 태동하던 시대적 상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와 다문화 사회에 놓여있는 현시점에도 민족의식의 발현은 사회 구조와 문화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통합과 동시에 갈등 심화라는 양면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49) 시대적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민족종교의 민족의식은 좀 더 구체적으로 ‘민족주체의식’이라고도 표현된다.50) 대순사상에서는 민족종교라는 정체성을 민족주체성과 연결하고 있는 내용이 드러나고 있다.

본 도(道)는 민족종교이니 민족주체성 계도에 앞장서야 한다.51)

앞서 살펴본 대로 민족종교에서 ‘민족주체의식’이 발현되는 양상은 시대적 상황에서 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서는 측면과 ‘민족’ 고유의 종교적 가치를 통해 주체적 정체성을 공고히 다지는 과정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민족주체의식’은 근대의 시작이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역사와 신앙의 주체인 ‘민족’이 외부의 타율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감당하며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정신이 민족종교에서 표출되는 ‘민족주체의식’의 본질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문제는 민족종교의 사상이 폭력을 폭력으로 막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족종교의 ‘민족주체의식’이 지닌 저항 방식은 물리적 대결보다 정신적 자기 회복을 통한 내적 주체성의 확립에 더 가깝다. 이는 ‘민족주체의식’이 단순한 반외세 이데올로기로 환원되지 않으며, 더욱 근원적인 차원에서 ‘민족’의 존재 근거와 가치를 재정립하려는 사상적 지향을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문제는 ‘민족주체의식’을 자민족중심주의와 연결하는 지점에서 드러난다. 자민족의 신성한 선택이나 우월성을 강조하는 자민족중심주의가 타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 변질될 경우, ‘민족주체의식’은 협소한 민족적 우월의식으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 민족종교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 싹튼 사상이었음에도 대체로 민족적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52) ‘민족주체의식’을 자민족중심주의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본 논문에서는 대순사상에서 드러나고 있는 ‘민족주체의식’의 윤리적 범주를 통해 ‘민족’ 정체성을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한국의 민족종교는 단순한 토착종교의 의미를 넘어, 기존의 공동체 의식 위에 종교적 역사 주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며 형성되었다. 그래서 민족종교의 ‘민족’ 개념을 역사적 민족주의에서 부르짖는 ‘민족’ 개념과 차별화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53) 이것은 민족종교가 지닌 새로운 ‘민족’ 정체성 규정에 대한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순사상의 ‘민족’ 정체성을 ‘민족주체의식’의 윤리적 차원에서 살피는 것은, 종교적 주체의식이 어떻게 보편적인 열린 민족주의의 지향점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밝히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민족주의 연구자인 앤서니 스미스(Anthony D. Smith, 1939~2016)는 민족주의가 “민족의 이데올로기와 상징체계에 의해 고취된 능동적인 운동”54)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의 특징으로서 “세계의 평화와 정의는 다수의 자유로운 민족들을 기반으로 해서만 건설될 수 있다.”55)는 점을 지적했다. ‘민족’을 토대로 세계 평화의 보편적 윤리의식이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증산계 민족종교의 연구는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 증산의 사상에서 민족주체성의 특징이 도덕성에 있다고 보는 연구 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56) 더욱이 대순진리회의 경전 속에는 민족주체성의 언급이 짧지만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민족주체의식’은 단순히 자생적 종교의 존립을 위한 폐쇄적 이념에 머물지 않고, 도덕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매개로 인류 전체의 상생(相生)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학술적 검토의 대상이 된다.

이는 우리 민족을 우주적 질서 회복과 세계 평화의 실천적 주체로 격상시킨 것으로, 민족적 특수성이 보편적 가치의 지평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사상적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4장에서는 대순사상의 ‘민족주체의식’이 내포하고 있는 윤리적 함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민족’ 정체성이 보편적 지평으로 확장되는 사상적 실체를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한다.

Ⅳ. ‘민족’ 정체성의 보편적 지평으로서 ‘민족주체의식’의 윤리적 함의

대순사상에서 ‘민족주체의식’은 어느 하나의 틀로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광범한 접근이 가능하다. 본 논문에서 특히 윤리적 의미에 주목하는 이유는 해당 측면이 열린 민족주의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리는 인간의 본성과 상호 관계에 대한 고민 속에 공동체의 질서를 정립하고자 하는 인간 노력이다. 무엇이 정당한 윤리로 제시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떠나서 적어도 그 노력의 과정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공통적인 지향점을 지닌다. 이것은 열린 민족주의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민족적 특수성이 보편성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지평 자체가 더 넓은 보편적 지평으로 나아가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대순사상에서 드러나고 있는 ‘민족주체의식’의 윤리적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다뤄 보고자 한다.

1. 도덕적 모범의식

첫 번째는 바로 도덕적 모범(模範)의식이다. 다음은 ‘민족주체의식’이라는 측면에서 드러나고 있는 도덕적 모범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상제께서 어느 날 가라사대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의 차별로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가 없고 청국으로 넘겨도 그 민족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라.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신명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 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일시 천하 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와 일월 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 주어서 역사케 하고자 하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이니라. 만일 인 자까지 붙여주면 천하가 다 저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인 자를 너희들에게 붙여 주노니 잘 지킬지어다”57)

위 『전경』 구절은 19세기 말의 시대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서양의 제국주의가 동아시아까지 밀려왔고, 제국주의에 가담한 일본이 조선을 노리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의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다. 위 구절에서 언급되는 당시 서양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은 역사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인종주의라고 부르는 서양의 인종차별에 대한 역사는 유대인에 대한 강제 이주, 흑인 노예의 매매 속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 19세기에는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을 사회에 적용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을 토대로 제국주의의 폭력을 정당화하기에 이른다.58) 이러한 상황에서 증산의 천지공사는 서양에 조선을 넘기지 않고, 일본에 일시적인 천하통일의 기운을 붙여 주어 일본이 지닌 국가적 원한까지 풀어내는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증산이 밝히고 있는 서양과 일본의 국가적 정체성은 고정된 가치가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해석될 여지도 충분히 있다. 다만, 이러한 규정이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조선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부분이다. 조선의 국난이 예견되는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상제(上帝)의 천지공사는 조선에 강한 힘을 붙여 주는 것이 아니라 어질 ‘인(仁)’자의 도덕적 가치를 붙여 주는 것으로 결정되고 있다.

증산의 천지공사가 조선에 이러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대순사상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천지공사의 방향은 진멸할 지경에 닥친 인류의 구제에 맞춰져 있다. 상극(相克)적 구조에서 발생한 원과 한은 인류와 신명(神明)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상도(常道)를 잃은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상생의 도로 후천선경을 열게 된 것이다.59) 이것이 곧 천지의 성공이며, 개벽된 세상이다. 증산은 후천을 가을에 비유하면서 “만물이 가을 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60)라고 밝히고 있다. ‘민족’적 가치의 바탕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민족’이 추구하고 지켜야 할 가치가 인류 구제라는 천지공사의 목적에 부합하며, 도덕적으로 성숙한 참된 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질 ‘인’의 가치가 된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세계를 이끌어 갈 것을 우리 민족에게 당부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도덕적 모범의식은 이와 다름없다. 증산의 언명은 대순사상에서 구체화 되어 나타난다. 다음 인용 구절을 보자.

전 도인들이 좋은 일을 솔선수범함으로써 그 행동이 귀감이 되어 사회로 퍼져 나간다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본받게 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국가 사회가 정화(淨化)되어 국민화합이 이룩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전 인류가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61)

증산을 상제로 신앙하며 대순진리회를 창설한 우당(牛堂) 박한경(朴漢慶, 1917~1996)의 훈시에는 대순진리회의 수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도덕적 모범의식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이 드러난다. 내용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덕적 모범의식은 타자를 인위적으로 계몽하고 인도하려는 선도(先導)의식과는 구분된다. 대순사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족주체의식’은 주체 스스로가 도덕적 완성을 통해 세계 평화의 자발적인 귀감이 되는 모범의식에 그 본질이 있다. 선도의식이 새로운 가치를 앞장서서 전파하는 선구자적 성격을 지닌다면, 모범의식은 내면적 수도(修道)를 바탕으로 타자에게 자연스러운 영감을 주는 감화적 영향력을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모범의식은 민족주의가 지닌 배타적 우월주의를 경계하고, 민족적 특수성을 인류 공동체의 보편적 윤리 표준으로 승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스스로가 도덕적 표본이 되는 과정은 국한된 의미의 민족 경계를 넘어 세계사적 지평에서 상생의 가치를 실천하는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도덕적 모범의식은 언제든 자기가 옳다는 확고한 믿음 속에 잘못된 선도의식과 도덕주의(Moralism)62)로 변질될 수 있다. 복잡한 사회적 현상을 오로지 도덕적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만 재단하고, 행위의 실제적 맥락이나 복합적인 이해관계보다 주관적인 윤리적 신념을 절대시하는 도덕주의의 태도는 도덕을 명분으로 타자에 대한 배타적 낙인찍기와 집단적 공격을 정당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다음에 살펴볼 ‘해원(解冤)’의 주체의식은 이와 같은 도덕주의의 위험을 해소한다.

2. ‘해원’의 주체의식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여기서 ‘해원’은 대순사상의 핵심 교리인 ‘해원상생(解冤相生)’의 문법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이념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해원상생’은 다양하게 연구되어 왔다. 본 논문의 주제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다뤄질 부분은 실천적 윤리로서 ‘해원’의 원리가 지닌 쌍방향의 관점에 관한 것이다. ‘해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모두 적용된다.63) 내가 누군가에게 맺을 수 있는 원을 풀어내려는 가해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 당한 억울한 원을 해소하려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원’의 주체의식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실천적 윤리로서 ‘해원’은 1차적으로 내가 타인을 향해 가하는 잘못된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나에 대한 타인의 원한을 특별히 척(慼)이라고 하고64), 척을 푸는 것을 ‘해원’의 중요한 실천으로 본다. 남을 미워하거나, 언행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 모두 척을 짓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지양한다. 이것은 ‘해원’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주체인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적 태도이며, 원한을 풀어내려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나의 잘못된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원한을 만들 수 있기에 나에 대한 타인의 원한을 풀어나가려는 주체적인 행위를 요구하게 된다. 그렇게 ‘해원’이 실천될 때 ‘상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해원상생’의 중요한 원리이다.65) 그런데, 한편으로 ‘해원’은 내가 당한 억울한 원한을 향해서도 요구되는 윤리적 실천이다. 다음 구절을 보자.

또 하루는 경석에게 가라사대 “갑오년 겨울에 너의 집에서 三인이 동맹한 일이 있느냐”고 물으시니 그렇다고 대답하니라. 상제께서 “그 일을 어느 모해자가 밀고함으로써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고 하시니 경석이 낙루하며 “그렇소이다”고 대답하니라. 또 가라사대 “너의 형제가 음해자에게 복수코자 함은 사람의 정으로는 당연한 일이나 너의 부친은 이것을 크게 근심하여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나니 만일 너희들이 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후천에 또다시 악의 씨를 뿌리게 되니 나를 좇으려거든 잘 생각하여라” 하시니라.66)

증산을 따르던 차경석 종도의 일화는 ‘해원’의 다른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차경석의 아버지 차치구(車致九, 1851~1894)는 전봉준(全琫準, 1855~1895)과 함께 마지막까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해 싸웠던 인물이다. 공주 우금치 전투를 기점으로 동학농민군은 흩어지고 차치구도 국사봉 토굴에서 숨어 지내다가 마을 사람의 고발에 잡혀가 고을 현감에게 처형당했다.67) 당시 상황에서 차경석이 자식된 도리에 아버지를 밀고한 사람이나, 처형한 사람에게 복수코자 함은 당연한 감정일 수 있다. 하지만, 해원시대를 천명한 증산의 가르침은 마음을 돌려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주체의식과는 다르게 피해 당사자가 복수의 권리를 스스로 내려놓음으로써 원한의 연쇄 고리를 끊어내는 윤리를 보여준다. ‘해원’의 주체의식은 내면에 도사린 파괴적인 증오마저 능동적으로 정화하려는 도덕적 결단을 보여준다. 이러한 ‘해원’의 주체의식은 도덕적 모범의식이 주관성에 치우쳐 잘못된 도덕의 강요로 빠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도덕의 실현 주체를 타인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해원’은 타자를 향한 도덕적 잣대의 투영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내면에 맺힌 원한까지도 스스로 먼저 해소하려는 능동적인 자기 수양(修養)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주체는 타인을 정죄하거나 개조하려는 권위적 위치에서 벗어나, 악을 선으로 갚는 실천을 통해 도덕적 완성과 상호 ‘상생’의 질서를 동시에 실현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해원’의 주체의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민족적 차원으로도 전개된다. 다음 구절에는 ‘민족주체의식’이 ‘해원’의 관점과 연결되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희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 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려 함이노라. … 68)

위 인용 구절에는 증산 자신이 상제로서 천하를 크게 돌아보다가 조선 땅에 강세하게 된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증산은 상제의 인신(人身) 강세로 조선 땅을 택하게 된 이유가 조선 민족에게 어떤 뛰어난 자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참한 재난에 처해 있고, 알려지지 않은 약소민족을 먼저 돕기 위해서 조선을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민족적 우월의식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 선민의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조선 민족을 먼저 도와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이다. 최후의 종착점은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원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즉, 조선을 표본으로 삼아 세상에 쌓인 원을 풀어내는 본보기로 삼고자 한다는 것이다. 조선에만 국한된 원한의 ‘해원’이 아니다.69) 이 점은 민족적 차원에서 ‘해원’의 주체의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대순사상의 ‘민족주체의식’은 ‘민족’의 원한을 스스로 승화시켜 인류의 보편적 ‘해원’을 이끌어내는 주체적 선구자의 역할을 지향한다. 이러한 ‘해원’의 실천은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전 지구적 고난을 인식하는 책임 있는 주인의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3. 세계 평화의 주인의식

증산은 조선의 국가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예시(豫示)를 남겼다.

상제께서 종도들을 데리고 계실 때 “현하 대세가 오선위기(五仙圍碁)와 같으니 두 신선이 판을 대하고 있느니라.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는데 한 신선은 주인이라 어느 편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대접할 일만 맡았나니 연사에만 큰 흠이 없이 대접만 빠지지 아니하면 주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로다. 바둑이 끝나면 판과 바둑돌은 주인에게 돌려지리니 옛날 한 고조(漢高祖)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되 우리나라는 좌상(座上)에서 득천하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70)

오선위기는 다섯 신선이 모여 바둑을 두는 형국을 나타내는 용어인데, 상산사호(商山四皓)71)에 주인 신선을 더한 것이다.72) 바둑판을 대하고 있는 두 신선과 훈수를 하는 두 신선을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에 비유하고, 나머지 주인 신선을 조선에 비유하여 19세기 후반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바둑의 대결은 조선을 두고 각기 진행되는 정치적 행보일 수도 있고, 국제적인 정세 속에서 나타나는 국가적인 힘겨루기를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결국 바둑이 끝나면 판과 바둑돌은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말을 통해 조선이 주인 신선으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특히 조선이 앉아서 천하를 얻는다고 한 이야기는 증산의 천지공사에 조선을 상등국으로 만드는 공사와도 관련되어 보인다. 증산은 조선을 상등국으로 만드는 공사를 행하였고73), 재조가(才操) 월등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고 말하였다.74) 이는 단순히 조선의 국권 회복을 넘어, 조선이 세계 질서의 중심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세계 평화의 주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식을 담고 있다. 무력이나 쟁탈이 아닌, 덕(德)과 재조로써 세계의 주인의식을 실현하는 새로운 문명의 이상을 제시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세계의 주인의식은 도덕적 모범의식과 ‘해원’의 주체의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위험하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민족주의가 한편으로 다른 민족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주인의식은 민족적 우열의식으로 왜곡되어 건전하지 않은 폭력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향해갈 수 있는 것이다. 대순사상에서 ‘민족주체의식’으로 제시될 수 있는 세계의 주인의식은 ‘해원’의 주체로서 도덕적 실천을 통해 세계의 평화를 주도하는 주인의식이다.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윤리적 가치로 갈무리되어 ‘민족주체의식’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권위성과 폭력성을 탈피한 세계 평화의 주인의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도인들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주인은 양보하고 겸손하면서 손님들에게는 더욱 친절히 대해 주어야 합니다. 주인이 너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면 손님이 섭섭하게 생각하여 벽이 생기게 됩니다. 주인의식은 도장(道場)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75)

해원상생의 원리는 평화(平和)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전천하(全天下)를 평화롭게 하는 것입니다.76)

도덕적 실천으로 주인의식은 완성된다. 주인의식은 대접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보하고 겸손하게 손님을 대접해 주는 의식이다. 상생을 전제하는 ‘해원’의 실천도 결국 그 끝은 세계의 평화에 있다. 대순사상에서 말하고 있는 이상적 인간상도 세상을 도덕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주인으로서 의미가 있다.77)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주인의식이야말로 ‘민족주체의식’의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윤이흠은 일찍이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의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78)하자는 말을 인용하며 국제적 협력과 평화의 질서는 각각의 국가가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주체의식을 가졌을 때만 지켜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79) 그러한 점에서 대순사상에서 드러나고 있는 세계의 주인의식이야말로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자 하는 ‘민족주체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은 하나의 독단적인 집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민족’은 ‘민족’과 만나고 관계 맺을 때 비로소 온전한 ‘민족’이 된다. 나라는 존재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온전히 완성되는 것처럼 ‘민족’의 정체성도 다른 ‘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민족’ 간 상호 관계성 속에서 완성되는 정체성을 대립과 우월의식이 아닌 세계 평화의 주체의식으로 완성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세계 평화의 주인의식이다. 대순사상이 제시하는 세계 평화의 주인의식은 ‘민족’적 자긍심을 배타적 우월감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해원’의 도덕적 실천을 통해 모든 ‘민족’과 함께 평화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상생의 주체의식으로 완성된다. 이는 보편적 인류 공동체를 향한 ‘민족주체의식’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Ⅴ. 나오는 말 : 보편과 특수의 성숙한 통합을 향하여

민족종교의 보편적 지평에 관한 논의는 자칫 세계종교와 민족종교의 이분법적인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연결된다. 대부분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역사에 대한 보편적인 이상을 구현하려는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 또한 모든 종교는 언제나 특정한 민족에게 수용되어 역사적 상황이 요청하는 바를 추구하는 특수한 운동이기도 하다.80)

한국 민족종교 역시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인류 보편의 이상을 지향하는 이중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태생에서부터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의 긴장 속에서 성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민족종교의 ‘민족’ 정체성을 논하는 것은 곧 이 보편과 특수의 관계를 어떻게 사상적으로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국가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21세기, 우리는 열린 ‘민족’ 정체성으로 그 지평을 확장해야 하는 시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다양한 응전의 결과가 층층이 쌓여 하나의 흐름을 이루어야 우리는 보다 현명한 가치에 점진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민족’의 개념에 지역적 특수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근대에 새롭게 형성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처럼, 혹은 ‘민족’을 중심에 두는 민족주의를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엇나간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는 정체성을 논해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족종교에서 지향해야 하는 특수한 ‘민족’ 정체성에 관한 보편적 지평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국 민족종교 중 하나인 대순진리회에서 사상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민족주체의식’은 그 ‘민족’의 정체성의 지평을 보편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지니고 있다. ‘민족’은 한반도라는 지리적, 혹은 한민족이라는 인종적 맥락에서의 ‘민족’을 지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민족’ 정체성이 온전히 규정되지 않는다. 대순사상에 나타나고 있는 ‘민족’ 정체성은 ‘민족주체의식’이라는 보다 광범한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민족주체의식’은 인종적 배경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괴리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그것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순사상의 ‘민족주체의식’으로부터 형성된 ‘민족’ 정체성은 특수성을 딛고 서 있지만, 민족의 폐쇄성과 독단성으로 함몰되지 않는 주체적인 의식을 지닌다. 그 주체성은 도덕적 모범의식과 ‘해원’이라는 윤리적 실천의 주체의식으로 규정되고, 세계의 평화를 만들어내려는 주인의식으로 매듭지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윤리적 모범의식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이뤄내려는 ‘민족주체의식’을 내면화할 때 비로소 특수성과도 단절되지 않는 보편적 ‘민족’의 정체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순사상에서 ‘민족’ 정체성이란 한반도라는 지리적 공동체에 뿌리를 두면서도, 세계 평화의 주인으로서 인류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는 주체적 자기규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상적 고찰은 민족종교에서 ‘민족’의 정체성이 어떻게 보편적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하나의 시도가 될 것이다.

Notes

1) David Harvey, The New Imperial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pp.26-33 참조.

2) 김종서, 「현대 신종교 연구의 이론적 문제」, 『현대 신종교의 이해』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p.6 참조.

3) 한국 민족종교협의회의 민족종교 대표성 문제에 대한 현재의 논의와는 별개로 처음 한국 민족종교협의회의 설립 취지는 우리나라의 민족종교가 단순한 토착종교의 의미와는 구별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한국 민족종교협의회의 대표성에 대한 논의는 김종만,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대표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신종교연구』 47 (2022) 참조.

4) 《한국 민족종교협의회》 (http://www.kornra.or.kr/sub1-1.php, 2026. 2. 18. 검색).

5)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창립취지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30년사 : 1985~2015』 (서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2015), p.121.

6) Talal Asad, Genealogies of Religion: Discipline and Reasons of Power in Christianity and Islam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pp.27-29 참조.

7) 조너선 Z. 스미스, 『종교 상상하기 : 바빌론에서 존스타운까지』, 장석만 옮김 (파주: 청년사, 2013), p.22 참조.

8) 유흔우는 「민족종교의 특수성과 보편화 가능성」, 『대순사상논총』 10 (2000)에서 대순진리회를 포함한 민족종교가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넘어 보편화되는 데 필요한 사항으로 사회적 역할 확대, 교리적 논증을 통한 원리 정립 등을 제시하였다. 김태수는 「대순사상의 민족주의적 요소에 대한 재해석」 (대진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2)에서 대순사상의 민족주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상제의 인신강세(人身降世), 신도(神道)에 대한 사상적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권동우는 「대순진리회의 ‘세계종교’ 가능성에 관한 연구」, 『대순사상논총』 35 (2020)에서 민족종교의 범주 속에 대순진리회의 정체성을 짚어가면서 세계종교의 가능성을 논하고자 했다.

9) 김현우는 「박은식의 국교론을 통해 본 대순사상의 민족주의적 특징 : 천지공사와 지상선인에서 나타난 개인의 주체성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22 (2014)에서 대순사상의 민족주의가 개인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주체적 민족주의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주동은 「대순진리회의 민족주체성 연구」 (대진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25)에서 대순진리회에 나타난 민족주체성을 현대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는 실천적인 정신의 차원에서 정리하고 있다.

10) 신기욱,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파주: 창비, 2009), pp.21-22 참조. 손진태 등 전통적 민족사학자들은 한민족의 역사적 연속성과 고대로부터의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권혁범, 신형기, 임지현 등 한민족을 조선왕조 말기에 도입된 근대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간주하는 관점도 있다.

11) 같은 책, pp.18-19 참조.

12) 그에 따라 신기욱은 민족주의를 단순한 이데올로기나 담론이 아니라, 특정 역사적 경험 속에 각인된 사회적 힘으로 파악한다. 한국 민족을 종족적 실재와 근대적 구성물 사이의 절충물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족적 토대가 다른 정체성과의 경쟁 속에서 어떻게 ‘민족’이라는 지배적 정체성으로 각인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 것이다. 같은 책, pp.25-40 참조.

13) 박찬승, 『민족·민족주의』 (서울: 소화, 2019), pp.22-25 참조. 앤서니 스미스가 제시한 에스니(ethnie) 개념도 서양의 국가(nation)와는 다른 한국의 ‘민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박찬승은 이를 ‘족류’로 번역하고자 했다.

14) 물론 이에 대해서도 서구 국민국가의 성숙한 민족주의와는 공통점이 없음을 지적한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이진우·박미애 옮김 (파주: 한길사, 2011), p.430 참조.

15) 박찬승, 앞의 책, pp.148-172 참조.

16) 같은 책, pp.231-249 참조.

17) 이강오, 『한국신흥종교총감』 (서울: 한국신흥종교연구회, 1992), p.4 참조.

18) 황선명, 「민중운동과 종교 : 종교운동의 본질에 관한 고찰」, 『종교학연구』 2 (1979), pp.49-50 참조.

19) 류병덕, 『한국 민중종교 사상론』 (서울: 시인사, 1985) 참조. 류병덕을 필두로 1985년 간행된 『한국 민중종교 사상론』에는 민중종교의 사상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민중종교가 지니고 있던 ‘민족’ 정체성의 규정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민중종교 사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하려는 노력보다는 종교사상의 소개에 치중하는 한계가 있었다.

20) 강돈구, 「민족종교와 민중종교」, 『한국종교연구회회보』 1 (1989), p.9 참조. 민족종교를 종교적 신념이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가치와 결합한 형태로, 민중종교를 종교가 사회 변혁 이론인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여 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형태로 이해하였다.

21) 같은 글, pp.9-10 참조.

22) 윤이흠, 『일제의 한국 민족종교 말살책 : 그 정책의 실상과 자료』 (서울: 모시는 사람들, 2007), p.127 참조. 윤이흠은 역사를 지배와 피지배의 정치적 이념으로 볼 때 존재하는 개념이 민중이라고 보았지만, 민족은 자연집단이라는 점을 지적하여 민족종교의 민족적 정체성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23)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국민족종교총람』 (서울: 한누리, 1992), p.44 참조. 그렇지만, 그는 한국에서 새롭게 발생한 신종교를 폐쇄적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종교로 이해하는 틀을 벗어나고자 했다.

24) 강돈구, 『한국 근대종교와 민족주의』 (서울: 집문당, 1992) 참조.

25) 윤이흠 외, 『한국민족종교의 원류와 미래』 (서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2011), pp.23-24 참조.

26) 김귀옥, 「세계화 시대의 열린 민족주의 : 한국의 민족문제와 민족주의를 둘러싼 성찰과 전망」, 『탈경계 인문학』 2-1 (2009), pp.65-71 참조.

27) 윤대식, 「한국 민족주의의 쟁점 :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양가적 시선에 대한 자존의 변명」, 『정신문화연구』 36-2 (2013), pp.341-355 참조.

28) 이경원, 『한국 신종교와 대순사상』 (서울: 문사철, 2011), p.21.

29) 강돈구, 『종교이론과 한국종교』 (서울: 박문사, 2011), pp.565-580 참조.

30) 황선명, 「민족종교사상 연구의 몇 가지 쟁점」, 『종교연구』 6 (1990), p.266 참조.

31) 윤이흠, 『한국종교연구 1』 (서울: 집문당, 1996), pp.285-288.

32) 김종서·박승길·김홍철, 『현대 신종교의 이해』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p.6.

33) 윤이흠 외, 『한국민족종교의 원류와 미래』, pp.23-24 참조.

34) 표영삼, 『동학 1 : 수운의 삶과 생각』 (서울: 통나무, 2004), pp.61-64 참조.

35) 윤이흠, 『일제의 한국 민족종교 말살책 : 그 정책의 실상과 자료』, pp.92-93 참조.

36) 같은 책, p.103 참조.

37) 고병철, 「종교와 항일독립운동, 그리고 쟁점 : 무극도 사례를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35 (2020), pp.49-50 참조.

38) 정영훈, 「대종교와 ‘단군민족주의’」, 『고조선단군학』 10 (2004), p.284 참조.

39) 박영석, 「대종교의 민족의식과 항일민족독립운동 下」, 『한국학보』 9-3 (1983), p.106 참조.

40) 강돈구·고병철, 「대종교의 종교민족주의」, 『고조선단군학』 6 (2002), pp.192-193 참조.

41) 정영훈, 앞의 글, p.297 참조.

42) 노길명, 『한국신흥종교연구』 (서울: 경세원, 1996), pp.47-52 참조.

43) 노길명, 「한국 근·현대사와 민족종교운동」, 『한국민족종교운동사』 (서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2003), p.67 참조.

44) 『용담유사(龍潭遺詞)』, 「안심가(安心歌)」.

45) 대순진리회 교무부, 『전경』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예시 1절.

46) 강돈구·고병철, 앞의 글, p.186 참조.

47) 『대종경』, 「전망품」 23장, 『원불교전서』 (이리: 원불교중앙총부교정원, 1989), pp.393-394.

48)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국민족종교협의회 30년사 : 1985~2015』 (서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2015), p.103 참조.

49) 하진기, 「단일민족의식이 다문화 한국사회의 인종계층화형성에 미치는 영향과 그 함의」, 『다문화와 평화』 12-2 (2018), pp.69-70 참조.

50) 류병덕은 일찍이 민족종교연구에서 민족주체의식을 전면에 제시한 바 있다. 류병덕, 『한국민중종교사상론』 (서울: 시인사, 1985), p.14 참조. 노길명은 민족종교의 사상적 특징으로 민족주체사상을 특정하여 서술하기도 하였다. 노길명, 「한국 근·현대사와 민족종교운동」, 『한국민족종교운동사』, p.67 참조.

51)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지침』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84), p.25. 1982년 8월 20일로 기록되어 있는 이와 같은 내용은 시기상 민족종교협의회의 발족 이전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대순진리회를 영도하였던 도전(都典) 박우당(朴牛堂, 1917~1996)의 인식에는 민족종교에 대한 의식이 독자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52) 류병덕, 앞의 책, pp.14-18 참조.

53) 이경원, 「한국민족종교의 특성과 대순사상」, 『신종교연구』 18 (2008), p.214 참조.

54) 앤서니 D. 스미스, 『족류 : 상징주의와 민족주의』 김안중 옮김 (파주: 아카넷, 2016), p.141.

55) 같은 책, p.142.

56) 류병덕, 앞의 책, p.17 참조.

57) 『전경』, 공사 2장 4절.

58) 강철구, 「서양문명과 인종주의 : 이론적 접근」, 『서양사론』 70-1 (2001), pp.15-27 참조.

59) 『대순진리회요람』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p.8 참조.

60) 『전경』, 예시 30절.

61) 「도전 훈시」, 『대순회보』 6 (1987), p.2.

62) 세실 앤서니 존 코디, 『너절한 도덕』, 이민열 옮김 (파주: 서광사, 2021), pp.40-50 참조.

63) 차선근, 「가해자와 피해자의 콜라보, 해원상생」, 『대순회보』 246 (2021), pp.41-48 참조.

64) 『대순진리회요람』, p.19.

65) 『대순지침』, p.27, “해원(解寃)은 척(慼)을 푸는 일이며 척을 맺는 것도 나요,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풂으로써 상대는 스스로 풀리게 되니, 양편이 척이 풀려 해원이 되고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66) 『전경』, 교법 3장 15절.

67) 조규제, 「차치구(車致九)」, 『대순회보』 204 (2018), pp.37-38 참조.

68) 『전경』, 권지 1장 11절.

69) 『전경』, 공사 3장 4절 참조.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원을 푼다는 것이 조선에 국한해서 오랜 세월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원의 뿌리를 단주의 원으로 소급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70) 『전경』, 예시 28절.

71) 《네이버 지식백과》, 「상산사호」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10985&cid=50293&categoryId=50293, 2026. 3. 21. 검색) 참조. 중국, 진대(秦代) 말기에 난세를 피하여 산시성 상산(商山)에 숨은 4인의 노고사(老高士)를 말한다.

72) 대순진리회 교무부, 「오선위기(五仙圍碁)」, 『대순회보』 136 (2012), p.27.

73) 『전경』, 예시 29절, “상제께서 매양 뱃소리를 내시기에 종도들이 그 연유를 여쭈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우리나라를 상등국으로 만들기 위해 서양 신명을 불러와야 할지니 이제 배에 실어 오는 화물표에 따라 넘어오게 되므로 그러하노라’고 하셨도다.”

74) 『전경』, 공사 2장 25절, “ … 다시 상제께서 이르시기를 ‘이 말세를 당하여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뒷날 대전쟁이 일어나면 각기 재조를 자랑하리니 재조가 월등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이 공사가 끝나자 천고성이 사방에서 일어났도다.”

75) 「도전 훈시」, 『대순회보』 6 (1987), p.2.

76) 「도전 훈시」, 『대순회보』 35 (1993), p.2.

77) 『대순지침』, p.37,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인데 이것을 어기면 도통을 받을 수 있겠는가.”

78) 김구,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서울: 돌베개, 2002), p.425.

79) 윤이흠, 『일제의 한국 민족종교 말살책 : 그 정책의 실상과 자료』, p.128 참조.

80) 윤이흠, 『한국종교연구 3』 (서울: 집문당, 1991), p.7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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